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10:56:15

록펠러 공화당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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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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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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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계파 ■ 급진파 공화당, ■ 민주당 주전파, ■ 버번 민주당, 비타협파, ■ 록펠러 공화당, ■ 뉴딜연합, 보수연합
( 중앙 정당 · 지역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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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공화당
Rockefeller Republican
<colbgcolor=#e81018> 활동 시기 1930년대 ~ 1980년대(파일:모호 아이콘.svg)[1]
주요 인물 넬슨 록펠러
토머스 E. 듀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2]
조지 W. 롬니
존 린지[3]
찰스 구델[4]
제이콥 재비츠
존 B. 앤더슨[5]
이념 온건 공화주의[6]
정당

스펙트럼 중도 ~ 중도우파[7]
연관 집단 공화당 관리 그룹

1. 개요2. 성향3. 역사4. 유사 개념
4.1. 루스벨트 공화당(Roosevelt Republican)4.2. 사우스 파크 공화당 (South Park Republican)4.3. Republican In Name Only4.4. 공화당 관리 그룹
5. 사례
5.1. 21세기 이후
6. 여담7. 같이 보기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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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ckefeller Republicans / Liberal Republicans / Moderate Republicans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존재했던 미국 공화당의 정치 계파로 자유주의 공화당이나 온건 공화당이라고도 한다.[8] 공화당에서 moderate 내지 liberal한 성향을 보이는 공화당원들을 가리킨다. 진보적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보는 평도 많다.

석유왕 록펠러에서 따온 건 아니고[9], 그의 손자이자 공화당온건파 정치인의 대명사인 넬슨 록펠러에서 비롯되었다.

2. 성향

전반적으로는 중도 ~ 중도우파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다.

록펠러 공화당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일반적인 공화당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국유화에 반대하고, 대기업월가에 우호적인 편이다. 사회안전망 확보와 복지 정책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입장이지만, 민주당의 리버럴 진보파들과는 달리 사회안전망 구축과 유지에 있어서 재정건전성을 담보하고자 했고, 복지 정책 프로그램들을 민주당 행정부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비록 일정 수준의 규제는 지지했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를 늘리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 규제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의 이익과 민간 기업의 이익의 우호적인 상호작용을 추구했으며, 이는 경제관료와 기업인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 일본의 경제발전 모델과 유사하다고 평가된다.

또 이와같은 맥락에서 록펠러 공화당원들은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용주의적인 접근법을 지향했다. 정책 기획과 추진의 과정에서 엔지니어, 의사, 과학자, 경제학자, 기업인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록펠러 공화당원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할 때에도 기업인 출신들을 많이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대표적으로 재무부 장관으로는 클리블랜드 은행가 조지 험프리를 임명했으며, 국방부 장관으로는 제너럴 모터스 CEO를 역임한 찰스 E. 윌슨[10]을 임명했다. 농무부 장관으로는 아이다호의 농장주 에즈라 태프트 벤슨을 임명했으며, 노동부 장관으로는 뉴저지의 기업인 제임스 P. 미첼을 임명했다.[11][12]

또 이러한 특성 때문에 록펠러 공화당원들 중에는 기업인 출신들이 상당한 편인데, 대표적으로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의 일원인 넬슨 록펠러 본인과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 임원이었던 조지 W. 롬니, 투자은행 출신인 C. 더글러스 딜런 등이 있었다. 다만 주류 공화당과 달리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특히 건설 부문 근로자들에 친화적인 성향을 보여 각종 인프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대외정책에서는 일반적인 공화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안보를 내세우면서도, 미국 예외주의보다는 국제주의[13]해밀턴주의현실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이는 신보수주의패권주의적 외교 스탠스와 다르지만 고보수주의고립주의적 성향과도 구별되는 것이다.[14]

성소수자, 낙태, 이민 등의 사회문화적 이슈에서도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다만 모든 경우에 그랬던 것은 아닌 게, 당장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사회문화적 이슈에 있어서 흑인 민권운동에는 우호적이었던 반면, 성소수자와 낙태 등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일국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민주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사회보수주의 입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록펠러 공화당원 계파의 수장격인 넬슨 록펠러는 기술된 내용대로 성소수자와 낙태 등에 있어서도 당시 기준으로 자유주의적 입장이었다.

3. 역사

공화당 내 온건파의 시작은 당내 "진보파"가 거의 사멸하고 대공황이 닥친 1932년 선거라고 볼 수 있다. 대공황과 FDR의 압승이라는 사태에 직면한 공화당은 선명한 보수 노선에서 실용적 노선으로 당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역임한 찰스 L. 맥나리부터 당내 진보파였고 36년 후보인 알프 랜던과 40년 후보인 웬델 윌키뉴딜 정책을 어느 정도 수용한 모습을 보였고, 1944년과 1948년 해리 S. 트루먼에 맞선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듀이는, 로버트 A. 태프트가 이끄는 보수연합과 달리 뉴딜정책을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대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자유시장 원리에 부합하고 재정적 지속성을 확보하게끔 개선하는데에 초점을 맞췄다. 군인 출신의 정치 신인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경우, 원래부터 록펠러 공화당원은 아니었으나, 고립주의자였던 로버트 태프트에 맞서 록펠러 공화당의 지지에 힘입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후 록펠러 공화당은 보수연합을 설득해, 공화당 전체가 아이젠하워를 중심으로 뭉치게 하는데에 성공했고, 결국 아이젠하워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이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샘 레이번린든 B. 존슨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들이 내세운 사회보장 확장, 인종통합 촉진 등 진보적인 어젠다들을 일부 수용하였다.

록펠러 공화당은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공화당의 주류 계파 중 하나를 이뤘다. 그러나 1960년대 배리 골드워터우익대중주의신보수주의 운동에 기반한 정계개편, 특히 린든 B. 존슨의 민권법 제정 이후 잃어버린 흑인 표심 대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의식이 남아있는 남부 백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남부전략으로 보수화되었고 특히 강경파인 배리 골드워터의 영향으로 당이 우경화되면서 록펠러 공화당의 세가 급속도로 줄어든다. 리처드 닉슨의 경우, 남부전략을 채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전략적 유화정책 및 환경보호 등 일부 리버럴 의제를 채택하는 양다리 전략으로 남부 지역의 지지율도 빨아들이고 북부에서도 나름대로 높은 지지세를 확보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한동안 붕뜬 상태였는데, 신보수주의파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그 틈새를 잡으며 신보수주의자들이 완전히 주류화된 것이다.

물론 닉슨의 재임 기간 동안에도 공화당의 보수화는 착착 진행되었으며 존 린지 등 일부 좌파 록펠러 공화당원은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기에도 록펠러 공화당원들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졌다.

1974년 닉슨의 사임 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는 한동안 록펠러 공화당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는 포드가 정국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닉슨의 인사를 상당수 유임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넬슨 록펠러가 이 시기 부통령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1975년 11월, 도널드 럼스펠드 비서실장이 주도한 "할로윈 밤의 대학살"로 헨리 키신저, 넬슨 록펠러를 비롯한 온건보수파들이 백악관에서 대거 쫓겨나게 되며[15], 1년 후 공화당 경선에서는 레이건이 돌풍을 일으키며 신보수주의의 전성기를 열었다.

1980년 대선의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최후의 록펠러 공화당원"으로 평가받던 하원의원 존 B. 앤더슨이 경선후보직을 사퇴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여론조사에서의 선전[16]에도 불구하고 7%의 낮은 득표율로 낙선했고 앤더슨의 낙선 이후 공화당은 급격히 보수화된다.

학자들은 1988년 상대적 온건파로 여겨졌던 조지 H. W. 부시가 보수적인 당론을 채택하고 세금에 대한 적대적 성향과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록펠러 공화당의 정치적 종말을 확정지었다고 평가한다.[17] 1994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보수 강경파 뉴트 깅리치의 지도 하에 공화당이 승리하고, 남부 지역에서 깅리치의 노선을 따르는 초선 하원의원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록펠러 공화당원의 당 내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또한 이후 상당수의 록펠러 공화당원들이 탈당해 무당파가 되거나 청견연합을 비롯한 온건파 민주당원으로 대체되었다.[18][19]

4. 유사 개념

4.1. 루스벨트 공화당(Roosevelt Republican)

진보주의 공화당(Progressive Republican)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1854년 창당 이후 공화당은 산업화와 반노예주의(Abolitionism)와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당시 기준) 중도좌파 정당이였고 민주당이 되려 인종차별적, 친남부적 보수주의 노선이였다. 특히 급진주의 공화당(Radical Republicans)이 좌파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1890년대에서 1920년대 사이에 속하는 진보 시대(Progressive Era)에는 급진주의(역사적)를 기반으로 한 루스벨트 공화당이 등장했다. 특히 시어도어 루스벨트같은 선명한 급진적 자유주의 내지 뉴 내셔널리즘 성향의 정치인들이 노조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들을 제정하고, 재벌 트러스트 기업에 대한 규제와 반독점법, 소비자 권리, 환경 보호 등 진보주의적 정책을 내세웠으며, 대외적으로는 당대 보수주의자들의 고립주의를 반대하며 국제주의좌파적 미국 내셔널리즘[20]를 옹호했다.

루스벨트 공화당은 19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버트 M. 라폴레트가 낙선하고 1년 후 사망한 뒤 점차 영향력이 사그라졌다. 록펠러 공화당은 루스벨트 공화당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정파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대중적인 시각과 달리, 이 시기에도 공화당은 진보 성향이 아니었고 도리어 민주당이 진보, 공화당이 보수라는 현대의 스펙트럼과 일치했다. 당시 민주당은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했지만 인민당 운동과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영향으로 농민과 노동자, 가톨릭 신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 확연히 진보화되었다.[21] 반면, 공화당은 루스벨트 공화당원들이 유독 진보 성향을 보였을 뿐 여전히 당 내 주류는 조지프 캐넌 하원의장의 보수파였다. 실제로 루스벨트의 후임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루스벨트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보수 정책을 추진해 TR과 갈등을 빚었고 그의 아들 로버트 A. 태프트는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무엇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확고한 진보 성향을 보인 것은 임기 마지막 2년 정도이며 그 이전까지는 진보와 보수가 혼재된 모습을 보였다.[22]

4.2. 사우스 파크 공화당 (South Park Republican)

사우스 파크 맞다. 2001년부터 젊은 중도우파 공화당 지지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사우스파크 공화당은 노동조합, 정부의 역할, 복지 정책 관련해서도 온건한 록펠러 공화당과는 차이가 있으며 재정보수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4.3. Republican In Name Only

Republicans In Name Only.
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등장 전후로 공공연한 반트럼프 성향을 띄는 온건주의,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당원+네오콘 성향의 인물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사실 용어는 기존부터 민주당과 타협적인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자주 사용되었으나, 지금의 용법이 자리잡은건 트럼피즘이 공화당 내 대세가 된 2016년 이후다.

다만,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록펠러 공화당과는 개념이 제법 다르며, 록펠러 공화당이라는 개념이 잘 쓰이지 않게된지 한참 지나서 대두된 용어이기 때문에 록펠러 공화당(자유주의 공화당)=RINO인건 아니다.

4.4. 공화당 관리 그룹

Republican Governance Group
RINO 개념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집권후 상대적 온건파로 대두된 하원내 공화당 의원들의 코커스다. 애초에 그 시초가 록펠러 공화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수요일 그룹(Wendsday Group,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 모임을 가진다해서 이름이 붙었다.)이며, 로웰 와이커등 록펠러 공화당과 많은 인원을 공유했다. 이를 이어 현재도 화요일 그룹(Tuesday Group)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온건 보수주의, 온건주의 성향을 띄며 반트럼프 성향으로 유명한 톰 킨 주니어[23],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낸시 메이스, 마이크 갤러거같은 하원의원들이 속해있다. 물론 이들이 모든 이슈들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고, 대체적으로 공화당 주류 성향을 따라간다.

5. 사례


공화당 탈당
  • 존 린지 : 제103대 뉴욕시장, 68혁명을 지지할 정도의 공화당 내 진보파로 1971년 아예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 존 B. 앤더슨 :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무소속 출마 위해 탈당
  • 링컨 채피 : 무소속, 민주당을 거쳐 현재는 자유당 소속이다.
  • 짐 제퍼즈 : 버몬트 연방상원의원(1989-2007), 경제적으로는 재정보수주의,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인물로 당의 보수화에 반발해 2001년 공화당을 탈당하고 민주당과 코커스를 맺는다.[25] 그의 임기 만료 후 상원의원직을 승계한 정치인이 바로 버니 샌더스이다.
  • 로웰 와이커 : 코네티컷 연방상원의원, 주지사,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며 워터게이트 청문회에서 활약한다. 1988년 조 리버만에게 밀려 4선에 실패한 뒤 지역정당이자 개혁당과 제휴한 코네티컷당에 입당해 주지사로 당선된다.
  • 알렌 스펙터 : 원래 민주당원이었으나, 이후 공화당에 가입했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보수 성향 팻 투미를 상대로 경선에서 겨우겨우 승리한뒤, 급격하게 민주당측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에드워드 케네디가 사망하자 민주당측에 공천을 보장받고 민주당에 입당했으나, 정작 2010년 경선에서 더 진보적이고 포퓰리즘적이었던 조 세스탁에게 패했다.
  • 피트 맥클로스키 :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맞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에 출마하였으며, 반전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후 1982년 캘리포니아 연방상원의원 후보경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26] 이후 2007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보수파로 전향

5.1. 21세기 이후

록펠러 공화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1979년 넬슨 록펠러 사망 이후로 8-90년대를 거치며 잘 쓰이지 않는 개념이며, 이 개념에 해당되는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당원들 역시 세가 많이 축소되었으나, 21세기 들어서도 온건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당 정치인들을 종종 록펠러 공화당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존재한다.[27] 물론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편의상의 지칭에 가깝긴 하지만. 현재 공화당 관리 그룹은 대다수가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28]

한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신보수주의와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이에 따르는 중도파 공화당원도 많이 존재했다. 딕 체니 부통령의 경우에는 딸이 레즈비언이라 동성애 문제에 온건하기도 했고, 그외에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조지 퍼타키 전 뉴욕 주지사, 이민 문제에 온건했던 존 매케인[29] 상원의원등이 이 축에 속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티파티 운동과 트럼피즘 운동이 성장하면서 위축되거나 대다수 인원이 이탈하였다.
  • 미국 연방상원의원들 중 온건 보수 및 중도주의 성향의 의원들(현역)
    • 밋 롬니- 원래부터 온건 보수주의 성향이었으며, 낙태나 동성결혼 등의 이슈에서도 당 주류보다 온건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예 자유주의 성향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고, 그래도 보수주의 내 온건파로 분류된다. 2024년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 수전 콜린스- 진보적인 지역구 성향 때문에 당 주류보다 훨씬 중도적 입장이다.[30] 공화당 내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연방상원의원이며, 자료에 따라 조 맨친보다도 약간 더 좌측에 있다고 보기도 한다. 역사적, 지역적 맥락을 감안하면 현역 연방상원의원들 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록펠러 공화당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 리사 머코스키- 수전 콜린스와 전반적으로 비슷한 성향으로, 공화당 소속 연방상원의원 중 두 번째로 좌측에 있다.그래도 지역구가 지역구다보니 총기 소유 등의 이슈에서 콜린스보다는 약간 더 보수적이다.
  • 북동부 지역 공화당 주지사들
    • 래리 호건 - 민주당 강세 지역(Blue State) 메릴랜드의 주지사이기 때문에 매우 온건한 성향을 보인다. 사실 온건이라기보다도 정책이 거의 민주당원에 가깝기 때문에 공화당 내 반트럼프 세력도 래리 호건과는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22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3선 제한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 찰리 베이커 -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상단에서 언급된 빌 웰드의 정치적 계보를 잇고 있으며,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리버럴한 성향이다. # 2014년 미국 중간선거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됐지만, 2022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불출마했다.
    • 필 스콧 - 현 버몬트 주지사. 본인 스스로도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리버럴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전형적인 자유주의 공화당원이다. 당연히 트럼프와도 적대적이다.
    • 크리스 서누누- 현 뉴햄프셔 주지사. 위 3명과 대략 비슷한 성향이나 노골적인 반트럼프 성향도 아니고 위 3명보다 약간은 더 보수적인 성향이다. 2024년 미국 주지사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6. 여담

  • 보수 성향이 강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공연한 반트럼프 성향을 드러내는 공화당원들을 지칭하는 용어인 Republican In Name Only[31] 역시 2010년대 중반-2020년대 들어서 꽤 쓰이는 용어이다. 그러나 RINO 항목을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록펠러 공화당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미 록펠러 공화당이라는 용어는 늦어도 1980-90년대 이후로 잘 쓰이지 않는 용어였고, RINO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한참전부터도 구식화된 개념 및 용어였기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록펠러 공화당이 RINO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 1940년대 ~ 1970년대에 록펠러 공화당원들은 미국 북동부 지역 출신 공화당원이 주축이였고, 당시에는 공화당의 주류 계파들 하나였으며, 엘리트주의적 성격도 있었기 때문에 북동부 기득권(Eastern Establishment)이라고 불렸다.

7. 같이 보기

  • 공화당 관리 그룹 - 록펠러주의자들이 만든 공화당 내 온건파 코커스이다.다만 현재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유주의 성향은 아니며, 온건 보수주의에 가깝다.
  • 일국 보수주의 - 록펠러 공화주의는 영국식 일국 보수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 레드 토리 - 캐나다판 록펠러 공화당
  • 보수주의 민주당 - 반대 개념.
  • 신민주당(미국) - 반대 개념.
  • 보수연합 - 레이건 시대 이전의 공화당 당내 진보파가 록펠러 공화당이라면 보수연합은 당내 보수파 포지션을 담당했다.

8. 둘러보기

이 문서는 미국 정치와 관련된 문서이며, 미국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와 어휘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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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미국 독립 전쟁 시기에 대영제국에 충성하던 친영 왕당파 세력. 현대 미국 보수주의에는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 중도우파적 사회관(온건 사회보수주의) 한정. 고전적 자유주의/재정보수주의 요소까지 포함된 일반적인 미국의 보수주의 그 자체라기 보다는 미국의 사회보수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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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자유주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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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관련 문서 (사회주의 · 현대자유주의(←1934년 이전) · 자유지상주의 · 보수주의(대안 우파))
* 중도좌파적 경제관(경제적 진보주의) 한정. 중도우파인 사회적 의제(온건 사회보수주의)는 현대자유주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주의와도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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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파적 의미로는 소멸되었지만 필 스콧같은 공화당 당내 좌파가 록펠러 공화당이라 지칭된다.[2] 이쪽도 록펠러 공화당에 속하기는 하나 무신론 탄압이나 매카시즘에 가까운 강경한 반공주의 성향 등으로 인해 당 내 자유주의자로 간주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따라서 그냥 온건 보수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3] John Lindsay. 1971년 민주당으로 당적 변경[4] Charles Goodell. 1970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무려 노엄 촘스키, 제인 폰다, 하워드 진에게 지지를 받았다![5] 최후의 록펠러 공화당원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을 탈당하고 독자 출마했다.[6] 재정보수주의+문화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부장적 보수주의라고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 게다가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미국 우선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가령 헨리 키신저도 록펠러 공화당에 가까웠다.[7] 제이콥 재비츠존 린지 같이 민주당 주류보다도 더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좌파 성향의 록펠러 공화당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중도 내지 중도우파 성향을 보였다.[8] 1950년대에 이미 보수연합과 타협을 통해 보수화되어 정통 록펠러 공화당이 사라졌다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그리 주류는 아니다.[9] 다만 그도 공화당 소속이긴 했다. 강도 귀족이라 그렇지.[10] 여담으로 이 사람이 한 가장 유명한 발언이 바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What's good for General Motors is good for the country)로, 이 발언은 1950년대 당시 GM이 가진 미국 자동차 산업, 나아가 미국 경제 전체에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당시 미국에서 GM의 포지션은 오늘날 한국에서 삼성의 포지션에 근접했다. GM공화국[11] 이에 대해 당시 리버럴들과 민주당에서는 "8명의 백만장자와 1명의 배관공 으로 채워진 내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데이비드 스테벤(David Stebenne)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만약 성공한 기업인들을 입각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사업 실패자, 정치꾼, 뉴딜 변호사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각료로 임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If the leaders of successful business were excluded from consideration, the result would be an inability to get anybody to take jobs in Washington except business failures, political hacks, and New Deal lawyers)라고 일기에 작성하며 이러한 비난들에 대해 크게 불쾌해 했다고 한다. #[12] 뉴딜 변호사란 1930 ~ 40년대에 민주당 행정부들에서 기용되어 뉴딜 정책을 구성하고 변호하던 변호사들을 일컫는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남부보수파 등 당시 미국 보수 진영에서의 뉴딜 변호사들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한국 보수 진영에서의 운동권 출신 시민단체 인사들이나 민변우리법연구회 출신 진보 성향 법조인들에 대한 인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13] 공산권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국제 규범을 따를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14] 헨리 키신저의 대외적 스탠스도 이와 유사했다.[15] 이때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등 아버지 부시의 인맥이 공화당에 대거 입성했다. 다만 럼스펠드와 체니등은 초기에는 흔한 인식보다 더 온건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단지 키신저, 록펠러등 동북부 진보파 성향이 아니었을뿐.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정권즈음에는 완전히 보수주의자로 탈바꿈하게되었다.[16] 이때 여론조사는 굉장히 과장된 것으로 평가된다. 앤더슨이 거의 10~15%씩 기록하며 전통적으로 양당 후보만 참가하던 대통령 후보 토론에도 참석했는데, 결과적으로 여조에 한참 못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완전히 정계에서 은퇴하게되었다.[17] 원래 아버지 부시는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경쟁 후보였던 레이건의 감세를 통한 경기활성화 주장을 아무 근거도 없는 미신이라고 맹비난하는 등 중도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하지만 경선에서 패배하고 레이건의 부통령이 된 뒤에는 레이건노믹스 즉 신자유주의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이와 함께 럼스펠드, 체니같은 부시파 공화당원들도 급격히 보수성향을 띄게된다.[18] Lind, Michael. (2013) Up From Conservatives. p. 263[19] 록펠러 공화당원들의 근거지가 주로 미국 북동부 지역이였는데, 이들은 현재 대부분 민주당 쪽으로 넘어갔다.[20] 당시에 제국주의는 보수주의적 가치가 아니었다.[21] 단, 브라이언은 친 농민 포퓰리즘 성향이었지, 가톨릭교도, 도시민, 이민자, 금주법 폐지론자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22] 반대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대통령이었고 인종차별적인 수사를 사용해 토머스 E. 듀이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현재와 같이 민주당이 완전히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당으로 거듭난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야 1948년 트루먼의 친 민권 정책~1964년 민권법 통과 직후이며 심지어 1970년대까지 조지 월리스, 로버트 버드, 존 C. 스테니스, J. 윌리엄 풀브라이트 등 흑인 민권에 적대적이거나 미적지근한 남부민주당원들이 당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루빈 애스큐, 지미 카터, 앨 고어, 빌 클린턴 등 신남부(New South) 민주당원들이 등장하며 민주당은 인종차별주의에서 탈피한다.[23] 아버지인 톰 킨 시니어도 상당히 온건한 성향으로 알려져있다.[24] 오도넬은 본선에서 크리스 쿤스에게 밀려 대패한다. 정작 캐슬은 여론조사에서 쿤스에게 크게 앞섰다.[25] 물론 표면상으로는 당의 보수화를 반대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거래가 있었다. 당시 미국 상원의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50석씩 차지해 부통령 딕 체니를 포함한 공화당이 가까스로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다수당직을 차지하기위해 공화당내 아웃사이더들에게 탈당을 제의했는데, 그중 유일하게 승락한 것이 제퍼즈였을 뿐이다. 당시 제안받은 상원의원은 존 매케인과 마찬가지로 온건 성향의 링컨 채피 둘. 물론 2002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두는 2006년 중간선거까지 내내 소수당 신세를 면치못하게된다.[26] 이때 라인업이 화려한데, 우선 원래 의석 주인은 샌프란시스코 대학 교수 출신이자 일본계 미국인 S. I. 하야카와였고, 이후 그가 자금 부족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자 공화당 유망주로 손꼽히던 샌디에이고 시장 피트 윌슨, 저명한 보수주의자 하원의원 밥 도넌, 배리 골드워터의 아들 배리 골드워터 주니어,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의 딸 마우린 레이건, 1972년 미국 독립당 대통령 후보이자 극보수주의자로 유명했던 존 G. 슈미츠, 그리고 1956년 노벨상 수상자였던 윌리엄 쇼클리까지, 맥클로스키를 포함해 총 7명의 유망주들이 출마했다. 윌슨이 1위로 공천을 받았고, 맥클로스키는 약 12%p 차이로 패배.[27] 계파로는 소멸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필 스콧과 같은 온건파계 주류 공화당 인사들보다 좌측인 일부 인사들에 한해서 사용된다.*[28] 공화당 관리 그룹은 온건한 성향의 구성원들이 많긴 하지만 현재는 엄연히 보수주의 성향이 주류이며(보수주의 내 온건파), 대다수의 이슈에 있어서 당 주류의 입장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몆몆 이슈들에 있어서 의원들 개개인별로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것에 가깝다. 아예 당 주류와 꽤나 괴리감이 크고 중도주의나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되는 록펠러 공화당 보다는 우측에 있다.[29] 매케인의 경우에는 부시보다 더 온건하긴 했다.[30] 롬니와 달리 아예 자유주의(liberal) 공화당원으로 불리는 경우도 제법 있다[31] 이름만 공화당원이라는 의미인데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DINO(Democrat In Name Only)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