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69 | 1970 | 1971 | |
랑나르 프리슈 | 얀 틴베르헌 | 폴 새뮤얼슨 | 사이먼 쿠즈네츠 | |
<rowcolor=#cd9f51> 1972 | 1973 | 1974 | ||
존 힉스 | 케네스 애로우 | 바실리 레온티예프 | 군나르 뮈르달 | |
<rowcolor=#cd9f51> 1974 | 1975 | 1976 |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찰링 코프만스 | 레오니트 칸토로비치 | 밀턴 프리드먼 | |
<rowcolor=#cd9f51> 1977 | 1978 | 1979 | ||
베르틸 올린 | 제임스 미드 | 허버트 사이먼 | 시어도어 슐츠 | |
<rowcolor=#cd9f51> 1979 | 1980 | 1981 | 1982 | |
아서 루이스 | 로런스 클라인 | 제임스 토빈 | 조지 스티글러 | |
<rowcolor=#cd9f51> 1983 | 1984 | 1985 | 1986 | |
제라르 드브뢰 | 리처드 스톤 | 프랑코 모딜리아니 | 제임스 뷰캐넌 | |
<rowcolor=#cd9f51> 1987 | 1988 | 1989 | 1990 | |
로버트 솔로우 | 모리스 알레 | 트뤼그베 호벨모 | 해리 마코위츠 | |
<rowcolor=#cd9f51> 1990 | 1991 | 1992 | ||
머턴 밀러 | 윌리엄 샤프 | 로널드 코즈 | 게리 베커 | |
<rowcolor=#cd9f51> 1993 | 1994 | |||
로버트 포겔 | 더글러스 노스 | 존 하사니 | 존 내시 | |
<rowcolor=#cd9f51> 1994 | 1995 | 1996 | ||
라인하르트 젤텐 | 로버트 루카스 주니어 | 제임스 멀리스 | 윌리엄 비크리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1999 | ||
로버트 머튼 | 마이런 숄즈 | 아마르티야 센 | 로버트 먼델 | |
<rowcolor=#cd9f51> 2000 | ||||
제임스 헤크먼 | 대니얼 맥패든 | |||
}}}}}}}}}
- [ 21세기 ]
- ##
||<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3> 2001 || 2002 ||
}}}}}} ||
<colbgcolor=#000><colcolor=#fff> 폴 로빈 크루그먼 Paul Robin Krugman | |
출생 | 1953년 2월 28일 ([age(1953-02-28)]세) |
미국 뉴욕주 올버니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예일 대학교 (경제학 / 1974년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제학 / 1977년 박사) |
지도교수 | 뤼디거 돈부쉬 |
현직 |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뉴욕시립대학원 경제학과 석좌교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경력 | 예일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 |
링크 | | |
[clearfix]
1. 개요
미국 국적의 경제학자. 주요 연구 분야는 지리경제, 국제경제 분야이다.
1953년에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 6월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직을 은퇴하고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참고.
2. 저술활동
주요 분야는 지리적 불균등성을 토대로 한 국제경제학 분야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도 이 논문으로 했다.[1] 반면 대중서는 주로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한다.옵스펠드와 공저한 <국제경제학>, <크루그먼의 경제학>(경제학 원론 내용)[2]이 있으며, 에세이나 경제논평에 속하는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등이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함께 유명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로, 저서가 많이 번역되었다.
사회 분야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편으로, 뉴욕 타임스 등에서 칼럼을 저술하거나 논평을 하기도 한다. 간단명료한 비유가 일품. 인지도가 높은 학자다 보니, 해외의 경제학자를 인용할 때 언론에서 자주 찾는 편이다.
3. 학문적 업적
전공은 국제무역론이며[3] 국제금융위기에 대한 연구 및 금융-거시경제학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불완전경쟁시장에서의 국제무역에 대한 연구로 무역이론과 경제지리학을 통합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단순 비교우위 무역으로는 공업이 발달한 선진국끼리의 무역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였다.1974년 예일 대학교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4] 졸업하였고 1977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3년 만에 취득하였는데, 이때 나이가 24살이었다. 오늘날 국제무역론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된 표준무역이론을 박사 학위를 수여받을 당시에 생각했다고 한다.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둘을 모두 받은 경제학자는 지난 70년을 통틀어서 단 12명에 불과하다.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당시 나이가 만 55세로써, 이는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의 51세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대표적인 학문적 업적은 국제무역에서의 표준무역이론[5], 국제금융에서의 AA-DD 모형, 거시경제학에서의 유동성 함정이나 신용제약 등이 있다.
크루그먼 이전의 국제경제학은 헥셔-올린 모형(Heckscher–Ohlin model)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딕시트-스티글리츠 모형을 국제무역론에 적용하여 그리하여 크루그먼은 어떻게 수확체증과 일반 균형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이후 국제적 경쟁에서의 규모 수확 체증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크루그먼은 국제무역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이후, 엘하난 헬프먼(Elhanan Helpman)과 함께 연구하여, 불완전 경쟁의 개념을 국제무역 이론에 적용하는 것에서 큰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수확 체증과 경제 지리(Increasing Returns and Economic Geography)"(1991)는 신경제 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 분야에서의 중요한 논문으로 취급된다. 이후 계속 발표한 논문과 저서를 통해 크루그먼은 신경제 지리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리고 크루그먼은 다시 한번 많은 학문적 공로를 세운 경제학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크루그먼은 복잡계 경제학 분야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Complexity and Emergent Structure in the International Economy" (1993)과 <자기 조직의 경제>에서 드러난다.
폴 크루그먼은 냉전 시절 구 소련의 경제성장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폴 크루그먼은 구 소련의 경제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양적요소 투입량 증가의 결과일 뿐이라는, 따라서 이러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대담한 결론을 냈다. 비유하자면 하루 종일 일해서 10,000원을 벌던 사람이 시간당 임금을 높이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버는 돈을 늘린 것인데, 아무리 잠자는 시간을 줄인다 한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로 폴 크루그먼은 큰 명성을 얻는다. 이것이 대단한 업적이라고 찬사를 받은 이유는, 지금은 구 소련 경제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정보가 없던 냉전 시절에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구 소련의 초창기 경제성장율은 오히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앞설 정도였고, 서방의 경제학자들조차도 공산주의와 경제성장의 놀라운 비결에 대해 감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대담한 결론을 냈고, 또 그것이 나중에 정확하게 맞았다는 것이 판명되자 유명해진 것이다.
1990년대에는 개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쪽의 연구가 이뤄졌다. 경제 성장과 관련하여 "The Myth of Asia's Miracle"(1994)에서는 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일종의 신화 같은 과장된 요소가 많다고 주장하여 지적 충격을 던졌다. 이때의 논리도 위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했는데, 폴 크루그먼은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리던 4개 국가의 경제성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양적요소 투입의 증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1997년에 국제금융위기로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에 빠지고 한국이 IMF 관리에 들어가게 되자, 폴 크루그먼의 지적이 이러한 사태를 예언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하지만 저 논문에는 아시아 지역에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언 같은 것은 들어 있지도 않았고, 크루그먼도 예견한 건 아니라고 인정했다.참조1
크루그먼의 아시아의 기적의 신화 아티클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두 가지로 비판받기도 하는데, 첫째로는 일단 노동과 자본을 때려 부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경제성장이라면 왜 아직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저개발 국가는 그걸 못 하고 있냐는 것이다. 즉, 생산성 향상 덕이 아니라 치더라도, 양적 투입을 통한 경제성장(특히 초기의 도약)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둘째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모두 공교육/사교육 여부를 불문하고 국가와 국민의 대다수가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하여 인적자본을 축적해 왔는데, 현대 경제성장론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곧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한다는 비판이다. 로버트 루카스가 한국을 인적자본 축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이룬 모범적인 국가로 꼽는 것과 비교하면, 생산성의 개념에 대한 크루그먼의 관점은 지나치게 올드 스쿨에 가깝다.
거시경제학적 연구의 결과물로 "It's Baa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1998)과 <불황의 경제학>이 나왔다. 그는 케인즈주의와 유동성 함정을 상기시키면서, 구조개혁, 재정정책과 비전통적 통화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 즉 양적 완화를 일본의 불황에 대처할 방안으로 내놓았다.[6]
비주류 경제학과는 명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Frustrations of the Heterodox
주류경제학에 지나치게 할당된 교육시간에 대한 비주류경제학파의 불만(Frustrations of the Heterodox)의 근거는 1) 2008 금융위기의 예측 실패와 2)미흡한 정책적 대응, 3)그리고 불평등의 창궐인데, 각각 1>기본적 분석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자 금융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즉 현실 세계의 관찰 실패 때문이며, 2>당시 정책기획가는 주류경제학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지 않았고, 3>주류경제학자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우익이 불평등을 많이 언급할수록 마르크스 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편파적이다'라며 반박했다.
4. 견해
4.1. 거시 경제
글로벌 대불황 탈피를 위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케인지언으로 분류되고, 양적완화를 지지한다. 그리고 자유무역을 지지한다.[7]4.2. 정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의 원제가 'The Conscience of a Liberal'(자유주의자의 양심[8])일 정도로 자신이 자유주의자[9]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는데[10], 특히 21세기 들어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중에선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제일 좋아한다고. 민주당 지지자다 보니 공화당 지지자인 그레고리 맨큐와 신문을 통해 논쟁을 펼치기도 한다.
다만 2016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며 버니 샌더스를 비판했다. 근데 정작 샌더스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크루그먼을 장관에 앉히겠다고 한 적도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
4.3. 암호화폐
2018년 1월 기고한 칼럼에서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실제 크루그먼은 비트코인에 대해 강한 비판 입장을 가지고 있어보이는데, 참고로 2018년 중순경 중앙일보에서 '폴 크루그먼의 변신 "비트코인은 악마 -> 가치있는 것"'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마치 폴 크루그먼이 갑자기 입장을 뒤바꾼 것처럼 보도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폴 크루그먼이 ChainXChange 라는 컨퍼런스에 나와서 '차라리 비트코인이 금보다 가치가 있다' 라고 발언하며 금을 평가절하한 발언을 '비트코인이 금보다 가치가 있다'라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곡해하여 생긴 오해다. [11]2018년 11월에 올라온 폴 크루그먼의 강연을 보면 간략한 생각을 알 수 있으며# '빅 쇼트'에 빗대 이번 가상화폐 가격 폭락을 '빅 스캠(사기)'이라고 비판했다.#
4.4. 아시아 경제 관련
1994.12.08 아시아경제 결코 미국 추월못한다-폴 크루그먼 교수 혹평1994년 글에서 크루그먼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고속 성장은 주로 독재정권에 의한 국민 탄압을 통한 양적 팽창이었다고 평가하며, 덕분에 자원이 국민들에게 배분되는 것을 막고 대신 그 혜택을 받은 일부 기업들은 여차저차해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기술이나 경제정책의 질적(효율적) 성장은 없었고, 대부분 자원을 무식하게 들이붓는 양적인 성장만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아시아의 경제는 미국을 추월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고, 실제로 21세기 들어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취하던 한국 기업들이 추격자에서 선도자 비슷한 입장이 되자 성장이 정체되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경제 성장율도 조금씩 떨어지는 경향은 있다.
2012년에 방한하여 숭실대학교에서 짧은 강연을 했다.
2018년 6월 27일 방한하였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제주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무역 전쟁과 동북아 안보 환경’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였고, 이어서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를 주제로 특별대담을 행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 중 양극화 관련 대담의 경우 장소에서 알 수 있듯이 전경련에서 주최한 행사였고, 대담에 참석한 인사도 권태신 전경련 상임부회장인데, 덕분에 묘하게 이상한 그림이 나왔다. 대담에서 크루그먼은 '한국의 노동 시간은 매우 길다. 깜짝 놀랄 정도로 노동 조건이 나쁘다'[12], '노동조합 활동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등 전경련이 불편해 할 발언들을 하였기 때문이다. 좋게 보면 초청 단체와 약간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을 초대한 통 큰 행보를 보인거고, 나쁘게 보면 대담자 성향도 잘 모르고 초대한 바보가 된 셈. 애초에 상술했듯 크루그먼은 케인스학파에 가까운 경제학자이며 뉴딜 정책을 지지한 경제학자다. JTBC 뉴스룸의 비하인드 뉴스(6월 28일)에서도 이를 짧게 다루었다.
4.5. 양극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들. 2019년 1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의 초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70~80%대로 올리는 안에 대한 지지 논리를 전개했다.# 다만 존 코크란이 이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냈는데#, 주요 내용은 첫째로 최적 세율에 대한 연구들은 주요 가정에 따라 크게 다른 최적 세율을 제시하고 있으며,[13] 둘째로 크루그먼이 인용한 Diamond & Saez 논문은 연방소득세가 아니라 세금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14] 셋째로 중요한 요인인 인적자본 투자, 세금 회피 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고 게다가 경제원론 시간에서나 나올 법한 실수를 했다는 점,[15] 넷째로 크루그먼의 논리는 현명한 독재정부가 모든 사람들의 효용을 파악한 상태에서 세율에 따른 노동의욕의 변화만을 제약조건으로 해서 이 효용들의 합을 극대화한다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가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반박을 했는지 아님 아예 보지도 않았는지 여부는 미지수다.5. 개인사
젊은 시절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경제학자가 된 계기는 좀 생뚱맞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파운데이션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는 정교한 통계분석과 수학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이라는 가상학문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흥미를 가졌지만 심리역사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학문이라 현실에서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고른 것이 경제학이었다고 한다. 참조1, 참조2.
그래서 조교수 시절 지쳤던 크루그먼은 자기를 격려하기 위해 "성간 무역 이론"이라는 SF적인 논문을 쓰기도 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지금의 아내인 웰즈도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딴 경제학자다. 그런데 크루그먼이 글을 쓸때 보통 그중 일부는 그녀의 손을 거친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용이 보다 정치적으로 과격하게 편집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크루그먼은 '오바마는 위기에 대처하려 할 때, 그는 공화당 지도자들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웰즈는 여기에 '그러기는커녕 방해와 사기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추가하는 식. 이 외에도 '국유화를 두고 공화당과 은행가들의 강경한 반대를 구체화하자'는 식으로 지적한다던가, '다음 문단에 그냥 지나가지 말고 그들이 벌이는 허세, 공갈을 모두 까발려달라'고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서로 의견이 안 맞을땐 보통 웰즈 쪽이 더 강경하고 단호한 논조를 주문한다고 한다.
유명 강연자답게 실제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입담이 넘치는 편이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위키인용집에 나와 있다.
6. 여담
EBS의 위대한 수업에 출연했었다.[1] 학부 수준 국제경제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내용.[2] 맨큐의 경제학을 생각하면 된다.[3] 실제로 그의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들도 대부분 국제경제 분야이며 그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것 역시 크루그먼-옵스펠드의 '국제경제학'이다.[4] summa cum laude. 평균 학점 3.9 이상에게 수여된다.[5] 불완전경쟁시장에서의 국제무역 연구 중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으로 2008년 노벨상 수상[6] 실제로 잃어버린 10년 항목과 아베노믹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일본이 점진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펴다가 08년 금융위기 당시 한번 물을 먹었으나 이후엔 미국의 급속한 양적완화 정책을 벤치마킹하여 2018년 기준으로 경제 침체를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7] 때문에 보호무역 지지자들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다만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불평등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자유무역은 원론적으로 대부분 지지하는 편이다. 사실 이것 자체가 좌우로 딱 자르기 어려운 문제기도 하고.[8] 이 제목은 1960년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지낸 보수 정치인 배리 골드워터의 저작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 대한 카운터로 보인다. 다만 원문과 비교하면 번역의 묘미를 못살린 제목이긴 하다.[9] 보통 미국의 자유주의는 사회자유주의와 더 연관짓는 편이지만, 크루그먼은 자신의 자유주의가 대체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한 의미라고 정의한다.#[10] 다만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다.[11] 굳이 변명하자면, 당시 한참 암호화폐 붐이 일어나는 시기였어서인지 사실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암호화폐 전문 보도 매체에서도 폴 크루그먼이 비트코인이 금보다 가치가 있다고 발언한 것처럼 왜곡한 찌라시들을 많이 내긴 했었다.##[12] 전경련 권태신 부회장이 "정부에서 일률적인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52시간이라고?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 52시간으로 줄여도 여전히 높은 것 같다"며 "한국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얻게 됐다"고 하여 한국의 노동시간 문제를 제대로 지적했다. 또한 “한국에선 노조의 힘이 강하고 노조에 힘을 더 실어주면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권 부회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은 민간 부문의 8%만 노조에 참여하고 있고 더 많은 노조활동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노동자들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키는 실수가 있었다”고 비판하였다.#[13] 예를 들어 Mirrlees (1971) 논문에서 나온 모형의 경우 소득 최상위층에 대해서는 오히려 한계세율이 0%인 것이 최적이라고 하며, 해당 모형을 이용한 초기 연구들은 심지어 음의 한계세율이 최적이라는 실증결과를 냈다.[14] 코크란의 설명에 따르면 세율을 70~80%대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감세가 될 수 있다 하며, 그는 그레고리 맨큐가 자신의 소득에 대한 세금을 계산했던 일화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예시에서 맨큐는 소득의 90%를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15] 간단히 요약하면 경제활동이 제로섬이라는 암묵적 가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