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7:45:22

조지 케넌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조지 케넌
George F. Kennan
파일:George_F._Kennan_1947.jpg
본명 조지 프로스트 케넌
George Frost Kennan
출생 1904년 2월 16일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사망 2005년 3월 17일 (향년 101세)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세인트 존스 노스웨스턴 군사 사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학 / 학사)
직업 외교관

1. 개요2. 생애
2.1. 외교
3. 기타4. 동명이인 친척

[clearfix]

1. 개요

미국외교관.

미국이 소련에 대해 봉쇄정책을 시행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긴 전문(Long Telegram)"을 보낸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사실상 냉전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2. 생애

1904년위스콘신 주의 밀워키에서 태어났다. 1925년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케넌은 로스쿨에 지원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판단하고, 대신 1924년 7월 1일에 새로 설립된 미국 국무부 산하의 United States Foreign Service[1]에 지원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후 외교관 시험에 합격하고 워싱턴에 있는 Foreign Service 학교에서 7개월간 공부한 후에 외교관이 된다. 처음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부(副)영사로 근무하게 된다.[2]

2.1. 외교

케넌은 외교관으로서 여러 나라에서 근무하다가, 소련에서 근무하던 시기인 1946년 2월 22일"긴 전문(Long Telegram)"이라고 불리는 보고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한다. 이 보고서를 받은 미국 정부는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조지 케넌의 전문은 1946년 3월에 있었던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철의 장막 연설"보다 앞선 것이었다.

케넌은 1947년 미국의 유력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소련 대외 노선의 근원"(Sources of Soviet Conduct)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대소련 봉쇄 노선을 공개 주창했다. 주장의 파장을 고려해 본명이 아닌 "미스터 엑스"(Mr. X)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는데,[3] 오래지 않아 그의 글이었음이 드러났다.

상대의 세력권을 존중하며 세력균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외교를 지향하였다.

George Kennan’s Other Long Telegram — About the Far East

American elites' strategic thinking towards Korea: From Kennan to Brzezinski

윌슨 센터 A KENNAN FOR OUR TIMES:Revisiting America’s Greatest 20th Century Diplomat in the 21st Century

조지 F. 케넌과 미·소 냉전의 문명사적 고찰

조지 케넌의 사상과 對한반도 전략

[글로벌 포커스-김승렬] 美 냉전 설계자 케넌의 한국관

“조선을 다시 일본 품에”…미국의 ‘케넌 설계도’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한국어판 첫 출간

3. 기타

파일:미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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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미국 독립 전쟁 시기에 대영제국에 충성하던 친영 왕당파 세력. 현대 미국 보수주의에는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 중도우파적 사회관(온건 사회보수주의) 한정. 고전적 자유주의/재정보수주의 요소까지 포함된 일반적인 미국의 보수주의 그 자체라기 보다는 미국의 사회보수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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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살까지 장수(長壽)했다. 덕분에 냉전의 종식뿐만 아니라, 9.11 테러까지 보고 세상을 떠났다.
  • 봉쇄 정책의 원조격 인물이라는 점에서 초강경 반공투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의외의 융통성도 갖춘 인물이었다. 한 보기로 맨해튼 계획의 주요 책임자로서 미국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했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50년대 초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했을 때도, 그를 공개 옹호하였다. 이후 오펜하이머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하자, 케넌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로서 계속 인연을 이어갔다.
  • 케넌은 한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으며, 나중에 마지못해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미국의 6.25 전쟁 참전에도 반대했다. 한반도는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니고, 일본과 경제적 블록을 형성하는 정도로만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훗날 한반도가 제외된 애치슨 라인의 구상으로 이어진다. #
  • 케넌 또한 1940년대 후반까지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학자들의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그가 즐겨 인용한 학자 타일러나 데닛 모두 한국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다면서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가 존경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는 그의 사촌이 살았던 시대에는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는 것을 비판하는 진보 세력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1949년 9월에는 딘 러스크와 같은 이들에게 일본이 한국과 만주에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것에 우리가 현실주의적 입장에 반대하지 말아야 하는 날이 올 것이며, 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빠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4. 동명이인 친척

본 문서의 외교관 조지 F. 케넌과 친척 관계인 동명이인이 있다. 1845년생 탐험가였던 조지 케넌은 George Kennan The Elder라고 부르는데, 조지 F. 케넌의 당숙이다. 이 사람이다. 서로 친인척 관계였는데, 공교롭게도 둘이 생일도 같고, 둘 다 러시아 전문가이고, 둘 다 한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한국을 일본에게 넘겨주자고 주장했었다. 조지 F. 케넌이 당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글로벌 포커스-김승렬] 美 냉전 설계자 케넌의 한국관

George Kennan "The Elder"

Feb 16, 1845 CE: Happy Birthday, George Kennan

1905년 러일전쟁 시기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하여 글을 썼다. 한국에 대하여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의 모습을 알 수 있는데, 미신에 심취한 나라였다.

Daniel A Metraux 저술 How Western Reporters Chronicled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in 1905.docx
CHAPTER III GEORGE KENNAN'S DEPICTION OF KOREA AS A " DEGENERATE STATE " AND JAPAN AS ITS GRACIOUS SAVIOR

Daniel A. Métraux, Mary Baldwin College, GEORGE KENNAN’S INFLUENTIAL 1905 DEPICTION OF KOREA AS A “DEGENERATE STATE” AND JAPAN AS ITS GRACIOUS SAVIOR

조지 케넌의 The outlook 기고 목록
Kennan, George, "Korea: A Degenerate State," The Outlook, Oct. 7, 1905
Kennan, George, "The Korean People: The Product of A Decayed Civilization," The Outlook, Oct. 21, 1905
Kennan, George, "The Japanese in Korea," The Outlook, Nov. 11, 1905
Kennan, George, "What Japan Has Done in Korea," The Outlook, Nov. 18, 1905

[1] #[2] After receiving his bachelor's degree in History in 1925, Kennan considered applying to law school, but decided it was too expensive and instead opted to apply to the newly-formed United States Foreign Service. He passed the qualifying examination and after seven months of study at the Foreign Service School in Washington, he gained his first job as a vice consul in Geneva, Switzerland. #[3] 그래서 "엑스 논문"(X Article)이라고도 불렸다.[4]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같은 경우에는 그의 저서 <전략적 비전(Strategic Vision)>에서 '과거 스탈린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모호한 태도 또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에 상당한 걸림돌이다. 나치 시절의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독일과 달리 러시아는 겉으로는 스탈린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을 여전히 숭배한다.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굽어보는 웅장한 무덤에 모셔져 있고, 스탈린의 유골은 크렘린 궁의 벽에 안치돼 있다. 만약 히틀러의 유해를 이런식으로 안장했다면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러시아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역사 교과서에서 레닌과 스탈린 정권을 분명하게 비난하지 않은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이 문제에 관한 푸틴의 애매한 발언과 옛 소련의 영광을 향한 그의 향수는 추악한 소련의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러시아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런 태도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부담을 주는 한편, 러시아의 민주화에도 걸림돌이 된다.'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러시아보다 먼저 서방에 접근한다면,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문호를 열고 유럽의 밝은 미래에 기여할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단절되고 러시아에 정치상 종속될 경우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부활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집힐 가능성이 있다.' ...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다면 러시아가 EU와 NATO, 양쪽 모두에 가입할 수도 있다.' 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전략적 비전, 아산정책연구원, 2016, 황성돈 옮김, 164페이지~188페이지)[5] 조지 케넌과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모두 반공-반소 성향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소련 붕괴 이후 조지 케넌은 NATO를 동쪽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 반면,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최종적으로 (소련 시절의 어두운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고 민주화된) 러시아까지 EU와 NATO에 가입시켜 친서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