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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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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Z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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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 본명 하워드 진 (Howard Zinn)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 1922년 8월 24일
뉴욕 주 뉴욕시 브루클린
사망 2010년 1월 27일 (향년 87세)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
직업 역사학자, 작가, 교수
역임 직위 보스턴 대학교 정치학 교수
스펠맨 대학교 역사사회과학부 학장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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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 배우자 로슬린 셰흐터[1] (1944년 결혼)
학력 뉴욕 대학교 (정치학 / B.A.)
컬럼비아 대학교 (정치학 / Ph.D.)
자녀 슬하 2명
혈통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헝가리계 미국인
러시아계 미국인
유대계 미국인
신체 187cm }}}}}}}}}

1. 개요2. 생애3. 저서
3.1. 미국민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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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친절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저명한 좌파계열 역사학자, 사회운동가이다.

2. 생애

하워드 진은 192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둘 다 이민자였는데 아들을 공부시키고자 뉴욕 포스트에 돈을 보내 찰스 디킨스 전집 스무 권을 진에게 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문학을 알게 되었고 후에 고등학교에 가서는 작문을 배웠다.

청년기가 되면서 그는 좌파 성향을 띄어갔다. 항구에서 근무할 당시, 좌파성향의 친구들이랑 친해졌고, 이 시기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등을 읽었다고. 그러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진은 미국 육군 항공대에서 폭격수로 복무했다. 폭격 임무를 받은 진은 유럽의 여러 도시를 폭격했는데, 특히 종전 직전인 1945년 프랑스에서 그가 참가했던 작전은 사상 최초로 네이팜탄을 사용한 작전이었다. 네이팜탄을 사용한 폭격에 참가했던 하워드 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독일군 잔당을 제압하기 위해 폭격을 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폭격을 한 곳에는 독일군뿐만 아니라 프랑스 민간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 폭격으로 인해 최소한 1,000여 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워드 진은 "비참한 실수"라며 절규하며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진이 반전주의 성향을 가지게 했다. 이후 하워드 진은 <만화로 보는 미국 역사>에서 당시 그가 투하한 폭탄이 바로 네이팜 폭탄이었고, 유럽전선에서 최초로 사용된 네이팜 폭탄이었다고 한다. 그 네이팜 폭탄은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인을 테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워드 진은 1943년부터 폭격수로서 근무했다. 당시 하워드 진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장교로서 병사들의 식사시간 동안 질서를 유지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았는데, 어느날은 흑인백인의 식사시간표가 잘못되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어느 백인 병사가 그에게 흑인을 내보내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이 말에 분노하여 흑인을 쫒아줄 것을 요구한 병사에게 먼저 나가라고 했다 한다.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490폭격대에 소속되어있을 당시 또 다른 B-17의 선미사격수를 만났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소련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소련이 준 환멸이 미국이 준 환멸보다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역사학 연구를 통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56년부터 스펠만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흑인 여성 대학이다. 스펠만 대학교는 보수적 성향의 흑인 대학교였는데, 그는 몇 안되는 백인 교수로서 진보적인 색채를 보였다. 1959년 하워드 진은 스펠만 대학교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사회적 변화에 관련된 몇 개의 실제적 프로젝트를 실시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 시작은 공공도서관에서의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후 스펠만 대학도 변했고, '인권을 위한 호소'라는 한 학생지도자의 성명서가 애틀란타 콘스티튜션이란 사문에 전면광고로 게재되었다. 하워드 진은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했고, 흑인들의 투표권과 평등권을 위해 싸웠다. 학교 당국은 그를 탐탁찮게 여겨 1963년 그를 해고한다. 당시 하워드 진은 이 학교의 종신 교수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 교수를 학교가 해고한 것이다. 그의 저서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에 따르면 학교 총장이 그를 탐탁찮게 여겼다 한다. 그렇게 해고 당했지만 사회운동을 꺾지 못했다.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 전에 개입하자 하워드 진은 또한 베트남 전쟁에 맞서 반전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68년 베트남 민족해방 투사들이 ‘테트 공세’를 시작하자 하워드 진은 다니엘 베리건 같은 다른 주도적 활동가와 함께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하여 북베트남 정부측과 협상하기도 했다. 만화로 보는 미국사를 보면 그가 북베트남의 팜 반 동과 협상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미국에서 하워드 진은 대니얼 엘스버그의 펜타곤 페이퍼 출간을 도왔다. 1971년 봄에 전쟁에 반대하는 참전 용사들과 수십만의 시위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몰려들었을 당시, 놈 촘스키와 대니얼 엘스버그 그리고 마릴린 영[2]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 반전시위에 적극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았고 체포되기도 했었다. 1980년 그는 명저 미국민중사를 집필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또 2000년대에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도 벌였다. 하워드 진의 '만화로 보는 미국사'의 첫 시작이 바로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서 강연하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그는 미국 흑인 최초로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제국주의적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1월 27일에 향년 87세로 사망했다.

3. 저서

  •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불복종의 이유>
  • <오만한 제국: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 <권력을 이긴 사람들>
  •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 <미국 민중사 1,2권>
  •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의 정치학>
  •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 <미국의 이라크 전쟁> (공저)

    • : 참고로 이 책이 주제로 담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일어난 이라크 전쟁이 아닌 1991년 걸프전쟁이다. 미국의 이라크 봉쇄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비판했다.
  • <베트남 철군의 논리>

    • :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3.1. 미국민중사

미국 민중사는 하워드 진의 베스트셀러다. 권력자 위주의 기존 역사 서술과 달리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룬다.

당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 유럽 백인들의 '신대륙 정복'을 긍정하는 주류 미국사를 뒤집어, 그들에게 철저히 학살과 기만을 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참함과 이후 백인들의 정복과 침략 그리고 노예제에 맞선 원주민들의 투쟁을 조명하고, '프론티어 정책'에 대한 칭송 대신 (백인) 빈곤 계층의 사람들과 노예제도의 희생자들, 여성계 등의 치열했던 인권 쟁취 과정 그리고 미국내의 차별받던 유색인종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을 서술했다. 여기서 하워드 진은 흑인 노예들에 가려져 역사 속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던 백인 노예( '빈곤 계층의 사람들')들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이들은 연한계약하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미국에 온 영국과 아일랜드의 가난한 빈민들이었는데, 흑인 노예들처럼 시장에서 물건처럼 팔렸으며 주인한테 진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빚이 자동으로 아내와 아이들한테 넘어가 그들도 똑같이 연한계약하인으로 살아야 했다. 이 연한계약하인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인 흑인 노예들과 손잡고 폭동을 일으킬까봐 백인 노예주들은 백인 우월주의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사상을 만들어 퍼뜨렸었다. 미국에서 연한계약하인 제도가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된 때는 무려 1917년에 가서였는데, 이는 흑인 노예제가 폐지된 때보다 거의 50년이나 늦은 시점이었다.

이후의 양차 세계대전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최근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서도 정부 지향 주류 언론의 합리화 논조와 대조되어, 실제 미국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과 우후죽순 일어난 반대 운동의 상황을 전하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일목요연하게 비판한다.

이 서적은 대학가와 인문대 교양과정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진보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역사는 건국의 아버지들로부터 시작된 만인평등 추구의 방향이 아니라 경제-정치 엘리트의 재산 확보를 일관적으로 최우선시하는 역사였다는 것. 그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희망은 인구의 99%를 차지하는 민중의 쉼없는 노력에 달려있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던 적이 있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번역되어 국내에서 총 2권으로 출판 됐다. 1권은 콜럼버스 신대륙 정복부터 1차세계대전 이전 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2권은 1차세계대전 부터 현재 중동분쟁(이라크 전쟁) 까지를 다루고 있다. 하워드 진이 이 책을 썼을 당시는 1990년대 시점이고 국내에 최초로 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2006년이다. 그래서 중동분쟁에 대한 서술은 책의 분량에 비해 매우 적다. 2권다 합치면 1,2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진의 베스트 셀러다 보니, 심슨 가족을 포함한 미국의 몇몇 매체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1] 2008년 사망[2] 베트남 전쟁을 연구한 미국 역사학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