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2:54:21

법철학

1. 개요2. 탐구 주제들
2.1. 법이란 무엇인가?2.2. 사악한 것은 법이 될 수 있는가?
3. 법철학의 갈래4. 중요성5. 교재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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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Legal Philosophy

의 본질과 개념, 연원을 탐구하는 철학의 분과 학문. 주로 법과 도덕의 관계를 고찰하지만 반드시 여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법철학의 탐구 목적 가운데 하나는 법의 기본 원리이며, 법의 실제적 가치도 그 대상이 된다. 과거 사법시험의 선택과목 중 하나였다.

2. 탐구 주제들

법철학은 연구할 대상으로 다양한 쟁점과 주제를 포괄한다. 대표적인 것을 고르자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1. 법이란 무엇인가?

법률가들은 아직도 법의 개념에 관한 정의를 찾고 있다.
Noch suchen die Juristen eine Definition zu ihrem Begriffe vom Recht.[1]
이마누엘 칸트
칸트가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이 같은 언급을 남기고 수백 년이 흘렀지만, 그의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것은 가장 고전적인 주제이며, 지금도 모든 법률가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2] 다루고 있는 심대하고 심층적인 문제다.

법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조금 더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법명제의 진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로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수많은 답이 제안되었다. 이를테면, 법은 신의 말씀이다.[3] 혹은 법은 사회적 합의다.[4] 법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다.[5] 법은 자연에 부합하는 올바른 이성이다.[6] 법은 선과 형평의 기술이다.[7]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8] 법은 주권자의 명령이다.[9] 법은 내적 도덕성의 요청이다.[10] 법은 삶에 합당한 공동선이다.[11] 법은 규칙의 체계다.[12] 법은 당위다.[13] 법은 사회적 사실이다.[14] 법은 계획이다.[15] 법은 입법자의 의도다.[16] 법은 통합성이다.[17] 법은 법원이 내릴 결정에 대한 예측이다.[18] 법은 과거의 교훈이다. 법은 계급적 폭력이다[19].법은 정의다. 아니면, “법은 법이다(Gesetz ist Gesetz).”

그러나 박은정이 지적했듯이 법의 개념이나 이론이 반드시 우표 한 장에 들어갈 만큼 요약될 필요는 없다.[20] 또한, 우리는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고도 법이란 무엇인가를 고려한다. 왜냐하면, 법을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이 법인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나치의 무수한 악법은 법이었는가? 이른바 악법도 법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대답의 여하에 따라 법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상이한 입장에 서게 된다.

2.2. 사악한 것은 법이 될 수 있는가?

악법은 법인가? 조금 더 정치한 말로 표현하자면, 사악한 것은 법이 될 수 있는가? 하나의 유명한 법언은 이미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lex iniusta non est lex).”[21]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는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나, 법은 이렇게 쓰여진다(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22] 전후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법률가들은 실제로 이러한 의문에 답할 것을 강요받았다.
[사법살인의 공범][23]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 중이던 때의 일이다. 법원 직원은 누군가 화장실 벽에 “히틀러집단살해자전쟁에 책임이 있다”라는 낙서를 쓴 것을 보고 신고했다. 낙서를 작성한 사람은 반역예비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하자 검사는 법원 직원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검사의 말마따나 “전쟁 3년 차에 저런 내용의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게 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제3제국에서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법원 직원은 유죄인가? 또한, 만일 그가 유죄라면 범인을 사형에 처한 판사는 살인죄의 공범인가?[24]
[악의의 밀고자] 나치가 패망한 이후 어떤 여성이 자유박탈죄로 기소되었다. 이 여성에게는 군인인 남편이 있었다. 한번은 그의 남편이 집에 들러 나치당의 지도자를 모욕하는 말을 했다. 예컨대, 남편은 “히틀러1944년 7월 20일 지옥에 갔어야 했는데!”라고 했다. 여성은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에 남편을 고발했다. 당시 「배반법(Heimtückegesetz)」은 제3제국의 위신을 실추하는 언동을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남편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여성은 법정에 출석해 남편의 혐의에 대해 증언했다. 남편은 일주일 넘게 수감되었으며, 이후 사형집행이 유예되는 대신 전장으로 파견되었다. 그 여성은 당시 자신의 행동이 합법이었으므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여성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인가?[25]

3. 법철학의 갈래

법철학에는 여러 이론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두 줄기의 큰 갈래를 서술한다면 자연법론(natural law)과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중요한 차이는 법과 도덕의 관계 설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법론은 법과 도덕의 융합을 긍정하는 반면, 법실증주의는 법과 도덕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20세기 중반에 등장하여 가장 영향력 있는 법이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로널드 드워킨의 이론은 법과 도덕의 새로운 형태의 융합이라는 의미에서 자연법론이나 법실증주의와 구별되는 제3의 법이론(the third theory of law)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26]
  • 법실증주의
    • 한스 켈젠(Hans Kelsen)
    • 줄스 콜먼(Jules Coleman)
    • 허버트 하트
    • 조셉 라즈(Joshep Raz)

4. 중요성

기실 법을 다루는 일을 하는 법조인,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지방의원 같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깊이 공부하고 생각을 많이 해 보아햐 하는 분야임에도,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법학과에서조차 커리큘럼 상 선택과목으로만 존재할 뿐 심지어 제대로 개설조차 되지 않고 있고, 심지어 사법고시를 합격한 사람들마저도 법철학은 책 한 권 제대로 공부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법대 교수 중에서도 법철학을 전공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흔치 않지만, 결국 실무가가 아닌 학자로서 법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정법률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법철학에 대한 이해도 필연적으로 요구되기 마련이기에, 대부분의 중견 법학자라면 법철학 전공 교수 정도까지는 아닐지언정 충분히 풍부한 법철학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석민법" 내지는 "민법주해"와 같은 각종 법률의 주석서는 물론이요, 법학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법학 교과서 등을 살펴보아도 법철학적인 고찰이 여기저기서 엿보이는 경우도 많다[28]. 많은 법학 논문들에서도 실정법률제도에 대한 법철학적인 고찰을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이는 어떤 법률제도나 실정법 조문의 해석을 놓고 학설을 주장함에 있어 피상적인 실정법률을 초월하는 '법'의 근본에 다가가야지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교재

  • 김정오 외, 법철학: 이론과 쟁점 (서울: 박영사, 2022)[29]

6. 같이 보기


[1] Immanuel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Leipzig: Felix Meiner Verlag, 1919), p.613[2] 후술하겠지만, 법을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이 법인가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3] 독실한 신앙인에게는 법전의 조항보다 경전의 말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때때로 처벌을 각오하면서까지 종교적 신념을 고수한다.[4] 국회의원들은 논쟁적인 법률을 제정하기에 앞서 흔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5]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권력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6] 키케로는 『국가론(De Re Publica)』에서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7] 켈수스(Celsus)가 남긴 말로 유명하다. Digesta 1.1.1pr.[8] 옐리네크(G. Jellinek)가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9] 오스틴(J. Austin)은 이른바 “법명령설”을 주장했다.[10] 풀러는 법이 내적 도덕성을 지닌다고 보았다.[11] 이 말은 피니스(J. Finnis)의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12] 하트는 법을 인간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의 체계로 파악했다.[13] 켈젠(Hans Kelsen)은 법을 규범으로 구성된 체계로 본다.[14] 라즈(J. Raz)에게 법이란 사회적 사실들만으로 확인되는 것이다.[15] 샤피로(S.J. Shapiro)는 법적 활동이 사회적 계획의 수립이라는 점에 주목한다.[16] 스칼리아(A.G. Scalia)는 법을 해석할 때 입법자의 원래 의도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17] 드워킨은 통합성으로서의 법(law as integrity)을 주장했다.[18] 홈스(O.W. Holmes)가 개진한 이른바 “법예언설”이다.[19] 마르크스[20] 박은정, “'있는 법'과 '있어야 할 법'의 연관성,” 법철학연구 (vol.12, no.1, 2009), 281면[21] 이 법언의 유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과 자유의지』에 나오는 다음 구절로 지목된다. “nam mihi lex esse non videtur, quae justa non fuerit” Augustine. De libero arbitrio voluntatis b.1, s.5., 1.5.11.33[22] 이 경구는 『학설휘찬』에 수록된 율리티아누스(Ulpianus)의 주해다. Digesta 40.9.12.1[23] 이 사례는 라드브루흐의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에 소개되어있다. Gustav Radbruch, “Gesetzliches Unrecht und übergesetzliches Recht,” SJZ (Aug, 1946), pp.105-108. 이 논문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Gustav Radbruch/이재승(역),“역주: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법철학연구 (vol.12, no.1, 2009) 477-502면[24] 나치의 판사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점령체제가 종료되고 사법살인에 가담했던 판사들은 살인죄나 법왜곡죄로 기소되었지만, 독일 대법원은 행위 시의 합법성, 곧 “그 당시에 법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 불법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재승, “법조인소송,” 일감법학 (vol.44, 2019), 160면 이하를 참조.[25] 제1심 법원은 “여성의 신고와 그에 따른 남편의 구금은 남편이 유효한 법조항을 위반한 결과이며 적절하게 수행된 사법절차의 구조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보아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그녀에게 신고할 법적 의무가 없었는데도 남편이 불공정한 법체제 하에서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를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판결문의 영문 완역본이 다음 논문에 수록되었다. David Dyzenhaus, “The Grudge Informer Case Revisited,”NYU L Rev (vol.83, no.4, 2008), pp.1000-1034. 수록된 부분은 1032-1034면. 또한, 이 영문본의 국문 완역본은 다음 논문에 수록되어있다. 최봉철, “사악한 법의 효력,” 성균관법학 (vol.32, no.4, 2020), 135-163면. 수록된 부분은 153-156면[26] 장영민, “드워킨의 법철학 사상,” 법학논집 (vol.9, no.1, 2004), 285면), pp.3-17[27] 국내 문헌에서 종종 드워킨의 이론은 이른바 “현대 자연법론”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드워킨의 이론은 법의 외부가 아닌 그것의 내부에서 법의 준거를 구하므로 고전적인 자연법론과는 다름에 주의해야 한다. 드워킨의 이론을 자연법론으로 분류하는 것은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에 의할 때 후자에 더 가깝다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로는 박경신, “옮긴이 서문,” 정의론 (서울: 민음사, 2015), 18면. 드워킨은 실정법의 타당성을 결정짓는 절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도덕 원칙이 존재한다는 자연법 이론가들의 추론을 거부하며, 법과 정의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Elise G. Nalbandian, “Notes on Ronald Dworkin's Theory of Law,” Mizan L Rev (vol.3, no.2, 2009), p.371[28] 곽윤직교수의 민법교과서 시리즈를 보면 최근의 민법 교과서들이 단순한 이론과 판례를 백과사전식으로 짧게 요약하여 나열하는 것과 달리 민법의 각 제도 배후에 있는 법철학적인 고찰을 옅게나마 심어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곽윤직의 스승인 김증한 교수의 교과서를 보아도 그러하다.[29]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법철학 교재이다. 법철학 관련 지문이 꾸준히 출제되는 법학적성시험 언어이해 영역 대비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