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8:18:10

분석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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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석철학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 인식3. 분석철학이 뭐지? 철학적 조류? 학파? 분야? 방법론?4. 분석철학에 대한 오해들
4.1. 분석철학은 영미철학이다?4.2. 분석철학은 반-형이상학경험론이다?4.3. 분석철학은 언어철학이다?4.4. 분석철학은 철학사에 반대한다?
5. 분석 철학의 문제?6. 역사
6.1. 분석철학 태동기: 프레게, 러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6.2. 학파로서의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학파6.3. 20세기 후반 이후: "언어 분석 철학"의 해체와 발전
7. 분석철학의 각 학제들에 대한 접근8. 분석철학 전통에 속하거나 영향을 준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8.1. 논리학, 수학8.2. 언어철학8.3. 형이상학8.4. 인식론8.5. 과학철학8.6. 심리철학8.7. 윤리학/정치철학8.8.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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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 분석철학
한자: 分析哲學
영어: Analytic Philosophy
독일어: Analytische Philosophie
프랑스어: Philosophie analytique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이들은 전통적인 으리으리한 철학 체계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몰두하는 것은 분석으로서의 철학이다. 개별 과학들을 통해 얻은 정당한 지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과학 연구 마냥 새로운 지식을 더하려 하는 대신, 그 의미와 함의를 분명히 하는 것에 초점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들의 철학은 경험과학만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또한 경험과학의 탐구가 가능하다고, 혹은 허용된다고 하는 범위를 한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종교 혹은 사회적 구원을 대신하기 위해 철학을 추구한다면, 이와 같은 철학에선 그 어떤 원하는 바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어니스트 네이글(Ernest Nagle),[1] "Impressions and Appraisals of Analytic Philosophy in Europe. I", 1936
이 철학은, 체계를 세운 철학자들의 철학과 비교해 보면, 우주에 관한 학설을 무더기로 대뜸 생각해 내지 않고 한 번에 한 문제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과학의 방법과 비슷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과학에 있어서처럼 계속해서 진리에 접근할 수 있고 또 그 새로운 각각의 단계는 지나간 단계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개선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논쟁을 거듭하는 광신의 혼잡 속에서 이를 종합하는 힘의 하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다. 내가 말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란 인간으로서 가능한 하나의 관찰-개인적이 아니면서 또한 지역적 및 기질적인 편견에서 벗어난-과 추리 위에 우리의 신조의 기초를 두는 습관을 말한다. 철학에 이와 같은 덕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철학을 알맹이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내가 속해 있는 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버트런드 러셀[2][3]

현대 서양철학의 대표적인 조류, 20세기 이후 영국, 미국, 호주영어권 국가들과 북유럽 국가들 철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종 유럽의 대륙철학과 대비되는 조류로 여겨지고는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미국에서 유학한 교수들로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 한국에서 다른 철학들과의 차이점을 들자면, 동양 철학서양 철학, 현대 대륙철학 등이 조악하게나마 초중등 교과과정, 논술지도 과정에서도 다루어지는 등 널리 교육되고 있는 반면, 분석철학은 대학교에서의 ‘강단철학’으로서만 다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4]

한국에선 초기 분석철학자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언어분석철학", 혹은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영미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나, 이러한 명명 방식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2. 분석철학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 인식

흔히 분석철학은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이후 줄곧 그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정체성은 특히 헤겔 이전의 전통 서양철학 그리고 헤겔 이후의 대륙철학 전통과 대조적으로 부각되고는 한다.[5] 이러한 시각은 분석철학이 어떠한지를 잘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분석철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내용과는 배치되는 면도 없지 않다.

종종 "언어분석철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데서 나타나듯, 분석철학은 대개 언어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언어란 한국어, 영어 같은 자연 언어와 인공어를 망라한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놈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으로 대표되는 언어학 연구는 분석철학의 언어철학적 연구와 밀접한 상호 교류를 통하여 발전해왔다.

또한 분석철학은 형식논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분석철학의 시초인 고틀로프 프레게가 <개념표기법 Begriffsschrift>의 출판을 통해 현대 논리학을 창시한 것을 시작으로, 20세기 초반 많은 논리학자들이 철학과 수리논리학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특히 분석철학 초기에 수리논리학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대안으로 간주된 바 있다.[6] 지금도 분석철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1차 논리(명제논리 및 술어논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분석철학의 많은 논문들이나 저서들에서는 논리식들이 별다른 해설 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어느 단계에서는 막힌다. 물론 정상적으로 배우면 다 같이 배우고 그렇게 부담되는 내용도 아니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분석철학은 언어 및 논리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분석적인 연구 태도를 취한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때 "분석적"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초기 분석철학자들이 무어가 실천한 분석의 방법을 주로 한 "언어의 분석"을 통하여 철학적 주제들을 연구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의 분석철학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엔 명료한 논증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경향으로 받아들여진다. "명료한 논증"이란 논리학이나 수학증명 과정이 그러하듯, 애매하거나 모호한 표현 없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을 뜻한다. 그래서 분석철학의 영향력 있는 저작들은 흔히 전통적인 철학 고전들이나 현대 대륙철학의 저작들에 비하여 분량이 짧으며, 아예 대신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이러한 특징지움이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전통철학 및 대륙철학은 명료하지 않은가?[7]', '뛰어난 분석철학자는 다 명료한 글을 쓰는가?[8] 등의 반론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철학은 흔히 현대 과학의 성과를 중시한다고 알려져있다. 이는 특히 현대 대륙철학이 과학전쟁 등과 관련하여 현대 과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대비된다. 이러한 인식은 분석철학이 초기부터 논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분석철학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 빈 학파에 여러 과학자들이 속해있었으며 그 이론 또한 자연과학에 친화적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도 분석철학 전통은 '인지과학'에 관한 초학제적 연구 참여 및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과학철학 연구 등에서 나타나듯, 지금도 과학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지니는 듯하다.

3. 분석철학이 뭐지? 철학적 조류? 학파? 분야? 방법론?

분석철학은 흔히 대륙철학과 대립하는 조류로 알려져있다. 1992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알려진 자크 데리다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는 것을 두고 여러 분석철학자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일화다참조.

하지만 분석철학이 전통철학이나 대륙철학과 정말로 배치되는 조류인지에 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아가 "분석철학"이 하나의 독립적인 조류인지, 어쩌면 명백하게 정의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여부 또한 여전히 확실치 않다.

1920-1930년대엔 분석철학은 하나의 조류/학파로서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빈 학파의 '논리 실증주의'로 대표되는 바, 당대 분석철학계는 '전통 형이상학의 논파'와 같은 일련의 주제에 대해 수리 논리학언어철학을 기반으로 한 통일된 방법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0년대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 빈 학파의 구성원들이 전세계로 흩어지고 논리 실증주의의 기조 또한 후배 철학자들에 의해 논파된 이후, 분석철학계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주제 및 방법론 등이 정말로 있는지에 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철학자 x가 분석철학자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개 별로 영양가 있는 질문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분석철학'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마땅치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에 들어 분석철학과 현대철학간의 경계 또한 점점 옅어짐에 따라, 분석철학의 기준을 세우려 하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9].

4. 분석철학에 대한 오해들

"언어분석철학"이라는 별칭에서 나타나듯, 분석철학은 흔히 '철학은 다 말장난임 말만 분석하면 다 끝장남'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파로 간주되고는 한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실제로 분석철학사에서 중요한 전기를 차지하기는 한다. 다만 현대의 대부분의 분석철학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석철학에 관한 이런 식의 오해들의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영미철학이다.
  • 반-형이상학적 경험론이다.
  • 언어철학이다.
  • 철학사에 반대한다.
  • 분석철학자는 도덕과 윤리를 부정한다!
  • 분석철학자는 경험론자이며, 과학자들의 졸개다!
  • 플라톤과 칸트를 무시한다.

저명한 철학사가인 힐쉬베르거 또한 자신의 『서양철학사』에서 분석철학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한다:
  • 분석철학은 기호논리학에 치중한 나머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상실했다.
  • 분석철학은 그 스스로 경험론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대상이 아닌 요소들, 예컨대 논리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한다.
  • 분석철학은 언어분석을 통해 철학을 해체하여 모든 진지한 것들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를 함축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힐쉬베르거는 독일(대륙철학 계통)의 독실한 신학자이자 교황의 집사이기도 했으며, 그의 저서 『서양철학사』는 1950년에 발행되었던 것으로 당시에도 여러 단점이 지적되었고, 이렇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 현대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틀린 서술이라고 보면 된다.

4.1. 분석철학은 영미철학이다?

분석철학이 맹위를 떨치는 지역이 영어권 국가들이다 보니 분석철학에 대한 논문들이나 저서들이 대부분 영어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현대 영미철학 = 분석철학’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분석철학을 전공한다면 다른 외국어 공부할 필요 없이 영어만 파면 된다는 얘기 분명 이는 많은 부분에서 맞는 얘기지만, 이러한 구도가 전적으로 성립한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첫째, 초기 분석철학은 영국, 미국의 철학자들보다도 독일,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철학자들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볼 여지가 많다. 분석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고틀로프 프레게로부터 시작해서, 논리 실증주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빈 대학교의 빈 학파, 그리고 이들의 아이돌이었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철학자들이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대부분이 영국/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살고는 봐야지 분석철학을 ‘영미 전통’ 혹은 '영미권 국가들'에서 시작된 전통이라고 소개하는 데는 어폐가 있다고 볼 소지가 있다.

둘째, 진정한 "영미철학"은 분석철학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테면 존 듀이, 랄프 에머슨 등이 개진한 미국의 전통적인 실용주의 철학은 분석철학과는 대비되는 면이 많다. 일부 미국의 실용주의자들 가운데는 ‘실용주의야말로 미국의 올바른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셋째, 1980년대 이후엔 영미쪽 국가들 외에도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대륙철학의 본고장’으로 여겨지는 국가들에서도 분석철학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장 니코 연구소, 독일 뮌헨 대학교뮌헨 수리철학 센터 등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분석철학 연구 기관이며, 2011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실질적으로 유일한 철학 교수직을 맡아온 클로딘 띠어셀랑찰스 샌더스 퍼스 연구 및 힐러리 퍼트남 등과 연관된 분석철학적 전통의 형이상학을 주 분야로 삼는 철학자다. 물론 여전히 분석철학의 주류는 영국, 미국 등이지만 보다 그 외연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역시 적어도 대학교 강단에서는 분석철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분석철학 = 영미철학’이라고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4.2. 분석철학은 반-형이상학경험론이다?

분석철학을 특정한 철학적 견해를 공유하는 학파라고 보는 관점은 상당히 보편적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철학은 흔히 전통적-대륙적 형이상학에 반대하며, 경험만을 강조하는 학파로 분류되고는 한다. 분석철학 초기의 논리 실증주의는 실제로 "형이상학의 제거"를 부르짖었다는 점에서 반-형이상학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10]. 그러나 논리 실증주의를 제외한 여타 다른 분석철학자들 역시 이러한 견해에 부합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예컨대 고틀로프 프레게문장의 의미가 심리적인 것도, 물리적인 것도 아닌 제3의 세계(Drei Welten; Third Realm)의 사상(Gedanken; Thought)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급기야 20세기 후반 분석철학자들의 주요 주제 중 하나로 부상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라이프니츠로부터 비롯된 가능세계(possible world)[11] 차원이동물?? 여러모로 반-형이상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경험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경멸을 종종 드러내고는 하는 일부 현대 대륙철학에 비할 경우, 분석철학이 자연과학에 대해서 갖는 신뢰는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분석철학이 반드시 "앎은 경험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경험론의 기치를 따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분석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들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콰인의 <경험론의 두 독단>이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경험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국의 경험주의와 대륙의 합리주의 모두 받아들이는 칸트의 분석명제와 종합명제의 구분,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자연과학과 경험론이 반드시 등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4.3. 분석철학은 언어철학이다?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라는 용어에서 나타나듯, 초기 분석철학은 사실상 절대적으로 언어에 관한 탐구에 의존하였으며, 상기한 바처럼 심한 경우에는 ‘모든 철학적 문제는 말의 문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여전히 분석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언어철학은 가장 핵심적인 분야 중 하나이며, 언어철학적 개념들은 분석철학 전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분석철학이 전부 언어철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 이후 분석철학계는 인지적 전환(cognitive turn)이라고 불리고는 하는 큰 변화를 겪었으며,[12] 언어철학은 이제 분석철학의 여러 주제 중 하나로 간주될 뿐 분석철학 전체라고 간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언어철학"이라는 말을 쓸 때, 언어를 연구하는 철학(Philosophy of Language)과 언어를 통해 다른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Linguistic Philosophy)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4.4. 분석철학은 철학사에 반대한다?

1980년대까지 분석철학자들의 주류는 대체로 철학사 연구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저명한 철학자인 길버트 하만이 자신의 연구실 문 앞에 "Just say NO to the history of philosophy"라고 써붙였다던 전설은 여전히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분석철학계에선 옛 철학자들의 발상을 현대적으로 적용시키는 여러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본질주의와 덕 윤리가 재발굴된 것과 윌프레드 셀라스 등 이른바 '피츠버그 학파'의 칸트헤겔 해석, 제럴드 코헨 등의 "분석 마르크스주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분석철학적 훈련을 받은 철학사가들의 성과 또한 점점 더 널리 인정받고 있다. 분석철학적 철학사가들의 특징으로는 옛 철학자들의 문헌 자체에 외경심을 품기보다는 그 논증 구조를 뚜렷히 밝혀내는데 주력한다는 점이 흔히 거론된다. 다만 보다 전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철학사가들의 경우 "마치 휴직계를 내서 지금 학교에 없는 동료 철학자를 대하는 양"[13] 옛 철학자들을 대하는 분석철학적 철학사가들의 태도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는 한다.

5. 분석 철학의 문제?

이 글에선 다음 사실에 관한 배경 사항을 보충하고자 한다: 분석 철학자들은 그들이 꿈꾸었던 목표, 곧 철학을 온전한 학문(과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에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Analytic Philosophy and Transformative Philosophy", 1999
워낙 초창기부터 도발자중지란을 이끌어낸 터라 분석 철학에 대한 비판은 탄생 시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언어 분석 철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나, 그런 오해를 제외하고서도 여전히 '철학적 태도'로서 분석 철학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유의미한 문제 제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분석 철학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 중 하나는 분석 철학이 깨달음을 주는 인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한낱 상아탑에서만 머무르는 전문가들의 철학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과학 분야에서 그러하듯 분석 철학적 연구의 많은 부분이 분업화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를테면 생물학과학 중 하나이므로 세부 연구 분야가 다른 분자생물학자생태학자가 서로 말이 잘 안 통하고는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보자. 반면 형이상학자윤리학자 간에 말이 잘 안 통하고는 하는 분석철학의 현실은 문제라는 것. 왜냐면 철학은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그런 와중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점이 옅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철학이 본래 맡아야 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깨달음은 도외시한 채, 철저히 지엽적이며 추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것. 이는 전공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철학적인 논평을 시도하는 많은 대륙철학 전통의 철학자들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혹자는 이런 '철학의 전문화'가 21세기 이후 전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에 일조를 했다고 지적하기도 하며, 이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근래의 분석 철학자들은 대중과의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6. 역사

6.1. 분석철학 태동기: 프레게, 러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1874년부터 독일의 예나 대학교 수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던 고틀로프 프레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학자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을 계기로 당대 유럽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수학의 확실성이 의심되고 있었으며, 프레게의 목표는 이에 맞서 수학의 확실성과 객관성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레게는 정수론논리학으로 환원하고자 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여러 성과들을 이루어낸다. 아래는 그 중 몇 가지 예시다.
  • 양화 논리 개발: 첫 저서인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 』에서 현대에는 "2차 양화 논리"로 불리는 논리 체계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조지 부울 때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논리학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 언어의 의미에 대한 분석: 프레게는 수학의 기초를 튼튼히 수립하기 위해선 수학에서 쓰이는 각종 개념들의 의미를 분명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뜻과 의미에 대하여(Über Sinn und Bedeutung)」는 그 일환이었으며, 프레게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는 이후 현대 언어철학의 시초가 된다.

이렇듯 프레게는 수리철학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철학적 작업을 개진했고, 이런 과정에서 다비트 힐베르트, 에드문트 후설 등과 중요한 서신 왕래를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저작 『산수의 근본 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을 편찬하던 무렵, 그 2권을 출판하려던 바로 그 때 영국의 한 젊은 학자로부터 편지 하나를 받는다. 그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게도 프레게의 기본 법칙 중 하나가 심각한 역설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프레게는 러셀에게 지적받은 기본 법칙(V)을 이리저리 수정해보려고 했으나 만족할만한 결과는 끝내 얻지 못했고, 결국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프레게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버트런드 러셀이었다. 러셀은 자신의 동료이자 후일 윤리학 및 분석철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힘을 합쳐 당대 영국에서 유행하던 '영국 관념론(British Idealism)'에 반기를 든 젊은 학자였고, 1899년주세페 페아노를 통해 프레게의 연구를 알게 됐다. 그리고 프레게의 오류를 지적했으나, 러셀은 동시에 프레게의 목표인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킨다'는 '논리주의' 수리철학을 계승하였다. 그런 기획하에 1910년대까지 러셀은 그 예시로 다음과 같은 영향력 있는 성과를 남겼다.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공저한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이 책에서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분지 유형 이론(ramified type theory)를 제시함으로써 프레게의 난관을 피하면서도 논리주의를 입증하고자 했다. 이는 얄궂게도 불완전성 정리가 발견되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산학에서 유형 이론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 언어의 지칭에 관한 이론: "프랑스의 현재 왕" 같은 한정기술어구(Definite Description)은 플라톤 이래 여러 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여겨졌다. 러셀은 1905년 「지칭에 대하여(On denoting)」에서 이런 이런 까다로운 언어 표현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시했으며, 이는 이후 언어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1910년에 러셀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임용되었으며, 자신의 철학적 연구를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무렵 오스트리아 출신 공학도 하나가 프레게의 소개를 받아 케임브리지대로 러셀을 찾아왔다. 러셀은 그 오스트리아 청년의 철학적 재능이 매우 비상하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으며, 대학원생이 된 그 독특한 청년과 학문적으로 활발히 교류했다. 1913년에 그 청년이 케임브리지를 떠나고, 1916년 러셀이 케임브리지대에서 해고된 이후 그 교류는 더이상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러셀은 그때의 교류를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을 발전시켰다.

케임브리지대의 번잡함을 견디다 못해 노르웨이의 시골로 훌쩍 떠나버린 그 청년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곧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군에 장교로 임관하여 참전했고 포로 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은 꾸준히 철학적인 글을 썼으며, 그렇게 완성한 자신의 논문이 모든 철학을 완성하였다고 생각했다.
  •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이른바 '전기 비트겐슈타인'를 대표하는 저작이며, '그림 이론'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여러 입장이 제시되었다.

러셀은 자신의 논리적 원자론을 바탕으로 『논리-철학 논고』의 초판 서문을 써주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이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1920년대, 일찍이 은퇴한 프레게는 끝내 널리 이름을 알리지 못한채 사망했고, 러셀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함께 철학적 연구를 이어나갔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펼쳤다.

6.2. 학파로서의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학파

과학적 세계 이해 앞에는 그 어떤 풀리지 못할 수수께끼도 없다.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명료화함으로써, 우리는 그 중 일부가 사이비 문제임을 밝혀낼 것이고, 또다른 일부는 경험적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실험과학의 판단에 맡길 것이다. 철학적 작업의 과제는 문제와 주장을 명료화하는 것에 있지, 어떤 특수한 '철학적' 주장을 펼치는데 있지 않다
「과학적 세계 이해: 빈 학파(Wissenschaftliche Weltauffassung: der Wiener Kreis)」

그 무렵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을 중심으로 여러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에른스트 마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점이었고, 그에 입각한 이들의 목표는 경험과학을 철저히 고려하는 철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들 빈 학파는 이러한 경험주의 철학에 프레게와 러셀 등이 이룩한 현대 논리학의 성과를 접목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마르틴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당대 독일 주류 철학계를 반동이라고 비판하며 대립각을 이루었다. 모리츠 슐리크, 오토 노이라트, 쿠르트 괴델 등 그 구성원들간의 실제 견해차는 매우 컸으나, 이들은 외부적으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띤 것으로 유명해진다.
  • 오직 검증가능한 과학적 진술들 및 논리학이나 수학 등의 논리적으로 동어반복적인 진술들만이 유의미하다.
  •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무의미하다. 논리적 분석을 가할 경우, 이들 명제는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지도,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동어반복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무는 스스로 무화한다(Das Nichts selbst nichtet)" 같은 명제가 대표적 예시다.
이러한 파격적인 철학적 입장은 논리 실증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유럽을 휩쓸던 파시즘의 광풍은 철학자들 또한 피해갈 수는 없었다. 1936년모리츠 슐리크가 암살당한 것을 전후로 하여 빈 학파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영국,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로 망명하여 정착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즈음하여 영국옥스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버트런드 러셀논리 실증주의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는 또다른 철학적 학파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존 랭셔 오스틴, 피터 스트로슨, 길버트 라일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철학자들은 많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결국 언어적 문제라고 봤다는 점에서는 논리 실증주의들과 동의했으나, 내놓은 해결책은 전혀 달랐다.
  • 언어는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상에서 쓰이는 말은 공리화된 논리 체계처럼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철학의 임무는 '참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참". "마음" 같은 말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흔히 자신의 옛 이론을 포기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휘의 의미는 그 언어에서의 쓰임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43

이들은 실생활에서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일상 언어 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이상 언어(ideal language)인 논리학에 초점을 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또한 주로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옥스퍼드 학파"로 불리기도 한다.

20세기 중반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친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학파는 서로 다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언어를 분석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언어 분석 철학으로 불렸으며, 21세기 현대까지 이어지는 분석철학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6.3. 20세기 후반 이후: "언어 분석 철학"의 해체와 발전

'철학의 임무는 (인공언어가 됐건 일상언어가 됐건)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다'는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언어 학파의 기치는 1950년대부터 각 세부 분야의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 받고, 또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언어철학에서 논리 실증주의를 무너뜨린 대표적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철학자는 윌러드 콰인이다. 그는 "경험론의 두 독단(Two Dogmas of Empiricism)"에서 분석명제를 '순전히 말의 의미 때문에 참인 명제'으로 정의하는 것은 순환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의미에 의해 참인 명제과 그렇지 않은 명제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없으며, 곧 특정한 명제가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강력한 논변을 제시했다. 이는 "검증가능성"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 논리 실증주의에 치명타를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언어에 대한 일상 언어 학파의 접근 방식은 폴 그라이스가 논리적/체계적인 의미론과 사회적 규칙에 의해 발생하는 언어의 비문자적 의미를 다루는 화용론 간의 구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1950년대부터 약화되기 시작했다. 자연 언어에 대한 이런 의미론의 발달 과정에서 양상논리 같은 도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양상논리에 대한 논의들은 철학자들이 '필연성', '본질', '보편자' 등 20세기 전반기에는 노골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됐던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다시금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1960~70년대에 솔 크립키, 데이빗 루이스, 알빈 플란팅가 같은 양상 논리학자, 철학자들이 다양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양상논리를 이용해서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키고 연구할 수 있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소위 "분석 형이상학"의 부흥을 불러왔다.

이런 형이상학의 부흥에는 심리철학의 발전 또한 큰 몫을 했다. 마음의 본성에 대한 행동주의적 관점이 지고 인지과학이 대두되기 시작하며 '마음'이 무엇인지, 만약 컴퓨터가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생명체인간이 마음을 갖는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등에 관한 논쟁이 재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은 '마음이 물리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때 "결정된다"는게 무엇이냐?' 같은 의문을 낳았고, 이는 곧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과학철학에서도 칼 포퍼 등 이래 비판을 받았던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에 대한 언어적-논리적 분석을 아예 비판한 토머스 쿤이 대두한 이래 그 빛이 바랐고, "-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같은 윤리적 문장들의 의미를 따지는 이른바 '메타윤리' 문제에 몰두했던 윤리학 또한 존 롤스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를 따지는 규범윤리로 돌아오게 됐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분석철학 자체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 역시 분석철학자들의 연구 주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의 철학적 직관에 대해 인지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실험 철학이 그 대표적인 예시. 특히 2000년대 초 이루어진 여러 실험철학적 연구는 '개념적 분석', 즉 일상적 개념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철학적 방법론의 유용성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제공했다. '논리적 분석'은 소크라테스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상적 개념에 대한 반성적 검토'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보다 정밀화한 것이지만,[14] 이런 '논리적 분석'이 생각보다 인지적 편향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심리학적 보고들이 이루어진 바 있기 때문.[15] 그리고 분석철학사 학회국제 과학철학사 학회가 출범하는 등 분석철학의 흐름 자체를 되짚어보는 시도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분석철학자"들은 더이상 하나의 통일된 입장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제각기 세부 분야에서 제각기 다양한 견해들을 개진하게 되었다. 즉 "분석철학자들은 ~~~한 철학적 입장을 갖는 철학자들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논리학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명료하고 간결한 논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처럼 애매모호한 특징들 말고는 분석철학의 공통된 입장이라고 할만한게 이제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제가 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저는 멜버른 대학 및 옥스퍼드에서 받은 분석철학 교육에 감사해합니다.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명료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설령 저 안 깊숙히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들 결코 훌륭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걸 끄집어냈어야만 합니다.
피터 싱어, http://www.princeton.edu/main/news/archive/S48/65/67I55/index.xml?section=featured

7. 분석철학의 각 학제들에 대한 접근

분석적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철학자들 중심의 철학사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양철학에서 다뤄진 철학적 문제들 위주로 연구한다. 즉 분석철학에선 각분야 별로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분과별로 분석철학자들의 궤적, 그리고 연구 방식 등은 대략 다음과 같다.

7.1. 수리철학논리학

분석철학의 역사에서 드러나듯 수리철학논리학은 '분석철학'이 독립적인 철학적 전통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야다. 현대 논리학집합론의 선구자들이 초창기 분석철학자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리 논리학은 여전히 분석철학의 기초 소양 중 하나로 여겨진다.

수리철학의 몇몇 주제들, 예를 들어 추상적 사물로서 집합 등이 존재하는지 문제 등은 사실상 형이상학과 겹치기에 대부분의 형이상학자들은 어느 정도의 수리철학 연구를 겸한다. 다만 집합론논리학에서 촉발되는 보다 상세하며 전문적인 문제[16]들을 다루는 철학자들과 수학자들 또한 여전히 많다.

불완전성 정리 이후의 현대 논리학 연구의 경우, 수학과의 수리논리학자들의 연구와 경계가 흐릿한 경우가 많다. 다만 철학과에서 주로 연구하는 이른바 '철학적 논리학'의 경우 비표준 논리 연구에 좀더 초점이 기울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형이상학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양상논리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더불어 논리학 자체의 본성에 관한 '논리철학' 역시 함께 연구가 되고는 한다.

7.2. 언어철학

수리철학과 마찬가지로 언어철학고틀로프 프레게버트런드 러셀의 업적에 힘입어 20세기 전반 분석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분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일상언어학파 이후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을 동일시하는 것은 더 이상 옳지 않다. 그럼에도 언어철학은 여전히 분석철학의 주요한 학제 중 하나이며, 언어철학의 여러 떡밥들은 주변 학제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학철학에서 토머스 쿤윌러드 콰인의 언어철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점, 이름과 필연』서 제시되는 솔 크립키고유명사에 대한 분석이 '양상' 문제에 대한 형이상학에 큰 파급력을 미친 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예를 들어 자연 언어에서 조건문 "만약 PP이면 QQ이다"을 분석하는 예시를 들 수 있다. 이런 조건문은 일견 수리 논리학의 '실질 조건문'으로 분석할 수 있을 법 한데, 실질조건문 "PQP \to Q"는 "¬PQ\neg P \vee Q"와 동치이다. 즉 문장 "만약 태양계 행성이 5개면, 라멘은 맛있다"이 만약 실질 조건문이라면 본 예문은 참이 된다. 하지만 이는 부조리한 것 같다. 이 문제는 위 문장을 '엄밀 조건문', 즉 "만약 태양계 행성이 5개이면, 라멘은 필연적으로 맛있다"와 같은식으로 해석함으로써 피해갈 수 있으며, 이러한 분석은 많은 형이상학적 떡밥을 안고 있는 양상논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더불어 언어철학 자체 내에서도 언어학과 협업하여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발굴 및 논의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문제들을 언어철학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7.3. 형이상학

역사적으로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형이상학을 멸시했던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1948년에 출판된 윌라드 콰인의 논문 「있는 것에 대하여」를 통하여 반론을 가한 이래 이후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은 다시금 확고한 학제로 자리잡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양상논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부터 그에 따른 여러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솔 크립키, 데이빗 루이스, 알빈 플란팅가 등 유력한 철학자들에 의하여 형이상학은 20세기 후반 이후 분석철학 전통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한 학제 중 하나로 변했다.

다만 이런 '분석 형이상학' 연구 중 많은 부분의 유용성 혹은 실질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시각도 타 분야의 분석철학자들 가운데 많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심리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분석 형이상학이 "자기만족적"이며 "진지한 주제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 적이 있다.

7.4. 인식론

논리 실증주의의 인식론은 많은 부분 데이비드 흄의 경험론적 인식론을 계승하고 있으며, 적어도 이 시기까지 인식론과학철학은 많은 부분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현대 분석철학에서 인식론과학철학과 본격적으로 독립하게 된 계기는 1963년 에드먼드 게티어가 이른바 "게티어 문제"를 제시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게티어가 플라톤 이래 지식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여겨진 '정당화된 참인 믿음'에 대해 반례를 제시한 이래, 회의론 등 전통적인 인식론적 문제들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7.5. 심리철학

데카르트 이래 마음 간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철학은 서양 철학에서 항상 중요한 학제 중 하나였지만, 심리철학20세기 후반 극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 계기들 가운데 하나는 심리학인지과학 등의 급속한 발달이었다. 특히 '오직 물리적인 것만이 있다'는 입장인 물리주의가 사실상 대부분이 동의하는 철학적인 대세가 된 이후, 정신 현상을 물리적 틀로 환원시키는데 따르는 여러 가지 개념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심리철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21세기 현재에는 '의식'이 유망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심리학신경과학 등과의 협업을 통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인 김재권이 명망있는 심리철학자 중 하나다.

7.6. 과학철학

논리 실증주의 시기 이후로 과학철학은 분석철학의 가장 활발한 학제 중 하나였다. 예컨대 칼 구스타프 헴펠칼 포퍼 등은 논리적·분석적 접근을 통하여 과학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토머스 쿤 이후로 과학사적 접근법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나, 여전히 현대의 다양한 과학철학의 주제들은 여타 분석철학의 학제와 연속적이다. 예컨대 '과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쟁론은 형이상학, 확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인식론과 연관된 식이며,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토머스 쿤 자신도 여러 언어철학적 논점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7.7. 미학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미학의 전통적인 문제들에 적용시킨 이른바 '분석미학'은 현대 미학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7.8. 윤리학정치철학

초기 분석철학사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조지 에드워드 무어는 메타윤리학을 주 연구분야로 삼았으며, 이는 이후 논리 실증주의 및 일상언어 학파 등의 영향과 더불어 20세기 중반까지 윤리학 연구의 많은 부분이 메타윤리학에 할애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존 롤스의 정치철학 작업은 철학 내 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규범윤리학의 부활을 불렀고, 이러한 하버드 대학교의 실천철학 흐름은 21세기 토마스 스캔론,[17] 크리스틴 코스가드 등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물론 이런 규범윤리학의 부활은 칸트주의만이 아니라 데릭 파핏,[18] 덕 윤리학 같은 다른 전통의 부활 역시 힘입은 결과였고, 20세기 후반에는 피터 싱어를 비롯한 실천윤리학 역시 결정적으로 부각되었다.

8. 분석철학 전통에 속하거나 영향을 준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분석철학자로 분류되는 학자들을 그 주요 연구 분야에 따라 분류했다. 다만 아래 결과는 각 철학자들을 어떻게든 중복없이 분류하기 위하여 나눈 것이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고틀로프 프레게는 논리학자로 분류되었지만, 언어철학과 형이상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8.1. 논리학, 수학

8.2. 언어철학

8.3. 형이상학

8.4. 인식론

8.5. 과학철학

8.6. 심리철학

8.7. 윤리학/정치철학

8.8. 미학


[1] 20세기 중반 과학적 환원 개념 분석에 대해 큰 업적을 남긴 과학철학자.[2] <서양철학사 하>, 버트런드 러셀 저, 최민홍 옮김. 집문당, pp.484-487.[3] 고틀로프 프레게와 더불어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철학자이다.[4]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수능 국어 영역 등에 분석철학 관련 지문들의 출현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5] 분석철학이든 대륙철학이든 한때는 헤겔을 비판적으로 보던 경향이 없지 않았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이나 실존주의의 출발점인 쇠렌 키르케고르는 당대 헤겔을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철학자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륙철학자라고 분류될 만한 슬라보예 지젝은 스스로를 헤겔주의자로 자처하며, 또한 하단에 언급하였듯이 피츠버그 대학교의 로버트 브랜덤처럼 분석철학적 관점에서 헤겔의 교훈을 다시 받아들이려는 시각도 있다.[6] 물론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분석철학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7] 예컨대 바뤼흐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기하학적 증명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어떻게 간주해야하는가?[8]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은 매우 난해하다(명료하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까닭에 비트겐슈타인을 '분석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인정할지언정, '분석철학자'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여기는 시각도 있다..[9] 김영건의 <비트겐슈타인과 분석철학> 포스트들을 참조[10] 다만 형이상학을 '과학과 충돌하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는게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통하여 세계의 본성을 밝히려는 것'으로 본다고 하면 논리 실증주의자들 또한 형이상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 참조.[11] 다만 가능세계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물리적 세계처럼 정말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경우 양상을 다루는 일종의 도구로 취급한다. 솔 크립키의 경우 그의 저서 이름과 필연에서 '가능세계'라는 말 때문에 의미의 혼동이 있으면, 그냥 반사실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어쩌면 다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을텐데...' 같은 생각에 '가능세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12] 그 인지적 전환의 시발점이 누구인지 그의 직업이 뭔지는 잠시 잊도록 하자.[13] Baker, Gordon and Peter Hacker 1984: Frege: Logical Excavations. Oxford: Blackwell: p.4[14] 플라톤의 <<에우티프론>>에서 '경건함'이라는 개념의 정의에 대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15] 하지만 2010년대사회심리학에서 재현성 문제가 불거질 때, '논리적 분석'을 공격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던 2000년대 초 극초기 실험철학 연구 중 여럿이 재현에 실패하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 실험철학 재현성 프로젝트 참조.[16] 예를 들어 ZFC 공리계를 약간 변형한 대안적인 공리 체계, 혹은 아예 집합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초이론을 제시하려는 시도들[17] 계약주의 철학을 새롭게 부활시켰다.[18] 현대 윤리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철학자로, 2017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상당히 정교한 윤리적 고찰을 보여주었다. 그의 상징으로는 비동일성 문제가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Reasons and Persons와 메타윤리학적 논지를 다루고 있는 On What Matter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