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15:13:04

에드문트 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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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에드문트 구스타프 알브레히트 후설
Edmund Gustav Albrecht Husserl
[1]
파일:Edmund Husserl.jpg
<colbgcolor=#000000> 출생 1859년 4월 8일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스니츠 (現 체코 프로스초프)
사망 1938년 4월 27일 (향년 79세)
독일국 프라이부르크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직업 철학자, 교수
모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1876–78)
베를린 대학교 (1878–81)
비엔나 대학교 (1881–83, 1884–86: Dr. 1883)
할레 대학교 (1886–87: Dr. phil. hab. 1887)
경력 할레 대학교 강사 (1887–1901)
괴팅겐 대학교 조교수 (1901–06)
괴팅겐 대학교 교수 (1906–16)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교수 (1916–28)[2]
배우자 말빈 후설
종교 유대교개신교[3]

1. 개요2. 생애3. 사상
3.1. 현상학
3.1.1. 초기: 기술적 현상학3.1.2. 중기: 초월론적 현상학3.1.3. 후기: 상호주관성과 생활 세계3.1.4. 유고에 대한 연구
4. 오해와 논란
4.1. 후설의 현상학은 유아론인가?
5. 영향6. 저작
6.1. 유고
7. 관련 강의 영상

[clearfix]

1. 개요

Zurück zu den Sachen selbst!
사태 자체로 돌아가라!
독일철학자. 현상학의 창시자. 후에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마르셀, 미셸 앙리, 자크 데리다 그리고 장-뤽 마리옹 등으로 이어지는 현상학 운동의 시조이다. 현대철학의 대다수의 아이디어들을 선취했다고 평가받는다.

2. 생애

후설은 1859년 오스트리아 제국 모라비아 프로스니츠의 양품점을 경영하는 유대인 부모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876년에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철학, 물리학, 수학, 천문학을 수강하였으며, 이후 1878년 베를린 대학으로 가서 수학과 철학을 배웠다.

한동안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의 조교로 근무하면서, 그의 지도 아래 1883년 《변분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884년부터는 빈 대학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란츠 브렌타노 밑에서 2년간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심리학을 통해 철학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브렌타노는 이후 후설이 현상학을 창립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1886년, 1년간 독일의 할레(Halle) 대학교에서 잠시 강의를 듣다가, 1887년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 후, 할레 대학교에서 14년간 사강사로 일했다.

1900~1901년, 《논리연구 I~II》를 출간하여 현상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의 기초를 개척했고, 이 저서 덕분에 후설은 괴팅겐 대학에 초빙되어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조교수로, 그 후 1916년까지 정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이 시기 1913년 초월론적 철학으로서 전향을 특징짓는 두 번째 주저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을 출간하여 현상학의 사조를 본격적으로 열었다.1916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철학 정교수로 부임했다. 후설이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 조교가 바로 그 유명한 하이데거다. 1928년, 과거의 후설강의록(1904~5)을 하이데거가 편집해서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 강의》을 출간하고, 그해 후설은 후임 교수직에 하이데거를 추천하고 정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도 초청 강연과 연구 활동에 매진하지만 1933년 나치 치하에 접어든 독일정부의 반유대주의정책으로 인하여, 바로 그해에 대학교수 명단에서 제명되었을 뿐 아니라, 대학도서관 출입도 금지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1935년까지 빈과 프라하에 초청되어 강연을 해 나갔는데, 그 강연들이 바로 그의 마지막 주저인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1937년부터 늑막염과 체력약화 등으로 투병하던 중 1938년 4월 27일, 후설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1년 후인 1939년, 후설이 남긴 5만 장 분량[4]의 방대한 원고들이 나치에 의해 소각될 위기에 처하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벨기에인 신부 헤르만 판 브레다(Herman Van Breda, 1911–1974)가 후설의 원고들을 비밀리에 독일에서 빼내어 벨기에 수도원으로 이전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후설 아카이브'가 루뱅 대학교의 철학연구소에 설립되어, 후설의 유고 원본이 오늘날까지 여기에 보관되고 있다. 1950년부터 이곳에서 후설전집이 발간되기 시작하여 2020년에 43권까지 출판되었지만 아직 완간까지는 한참 남은 상태다.[5]

3. 사상

3.1. 현상학

3.1.1. 초기: 기술적 현상학

후설이 살았던 19세기 말 당시는 자연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철학의 연구 대상이었던 인간의 마음도 자연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방법을 실증주의라고 하며, 여기서 인간의 마음을 자연과학적 탐구로 파악하는 것을 심리학주의라고 한다. 후설은 이러한 실증주의와 심리학주의가 자연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일상 세계의 모든 가치들을 산술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생활 세계의 모든 사회문화적 가치들이 삭막하게 되어버렸다고 판단하였다. 후설은 이를 '학문의 위기'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학문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그는 학문이 '인간의 직접적인 삶과 일상 생활'에 나타나고 있는 의미들을 제대로 밝혀줘야 된다고 생각했므며, 이로써 후설은 일상 생활 세계를 되살려 놓는 철학 체계를 구축해야 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후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인간의 의식에서 드러나는 '현상' 자체를 기술(記述)하고 그 기술들로부터 공통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을 통해, 세계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의식에 어떤 식으로 나타나지를 탐구하는 현상학을 창시한다. 그래서 후설은 '지금' '여기'에서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 그 자체만을 기술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6] 이 기술은 기존에 있던 지식에 기반해서 적으면 안 되며, 단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사태 그 자체가 의식에 나타나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후설은 자신들의 제자들과 함께 커피의 현상에 대해 기술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 커피는 검고 따뜻하며 수증기가 보이며, 마시면 씁쓸하지만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지금' '여기'에서 내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 그 자체를 기술하면서 수십장의 원고들을 제자들과 함께 채워나갔다.[7] 이 연구를 통해서 분석되는 것이 그 유명한 '지향성' 개념. 지향성이란 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으로, 모든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향해 있음을 말한다.[8]

3.1.2. 중기: 초월론적 현상학

하지만 후설은 괴팅겐 대학 조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는 그 무렵(1905년~1908년)부터 이러한 순수 기술적 현상학을 포기하고 '초월론적 현상학(선험적 현상학)'으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인간의 경험이 이미 과학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경험에 대해 기술해봤자, 그 일은 자연과학적 사고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후설은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태도[9]를 괄호 속에 넣어 잠시 '판단중지(epoche)'하고, 그렇게 해서 드러난 '순수 의식'을 살펴서, 그 순수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 그 자체의 '조건'들이 무엇인지 '이론적ㆍ방법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는 자연적 영역으로부터 그것의 초월론적 토대로 되돌아가게(환원하게) 하는 길고도 어려운 분석이었다.

이 초월론적 분석에서 후설은 주관성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상학에서 다루는 세계는 그것이 '주관의 의식'에 나타남으로써 어떤 의미를 지시(지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험적 주관'이 아니라, '나타남(현상)' 자체의 가능 조건으로서의 주관성이다. 주관성 없이는 어떠한 '나타남'도 있을 수 없다. 대상의 실재는 '나타남' 뒤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대상은 최적의 '나타남(appearance; 현출)' 속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후설은 그것이 실재의 가능 조건이기 때문에, '주관성' 없이는 어떠한 실재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나타남으로 존재하고, 의식이 있어야 세계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현상학에서 '의식'과 '세계'는 분리불가능하다. 그래서 후설에 따르면, 현상학은 실재론도 아니고 유아론도 아니다.[10]

그러나 후설은 다음과 같은 비판을 꽤 자주 들어왔다. 결국 현상은 자기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 본성상 유아론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후설이 말하는 세계의 '현상(나타남)'은, 나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것이다. 즉 세계의 존재의미는 '상호주관적'이라는 얘기다. 물론 후설은 '초월론적 현상학'에서 언뜻 보기에 유아론적으로 보이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호주관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였을 뿐이다. 후설은 이제 '상호주관성'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후설은 순전히 양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후대의 그 어떤 현상학자들보다도 '상호주관성'이라는 주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3.1.3. 후기: 상호주관성과 생활 세계

후설은 프라이부르크 대학 철학 정교수로 부임하여 교수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1917~21년에, 그 동안 자신의 현상학 탐구가 너무 '형식적'이고 '정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분석에서 벗어나 '시간적'이고 '맥락적'인 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발생적 현상학'이라고 한다. 그것은 시간과 신체의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상학에서 모든 현상(나타남)은 주관 의식의 체험된 시간이며, 체험된 시간은 '현재의 폭'을 가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도', '레', '미' 세 음으로 이루어진 '도레미' 멜로디를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만일 우리가 이러한 지각의 마지막 부분, 즉 '미' 음이 들릴 때 일어나는 것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오로지 '미'만을 의식하는 의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레'와 '도'라는 두 개의 지나간 음을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여전히 그것을 '듣고 있는 의식'을 발견한다. '도', '레', '미'는 따로따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멜로디에서 시간적 잇따름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회상'이나 '예상'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의식에서 일어나는 체험'이다. 후설은 이렇게 방금 지나간 대상 국면에 대한 의식을 제공하는 지향을 파지(retention)라고 하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대상 국면에 대한 다소 불명확한 지향을 예지(protention)라고 정의한다.

또한 모든 '나타남'은 언제나 특정한 거리에서, 특정한 각도로부터 나타난다. 어떠한 전지적 시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나타남은 관점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의 신체가 그 자체 공간 속에 주어져 있음을 전제로 한다. 즉, 주관은 신체를 가짐으로써 공간적 위치를 소유하기 때문에 '나타남'은 오직 신체화된 주관들(embodied subjects)에게만 구성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는 움직이므로, 신체화된 주관은 운동에 따라 감각이 주어지는 '운동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달리는 기차를 바라볼 때, 달리는 기차에 대한 지각은 '눈의 움직임'과 함께 주어진다. 이것은 우리가 눈의 움직임을 지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그러한 지각이 눈의 움직임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생적 현상학 역시도, 우리의 경험을 한 개인의 '의식'에 주어지는 대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후설은 타자에 대한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타자에 대한 경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타자에 대한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타자가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내가 타자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공동 경험의 세계에서 타자와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어떤 대상이 타자에 의해서도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상은 한갓 내 의식이 가리키는 그 무엇만이 아니라, 타자 역시도 가리키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이 단지 많은 관점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는 더 이상 경험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내 의식 주관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경험의 주체가 나인가 타자인가 하는 것은 그러한 경험의 타당성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도 낳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의식 주관이 타자를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그 세계는, '공동 경험의 장소'로서 서로의 주관이 공존함을 인정하는 상호주관적인 세계다.

'주관은 오직 공동체의 일원인 한에서만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11]는 이 상호주관적인 특성은, 결국 현상학을 공동체의 관습적ㆍ역사적인 문제로 이끈다. 이는 후설이 말년에 중점적으로 주장한 생활세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후설은 앞서도 말했듯이 자연과학적 생각으로 인해 '생활세계'의 의미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생활세계란 놀랄 것도 없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당연시 여기는 세계이고, 과학적 이론 이전의 경험세계이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세계이다. 우리의 선(先)과학적 경험에서, 세계는 구체적으로 감각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주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과학적 세계는 원리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초월하는 이념성들의 체계다. 생활세계는 각각의 상황에 처해진 관점적인 진리들의 상호주관적 세계라서 대상이 상대적 근사적 관점적으로 주어지는 반면, 과학은 일인칭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지적 시점에서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대상을 절대적이고 명료하며 정확한 것으로 특징지으려고 한다. 생활세계는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과학은 '주관에서 독립적인 객관적 세계가 그 자체로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말하려고 한다. 후설은 이러한 우리의 생활세계를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후설이 과학적 탐구가 틀리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후설은 과학적 이론 이전에, 감각과 의미로 가득찬 생활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고, 그것을 통해 충분히 학문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3.1.4. 유고에 대한 연구

『논리연구』로 대표되는 초기 '기술적 현상학', 『이념들 1』로 대표되는 중기 '초월론적 현상학', 『위기』로 대표되는 후기 '생활세계에 근거한 현상학'이라는 전통적인 설명은 어느 정도는 일말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즉, 초중후기에서 각각의 작업들이 단절되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강연과 유고를 읽다보면, 후설은 그의 사유를 연속선 상에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의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 사이에 발전이 있고, 그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후기에 일어난 변화들은 종종 초기 저작들에서 미리 설명을 예고하기도 하고, 둘째, 그 변화들도 결코 진정한 단절이라고 할만큼 급진적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논리연구』, 『이념들 1』, 『데카르트적 성찰』, 『위기』와 같은 필수적이고 고전적인 문헌들이 후설 연구의 핵심 문헌이었다면,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후설 전집』의 편찬은 후설 연구의 초점과 범위를 확장시켰고, 이미 언급된 책 외에도, 『제일철학 2』, 『현상학적 심리학』, 『위기 보충판』도 특별히 중요한 강연들로 입증되었다. 이러한 유고들을 통해 우리는 후설 사상이 사실성, 수동성, 타자성, 윤리학의 차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고전적 문헌들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하면서, 그렇지 않았더라면 숨겨진 채 머물러 있었을, 후설 사상의 발달에서의 통일성과 정합성을 드러내 주었다.[12]

4. 오해와 논란

4.1. 후설의 현상학은 유아론인가?

현상학은 그 주관적 특성 때문에 유아론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유아론은 '오직 한 사람의 주관만이 그 사람의 세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상학은 '우리의 주관들이 우리의 세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현상학은 '상호주관적'이라는 점에서 앞선 학설들과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객관주의인가? 그것은 하나의 전지적 시점에서 통일된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인식론이지만, 현상학은 여러 관점(주관)들의 시선 각각을 인정하며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세계를 구성한다. 즉 과학적 객관주의는 세계와 독립된 관찰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지만, 현상학에서는 세계와 사람들은 얽혀 있어서 분리될 수 없다. 여기선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 나의 관점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나의 관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객관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영화 배트맨에 대한 현상학'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영화 배트맨의 세계관, 즉 인물과 지역 설정, 스토리, 촬영 스타일, 소품과 조명, 오디오, 관객 반응 등등을 서술하고 그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일 테다. 이러한 세계관은 '한 사람의 주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주관'이 그 세계관을 만드는데 다 함께 참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현상학은 유아론이라고 보기에도 힘들고, 그렇다고 과학적 객관주의로 보기에도 힘들다.

후설은 세계와 주관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구체적인 현상들의 상호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보편적 의미와 조건들을 지니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들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가 밝혀진다. 그래서 한 대상을 어떤 세계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현상학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위를 문학 현상학(문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바위는 '강인함'의 의미로 현상되고, 종교 현상학(종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바위에 깃든 '신령님'의 의미로 현상되며, 과학 현상학(과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화강암'의 의미로 현상된다. 마찬가지로 미술적 세계가 될 수 있고, 역사적 세계가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직장생활적 세계, 세미나적 세계, 영화적 세계, 건축적 세계 등등이 될 수 있어서, 현상학은 인문학 전반의 기초적 토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5. 영향

그는 이후에 등장한 현상학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장폴 사르트르, 마르틴 하이데거,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하이데거는 후설의 실제 직계 제자이기도 하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현상학' 부분을 공동집필 하였다. 1927년 후설이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직을 떠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하이데거를 지명했는데, 하이데거가 교수 자격 평가를 위해 집필하여 제출한 것이 20세기의 대표적 철학서인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었고,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에드문트 후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정작 후설은 "존재와 시간"을 일독하고는 하이데거는 자신의 현상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6. 저작

제목 발간 연도
<colbgcolor=#fff,#1f2023> 논리 연구 1
Logische Untersuchungen 1
<colbgcolor=#fff,#1f2023> 1900년[13]
논리 연구 2
Logische Untersuchungen 2
1901년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Philosophie als strenge Wissenschaft
1911년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1[14]
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1913년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15]
Vorlesungen zur Phänomenologie des inneren Zeitbewusstseins
1928년
형식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1929년
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16]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1936년

상기 표에는 후설 생전에 출간된 저작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 이 밖에 『경험과 판단(1939)』, 『데카르트적 성찰(1950)』[17], 『이념들 2(1952)』, 『이념들 3(1952)』, 『상호주관성(1973)』 등과 같은 여타의 저술들과 미출간 유고들은, 후설 사후에 벨기에 루뱅 대학의 후설 아카이브에서 편집되어 후설 전집 후설리아나(Husserliana)의 형태로 새로이 출판되었다.

강의 원고와 미출간 저서들을 포함하여 대략 5만 페이지[18]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원고를 남겼다. 유고는 벨기에 루뱅대학교 후설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으며, 여기서 편집해서 발간하는 후설 전집을 '후설리아나'(Husserliana[19])라고 부른다. 1950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하여 2020년까지 총 43권#이 발행되었다.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종훈 교수가 한국어번역을 해놨으며, 한길사에서 출판되었다. 2021년 현재 개정판이 대부분 나온 상태이다.그러나 이종훈 교수의 후설 원전 번역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장이 오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단 구분도 원문이랑 다르게 임의로 나눈 부분도 많기 때문에, 이종훈 교수의 한국어 번역본만으로 후설을 접하는 것은 외려 후설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와 잘못된 이해를 낳을 수 있다.영어로 중역을 해도 지금 번역본들보단 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종훈 번역으로 후설을 접하려면 영역이나 독어 원전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러나 2024년 기준 대체할 만한 좋은 번역들이 상당수 출간되었다. 김태희 역의 『사물과 공간(Dind und Raum)』, 박지영 역의 『현상학의 이념(Idee der Phänomenologie)』, 이남인, 김태희 공역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Vorlesungen zur Phänomenologie des inneren Zeitbewusstseins)』, 김기복 역의 『데카르트적 성찰(Cartesianische Meditationen)』과 『현상학의 근본문제(Die Grundprobeleme der Phänomenologie)』는 따로 원문을 참조하지 않아도 후설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이 매우 잘 되어있다. 특히 김태희 교수가 번역한 『사물과 공간』의 세세한 주석들은 후설의 전문용어들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니 공부할 때 참고하면 좋다.그러나 여전히 『이념들』, 『논리연구』, 『위기』와 같은 후설의 대표저술들은 이종훈 교수의 번역밖에 없어 눈물을 머금고 읽어야 한다

6.1. 유고

현재까지 발간된 유고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학원 수준 이상의 연구자들은 이제 후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후설이 어떤 부분을 어떻게 선취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단지 후설의 대표작만 살펴본다면 후대의 학자들이 보기에 논의가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할 수 있었으나, 이제 유고들을 통해서 그 부족한 부분들을 후설이 이미 수많은 강연과 기타 저술 등에서 자세하게 해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설 이후에 후설을 넘어섰다고 여겨지는 하이데거를 포함한 수많은 학자들은, 후설의 귀환을 통해 이제 후설의 업적을 결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넘어서진 못했다는 사실들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후대의 학자들 각각은 단지 후설 현상학의 일부분만 물려받고 그들의 철학을 펼치면서 제각각 후설의 한계를 비판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과도기 철학'으로만 여겨졌던 후설의 철학을 놓고, 그가 누려야 할 정당한 대우와 합당한 지위로 복권시키려는 작업들이 지금 학계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유럽 학계가 그렇다.

예를 들어, 일찍이 1966년 『수동적 종합』이 출간되자, 후설이 순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주관성에 대한 분석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수동적 발생의 깊은 차원에 대한 해명이 절대적으로 중심적인 중요성으로 주어졌다. 7년 후 케른이 『상호주관성의 현상학 1~3』을 출간하여 풍부한 자료가 공개되었는데, 이를 통해 후설의 상호주관성 분석에 대한 이전의 논의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을 뿐 아니라, 슈트라서를 인용하자면, 궁극적으로는 후설 철학의 내용에 대한 당시의 모든 견해들이 부적절한 것이 되었다. 1988년 울리히 멜레에 의해 출간된 『윤리학과 가가치론 강연 1908~1914』은 윤리학과 가치 이론에 대한 후설의 관심을 드러내는 수많은 문헌들을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후설이 오로지 순수 이론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는 표준적 해석을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자가 이러한 통시적 이해 없이[20] 후설 이론에 접근하면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다. 즉, 학부 수준에서 후설을 접할 때는 『데카르트적 성찰』을 입문서로 삼아, 『이념들 1』의 주요 내용정도만 파악해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으나, 연구자 수준에서는 많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특히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데리다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각각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데리다의 말을 빌려 후설을 비판하는 경우를 논문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비판은 '유고가 나오기 이전의 후설'을 겨냥한 것이므로, 유고가 본격적으로 나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당한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상호주관성[21]
  • 베르나우 원고
  • C원고

7. 관련 강의 영상

[navertv(20058308)]
[navertv(20058279)]

[1] 독일어 발음은 국제음성기호 표기 기준으로 [ˈɛtmʊnt ˈhʊsɐl\](한글 표기에 대응시킬 경우 에트문트 후설)에 가깝다. 국립국어원의 규정 용례는 관용을 존중한 '후설, 에드문트'이다.[2] 1928년 은퇴. 하이데거가 그 빈 자리를 물려받는다.[3] 1886년 4월 오스트리아 빈의 복음교회에서 세례를 받음.[4] 후설의 필사본 4만 페이지, 조수가 후설의 강의를 타이핑 친 것 1만 페이지.(The manuscripts comprise approximately 40.000 pages, most of which were written in Gabelsberger stenography, plus 10.000 pages of typewritten transcriptions made by Husserl's assistants during his lifetime. #)[5] 그도 그럴 것이 후설이 남긴 원고는 4만 5천여 장으로, 이를 책으로 완간할 경우 적어도 100권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속기 원고 및 쪽수를 알 수 없는 원고의 경우 판독 및 정렬 작업도 부가되기에 작업이 더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6] 후설의 '지금'과 '여기'에서의 영향을 받아,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 개념이 나온 것.[7] 후설은 우리의 경험을 일인칭 시점에서 주어지는 대로 기술하고자 했다. (중략) 후설은 이미 초기에 현상학의 무전제성을 강조한다. 현상학은 의식에 나타나는 것의 충실한 기술 그 이상이어도 그 이하이어서도 안 된다. 현상학은 형이상학적이고 과학적인 가정이나 사변을 피해야만 한다. (단 자하비 『후설의 현상학』 박지영 옮김, 한길사, 2017, p.29)[8] 후설은 경험에 대한 여러 기술들에서 하나의 사실을 확인하는데, 모든 의식은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각, 사고, 판단, 상상, 의심, 기대, 회상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든, 이 모든 다양한 의식 유형이 지닌 특징은 대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중세 철학에서도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핵심 역할을 했고, 후설의 스승 브렌타노도 이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가 있긴 하지만, 비로소 주요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은 후설의 『논리 연구』부터라고 할 수 있다. 후설은 평생을 지향성 개념의 분석에 몰두한다. 자세한 것은 현상학 문서 참조.[9] '자연적 태도'라고 한다. 정확한 정의는 "세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우리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만연된 선(先)철학적 가정."[10] 이는 후설이 평생에 걸쳐 강조하는 부분. 왜냐하면 일평생 내내 현상학이 유아론이라고 오해받았기 때문이다. 현상학 전문가 '단 자하비'에 따르면, 후설의 현상학은 힐러리 퍼트넘의 '내재적 실재론'과 비슷한 개념이다.[11] 단 자하비 『후설의 현상학』 박지영 옮김, 한길사, 2017, p.211[12] 단 자하비 『후설의 현상학』 박지영 옮김, 한길사, 2017, p.247[13] 개정판은 1913년에 나옴[14] 보통 앞부분을 생략해서 『이념들』이라고 부른다.[15] 보통, 생략해서 『시간의식』이라고 부른다. 하이데거가 후설의 과거 강의록(1904~5)을 편집해서 후설의 이름으로 내놓은 책이다.[16] 보통, 생략해서 『위기』라고 부른다.[17] 이 책은 후설의 1929년 2월 파리 대학에서 강연한 프랑스어 강의록을 편집한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 요약판이 먼저 1931년에 출판된다. 아직 후설이 살아 있을 때, 그 강의록을 레비나스, 파이페르, 쿠아레가 프랑스어로 먼저 요약했던 것. 독일어 판본은 후설 사후 1950년에야 출판되었다. 제목에 '데카르트적'이 붙은 까닭은, 후설의 현상학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에 입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후설의 파리 강연이 데카르트 기념관에서 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후설 현상학 입문책으로 많이 선택된다.[18] 후설의 필사본 4만 페이지, 조수가 후설의 강의를 타이핑한 것 1만 페이지. 총 5만 페이지. #[19] Husserl 에다가 '~의 문헌ㆍ문고'를 뜻하는 접미사 '(i)ana' 를 붙여서, '후설 문고'라는 뜻이다.[20] 사실, 철학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특정 주제에 관해서 단일 철학자 혹은 철학자 간의 통시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 문식성은 '기본 능력'이다. 단지 영어 하나만으로는 영미의 2, 3차 연구 접근 정도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어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며, 적어도 자신이 연구하는 철학자의 모국어 문식성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현상학 연구가 지지부진한 이유도,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 독일어 문식성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현상학의 대가인 이남인 교수의 경우 영어와 독일어는 모국어처럼 사용하며, 회화는 못하지만 철학 원서를 독서할 수 있을 정도의 프랑스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21] 후설의 유고 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