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5 02:28:31

장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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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
1. 소개2. 가족관계3. 과학철학자가 되기 까지4. 러커토시상5. 여담

1. 소개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과학철학자.[1]

2. 가족관계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장재식(張在植)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의 2남 1녀 중 차남이다. 참고로 이 집안은 호남 최대 명문가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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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영화에나 볼 수 있는 집안의 풍모.jpg 정약용 선생 가문의 부활

조부의 4형제 중 조부를 포함한 3명이 독립운동을 했으며 [2] 부친의 4형제는 모두 6.25전쟁에 의용병으로 참전했다. 아버지 장재식은 16살의 어린 나이에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 전남 신안지방의 대지주이지만 이승만 정부 때의 토지개혁법에 참여했고 솔선수범하여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의 측근이었던 장하성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정책실장이 그의 사촌형, 1대 여성가족부장관인 장하진 씨가 사촌누나이다.

그리고 친형인 장하준 역시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교수로 지내고 있다. 케임브리지 역사상 한국인 형제가 교수를 지내는 건 처음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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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철학자가 되기 까지

강연에서 본인이 회상하길 어려서 부터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살았다고 한다. 홍대부속국민학교, 광성중을 거쳤는데 이때가 군사정권 시절이라 국어, 국사 등 인문학에 관해선 정부의 강제성이 강했다고 한다. 군사정권하 학교의 폭력 앞에[3] 한계를 느끼고, 정권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과목이 수학 과학이라서 그쪽으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

중학교때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코스모스를 세번정도 정독하고 원서는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어서 한달내내 영한사전을 뒤적거리며 코스모스 원서를 해독했다고 한다. 그때 영어작문과 해석에 도움이 되었다고. 그리고 이때 얻은 영어 실력으로 영문편지를 써서 칼 세이건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했는데 답장은 안왔다고 한다.(아마 비서가 보고 버렸을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고교 1년을 마친 후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미 명문 고등학교 여러군데에 원서를 넣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인터뷰를 보는데 미국영어에 익숙치 않아 영어울렁증을 겪어 한국어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유학을 간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Northfield Mount Hermon) 고교는 미국 10대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다. 그는 이 학교 1학년 과정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수석 졸업했다

그렇게 우수생으로 칼텍물리학부에 입학했으나 과학의 원리에 대해 궁금함을 많이 느끼고 기초적인 과학 원리에 관해 매번 교수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교수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그렇게 궁금하면 철학을 공부하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이소룡?[4] 그런 태도에 반발심을 느꼈는지 물리학과 철학을 복수 전공하며 졸업후 과학철학자로 거듭나기로 결심했다고. 참고로 토마스 쿤[5]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읽고서 과학철학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스탠포드 대학교대학원에 진학, 양자물리학의 측정과 비통일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국적을 취득했다. 1995년 28살의 나이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강사로 임용이 된후 2005년에는 영국 과학사학회가 과학 역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에세이 저자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 상을 받았다. 같은 해에는 타임스 고등교육 부록(THES)이 뽑는 ‘올해의 젊은 학술 저자’ 최종 결선에도 진출했다. 러커토시상 수상후 200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철학 석좌교수로 초빙이 되어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

4. 러커토시상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과학의 원리에 관해 연구를 들어간 장하석은 온도계가 발명된 역사를 공부하다가 <온도계의 철학>[6]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이 책으로 그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던 과학철학자 러커토시 임레(Lakatos Imre, 1922-1974)를 기리는 권위 있는 과학철학상인 러커토시상을 수상한다.

그 뒤에는 <물은 왜 H2O인가?>를 저술,이 책은 관한 화학기호 연구를 담고있으며, 최근엔 배터리는 어떻게 발명됐는지에 관한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국내에 자주 방문하여 다양한 연구기관과 연구, 강연회를 열고 있다.



EBS를 통해 과학철학에 관한 연작 강의도 했다. 강의의 내용은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도 현재의 과학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과학의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강의에서는 연소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산소의 반응 이전의 패러다임인 플로지스톤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의 말미에 과학에도 솜씨가 필요하다는 점과 과학도 하나의 은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온도가 올라간다"라는 말은 뜨거워지는 상태를 표현한 것인데 "산에 오른다"의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뜻의 은유가 있다.

강의 중 실험을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흰가운을 입지 않으면 과학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구태여 입는다. 강의 후반부에는 자신을 철학자로 규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5. 여담

  • 미국 여성 그레첸 시글러(Gretchen Siglar)와 연애결혼을 했으며 현재 영국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성격과 사고가 비슷해서 좋다고 한다.
  • 취미로 음악감상과 자전거 타기를 한다고 한다. 음악은 영국,아일랜드의 전통음악을 즐겨듣는편이라고 하며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여행하는걸 좋아한다고 한다.
  • 국내의 여러 강연회를 통해 그의 사상과 견해를 피력하는데. 한국에선 노벨상 이야기를 안해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는 의견을 냈다. 성과에만 집착하는 한국 학계의 풍토를 벗자는 이야기.
  • 만약 국내에 남아서 서울대를 갔었다면 학생운동을 하다 짤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1] 사실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라는 말에는 이견이 없으나 한국의 자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미국 유학을 시작했고 미국 명문대를 다녔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로 있는, 영미권에서 교육받고 영미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내에서 대중 교양서를 내거나 강연을 하고, 국내 학회에도 자주 참가하는 등 한국의 과학 및 철학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2] 첫째 종조부(장병준)는 상해 임시정부 외무부장. 둘째 종조부(장홍렴)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출신. 그리고 조부(장병상)는 독립운동을 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했다.[3] 말죽거리 잔혹사에 묘사가 잘되어있다. 교장이 교사의 뺨을 날리는 일이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4] 이소룡 역시 이런 에피소드로 인해 철학전공을 한 케이스[5] 토마스 쿤도 장하석처럼 물리학으로 박사까지 하고 난 후 과학사학자 겸 과학철학자의 길을 걸었다.[6] 원제는 Inventing Temperature :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로 2004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온도계의 철학: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라는 제목으로 2013년에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