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3:26:32

칼 세이건

Carl Sagan
파일:external/news.nationalgeographic.com/77679.jpg
본명Carl Edward Sagan
칼 에드워드 세이건
출생1934년 11월 9일, 미국 뉴욕 주 뉴욕 브루클린
사망1996년 12월 20일 (향년 62년 41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신체180cm
직업천문학자, 천체화학자, 작가, 자연과학 대중화 운동가
학력로웨이 고등학교 졸업(1947-1951)
시카고 대학교 인문학 학사(1951-1954)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 학사(1955)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 석사(1955-1956)
시카고 대학교 천문학천체물리학 박사(1956-1960)
경력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
코넬 대학교 행성 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덩컨 천문학 및 우주과학 석좌 교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특별 초빙 연구원
행성협회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미국 항공우주국(NASA) 자문위원
배우자린 마걸리스 (1957년 ~ 1965년)
린다 잘츠만 세이건 (1968년 ~ 1981년)
앤 드루이언 (1981년 ~ 1996년)
종교없음 (불가지론)
서명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4px-Carl_Sagan_Signature.svg.png
앤 드루이언을 위하여[1]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2]
- 『코스모스』 서문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 『창백한 푸른 점』에서



1. 개요2. 일생3. 업적4. 사생활5. 종교관6. 주요 저서7. 트리비아

1. 개요

미국천문학자 겸 과학저술가. 뉴욕 출신의 천문학자로,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이다. 책을 쓴 것만 30권이 넘으며, 이 중 《코스모스》(COSMOS)의 경우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들어져 60개국 6억 명의 시청자가 시청했다.

천체물리학천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에덴의 용 등에서는 인류학이나 생물학도 다뤘다.

2. 일생

코넬 대학교 천문학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던컨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NASA에서 마리너, 파이오니어,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했다. 20대 때인 1950년대부터 나사의 기술고문으로 재직한 본좌 중의 본좌이다.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선구자적인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의 업적들만 봐도 학자로서 그의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2년간 투병해온 골수이형성 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 (myelodysplasia))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1996년 12월 20일에 별세했다. 이후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착륙 지점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되었다. 그의 유해의 일부는 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이서카(Ithaca)에 묻혀있다.

3. 업적

미국에서는 천문학자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으로, 우연찮게 코스모스가 방영하던 당시, 다른 드라마 작가들이 죄다 파업을 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볼 만한 시리즈가 되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이건 본인이 미남이기도 했거니와 코스모스 방송에서는 정말로 멋있고 학자다운 스마트한 모습뇌섹남으로 등장하여 당시 미국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창백한 푸른 점》, 죽기 직전에 출판한 《에필로그》 등이 유명하다.[3] 세이건은 천문뿐 아니라 진화, 비과학 등에 대한 책도 많이 썼다. 인간의 뇌를 다룬 《에덴의 용》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못 하는 게 뭐야... 특히 그는 미신, 유사과학, 비과학적인 요소를 매우 싫어하는 회의론자로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내 차고 안의 용 항목 참조.

세이건의 저서 중 유일한 소설인 《콘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간혹 칼 세이건이 SF 소설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에는 나무위키SF 문서에도 3대 그랜드마스터로서 로버트 하인라인 대신 잘못 들어가 있었을 정도. 세이건 본인은 《콘택트》의 영화화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촬영 기간 중에 사망하였다. 영화는 이듬해인 1997년 개봉하여 흥행에도 성공.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 탐사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생물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하였다. 그의 발의로 보이저 탐사선에는 인류 문명의 수백 가지 언어로 기록된 인사말과 지구의 위치, 인간의 모습 등이 녹음된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프로그램을 주도하기도 했다. 소설 콘택트도 SETI 프로그램에서 스토리가 출발한다.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에 핵겨울이 발생하여 지구상의 생명체가 핵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결국 절멸하고 말 것임을 경고하며 핵무기 감축 운동에도 이바지했다.

대중화에 앞장선 탓에 동료 학자들에게 백안시당했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세이건은 대중화뿐 아니라 주류 학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학자이다.

4. 사생활

리처드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미남이고 여자 여럿 울렸는데, 결혼을 세 번 했다.

첫 번째 아내는 생물학자 린 마걸리스로[4], 아들 도리언과 제러미를 낳고 이혼했다. 린 마걸리스 역시 세이건 못지않은 본좌급 학자로서, 미토콘드리아의 내공생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을 논하는 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학자.[5] 아들 도리언 세이건도 학자라 그와 함께 쓴 저서들도 있고, 국내에도 몇 권이 번역되어 있다.

두 번째 아내는 파이어니어 우주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지구의 위치와 인간의 모습을 그린 린다 잘츠만으로, 중년이 되고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혼. 잘츠만과의 사이에 아들 닉 세이건을 두고 있다.

세 번째 결혼 상대가 많이 알려져 있는 앤 드루이언 여사.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 제작에 관한 책임자로서 일을 하던 가운데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세이건이 가장 사랑한 사람으로, 《코스모스》는 드루이언 여사에게 헌정되었다. 드루이언은 세이건의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동지이기도 해서, 세이건과 함께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5. 종교관

칼 세이건의 어머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불가지론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인 토라 회당에도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교 교육을 지루해했으며 모든 신앙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신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신이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고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으니, 나는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는 신을 믿을 수 없다'였다. 즉, 세이건은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다.[6]

우주의 기원에 대한 세이건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빅뱅이론이 맞다면)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주에 아무런 물질도 없었다가 갑자가 생겨났다면, 어떻게 그랬을까? 이에 대해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인 대답은 신 혹은 신들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면, 다음 질문을 물어야만 한다. '그럼 그 (우주를 창조한) 신은 어디서 왔는가?' 만약 이것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그냥 우주의 기원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혹은 신이 항상 존재해왔다고 한다면, 간단하게 그냥 우주가 항상 존재해왔다고 결론 짓는게 낫지 않겠는가? 창조할 필요없이 그냥 여기 항상 있었다고 말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한때 이 질문들은 오직 종교와 신화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 우주론은 우리가 이 태고의 수수께끼들과 마주하게 해준다. - <코스모스> Ep. 10 (1990년도판)

오늘날 떠도는 루머 중에는 세이건이 종교에 귀의했다거나 혹은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7], 위에서도 말했지만 세이건은 어디까지나 불가지론자였고 스스로도 그리 여겼다. 그는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고 철학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존중해주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도 종교적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물론 종교의 핵심 교리와 중심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불신하긴 했다.
길게 늘어진 수염을 가지고 천상에 앉아서 모든 참새들의 추락을 세고 있는 커다란 백인의 모습을 한 신[8]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신이라는게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의미한다면, 확실히 신은 존재한다. 물론 이런 신이 심정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게 기도한다는게 말이 되겠는가? - "Scientists & Their Gods" in <U.S. News & World Report> Vol. 111(1991)

결론을 내리자면 그는 특정 종교인은 아니고 오히려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불신자[9]였지만, 그렇다고 종교에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즉, 확신에 찬 무신론자도 아니었으며 모든 가능성에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불가지론자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세이건은 암에 걸린 이후 가족들이 신을 믿으라고 하자 거부했으며 임종이 다가왔을 때조차 거절했다고 한다. 세이건의 부인 앤 드루이언 여사(1949년생)는 아직도 잘 살아있으니 그가 죽는 순간까지 불가지론자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기사, 번역문

6. 주요 저서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앤 드루이언 공저.
  •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 본격 창조과학 까는 책
  • 에필로그 (Epilogue): 유작.
  •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앤 드루이언 공저
  • 콘택트 (Contact):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 영화로도 나왔다.
  • 코스모스 (Cosmos)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중략) 우리가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코스모스 中-
  • 혜성 (Comet)
  •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 칼 세이건의 말(Conversations with Carl Sagan): 세이건 생전의 주요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 창백한 푸른 점 (The Pale Blue Dot): 탐사선 보이저에 대한 이야기.
  • 지구의 속삭임 (Murmurs of Earth): 보이저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 앤 드루이언 등 공저.
  • 코스믹 커넥션 - 우주에서 본 우리(The Cosmic Connection: An Extraterrestrial Perspective )

7. 트리비아

세이건은 생전 마리화나에 옹호적이었고, 실제로 마리화나를 한 뒤 'Marijuana Reconsidered'라는 책에 익명으로 에세이도 게재한 바 있다.[10] 그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앤 드루얀 여사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 단체인 NORML(전미 마리화나 법 개정 협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왕년에 아서 클라크와 함께 박람회에 갔다가 공짜 영화를 보여주길래 들어가봤더니 지적설계 홍보 영화였다 카더라.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칼 세이건 평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

이 세이건의 제자이며 후계자가 바로 과학자이면서 방송인을 겸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다. 세이건의 뒤를 이어 코스모스 리메이크판의 해설을 맡기도 했다.

핀란드의 메탈밴드인 나이트위시가 이사람을 위한 Sagan이라는 제목의 헌정곡을 불렀다.

한국에서는 유시민 작가가 《코스모스》를 강력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시민 작가 曰 "딱 한 권 들고 가서 무인도에서 내가 죽은 날까지 살아야 한다면 이 책(코스모스)을 가져가고 싶다."

고교 시절에 했던 "미분은 선생들이 쓸 데도 없는 걸 학생들 괴롭히려고 만들어 낸 것이다." 라는 말이 유명하다.
[1] 세이건의 아내 앤 드루이언 여사.[2] 코스모스 국내 초판에서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라고 번역했었다.[3] 리처드 도킨스는 한국에서 장대익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책 중 하나로 《창백한 푸른 점》을 언급했다.[4] 결혼 전 이름은 린 알렉산더. 마걸리스는 세이건과 이혼 후 결정학자 토머스 마걸리스와 결혼해 얻은 성이며 이후 줄곧 이 이름으로 사회활동을 하였다.[5] 사실 세포 공생설은 그녀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소련을 중심으로 연구되던 가설이었으며,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독자적 DNA마저도 이미 발견된 상태... 다만 당시 이 독자적 DNA들이 검출과정에서 핵의 DNA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다지 이정받지 못했으며, 린 마걸리스의 업적은 핵 DNA의 오염없이 이들의 독자적 DNA를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세포내공생설을 주류로 확립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비주류를 주류로 이끌어낸 대단한 업적'이라 표현하였다.[6] 워싱턴 포스트지에 세이건 사후 10여년 뒤 실린 <Worlds Away>라는 제목의 칼럼이다.#[7] 특히 무신론자들이 툭하면 세이건을 인용하면서 이런 루머가 널리 퍼졌다[8] 마태복음 10장 26절~33절까지. 참새처럼 작은 존재들도 살펴보고 있다는 비유다.[9] 링크에서도 나오지만, 불확실한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접근하는 종교의 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물론 무신론자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지만.[10] 1960년대 거센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의 영향으로, 당시 젊은 시절을 보낸 지식인 중에는 LSD대마초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