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00:28:30

유시민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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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민참여당.gif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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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2대
유시민
통합민주당(2008년) 대표통합진보당 대표
시민통합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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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비대위·2대
강기갑
비대위
강병기
3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진보정의당 대표
새민중정당 대표
국민참여당 대표민중연합당 대표
민중민주당 대표
진보신당 대표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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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정부기 (구).png 참여정부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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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명단
재정경제부장관김진표이헌재한덕수권오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윤덕홍안병영이기준김진표김병준김신일
과학기술부장관박호군오명김우식
통일부장관정세현정동영이종석이재정
외교통상부장관윤영관반기문송민순
법무부장관강금실김승규천정배김성호정성진
국방부장관조영길윤광웅김장수
행정자치부장관김두관허성관오영교이용섭박명재
문화관광부장관이창동정동채김명곤김종민
농림부장관김영진허상만박홍수임상규
산업자원부장관윤진식이희범정세균김영주
정보통신부장관진대제노준형유영환
보건복지부장관김화중김근태유시민변재진
환경부장관한명숙곽결호이재용이치범이규용
노동부장관권기홍김대환이상수
여성가족부장관지은희장하진
건설교통부장관최종찬강동석추병직이용섭
해양수산부장관허성관최낙정장승우오거돈김성진강무현
기획예산처장관박봉흠김병일변양균장병완}}}}}}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제16대
곽치영[1]
제16·17대
유시민
제18대
손범규

파일:국회상징.png 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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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몫 비례대표
민병주 김정록 윤명희 조명철 강은희
주영순 신의진 이상일 이에리사 이만우
박근혜 안종범 김현숙 김장실 이자스민
최봉홍 류지영 송영근 민현주 박창식
손인춘 김상민 현영희 이재영 신경림
이운룡 박윤옥 양창영 장정은 이동주
정윤숙
민주통합당 몫 비례대표
전순옥 최동익 은수미 홍종학 진선미
김용익 배재정 백군기 남인순 김광진
한정애 김기준 장하나 김기식 한명숙
도종환 김현 진성준 최민희 홍의락
임수경 신문식
통합진보당 몫 비례대표
윤금순 이석기 김재연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조윤숙 이영희 오옥만 노항래
나순자 유시민 윤난실 서기호
자유선진당 몫 비례대표
문정림 김영주 황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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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9.postimg.org/238e9479bef4e83bb8eaefc32ae8554c_1.jpg하드코어 뉴스깨기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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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김구라
진보 패널이철희유시민노회찬이철희
보수 패널강용석이준석전원책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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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lifestyler.co.kr/f131400049136127761(0).png
시즌1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시즌2 유현준 장동선
시즌3 김진애 김영하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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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시민.png
이름 유시민 (柳時敏)[2]
출생 1959년 7월 28일 ([age(1959-07-28)]세)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3]
본관 풍산 류씨[4]
학력 대구수성국민학교 (졸업)
대륜중학교 (졸업)
심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경제학 / 학사)
마인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종교 무종교(무신론)[5]
신체 173cm, A형
형제 2남 4녀 중 차남[6]
배우자 한경혜
자녀 1남 1녀[7]
현직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제5대 이사장
보해양조 사외이사
정당 무소속[8][9]
의원 선수 2[10]
의원 대수 16, 17
서명 파일:유시민 이사장 서명.png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11] 파일:유튜브 아이콘.png[12]

1. 소개2. 생애
2.1. 약력2.2. 유년 시절2.3. 학창 시절2.4. 대학 시절
2.4.1. 서울역 회군과 강제 징집2.4.2. 복학, 그리고 서울대 프락치 사건
2.5. 정계 입문
2.5.1. 국회의원 보좌관2.5.2. 독일 유학, 작가, TV 진행자2.5.3. 국회의원2.5.4. 보건복지부 장관2.5.5. 대구 출마2.5.6.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2.5.7. 정의당 창당과 정계은퇴
2.6. 작가 및 정치평론가 생활
2.6.1. 19대 대선과 정계복귀설2.6.2.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활동
2.6.2.1. 2017년2.6.2.2. 2018년2.6.2.3. 2019년
3. 정치, 경제 성향
3.1. 정치 성향3.2. 암호화폐 관련3.3. 정치, 경제 관련 어록
4. 방송 활동
4.1. 과거 출연작
5. 저서6. 선거 이력7. 소속 정당8. 논란9. 여담

1. 소개

대한민국친노 & 진보 성향의 전 정치인, 작가, 정치평론가, 방송인.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한민국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했으며[13],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한때 현란한 말솜씨와 배경 지식 등으로 큰 인기를 얻어 진보 진영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정치인이었지만,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꾸었고 얼마 뒤인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작가, 논술 강사, 강연자,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시민은 자신을 소개할 때 '이것저것 하다가 지금은 글 쓰는 사람'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방송 활동이 활발해진 2017년 들어와서는 스스로를 ‘방랑 예능인’이라 자칭하기도 한다. 사실 일단은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기 때문인지 그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예능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담조의 발언이고, 진지하게는 방송이 ‘부업’이고 본업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유 작가의 시민이라는 이름은 역사교사였던 선친이 조선 무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애 류성룡의 13대 직계손이다. 탤런트 류시원과 같은 항렬이다. 유시민의 12대조는 장수찰방 류여, 11대조는 졸재 류원지이다. 알쓸신잡 시즌 2 안동편에서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을 방문했는데, 만난 마을 주민 어르신들이 유시민을 '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2. 생애

2.1. 약력

2.2. 유년 시절

아버지 유태우와 어머니 서동필 사이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역사교사,[16] 어머니는 요즘의 슈퍼마켓 같은 구멍가게를 하는 평범한 집안이었다. 저서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이 시절을 회고하길, 자기 집은 그래도 밥은 꼬박 먹었는데 학교에서 주는 탈지분유와 옥수수죽을 받아서 먹는 친구들을 보고 가난이 뭔지 그 차이에 대해 어린 마음에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을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자유주의적 소시민계급) 태생이라고 말한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자식들에게 각종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게 하였고 식사 시간에는 자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한 주제를 두고 자식들과 진지하게 토론했다고 한다.

2.3. 학창 시절

대구 수성초등학교, 대륜중학교[17], 심인고등학교[18]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고교 시절부터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고 한다.[19][20] 그러나 유시민의 말에 의하면 수학에는 재능이 없어서, 당시 본고사 대비를 위해서 수학책 세 권[21]을 통째로 암기(주입식)했다고 술회했다.

참고로 유시민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실시된 이른바 고교 평준화 2기다.[22] 그리고 유시민이 초등학교[23]를 졸업하기 두 해 전에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다. 그래서 유시민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간만 나면 축구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한편 유시민은 박정희가 가장 잘 한 일로 고교 평준화를 수차례 꼽은 바 있으며,[24] 한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고교 평준화는 하나의 '사회혁명'이었다. 박정희라는 절대권력자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사회혁명'이었다. 대한민국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 지배력을 일부 유지하고 있는 '명문고 학벌'을 해체했기 때문이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고교 졸업 후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는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해 영어를 배워 서양으로 가서 서양 철학을 배우고 다시 귀국해 동양 철학을 배워 동서양을 잇는 철학자가 되라고 조언했다. 반면 유시민은 역사학이나 언어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시민의 회고에 의하면, 고교생이던 당시엔 정보가 없어서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도 받고, 유학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자신은 환경상 학문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막연히 법학과에 가서 사법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25]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다.[26]

2.4. 대학 시절

입학 후 농촌법학회[27]라는 서클에 가입하는데, 신입생 환영회에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하는 것이다"[28]고 주장해 선배들을 당혹시켰다. 왜인가 하니, 당시 운동권의 주류사상은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여 역사는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필연적인 발전을 겪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유시민이 운동권의 중심에서 이걸 정면에서 부정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여튼 그때부터 그의 토론 실력은 발군이었다고 한다.

유신헌법 하 긴급조치 위반으로 선배들이 처벌받는 현실을 보면서, 유신헌법을 공부하는 일, 그것으로 시험을 보는 일, 그리고 박정희 정권 밑에서 판검사로서 일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2학년 올라갈 때 결정하는 전공진입에서 원래 지망했었던 법학과가 아닌 경제학과를 선택한다.[29][30] 이후 공업단지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학에 활발히 참여하는데 이때 그를 야학으로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

그리고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이자 운동권 선배였던 이해찬하고도 인연을 맺게 된다. 뒤에 상술되다시피 처음엔 선후배 간의 멱살잡이 싸움이라는 독특한 악연으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2.4.1. 서울역 회군과 강제 징집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 1980년 봄이 되면서 민주화 운동은 더욱 가속화되고 5월 15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수만 명의 학생이 계엄 해제 및 신군부 퇴진을 요구한다.

서울역 회군이 있기 며칠 전 유시민은 군이 출동한다는 첩보를 받고 학교를 지키던 300~400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허위정보였고, 다음 날 일일이 교실을 찾아다니며 학생에게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서울역 회군 이틀 후 5월 17일, 유시민은 학교에 군대가 들이닥친다는 소문을 다시 듣고 학생회관에 머무르다 신군부에 체포된다.
밤 10시가 다 되어 학교를 나오다가 유시민 군을 만났다. 빨리 나가자는 말에 뜻밖에 그는 자기는 학교에 남겠다고 했다. 어떻게 군인들에게 텅 빈 학교를 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일단 피해야지 무슨 얘기냐는 내 말에 유시민 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됐던 그날, 학생회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나는 그저 민망한 일로 여겼던 반면, 대의원회 의장인 그는 군인들이 의기양양하게 텅 빈 학교에 주둔하는 광경을 그렸던 것이다. 망해가는 나라에서 황현과 같은 선비가 목숨을 끊은들 그게 대세에 무슨 영향이 있겠냐마는, 황현처럼 목숨을 끊는 선비 하나 없었다면 조선의 망국이 얼마나 더 참담했을까? 유시민 군을 남겨두고 통금이 다 되어 집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뉴스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현실에서건 역사에서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을 보게 될 때면, 광주 학살의 전야에 그 넓은 관악캠퍼스의 불 꺼진 학생회관에 홀로 남은 유시민을 떠올렸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의 그는 다가오는 카타필라의 굉음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홍구 교수의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
건장한 남자들이 쇠사슬로 묶어둔 학생회관 4층 복도 현관문을 뜯어내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공주사대 총학생회에서 온 전화였다. '여기에도 계엄군이 진입했으니 빨리 피하세요!' 그렇게 외치고 돌아서는데 이단옆차기가 날아왔다. 허벅지를 밟혔다. 이마에 닿는 권총 총구가 서늘했다. 나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편입되어 있던 경찰청 특수수사대로 끌려갔다. 계엄군은 교정과 기숙사에 남아 있던 모든 사람을 소총과 몽둥이, 군홧발로 짓밟았다. 모든 대학 교정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고 '서울의 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ㅡ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보안사에 끌려가 두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후 이른바 녹화사업에 강제 징집되어 화천군에서 복무한 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녹화사업은 당시 민주화운동가와 대학생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최전방으로 입대시키는 제도였다. 화천 7사단에 입대해서도 군사정권에 의해 관심사병으로 지정되어 몇 번이고 전출과 전입을 반복하고 사상 검증이랍시고 끌고 가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6482d552010cd1adadd8bb3d21ab7c9634b5135d5c907a6b64b859fbc885f081.jpg
유시민의 군대 시절.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군대 시절 일화 중에는 사격과 축구를 잘했고, 부친의 수술을 앞둔 후임을 위해 자신의 포상 휴가를 반납하고 그 후임의 청원 휴가를 보내줬다는 미담이 있다.# 본인 역시 이후 항소 이유서에서 밝힌 군 시절의 소회를 아래와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ㅡ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中

2.4.2. 복학, 그리고 서울대 프락치 사건

1983년 5월 군 전역 후 서울대에 복학한다. 그리고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 앞서 언급된 녹화사업 폐지 투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가담 및 연루되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당한다. 유시민은 이후 이에 대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였다. 이 사건에 관한 상세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문서 참조.

이후 징역살이를 마친 뒤 서울대 선배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간간히 일을 하는 등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재학 도중에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함께했던 백태웅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운영을 도왔는데, 이때 현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 조국과 전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여성가족비서관 은수미와의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31]

졸업 후에는 그와 친한 방송국 PD의 덕에 드라마 각본가로도 활동했는데, 앞서 서술했던 학생 운동 때문에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 위장을 하며 '유지수'라는 가명을 쓰기도 했다. 그가 각본을 썼던 1988년에 방영한 MBC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에서도 '극본 유지수'라고 소개되었다. 썰전에서 유지수 시절을 흑역사라고 말한 적 있다.[32] 수배 중 계간지 창작과 비평 1988년 여름호(통권 60호)에 신인추천 중편소설 『달』로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2.5. 정계 입문

2.5.1. 국회의원 보좌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해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의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 이때는 공식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 급여를 나눠서 썼다고 한다.[33] 유시민의 말에 의하면 이해찬 의원이 초선의원일 땐데 자기 보좌관 하면 수배도 풀어주고 그런다고 해서,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참고로 이해찬과 유시민은 대학생 때이던 1980년경부터 서로 잘 알던 운동권 선후배 사이였다. 그러나 재밌는 건, 이 둘의 첫 만남은 멱살잡이 싸움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1학년생들의 병영집체훈련 응소 문제를 두고 운동권 내부에서도 총학생회측과 복학생협의회 사이에 의견이 달라 노선 싸움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집회에서 총학생회 간부였던 유시민이 사회를 봤는데 복학생협의회측에 발언권을 주지 않고 집회를 끝내려 하자 복학생협의회 소속이었던 이해찬이 달려들어 유시민의 멱살을 잡은 뒤 욕설을 했고 이어서 주먹을 날리려던 찰나에 사람들이 말려서 다행히 주먹다짐으로 번지진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둘은 화해를 했고 절친한 운동권 선후배 사이로 남게 되었으며,[34] 훗날 잘 알려졌다시피 이해찬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유시민을 보좌관으로 영입하게 된다.

이 당시 보좌관으로 일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과 이해찬 평민당 의원이 모두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기 때문이라고. 유시민은 한눈에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감임을 알아봤다고 한다. 유시민은 "당시는 내가 일방적으로 노 의원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관계였다"고 말한 바 있다.

2.5.2. 독일 유학, 작가, TV 진행자

1992년 아내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 5년 3개월 동안 있었다. 유시민의 회고에 의하면, 3당 합당 날치기 하니까 국회가 재미없던 차에, 아내가 독일 유학을 제안해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한편 독일로 유학을 떠난 92년도에는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책을 내기도 했다. 또한 독일에서 유학하면서도 『말』지, 한겨레 신문에 계속 기고했다.

독일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한 전공은 보건경제학인데, 대학 다닐 때에는 시위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질 않아서, 독일 가서 비로소 경제학을 새로 공부한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유학지로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미국은 너무 비싸고 장학금 받을 수도 없는데 반해, 독일은 학비를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32살 때 독일로 갔는데 마흔 되기 전에는 돌아오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독일로 가보니 독일 공부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우선 외국어인 독일어로 공부해야 하는 데다가,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는 운동권 활동하느라 경제학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해서 기초도 부족하여 석사할 때 무려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석사를 마치고, 박사 준비하려고 했는데, 1997년에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아내는 독일에 남아 계속 공부하고, 자신은 귀국해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유시민과 노무현 두 사람이 좀 더 가까워진 것은 유 의원이 독일 유학 중일 때라고 한다. 5년의 유학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노무현 당시 의원을 만났고 주로 경제와 관련한 지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귀국 이후에는 작가로 활동하였다. 또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월간지, 주간지 등에 원고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MBC 라디오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00년 6월 초부터 MBC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35] 2002년 8월 절필과 전업 정치인으로의 전향을 선언하고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다.[36][37]

2.5.3. 국회의원

2003년 4월, 16대 국회의원 고양덕양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여의도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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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서를 하는 첫날부터 백바지[38]에 라운드 티셔츠라는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복장으로 참석해 어마어마한 어그로를 끌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계 의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어서, 해당 복장을 받아들이지 못한 의원들이 대거 퇴장해버리면서 선서를 이튿날로 미루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튿날 일반적인 정장 차림으로 참석하여 정상적으로 선서를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이로 인해 그의 정치생활엔 싸가지 없는 좌파의 상징이라는 딱지가 붙고 만다.[39]

이 무렵 야구 경기나 학교 운동회 등 국가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 곳에서 하는[40] 국기에 대한 경례파시즘적이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한 적도 있다.

이후 개혁국민정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했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때 열린우리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친일 청산에 맹렬히 반대하는 보수 세력이 당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친족 친일 의혹을 제기할 때[41] 유시민의 부친과 백부 또한 친일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유시민은 이에 대해 반박하면서 '나, 아버지 그리고 국가정체성'이란 글을 올려 친일파 논란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42]

2.5.4. 보건복지부 장관

파일:external/cginews.net/2007010215252.jpg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 25일까지 1년 3개월가량 참여정부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했다. 참고로 유시민은 독일 유학시절 보건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보건경제학은 경제학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마이너한 분과라, 국내에 이 분야 전공자나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다. 즉 보건경제학 전공자는 그 자체로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유시민이 가진 이러한 전문성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시민을 보건복지부장관으로 기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어느 정도의 네임드 인물에게는 그전에 맡았던 가장 높은 직책을 붙여 불러주는 것이 관례인 만큼 현재도 유시민 前 장관이라고 꽤 불리는 편이다. 썰전에 같이 출연했던 전원책 변호사는 유 판서라고 불러준다. 조선시대와 비교하자면 판서는 장관급이라고.[43] 이는 비아냥이 아니라 나름의 경칭이자 애칭이다. 다만 유시민 본인이 반기는 호칭은 아닌 것 같다.

장관 임명 과정 자체도 매우 드라마틱했다. 유시민이 입각하기 직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당시 정계의 화두 중 하나였던 상시 청문회법을 확대하여, 국무총리가 아닌 국무위원의 임명에도 인사청문회를 의무화하는[44]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반대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개정 법률을 그대로 공포하여,[45] 하필이면 빽바지 사건 등으로 찍힐 대로 찍힌 유시민이 개정된 인사청문회법의 첫 적용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라는 난관을 뚫기 위해 유시민은 직접 한나라당을 방문하여 박근혜 최고위원을 비롯한 여러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YTN 돌발영상 레전드로 남아있기도 하다. 박근혜 최고 위원과의 면담. 결국 인사청문 적격 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다. 유시민은 적십자비 한 번 안 내서 절대 부적격 장관 취급당했다며 청문회 제도의 악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46]

심지어 유시민의 장관 임명에 대해선 유시민이 속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극렬히 반대해서[47] 이런 의견을 수렴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시민을 장관으로 임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서, 임명을 강행하려는 노 대통령과 총리 사임을 운운하며[48] 다투기까지 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장관으로서 일을 매우 열심히, 잘한 사람"이라는 평을 했는데, 실제로 좌우를 막론하고 유시민의 장관 시절 업무 추진 및 실행 능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높은 편이다. 의욕적으로 각종 정책을 펼쳤고, 그만큼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을 추진하여, 장관 퇴임 직전인 2007년 4월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다.# 유시민 본인은 이 때를 정치인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로 꼽는다.# 보통 고령자들은 유시민을 버릇없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49] 많은 노인들이 유시민 덕을 보고 있으니 아이러니.

재임 중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기존보다 30% 낮추었다. 이에 대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이는 기존의 연금제도가 부도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도입되던 1988년대와 그 전후의 노년 세대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어서 노인세대에 대한 책임을 가정에게 떠넘겼으며 또한 보험요률이 3%, 인상한 뒤에도 9% 크게 높지 않은 데 비해 소득대체율은 60%로 높은 편이라 그 부담을 후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인구 구조가 노년 세대보다 청년 세대가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자면 미래세대에 주어지는 부담이 너무 과중하다는 점과 만약 소득대체율을 더 높이고 싶다면 세금을 더 높이는 것이 불가피 한데 국민 정서상 세금을 더 부과하면서 연금 지급액을 높이는 것은 너무 저항이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역시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대로 보험료율을 15.9%로 인상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점진적으로 인하시키는 것으로 타협했다.

대체로 '복지 확대를 위하여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국민 여론을 거슬러가면서 세수나 예산은 확장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건복지부 장관 업무를 수행한 듯하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국민연금 문제가 생겨났을 때도 처음에는 유시민도 세율을 높여서 소득대체율을 60% 정도로 유지하려고 하였으나 한나라당의 격렬한 저항과 세금 인상에 따른 국민 여론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혹은 뚫지 않고 세율을 덜 높이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크게 낮추었다.

이외에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공립유치원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다른 국무의원들에게 건의했었고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재차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국민들이 유아 보육에 추가로 세금을 납부하는 데 합의하지 못한다면 애써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는 것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즉 기성정당들이 주장하는 보육료 인하와 국공립 확장, 그리고 보육교사 처우 개선 문제는 병립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만약 국공립유치원을 늘리고 보육교사를 공무원으로 전환한다면 마땅히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이 예산을 부유층에서만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득에 상관없이 전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만약 세금을 높이지 못하고 국공립유치원만 늘리고 보육 공무원을 늘린다면 너무 재정 압박이 심해진다. 국민 여론이 세금 인상에 호의적인지 굉장히 회의적임으로 기존의 국공립유치원은 저소득층과 장애아동, 편부모가족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시설로 재편하고 일반 가정에게는 유동적으로 예산조정이 가능한 육아 바우처를 지급해 민간 보육원 이용요금을 보조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당시 경험 때문인지 정계를 은퇴한 지금도 유독 기획재정부에 대한 평이 상당히 짜다. 유시민 왈: 기재부가 참... 나빠요. 이는 복지 증진을 이유로 걷은 국세가 정작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 주도로 다른 곳에 쓰고, 결과적으로 늘어난 복지 수요에 비해 보건복지부가 가진 예산은 크게 변한 게 없고 예산이 없으니 복지 정책도 제자리걸음인 것을 두고 사람들은 보건복지부만 욕 한다는 게 그 이유. 담뱃세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2.5.5. 대구 출마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게 되었고, 유시민도 여기에 합류한다. 썰전에서 밝히길, 원래 대통합신당에 결사반대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충고를 듣고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시민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사퇴했고, 경선 끝에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이명박에 패해 맥없이 낙선하고 말았다. 콩가루 그 자체였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오래 유지될 리 없었고 결국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과 이해찬 등의 거물 정치인들이 줄 탈당하기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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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철새 논란도 있긴 했지만 초, 중, 고교를 모두 대구에서 다녔으니 연고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한나라당주호영[50] 후보와 맞붙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름값의 영향은 있었는지 당초 예상보다 높은 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수성구는 부자 동네인 관계로 대구에서 지역색이 희석된 축에 속하지만, 수성구 을 지역에서 민주·진보 진영 인사가 30%를 넘긴 경우는 수성구 을 선거구가 생긴 이래로 유시민 하나뿐이다. 보통은 20%도 넘기 힘들다. 게다가 이때는 반노 정서가 하늘을 찔렀던 18대 총선이었다! 이에 민주 & 진보 쪽 인사는 크게 고무되었고 이후 김부겸이 대구에서 도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유시민의 행보가 김부겸에 딱히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실제로 유시민이 대구에 뼈를 묻을 것 같이 굴다가 대구 사람들에게 어떠한 언급도 없이 서울시장을 도전하겠다고 떠났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수성구 주민들은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대구에 내려와 '대구의 아들' 운운하며 진보 진영 인사로서는 고무적인 30%대의 지지율을 받아놓고도 다시 한 번 도전할 생각 없이 대구를 포기하고 경기도로 가버렸으니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는 나중에 김부겸이 수성구 갑에 첫 출마를 했을 때도 '유시민처럼 한 번 떨어지면 그냥 도망가겠지'라고 생각하여 투표를 망설이게 되었다. 하지만 김부겸은 유시민과 달리 대구에서 2회 낙선하고도 3번째로 도전하자 수성구민들이 김부겸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유시민이 이때 1회성 출마에 그치지 않고 김부겸처럼 대구시장 등을 비롯해 대구의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면 김부겸과 같이, 운이 따라줬다면 김부겸보다 더 일찍 대구에 입성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만약 그러한 성공을 거두었다면 김부겸 의원처럼 민주 & 진보 진영의 유력한 대권 다크호스로 주목받았을 지도 모른다. 김부겸 의원은 한때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유시민 전 장관은 보수 진영에 한 번도 몸담아 본 적이 없는 대표적인 친노 &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니 대구에서 당선됐다면 김부겸 의원보다도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대등한 양강 구도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역사에 '만약'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낙선 후 2009년에는 경북대학교에서 "생활과 경제"라는 명칭의 경제학 교양 강의를 맡기도 했다. 정보전산원 1층 강당(취업 시즌 때마다 취업설명회가 열리는 그곳)에서 강의했는데, 400명 분량의 답안지를 채점하느라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2.5.6.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자세한 내용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통합진보당 아메리카노 커피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0년 참여정부 인사들이 모여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는데 유시민도 여기에 입당하였으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한다.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는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와 맞붙어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으나, 본선에서는 전 도지사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아깝게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표차가 4%p에 불과했던 점,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후보와의 뒤늦은 단일화로 인해[51] 발생한 무효표[52]김문수 당선자와의 격차에 거의 근접할 수준으로 많이 나왔다는 점 때문에 지지자들의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53] 애초에 민주당국민참여당이 한 지역씩 주고받는 연대 방식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한 자리가 아쉬운 민주당과 경선을 통해 단일화하는 방식을 고수해서 정치적 권모술수를 적극 활용하는 마키아벨리스트라는 비난도 받았다. 무효표 논란이 계속되면서 일각에선 재투표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유시민 본인이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혀서 일단락됐다.

2011년에는 국민참여당 대표에 취임하여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의석을 확보한다면 이전까지의 패배를 만회하고도 남을 의미 깊은 선거였다. 김해시는 국민참여당의 모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도 하고 PK 중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제법있는 지역이기도 했다.[54]

당시 민주당 후보로 강하게 주장되었던 김경수에게 '김해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만큼 국참당 후보가 범친노단일후보로 결정되야 한다'[55]란 주장을 하며 후보 단일화를 압박했고, 이마저도 단일화 경선에서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잇달아 판을 깨는 등 수없이 많은 어거지 끝에 결국 이봉수를 후보로 내세우는데 성공하고 원내 진출을 꿈꾸었으나 김태호 후보에게 밀리며 좌절되었다. 김태호는 경남도지사 출신에 최연소 총리 후보자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음에 반해 이봉수는 김해 출신이라는 점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은 정당원으로서 후보 뒷바라지가 전부. 민주당 측에서는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지만 야권분열,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권양숙 여사, 민주당이 유시민을 죽이려 든단 모함 끝에 불출마한 김경수, 막판 이해찬과 문재인의 중재에 따라 단일 후보를 양보한 곽진업 등의 희생이 있었기에 단일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유시민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민주당측에서 협상을 진행하던 이인영은 유시민이 저런 사람이었냐며 치를 떨었던 것으로 보인다.#[56]

이때까지만 해도 높은 인지도와 나름의 팬덤을 바탕으로 야권 대권 주자 1위를 굳건히 지키던 그였으나 그것마저도 손학규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잇따른 타격을 입은 국민참여당은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채 민주당에 흡수될 위기에 처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합당하여 대통합 진보 정당인 통합진보당을 탄생시키면서 반전의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통합은 그의 정계 은퇴의 시발점이 된다.

창당 후 통합진보당의 공동 대표로 활동했으며, 당시 경기동부연합 계열 인물들에 대한 친북 논란이 보수 언론에서 제기되자 매카시즘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통진당 내부에서는 계파 갈등이 만연하였고, 유시민은 이를 비판하면서 당무 거부와 복귀를 반복했다. 결국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터지게 되고, 유시민은 '총체적 부정선거'임을 인정하고 비례대표 전원 사퇴를 주장하였으나 경기동부연합 계열의 당권파가 반발하며 계파 갈등은 폭발하게 된다.[57] 결국 비당권파 당원들의 대규모 탈당이 시작되었고 유시민도 그 중 하나였다.

2.5.7. 정의당 창당과 정계은퇴

통합진보당 탈당파는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결성했으나, 유시민은 2013년 2월 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함으로써 파란만장한 그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다만 당을 탈당하지는 않았고 평당원으로 남았다. 이후 2018년 정치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나고 싶다며 정의당을 완전히 탈당하였다.

그의 재능을 아쉬워하는 진보 진영 지지자들이 가끔 정계 복귀할 생각은 없느냐며 묻는 모양이지만, 그때마다 '정계를 떠난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라며 단호히 선을 긋는다.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이 같은 질문을 건넸을 땐 '다음 생에 하겠다'라고 하기도. 이에 대해서는 밑에 정계 복귀 떡밥 참조.

2.6. 작가 및 정치평론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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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돌아온 유시민.

2013년 당시 딴지라디오 아까부터 팟캐스트 시대에서 유시민 백수님이라고 하면서 소개를 해 줬고 이때 유시민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의 홍보 광고가 꾸준히 방영됐는데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나름 유명해졌다. 그런데 이 책 광고에 관한 비화가 있는데, 원래는 1개월만 방영하기로 계약하였는데 계약이 끝난 줄 모르고 계약기간을 초과해서 계속 어뜨케... 살 끄신가...가 계속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때 같은 딴지라디오의 '딴지 이너뷰'에 출연해서 물뚝심송이 인터뷰를 했는데 제목이 정신승리의 달인 백수 유시민이라고 당시의 근황을 확인 사살 당했다. 이 방송을 통해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의 피해자인 유수진 前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이 소개되기도 했고, 그 사실을 아버지가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해당 사건이 벌어져서 고초를 겪은 이후 딸 유수진 씨가 남동생에게 부모님에겐 말하지 말자고 했고 유시민의 아들이 그걸 지켜서 자신은 집에서 몰랐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팟캐스트 <노회찬, 유시민의 저공비행>을 진행했으나 그 이름값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재미에 결국 망했다가 2014년부터 진중권 교수까지 참여한 노유진의 정치카페 고정멤버로 출연 중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는 '유시민의 타임라인'이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한 주간 있었던 굵직한 시사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향후 상황이 어찌 될지 예측을 내놓는 시간인데, 유시민 작가의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은근히 많아 댓글란에 '돗자리 깔았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예측이 계속해서 적중하자, 사회자 진중권 교수도 "이번에도 돗자리 까는 겁니까?"하며 능청을 떨며 언급할 정도. 유시민의 논리적 사고와 추론, 그를 뒷받침하는 정보력과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고려할 때, 예측이 틀리는 게 이상하다. 특히 많은 정당에 몸담았던 경험 때문에 다른 진행자들에 비해 그쪽에 대해 빠삭한 편이며 재선의원 및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며 정부, 국회, 청와대를 드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내각 시스템이나 청와대 시스템에 대해서도 두 진행자들에 비해 아는 게 더 많다.

한참 국정 국사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던 무렵인 2015년 11월에는 모교인 심인고등학교를 방문해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에 대한 강연을 했다.

2016년 1월부터 JTBC의 시사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이철희의 후임자로 진보 측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보수 진영을 대변할 패널로는 전원책 변호사가 결정됐다. 첫 방송인 2016년 1월 21일 방영분의 시청률은 4.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으며, 정말이지 적절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두 패널의 조합으로 인기를 끌고 날마다 시청률이 늘어가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에는 시청률이 10%를 달성하기까지 했다. 정치를 하던 시절 출연했던 생방송 토론과 다르게, 썰전은 녹화방송이라 제작진이 편집을 잘 해 줘서 좋다고 한다. 스스로 "썰전은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죠."라고 언급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심화되면서 거국중립내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될 때, 자신이 총리가 되었을 때를 가정하여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을 설명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이양할 것을 전제로 내걸었고, 전원책 변호사는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한다는 것은 반헌법적 생각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유시민을 국무총리로 선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온라인 일각을 중심으로 나왔다. 당시 유시민의 가정법(내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을 했을 것) 때문에 그가 총리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생각, 정치하길 원했던 지지자들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에 따르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별 의미 있게 말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본인도 본인이 총리가 된다면 보수정당은 물론 진보정당 내에서도 상당히 반발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였다.

2016년 10월 7일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환경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와 인터뷰하였다. 탄핵 소추안 가결이니만큼 유시민에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썰전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았던 광대승천 수준의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2017년 1월 3일 뉴스룸 토론에 출연하였다. 이 토론에 대해서 평한 딴지일보 에서 유시민은 이제 좀 있으면 구름을 타고 다닐 법한 해탈의 지위로 평가되었다. 물론 딴지일보 총수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같이 썰전에 출연했던 전원책의 토론 태도가 크게 논란이 되면서 더 부각된 것도 있다.

광주·전남 향토기업보해양조㈜의 사외이사를 맡는다고 한다.# 3월 24일 목포 보해양조 본사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이 통과될 경우 유시민 작가는 오는 2020년까지 보해양조 사외이사로 활동하게 된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는 "이전부터 보해양조에서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민간기업에 관련된 일은 새로운 일이라 호기심도 있어 수락했다"고 사외이사 수락 배경을 밝혔다. 이는 큰 화제가 되어서 기사가 나오자마자 보해양조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가 3월 9일쯤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24일 주주총회 때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직 안 하려고 도망친다'라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2.6.1. 19대 대선과 정계복귀설

뭐 사진 같은거 이런 거 갈무리 해가지고 짤 만들고 이래 가지고 명왕이 뭐, 산채로 잡아오라 했다는둥 그런 얘기 나오고 있어가지고요......
(중략)
저는 제 개인적인 거는... 저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어요.
- 김어준의 파파 이스 144화 中

본래 유시민의 정계 복귀는 정치계의 오랜 떡밥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문재인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등장하자 친노-친문 세력 및 지지자들과 각별한 관계인 유시민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2015년 말부터 문재인의 주도로 민주당이 각계각층의 명망 있는 인사들을 대규모로 영입하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시민의 영입 및 정계 복귀의 여부를 두고 관심이 적을 리가 없다. 한 예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거국중립내각 및 책임총리제를 놓고 논란이 커졌는데 이때 썰전에서 유시민이 반 농담 삼아 '저는 총리를 하라고 하면 할 것 같다'라고 말하자 바로 책임총리 후보의 하마평으로 유시민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문재인 및 유시민 지지자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유시민을 두고 '썰전에서 짤리게 하자', '책 안 팔려서 돈 못 벌게 하자', '산 채로 잡아와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문재인에게 데려가야 한다' 등과 같은 농담 글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보해양조의 드립도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말. 유시민은 정의당 당원이란 지적이 나오면 '정의당과 연정하는 셈 치자'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반대로 '그전에 정의당에서 나오시죠'라는 드립도 있었다. 그 외에도 문재인 대선 캠프 및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차기 내각 인선과 같은 인사 관련 기사가 나오면 높은 확률로 유시민의 이름을 언급한다. 특히 위의 총리 드립 때문에 국무총리 직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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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썰전 출연 대기실 썰전 200회 인터뷰 중

그리고 앞서 문재인 후보가 썰전에 인터뷰로 출연할 당시 유시민의 정계 복귀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바람에, 위의 왼쪽 사진처럼 유시민을 보는 문재인 사진을 이렇게 만들기도.[58].왼쪽 사진은 유시민의 표정이 다소 이상하게 나왔는데, 이걸 두고 유시민이 일부러 바보 흉내를 해서 도망치려 한다는 드립도 있다. 2월 5일 썰전 205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직접 출연해서 이 발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원책이 '그저 덕담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유시민은 '그건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지.'라고 받아쳤다. 이에 문 후보가 '국민들이 러브콜을 하면 그게 운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자 '국민들이 저를 러브콜할 방법이 없으니 그건 마음이 놓이죠.'라며 다시 받아쳤다.

물론 유시민의 복귀 여부는 어디까지나 유시민 본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런 드립들은 이를 알면서도 일부러 하는 장난들이다. 대부분은 그냥 유시민이 지금처럼 편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평가하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장난을 더욱 재미있어 하는 것. 물론 진짜 정계 복귀를 바라며 드립을 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유시민이 정치를 안 하는 이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고 때문이라며 이런 드립 자체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서거 이후에도 정계에서 살아남으려 했으나 연거푸 낙선했으니 이제는 그 충고대로 따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편으론 문재인과 일하면 정치적, 정신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과로 등 육체적으로도 힘들다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놀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더 농담 섞인 의견도 있다. 마침 문재인은 대단한 워커홀릭이어서 그 휘하에서 일한 보좌진들이 생고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위에 언급한 농담 글 중에는 유시민과 문재인을 마치 '게으름뱅이 부하'와 '악덕 상사'처럼 표현한 글도 적지 않았는데 바로 이를 반영한 것.

5월 2일 tvN에서 유희열과 함께 나영석이 연출하는 윤식당의 후속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떴다. 어째 점점 방송에 더 많이 나가는 걸 보니 점점 연예인이 되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문재인-유시민 지지자들 사이에선 '또 어딜 도망가십니까', '마지막 휴가는 즐기게 하자' 등의 드립이 나왔다. 정작 본인은 예고편에서 굉장히 해맑은 모습으로 프로그램 컨셉이 마음에 들어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5월 4일 썰전에서 전원책이 대놓고 "총리 이야기 왔느냐"고 물었지만, 유시민은 "(총리는 호남이라는데) 난 영남이잖아요"라며 농으로 받아넘겼다. 해당 방송에서 유 작가가 밝히기론, 문재인 후보가 총리감을 내정해두긴 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5월 5일 김어준의 파파 이스144에 출연했다. 유시민 파트 풀영상 김어준이 '혹시 내가 총리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란 설레발 아닙니까'라며 위의 총리 드립을 말하자 당연히 방청석은 환호의 도가니. 유시민 본인도 '산 채로 잡아와라' 등의 드립을 알고 있단다. (총리는 비영남 쪽으로 한다고 했으니 자신은 해당이 안 된다는 유시민에게) '그럼 두 번째 총리를 해야지', '속으론 문재인에게 가고 싶은 거 아니냐'라고 계속 깐족거리는 김어준과 어떻게든 변명(?)하는 유시민의 대화가 일품이다.

일단은 공직에 나갈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자신은 장외에서 (자칭)'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 지원하는 형태를 더 원한다고. 이는 당일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듯, 노무현 대통령 당시 (보수언론/지식인이야 당연히 비판적이고) 소위 '누구에게나 공정하다'는 진보 특유의 기계적 중립주의인 척 위장한 반노의 위치로 보수 진영에 합세해 참여정부를 맹렬히 비판하고 그 결과 참여정부를 좌우 양쪽으로부터 고립시킨 진보 언론/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의거한 입장이다. 실제로 친노/친문 지지자들의 한경오에 대한 정서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이 글을 참고하자. 즉 공정성, 중립 운운하며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감싸주고 편을 들어주는 장외 지식인을 스스로 자처하겠다는 뜻. 유시민의 우려대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경오를 비롯한 진보 언론과 친문 지지자 간의 대립이 대단히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끝 무렵에 지금까지 유시민이 왜 정의당에 당적을 두는지, 인터넷에 유시민에게 정의당 탈당하라는 목소리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이 나온다. 대략적인 요지는 "정의당은 모든 걸 다 하려다 보니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컨디션 기복이 심하다." 정도로 해석된다고 본다.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JTBC 2017 우리의 선택 특집 뉴스룸에 출연했다.

조기숙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유시민 작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재량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시라'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문재인 정부 초기의 행보는 유시민 작가가 썰전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제안했던 부분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사이에 연락이 오고 갔고 그 과정에서 유시민 작가의 현 포지션에 대한 교감이 이미 있었던 모양.

문재인 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엔 유시민의 정계 복귀는 이젠 일종의 이 되었다. 노무현, 문재인 지지자들은 유시민이 도와주길 바라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59] 한편으로는 그에게 또 다른 고생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 도와준다 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의 정계은퇴가 번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현직 정치인들이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유시민 본인이 썰전을 하차하면서 '정치에서 더 멀어지고 싶어 정치비평의 세계와 작별하려 한다'는 발언과는 달리 야당을 비판, 비난하고 여당과 현 정부를 옹호하는 등 정치비평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발언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 그렇기에 유시민이 정계 복귀를 할 것이라는 예측 또한 계속되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 역시 유시민이 정치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출마 선언만 안했을 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대개는 정당에서 직위를 갖고 있거나 선출직 공무원인 사람들을 정치인으로 일컫기도 하나 무소속, 또는 정치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도 정치인으로 부른다. 유시민 역시 정당인, 선출직 공무원은 아니나 정치적 성격이 강한 노무현재단 이사장, 현 정부와 여당 옹호 정치평론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정치인이 아니라는 부정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후 뉴스공장에서 정계복귀설에 대해 '그런 의심은 당연한데, 제가 증명할 필요가 있나. 정치 하고 말고는 제 마음이다. 나중에 제가 하게 되면 욕하시라'란 발언을 하면서 정계 복귀에 대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인은 아니면서 정치에 발을 걸쳐놓는 위치가 가장 발언의 신뢰성을 더하면서 발언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정치평론가들이 정치인이 아니듯 본인도 정치인이 아니라는 발언을 한 바 있으나 정치평론가들의 상당수가 정치 입문을 목적으로 정치평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유시민의 정계복귀 논란은 지지, 비판 성향을 떠나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6.2.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활동

2.6.2.1. 2017년
5월 13일 지지자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강조하였으며 문재인과 연락을 너무 자주하면 비선이 될 수 있어서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 외부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5월 28일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김구라의 방에 출연해 전반전 시청률 1위를 달성하는 화력을 보여줬다. 방송 말미에는 피디가 편집할 거 아니냐며 팟수들의 질문에 대해 짤막짤막하게 답변을 해주기도 했는데 마리텔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어차피 문 닫는 방송에 조문차 출연하게 되었다고.[60] 이언주 의원이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문자테러 논란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치행위로써 정치인은 관심을 먹고 사는데 문제있나'란 반응이었고 마리텔이 시청률 때문에 100회에서 폐지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오자 "그럼 뉴스데스크는 왜 폐지 안하는데? 그것도 아무도 안 보잖아."라며 시크하게 깠다.

6월 2일부터 나영석 PD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다. 쟁쟁한 멤버들 가운데에서도 특유의 말빨이 전혀 묻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정계 복귀 떡밥에 대해서는 "자연이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권력도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 공백은 젊은 인재들이 메워줄 것이다." "고령화 사회일수록 리더쉽이 젊어야 한다."등의 말로 입장을 밝혔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로 1, 2, 3위 중 2위(썰전)와 3위(알쓸신잡) 프로 양쪽에 출연하는 유일한 인물이며, 심지어 양쪽 모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상기 마리텔에서 보여준 화력도 그렇고, 여러모로 방송인으로서의 네임밸류가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알쓸신잡 1회에서 유희열은 '자기안에서 요즘 가장 핫한 방송인'으로 유시민을 꼽기도 했다. 2017년 시사저널에서 시행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영향력 3위, 문화예술계 2위에 올랐다. 활발한 대외 활동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기존에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가지고 있던 소위 '재수없는 진보' 이미지를 벗고 장년층 들에게 호감을 받고 있다.

12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청원을 올렸다! 청원의 내용은 초등학교 일부 빈 교실을 아동 육아 공간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 여러 부처가 힘을 합쳐야 하는 만큼 청와대와 총리실이 직접 나서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61][62] 그리고 연합뉴스전화 통화에서 본인이 쓴 글이 맞다고 인증했다. 그리고 해당 청원의 서명 글 중에는 '청원인을 책임자로 직접 임명해야 한다', '산 채로 잡아가세요' 라는 드립이 쏟아지고 있다. 청원은 하루만에 2만명을 넘는 기염을 토하고 있으며 13일 오전 12시 기준 청원인 2만 6천명을 돌파했다. 유시민의 이 청원 소식은 글이 올라온 당일 JTBC 뉴스룸비하인드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키워드도 '시민의 청원'으로 중의적인 표현. 최종 서명 수는 75,294 명으로 의무 청원자 수인 20만을 넘지는 못했다.

12월 23일 무한도전에 출연하였다. 무한도전에서 뽑은 올해의 인물로 김생민, 윤종신, 진선규, 송은이와 함께 유시민이 꼽혀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2.6.2.2. 2018년
1월 13일, 최근의 암호화폐 논란에 대해 '엔지니어가 만든 이상한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쓰며 촌철살인 비판을 했다.

1월 18일 암호화폐 논란을 주제로 한 JTBC 특별 토론회에 패널로 출연했다. 토론 내용은 JTBC 뉴스룸/긴급토론 -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문서를 참고할 것.

4월 10일 약 7개월 만에 방송을 재개하는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연한다. 주제는 10차 개헌의 내용을 다룬 '대통령제 vs 책임총리제, 30년만의 개헌 가능할까'이다. 함께 출연하는 패널은 박주민 의원, 나경원 의원, 장영수 고려대 교수이다. 해당 토론에서는 개헌안에 포함된 특정한 동기나 의도를 찾기보다는 헌법에 부합하고 합리적이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썰전 272회에서 최저임금 상여금 산입 문제에 대해서 기본급은 낮고 상여금 , 복리후생비로 최저임금 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이번 개정으로 임금이 낮아졌다고 삭감이라고 하면서 반발하는건 논리적이지 않다고 했다. 네이버 뉴스 , 고용노동부

6.13 지방선거 당일 MBC 선거방송에 전원책 변호사와 함께 출연하면서 현재 정의당 평당원이 아님을 밝히면서 정의당을 탈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63]. 현재는 무소속. 당적도 버려 완벽하게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와서 그런지 "싹쓸이해서 그렇게 좋으냐."는 전원책 변호사의 투덜거림에 "솔직히 속이 다 시원하다."고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친문 성향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정의당 눈치 볼 것도 없으니 빨리 산채로 잡아와야 한다'라는 드립이 다시 등장했다. 단 드립은 드립일 뿐, 유시민 작가가 정의당을 탈당한 이유가 다른 정치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와 조금 더 멀어지기 위함이므로 실현될 확률은 매우 낮다.

정의당 탈당을 이어 6월 28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썰전에서도 하차한다. 말 그대로 정치와 떨어진 삶, 작가와 비평가로서의 삶을 위해 정치 주제를 계속 해야하는 썰전을 떠난다고.

7월 23일 노회찬 의원이 투신자살하자 곧바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상주 역을 자처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특히 조문 당시에는 9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열했다. 발인식에도 참석했고, 모란공원까지 동원하며 심상정, 이정미를 위로했다.

7월 29일부터 패키지로 세계일주 - 뭉쳐야 뜬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여행지는 일본 대마도로, 유시민의 전문인 역사 상식과 낚시를 주제로 한 패키지 여행이었다.

9월 26일 유시민 작가가 노무현재단의 이시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현직 이사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사의를 밝혔고 이에 후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가 유시민 작가를 직접 후임으로 낙점해 이사장직을 제안, 유시민 작가가 이를 승낙하여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이사회 의결 등 공식 절차를 거쳐 10월 즈음에 이사장으로 공식 선임된다고 한다.

10월 2일, 공식으로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5일부터 시작된다.

일각에서는 유 작가의 노무현 재단 이사장 복귀를 두고 ‘정계 복귀 신호탄’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썰전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박형준 교수는 “방송을 같이 하면서 유시민이 결국엔 정치를 재개할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또 친노 진영 입장에선 다음 정권도 자신들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인사가 대권을 잡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나 안희정이 낙마한 지금 그럴 자격이 되는 이는 유시민과 김경수 경남지사 정도다. 유시민의 이사장 취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해찬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던 시절 자신이 ‘문 실장’으로 불렀던 문재인을 2012년 대선에 출마시켜 5년 뒤 대통령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한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유 보좌관’으로 불러온 유시민이 또다시 대권 주자 반열에 낀다면 2번 연속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된다.”며 이해찬 대표의 유시민 영입은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잠룡' 풀을 늘리기 위함이라는 견해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친문계 김정호의원은 “유시민이 정치를 떠난 사람이기에 이해찬 대표가 낙점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해찬 대표에게 노무현 재단을 둘러싼 정치색이 부담이었는데 5년 넘게 정계를 떠나있는 유시민이 이사장을 맡으면 그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명이 붙어있을 만큼 친노로서 ‘정통성’이 있기에 이해찬이 그를 골랐을 것이란 주장이다.*

10월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식을 가졌다. 유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유 신임 이사장이 이사장 취임에 앞서 제기된 정계 복귀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12월 22일, 노무현 전대통령 관련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과 현 정부의 정책 소개와 이슈 정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을 팟캐스트, 유튜브 등에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인 말로는 "은퇴 비슷하게 했지만, 어용지식인으로 복귀하겠다"고. 이로 인해 또 언론에서는 정치복귀설이 흘러넘치지만, 본인은 그런 해석을 경계했다. 장윤선 기자에 따르면 "유시민이 기침하면 여의도엔 독감이 돈다."는 말이 돌 정도라고.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정치적 위상은 리즈를 찍는 중.
2.6.2.3. 2019년
2019년 1월 2일 JTBC에서 주최한 토론 '2019 한국 어디로 가나'에 김상조, 신세돈, 김용근과 함께 출연했다. 토론회에서 유시민은 최근 일부 언론 등이 제기하는 경제위기론에 대해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이명박·박근혜 때로 똑같이 돌려놓기 위한 작업이라고 본다"고 밝히며 주류 언론의 경제 기사에 대해 깊은 불신을 거듭 드러냈다.

1월 4일, 팟빵, 유튜브, 카카오tv 등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이름은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 방송을 업로드하는 노무현재단 채널은 티저가 나온 뒤로 구독자 수가 급상승했는데[64], 1월 5일에는 홍카콜라, 정규재TV마저 뛰어넘은 35만을 찍고, 다음 날인 1월 6일에는 45만을 달성하고 극우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신의 한 수(팟캐스트)마저 꺾었다. 마침내 1월 7일 오전 11시 25분 구독자 500,000명을 달성하는 저력을 보여줬다.[65] 그리고 유시민의 알릴레오 1화는 1월 5일 기준 조회수 100만을 달성한 것도 모자라 1월 7일 59시간 만에 200만을 달성했다.

이 상황을 두고 보수 성향 네티즌들이 유튜브로 대거 결집 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진보 성향 네티즌들이 마침 유튜브 방송을 연 유시민에게 총집결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사실 그 전에 직접적으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씀'이라는 채널을 개설했으나, 당내외에서 여러 악재들이 겹치고 방송 내용 자체도 별 재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1월 6일이 되서도 구독자 수가 3만을 못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알릴레오가 뜨고 난 뒤의 방송분에서 이해찬 대표가 개그맨 강성범을 초대하여 버럭금지(...) 서약서를 작성해가면서 부랴부랴 방송 재정비를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66]

2019년 1월 7일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고칠레오' 1회에서 자신은 차기 대선 주자 최상위권에 오른 현재의 모습들에 대해 소감을 묻는 질문에 딱 잘라서 "난감하다"고 대답했다. 정치를 안 해봤으면 그런 소리를 듣고 기분 좋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정치를 10여 년 해본 상황이고 그런 쪽으로 이름이 오르는 것이 좋은 게 아닌 줄을 알고 있고[67]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런 소식이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그러면서 2년 뒤에도 그래도 자신을 계속 부른다면 왕조 시대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던 선비들이 하던 대로 칭병하거나 아니면 은둔하겠다고 밝혔다.#[68]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처럼 정치인의 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반론도 나오나, 유시민은 그런 반응을 예상하며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의 팟캐스트 '알릴레오' 창설 자체가 다른 형태의 정치라고 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 "정치 현안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활동이 정치라면 정치 현안을 보도하는 언론 뉴스 앵커나 시사 예능에 나오는 정치평론가들도 모두 정치인으로 분류되어야 하느냐"고 답했다.

또한, MBN 등에 출연하는 다른 정치비평가들은 유시민이 정계 복귀를 떠밀려서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은퇴를 번복했던 일부 정치인이 그랬듯이, 자신은 별로 원하지 않더라도 지지자가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69] '정치인의 정치 생명은 자신이 결정할 것이 못된다.' 라는 논리다.

그리고 알릴레오 4화에서는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청와대 근무강도가 높아) “이빨이 나갈 정도니까” 러고 하자 유시민은 “난 절대 (청와대) 안 갈거야. 안 그래도 이빨 안 좋은데…”라고 하며 자신의 차기대선 불출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아직 대선 후보로의 꼬드김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대선 후보를 하라는 압력을 버텨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9년 2월, 한 강연에서 20대 남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간주되어 논란이 되었다. #

3. 정치, 경제 성향

3.1. 정치 성향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ㅡ 2016년 3월 17일 JTBC 썰전 1부 도중. 전원책 변호사가 유시민 작가에게 친노냐고 묻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그 저기 쓴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오늘 제가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70]
노무현 前 대통령의 퇴임 직후 봉하마을 연설 中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거나 포기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그분이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참여정부의 자산을 상속받겠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누구도 참여정부의 부채를 승계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 부채는 우리 국민참여당이 인수해서 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남긴 좋은 자산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정당과 대한민국에 넘기고, 국민참여당노무현 대통령이 빚지고 가신것만 인수해서 끝까지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시다!
그분이 불가능한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합시다!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입시다!"
국민참여당 당 대표직 수락연설 中(2011.3.19, 국민참여당 전국 당원 대회)[71]
저는 리버럴로서 당원에게 아무 권한도 주지 않는 정당체제와 싸웁니다. 국가상징물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공개적인 충성 서약을 하게 하는 국민의례에 반대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원합니다. 성차별을 제도화한 호주제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파업권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이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며, 그런 전제 위에서 불법파업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합니다.
ㅡ 2002년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 中
(전략) 로마 때도, 아테네 때도 대중들의 지지라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에요.
(중략)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지율 하락이) 저는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보고요.
ㅡ 2018년 12월 21일, 돌베개 특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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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모습

유시민은 정치적으로 친노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유시민 본인은 자신을 불온한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다.[72]

정치인 유시민을 논할 때는 친노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유시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친노계의 적통이나 다름 없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불리는 문재인, 오른팔, 왼팔인 안희정, 이광재보다도 친노라는 틀 속에서는 유시민보다 적통인 인물이 없다는 말까지 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일반적인 친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경력과 과정을 거쳤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학연, 지연, 혈연, 당적, 경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독일 유학을 했던 유시민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고, 경북 월성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유시민과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활동을 부산 지역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물론 넓게 봤을 때 같은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이 있으나 아무리 같은 영남권이라도 TK와 PK는 지역색이나 정치색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유시민이 같은 영남이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것도 아니다.[73]

노무현 당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 당원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나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노 후보를 바깥에서 도왔다. 인권 변호사 & 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자였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 운동을 했던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이, 뛰어난 능력과 신념을 가졌는데도 고졸 출신이라며 노무현을 깔보는 거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반발 심리로 '나도 당신들처럼 명문대 나왔고 학생 운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무현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됐다고도 한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전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멘트들.#
"김근태 의장이 존경스러웠던 분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김근태 의장이 따라배우고 싶으신 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분이었어요.''
ㅡ 영화 '노무현입니다' 중에서

이렇듯 뭘로 보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후에 유시민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노무현 개인에게 흠뻑 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가 호모는 아닌데 노무현이란 사람이 그냥 좋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노무현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유시민 본인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이고 심재철이나 김문수 등 여권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젊었을 적 친분을 가지고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걸 보면 정치계에선 노무현이 제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민주당의 친노계 의원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시민이라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 이유로는 비록 정당은 달라도 다른 친노계 민주당 의원들과도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74], 사적으로도 참여정부 시절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잘 유지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가 열릴 때에면 자주 민주당 소속 친노계 정치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입담을 과시하곤 한다. 이 때문에 유시민을 민주당계로 아는 사람도 제법 적지 않고, 실제로도 민주당계와 제3지대를 아우르는 광역계 친노계열로 구분된다.

유시민이 있던 진보 정당들의 강령도 노무현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그로 인해 진보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거리를 좁힌 인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사이에 끼친 영향은 크며, 친노 성향의 의원들이 이 둘 사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행동도 자주 하고 있으며 유시민도 그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ㅡ 시사IN 179호, 강금원과의 인터뷰에서

다만 유시민을 친노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의 측근 중 하나인 故 강금원 회장과 노무현이 있는데, 강금원 회장은 유시민의 행보를 비판하며 '쥐XX처럼 정치하지 마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으며, 그를 친노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다. 또한, 노무현 본인이 직접 유시민에 대해 '우리편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비슷해서 인정한 것이다'라고 잘라말했다.

여담으로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소비자' 유시민이 <한겨레>와 작별한 까닭은? 이유는 한겨레에서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인 욱한 감정으로 그런 것이고 본인 이름으로 구독하는 것은 미안하다며 아내의 이름으로 계속 구독 중이라 한다. 그랬던 그도 훗날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자 TV조선에 노무현재단에 노무현시민센터 설립을 위한 광고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친노에서의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친문으로 보아야 할 지는 복잡하지만, 최근의 행보에 따르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유시민은 문재인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이며, 위에 나왔듯이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친노 내에서 유시민이 가지는 강력한 상징성과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문재인의 인사로 보기에는 대단히 애매한 편이고, 유시민 본인은 썰전 158화에서 전원책이 지금도 친문이냐고 묻자 저는 친문이죠 라고 바로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되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대외적으론 친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고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간적인 매력이 확 땡기는 맛이 있나? 대선때 다들 고구마라 그랬잖나. 구도를 특별히 짰나? 그것도 없다. 그냥 시민들이 촛불 혁명을 일으켜서 그냥 나갔고 그냥 원래 생기신대로 어어 하다 대통령이 되었다.'란 발언을 해서 잠깐 논란이 됐는데 발언의 앞뒤 맥락을 거세해 부분만 두드러지게 보도된 게 드러났다.

3.2. 암호화폐 관련

암호화폐에 대해서 튤립 버블에 비유하는 등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특히 현 상황의 암호화폐 시장을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75].

암호화폐와 관련해서 정재승 교수 와 SNS상에서, 그리고 JTBC에서 토론을 했다. 자세한 사항은 JTBC 뉴스룸/긴급토론 -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문서 참조. 정재승 교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따로 나눌 수 없다는 의견인 반면, 유시민은 둘을 따로 나누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언을 하였다.

2018년 1월 29일 암호화폐로 유시민 작가의 책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 ‘유시민 페이(RSMPAY)’가 등장했다. 유 작가는 서적판매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트에서는 유 작가가 직접 쓴 책 15권과 그의 추천도서 34권을 살 수 있다. '유시민 페이' 사이트 강 대표는 “오늘 오전 11시에 유시민 작가에게 직접 메일이 왔다”며 “유 작가가 자기 책을 파는 이벤트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15일 (RSMPAY)유시민이 거부하므로 (RSMPAY)는 유시민페이가 아니게되버렸고 유시민 관련 책이 사라진걸로 보인다.

3.3. 정치, 경제 관련 어록

정치란 때로는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 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노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죠.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칙 중에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 이게 제 소신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은 상태에서, 뇌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할때 이루어둔 업적을 배경으로 얻은 지위를 가지고 그 사람, 과거에 그 지위를 획득할 당시의 능력있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에요. 20대, 30대, 40대 때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이, 학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뇌세포가 엄청 많이 돼갖고, 65, 66, 67, 68 돼가지고, 그 때, 잘 나갈 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때의 지위를 이용해서 말을 하는데, 그것은 20여 년 전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말을 하는 겁니다. 뇌세포의 일치 정도가 몇 %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ㅡ 2004년 11월 3일 중앙대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초청 강연 中 #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미움을 사는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76]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를 다 합쳐봐야 18조 5천억 원밖에 안 됐어요.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했다고요. 그러면서도 보육비 지원도 늘리고, 기초 연금도 도입하고, 장기 요양 보험제도 도입하고, 건강 보험도 혜택을 많이 늘렸어요. 그러면서도 18조 5천억 원밖에 재정 적자가 안 났어요. 그게 정부가 적자를 좀 보는 건 괜찮거든요. 왜냐하면 전체 GDP중에서 1~2%의 적자를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1억 연봉 버는 사람이 백만 원 정도 빚진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GDP에 1천조 정도 넘었으니까 그 당시엔 한 십조 정도 빚지는 것은 5년 정도 큰 문제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5년간 국가 부채 중에 어떤 것은 돈을 빌려서 산 것도 있기 때문에, 금융성 채무는 또 달라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거'요. 우리가 IMF때 은행들 살리려고 정부 자금을 투입해서 주식을 취득하고 정상화시킨 다음에 되팔아가지고 많이 회수했잖아요. 그런 금융성 채무는 괜찮아요. 화폐 가치를 안정화시키려고 외국환 평형 채권 기금을 발행해서 거기에서 빚을 얻어서 거기서 달러를 매입해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나중에 달러 팔면 돈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다고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이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60조였어요 연평균 32~33조 원. 근데 박근혜정부 들어서 565조 원이에요, 그것도 3년간이요.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 5년 동안 25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남기게 돼요. 문제가 엄청 심각하거든요. 다음 정권 교체를 해서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면 쓸 돈이 없어요. 펑펑 다 써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다) 어따 퍼줬냐? 국민들에게 퍼준 게 아니고 재벌들한테 퍼준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감세(= 부자 감세 정책) 그걸 원위치를 안 시켰기 때문에(= 부자 증세 정책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한 번 고쳐놓으면 항구적으로 감세가 되잖아요. 그게 누적되면서 그 효과가 계속 쌓여서 연간 50조 이상의 적자 재정을 보고 있잖아요. 아주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성장률은 2%밖에 안 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잖아요. 근데 지금 2%예요.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4.11 #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을 많이 썼기 때문에 돈이 모자르는 거니까 나중에 생으로 갚아야하는 돈이에요. 그게 참여정부 5년 동안 적자성 채무가 18조 5억 원 정도였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9조 원대 정도로 추산됩니다. 4대강 사업 8조 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놨으니까 포함이 안 된 거구요. 그거까지 합치면 10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졌어요. 근데 박근혜정부는 이 추세로 가면 MB 정부를 초월하는 적자성 채무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이 돼요.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이 문제가 제기 되어서 정부가 단년도 예산안을 내는 거 말고도 5년짜리 옛날 중기 기획, 지금은 국가 재정 운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마다 향후 5년치를 예상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이걸 냈어요. 이걸 보면 U커브인데요 '첫해는 적자성 채무가 많아서 재무가 불건전하고 해마다 노력해서 줄여가서 임기 말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 이게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거와 똑같은 그림이에요. 이명박 정부 말대로 됐으면 2013년에는 균형 재정이 됐어야죠. 근데 2014년~2015년 오면서 적자성 채무가 커지기만 해서 이제 단년도에 30조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단 말이에요. 그럼 2018년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는 말인데 '그럼 2018년 되면 올라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고 마찬가지로 20~30조 원 상태의 적자 상태로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이거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쓰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써야지 5년짜리 국가 재정 운영을 엉터리로 작성해서 낸다. (중략)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유럽 연합이 경제 통합을 할 때, 통화 통합을 할 때의 기준이 국가 채무가 GDP 기준의 6%가 기준이었어요. 해마다 지는 거. 해마다 GDP 3%에 기준으로 잡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1억을 연봉을 버는 사람이 한 6천만 원 부채를 안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요. 해마다 6%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그 정도 빚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가는 부도가 안 나니까 괜찮다' 뭐, 이런 건데 제가 사실 채무 걱정을 하는 것은 '제대로 쓰면서 채무를 지는 거냐'는 문제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가 채무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문제 의식이 또 하나 있어요.

지금 내년도 예산안이 통합 재정 기준 기금까지 합쳐서 376조 원인데 복지 분야가 3%를 넘었다고 정부에서 엄청 이야기 하잖아요. 내년도 보건복지의 고용의 예산액이 통합 기준으로 기금 포함해서 155조 원이에요. 근데 이게 금년도보다 얼마 늘어났냐하면 9조 천억 원 정도 늘어난 거예요. 이 9조 천억 원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서 지출액이 많아지는 거 하나하고, 기초 연금 도입해서 금년도에 7월 달부터 줬기 때문에 1년 내내 주는 것에 3조 원 주는 것이 거의 다예요. 나머지는 늘어난 게 아주 미미합니다. 보육이라든가, 학교 무상교육이라든가, 실업자 지원이라든가 여기선 미미한 증가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2014년 예산안에서 각 부처별로 조금씩 조금씩 늘린 거예요.

특별히 늘었거나 줄은 게 없고 SOC[77] 건설 예산안은 7천억 늘었고요, 일반 지방 행정은 2조 원 늘었고요. 다 비슷비슷 늘어난 거예요. 그럼 재정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는 거냐? 이건 또 아니라는 거예요. 김무성 대표가 '부자 감세라는 건 야당의 선동'이라 이야기하는데 (중략) 법인세, 소득세,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 감세시켜준 게 이명박 정부 때 감세해준 게 지금까지 누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수(국민에게서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가, 지금 내년도에 법인세가 0.1%밖에 안 늘어나는 걸로 잡히는데 그러니까 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세무 행정의 기본 원리는 '능력에 따라 납세'인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세금을 안 걷고 한쪽으로 담배며 상업용 자동차며 무슨 주민세며 이런 걸 인상해서 돈을 걷는다는 이런 발상 자체 제가 볼 때에는 빚을 30조 원 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건전 예산이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4.09.22#
2005년도인가 국회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했는데요. 국회 시정연설 중에 보건 의료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가 1조 원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걸 근거로 해서 '의료 산업 선진화 위원회'라는 걸 국정 과정 위원회로 만들어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하고, 대통령 보고에도 몇 차례 하고 그랬어요. 그게 민간 합동 위원회인데 정보 쪽 간사[78]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고, 그리고 민간에도 간사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 번 회의를 했는데 제가 장관 되자마자 1조 원이라는 데이터가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봤죠. 그때는 기획재정부가 아니고 재경부(재정경제부)에서 나온 데이터래요. 그래서 제가 재경부 국장에게 물어봤죠. 회의 중에 제가 '이거 재경부에서 데이터를 냈다고 그랬는데 출처를 밝혀보시오'라고. 연구보고서에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만든 보고서냐 제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 회의 때 보고 드리겠다고 해서 한 달 후 다음 회의 때 또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더니 민간 병원의 연구보고서에 있는 거래요. 그래서 '민간 병원 어디서?' 물어봤더니 미즈메디 병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래요.

그러면 미즈메디의 연구보고서라면 틀림없이 정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이면 우리 외환 관련 자료를 못 가지고 있지 않냐, 틀림없이 한국은행 자료나 참고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 연구보고서에는 이 1조 원이라는 산출 내역이 어떻게 되어있고 산출 내역이 되는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온 걸로 밝혀졌더냐 물어봤더니 그거까진 미처 확인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열을 냈죠. 아니 이런 불분명한 데이터를 대통령 시정 연설에 넣고 이렇게 회의 자리에 맨날 넣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그 당시 산자부(산업자원부) 장관하던 정태익, 정세균 장관이 (저랑) 같이 화를 벌컥내면서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해놓으면 정부 공문서 전체가 불신 받지 않냐,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제가 직접 조사했죠. 한국은행과 협조해서 그 유학생이나 상사주재원 교민 말고, 치료를 목적으로 출국한 사람 환전 기록을 데이터로 조사해서 해 봤더니 적자 폭이 56억 원이라고. 1년 동안이요. 그래서 56억 원이면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컨소시엄을 민간 합동으로 만들고 그래서 바로 흑자로 전환시켰죠. 대통령이 나중에 보고를 받고 징계하라고 했어요, 책임자를.

근데 재경부에서 징계 안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관료들이 다 짜고 하는 거예요. 노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 좋은 분이잖아요. 정치적으로 싫어하더라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런 (머리 좋은) 대통령도 데이터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정 연설 와서도 읽는 거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에, 이건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예요. 일국의 대통령의 담화문에 이런 게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만 이렇게 했어요 (중략) 밥 먹고 취재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나 학자들 있잖아.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1.18 #
묘한 기사들이 나왔더라고요. '보험업계 걱정 지금 손보자'라든가. 생보사(생명보험 회사)에서 그동안에 여러 가지 미끼 상품으로 종신 연금을 많이 팔았거든요. 근데 소득대체율(소득이 없을 때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금전의 비율)은 40%~50%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도 올려야 되고 안 올릴 순 없어요. 보험료를 올리게 되면 민간 가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공적 연금 노후 소득 보장율이 높아지니까 사적 연금이 줄어들 거라고 수요가.

이것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엄청 로비를 하는 건 불보듯 뻔한 거고 (중략) 국민연금의 문제점의 하나가 가입하면 무조건 이익을 봐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봐요. 나중에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도 국민연금은 다른 민간 보험 상품보다 수익율이 높아요. 왜? 단순한 이유예요. 우선 이윤을 안 남겨요.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없고, 경영진이 수십억 연봉 가져가는 것도 없고, 관리비도 국가에서 다 대요. 국민연금 기금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 기여금, 이거는 고대로 기금 운영을 해서 돌려주기 때문에 민간 보험과 견줄 수 없어요. 그럼 나중에 부가식으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해서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이 국민연금의 수익율은 고소득 계층에게 있어서도 민간 보험보다 무조건 유리하고 중간 소득 이하 계층들은 수익율이 더 높고, 거기다가 비용 근로자는 회사에서 반을 내줘, 무조건 이익인 거예요.

그러니까 중산층 강남3구 중산층 주부들이, 임의 가입자들이 많다니까 이게 최고의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꼭 가입할 필요가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40만 원, 50만 원 막 내서 가입하는 거야. 그래서 이게 없는 사람만 몰라서, '나는 국민연금 싫어', '나는 손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 이 점이 좀 안타깝고요, 두 번째는 합의 기구 구성 문제인데, 저는 이거 야당이 50%를 굳이 명시 안 한다고 해도 된다고 봐요, 그냥 '일원 정도로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포함하여 배제하지 않는 걸로 포함하여', 뭐 여부 못박기 싫으면, '50% 소득대체율 인상을 할지 여부를 포함하여' 그렇게 (법안 문구를) 합의를 보면 청와대에서 뭔 말 못 해요. 50%로 못박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국회와 민간이 다참여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여러 활동을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하면 될 거 아니야. 이거는 서로 간의 정치 공방을 주고 받고,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건 그냥 돈 계산하고 따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이런 거는 국회에서 구성을 해서 몇십 년을 하는 거야. 계속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변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함구적으로 국회의장 산하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놓고 국회 정당이 참여하고, 민간 전문가도, 가입자 단체, 이익자 단체, 관련자 단체 다 참가해서 논의를 정권이 바뀌건 국회가 선거를 새로하든 상관 없이 상시적으로, 인적 구성은 바뀌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돼요 근데 뭘 대통령이 뭐 공무원 연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이야기하지 마라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5.05.11#
어떤 국민 경제를 파멸에 빠뜨리는 가장 빠른 길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란 말이 있어요. 이게 케인즈가 한 말인데요. 한 국민 경제를 타락시키고 싶으면 화폐를 타락시키면 돼요. 그러면 모든 거래 관계가 다 불신에 휩싸이고 저절로 경제가 밑으로 꼬라박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는 제일 빠른 길을 저는 언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국론 분열이라는 용어 있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부터 아주 지겹도록 들었고요, 제가 20대 때는 저나 노 대표님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을 가리켜서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 언론, 또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좌경 불순 세력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지금 "국민이 분열되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도 모아져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가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찾기 위해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국론 분열은 문제다, 국민을 통합해야한다, 이런 것이 적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 되죠.
ㅡ 특집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7.03.26
2002년 7월달에 그때 마포 제 작업실에 오셨을 때 저한테 물어봤었거든요.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아, 오지요. 100% 오죠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그랬더니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내가 그때 그랬어요.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때 또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너무 냉정하게 말을 했다는 후회를 나중에 좀 했는데. 근데 이제 그렇게 말씀드려도 하나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좀 앞서 나간 것 같아요.

앞서 나갔다는 표현보다 노무현이라는 이 사람의 존재 그 자체, 그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한 인간, 정치인으로서의. 이게 받아들일 수 없는 풍토예요 우리가.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그 캐릭터로는. 근데 됐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던 거예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고, 마치 좋은 결과를 못 낸 것 같은 그런 시선을 받는 거고.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는 면도 많아요, 왜 저러는지. 그래서 노 대통령 자신이 너무 앞서간 거는 아니에요. 그분은 대중과 함께 가려고 계속 노력했던 분이고. 근데 그분이 가직 있는 모든것의 총합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 이 존재 그 자체가 너무 앞서 있는 존재였어요 제 생각에는.
ㅡ 2017년 2월 9일 노무현재단의 인터뷰 中

4. 방송 활동

4.1. 과거 출연작

5. 저서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아니면 기본으로 10만 부는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경제 관련 저서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꽤 유명하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집필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집필했고, 201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의 NLL대화록 관련하여 중립적인 시선에서 기술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 있다.

2014년에는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서술한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출판했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에 대한 책이라고. 글쓰기 특강의 경우에는 다음 크라우드 펀딩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해 먼저 진행했다.

자녀의 대입 논술도 스스로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가르쳐서야 하느냐고 투덜댔지만, 자녀 유수진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80] 중학교 때까지 축구에만 관심이 있어 성적이 별로였던 아들도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전교 1등이라고...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밝히길 '너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호나우두나 메시가 될 재능은 아버지가 물려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꼭 축구선수가 되는 것만이 취미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영국 유학을 가서 스포츠 평론가가 될 수도 있다' 라고 차근차근 달랬다고 한다.

목록
  • 『아침으로 가는 길』, 학민사, 1986.
  •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1988.
  • 공저, 『기억하는 자의 광주』, 돌베개,1990.
  •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1992.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푸른나무,1994.
  • 『97년 게임의 법칙』, 돌베개, 1997.
  • 『WHY NOT?: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개마고원, 2000.
  • 강준만, 유시민 공저, 『지역 감정 예찬론』, 개마고원, 2000.
  •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돌베개, 2002.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개마고원, 2002.
  • 『대한민국 개조론』, 돌베개, 2007.
  •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
  • 『청춘의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09.[81]
  • 『운명이다』, 돌베개, 2010.[82]
  •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2011.[83]
  •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의길, 2013.
  •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돌베개, 2013.
  •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2014.
  • 공저, 『기억의 방법』, 도모북스, 2014.
  • 공저, 『생각해봤어?』, 웅진지식하우스, 2015.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길, 2015.
  • 『유시민의 논술 특강』, 생각의길, 2015.
  • 공저,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쉼, 2016.
  • 유시민, 정훈이 공저, 『표현의 기술』, 생각의길, 2016.
  • 『유시민의 공감필법』, 창비, 2016.
  • 『국가란 무엇인가 2017』, 돌베개, 2017.
  •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돌베개, 2017.
  • 『청춘의 독서 (recover edition)』, 웅진지식하우스, 2017.
  • 역사의 역사』, 돌베개, 2018.

여담으로 돌베개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많은데, 돌베개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돌베개출판사는 이해찬 전 총리가 설립한 회사로, 유시민은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3 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고양 덕양 갑) 개혁국민정당 34,833 (43.3%) 당선 (1위) [84]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덕양 갑) 열린우리당 40,288 (47.6%)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수성 을) 무소속 23,005 (32.6%) 낙선 (2위)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국민참여당 2,079,892 (47.6%) 낙선 (2위) [85]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통합진보당 2,198,082 (10.3%) 낙선 (12번) [86]

7. 소속 정당

8. 논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시민/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여담

  • 진보 논객의 대표적인 인사로 유명하다. 위의 영상을 시청한다면 그의 뛰어난 토론 실력을 볼 수 있다.
  • 양조위를 묘하게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진이 여럿 있다. 김국진하고도 은근히 닮았다. 한국계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슨과도 닮았다. #
  • 고양시에 거주하다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잠시 대구로 내려갔으나, 다시 고양시로 돌아왔다. 2012년경까지는 화정1동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이나[87], 현재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한때 같은 당 소속이었던 심상정은 고양시 신원동(삼송)에 거주한다고 한다.
  • 친노의 대명사인 만큼 장관 업무 수행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장관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임명 과정에서 논란이 많아서 다른 부서에서 그를 무시할까 봐 유시민이 업무차 청와대를 들르면 별일이 없는데도 단둘이서 차를 마시고는 했다고. 그럼 유시민 장관이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더라!라는 소문이 쫙 퍼져서 재경부 등 돈에 민감한 부서들이 둘이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예의주시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힘이 실렸다고 한다.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무시를 당하는 유시민에게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별 이야기를 한 건 아니고 남는 시간에 단둘이서 차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88]
  • 시티즌 유라는 별명이 꽤 유명하다. 유래는 당연히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과 성씨 유를 합친 것.
  • 민주 & 진보 진영에 속한 논객들 중에서 거의 끝판왕급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언변이 뛰어나다. 이 정도의 언변을 가진 인물은 진중권이나 노회찬 정도 밖에 없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그의 달변에 대해 "말을 길게 하는데도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비문이 없다. 듣다보면 (태클걸 여지가 없어서) 재수없다"고 평했다. 그만큼 토론에서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말한다는 것.[89] 다만 직선적인 언변에서는 노회찬이 조금 더 우위에 선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 여담으로 노회찬의 언변은 상황을 비유법으로 묘사하면서도 항상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그 때문인지 유시민, 노회찬과 박형준, 나경원이 출연했던 MBC 100분토론에서 예전부터 서로를 인정하던 박형준과 유시민은 토론 상에서 승부가 나지 않다시피 치열했지만, 노회찬은 그 박형준조차 잠시 쩔쩔매게 한 적이 있다. 달변가라고 평가받는 이들도 문장이 길어지고 많아지면 비문이 많아지게 마련인데, 유시민은 그런 부분에서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명확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에 기인한 전달력 또한 당대의 정치인과 논객들 중 단연 으뜸으로 꼽을만한 또다른 강점으로, 그의 논리적 정합성 넘치는 언변을 느끼고 싶다면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1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튜브에 유시민 토론 영상을 검색해보자.
  •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시절때만 해도 모가 난 성격이니 인성이 덜 됐다느니 하는 악평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고, 여야를 막론하고 동료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꼽혔었다. 오죽하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유시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이를 강력히 반대해서 이런 당의 의견을 수렴한 이해찬 국무총리도 유시민 장관 임명에 대해 대놓고 반대하는 바람에 노 대통령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더민주 소속 김영춘 의원은 "저토록 옳은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싸가지없이 할까"라면서 대놓고 디스했던 적이 있었다. 노회찬 의원은 유시민에 대해 "유시민은 100미터 미인이다. 멀리서 보는 대중들은 좋아하지만, 정작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 역시 유시민을 여러차례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훗날 전원책썰전에서 말하길, "예전엔 바른 말도 싸가지없게 했는데 지금은 나쁜 말도 품격있게 한다"며 예전에 비하면 온화해지고 예의를 갖추게 된 유시민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 알쓸신잡으로 유시민과 많이 지내본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tvN 예능프로그램 '우리가 남이가'에서 다른 멤버들이 유시민에 대해 질문하자 "인간미가 전혀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며 시큰둥하게 답하기도 했다.
  • 그런데 보수쪽 정치인인 강용석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 중에 가장 실력있고 콘텐츠가 풍부한 인물이 유시민이고, 자기도 많이 벤치마킹하고 싶다며 유시민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근데 이것은 인성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지식과 재능에 대한 평가인데[90], 유시민이 똑똑하고 실력있다는 건 그를 싫어하는 정치인들도 다 인정하는 바이다.
  • 유시민도 자신도 좋아하는 정치인과 싫어하는 정치인이 있는데, 그동안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노무현김영삼은 좋아하고, 이재명은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김대중의 경우 97년 대선 당시에는 선호하지 않았지만 후에 정계에서 활동하며 호의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 특히 이재명에 대해선 예전부터 혐오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해왔는데, 2017년 1월 초에 방영된 JTBC ‘신년특집 토론’에서 대기실에서와 토론 시작 전 잡담 등을 그대로 담은 미방 특별영상을 보면 유시민이 이재명을 보자마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요즘 좀 잘 나간다고 잘난척 하지 마라. 언제 갑자기 고꾸라질지 모른다"며 쏘아붙이기도 했다.[91] 또 본 토론에서도 내내 이재명에 대해 공격의 화살을 쏘아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재명을 친노라고 정의내리거나 범진보란 범위 내에선 누가 대통령이 되도 비슷하단 취지의 발언을 보면 인간적인 호오를 떠나 진영 정치로선 받아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정부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한나라당 및 친이계 인물 중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들과도 토론을 벌였는데, 그 상대가 김문수, 나경원과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이동관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이끌면서 김문수, 나경원은 완전히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이동관의 경우 그나마 어느 정도 토론답게 이끌어 갔으나 그 또한 유시민에게 패배했다. 그 이후에도 유시민이 한 번 나경원을 조롱하는 투로 나경원 의원 사용 설명서강의까지 하면서 그 주어는 없다를 인용했다.#
  • 유시민이 출연하는 방송이나 팟캐스트에서 유승민 얘기를 할 때, 다른 출연자나 진행자가 발음을 어설프게 해서 유승민을 유시민에 가깝게 부르면 유시민이 "왜 저한테 그래요"라고 농담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친척 간이냐고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이에 관한 하소연(?)이 재미있다. "나는 버들 유씨()고, 그 사람은 유비 할 때 유씨(劉, 묘금도 류)예요."[92] 두 사람은 대륜중-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 사이다. 유시민은 유승민이 대학교 선배인 줄만 알았지[93] 중학교 선배인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중학교 동문회에서 유승민을 보게 되면서 중학교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썰전에서 유시민이 "유승민 의원은 21세기 합리적 보수 성향이다"라고 하자, 전원책이 유시민에게 "유 장관이랑 유승민 의원이랑 같은 과 아닙니까?"고 했고, 유시민이 어이없어하면서 "무슨 소리세요? 우리는 전혀 (정치적으로) 같은 과 아니에요."라고 반발했다가, "물론 대학은 같은 '과' 나왔는데... (정치 성향은) 달라요."라고 하고 넘어갔다. 장관 시절 국정감사에서 만난 두 사람

2019년 5월 알릴레오에서 한국당에 복귀하려고 명분 쌓고 있다는 말을 듣는 유승민을 보면서 어차피 정계 복귀한다는 말을 듣는 자신과 겹쳐 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기사
  • 유시민이 보수정당 계열 전현직 정치인들 중에서 자질이 뛰어나다고 인정한 토론 상대는 몇 없는데, 바로 유승민[94]박형준[95]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명박 정부 중반에 남원정의 일원인 원희룡 現 제주도지사와도 토론을 벌인 바 있는데, 원희룡 의원님 같은 인물이 한나라당 대표라면은 한나라당 수준이 훨씬 올라갔을 것이라고 함과 동시에 보수쪽에서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분이라고 원희룡을 칭찬한 바 있다.#
  •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도 몇 번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사석에서는 의외로 상당히 친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96] 유시민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남경필의 중도실용적이면서 사교적인 성격이 의외로 서로 잘 맞는 듯하다.
  •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 당시, 전여옥과 치열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적 미숙아라고 하자 전여옥이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큰 다음 다시 나와야 한다며 맞받아치며 인큐베이터 발언을 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에 유시민은 전여옥을 노려보며, 매우 비열한 인용방식이라고 맞받아쳤다. 토론 자체는 서로 막상막하로 치열했다.[97][98]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로 인해 자살하였던 지라 검찰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다. 썰전 184화에서 김형준 부장검사에 대해 다룰 때 전원책이 이런 비리검사들은 검사하지 말고 밤의 조직의 행동대장이 딱이라고 말하자 유시민은 그 조직이랑 그 조직이 닮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리고 236화에서 법원과 검찰 간의 영장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야말로 완전히 검찰을 맹폭하며 깠다.
  • 정계 은퇴를 할 때 가장 좋아했던 여인이 아내와 어머니라고 한다. 딸은 자신이 뭘 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 취미는 낚시라고 한다. 물고기가 낚일 때까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아 그게 좋다고 한다.
  •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부록편이라 할 수 있는 '정치카페 테라스'에 출연했을 때 친구인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낚시를 다니기도 했지만 낚시는 안 하고 술만 마셔서 애먹이는 바람에 지금은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고, 파주에 있는 계곡 저수지에 낚시를 하러 갔을 땐 너무 낚시가 잘 돼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을 초대했지만 정작 그날은 낚시가 전혀 안 되는 바람에 미치는 줄 알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 그리고 낚시터를 고를 때 물고기가 잘 낚이는 곳이냐를 많이 따지지만, 맛집이 있는가도 그만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카페 테라스에서 자신이 다녀본 맛집들도 함께 소개했으며 그중에서 진도군에서 먹은 간재미 회무침을 최고로 꼽았다. 알쓸신잡 예고편에서는 마찬가지로 낚시를 즐기는 황교익과 30분간 주구장창 낚시토크를 해서 주변사람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도 했다.
  • 차이나는 클라스 1회에서 밝히길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내라고 한다.
  • 팬클럽 시민광장에서는 '첨맘'님이라고 불린다. 팬카페 시절 만들었던 유시민 본인의 아이디로 호칭하는 것. '처음마음初心'을 빠르게 발음한 '첨맘'이 당시 닉네임. 참고로, 국민참여당에서는 오프라인 토론회 때 당원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하는 것이 디폴트였다. 이는 개혁국민정당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추정된다.
  • NLPDR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의 영향력이 강하던 80년대 운동권 출신답지 않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인 노선을 견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 5월에 발간한 '1997 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영남과 군부의 맹목적 비토를 당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을 확률보다 낮다.", "조순 씨같이 이미지가 좋은 제3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고 신한국당 측이 헛발질을 하지 않는 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인데 그해 대통령 여론 조사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는 김종필과 DJP연합의 효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도 레드 콤플렉스를 완화하면서 줄곳 선두를 유지하다 대세론까지 나왔고 이회창 후보의 병풍으로 싱겁게 끝나나했다가, 막판 영남권 표 결집과 북풍과 색깔론이 나오며 40.3%의 득표율을 얻어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말년에 권노갑 등 측근비리와 전정권 김현철의 선례가 있음에도 대통령 아들 3형제 홍삼 트리오 비리에 연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김대중은 더 이상 이 나라 대통령도 아니며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이고, 대통령 자리에 있지만 실제 통치권은 비서들이 가지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하야했다. 부슨 부귀영화에 애국하겠다고 청와대에 있냐.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건 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며 이회창 총재가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김대중은 분수를 알아라. 자신이 법적으로 대통령이지만 정치적으론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인신공격을 포함한 모욕을 퍼부었다. 훗날 유시민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되고나서 한 말이지만, 김대중이 유시민을 비서로 채용하려 제안했던 것을 보면 호의를 배신한 셈. 그러나 정계에 입문하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김대중 부채 승계론을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출간한 저서인 『청춘의 독서』와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고, 2009년 8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나의 첫 대통령, 사랑했습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기기도 했다. 2010년엔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여 "시사 평론할 때 몇 차례 비판했던 것 늘 마음에 걸렸다. 사과 말씀 드리고 싶었다"면서 "정부에 있어보니 김대중 대통령님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뚫고 거기까지 이루셨는지 알 것 같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 유시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에 흔치 않은 자유주의 계열 지식인이지만, 그런 포지션에 있던 지식인들 중에는 유일하게 국회의원(2선)과 장관, 당대표(2회)를 지낸 전직 정치인이다. 이러한 경력은 여타 진보 & 자유주의 진영 참석자들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요소이며, 토론회 등을 보면 그가 이러한 경력들을 활용하여 주제의 맥을 짚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 2016년 1월 25일 JTBC비정상회담에 패널로 출연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계 은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국민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3번 확인(낙선)했고 다시 정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작가로 사는 게 더 좋다고. 이 와중에 기욤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던진 자기 포장에 세 차례 실패한 거 아니냐는 돌직구떡실신당한 건 덤. 또 출연자들에게 언젠가부터 너무 한국에 좋은 말만 한다며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하라고 직구를 날리기도. 한편 독일 유학파로서 다니엘과 독일어 프리 토킹을 했는데, 다니엘이 진중권 교수보다 발음이 좋다고 평가할 정도로 녹슬지 않은 독일어 실력을 보여줬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봉하마을 귀향 연설[99]에도 등장한다. 이때 유시민을 아끼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100]
  • 키가 168cm 정도였던 노무현보다 약간 큰 것을 보면 키는 170cm 초중반인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1월 21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쯔위 사태의 시발점 격인 황안이라는 대만 가수를 두고 "이 친구는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북에 있었더라면 보위부할 친구야"라면서 비판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땅은 넓은데 속은 좁다고 비판했다. 스포츠조선 썰전, # 이 밖에도 중국에 대해서 아예 일당독재라고 의견을 밝히는가 하면스포츠한국 썰전, #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라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국 경제 의존도 높고 한중관계가 험악해진다고 반대 입장을 주장했다. (썰전 201회)
  • 2016년 1월 28일에 방영된 썰전에서 검찰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계좌를 추적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들이 집권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MB는 화를 내면 안 된다"며 날선 반응을 드러냈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줄 논평을 내놓을 때에도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이 자살한 이유는 차명계좌 발견 때문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는데, 평소에는 언성을 높이지 않던 유시민이 그 말을 듣고는 언성을 크게 높이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조현오 파면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 선거철에 의정부시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의정부시 시민들 앞에서 '구리 시민 여러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워낙 이동이 잦아서 혼동했었다고. 이는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흔히 하는 실수라 별로 특별한 건 아니다.
  • 극우 성향의 인디 만화가 최지룡의 작품에 그를 풍자한 듯한 인물이 나온 적이 있다. 축생도 외전에 국민연금을 풍자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민 연금을 내라고 독촉하는 정부 관료로...
  • 통진당 사태 당시 통진당 당권파 중 일부는 좌파 조직원들에게 유시민은 CIA의 사주를 받아서 통진당을 파괴시키려 했다라고 교육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유시민은 극우 인사들에겐 종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극우에게는 종북이라고 비판받고 극좌에게는 미국의 졸개로 비판받는다...
  • 병역은 제7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를 마쳤다. 병장 만기제대했으며, 심지어 GOP에서 철책 근무까지 했다고. 이 점을 이용해서 경기도지사 유세 때 미필자 고위층들을 신랄히 깠다. 이 군 시절 선거 때 '공개 투표'가 있었는데, 간부가 보는 앞에서 찍을 번호가 암묵적으로 다 정해진 상황인데 그냥 반대표를 찍었다고 한다. 간부가 '너 어쩌려고 이러느냐'며 혀를 내둘렀다고.
  • 이명박 정부 시절, 심상정을 찾아가서[101] 심상정에게 이명박의 실책을 비난한 다음, MB정부의 심판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심상정은 이를 수락하는 동시에 유시민과 의기투합했다. 한때는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찾아오기도 하는 성의까지 보였으나, 그 이후로 심상정은 이명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 심상정이 독점하다시피 절대 우세를 점하는 고양 갑 지역은 한 때 유시민이 2선으로 연임하고 있는 지역구였다. 참고로 유시민은 한때 심상정과 같은 정의당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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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외로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통진당 댄스 영상은 당의 행보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너무나 깨는 가발과 의상 때문에 제대로 흑역사 취급.[102] 마리텔에 출연했을 때 팟수들이 계속 관련 드립을 치자 김구라가 이에 대해 캐물었는데 유시민은 "그거 흑역사야."라고 대답했다.
  • 썰전 출연 이후로 자연인 유시민의 모습이 많이 보여진다. 대중문화 전반에 웬만한 젊은층 이상으로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은 모습이다. 인기있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트와이스, 여자친구 등 걸그룹과 그들의 히트곡까지 줄줄 꿰고 있어서 이 분은 도대체 모르는 게 뭐지 싶을 정도다. 재밌게도 방송이 직업인 김구라보다도 잘 알아서, 되려 그것도 모르냐며 유시민이 김구라를 타박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 재산은 2005년 기준으로 9천 200만 원[103], 2012년 기준으로 4억 2,100만원[104]이다.
  • 2011년 11월 100분 토론에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토론이 레전드 토론으로 회자되는 듯 하다.유튜브 영상 썰전에서도 원희룡을 언급한 적이 있었고, 원희룡도 유시민에 대해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라고 언급했었다.
  • 2017년 3월 2일 보해양조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보해양조 측에서 부탁을 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호기심이 생겼다고. 그러나 정작 유시민의 이사회 참석율은 30퍼센트에 남짓하다.
  • 썰전에서 역선택에 대해 언급하면서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OB 대신 롯데를 선택했다가 역으로 털린 것을 언급했는데, 이를 보면 아무래도 야구 팬인듯.[105]
  • 잘 부각이 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당적 변경 이력이 은근히 화려하다. 개혁국민정당 → 열린우리당 → 무소속 → 국민참여당 → 통합진보당 탈당 후 진보정의당으로 자의적으로 당적을 바꾼 횟수가 4회나 된다.[106]
  • 박근혜 대통령 탄핵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그날 밤에 열린 JTBC 특집토론에서 상대방 패널이 이 사태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문제해결을 위해 조기대선과 함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자 그에 반발하여 "현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헌법을 어긴 대통령의 문제"라고 흥분해 맞받아치며 "헌법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주먹쥐고 나와서 억울해 했을 거다"라고 일갈했다. 영상 애당초 개헌이란 문제가 2개월 만에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팩트체크] 개헌, 정말로 '두 달 반'?
  • 손석희JTBC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인 2016년부터 계속 토론 때마다 등장한다. 지금 썰전하는 것도 모자라서 2016년 총선, 탄핵 소추 통과, 신년 토론, 탄핵 인용, 2017년 대선까지 계속 나와서 앉게 했는데, 2017년 대선 개표방송 때는 6시간 내내 앉아있었다고. 화장실도 못갔다고 한다.[107]
  • 좋아하는 가수로는 심수봉을 들었다. 대학가요제 2회에 "그때 그 사람"을 듣고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고... 그러나 음악 등 예술에 대해 별 관심이나 애정은 없는 듯 하다. 알쓸신잡에서도 자기는 역사같이 사실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지, 시 같은 문학작품들에는 감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로 꼽은 박경리의 토지도[108] 역사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적인 소설이다.
  • 썰전 214회에서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전원책 변호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정황이 있다"는 말에 "있죠"라며 동의하였다. 또한 "입사 과정이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는 팩트가 있고"라는 언급을 하며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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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극화되어 나온 적이 있다. 배우는 김수근.[109][110] 12회에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의 서울대 3학년 학생으로 나와 심재철 등 다른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 전두환과 유신 잔당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참고로 이 때 심재철 역은 배우 김용희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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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정권 시절 성균관대 출신 인사가 많다고 성시경 인사라는 말을 썼듯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유·시·민 인사가 많다고 공격하는 모습이나 언론 플레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유·시·민은 유시민 본인이 아니라 유명대학, 시민단체, 민주당 출신의 약자이다.
  • 아폴로 계획 음모론을 꽤 강하게 믿고 있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2015년 6월 23일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정재승, 진중권, 노회찬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아폴로가 달에서 어떻게 지구로 올 수 있냐. 발사대가 안보이는데.", 즉 지구에서 보낼땐 거대한 발사대가 존재하고 새턴 로켓이라는 거대한 추진체를 이용해 날아가는데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하냐고 주장하며 홀로 키배를 벌이기도 했다. 중력이 1/6이니까 달에도 새턴 5의 1/6만한 로켓으로 발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매우 단순한 생각이지만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별도의 가벼운 달 착륙선을 써서 착륙했으며, 로켓의 원리상 크기가 커지고 연료를 많이 실을수록 그 연료를 나르기 위한 연료가 추가로 필요해져서 로켓이 지수함수적으로 커지고 비효율적이 된다는 로켓공학의 가장 기본적 원리인 치올콥스키 로켓 방정식도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발언일 뿐이다.
게다가 지구에서 달로 가는 것과 달에서 지구로 가는 것은 당연히 난이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구에는 대기가 있지만 달에는 대기가 없다! 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은 공기 저항을 고스란히 받으며 올라가서 달에 도착하면 감속에 쓸 연료까지 필요하지만 달에서 쏘는 로켓은 발사시 공기저항 그런 거 없고 지구에 도착하면 대기와의 마찰로 연료 없이 감속하게 된다. 그냥 반미기질이 강해서 미국이 이런 일을 그 시대에 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연장선으로 보인다. 의심조차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부족한, 단순히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서 의심하는게 아닌 그저 미국이 했으니까 못믿겠다는 의심이다. 달 착륙을 의심하는데 우주에 먼저 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의심조차 안한다는걸 생각해보자. 이후 알쓸신잡 시즌1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 알쓸신잡 시즌 2 제작발표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역사 관련 틀린 말을 많이 한다." "방송에 나가는 것은 그중 고르고 고른 것이다' 라는 나영석 PD의 폭로가 있었다(...) # 다만 이 부분은 기사가 곡해한 것으로, 실제 영상에서 나영석 PD가 말한 취지는 구체적인 년도나 시간 흐름 등을 줄줄이 읊는데, 조사를 해보면 전후 1,2년씩 틀리는 등 디테일에서 약간씩 오류가 있다는 말이지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이 말 자체가 나PD가 반쯤은 농담삼아서 했던 말에 가깝다. 해당 기사의 댓글 역시 어그로성 기사라며 기자를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앞뒤 짜른 왜곡기사가 어지간히 퍼진 모양인지, 2018년 기준으로 아직도 유시민에 대해 이 기사를 근거로 하는 비판성 서술이 달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유시민 작가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의 이야기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고[111], 그 자신도 거듭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주는 역할"이라고 했지 100% 옳다 따위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하지도 않은 발언을 왜곡해서 기사를 쓰거나, 이렇게 잘못된 기사를 근거로 들고와 비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 거꾸로 쓰는 세계사 등 유시민이 저술한 역사 관련 교양도서가 학계 기준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낡고 논파된 사관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역사블로거 초록불의 유시민 비판. 이는 유시민의 본 전공이 경제학인 점과 학생운동에 참가한 이력 때문에 당시 운동권에서 유행하던 역사관으로 역사를 공부했기 떄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유시민 본인도 썰전을 통해 "(거꾸로 쓰는 세계사는) 하도 신통찮아서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라며 언급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이후 유시민이 저술한 역사서들이 이 비판점을 극복하지 못한 게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역덕 사이의 평가가 갈리는 편.
* 2018년에 돌베개에서 낸 역사의 역사인터파크 도서 이용자 투표로 2018년 '올해의 책' 1위에 꼽혔다.#
* 명성과 분석력과 비교하면 막상 예상을 적중시킨 경우는 많지 않다. 카운터파트 전원책이 전무당, 전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것에 비하면 적중률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으로, 썰전에서 전원책이 목에 힘을 주고 유시민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밈을 민 적이 있을 정도. 사후 분석 뛰어나다는 점에서 증권사의 주식 시장 분석을 연상시킨다. 일부 팬들은 애정을 담아 유펠레라고도 부른다(...)
* 2018년 연말 들어서는 정두언 전 의원이 계속 유시민 복귀설을 떠들어서 툭하면 유시민 복귀하냐, 마냐로 말이 많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 본인은 정치에 복귀하는건 절대 사양이라며 거부하고 있고 민주당이나 정의당에서도 어떠한 입장이나 변화도 없는데 유시민 작가와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정치적 입장에서는 극과 극일 정두언 전 의원이 왜 저러냐며 이해가 되지 않다는 반응들이 많다. 2019년 초반 기준으로 유시민이 정계 복귀를 계속 거부 하는데도,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대선주자로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친이재명계의 차선책으로 유시민을 선택한게 아니냔 입장도 있는데, 실제로 오마이뉴스에서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이 전부터 유시민을 대선주자로 넣어왔으나 이재명이 친형 강제입원 혐의 및 공직선거법 위반에서 1심 무죄를 받고 난 뒤부턴 유시민을 대선후보 조사에 뺀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 정말 여담이지만 운전면허를 독일에서 땄다고 한다. 독일 대학원으로 유학갔던 시절에 딴 듯. 참고로 독일의 운전면허 시험은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렵다.

[1] 의원직 상실[2] 버들 류 씨. 두음 법칙에 따라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 탓에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유 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 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 씨들이 행정상 유 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 씨로 정정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 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 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신문 기사 등에 '류시민'으로 나온 적이 꽤 있었다. 유시민의 초기 저서 중에도 저자를 '류시민'으로 표기하여 출판된 것이 있었고 영문 표기를 RYU로 한다. 위키백과에서는 Rhyu Si-min으로 표기 중이다. 그리고 이름이 '시민'이라서 '시티즌(citizen) 유'라는 별명도 있는데 보다시피 한자로는 전혀 다른 글자이다.[3] 현 경주시. 경주 지진의 진원지다. 본인이 썰전에서 인증했다.[4] 류성룡의 직계 13대손이다.[5]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3에서 인증했다.[6] 다섯째다. 누나는 작가 겸 EBS이사장 유시춘이고, 여동생은 번역가 유시주다.[7] 유수진, 유지헌.[8] 2013년 정계은퇴 선언 후 평당원 신분으로 정의당에 남아있었으나, 2018년 지방선거 MBC 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이제는 정의당 당원이 아니라며 정의당을 탈당했음을 밝혔다.# 다만, 당시 당 대표였고 친구인 심상정의 요청을 받아들여 탈당 시기를 늦춰서 지방선거 당일에 탈당했다고 한다. 또한 유시민, 천호선 등이 수장격인 정의당 소속 참여계는 유시민의 탈당과 관계없이 전부 정의당에 잔류했다.[9] 무소속이 된 이후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사이 어딘가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10] 초선 때는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임기가 1년이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국회의원 재임기간은 총 5년. 이를 두고 전원책은 당선 수가 2가 아니라 1.25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1] 2014년 11월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12] 노무현재단 공식 유튜브 계정으로 '유시민의 알릴레오'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13] 참고로, 유시민이 독일로 유학을 가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했던 전공이 보건경제학이었다.[14] 군복무동안 이른바 "녹화사업"으로 보안사에 여러 차례 연행되었다. 병적기록 참고.[15] 야4당 공동선대위였다.[16] 변희재가 몸담았던 『브레이크뉴스』가 '유시민 의원 선친이 일제 하에서 교사를 지냈다'고 보도한 바 있으나 유시민 본인이 글을 올려, "선친은 해방 직후 미군정이 교사 요원 공채를 했을 때 동양사 분야에 응시해 합격해 최초로 교원 자격을 얻었고, 일제 때 교원 경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17] 19대 대선에 출마한 바른미래당유승민과 2년 선후배 사이이다.[18]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 있는 진선여자중학교, 진선여자고등학교, 경주시 위덕대학교와 같은 재단(대한불교진각종 회당학원) 산하에 있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3동 소재의 사립 고등학교. 1957년에 개교했으며, 앞서 개교한 심인중학교와 함께 60년 넘게 대명3동에 터를 잡아 온 사학이지만, 학생 수 감소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죽곡지구로 이전할 예정이다. "XX심인당"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모두 진각종 관련 시설들이다. 심인중학교를 다닌 학생들 외에는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거나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학교를 배정받고 나서야 심인고등학교를 아는 학생들이 실제로 꽤 많으며, 진짜로 교명의 발음 때문에 '시민고'로 교명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시민고 출신 유시민 유시민은 심인고등학교 출신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인사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정치인이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재원 국회의원과 자유한국당 소속의 백승주 국회의원도 심인고등학교 출신이다. 법조인 변창훈, 문재인 정부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김현철 교수도 동문이다. 즉, 주요 동문들이 알게 모르게 정계 쪽에 많은 편이다. 학교의 교기는 탁구이며 실제로 탁구부가 있는데, 출신 탁구 선수 중에서는 오상은이 잘 알려져 있다.[19] 본인뿐만 아니라, 유시민의 남매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누나 유시춘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작가 활동 이외에도 교사, 시민사회운동가, 정치인이 되었고, 여동생 유시주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작가와 번역가, 기고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20] 그뿐만 아니라 아내 한경혜 씨는 1979년 예비고사 제주도 수석으로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고, 딸 유수진 양도 용인외고-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밖에 몰라서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믿었던 아들도 고등학교 2학년인 현재 전교 1등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타고난 집안.[21] 공통수학 정석, 수학1 정석, 해법수학.[22] 유시민은 자신을 뺑뺑이 2기(…)라고 표현한다.[23] 당시에는 국민학교.[24] 썰전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25] 하지만 법학 공부나 사법시험 공부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유시민의 표현에 의하면 당시 대학에 갓 진학한 유시민은 `진짜로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안달복달하지도 않은 촌놈`이었다고.[26] 당시 서울대학교는 신입생 선발 시 과별 모집이 아니라 계열별 광역모집제였고 2학년 올라갈 무렵에 학과를 정하도록 돼있었다. 사회계열 입학생들은 2학년 올라갈 때 법대, 사회대, 경영대 중에서 한 학과로 전공진입을 하는 구조였다.[27] 당시 농촌문제를 고민하는 서울법대생들의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유신독재를 거쳐 서울에 주요 운동권 서클로 발전했다.[28] 이 말은 유시민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가 남긴 말이다. 이후에 유시민은 2009년에 쓴 《청춘의 독서》에서 당시 랑케의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고 랑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바람에 나왔던 무지의 소치였다고 회고했다.[29] 1학년을 마치고 전공진입 결정 시기가 다가오자 처음엔 법학과 이외의 사회계열 학과들 중에서 사회학과나 신문학과에 가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학과 선택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또한 다른 학과를 선택하는 것보다 경제학과를 선택하게 되면 집에 설명하기 쉬웠던 것도 선택의 한 이유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경제학과는 범용학문으로 사회진출을 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고 넓고, 그래서 경제학과에 간다 그러면서 어머니, 이게 최고라니깐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잖아. 경제학에 흥미도 없었을 때지만."[30] 노무현은 이와는 반대로 군대를 전역한 1973년부터 사법 시험을 보기 시작해 3번째인 1975년에 사법시험을 합격했다. 본인 말대로는 고시생 시절에는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공부할 것이 또 늘어났거니 생각했다고.[31] 백태웅, 조국과 은수미는 노동운동가 박노해와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함께 창설하였다.[32] 2019년 4월 20일, 대화의 희열에서도 한번 더 언급됐다.[33] 참고로 유시민은 이해찬을 친노로 간주하지 않았고, 평화민주당과 뜻을 같이 하는 비호남 개혁파 운동권 정치인의 선두주자라고 평가했다.[34] 초, 중, 고 학창시절 때도 학기 초에 주먹다짐으로 싸웠던 사이가 오히려 그걸 계기로 무척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35] 故 정운영 교수에 이어 2대 진행자였다. 2000년 6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진행했으며, 후임은 손석희. 여담이지만 지금의 100분 토론 오프닝 타이틀곡은 유시민으로 진행자가 바뀌었을 때부터 계속 사용한 것이며, 손석희가 진행했을 때 한차례 바뀌었다가 손석희의 마지막 방송인 10주년 기념 방송에서 부활하여 지금까지 사용 중이다.[36] 보통 1990년대 후반의 유시민에 대해 잘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이 당시에 정계에 한 발짝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를 영남 패권론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종종 들곤 하는 근거인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쓴 것도 이 당시.[37] 당시 노무현의 측근이었던 안희정의 회고에 따르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노무현과 자신이 서울 모처에서 유시민을 만났는데, 거기서 노무현이 "유(시민)작가가 구명보트를 좀 준비해 주세요. 이 배가 난파선이 됐을 때 갈아탈 수 있는 구명보트가 하나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면서 유시민이 자신을 민주당 외곽에서 도와줄 것을 설득했고, 유시민이 여기에 설득당했다고 한다.[38] 야권 내부 갈등의 대명사로 유명한 난닝구 VS 빽바지 중 빽바지의 유래가 바로 이것이다.[39] 썰전에서 틈만 나면 전원책이 디스하는 게 이 백바지 사건.[40] 공직자나 정치인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은 유시민도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가령 통합진보당 시절 당권파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자 유시민은 우리 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41] 특히 이 시기에 크게 피 본 사람이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신기남. 덕분에 천정배, 정동영과 같은 급이던 신기남은 순식간에 추락했다.[42] 하지만 이는 부친에 관한 개인의 의견이지 그 의혹이 깨끗하게 해명 된건 아니다. 서류상으로 증명 된 사실은 유시민의 부친인 유태우는 일제시절 동경도 준대상업학교를 나왔으며 일제치하에 면장에 재직했으며 만주국 통화성 폐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서도 일을 했다는 것이다.[43] 유시민 집안이 풍산 류씨 집안이고 서애 류성룡 후손이라서 전원책 변호사가 이를 보고 "양반 집안이시네"라고 하기도 했다.[44]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 동의사항이지만, 국무위원 임명은 대통령 단독으로 할 수 있으므로 논리적으로 인사청문회가 불필요하고 현실적으로도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결과를 생까면 그만이다.[45] 이때 인사청문회법을 받아들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대사는 명언. "마, 해줘라. 우리도 좀 불편하겠지만, 저것들이 정권 잡으면 난리가 날 끼다. 사람 빌리달라 칼지 모른데이." 그리고 이런 예언은 10년 뒤에 그대로 맞아떨어지게 된다.[46]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관들이 청문회에서 한 번 강하게 털려 봐야 한다로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썰전에서 한국 청문회에는 망신 주기 용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비판에 한 번은 거처야 하는 과정이라고 옹호한 것이 그 예.[47] 한나라당 의원들보다도 오히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유시민을 더 싫어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우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유시민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48] 장관 임명 시에는 국무총리의 제청이 필수인데, 이해찬 총리는 유시민 임명 제청을 하느니 총리 관두겠다고 했다고. 거기에 대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럴 거면 총리 관두쇼라고 응수했다고. 이해찬 총리가 그렇게 강하게 임명을 반대했지만, 사실 유시민은 이해찬의 보좌관 출신이라는 점. 흠많무.[49] "20대와 60~70대는 뇌세포가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자기가 다운되면 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비정상적인 인간은 자기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모른다"라는 등의 발언 때문이려나?[50] 이명박 대변인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친이계였지만, 친박계와도 적지 않은 교류를 펼쳐서 친이계가 무수히 떨어져 나간 19대 총선 공천에서도 희생타는 피할 수 있었다.[51] 선거를 불과 하루 앞둔 단일화였기에 그때는 이미 투표용지가 인쇄된 후였다. 따라서 단일화를 했음에도 투표용지에는 유시민과 심상정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표기됐으며, 두 사람이 단일화를 했다고 유권자 모두에게 알리기에는 시간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52] 18만 표 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경기도 전체 투표수에서 약 4%에 해당하는 큰 수였다. 그러나 당시 나온 무효표가 모조리 유시민에게 간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더라도 김문수가 살짝 앞섰기에 결과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53] 단순히 '아쉬움이 많다' 수준이 아니었다. 심상정이 막판 후보에서 사퇴하며 완전히 김문수 대 유시민 싸움으로 갔음에도 졌는데, 심상정은 군소 후보 주제에 늦게 사퇴했다는 명목하에 자칭 야권 지지자들에게 온갖 비난을 다 들었다. 노회찬은 선거 완주해서 사표를 만드는 바람에 한명숙이 졌다고 더 욕을 먹었었고. 재미있게도 노회찬 의원은 2014년 7.30 재보선 때 이때와 비슷한 이유로 낙선하게 된다.[54] 지금도 PK에서는 손꼽히는 민주당계 강세 지역이다. 20대 총선에서 김해시 지역구는 모두 더민주 후보들이 당선됐고, 김해시장도 더민주 소속이다.[55] 민주당이 친노를 축출하면서 이에 치를 떨고 유시민을 필두로 민주당에서 빠져나간 부류가 참여계였다. 한편, 김경수는 노무현의 최후까지 같이해온 사람 중 하나였기도 했다.[56]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김태호 후보가 동원한 그의 지인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기 위해 장유터널을 막는 등 각종 불법적인 방법으로 유시민 지지자들의 투표를 방해했다는 의혹이다. 이것이 사실로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파장이 엄청날 듯.[57] 그러나 국참계도 부정경선의 주체였으며, 이 당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에서 참여계 인사들이 대거 구속되었다.#[58] 여담으로 저 당시 저들이 하던 대화는 이거[59] 선거 과정에서 정의당 참여계 당원들이 문재인을 위해 선거운동을 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문재인 캠프 직속 바람개비봉사단 등에는 정의당원들이 대거 활동하기도 했다. 과격파들이 정의당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에 싫증 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도 있으나, 이와 별개로 유시민이 참여계를 막후에서 움직여 문재인 캠프로 가도록 이끌었다는 증언도 있다. 사실상 문재인을 막후에서 지원했다는 썰.[60] 마지막 화였다. 사실 그 전에도 전화로 짤막하게 등장했었다.[61] 글 말미를 보면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는 대통령도 알고 국무총리도 압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참모들도 많이 압니다. 그러나 잠깐 동안이었지만 중앙정부의 행정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그보다는 공개 청원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는 글도 있다![62] 썰전에서 mc김구라가 청와대청원에 청원을 한다면 어떤걸? 이라 질문하여 답변한바가 있었고 그이후 집에가 작성했다고한다.[63] 말하는게 재밌는게,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제 당원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출처의 트윗대로라면 탈당한지 제법 되었음에도 정의당 선거에 줄 영향을 생각해서 함구한 것으로 보인다[64] 알릴레오 티저 영상 공개 전에는 구독자수가 9,000명대 수준이었지만 공개 후에는 하루에 50,000~180,000명씩 증가하는 추세였다.파일:노무현재단 유튜브 구독자 추이.jpg[65] 이에 홍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 "북한 조선중앙TV 같은 좌파 유튜버는 한 달 내로 소재가 고갈될 것이다. 국정홍보방송이 원래 그렇다. 그리고는 TV홍카콜라 비난 방송만 하게 될 것이다."라고 비난하고, 해당 채널 구독자 수 증가에 대해서도 "원래 좌파들은 잘 뭉치니까 단숨에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국정홍보 방송이라는 것은 원래 재미가 없어서 소재도 곧 고갈될 것이고 접속시간이나 접속자 수도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앞으로 소재가 무궁무진하니 쉽고 재미있을 것", "TV 홍카콜라 혼자만으로도 청와대, 민주당, 친북좌파 다 이길 수 있다, 1대 100의 싸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보여드리겠다"고 호언했다.#[66] 이에 이해찬 대표는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마주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팟캐스트 '씀'을 '헬리콥터 앞 선풍기 바람'이라 표현하였다(...)[67] 유시민 자신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서 말하는 대권으로의 길과 그 길을 걷기 위한 과정,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맺고 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 을의 위치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싫다고...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 전에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유시민에게 "자네는 앞으로 정치하지 말고 글을 써보라"고 권하면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사회 진보를 이루는데 적합한 자리가 아닌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이 정치인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내 행복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정치밖에 할 수 없는 사람한테 맡기면 되고, 자네는 정치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알지 않나"라고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유시민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가지고 조사업체에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간간히 있으나, 조사업체는 의뢰업체에서 조사를 부탁했단 이유로 계속해서 유시민을 대선후보로 집어넣고 있는 상황이다.[68]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도 썰전에 출연해 "야권에 있을 때가 자기 하고 싶은 말 막 하기 더 편한 줄을 본인이 훤히 아는데 뭐하러 지금 시점에서 여권 수비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하려고 들겠나. 유시민이 정계 복귀나 대권을 노렸다면 이런 방송 시작을 아예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유시민의 정계복귀설을 일축했다. 한편으로 “직관적으로 쉽게 와 닿는 TV홍카콜라와 지적인 냄새를 풍기는 알릴레오, 두 채널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 촌평하기도 했다.#[69] 해당 방송에서는 대표적인 예시로 김대중, 손학규가 제시되었다. 다만 정말 이들이 원치 않았는지는 시청자가 판단할 문제.[70] 립서비스와 거리가 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정도로 극찬한 케이스는 단 둘이다. 유시민을 제외한 다른 한 사람은 다름아닌 문재인.[71]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가 노무현 서거 직후 애도만화에서 '노통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라 외치는 유시민을 그린 적이 있는데 놀랍도록 유사하다.[72] 이 불온한 자유주의자라는 간어는 유시민의 저작인 ‘Why Not?’의 부제에 사용되었다. 즉,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73] 굳이 말하자면 같은 영남 출신의 민주화세력으로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산출마를 반복했던 노무현의 행보가 유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줬을 수는 있다. 유시민 역시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대구에서 출마하기도 했으니.... 다만 이건 영남 출신이라서 친노가 된것과는 좀 다른 맥락이다.[74]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앞장 서서 탄핵을 막으려 한 행동 등이다.[75] 이에 대해선 유념할게 있다. 암호화폐 투기 열풍 당시 언론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모든 경제학자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76] 유시민이 창작한 말은 아니고 공자의 말이라는 것을 알리고 인용한 것이다. 공자의 원문은 "선한 자가 선하다하고, 불선한 자가 불선하다고 하는 자가 선한 자다." 참고로 유가의 안티테제로 매우 유명한 도가노자는 이에 대해 전면부정하였다. "선한 것을 선하다하고, 불선한 것을 불선하다하는 것이야 말로 불선하다"고 했으며, 맹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뒷부분은 공자가 한 말이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부분은 사이비라는 말의 원조인 맹자가 사이비를 설명할 때 한 말과 비슷하다. 어차피 맹자도 그 말 뒤에 "과거 공자님이 이러이러하다고 하셨다."로 끝냈지만.[77] 도로, 항만, 철도 등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이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라고도 한다.[78]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직무.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79] 당시 유지수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80] 유수진 씨는 그 유명한 서울대 담배녀 사건과 관련돼 구설수에 올랐다.[81] 2017년 7월 7일 신장판이 출간되었다.[8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글을 모아 정리하고 내용을 덧붙였다.[83] 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이다. 2017년 개정신판이 출간되었다.[84] 전임자 곽치영, 선거법 위반에 의한 의원직 상실(2002.12.9)로 인한 보궐선거. 2003년 11월 3일, 열린우리당 합류[85] 야5당 연대후보. 정확히는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 협상이 거의 전부였다.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여론조사 단일화 끝에 단일후보 선정. 이후 민주노동당 안동섭 후보가 약간의 협상 끝에 자연스레 사퇴. 창조한국당은 경기지사 후보를 낼 당세조차 없었다. 진보신당은 심상정 후보가 출마했으나 선거 막판에 후보 사퇴했다.[86]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로 비례 선순위 후보들을 제명시키면서 승계할 수 있었는데 경기동부 세력들에 대한 압박의 제스처로 승계를 거부했다.[87] 은빛마을5단지에 거주했다. 화수중학교 투표소에서 유시민이 투표하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88] 훗날 썰전에서도 간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89] 이런 식으로 씹었던 진보계의 다른 인사로는 이정희통합진보당 대표가 있다.[90] 강용석은 정치활동 시기가 달라서 유시민과 직접 접해본 인연은 없다[91] 농담투로 얘기한 게 아니라 정말 경멸스런 표정으로 갑자기 그 말을 해서 분위기가 싸해졌다.[92] 劉의 원래 음을 '유'라고 아는 사람이 있으나, 원래는 劉도 똑같이 '류'다. 다만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 표기를 사용하고, 劉씨는 대부분 '유'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표기가 갈리는 것.[93] 서울대 출신들은 학교 다닐때 알고 지냈던 사이가 아니면 사회에 나와서 굳이 선후배 따지지 않는다.[94] 정작 국회의원 시절에는 '박근혜 대표는 유승민 같은 초짜들이 써주는 것을 대충 읽고 있다'며 의문의 1패를 안긴 적도 있다. 다만 실제로는 유승민이 아닌 최순실이 써줬을 가능성이 높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전여옥 전 의원이 "유승민 의원은 글을 잘 쓴다. 그러나 어디만 갔다 오면 걸레가 되어 돌아온다" 직접 언급했을 정도.[95] 이명박 정부 시절 정무수석. 지금 썰전에 같이 출연하는 그 박형준 맞다.[96] 다만,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사이가 안 좋아서 유시민과 남경필이 고소와 맞고소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화해하고 오히려 서로 친해졌다.[97] 해당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로 분노에 가득찬 눈빛으로 전여옥 전 의원을 노려본다. 이 토론을 보면 전여옥이나 유시민 모두 의도적으로 어그로를 끈다 싶을 정도로 독설을 퍼붓는다. 많이 부드러워진 현재의 모습과 대치되는 장면.[98] 이 일 때문인지 최근까지도 유시민 작가가 팟캐스트 출연했을 때 같이 출연한 사람들이 전여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그 사람 일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하느냐 다소 싸늘한 반응을 보였었다.[99] 이 연설의 하이라이트인 야 기분 좋다로 유명하다.[100]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설적인 성품이라 립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인물인데, 그 노무현이 극찬한 두 사람 중 하나가 유시민 작가. 나머지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문재인 現 대통령.[101]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이다.[102] 썰전에서 바른정당 의원들이 쇼 미 바른정당이라는 랩 대회를 여는 모습이 소개되자 자기는 왠지 공감된다며 측은한 모습을 보였다.[103] #[104] #[105] 참고로 이때 전원책 변호사는 롯빠인 걸 인증했다.[106] 소속 정당이 국민참여당에서 통합진보당이 된 것은 정당의 합당이기에 당적 변경이 아니다.[107] 심지어 개표방송이 끝나고 바로 썰전을 녹화했다(...) 그래서 이 때 썰전 방송을 보면 평소보다 더 피곤한 모습이다.[108] 감옥 수감 중에 읽었다고 한다.[109] TO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1979년 생 배우. 한 때 KBS 어른들은 몰라요에 출연하고 SBS 시네마 특급 MC를 맡는 등 잘 나가던 청춘스타였으나 음반낸 게 실패한 이후로 현재까지 약 10년 째 활동 소식이 없다.[110] 이후 31 ~ 32회에 걸쳐 나온 녹화사업-프락치 편에서 녹화사업의 피해자 윤선남(가상 인물) 역으로 나온다.[111] 예를들어 썰전에서 카탈루냐 독립운동을 다루면서 카탈루냐와 스페인이 통합되는 과정을 언급하지 않고 설명한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