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01 22:40:15

무신론

의 존재에 대한 견해
{{{#!folding 펴기 · 접기 인정
있다
유신론
이성으로 파악한다 만물이 신이다 여럿이다 오직 하나다
이신론 범신론 다신론 일신론
만물이 신의 일부이다 여럿 중 하나다
범재신론(만유 내재신론) 단일신론(교체신론)
회의 및 부정
없다 알 수 없다 아직 모르겠다 관심 없다
무신론 불가지론 미지론 신론 무관심주의
개념 자체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비유신론 반신론 }}}


無神論 / Atheism

AFT 무신론 선언
무신론 선언
샘 해리스의 무신론 선언

1. 개요2. 역사3. 명시적 무신론과 암시적 무신론4. 신무신론5. 명칭 자체에 대한 비판6. 인구와 사회상
6.1. 한국6.2. 일본
7. 편견
7.1. 편견의 예시와 반박
8. 타 사상과의 관련성9. 유신론 vs 무신론의 틀을 넘어선다면?10. 국가 무신론11. 여담12. 유명 어록13. 무신론자 목록14. 관련 문서

1. 개요

무신론은 넓은 의미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부재이다.
영문 위키피디아 무신론 첫 문장.
Therefore, in philosophy at least, atheism should be construed as the proposition that God does not exist (or, more broadly, the proposition that there are no gods).
그러므로 최소한 철학적으로는 무신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더 넓게는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무신론과 불가지론" 2017년판 항목 중 "무신론의 정의"에 대한 서술에서 발췌

무신론은 여느 사상이 그렇듯 수많은 정의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에 대한 믿음의 부재, 혹은 신적 존재의 부정을 의미한다. 전자는 어떠한 명제에 대한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고, 후자는 하나의 철학적 명제이므로 둘 간의 관계를 광의/협의의 구분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철학적으로는 후자의 정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앤서니 플루나 마이클 마틴 등의 철학자들은 종교적 언어(특히 의 정의)가 인식적으로 유의미한 진술을 하지 않는다 보고 전자의 정의를 사용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당연히 철학적 명제로서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자의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무신론에 대해, 고지식적이거나 별로 아는게 없는 사람들 또는 극단적인 신봉자들 중에선 평범한 무신론자를 반종교주의(대표적으로 반기독교이슬람포비아)와 연관짓는 경우가 있다. 무신론과 저들이 아예 교집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신을 안 믿으면서도 오컬트는 흥미롭게 여기는 등등 무신론자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하다. 유신론에서 신이 있지 않을까하고 반신반의하는 신도와 신의 존재를 광적으로 확신하는 광신도 등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독심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실제로 믿는지 안믿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라고 해도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얻기 위해, 혹은 재산상 손해나 생명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종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교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종교가 설파하는 교리 중 일부를 받아들이기 위해 종교인이 되는 사람도 있다. 초기 불교의 모습이 기독교나 이슬람 등과 다르게 철학적인 모습이 강했다고는 하지만, 사후세계의 존재나 윤회 등으로 볼 때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거나 무신론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무신론은 반신론(Antitheism; 반유신론)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무신론이 위와 같이 신의 존재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라면, 반신론은 신에 대한 믿음의 모든 형태들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입장(an opposition to belief in deities)이다. 현대의 무신론자, 특히 소위 신무신론자라 불리는 인물들(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은 반신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무신론의 발달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많다. 자연과학이 이전에는 인간이 닿을 수 없었던 세계를 비추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합리적인 설명을 도출해내면서, 이전에 그 설명을 대신하고 있던 신화종교를 밀어내어 그 역할을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으로 [1]

위의 이유와 더불어 근대 이후 진행된 세속화로 인해 북유럽 등에 있는 국가들에서는 무신론자들이 자유로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종교의 힘이 많이 미치는 곳에서는 무신론자가 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놓은 곳도 적지 않으나 리처드 도킨스 등 아예 '적극적 무신론자'가 나타날 정도로 사회상이 많이 변화하면서 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 한 사고 방식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은 무신론과 관련이 있지만 그 표면적인 의미 이상의 철학적 논의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고.

창작물에서는 아예 신이 없는 세상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도 일부 존재한다. 신이 없는 세계관 문서 참고.

2. 역사

무신론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있었다. 무신론을 뜻하는 단어 ‘Atheism’은 “신이 없는”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ἄθεος(atheos)에서 유래하였다. 종종 '서양의 근세 ~ 근대에 등장한 이신론(理神論)이 무신론의 기초를 놓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오해를 받지만 인본주의 개념이 강했기에 신이라고 해도 아브라함계 신과는 개념이 달랐다.

이신론이란 인격적인 신, 즉 인격신이 아니라 단순히 우주를 창조하고 자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 존재인 신에대한 견해이다. 수학적 이성이 마치 영지(靈智, gnosis)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표적인 것이 피타고라스 등) 그리스시대 신화는 과학이 없던 시절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종교성이 있었다고 보긴 곤란하다. 그리스 시대 신들은 인간처럼 실수를 하는 존재이고, 절대로 전지전능하지 않다.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영웅들은 시대가 흐르며 신으로 승격(?)되기도 한다.

신학 (Theology)이란 개념이 나온건 그리스 철학자 시대가 아니라 훨씬 이후로 무신론이니 이신론이니 나뉜 것은 기원후 기독교가 퍼지고, 4세기경 로마제국 국교가 기독교가 된것과 관련 있다. 초기 기독교 교부 철학은 신플라톤 주의를 받아들여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이어주는 중재자(Logos)를 신의 존재로 설명했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시대 현인들인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같은 철학자들은 기독교와는 원래 전혀 상관 없지만 이러한 이유로 중세시대 교회철학에서도 매우 존중받았다. 당연히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각은 무신론과 다른 취급이었다.

이신론자들은 이성의 시기라 불리는 근대 철학에서 유행했는데 프랑스 혁명사상의 바탕이 된 루소나 볼테르, 미국 독립혁명의 주역들인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은 이신론자 또는 이신론에 가까웠다. 다만 볼테르는 종교적 광신자들은 물론 무신론자들을 똑같이 어리석다 여겼다. 계몽 철학자들은 교회권력에선 극혐이었으나 사상계나 지성계에선 존중을 받았고 무신론과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았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유물론에 기반한 마르크시즘의 과학적 분석이 역사와 사회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여 지식인들에게 각광을 받으면서 무신론이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다.

3. 명시적 무신론과 암시적 무신론

원론적으로 무신론은 모든 신적 존재와 영적 존재, 초자연적 존재,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신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도 무신론인가에 관해서 고찰하게되면 무신론에 관해 크게 두가지 범위를 둘 수 있다. 1772년 계몽주의 사상가 폴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무신론자로 태어나며, 그들은 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후 1979년 자유의지론 사상가인 조지 해밀턴 스미스 또한 비슷한 발언을 하였는데, "유신론에 노출된적 없는 사람은 무신론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들과 아직 유신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 부류에 포함한다. 이 아이들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스스로 무신론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라고 시사하였다. 즉 갓난 아이들은 자연을 유신론적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암시적 무신론자인 것이며, 스스로 무신론자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신론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유신론을 알지 못하기에 무신론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가 시사하는 바이다.
그는 스스로 신적존재에 대한 견해를 의식하는 것이 아닌, 유신론에 노출되지 않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을 "암시적 무신론"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유신론을 이해하고 신의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명시적 무신론이라고 한다. 어니스트 네이글은 조지 해밀턴 스미스의 무신론에 대한 정의를 반박하였는데, 스스로 유신론을 인식하고 신의존재를 부정하는 명시적 무신론만을 진정한 무신론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후술할 신무신론자들의 입장은 신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알지 못해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며 이러한 암시적 무신론 또한 무신론으로서 인정한다.
무신론의 범위를 서술하자면 암시적 무신론과 명시적 무신론이 무신론에 포함돼있고 강한 무신론은 명시적 무신론의 범위 안에 있는 식이다.

4. 신무신론

New Atheism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our_Horsemen.jpg

신무신론 4기사로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순)

과거의 무신론 담론은 대개 포이어바흐에서 시작하여 논리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트주의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같은 곳에서 무신론에 관련된 오래된 먼지 뽀얗게 쌓인 노리끼리한 서적들을 뒤져보면 거의 대부분 카를 마르크스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야기만 나온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스스로 그 신에게 지배당했다든가, 유일신이라는 아이디어는 힘세고 강한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라든가 기타 등등.

오늘날의 신무신론 담론은 대개 이들과 관련이 있다. 도킨스나 데닛은 종교에 대한 지연주의적 설명이라는 전통속에 있다는 전제하에 종교의 유익이 무엇이든지 간에 종교는 전적으로 인간의 정신 안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샘 해리스는 한술 더떠서 자유의지 같은건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나 윤리관 도덕적 행위라는 개념은 뇌의 화학적 작용에 불과하고 사회 관습에 따른 학습이라고 본다. 이는 창작의 자유와 예술적 감수성을 중시하는 비종교적 자유주의자들 성향과 거리가 먼 것이다.

기존의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이 종교가 없어도 또는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인간성을 긍정하며 인본주의적 사고인데 비하여 도킨스의 전제는 인간은 유전적으로 이기적이나 극복해 나갈수 있다는 측면이라 기존의 무신론자들의 주장의 전제와 차이점이 있다. 현대 무신론의 특색을 몇 가지 들자면 과학적 회의주의며 신무신론자들은 주로 과학적 관점에서 글을 쓴다.

그 밖에도 사회참여적 성격, 과학적 계몽주의 성향이 상당히 강하며, 종교권위에 따른 인권 탄압 문제에 민감하다. 오늘날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하여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히는 사람들은 신무신론의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 대표적인 신무신론자인 네 사람-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의 대담 링크

그렇다고 이들의 사고가 좌파적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샘 해리스만 하더라도 좌파 지식인 노엄 촘스키등을 비판하면서, 중동국가와 미국은 동등한 도덕적 위치가 아니라며 미국은 패권 국가지만 착한 거인이라 주장한다. (촘스키-해리스 논쟁 참조)

샘 해리스는 지난 대선에서 의외로 공화당에서도 보수적 색채 가장 강하며 독실한 근본주의 성향 기독교인 벤 카슨을 지지했었는데 벤 카슨은 이슬람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지지한다 밝혔다. 한편 쏟아지는 비판에 극단 이슬람보다 극단 기독교가 덜 극단적이라 덜 위험하다는 주장을 했었고, 이에 대해 촘스키는 모든 극단주의는 똑같이 위험하다며 해리스를 비판했다. #

과학주의가 신구를 나누는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신무신론자들이 사회참여적 태도를 보일 때도 흔히 고전적인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개인적 인권의 보장에 중점을 둔다.

흔히 서구에서는 직접적으로 "무신론 연맹" 같은 표현을 쓰기보다는 "인본주의자 연맹" 과 같은 식으로 단체가 구성되어 있다. 또한 국내와는 달리 서구에는 자유사상이라는 단어도 많이 퍼져 있는데 이는 무신론과 직접적으로 동의어라고 보기는 다소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자유사상 내에 무신론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으로 포괄되지만, 자유사상이 다루는 주제들이 신의 존재유무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성 소수자들이 "즐거운" 이라는 뜻의 "Gay" 를 남성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꾼 것에 크게 고무된 후,[2] 무신론자들도 자신들을 의미하는 새로운 단어로 "Bright" 를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브라이트 운동"(Brights movement)이다. 최초의 시작은 2003년, 캘리포니아의 교육자 게이세르트(P.Geisert)와 푸트렐(M.Futrell)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흔한 비판은 "무신론자들이 현명(bright)하다고 자부한다면, 그럼 종교인들은 멍청(dim)하다는 말이냐?" 인데, 이에 대해 대니얼 데닛은 《주문을 깨다》 에서 "게이의 반대말이 "우울한"(glum)이 아니라 스트레이트(straight)인 것처럼, 우리가 현명하다고 자부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자동적으로 멍청하다고 표현되는 건 아니다" 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즉, 흔한 스노비즘이나 엘리트주의까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브라이트 운동은 리처드 도킨스의 지지와 홍보 속에서 영국에서 인기를 얻었는데, 이들이 정모를 할 때에는 일반적인 "meeting" 이라는 단어 대신 "meet-up" 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그런데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온라인에선 참여 열기가 그렇게 뜨겁더니, 막상 뚜껑을 열어 보자 참석인원 수가 영 시원찮았던 것이다. 2003년 9월 첫 개최 당시에는 13명, 이후로는 2009년 7월이 되기까지 내내 4~33명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다. 출처는 《신 없는 사람들》, 앨리스터 맥그라스, p.77.

그 기간 동안 오프라인에서의 수많은 대형 교회들에 매번 모여들었던 구름떼 같은 신도들을 생각한다면, 브라이트 운동이 "무신론에 대한 대중적 호응을 얻는다" 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내부적 자성도 있다.

5. 명칭 자체에 대한 비판

고대 그리스어 atheos라는 형용사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는 부정을 의미하는 a와 theos()의 합성어다. 재미있는 점은 정작 무신론자(atheist)로 불리는 사람들은 '무신론'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는 무신론이라는 말이 "이라는 게 있는데 그 신이란 건 없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무신론이라는 말 자체가 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무신론은 신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아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종국에 무신론이라는 단어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산타 클로스요정이나 찻주전자인격신이나 인격적이지 않은 신이나 모두 비슷한 확률로 존재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어느 누구도 "산타 클로스가 존재하나요?"라는 질문에 "산타 클로스라는 개념은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할 확률은 극히 적어서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산타클로스론자입니다."라고 답하진 않는다. 그냥 "산타 클로스는 없습니다."라고 할 뿐이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러셀의 찻주전자를 참고.

샘 해리스가 말한 "비점성술론자(non-astrologer)"나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무찻주전자론자(a-teapotest)"같은 지어낸 말들은 이들이 무신론자라는 말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아무도 러셀의 찻주전자처럼 근거가 희박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atheist로 낙인찍혀야 하냐는 것이다. 낙인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게 아닌 것이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21세기에도 신의 존재가 교리에서 크게 작용하는 종교의 영향이 큰 국가에서는 atheist나 atheism에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미국도 그러거니와, 사우디 아라비아같은 나라에서는 테러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국가에선 불가지론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회의감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리처드 도킨스는 실제로는 불가지론자이고 원래 모든 것에는 불가지론자일 수밖에 없다고 분명히 못박아두지만, 일부러 무신론이라는 단순명료한 명칭을 페미니즘 운동의 저항 의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일환으로는 한 유신론자가 히친스에게 "당신은 신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 같습니다."라고 발언했다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왜 화를 냅니까?"라고 답변을 들은 사례가 유명하다.[무신론] Christopher Hitchens 인터뷰

어쨌든 '무신론자'들은 무신론이라는 말이 어떠한 사상 내지는 종교적 뉘앙스가 함유된 단어라고 본다. 즉, '신을 안 믿는 놈들'이라는 뜻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상식 같은 것이라, 무신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학계에선 그리하여 무신론을 여러 갈래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한국에선 종교 안티와 무신론을 잘 구별하지 않으며, 불가지론과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흔히 무신론자로 인식되는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사상은 불가지론이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100% 무신론은 유신론과 같이 믿음의 영역이기에 나는 7분의 6.9 정도 무신론으로 기울어진 불가지론자이다." 덕분에 이리저리 오해도 많이 받는다.

실질적으로 무신론이라는 말은 그저 방편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가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그리고 기꺼이 비신앙적인 태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얘기하는 대신 간단하게 "나는 무신론자다."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출처: BBC 다큐멘터리, A Rough History of Disbeleif)

사실 비신앙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무신론자가 맞다. 오컴의 면도날, 패러디 종교 등을 참고. 이런저런 단점들이 있지만 대체할 만한 마땅한 단어가 없고 이미 널리 퍼진 낱말이기에 그대로 쓰는 것뿐이라고. 그 대안으로 위에서와 같이 세속주의, 인본주의, 자연주의, 비신론 등이 제안되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고, 여전히 무신론이란 표현이 가장 유명하다.

종교인들의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믿을 뿐"이라는 주장에 대한 무신론자의 반응은 "간단하게 '우표를 모으지 않는 취미'는 어떤 취미입니까?" 정도. 우표기피증

다만, 이 우표를 모으지 않는 취미의 비유는 다소 부족할 수 있는데, '종교 = 신이 있고 그것을 믿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순이다. 신은 단순히 인격신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 너머에 존재하는 신성한 성격을 지닌 존재 등으로 정의할 수 있고, 이 경우 단순히 '유일신 종교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대표되는 신이 없다'는 담론을 넘어 본래 무신론이 나타내고자 하는 담론에 근접하게 된다. 좀 더 정밀하게 반박하자면, 앞서 보았듯이 "믿음이 아니라 정 반대인 의심(회의)이다" 같은 것들이 있으니 이쪽을 이용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좀 더 완전하다.

한가지 더 예를 들면 이런식으로 종교의 의미를 확장시키면, 종교인들은 자신들 종교를 말할 때, 자신들의 종교 외에도, 무(無)+자신이 믿지 않는신을 쭉 나열 해야한다. 제우스를 믿지 않는 것(무제우스론)도 종교도, 오딘을 믿지 않는 것(무오딘론)도 종교니까. 결국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믿을 뿐"이라는 건 말장난이다.

무신론자들이 무신론이라는 명칭을 싫어하는데에는 유신론자나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종교의 신도들이나 보수 언론 쪽에서 특히 이 명칭을 멸칭으로 사용한다는 것에 있다. 통계에서 보여주듯이 미국 같은 나라에선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소개하는 순간 정말로 괴짜 내지는 차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도 무신론은 테러리즘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실제로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미국은 냉전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소련에서 사회주의체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종교를 배척했던반면 소련을 견제하던 미국은 반대되는 개념으로 국가적으로 종교를 밀어줬기때문이다. 어떻게든 자국민들에게 사회주의와 소련이 좋지않다는 인식을 심어줘야했던 미국에게 종교는 정치적으로 가장 쓰기 좋았던 도구였고,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나 개종한 사람들에게는 무신교=사회주의자=소련=나쁨 이라는 인식을 박제시키는 계기가 된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는 추세라고는 하나 현재까지도 영향이 남아 무신론자들을 좋지 않게 보거나 조롱의 의미로 쓰기도 하며, 미국의 정치인들은 종교없이 정치생명을 유지시키기 매우 힘들다.

소위 보수 언론으로 일컬어지는 폭스 뉴스 같은데선 종교가 없는 멀쩡한 사람을 데려다놓고 직업 소개란에 "무신론자"라고 써놓기도 한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를 불러다 놓고도 시청자들에게 "무신론자"라고 소개하면서 완전히 괴짜 취급을 해버렸다. 그나마 요새는 서구권에서 무신론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무신론이라는 명칭을 용기있게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상술하였듯이 "신무신론"이라는 명칭이 "무신론"을 대체하여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6. 인구와 사회상

무신론자의 수를 정확히 아는 것은 힘들다. 답변자가 생각하는 무신론의 정의에 따라 결과가 바뀌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히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슬람권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밝힐 경우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슬람교 자체가 상당히 배타적이지만 무신론자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이슬람교가 가장 진실된 종교이다. 정작 가장 치고받는 유대교와 기독교 등 기타 유일신교는 같은 알라를 믿지만 그 방법이 잘못된 종교 정도의 취급이고 기타 다신교는 훨씬 낮게 보지만 그래도 신적 존재의 존재는 인정하고 알라를 다른 방법으로 숭배한다고 여기거나 다른 이름으로 신을 부르거나 여러가지 알라의 면을 각각의 신으로 여기는 셈이기에 그 아래로 친다. 불교처럼 신이 아닌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는 더 나쁘게 보지만 그래도 종교적 믿음이 있으니 참작을 하는데 무신론자는 그마저도 없으니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개쌍놈이 되는 것이다. 다른 이교도이면 강제개종에서 끝날 것을 바로 처형해버릴 수도 있다.

비종교인 비율이 높은 나라는 과거 공산권인 에스토니아가 70%로 1위고 세속화된 북유럽 국가와 과거 공산권 구 소련 동유럽 내지 현재에도 공산국가들의 비율이 높다. 독일의 경우 공산권이던 동독의 경우 75%가 무종교이지만 서독지역은 25% 정도고 독일 평균은 33% 정도다.# 상위 10개 국가 중 (구)소련 동구권 공산권 국가가 5개 북유럽 3국 나머지 둘은 중국과 일본이다. #

무신론을 포함한 비종교인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국가는 무신론자가 공식적으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동 이슬람권 국가로 광신으로 악명높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도 전세계의 모든 종교가 함께 무신론과 싸워야 한다라고 할 정도이다.

게다가 최근에 무신론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징역 10년에 태형 2,000대를 선고받는 일도 발생했다.# 물론 자국인 사우디인이라서 가능했지 외국인 무신론자는 이렇게까지는 못 한다. 국외로 추방하는 정도?

물론 같은 무슬림이라도 열려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을 인정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절대 다수가 무신론자를 차별한다는 것.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과 같이 종교의 영향력이 높은 나라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밝힐 경우 학계나 문화 예술계는 상관없으나 정치인의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일례로 미국 국회에서 무신론자 의원은 한 기에 한두 명이 될까말까다. 9.11 테러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음에도 무신론자 정치인은 적어도 무슬림들에게는 지지를 받는 무슬림 정치인만도 못한 대접이다.

그 외에도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정확하다고 인정받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실린 2005년의 조사에 의하면 종교가 없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1.9%를 차지하며 무신론자는 2.3% 정도라고 한다. 이 숫자에는 불교나 도교처럼 무신론과 유사해 보이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가정하지는 않으나 완전한 무신론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도교도 무신론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경우 여러 여론조사 결과 대체로 아무리 많아도 무신론자 혹은 무교인의 비율은 20% 남짓으로 보인다. 다만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율이 올라가긴 한다. 한때 1998년 네이쳐지에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 소속 과학자들에게 신을 믿는지 여부를 물어본 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원문 그에 따르면 인격신을 믿지 않는 과학자가 약 72%, 불가지론적 혹은 회의적인 사람이 약 20%, 믿는 사람이 약 7% 정도였다.

다만 이 논문에 대한 비판에서도 나오듯이 설문 문항이 좀 애매해서 범신론자나 이신론자 같은 부류까지 믿지 않는 쪽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종교인에 속할 수는 있지만 무신론자라고 하기는 좀 그러니 알아서 감안하고 받아들이자.

파일:external/assets.pewresearch.org/Scientists-and-Belief-1.gif
파일:external/assets.pewresearch.org/Scientists-and-Belief-2.png
파일:external/assets.pewresearch.org/Scientists-and-Belief-3.gif

위 그림은 미국과학진흥회(AAAs) 회원 약2500명을 상대로 한 다른 조사의 결과로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약 17% 정도, 딱히 무신론자라고 자각하진 않아도 불가지론이나 기타 종교에 관심 없는 비율은 48%까지 나온다. 어느쪽 자료를 보더라도 종교에 회의적인 비율이 약16%[3]정도 나오는 일반인에 비해서는 어쨌든 월등히 높은 비율인 것 같다.

2005년 라이스 대학교 부교수 Ecklund가 미국의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종교적 차이점을 조사[4]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포함해 과학자 1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반 대중과 과학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는 원서[5]에 나와있는 표 중 하나이다.
당신의 신에 대한 믿음은 다음 중 어느 것에 가깝습니까? 과학자(%) 일반인(%)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34 2
"나는 신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30 4
"나는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어떤 힘(Higher Power)을 믿지만, 그것이 신은 아닙니다." 8 10
"나는 가끔 신을 믿을 때가 있습니다." 5 4
"나는 의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신을 믿습니다." 14 17
"나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9 63
여담으로 이 연구결과를 가지고 50% 가까운 과학자들이 종교적이라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원서를 보면 알겠지만 해당 %는 실제로 그 과학자가 해당 종교를 믿는다고 한게 아니라 해당 종교적 전통에 속해 있다고 답한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유교신자가 아님에도 제사를 지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2013년 영국의 왕립과학원 회원 248명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신의 존재를 강하게 믿는 사람이 약 8%정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이 약 78% 정도로 나온다.원문 종교색이 강한 편인 미국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더 세속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오경환 신부의 말에 의하면 과학자보다 인문계열의 학자들 중에서 무신론자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 인터뷰 도중 "천문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 중에는 무신론자가 적다고 나와있었습니다. 오히려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중에 무신론자가 더 많았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유신론자가 3분의 1 수준인 셈이다.

실제로 영어권 국가들의 Ph.D급 철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논문에서는 철학자의 72.8%가 무신론자 혹은 무신론에 경도되었다 밝혔으며, 세부전공이 종교철학인 철학자들을 제외하면 무신론자의 비율은 80%가 넘어갔다. 출처

현 세대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무신론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건 생각해 볼 만한 사항이다.[6]실제 Eurobarometer Poll의 2010년 설문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신이 있다라고 답한 비율은 오직 18%, 핀란드에서는 신이 있다라고 답한 비율이 22%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국 국기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아이러니한게 이 나라들 국기가 다름아닌 십자가, 그것도 세로로 세우면 교회 십자가 상징이 되는 옆으로 치우친 형태이다.

지역적으로 가장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은 곳은 동아시아로, 2010년 기준 50% 이상의 무종교인 비율을 보여준다.위키 물론 이들 중 무신론자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간혹 러시아나 알바니아 같은 곳의 무종교 비율이 높다고 예시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각각 16.2%, 1.4%에 불과하다.

파일:/image/005/2013/05/29/130529_29_2_59_20130529173849.jpg

전세계 무신론자 비율 지도

자연적 및 지정학적 조건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체로 강수량 고르고 지진이나 화산 걱정도 없으며 전쟁 위협도 적은 지역들에서 무신론 인구가 많고, 반대로 자연재해가 연간 단위로 일어나고 전쟁 위협도 잦은 지역에서는 그러한 재난을 통해 신의 분노를 느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히 종교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6.1. 한국

한국의 종교적 현황을 살펴보면, 특이하게도 동아시아 국가 치고 유독 기독교가 상당히 퍼져있지만 기독교 일색에서 벗어난지가 얼마 안 되는 구미권에 비해 종교의 다양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교회와 절, 점집을 한 동네에서, 심하면 바로 옆건물 줄줄이로 보는 것이 가능하며, 아마도 청동기시절 이전부터 존재했을 무당이 인터넷 세계까지 진출한 상황이다.

구미권의 보수 기독교나 극단적 이슬람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태지만, 한국은 불교를 믿는 할머니와 유교 할아버지, 무신론인 아들과 성당 다니는 딸, 힌두교인 외국인 며느리가 한 가족으로서 공존하는 것이 가능한 나라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예수천국 불신지옥 옷에 붙이고 명동 돌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가 창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 인구의 비율로 보면 유럽에 비해 기독교 인구가 훨씬 적은 편이고 무종교 인구가 상당히 많다. 2016년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57%의 인구가 무종교이다.

2013년에 전세계 57개국 5만1927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무신론자 비율이 15%로 상위 5위권이라고 한다. 또한 2015년에 전세계 65개국 6만 3900명에게 조사한 결과 한국인 49%가 무교거나 무신론자로 세계 12위라고 한다. 상당히 높은 편. 한편 2015년 통계청 센서스 조사결과 한국의 무종교인은 56%이다.

이웃나라 중국의 경우 인구의 약 절반이 무신론자라고 한다. 이는 종교를 거부하는 공산주의의 영향과 독재체제의 경직성도 있지만 중국인들 특유의 유물론적 사유도 큰 원인이 된다. 그런데 최근 개신교 인구가 늘고 있으며, 여기에 한국 목사들이 한몫 한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도올의 중국일기』). 종교를 권장하지 않던 중국 정부에서는 개신교의 증가에 당황하여 도교나 불교 같은 재래종교로 맞불을 놓는 상황이라고.

한편 서울대학교에서 무신론 동아리가 결성되기도 했으며, 이들이 만든 "종교 전도 거부 카드" 는 언론에도 떴다. Freethinkers 항목 참조 #

한국 무신론자 모임이 있다 http://www.atheism.kr

6.2. 일본

일본에서는 64%에서 80% 정도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무교자라고 응했다.
  • 무종교가 맞다고 보는 견해
    만화애니 등에서는 신사를 자주 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지만 이건 한국에서 제사가 그렇듯이 종교적 의미는 많이 약화된 것이다. 일본 사회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낮으며 외부 유입 문화의 일본화가 종교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일본인들이 새해에 신사를 가거나 신사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적인 관습의 의미이지, 딱히 종교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단순히 새해:신사, 결혼:신사, 교회/성당, 장례:절 이렇게 갈 뿐이지 신토를 뿌리깊게 믿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본인들 스스로가 - 신사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나 - 신토를 애니미즘에 가까운 무언가로 이해할 뿐 기독교불교와 같은 체계적인 종교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일본 미디어에 소개되는 일반인에 의한 신사에서의 활동과 종교적 활동을 등치시키는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실례로 일반적인 일본인에게 "신토가 종교인가?"고 물을 경우 대부분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단순히 광범위한 애니미즘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 정도라고 설명한다. 결국 신토를 종교로 인정한다고 해도, 신토의 종교적 성격은 통일된 체계가 없는 기복신앙으로, 서구적 의미에서의 religion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평도 있다.
  • 일본인들은 매우 다신론적이고 미신적이라는 견해
    일단 "신토"나 "제사"가 "종교가 아니다."는 주장을 근본을 파고 들어가보면, 구 일제 시대에 국가신토를 장려하면서 기존 종교 단체의 반발을 무마시키려고 한 주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당시 일본은 국가신토 강요(신사참배 등)을 '종교 강요'로 해석되는 것을 무마하기 위하여, '신토는 종교가 아니라 생활 양식, 철학'='일개 종교보다 고등한 것' 등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 때문에 '신토 비종교설'은 일본 우익사관의 일부 혹은 그 잔재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종교'의 모습이란 철저하게 해당 조직에 얽매여서 그야말로 모든 생활을 다 바치는 일종의 '컬트'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불교 단체, 신토 단체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가치관과 생활을 철저하게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스스로는 '무종교'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일본에서 흔히 나타나는 신토/불교의 습합 양식은 '컬트적인 예배'는 아니지만 결국 다른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종교 행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종교에 통제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흔히 있는 '신토/불교의 습합 양식'은 장례식이나 절기 행사 등 사회 생활이나 관혼상제 풍속의 상당 부분에서 종교 단체와 연결이 있으며, 오히려 일본인들은 이러한 풍습을 지내면서 '영혼', '운명', '길흉' 같은 초자연적인 개념에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을 '무교'라고는 할 수 있어도 '무신론적' 혹은 '무종교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픽션에서 나타나는 여러 오컬트적 묘사들도 과장이 섞여있을 뿐이지 실제 일본인들의 보편적 종교관과 동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은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독 진언종 밀교슈겐도같은 희한한 종교가 매우 발달해 있으며, 천공전사 젠키청의 엑소시스트같은 작품 내 오컬트적인 묘사들도 실제 일본 신토나 밀교의 그것에다 만화적인 과장 및 왜곡을 첨가한 것에 가깝다.

7. 편견

유일신교 전통이 없는 동아시아유물론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는 구 공산권 국가 혹은 범신론적 가치관이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무신론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지 않지만 유일신교적 전통이 확고한 일부 유럽 지역, 미국이나 이슬람 세계 등에서 무신론자는 편견이 심하고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는 차라리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며, 그보다 훨씬 큰 리스크가 따른다.

또한 미국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나라이다. 《만들어진 신》에 따르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미국에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충분한 능력과 자격은 갖추었지만 흑인이거나, 여성이거나, 비주류인 로마 가톨릭 신자이거나,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무신론자일 경우, 그에게 투표하겠냐고 물었는데 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가장 적었던 경우는 무신론자인 후보자였다. 또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인들은 무신론자들을 근본주의자 만큼이나 불신한다.

다만 2015년 미국에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신론자라도 대통령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사람이 58%에 달했다.# 이는 1958년도에 비하면 40%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종종 모든 무신론자들이 화가 나있고 공격적이며 교조적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교육학 박사 Christopher F. Silver가 2012년 1153명의 무종교인들[7]을 조사하고 6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8]
  • 지성적 무신론/불가지론자(Intellectual Atheist/Agnostic): 과학, 철학 등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고 서로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 행동적 무신론/불가지론자(Activist Atheist/Agnostic): 단순히 믿지 않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휴머니즘, 페미니즘, 동성애 문제, 환경문제, 인권 문제 등등 각종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표명과 행동을 한다.
  • 추구적(?) 불가지론자(Seeker-Agnostic): 흔히 생각하는 불가지론자에 가장 가까운 유형. 인간의 한계를 인지하고 초자연적인 문제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하며 그런 불확실성에 대해 토론하고 탐구하길 즐긴다.
  • 반신론자(Anti-Theist): 흔히 생각하는 반신론자에 부합된다. 종교의 사회적 해악에 집중하고 종교를 벗어던져야 할 무언가로 본다.
  • 무종교인(Non-Theist): 말 그대로 무종교인이다.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종교 자체는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부류.
  • 의례적(?) 무신론/불가지론자(Ritual Atheist/Agnostic): 쉽게 말해 불신자이지만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존중하는 부류. 즉, 본인이 믿지 않아도 가족을 위해 교회를 다닌다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자기는 안 믿으면서돈 벌려고 종교업에 종사하는 먹사사이비 종교인들도 사실 이쪽(...)
실제 성향을 조사한 결과, 이 중에 종교인들의 편견에 부합되는 공격적이고 교조적인 성향이 높은 부류는 4번째 반신론자였다. 이 부류는 전체 무종교인의 약 15%정도를 차지했다. 즉, 대부분의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는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종교인 자녀들이 종교인들의 자녀보다 더 이타적이고 관용적이라는 연구도 있는데 그 요인을 종교인 자녀들은 종교의 도덕적 면죄부 효과로 자신을 변호하기 때문이라나. 즉 도덕적 담론에서 종교를 배제하고 세속적으로 다루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1. 편견의 예시와 반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종교에 의존하는 도덕과 같은 것이 무신론자들에게는 단순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반박한다. 아래의 각 항목들은 종교인들의 시각과, 거기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반박 순으로 쓰여 있다.
  • 무신론자들은 삶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삶에 긍정적인 무신론자들은 오히려 유일신을 믿는 자들이야말로 현세의 삶은 무가치하며 사망 이후의 영생을 약속받고 그들의 적을 영원한 형벌에 빠트리는 행위로써만 이러한 허무를 이겨내는 것이라고 본다.[9] 애초에 이 편견 자체가 삶=신앙인 종교인들의 '삶에서 신앙을 빼면 뭐가 남나요?'라는 착각이다. 오히려 타자에 의존하는 삶을 벗어나 스스로 인생을 가꾸어나간다는 점에서, 무신론은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염세주의에 빠진 무신론자도 존재하지만 전부다 염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등은 저질러진 엄청나게 극악한 범죄들을 저질렀고 이들은 무신론자였으므로 이는 무신론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은 100% 무신론의 이름으로만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며, 그러한 범죄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정치적 명분으로 저질러진 것이다. 이건 마치 "스탈린과 히틀러가 둘 다 콧수염이 있었는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어. 그러니 콧수염이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본래 이러한 종교에 반대하는 정서의 중심에 마르크스가 있었던 것과 세 인물 모두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공산주의, 그것도 스탈린식 독재를 위한 공산주의가 원인이라고 보는편이 옳다. 물론 공산주의자가 아닌 나치의 경우에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가톨릭 수도사들과 성직자들을 잡아가두거나 처형한 이력이 있기에 공산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순교자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인데 콜베의 경우에는 폴란드 유력인사였으며 나치에 협조적이지 않은 인물이었다는것을 감안하면 성직자여서 체포되었다기엔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명확히 해야할 점은 이런 행위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잘못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실현하여 종교의 필요성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함으로 이해하지 않고, 종교를 무력으로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했다는 것이다.
  • 무신론 역시 하나의 종교다.
    이에 대한 반론은 앞서 서술한 '명칭 자체에 대한 비판'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자다.
    굳이 반론까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는 이렇게 주장하는 보수 성향의 목사들이 많으며 심지어 아직도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자로 간주하여 종교를 가질 것을 강요한다. 실제로 많은 공산권 독재국가들이 무신론을 표방하여 종교를 탄압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불교사회주의'를 표방한 캄보디아와 같은 경우가 있으며 오히려 북한과 중국 등은 공산주의 자체가 변질되고 교조화되어 이념이 아닌 종교의 형태가 된 바가 있다. 아직도 이러한 궤변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북한 지역은 개신교가 굉장히 널리 퍼진 지역이었으나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교 박해가 극심해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당하거나 목숨만 건져 도망쳤기 때문에 아직도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라도 하고있는 사람이라면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게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주류는 아니지만 예수의 행적을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경우도 보인다.

    사실 단순히 신을 부정하면 무신론이라고 넓게 본다면, 공산주의자 중 상당수는 무신론자일 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가 마르크스 주의에서 비롯되었는데, 마르크스 주의가 그 기저에 유물론적 시각을 포함하고 있었고, 유물론자는 당연히 무신론자일테니 공산주의=무신론으로 보는 것인데, 마르크스 주의와 유물론이라고 해도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지는 의문일진데, 하물며 두다리,세다리 건너뛰어서 무신론이 공산주의를 뒷받침한다는 소리는 황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굳이 따지면 공산주의자가 무신론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반대로 무신론자가 공산주의자인 경우는 현대사회에서는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에서 무신론이란 명칭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테러리스트가 이슬람의 이름을 사용하니 '이슬람=테러리스트'고, 창조설자들이 기독교의 이름을 내세우니 '기독교인=창조설자'도 성립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 무신론자들은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어쩌다 우연히 생겼다고 믿는다.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창조론자들의 대표적인 오류라고 본다. 창조를 믿지 않기 때문에 창조론자들의 생각에서 창조를 단순히 빼버린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 무신론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러한 문제는 과학적인 문제이므로 종교나 철학으로 해답을 찾으려는 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무신론 자체에서 나온 주장이 아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신뢰한 것 뿐이기는 하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순수한 우연에 의해서 생겼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이미 다윈주의 진화론 쪽에서 나온 비판에 의해 이미 뒤집혔다고 본다. 비록 우리는 초기 지구의 화학물질들이 어떻게 생명체로 나아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생물계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확률적[10]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란 말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필연의 반대어로서 쓰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양쪽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우연한 사건이라도 파고들어가 보면 필연적인 요소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파고들어가다 보면 사실 몇마디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결정론과도 얽혀있는 매우 복잡한 단어라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러한 환경을 가진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된 것, 생명이 탄생한 것, 인간으로 진화한 것 모두 '우연히'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므로 '어쩌다 우연히 생겼다고 믿는 것'이라는 지적 자체가 오류다. 그리고 행성 형성, 생명 진화 등의 과정이 우연이 아님을 천문학, 진화론이 증명하고 있다. 물론 우주 전체가 지금과 같은 모습인 것은 정말로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현대물리학에서도 아직 연구 중인 분야다. 즉,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게 종교이고 신중하게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 무신론이라는 것.

    사실 딱히 확고한 유신론자가 아니라도 '우연' 의 정의에 대한 오해로 인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위에서 이미 설명되어 있는 사실이긴 하나, 간단히 말해 어떤 절대적인 요소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게 우연이라고 한다면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만사가 우연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 무신론은 과학과 상관없다.
    무신론자들도 과학을 이해하는 동시에 신을 믿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에 철저한 사람일수록 종교적 믿음에 회의적이 되기 쉽다고 본다. 여러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보다 종교적 성향이 낮은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선 상술한 '인구와 사회상' 문서를 참조할 것.
  • 무신론자들은 오만하다.[11]
    반대로 무신론자들은 왜 우주가 생겨났느냐라든가 어떻게 자기복제가 가능한 세포가 처음 형성되었는가 하는 등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무신론자들은 모른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반면 종교인들은 잘못된 해답을 내놓고 안다고 주장하는 오만하고도 부정직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종교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오만하다는 것은, 결국 종교인들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오만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하나의 종교만을 갖고 있으므로 결국 무신론자나 종교인들이나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지능이 떨어지고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신을 믿으며 무신론자 자신들은 그렇지 않으니 종교인들보다 지능이 높고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 종교인들을 무시하고 우월감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 비무신론자들이 이야기하는데 물론, 진짜로 무신론자들중 종교인이나 비무신론자들에 대해 나쁜 선민사상에 빠진 무신론자들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대개 이러한 자들은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단순한 반종교주의자일 확률이 좀 더 높으며, 그런사람은 유무신론자를 떠나서 애초에 "남 주장은 상관없고 내 주장만 펼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 무신론자들은 인간 이상의 존재 가능성이나 인간이 인식하는 범위 바깥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무신론자들은 반대로 일부 종교들이 우리의 인식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본다. 우리의 인식 방법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을 접했을 때 종교인들은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적당한 종교적 설명으로 달려가며, 종교의 교리에 반대되는 현상이나 이해 방식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교인들은 '인간 이상의 존재 가능성'이 아니라 '인간 이상의 존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미 핀트가 어긋난 주장이다. 애초에 '인간이 인식하는 범위 바깥'에 대해 주장하는 '인간'들이 과연 누구인가?
  • 무신론자들은 종교가 이 세상에 얼마나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무시한다.#
    무신론자들의 종교에 대한 인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마이클 셔머처럼 종교에 우호적인 무신론자들도 있고 리처드 도킨스처럼 종교가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는 "희망적 사고"나 "자기 기만" 등의 심리학적 효과이며 그러한 유익함은 그 교리가 사실인가 아닌가와는 관계가 없다고 보는, 단순히 믿어서 마음 편해지는 환상일 뿐 진실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무신론자들도 있다. 도킨스의 이러한 반박은 종교의 역할 중 일부에만 해당하는 반박이다. 그리고 샘 해리스처럼 종교 교리를 일종의 사상이나 나름의 과학 체계로 보고 접근하는 무신론자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 나와 있는 무신론 역시 유물론적 무신론이라는 무신론의 일부다.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 또는 유사한 종교에 비판적인 이들은 종교의 유익한 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가 이 세상에 주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저런 예시는 현재진행형이다. 타종교에 대한 테러와 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믿음에 의한 성전[12]을 벌이고 있고 그에 의한 학살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이슬람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근본주의화, 교조주의화된 종교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게다가 좋은 일들은 행한 종교가 좋다고 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일 자체가 좋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 무신론은 우리가 가진 도덕률의 기반을 붕괴시킨다.[13]
    물론 무신론자라도 비도덕적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무신론탓이라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도덕 체계란 기본적으로 본인이 속한 사회의 법칙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지, 신이 도덕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렇다면 신을 전제하지 않는 사회 이념(민주주의, 자유주의 등) 속에서는 도덕률을 형성할 수 없다는 말이 되지만, '민주주의의 도덕적 덕목'과 같은 말은 얼마든지 모순 없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가 도덕률을 대표한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 이는 "신을 가정해야만 도덕이 생성된다"는 믿음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 중 하나인 "유교"는 신을 가정하지 않고도 충분히 도덕과 바른 정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설명했고, 유교 사상을 토대로한 국가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선. 도킨스와 같은 이들은 반대로 종교가 도덕률에 해를 끼친다고 본다.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24시간, 365일 내내 저 하늘 위에서 염탐하면서 벌을 내릴 준비를 하는 스토커에게 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 과연 진실로 도덕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 무신론자들은 경전에 미덕이라고 적혀 있어서 도덕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전에 그러한 행동이 미덕이라고 적힌 것 뿐이라고 본다. 또한 성경 등의 경전에는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심하게 부도덕한 행동이 종종 나오는데(민족 차별, 성차별 등), 이러한 것들이 도덕이 사회상에 맞춰서 발전하는 것을 종교가 방해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근본주의 그렇게 따지면 도덕을 붕괴시키는 놈들은 신을 방패로 삼아서 선량한 척 성경에 위반되는 짓을 하는 기독교인이다.

    이에 대해 무신론에서는 현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를 비판할 수 없다는 유신론자의 반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착각일 뿐이다. "시험시간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부정행위를 한 학생에게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라는 예시에 대해, 종교에서의 내세관이나 신의 실존을 부정할 경우 삶이란 현존하는 실제의 시간에 한정된다. 이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고, 사람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오직 살아있는 동안에만 추구할 수 있다. 즉 인간이 법이나 규칙은 인간이 자기가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을 막아내는 그냥 장애물에 불과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면 법이나 규칙은 타인이 자신의 행복을 빼앗는 경우에 대한 방패 역할도 한다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또한 유신론자들은 범죄나 일탈행위를 하지 않으려면 그러한 것 이외의 행위로 행복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이는 소수만 가능하지, 다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수의 일탈은 당연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긴 불행함, 혹은 행복을 빼앗기는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치 못한 것이다. 다수의 행복을 달성하지 못한더라도 다수의 불행함을 막는 것 역시 중요한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다수에게도 법과 규칙을 통한 이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법과 규칙이 없다 해서 다수의 행복이 반드시 성취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니,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정반대로 법과 규칙이 없으면 극소수만이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경우 만이 보인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다수에게 있어서도 역시 법과 규칙이 있는 쪽의 이득이 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에 대한 유신론자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사회에 대한 합의를 철회할 수 있는가? 당연히 있다. 없다고 생각하는 쪽은 아마 유신론자 쪽의 생각에 가깝지 않을까? 어쨌든 그렇다면 범죄자는 사회의 범죄라는 행위에 대한 합의를 철회할 수 있고 실제로 철회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할 수 있다. 다만, 합의를 철회한 것에 대한 책임 역시 져야 할 뿐이다. 예컨데 군사정부 하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정부의 시책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것을 거부함으로서 권리 역시 제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합의를 철회함으로서 권리 역시 제한 받는 것'과 '사회적 합의를 철회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유신론자들이 신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인 Phil Zuckerman 박사의 을 일부 인용하자면,
    흔히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믿지 않거나 뚜렷한 가치관이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 추측은 간단히 말해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강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신의 부재가 가치관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연구들은 무신론자나 세속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확고한 가치관과 믿음,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허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신론자나 세속적인 사람들의 가치관과 종교적인 사람들의 가치관을 비교할 경우, 전자의 그것이 현저하게 덜 국수주의적이고, 덜 편향적이며, 덜 반유대적이고, 덜 인종차별적이며, 덜 교조주의적이고, 덜 민족주의적이며, 덜 편협하고, 덜 권위적이란 것이다.

    또한,

    만약 종교나 기도, 신에 대한 믿음이 범죄행위를 방지하고 세속주의나 무신론이 불법행위를 조장한다면, 종교적인 국가에서는 살인율이 낮을 것이고 덜 종교적인 국가에서는 살인율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살인율은 세속적인 국가에서 더 낮게 나타나고 신에 대한 믿음이 깊고 널리 퍼져 있는 종교적인 국가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서구권 국가에 비해 종교인 비율이 높은 미국 내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주들은 루이지애나앨라배마처럼 매우 종교적인 곳들이며, 살인율이 낮은 주들은 버몬트오리건처럼 미국 내에서 가장 덜 종교적인 곳들이다. 더군다나 비록 몇몇 예외들이 있지만, 가장 폭력적인 범죄들의 비율은 덜 종교적인 주들에서 낮게 나타나고 가장 종교적인 주들에서 높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50개 도시들의 거의 대부분은 비교적 종교적이지 않은 나라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중에 포함된 미국 내 8개 도시들은 대체로 미국 내에서 가장 덜 종교적인 지역들에 위치하고 있다.

    고 하니 참고하자. 노파심에서 언급하지만, 혹시라도 이걸 가지고 종교가 살인이나 중범죄를 조장한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는 말자. 범죄율은 매우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애초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문제다. 그러니 본문에 나온 경우처럼 종교인들이 먼저 도덕을 종교와 동일시해서 논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반박하는 용도로만 쓰도록 하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적이어서 범죄율이 높거나 비종교적이어서 범죄률이 낮은 게 아니라, 치안이 불안정하고 생활상이 낙후된 곳일수록 종교에 의존하게 되기 쉽고, 먹고 살만한 곳일수록 종교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이것이 곧 모든 무신론자가 자유주의적이거나 관용적이거나 진보적이라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가치들은 무신론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종교에 비해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무신론의 논점 중 상당수는 특정한 유일신교―기독교―를 가정할 때에만 의미있거나 설득력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로 이어지는 아브라함계 종교의 유신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의 존재에 대한 관념도 다채롭다. 예컨대 '신 없음의 신학' 같은 것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무신론은 모든 종류의 신앙 체계와 신관념을 포괄적으로 겨냥하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좁은 범주에서 '반 기독교 안티 테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무신론에 대한 비판이 아닌 아브라함계 종교, 또는 그와 유사한 종교에 비판적인 일부 무신론자들이 그러한 종교에 갖는 견해와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A를 비판하려고 B를 주장하는데 B가 A에밖에 효력이 없다고 하는 꼴이다! 무신론은 특정한 유일신교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결국 기본은 같다. 그 다채로운 신들이 실존한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들도 보이지 않는 분홍 유니콘이나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내 차고 안의 용과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무신론의 핵심적인 논점들은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에 대해서도 유효하다는 것.
  • 무신론자들은 종교인의 블로그에 들어가 욕설만 남긴다거나, 학급의 친구 또는 직장의 동료가 종교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대놓고 종교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말을 하거나, 종교인을 무시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오세암》, 《이집트 왕자》 같은 종교 관련 영화를 단지 종교가 들어갔다고 까내리는 이들도 있다.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행하는 경우는 종교인과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어떤 그룹에서든 나타나는 현상이다. 딱히 무신론자여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 간혹 이것도 일부드립이랍시고 피장파장 식의 이야기를 하는 종교인들이 있는데, 양쪽을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비판하는 종교인들의 행동은 그냥 '종교인들이 행한 폭력'이 아니라 '종교 자체의 문제점들에 의해 일어난 폭력'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무신론 내에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할 만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14] 반면에 종교들 중에는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할 만한 내용을 가진 것들도 존재한다.[15]
  • 무신론은 반종교적이다.
    물론 도킨스와 같이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무신론자도 있는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 지상 최대의 쇼에서 언급된 바로는 자신은 창조설 신봉자들이 짜증나는것이지 과학과 종교가 양립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는것으로 보아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는 한발 물러난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킨스가 무신론을 대표하지 않으며 도킨스는 여러 무신론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가령 라이오넬 타이거와 마이클 맥과이어가 쓴 <신의뇌>에서 신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종교를 믿어서 나쁠것은 없다는 입장이었으며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무신론자라고 전부 반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유신론자를 존중하며 공존하려는 무신론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 신적 존재가 실존하여 인간들을 이끌어주기를 진심으로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해보이므로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도 있다.
  • 무신론은 종교에 비해 근대적이고 이성적이다.
    이건 무신론에 대한 대표적인 긍정적인 오해.[16] 무신론은 단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뿐이기 때문에, 그 밑바탕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깔려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종교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증오나 공포가 깔려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종교인을 인신공격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인배인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이라고 해서 꼭 이성적인 것은 아니란 것이다. 실제로 무신론은 근대 이전의 과거에도 존재해 왔고, 무신론자로 분류될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없이 단순히 믿지 않을 뿐인 경우도 많다. 물론 현대 서구사회의 지식인 계층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무신론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인 경우도 있지만, 모든 무신론이 그렇다고 말하면 역시나 잘못된 것이다. 결론은 케바케.
  • 종교를 가지고 있다가 무신론자가 된 사람들은 단지 교회에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것일 뿐이다.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무신론자로 전향하게 되는 계기는 그 종교의 가르침이 자신의 가치관과 합치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무신론 관련 서적을 읽고 정말로 무신론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에 이를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단지 교회나 절에 가기 귀찮다거나 해서 무신론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 역시 물론 존재하지만,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정말로 교회나 절, 또는 종교의 신자들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무신론자가되는 경우도 있다.[17] 예를들어 기독교에서 상처받고 무신론자혹은 비신자가 된 사람들중 대중적인 사례로,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기에게 시련이 닥칠때 "하느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면서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않는거지? 역시 신같은건 없었어."라고 생각하면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8. 타 사상과의 관련성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공산주의는 철저한 반종교적인 사상이 되었...는데 정작 공산주의 스스로가 종교화 되어버렸다. 신은 죽었지만 신앙은 그 형태를 바꾸어 살아남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저 말을 한 마르크스는 무신론자(또는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였으며 종교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논란이 있으니 자세한 건 문서를 참조할 것. 아무튼 포이어바흐의 논제를 수용해 종교의 폐지를 촉구하긴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마르크스 주의에서도(러셀의 지적에 의하면) 기독교적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단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비교는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비판도 듣는다는 것 역시 기억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나라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종교의 기세가 강하지 못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의 구소련 국가의 종교인 비율은 낮은편이다. 소련의 경우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포교활동을 할 경우는 범죄로 처벌하는데 종교 믿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한편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형편이 훨씬 좋아서 기독교 정당이 존재한 곳들도 있었다. 북한이나 옛 캄보디아같은 경우는 종교 자체가 금지되고 종교를 믿다가 걸릴 경우 사형을 당하기도 하는 등 심하게 처벌했다. 근데 주체사상도 종교 아닌가 캄보디아에는 불교 사회주의라는 해괴한 이념도 등장한 적 있다

그래서 공산권이 붕괴한 이후에도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무신론자의 비율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구 동독 지역은 무신론 비중이 확연히 높게 나타난다. 북한의 경우가 가장 심해서 탈북자들 이야기를 보면 (김일성 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가능성도 있어서는 안 되므로) 인간 외의 신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를 탈북하기 전까지 듣도보도 못했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종합한 끝에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던 것이므로 통일이 된 후 북한 지역에 포교활동이 시작된다면 오히려 종교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나키즘과도 관련이 있다. 공산주의가 최종적으로는 아나키즘을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 물런 실제 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의 방법이 다르기는하지만. 아나키즘의 슬로건이 'no gods, no masters' 인것 처럼 정신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기때문.

철학사적으로 보자면 무신론은 신본주의에 대항한 인본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인본주의는 차별, 억압 등에 반대하며 거기에 뿌리를 둔 무신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방법론적 자연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자연현상을 자연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방법이다 보니, 쓸데없이 신을 끼워넣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신론은 신을 믿지 않는 것이고,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신을 끼워넣지 않는것이기 때문에 꽤 연관성이 크다. 다만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신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사상은 아니지만 진화생물학 측에서 무신론자들이 많이 나온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찰스 다윈이 시작한 진화론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통계적이다. 즉 진화론은 어떤 변이체가 있을 때, 그 변이체가 나중에 생존하게 될지 멸종하게 될지 분명히 결정해주지 않는다. 단지 통계적으로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것 정도만 말해준다.

이렇게 확률적인 이론이 우주의 결정론적 질서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신의 권능도 드러내지 못한다. 진화론은 대충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들, 잡동사니들에 대한 법칙일 뿐이다. 만약 이것이 역시 과학이론이라면 더 이상 과학은 신의 권능을 드러낼 수 없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제 과학은 점점 더 신학에서 멀어지게 된다. 더욱이 자연은 신이 설계한 법칙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이라는 확률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변화한다. 따라서 자연의 변화는(설령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의도와 필연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더욱이 자연 변화의 목적이 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자연은 목적 없이 진화한다.

허셀 왈, 이차적으로는 아마도 일상에서 예수쟁이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된 것처럼 학문적으로도 창조론자들이나 지적설계론자들의 폐해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빠가 까를 낳는다

그게 아니면 1차적인 단순한 이유지만 어린시절 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이 아픔을 겪는 것을 보고[18] 신에게 기도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못해서 "결국 신 같은건 없었다."라면서 신을 불신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도있다. 이 경우엔 본인이 상처를 받았기때문에, 아예 반신론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 편.

아나키즘 역시 무신론과 상당히 밀접

9. 유신론 vs 무신론의 틀을 넘어선다면?

무신론에 관련된 논쟁은 유일신을 산정하는(현대에 두드러지는 것은 유일신 중심) 종교 내에서 특히 큰 논쟁거리가 된다.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어떠한 물리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전지전능자이며, 참된 만물의 시작이자 절대적인 유일함이다.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도 결국 신의 뜻에 부합하냐의 여부이기 때문에[19] 신을 부정함은 윤리관을 포함하여 세계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르네상스 이후 민주주의와 다양한 사상들로 발전하기 이전까지는 이러한 도덕론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실제로 작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와 달리 절대적인 신의 개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인 것, 종교적인 요소, 신적인 숭배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논어에 저 구절이 기록된 것은 그게 당시 사회에서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무신론과 비슷한 ‘무귀론’, 즉 귀신이란 없다는 주장을 편 사람이 더러 있었다. 처음 불교가 들어왔을 때 중국 학자들은 도대체 영혼이 윤회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계속 따졌었고 남북조 시대의 학자 범진이 자신의 저서 《신멸론》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칼날과 날카로움의 비유를 통해 주장한 적이 있었다("형체라는 것은 신(神)의 바탕이고 신(神)이란 형체가 쓰이는 것이다. 신이 형체에 있는 것은 마치 날카로움이 칼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며, 칼이 없는데 날카로움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어찌 형체가 없는데 신이 존재하겠는가?). 조선의 선비들도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불교 짝퉁이 들어와서 천당, 지옥 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기독교 용어를 번역할 때 불교의 용어를 많이 차용했다. 천주, 천당, 지옥, 장로 등은 원래 불교 용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이 《천학문답》을 지어 천주교를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신앙의 대상, 즉 동양의 귀신(鬼神), 음양, 오행 등에 그리스도교 세계관에서의 만큼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무신론이라는 담론의 필요성도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이들이 현실적으로는 인격신적인 성격을 지닌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기만도 어렵고, 신성(神聖)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일정한 의식을 통해 종교적인 대상으로서 일정 부분 '숭배'되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유교에는 인격신으로서의 절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원같은 경우엔 선현(先賢)과 향현(鄕賢)을 제향(祭享)하는 사우(祠宇)라는 곳이 있으며, 공자맹자는 거의 필수적으로 이 제사에 포함된다. 다만 유교는 본질적으로 정치사상이며 후대에 철학적인 성격도 강하게 띠었기 때문에, 종교의 성격은 부수적인 성격으로만 자리하며 '숭배'보다 '존경'의 뜻이 크다. 하지만 '성인의 덕이 미쳐 만물의 화육을 돕는다', '임금의 덕이 미치지 못해 하늘이 재앙을 내렸다'(천인상관설), '하늘이 사명을 내려 왕조를 세우셨다'(천명론) 하는 식의 내용은 짤없이 종교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태극, 음양, 오행 등에 대한 태도 또한 '만물을 생성하고, 만물의 기본적이고 바른 성질이 되며, 인간으로서 이를 바르게 따라 추숭해야 할 것'으로 보는데, 인격신이라는 점 외의 신적 성격을 상당히 강하게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유교가 종교이냐 아니냐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단적으로 결론을 제시하는 것도 무리에 가깝다.

유교, 불교를 넘어서면 더욱 복잡하고 머리 아픈 사례들이 종교학과 무신론의 정의를 휘젓고 있다. 범신론과 인격신(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등)이 복잡하게 얽힌 힌두교의 사례는 어떠한가? 신의 존재를 산정하지만, 그것이 온 세계의 존재들에 내재하며 나와 타자의 올바른 관계만으로 종교성이 실현된다고 보는 동학의 사례는 어떻게 볼 것인가? 도(道)와 기(氣)의 운행을 이해하거나 이용함으로써 종교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교는 얼마나 종교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 체계 내에서 신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유럽 외의 세계에서 실존한 종교성과 신성은 매우 복잡하고 정의에 대해서도 매우 다양한 담론이 존재한다. '동아시아는 무신론 세계'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서 대표적인 예만 하나를 소개하자면, 종교학자 월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성(聖)이라는 체험을 제사 의식을 통해 계속해서 재확인하며 세속(俗)에 영향을 미치고 종교 체험을 함께 하는 것이 종교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경우 유교와 같이 논쟁이 큰 경우 또한 종교에 포괄된다. 이러한 담론을 생략하고 '유일신 종교처럼 절대신이 없다 → 동아시아는 무신론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 종교학계의 수많은 신성과 종교성에 대한 담론을 무색하게 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무신론 또한 종교의 성격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시각과 정의를 내리고 이러한 담론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기독교의 신을 부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반기독교이지 무신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무신론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신적 관념에 대해 눈 감는 것은 자체 모순이며, 합리적인 판단과 인간 가치의 재발견 등 무신론의 기본적인 목적과 충돌하는 사고이다. 물론 기독교가 현실적으로 종교로서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뛰어난 도덕성, 영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시각은 유일신 종교를 반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16 ~ 18세기까지 시누아즈리가 유행하던 무렵, 유럽의 여러 학자들이 중국의 사회를 접하면서 크리스트교 세계를 비판한 주요 근거가 이것이었고, 19 ~ 20세기 영적 신비와 뉴에이지 등이 유럽 세계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신론이 유신론의 반대개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의 반대 개념이나 종교의 여집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신론' 혹은 '신 없음'을 전제로 하는 종교는 적지 않게 존재하며,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현대적인 무신론에 근거한 종교 운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

10. 국가 무신론

일반적으론 인류의 역사동안 유신론 관련 사상이 패러다임을 지배해왔지만, 20세기 들어 나타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에 따라 국가 무신론이라는 대규모 무신론자 권력이 등장한 바 있다. 이에 의한 병폐도 상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은 엔베르 호자세계 유일의 무신론 국가라고 주장하며 모든 종교에대한 철저한 탄압을 가했다. 특정 종교만 금지하거나 탄압한 게 아니라 유신론 자체를 금지하고 탄압한 독특한 사례다. 종교 자체가 있는 사람을 대규모로 처형하고 고문했고 1967년 한해에만 1600여 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처형됐다. 수만명이 강제 수용소로 갔다. 자세한 내용은 국가 무신론 문서 참고.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홍위병들 또한 구시대적 봉건 사상을 제거한다는 기치 아래 종교와 종교인들을 탄압하고 종교시설을 파괴한 전적이 있다. 이 당시 6,000여 개의 티베트 불교 사찰이 파괴되었다고 알려진다. 또 무슬림들이 많은 위구르 자치주 지역에서는 홍위병들에 의해 쿠란이 불살라지고, 무슬림 이맘들이 린치당하고 끌려나와 물감을 뒤집어쓰고 조리돌림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11. 여담

종교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ra Norenzayan)에 따르면[20] 무신론에는 4개 유형이 있다고 한다. 즉 종교적인 마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mindblind atheism), 단순히 무관심한 유형(apatheism), 세속적 사회에서 자라나 종교와는 인연이 없는 유형(incredulous atheism), 마지막으로 직관적 추론을 거부하고 가능한 한 정보들을 분석하고 회의하려는 유형(analytic atheism)이 있다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파리 테러, 시리아 내전, 2016년 유럽 난민 성폭행 사건 등으로 인한 여러 분쟁 때문에 "도대체 신이 뭐고 종교란 게 뭐길래!" 라고 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사상이 되어가고 있다. # 물론 이런 분쟁들은 (모든 사회 이슈가 그렇듯이) 이면에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이다. 그러나 종교의 특정 교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4년 제정된 법에 의해 무신론이 '테러'로 규정된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게 사우디는 테러리즘 지원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는 국가이다.

12. 유명 어록

파일:attachment/Atheist-Bus.jpg
아마도 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두고 인생을 즐기세요.[21]

파일:external/atheismandme.com/goodvsatheistgood.jpg
신도들은 선한 일을 한다.
지옥에 대한 공포, 천국이란 거대한 보상을 바라며.
무신론자들은 옳은 일을 한다.
왜냐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신도들의 "선한일"은 자유의지나 합리적인 도덕없이 종교와 신앙에 의해 행하는 일을 의미한다.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선이라고 여기는 신앙을 풍자하는 것이며, 무신론자들의 "옳은일"은 신앙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생각하는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262fc08075194941cbf9fc31a3fb9d62.jpg
"내 : 의견은 새로운 정보에 : 따라 바뀐다"
난 언제나 자신이 찬양받기를 원하는 신이란 놈을 믿질 못하겠어.
(I cannot believe in a God who wants to be praised all the time.)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모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무신론자이다.
(All thinking men are atheists.)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종교란 평민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들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들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Religion is regarded by the common people as true, by the wise as false, and by the rulers as useful.)
-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무신론에는 내용이란 게 없습니다. 무신론자라는 건 "비"점성술론자라는 것과 같지요. 어느 누구도 "비"점성술론자로 키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점성술에 납득되지 않는 것일 뿐이죠.
(Atheism has no content. Being an atheist is like being a 'non-astrologer'. No one gets taught to be a 'non-astrologer'. You just don't get convinced by astrology.)
- 샘 해리스(Sam Harris)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자네는 우주의 구조와 창조의 원리에 대한 이토록 방대한 책을 썼음에도 어찌하여 신에 대한 언급을 한번도 하지 않았나!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폐하, 제게는 그러한 가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악마같은 놈은 가정해야 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철학자)
    • 신은 죽었다.
    • 무엇일까, 인간이 신의 큰 실수 중 하나일까? 신이 인간의 큰 실수 중 하나일까?
    • 신념(Faith)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념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 모든 종교는 인간이 지적으로 미성숙할 때 발생했다는 분명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진실을 말할 의무'를 배우기 전에 종교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미성숙한 시절에는 누구도 '신은 진실되며, 이해할 수 있게 말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 수 없었다. 누군가 그런 규정을 만들었다면, 인간은 신이라는 망상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 신은 약자가 날조해낸 것이고 종교는 노예의 도덕이다.
    • 신이 죽었다 했었지? 사실 내가 신이야!!!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신은 초월적 존재만이 아닌 과학,이성, 정의, 사상 등에 대한 신앙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즉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비판.
  • 토머스 에디슨(과학자, 발명가)
    • 내 평생 인격신의 존재나 죽음 이후의 삶, 천국이나 지옥 등의 종교적 발상들에 대한 눈꼽만한 증거들도 본 적이 없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칼럼니스트)[23]
    • 증거가 없이 무엇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마찬가지로 증거가 없어도 얼마든지 부인될 수 있다.
    •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주장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 토머스 제퍼슨(미국 3대 대통령)
    • 우리의 (교육) 기관엔 신학교수 자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
  • 버트런드 러셀(철학자)
    • 종교는 지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해롭습니다.
    • 만약 사후에 신이 나에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신이여,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증거가요."
  • 토머스 헉슬리(과학자)
    • 신이 존재하는지 나는 모른다. 따라서 그의 존재를 믿는 것을 보류하고 없다고 가정하겠다. 검증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 로버트 퍼시그(작가, 철학자)
    •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병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스티븐 호킹(과학자)
    • 과학적 설명은 온전하며 신학은 불필요하다.
  • 존 레넌(음악가)
    • 신은 우리의 고통을 재는 도구일 뿐이다.
그의 음악 <God>에서(God is the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철학자)
    •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내었다.(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그 신에게 지배, 혹은 소외당했다.)
이는 후일 '소외'라는 개념으로 마르크스의 1845년 이전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 공자(철학자)
    • 군자는 괴력난신을 입에 담지 않는다.(君子不語怪力亂神)

    공자와 후대 유학자들은 이신론과 불가지론에 가까웠다. 다만 전한시절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이 변질된 건 함정. 관련문구도 괴력난신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유학적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회의론 시각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려고 많은 사람들이 허위로 이뤄진 기적과 망상이라는 거래를 만들어냈다.

13. 무신론자 목록

14. 관련 문서



[1] 신의 부존을 증명한 사례도 있다. 틀렸다. 애초에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은 관측이 에너지를 가진 매개체로 인해 측정값이 오류가 날 수 밖에 없고 정확한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신이 있다해도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으로 인해 측정이 불가하다.[2] 이런 것을 두고 "pejoration" 이라고 부른다. 의미변화 항목 참고.[3] 무신론 (2%), 불가지론 (2%),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 (12%)[4] Ecklund, E. H., & Scheitle, C. P. (2007). Religion among academic scientists: Distinctions, disciplines, and demographics. Social Problems, 54(2), 289-307.[5] Ecklund, E. H. (2010). Science vs. religion: What scientists really think. Oxford University Press, p16.[6] 물론 이들 국가들이 무신론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이야긴 아니다. 반대로 안정적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무신론자들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그렇다해도 안정적인 사회에서, 국가에서 강제한 무신론이 아니라 자발적인 무신론자가 늘어난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사항일 것이다.[7] 무신론자가 아니다. 무종교인+불가지론자+무신론자+반신론자 등등을 모두 포함한 것.[8] 다만 학술저널에 올라온 연구가 아니고 사적으로 진행한 연구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9] 아브라함계 종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은 현세의 삶을 사망 이후의 영생을 위한 토대로 해석하거나, 그렇게 해석될 여지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다만 모든 종교가 그런 면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기복신앙적인 측면이 강할수록 그러한 경향이 약한 편이다.[10] 여러 발생 가능한 사건들이 주어진 확률만큼 모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A가 99.99%, B가 0.01%라면 1000000개중 A가 999900번, B가 100번에 근접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 우연과는 다르다! 우연과는![11] 사실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교만의 전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12] 무지한(지금 자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큰 패악인지 모른다면 무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신도들은 정말로 신앙을 바탕으로 이런 전쟁에 참전하지만, 이런 전쟁을 벌이는 고위층은 애초에 철저한 이해계산을 토대로 전쟁을 벌인다. 한마디로, 말이 '성전'이지 실제로는 신앙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어찌 보면 전쟁 중에서도 가장 추잡하고 비열한 전쟁이다.[13] 이 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도덕과 종교의 관계 항목 참고.[14] 당연히 무신론자 중에도 남에게 유무형의 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많다존재한다. 모든 종교를 대상으로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거야 괜찮지만, 단지 종교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욕을 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15] 예를 들어 구약에는 야훼가 유대인들의 타 민족에 대한 학살이나 강간, 약탈 행위를 방조하고 장려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물론 현대의 보편종교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부분을 고대인의 시대적 한계라고 규정하고, 옹호하지는 않는다.[16] 특히 한국에 퍼진 반개신교 성향과 겹쳐져서 퍼진 오해와 선입견이기도 하다.[17] 아니면 아예, 반신론자나 반기독교, 반종교주의자가 되거나.[18] 주로 난치병(불치병)등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많이 발생한다.[19]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신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온갖 악행(학살, 여자 및 장애인차별 등)을 저지른다. 여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인의 반론이 신의 도덕은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신이 인간의 도덕의 기준이라는 주장과 충돌하게 된다.[20] Norenzayan & Gervais, 2013.[21] 영국의 작가 에리언 셰린제안하고, 영국 인본주의자 협회리처드 도킨스 재단이 지원하는 무신론 버스 캠페인. 버스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리처드 도킨스이다. 이 버스 광고는 영국에서 200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종교인들의 항의로 인하여 철거되었다.[22] 정확하게 말하면 에피쿠로스 본인은 무신론자는 아니었으며, '신은 존재하지만 그 스스로를 완전히 유지할 뿐 세상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근대적인 개념으로 보면 이신론자에 더 가깝다.[23] 이 사람은 반신론자의 기질도 있다.[2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로 주요 주제가 바로 무정부주의와 무신론에 대한 비판으로, 악령 또한 무정부주의와 무신론을 의미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