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악마를 보여주면 그만.
그러나 악마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악마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어딘가에 그들이 숨어서 살고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악마의 증명(devil's proof)
악마의 증명(devil's proof/probatio diabolica)은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법적 용어이다.그러나 악마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악마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어딘가에 그들이 숨어서 살고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악마의 증명(devil's proof)
요지는 존재를 증명하려면 해당 사건에 대한 증거만 찾아서 제시하면 그만이지만 부재를 증명하려면 있었던 해당 사건의 모든 자료가 증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므로 그것은 거의, 어쩌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1]
더 직관적으로는 '부재의 증명'이라 부른다. 존재를 증명한 것은 1(100%)에 닿은 확실한 행위지만 부재를 증명하는 일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한 99.9999%까지 닿을지언정 절대로 100%에 다다를 수 없다. 즉, 없음을 아무리 입증해도 "아니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라고 일축하면 그만이고,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같은 논리만 끝없이 반복하면 된다. 내 차고 안의 용도 같은 논리다.
입증 책임과 연관이 있다. '악마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충돌하게 된다면, 입증 책임은 '악마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측에 있다. 왜냐하면 반대로 존재치 않는다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다면 없다는 것을 증명 못 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믿어야 하기 때문. 예를 들어 러셀의 찻주전자같이 어떤 허황된 소리일지라도 없다고 증명 못 한다면 믿어야 된다.
귀납법과도 관련이 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를 존재 증명이 핵심인 악마의 증명에서는 "일부 백조는 하얗다"고 바꾼 셈이다. '일부 백조'가 존재함을 보이면 끝이다. 반면에 "나머지 모든 백조가 검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말 그대로 모든 백조의 사례를 찾아봐야 하는 귀납법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변형을 한 이유는 악마의 증명이 법정 추론으로서, 효율적이고 강한 설득 논변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명제를 찾아내는 귀납법은 당장 한두 개 증거가 중요한 상황에서 별 쓸모가 없다. 또한 악마의 증명에서 보듯이 무엇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거로 하는 방식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역시 법정에서 꺼리는 논증 방식이 된다.
논리학적으로는, (두 명제가 증명되지 않았을 때) "A는 존재함도, 존재하지 않음도 증명되지 않았다."라고 하면 옳다. 적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학계에서는 "A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암 진단기준에서도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암이 아닌 경우를 '암의 증거가 없음'이라고 표기한다. 악마에 비유하자면 그 누구도 악마를 데려오지 못했다고 해서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증명된 것이 아니라, '악마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명제로 결론내리는 것이다.
2. 사례
"외계인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외계인이 이 무한하게 넓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 이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현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한편 "외계인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외계인을 데려오기만 하면 그만이다.논리적으로도 딱히 허점이 없으며 유신론자들이 즐겨 사용한다. '신을 보여드릴 순 없지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당신은 이를 부정할 수 없다'와 같은 식으로, 반박할 수 없는 논리다.[2] 유신론자와 불가지론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종교 안 믿기로 유명한 천문학자 중에서도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불가지론자와 유신론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등 부재의 증명은 여전히 강력한 논리로 쓰인다.[3]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상대도 유신론자라면 한계에 부딪히기도 쉽다.
예컨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 등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대개 우상숭배를 극도로 혐오한다. 그런데 그 우상숭배자, 이교도들이 우상으로서 숭배되는 그 신이 없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대꾸할 방법이 없다. 예컨대 바알 숭배자라면 바알이 없다는 증거를 요구할 수 있다.[4] 즉 악마의 증명으로 신 존재에 가불기를 걸겠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무신론자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악마의 증명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양심적 병역거부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복무가 생기기 이전, 형사적 처벌의 대상으로 검사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에 대해 양심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형사법상의 입증 책임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판례(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는 이에 대해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마치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위와 같은 불명확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존재를 주장/증명하는 것이 좀 더 쉬우므로, 이러한 사정은 검사가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병역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악마의 증명이라는 사례가 실제 재판에서 적용됨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위와 같은 재판이 반복될 일은 없다고 보이나 최근 양심을 이유로 예비군을 거부한 사례에서 상기 판례가 반복되었다.[5]
"나는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는 증명할 수 없다. 일단 부딪쳐 봐야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병역판정검사에서 군대 갈 줄 알았던 사람이 병이 발견되어 면제를 받거나, 면제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현역이 나오는 사례가 있다. 또 한번 실패는 실수라며 다시 도전할 수도 있어서 대학 입시도 재수, 삼수까지 하나, 대개 3번 정도 도전했는 데 실패하면 단념하는 경향이 있어서 3의 법칙도 있다.(삼세판) 그래서 해보기 전에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가 되어야 한다. 이때 화자는 가타부타를 말할 수 없는 판단 중지(에포케) 상태가 된다. 이것은 멀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인 피론주의와도 연결되고, 가까이는 70년대 한국 선불교의 숭산 스님이 '오직 모를 뿐'이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가능성의 부재는 무조건 일단 부딪혀 봐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일례로 병역판정검사에서 외관상 명백한 장애인은 병역판정검사 없이 병역면제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6급 확정인 완관절 결손(사지결손) 환자가 있다. 과거엔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도 마찬가지였으며, 왜소증이나 최홍만이나 하승진처럼 현역 판정 기준[6]을 훌쩍 넘는 초장신이라면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고도 현역 가능성 부재를 증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징역 1년 6개월 이상을 선고받은 전과자도 병역대상자에서 제외되어버리므로 병역판정검사통지서가 날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가능성의 부재를 바로 증명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나머지는 다 똑같냐 하면 그건 아니다. 괜히 추론 통계학이 학문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간의 통계를 바탕으로 진단서를 제출했을 시 면제 확률을 대략 알 수 있기에 확률이 높으면 면제를 자신하고 갈 수도 있고, 확률이 낮으면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마냥 불안에 떨다가 면제 판정 나오면 기뻐하기도 한다. 스포츠에서 어차피 승패 확률은 반반이나 그 승리의 확률이 다르기에 확률 높은 팀이 이기면 당연하게 여기고, 확률 낮은 팀이 이기면 업셋이라며 충격을 받곤 한다. 학생들도 취업 전에 적성 검사도 받아보고 자신의 스펙이면 대략 어디 정도쯤이란 견적이 나오기에 그 수준에서 안전하게 지원하거나 탈락 각오하고 베팅해 보기도 한다. 특히 최근엔 컴퓨터가 발달하여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과거처럼 핵 실험을 꼭 직접 해보지 않아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돌려서 빠르게 핵무기를 제작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물론 시뮬레이션으로 해보는 것도 가상으로 부딪쳐 보는 것이긴 하다.
법학에서 유전자 검사의 경우 집단 유전학적 통계 자료 및 부권 확률 공식에 근거해 유전자 일치율이 99.95% 이상이면 '우연히 두 사람의 유전자가 일치했을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식과 친부모로 판정한다. # 지문 또한 용의자의 지문과 비교하여 완전히 일치할 경우 '우연히 다른 사람의 지문일 가능성'이 약 870억분의 1에 해당하므로 강력한 증거로 채택된다. 정말로 이 세상에 용의자의 지문과 우연히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사건 현장에 접근 가능한 공간과 시간의 제약까지 모두 일치할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확률은 사실상 0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내려간다. 이것도 손가락 1개를 비교했을 때 이야기이고 손가락 2개를 비교하면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64조분의 1로 내려간다. 다만 현실에서 실제로 지문이 같았던 사건도 존재했으므로 이것도 확신은 금물. 반대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무시하고 억울한 사람을 잡아간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도 정확히는 지문 자체의 오류가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가 범죄자를 대조되던 과정 중에 오류기는 하다. #
한편, 부존재의 증명은 형사소송에서의 입증책임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범죄의 성립을 구성하는 주요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사실이 부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때에, 그 증명이 다소 곤란하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에서 허위사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때 허위사실의 종류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① 첫째는 'A라는 사실이 존재함에도 부존재한다는 허위사실'을 피고인이 적시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그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면 되는 것이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② 둘째는 'A라는 사실이 부존재함에도 존재한다는 허위사실'을 피고인이 적시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로서, '그 A가 특정한 기간과 장소 등에 구체화된 사실'인 경우이다. 이러한 증명 역시 여전히 가능한데, (물론 위 ①의 경우보다는 어려울지라도) 그 특정한 기간과 장소 등에 A가 부존재하다는 점을 하나씩 밝혀냄으로써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세 번째로 'A라는 사실이 부존재함에도 존재한다는 허위사실'을 피고인이 적시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로서, '그 A가 특정한 기간과 장소 등에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인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가 바로 악마의 증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A가 부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할 길이 요원하다.
이에 대해 판례는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증명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므로 이러한 사정은 검사가 그 입증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하고, 따라서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며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사실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인데, 이때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단순히 소문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허위임을 검사가 입증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구체성은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소명자료의 제시가 없거나 제시된 소명자료의 신빙성이 탄핵된 때에는 허위사실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6도7915 판결)라고 하여 이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과학에서 부존재를 증명할 때는 표준편차(시그마)를 활용한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고, 아직 상정하지 못한 변수나 오류 등이 있을 수가 있으나 정확도가 어느 정도 수준에 근접하면 인정하자는 과학자들간의 합의인 것이다. 예를 들어 중력파 검출의 경우 5.1 시그마, 신뢰 수준 99.99994% 의 결과로 나타났는데 이 정도 결과라면 '다른 변수에 의해 우연히 측정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하고 측정 결과가 예측한 값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무위키에서 편집 분쟁 발발시 자주 나오는 상황이다. 토론에서는 토론 관리 방침의 입증 책임 문단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고, 악마의 증명을 끈질기게 요구하여 결국 "그래서 근거는 없다는 거네요" 식으로 토론을 일방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불기로 통한다.
3. 수학의 경우
반면, 자연 과학과 달리 형식 과학인 수학은 철저히 공리에 근거한 연역 논증으로만 굴러가는 학문이므로 신뢰 수준 99.99994% '따위'의 결과는 논리적으로 참이라 인정받지 못한다.[7] 즉 "이러이러한 경우에 대해 반례는 없음이 증명되었다, Q.E.D."라고 확실하게 증명해서 못을 박아버릴 때까지 파고드는 것이 수학이다. 물론 4색 정리처럼 유한한 경우의 수를 모조리 건드려 증명하는 시행착오법을 동원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경우의 수가 유한 개만 존재한다는 것까지 직접 논리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역사에 손꼽히는 온갖 수많은 난제들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 언급하는 무한과의 싸움으로 '모든 경우에서 부재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적 삽질'을 통해 증명되거나 반증되거나 증명 불능성 증명[8]을 거쳤고 이를 해내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의 수학자들은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주 쓰이는 수학의 필살기(?) 중 하나가 바로 "임의의 x에 대하여 p(x)인데, 이는 만약 어떤 x가 p(x)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러쿵저러쿵)한 이유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귀류법이다.[귀류법예시] 악마의 증명이라는 거창한 표현씩이나 동원될 정도로 反형식, 非연역적인 귀납 논증에서까지 '통계적 반례의 부재'를 감히 주장했다간 반례가 발견될 시 두들겨 맞을 수 있으므로 공리계하에서의 무모순성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지를 않는 현실 세계를 다루는 논의에서는 블랙 스완의 존재 가능성을 항시 염두에 두고 귀류법 논증에 있어 주의를 기해야 한다.가장 좋은 예로 '모든 점에서 연속인 함수는 미분가능한 구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거의 정리로 굳어지던 명제가, '모든 점에서 연속이지만, 어디에서도 미분 불가능한 함수'라는 괴물을 만나서 침몰당했다. 다른 예로 콜라츠 추측의 경우 컴퓨터를 이용해 [math(2^{71})]까지 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테렌스 타오가 '거의 모든 자연수에 대하여 콜라츠 추측이 성립한다'를 증명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추측의 완전한 증명 또는 반례는 나오지 않고 있고, 오히려 증명 불능 & 반증 불능 명제일지도 모른다는 비관론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그래도 악마, 신, 외계인 등이 없음을 절대 증명할 수 없는 원조 악마의 증명보다는 사정이 낫다. 수학에서 거짓의 증명은 공리 등 기본적으로 참이라고 간주하는 정의와 규칙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거짓 혹은 불가능함이 증명된 걸 부정하겠답시고 기본적인 정의를 부정할 순 없다. 'XXX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증명하자 이를 반증하겠답시고 '사실 기존의 수학 규칙을 무시하는 미지의 자연수 A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같은 증거를 내밀 순 없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로 예시를 들자면, 어떤 사건의 용의자가 완벽하게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는데 '사실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해서 범죄를 저지른 거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과 유사하다. 실제 존재한다는 걸 보이지 않는 한 현실의 물리법칙 상 가능한 증거만 채택할 테니까.
4. 관련 문서
[1] 무죄 추정의 원칙과 비슷하다.[2] 주의할 것은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사실이 '신이 존재한다는 입장이 참이다/더 타당하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됨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정 반대인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 또한 진짜 신을 증명하기 전까지 마찬가지로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반박할 수"만" 없는 논리이지,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을 가정하는 것이 합당한지는 전혀 밝히지 못하는 논리인 것이다.[3] 물리학자들의 경우 의외로 유신론자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4] 기독교 측에서는 열왕기에 기록된 엘리야가 바알 사제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을 바알이 틀린 증거로 들곤 하지만 이는 딱 그 기독교 경전에만 나오는,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우화 (즉 기독교 측의 순환논증) 일 뿐이며 이차돈 전설처럼 다른 종교에도 이런 신앙의 증거로 내세울 수 있는 우화는 많이 있다.[5] 양심상의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예비군훈련거부와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이때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을 거부하는 자가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적어도 검사가 그에 기초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9도18442 판결)[6] 204cm 이상.[7] 물론 간혹 수학 명제에서도 '거의 모든(almost everywhere, almost all)'이라는 막연함을 함의하는 듯한 용어가 보이곤 한다. 이는 수학의 세부 분야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지만, 대체로는 '이 성질을 갖지 않는 x의 개수는 극히 적다'는 뜻이다. 실해석학의 측도론과 그를 응용하는 분야인 확률론에서의 '거의 모든'은 그런 의미로 정의되며, 위상 수학과 정수론 등의 다른 분야에서도 '거의 모든'은 각 분야의 사고방식에 맞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막연한 직관과 크지도 않은 샘플을 대상으로 한 통계 따위 야바위(?)에 의존하지 않는 논리적 증명을 거쳐야 한다는 게 문제. 가장 대표적인 예로 '거의 모든 정수는 합성수이다'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해석적 정수론의 소수 정리에 의해 n∈ℕ 이하의 소수의 개수는 n/ln(n)과 점근적으로 같다. 이는 달리 말하면 n이 커질수록 소수의 비율은 ln(n)/n만큼이라는 것이고, 이는 n이 양의 무한대로 발산할수록 0으로 수렴한다. 그러니, 거의 모든이라는 말의 의미가 규정되어 있는 한, '거의 모든 정수는 합성수'라는 주장은 참이다.[8] 증명 불능과 반증 불능성이라도 증명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어떤 명제가 증명 불능하다는 것도 하나의 명제이기 때문에, 증명 불능 및 반증 불능하다는 사실마저 증명 불능할 수도 있으며, 증명 불능성이 증명 불능성하다는 명제도 증명 불능할 수 있다.증명 불능성 증명 불능성 증명 불능성 증명[귀류법예시] 소수는 무한개 존재한다. 왜냐? 만약 소수가 유한개만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소수들 중 가장 큰 것을 P라 하자. 2부터 P까지의 모든 소수를 싹 곱하고 +1을 더한 수 N=(2·3·5·7·…·P)+1을 고려하자. 이 수 N은 유한개만 존재한다는 소수들 중 그 무엇으로도 나누어떨어지질 않는다. 그러므로 N은 새로운 소수이다. 이는 P가 가장 큰 소수라는 가정과 상충하는 모순이다. 그러므로 소수는 유한개만 존재할 리가 없다. 소수는 무한개 존재한다. 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