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8 13:06:49

하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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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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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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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기아 / 가드
허재
기아 / 가드
조성원
현대 / 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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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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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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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전태풍
(전주 KCC)
함지훈
(울산 모비스)
문태영
(창원 LG)
하승진
(전주 KCC)

2010-11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조성민
(부산 kt)
박상오
(부산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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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
(전주 KCC)

2015-16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양동근
(울산 모비스)
안드레 에밋
(전주 KCC)
함지훈
(울산 모비스)
이정현
(안양 KGC)
트로이 길렌워터
(창원 LG)
하승진
(전주 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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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CC 하승진 은퇴.jpg
이름 하승진(河昇鎭 / Ha Seung-Jin)
생년월일 1985년 8월 4일 (만 [age(1985-08-04)]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부천시
신체 221cm[1], 150kg[2]
학력 선일초등학교-삼일중학교-삼일상업고등학교-연세대학교
포지션 센터
NBA 입단 2004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46번 (POR)
KBL 입단 2008년 KBL 드래프트 1라운드 1번 (KCC)
소속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04~2006)
애너하임 아스날 (2006~2007)
전주 KCC 이지스 (2008~2012, 2014~2019)
등번호 5번(포틀랜드)
0번(KCC)[3]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회 (2006,2010)
FIBA 아시아선수권 5회 (2003[4]~2011)
수상내역 KBL 신인상 (2009)
KBL 플레이오프 MVP 1회 (2011)
KBL 베스트 5 3회 (2010,2011,2016)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은메달
FIBA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1회 (2003) / 3위 2회 (2007,2011)
가족관계 아버지 하동기
어머니 권용숙
누나 하은주
부인 김화영[5]
아들 하지훈
딸 하지해
종교 개신교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선수 생활
2.1. 아마 농구 시절2.2. 폭풍 2도움의 시절 - NBA2.3. 전주 KCC 시절2.4. 은퇴
3. 플레이 스타일4. 트리비아

1. 개요

대한민국 농구 역대 최장신 센터. 그리고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유일한 NBA 경력을 가졌으나 어쨌든 NBA에서 정착하는 데는 완전 실패했다. 이후 자신이 피지컬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대한민국 무대로 돌아와서 센터로 뛴 선수였다. 전주 KCC 이지스의 스타이자, KBL의 이슈메이커. 별명은 잘할 땐 하킬 오닐, 못할 땐 하식물, 하봇대 등...

어쨌든 대한민국 농구 팬들에게는 이래저래 애증이 교차한 선수였다.

파일:attachment/하승진/haseungjin.jpg
2014-2015시즌 KCC프로농구 타이틀스폰서 조인식에 수염을 기른 채로 등장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존 대한민국 남자 중 최장신이다.[6]

2. 선수 생활

2.1. 아마 농구 시절

파일:하승진 삼일상고 시절.jpg
아버지 하동기 씨도 농구 선수였고, 누나인 하은주 역시 농구 선수인 농구 집안이다. 삼일상고 1학년 때 이미 키가 2m 15cm였고, 삼일중 시절부터 그를 본 삼일상고는 온갖 노력 끝에 기어이 그를 같은 재단인 삼일상고에 넣는데 성공했다. 고교 농구에 갑자기 등장한 키 2m 15cm의 거인의 출현의 결과는? 고교농구 정ㅋ벅ㅋ. 창단 이래로 36년 간 전국대회 우승이 없던 삼일상고는 하승진의 효과를 앞세워 고교 농구를 초토화시켰다.

하승진 자신은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이미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농구 유망주가 되었다. 사실, 지금의 하승진의 키 221cm는 NBA 센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루키 시즌 기준으로 숀 브래들리(228), 야오밍(226), 파벨 포드콜진(226) 다음으로 컸다. 하승진과 같은 키인 221(7ft 3in)로 표기된 선수로는 지드루나스 일거스커스가 있었다. 역대 족적을 남긴 센터들과 비교하면 샤킬 오닐보다 5cm 크고 카림 압둘자바보다는 2cm 클 정도. 다만 랄프 샘슨 보단 3cm[7], 야오밍보다는 5cm 작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부터도 NBA 도전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그 자신도 그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우월한 사이즈를 그냥 둘 수 없던 대한민국 농구계는 고교 3학년 때, 이미 하승진을 국가대표로 발탁하기도 했다.

일단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김태술, 양희종과 함께 연대의 전성기를 만들어 낸 후, 연세대 1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응시했다. 당초 높은 순번에도 지명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일천한 경험이 문제가 되며, 결국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이 드래프트에서는 상당히 많은 거인형 센터들이 지명되었다. 야오밍이 성공한데다 샤킬 오닐이 아직 위력을 발휘하던 시점이라 몸빵형 거인들의 수요가 있었던것, 1라운드 21순위 파벨 포드콜진 226cm, 후에 서울삼성에서 뛰었던 피터 존 라모스 222cm 2라운드 3순위 그리고 하승진 221cm 2라운드 27순위로 3명 참고로 이 드래프트의 전체 1순위는 드와이트 하워드이고 후에 KCC에서 같은 팀으로 뛰게 되는 안드레 에밋이 2라운드 6순위로 지명되었다.

2.2. 폭풍 2도움의 시절 - NBA

파일:attachment/하승진/stormha.jpg
스타스크림 이소룡 여대생 기사내용이 뭔지는 묻지 말자.

2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 치고는 비교적 후한 3년 계약을 맺으면서 NBA에 첫 발을 내딛나 했지만, 개막과 동시에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NBDL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했다. 다행히 시즌 중반에 로스터에 합류하는가 싶더니 부상으로 데뷔가 연기되어 결국 데뷔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했는데, 첫 경기에는 별 다른 기록을 내지 못하다가 두 번째 경기에 이르러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도움 2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 기록을 남겼다. 그 때 남긴 전설적인 짤이 바로 위에 나온 폭풍 2도움(...).

첫 시즌에 가바지 타임 위주로 뛰면서 커리어를 이어 갔지만, 부족한 면이 많았다. 애당초 기회를 잡기가 애매한 상황. 그러나 사실 냉정히 말하면 하승진은 실력에 비해서는 기회를 꽤 얻은 편이다. 당시 포틀랜드는 팀성적도 형편없었고 쓸만한 센터는 조엘 프리저빌라 뿐이었다. 백업센터로 블럭의 달인 테오 래틀래프가 있긴 했지만 그는 부상에 허구헌날 시달리는 터라... 결국 2005-06시즌엔 그 직전 시즌 경기당 1.4점 넣은 하승진이 4경기동안 주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종 성적은 1년간 0.2점 올라 평균 1.6점(...) 리바운드는 0.8개에서 1.6개로 급등(?)하긴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즌이 끝나기만 하면 살이 찌는 등 몸관리를 못해 다음 시즌 트레이닝 캠프에서 매 시즌 부상을 입은 것. 포틀랜드가 아무 성과도 못내던 하승진을 2년이나 지켜본 건 맨발 221cm라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때문이었지만 결국 포기한 것은 몸관리가 전혀 안되는데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질적 몸관리 실패는 KBL에서도 이어졌다. 본인은 이게 본인의 거대한 체격 때문이라고 항변한 바 있으나, 서른이 된 최근이라면 몰라도 20대 초반부터 몸무게 관리조차 안 됐다는게... 사실 하승진이랑 비슷하거나 더 부상이 심했던 아비다스 사보니스나 빌 월튼도 살을 못 빼서 다친 적은 없고, 만30세에 시즌 아웃됐다가 복귀한 후 시즌의 반의 반도 소화 못하고 다시 다쳐 은퇴한 야오밍도 몸무게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은 없다.

결국 한 시즌을 뛴 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가 바로 방출되면서 허무하게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NBDL에서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가게 되었다.

NBA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기록한 13득점 5리바운드 1스틸.

어쨌든 하승진의 미국행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인도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NBA가 결코 우월한 키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없는 괴수들의 천국임을 다시금 보여 주기도 했다. 사실 숀 브래들리(229cm), 게오르그 뮤레산(231cm) 등 백인 빅맨들과 매뉴트 볼(231cm), 랄프 샘슨(225cm)같은 흑인 빅맨들도 230 가까이되면 오히려 피지컬과 기량면에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롱런하지 못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선수가 동양인인 야오밍(226cm)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지만 그도 위에 나온 랄프 샘슨처럼 기량은 출중했으나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롱런하진 못했다. 윌트 체임벌린부터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하킴 올라주원, 아티스 길모어, 샤킬 오닐, 카림 압둘자바, 디켐베 무톰보까지 대부분의 전설급 센터들의 키는 213~220 사이.

참고로 레지 밀러와 함께 페이서스를 강팀으로 만든 네덜란드 센터 릭 스미츠도 220이 넘었다. 물론 전설급 센터는 아니었어도 올스타에도 뽑혔고 파이널에도 이끈 강팀 센터 역할은 충분히 했다. 위 선수들은 NBA 역사 70년 동안 나온 그야말로 레전드급 센터들이고 그 많은 센터들 가운데 0.1%미만 극소수 초엘리트 레전드들이다. 야오밍, 릭 스미츠 같은 센터들은 220이 넘었지만 야오밍은 국제대회,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 거리 등 으로 관리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으로 선수 생명이 짧아진 것이다. 반면 스미츠는 페이서스의 출장시간 관리(평균 30분 내외, 당시 NBA 주전선수는 대부분 30분대 후반 40분 초반 기록)로 비교적 건강하게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 물론 너무 큰 키는 기동력, 관리에서 큰 약점이 있지만 그에 앞서서 하승진 선수가 아직은 nba레벨이 아닌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승진이 너무 키가 커서 관리가 힘들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가 NBA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초장신이 아니라 213cm 정도의 평범한 센터키였으면 NBA에 입성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7풋 전후에 뛰어난 운동능력과 기술적 완성도를 겸비한 센터들은 NBA에 넘쳐나기 때문.[8][9]

그리고 하승진 자신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팀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 역시 사실. 하승진의 진출에 자극을 받은 방성윤미국 진출 시도나 최진수의 농구 유학은 부수적인 효과이기도 했다.

어쨌든 귀국을 결심하고 2008년 드래프트에 신청하면서 하승진의 미국 생활은 막을 내렸다.

2.3. 전주 KCC 시절

파일:하승진을 뽑은 허재.jpg
하승진의 드래프트 참가 선언으로 그렇지 않아도 인재들이 많다고 소문난 2008년 드래프트는 더욱 치열해졌다. 행운의 1순위를 가져간 팀은 바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즌 초반에는 KCC는 엄청 헤맸다. 하승진도 공백 때문에 기량 발휘가 잘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장훈과 롤이 겹치면서 출전 시간 문제가 생기게 된 것.

파일:하승진과 서장훈.jpg
빅맨을 동시에 기용해 더블 포스트 체제를 구축하면 하프코트 오펜스에서는 확실한 효과를 보일 수 있다. 두 선수는 KBL에서 가장 거대하고 힘좋은 선수들이고, 특히 하승진은 상대 외국인 선수조차 1대1로는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체격이다. 공격범위로 따져도 하승진은 골밑, 서장훈은 중거리슛 위주라 겹치지 않는다. 즉, 그냥 정공법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상대를 대놓고 밀어버리는 상황에서는 최강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셈.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 두 선수가 함께 기용되는 한 KCC는 KBL에서 가장 둔하고 느린 선수 두 명을 안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되고, 이러면 속공 및 얼리 오펜스[10] 상황에서는 당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 상대 진영까지 넘어올 시간이면 상대 선수들은 모조리 복귀해서 수비 진영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농구에서 더블포스트를 할때는 한 명이 느리면 다른 한 명은 기동력이 있는 선수로 하는게 보통이다. 예전에 삼성이 했던 서장훈-오예데지의 경우 오예데지의 기동력이 어느 정도는 있어서 가능했던 것.

그렇다면 수비에서는 어떤고 하니, 두 선수 모두 힘은 좋지만 발이 느려서 반드시 골밑에서나 활동해야 하는 타입이다. 외곽은 비는데 덩치 두 명이 골밑에서 부대끼는 최악의 상황... 이러면 결국 둘이 로테이션으로 나와야 하는데 국내 빅맨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들을 이렇게 기용하는 건 비효율의 끝이고, 팀 차원의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선수 개개인의 불만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하승진은 시즌 중반에 허재 감독에게 항명으로 비춰지는 행동을 하며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이는 허재 감독이 잘 참고, 하승진을 달래면서 일단 수습. 하승진 자신도 그 뒤로는 수그러드는 행동을 보이면서 역시 자제했다. 그리고 서장훈을 트레이드시키면서 하승진의 입지를 살려주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KCC가 연승을 달리면서 항명 파동은 잊혀졌고, 정규시즌 3위로 시즌을 마친 KCC는 업셋을 거듭하며 2008-09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했다. 하승진의 가세는 무엇보다 KBL에서 별다른 적수를 찾기 힘든 우월한 신체조건 때문에 KCC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이를 반증하듯이 KCC는 하승진 합류 이후,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기록했다. 다만 2009-10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챔프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모비스에게 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다만 이 시즌에서 하승진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거의 매 경기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수준급 용병인 레더와 아이반 존슨까지 가세하여 이 때의 KCC는 이길 팀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놈의 부상만 아니었어도.

사실 하승진은 정규 시즌에 부상이 잦은 편이라서 정규 시즌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선배인 서장훈김주성이 정규 시즌 MVP를 2회씩 수상한 것과 비교해 볼 때, 특히 이 두 선수가 2년 만에 첫 MVP를 수상한 것과 비춰볼 때는 분명 정규 시즌 활약은 기대만큼은 아닌 모습.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사실 그렇게 잦은 편은 아니다. 다만 워낙 신체조건이 남들과는 달라 한 번 다치면 회복 속도가 늦은 편이고, 다시 코트에 복귀했을 때는 기량이 리셋되어 나온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는 것. 하승진 본인도 이에 대해 속상하다는 심경의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왔을 때는 분명 그 키와 높이를 감당할 KBL 선수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용병과 1:1로 매치업이 가능한 몇 안되는 선수이며, KCC가 플레이오프에서 항상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1등 공신이다. 덕분에 KCC는 2010-11 시즌에 다시금 우승을 차지했고, 이 때 챔프전 MVP는 하승진의 몫이었다.

KBL에서의 본인의 커리어 하이는 2011-12 시즌에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기록한 33득점 19리바운드.

그러나 그는 201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나 은메달에 그쳐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1-12 시즌을 마치고 2012년 7월경 결혼한 후 같은 해 7월 26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11] 개인 훈련을 안 하다가 리셋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결혼한 후 느낀 게 있었는지 복무하면서 훈련은 물론 체중 감량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허재 감독도 기대하는 듯하다. 2014년 7월 25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백기 때문에 팬들은 기량에 대해 우려했지만 개막전에서 17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날은 3점 슛도 꽂아넣어 팬들을 충격으로 몰고갔다. 다만 팀은 졸전 끝에 패배했다

그러나 그 후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3초룰 폐지가 하승진에게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상대의 더블팀에 맥을 못추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전보다 체중을 감량해서 그런지 골밑에서 압도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그리고 수비에서는 여전히 발이 느려 상대의 중거리슛에 맥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득보단 실이 더 많은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2015년 1월 1일 새해에 부상에서 복귀를 했으나 리오 라이온스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 골절이 의심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며 퇴장하는데 한 관중이 모욕하자 흥분하여 달려들었지만 주위 경호원들이 말렸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하승진은 이후 라커룸에서 울었다고. 관람객이 했던 말은 욕은 아니었다고 관람객 스스로 밝혔으나 아프지도 않은데 엄살부린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또한 바로 사과하려고 했지만 하승진 관계자들이 하승진 선수가 심경적으로 진정되지 않은 점 때문에 만류했다고 주장.

파일:attachment/abuse.gif
12.9 SK와의 경기에서 동료 김지후한테 머리에 공을 맞는 굴욕을 당했다(...).

2015-16 시즌, 포웰과 에밋, 그리고 꼬꼬마 투가드를 내세우는 라인업에서 홀로 골밑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역부족이였고, 포웰허버트 힐의 트레이드 이후에 부담을 덜고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며 KCC의 정규시즌 우승에 공헌한다. 2월 21일 마지막 경기에서 KGC의 오세근과 찰스로드를 상대로 27분간 24득점(자유투 8/9) 21리바운드를 달성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참고로 이날 기록한 20득점-20리바운드는 국내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한참 20-10을 밥먹듯이 하던 전성기 서장훈도 못해봤고, 이승준도 29리바운드 기록 당시 득점이 모잘라서 실패한적이 있다. 국내선수 부문 리바운드, 블록, 야투율 1위 달성은 덤. 15-16시즌에 줄였던 체중을 다시 늘리고,[12] 2인 출장으로 바뀐 외국인 제도, 안드레 에밋이라는 역대급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며 하승진은 반사이익을 누린 것. 안양 KGC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15.8득점 14.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장악하며 활약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1차전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그 뒤로 이승현의 압박으로 좋은 활약을 못 보여 주고 있다. 3차전에서는 그 큰 키로 덩크를 실패하기도... 림 유어 페이스 식물 농구 뿌리깊은 하승진

챔피언 결정전 평균 8.7득점 8.7리바운드(4.8공리) 필드골 48.9%를 기록했다. 크게 나쁜기록은 아니지만 4강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 기록이기도 하고, 이승현에게 공수 모두 고전한데다 오리온스의 스피드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등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는 상대팀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을 칭찬해야 마땅하다. 하승진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골밑 내의 파괴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승현을 필두로 헤인즈, 장재석, 최진수와 같은 장신 포워드들을 포진시켜 슛을 방해하거나, 공격/수비 리바운드를 내주지 않기 위한 적극적인 리바운드 및 도움수비 가담을 통해 KCC의 장점이었던 리바운드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KCC에도 송교창, 정희재, 김태홍 등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긴 하지만 오리온의 장신 포워드진에 비해 출장시간과 특장점이 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감독, 선수들의 경험이 부족했다는 점이 관측되어 이는 비시즌 동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었던 정희재는 입대영장을 받게 될 듯하다. 교창이가 쑥쑥 커야 할텐데....

2016-17 시즌 시작 전에 부상을 당했고 몇 차례 부상을 참고 뛰었지만 오히려 팀에 마이너스만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알고보니 왼쪽 발목 인대부상을 당했고 결국 시즌 아웃을 당했다. 그리고 본인의 향후 선수 생활을 위해 그동안 좋지 않았던 왼쪽 발목 뼛조각 수술을 했다.

2017-18 시즌에서는 이정현 영입으로 5억 5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연봉이 크게 삭감되었다. 시즌 전부터 본인의 몸 상태가 괜찮다며 간만에 건승진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렸으나... 팀이 2연패에 빠졌고 에밋의 독단적인 플레이와 감독의 무능, 팀원들이 살지 못하는 모래알 조직력으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팀은 2연승을 달성, 하승진 본인도 NBA 동기인 에밋과 함께 공수에서 핵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모비스전에서는 16득점 18리바로 국대 후배인 이종현을 압살하는 모습을 보이며 건강한 하킬 모드가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2018년 2월 3일 원주 DB와 경기 때 몸싸움 과정에서 팔꿈치로 한정원을 가격해 쓰러지게 했고, 게다가 한정원이 하승진보다 1살 더 많다 7일 제재금 100만원을 부과받았다. 벤슨유니폼을 찢고 제재금을 500만원을 부과받은 것에 비교하면 어처구니없는 일.

54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에 성공했다. 시즌 기록은 9.74 득점, 8.46 리바운드.

6강 플레이오프에선 전자랜드를 만나 5경기 19분 출장, 9.6득점, 6.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16득점 - 13리바운드 - 3블록로 활약한 1차전도 있었지만 하승진이 코트에 있을 때 지역방어를 쓰다가 상대팀의 3점과 컷인이 자주 터지고 생각보다 리바운드 단속도 되지 않으며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었다. 최종전인 5차전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2명 뛰는 2,3쿼터에 아예 출전하지 못했지만 출전할 때는 맨투맨으로 브라운을 막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 SK가 기다리고 있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주로 김민수를 상대로 9.25득점, 10.75리바운드를 기록했으나 상대의 외곽과 속공에 고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1차전에서는 마지막에 이정현의 3점슛이 불발된 것을 잡아 곧바로 덩크를 시도했지만 림 옆을 때리는 해프닝이 있었고, 2차전에서는 마지막 작전타임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시리즈 내내 두자릿수 득점 / 리바운드 중 둘 중 하나는 해주었고 이정현과 2:2 공격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김선형의 돌파를 두 번이나 블록하고 야투 6개 중 5개를 성공시키며 손쉽게 10득점을 올리긴 했으나 양팀 모두 100점을 넘긴 빠른 템포의 경기에서 하승진의 존재가 +가 더 많기는 어려웠다. 단적으로 4차전 SK 속공 득점 19점, KCC는 4점에 불과했듯 한계도 명확했다.

2.4. 은퇴

KCC의 황금기 이끌었던 하승진, 개인 SNS 통해 은퇴 선언

2019년 5월 14일, KCC와의 1차 FA협상 때 구단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구단에서 나가라고 했다며 이에 감정이 상했는지 자신의 SNS에 갑작스럽게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 하승진은 이후 타 팀에서 뛸 의사가 없어 은퇴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3. 플레이 스타일

압도적인 피지컬을 앞세워 공격하는 거인형 센터

우월한 신체 조건을 앞세워서 골밑을 장악하고 있다. 다만 스킬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 기름손이라 불릴 정도로 볼 핸들링이나 캐치능력이 부족하다던가[13], 공격 시 위치 선정 면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대표적인 모습. 이 때문에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도 하고도, 국내 무대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잘 하는 편이지만, 솔직히 하승진의 신체 조건이라면 그야말로 KBL을 정복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 사실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큰 키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한계인 기동력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이는 수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도움 수비 이후에 이를 커버해주는 기동력이 현저하게 낮아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대가 발 빠른 센터를 앞세워 가드와의 투맨게임으로 일관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털리는 경우가 많다. 팀이 공격에 실패하거나 턴오버를 범하면 백코트 속도가 너무 느려 거의 100프로 아웃넘버 상황을 내주게 된다. 국제대회에서 상대 장신 선수의 포스트업과 무한 공격리바운드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지만, 한국 대표팀의 팀 컬러인 한 발 더뛰는 압박수비와 어울리지 않아 팀 밸런스가 어수선해지고 만다. 전성기의 김주성은 넓은 수비반경으로 이러한 하승진의 단점을 가려주고 좋은 호흡을 보여줬지만 김주성이 국가대표를 은퇴한 이후에는 마땅한 대체자가 없어 하승진을 쓰기에는 단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

슛도 좋지 못하다. 현대 농구는 센터 포지션도 중거리슛, 나아가 외곽슛까지 던질 것을 지향하는데, 하승진은 골밑을 벗어나면 별다른 득점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자유투 성공률도 그리 좋지 않은 편인데 프로 데뷔시즌 초반에는 한때 20~30%대의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자유투 라인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14] 심지어 2008년 12월 2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자유투가 에어볼(!!!)이 되는 촌극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15] 그 와중에 쓴 웃음을 짓는 허재 감독의 표정이 압권 50% 안팎의 성공률이라 정규 시즌 연장 접전에서 자유투 1구를 성공시키고는 그야말로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선보인 적도 있다.

결국 이런 단점들은 팬과 전문가들이 하승진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농구가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거물급 센터임은 사실이다. 일부 팬들은 키빨이라고 폄하하지만 몸 상태가 좋던 시기의 하승진은 리그 최고 수준의 빅맨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하승진은 그 키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선수이다. 국내선수는 국내선수끼리, 외국인선수는 외국인선수끼리 매치업 되는 KBL에서 거의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용병과 매치업이 가능한 선수'라는 것 자체가 국내 선수로는 막기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대회에 자주 불참하는 것과 키빨이라는 것을 과대평가의 근거로 삼기도 하는데, 키가 220cm를 넘어가는 거인형 선수 자체가 매우 부상이 많아 30줄 이전에 은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하승진은 30이 넘도록 뛰고있으며, NBA 다음으로 경기수가 많은 KBL의 정규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거인형 선수중 역대급의 내구력을 자랑하던 야오밍이 리그와 국대를 오가며 혹사당해 조기 은퇴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부상과 몸 상태로 인한 국제대회 불참이 아쉬움일 수는 있지만 과대평가의 근거가 되기엔 부족하다. 키빨이라 폄하하는 것 또한 농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키가 크면 매우 유리한 종목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분명 피지컬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한계가 존재하지만, NBA에서조차 기술적으로 부족하지만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뛰었던 선수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키만 크고 다른 재능이 없다고 하는데, 농구에서는 키 자체가 훌륭한 재능이다.

언변이 좋아 인터뷰를 잘하는 선수이고, 포효하는 등의 세레머니나 팬들과의 소통 등 그간 KBL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형으로 스타 기근에 시달리는 KBL에서 유니크한 선수임은 분명하다.

공익 근무 이후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체중을 130kg대까지 줄이며 약점이던 기동성과 부상을 보완하고자 했으나, 공익근무기간 중 수비자 3초 규정이 폐지되면서 예전처럼 포스트업할 여건 자체가 줄어든데다 이전과 비교해 파워까지 떨어지며 골밑 공략에 어려움을 겪은 것, 도움수비를 가거나 하승진이 자리잡지 못하게 방해하는 전술들만 나와도 맥을 못 추고 수비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중장거리 점프슛을 갖춘 빅맨들이 제법 되기 때문에 2:2 수비에서 리커버리가 늦거나 골밑 외엔 수비가 안되는 하승진은 이런 빅맨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상대 입장에선 노마크에서 롱2를 던지는것과 비슷한 상황. 이전에는 강병현, 추승균, 에릭 도슨, 아이반 존슨 등 수비 이해도와 활동반경이 넓은 선수들이 하승진의 단점을 잘 가려줬지만 지금은 그러한 선수들이 없다보니 하승진의 단점이 부각되어 보이는 상황. 그러나 15-16시즌 뛰어난 선수들의 가세와 더불어 파워를 늘리며 골밑에서 활약하며제 2의 전성기를 펼치며 팀을 정규시즌 1위, 결승무대 진출에 공헌했다. 하지만 저 단점들을 날카롭게 파고든 고양 오리온이승현, 김동욱, 조 잭슨을 필두로 높은 BQ를 이용한 패스 전개 및 빠른 템포의 공격을 가져가 페인트 존을 뒤흔들고 외곽을 집요하게 공략하여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팀이 준우승에 머물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결론을 짓는다면, 공격력 수비력 모두 최고 수준이 아니라는 점. 하승진이 우승한 시절과 달리 불과 몇 년만에 KBL 자체도 바뀌었고 스트레치 포워드가 더욱 중요해진 현대 농구에서는 그다지 좋은 스타일의 센터가 아니다. 분명 볼이 잘 투입만 된다면 20득점을 할 수 있는 센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볼 투입을 위해 자세를 잡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며 나이를 먹은 뒤는 설령 잘 투입이 되더라도 쉬운 득점도 놓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단 시야도 좁은 편이라 안으로 들어가도 다시 나오는 타이밍이 늦거나 없는 경우도 많다. 경기를 보면 오히려 리바운드나 스크린 위주의 플레이가 더 필요하지 필수 공격 옵션으로는 그다지 메리트가 있는 선수가 아니다.[16]

4. 트리비아

아버지인 하동기도 203cm의 키에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다. 물론 키가 크다는 이유로 평균신장이 너무도 낮았던 당시 대표팀에 뽑힌 것이고 소속 실업팀에서도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키만 컸지 운동신경과 유연성은 절망적이라 당시 이미 50을 넘겼던 민관식 대한체육회장과 100m 달리기에서 아주 여유있게 패배한 쓰라린 기억도 있다. 더군다나 민관식 이 양반은 운동선수를 전혀 안 해본 문돌이 출신 행정가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에서 하동기의 큰 업적은 당시 대표팀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김동광이 중국팀의 240cm짜리 괴물 목철주에게 거칠게 파울을 한 뒤 빡친 목철주가 김동광을 찢어죽일 기세로 달려들자 당시 대표팀 감독이 다급하게 하동기에게 네가 제일 크니깐 빨리 목철주를 막으라고 지시를 내리고 하동기는 죽을힘을 다해 목철주를 붙잡고 말렸다고 한다. 하동기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때 자기가 목철주에게 맞아죽는 거 아닌가 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어쨌든 제일 크다는 이유로 목철주를 맞상대한 덕에 김동광의 목숨을 살렸으니 밥값은 충분히 한 셈.

NBA 진출 당시 하승진의 통역 및 트레이닝을 도와준 트레이너는 前 LG 트윈스, 現 KIA 타이거즈배요한 코치이다.

2019년 6월 7일 프로야구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 아내와 함께 직관을 한 장면이 SBS SPORTS 생중계 화면에 나왔다. 황재균과 친분이 있는듯.. 머리띠는........#




[1] 한국농구 역대 최장신이자 현존하는 한국 최장신. 착화신장 기준으로 NBA에서는 7피트3인치(221cm)로 나왔었다. KBL 드래프트 당시 잰 맨발 키 측정때는 정확히 221.6cm.[2] 체중 역시 몸상태에 따라 계속해서 바뀐다. NBA 시절에 한 때는 153kg까지 나간 적도 있다.[3] 2010-2011 시즌에 잠시 31번을 단적이 있는데 이유가 모교인 삼일상업고등학교를 뜻하는 이유로 달았으나 얼마 안 되어 다시 회귀하였다.[4] 삼일상고 3학년이던 2003년 하얼빈 아시아선수권 대회 때 처음 선발되었으나,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 기존 빅맨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경험 축적 차원이었다.[5] 2012년 결혼[6] 역대 한국 최장신 중에서도 2위이며, 1위는 대구 달성공원에서 키다리아저씨로 불리던 류기성(1925~1999, 224cm). 현존 한반도 최장신은 북한의 농구선수 리명훈이다. 이외에 장신이라고 소개되던 인물들은 모두 실측자료가 없는 카더라.[7] 그러나 랄프 샘슨은 키 논란이 있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한 명이며 ( http://www.insidehoops.com/forum/showthread.php?t=184657) 실제로 그가 221cm (7피트3인치)로 표기되기도 한 만큼 맨발신장이 221cm를 넘는 하승진보다 그가 클 확률은 적다. 맨발 키가 223cm인 마크 이튼같은 경우 (팔도 길어서 점프안한 상태에서 백보드에 손이 닿는 괴물) 위 사이트에 나온 링크에서도 나오지만 인터뷰에서 샘슨이 자기보다 2인치 작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프로필 측정이 정확히 이뤄진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확한 게 많았다. 샘슨과 트윈타워를 이룬 하킴 올라주원도 7피트로 표기되지만 본인은 6피트10인치라고 밝혔고, 반대 케이스인 빌 월튼은 6피트11인치로 표기되지만 누구나 7피트 2인치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둘이 86파이널에서 붙었을 때 더 작아야할 월튼이 훨씬 커서 기자들을 당황시킨 적이 있다.[8] 하승진의 가장 큰 문제는 기본기 부족이다. 빅맨의 득점이 얼핏 보면 우월한 키를 이용해 골밑에서 자리를 잡고 그냥 올려놓으면 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이 또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프로레벨의 빅맨들은 수준높은 스크린 플레이가 필요한데, 하승진은 기동력이 느리고 덩치가 거대한데 센스가 부족해서 스크린을 잘 못 걸고 자주 걸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로우포스트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의외로 괜찮았다는 것인데, 덩치가 워낙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웬만큼 자리를 잘 잡으면 밀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이 부분의 센스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선정을 잘 해놓고도 패스를 잘 받아서 훅슛이나 골밑슛으로 마무리 하는 능력이 썩 좋은편이 아니기 때문에, 기름손까진 아닐지언정 글루핸드와는 거리가 먼 선수이다. 그럼에도 워낙 덩치가 거대했기에 외국인선수들도 그의 피지컬은 버거워했기에 KBL에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수위급 센터로써 활약할 수 있었던 것.[9] 여기서 문제는, NBA 기준으로도 하승진은 손꼽히는 거구지만 저 힘과 덩치를 버텨내는 선수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NBA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고 무엇보다 운동능력이 넘사벽이기 때문. 예를 들어 하승진의 포스트 플레이는 기술적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아시아권에선 그 체격과 파워만으로 충분히 써봄직한 옵션이다. 그러나 NBA에서는 그가 포스트에서 자리를 잡는 것까진 가능할지 몰라도, 백다운을 해서 득점기회를 창출하는 건 거의 힘들었다. 그가 한 것은 포스트업하다가 패스를 빼주는 것 정도. 득점도 거의 받아먹기 레이업/덩크/골밑슛 뿐이었다. 골밑 득점력이 빈약하기로 유명한 롱리도 그나마 사이즈의 우위를 이용해 훅슛이나 레이업으로 가~~끔 신들릴때가 있었는데 (샤킬 오닐을 상대로 연속으로 훅슛을 먹인 적도 있다) 하승진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롱리는 주전급 센터는 아닐지언정(다만 센터뎁스가 치명적으로 부족했던 2차 쓰리핏 기간의 불스에서는 주전으로 뛸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백업센터 수준의 기량은 충분히 갖춘 선수였다. 즉 NBA 제외 어느 리그를 가든 최정상급 빅맨으로 통할 선수이기에 가비지타임에 주로 출전하던 하승진과는 거리가 있다.[10] 상대 수비진이 짜여지기 전에 공격하는 것.[11] 하승진의 키면 1990년대 중반까지는 5급 판정이 나왔지만 이 분의 아들 덕(?)에 병역판정기준이 강화되면서......[12] 체중을 줄여도 기동력의 문제는 나아지지않고, 되려 파워가 떨어졌다고[13] 특히 낮은 쪽으로 오는 볼은 잘 캐치하지 못한다.[14]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미국 진출 초기에는 자유투가 상대적으로 정확한 편이었다. NBA 데뷔 시절만 해도 포틀랜드 코칭스태프들이 하승진의 장점으로 '정확한 자유투'를 꼽을 정도였다![15] 이어 시도한 두 번째 자유투마저도 실패하는 바람에 이 날 KCC는 결국 다 잡은 경기까지 놓치며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다.[16] 그렇지만 점프 해주지 않을 때 그냥 리바운드 잡아주면 팀에게는 큰 도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