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18:54:53

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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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하 몽골의 활불 복드 한의 모습[1] 몽골의 전통 무술 부흐 복장을 한 몽골인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d480460a09763c744941dc95b79ccfb0.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d9de8dd6bc84f70e13728c845e6fb313.jpg
몽골 전통 복장을 한 몽골인 여성들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인 여성들



1. 개요2. 몽골족인가?3. 특징
3.1. 신체적 특징3.2. 국민성
4. 몽골 국외 거주 몽골인5. 유명 몽골인
5.1. 실존 인물5.2. 가상 인물

1. 개요

ᠮᠣᠩᠭᠣᠯᠴᠤᠳ [mongγolčud], Монголчууд [Mongolchuud] / Mongols

몽골 국적을 가졌거나, 몽골을 모국으로 인식하거나,[2] 혈통적으로 몽골인인 이들을 일컫는 말.[3] 몽골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을 묶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2. 몽골족인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몽골족을 하나의 종족(Ethnic Group)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일 영웅으로 불리는 칭기스 칸이 통합한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등은 실제로는 몽골족이 아니라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투르크)일 뿐이었고, 이후에 몽골로 편입된 위구르, 캉글리, 킵차크, 키타이[4], 탕구트 등도 이 당시 정(正) 몽골인으로 분류된 니룬(귀족), 두릴리킨(평민) 몽골과 달리 한문 사료에 언급되는 '색목인(色目人)'에 가까웠다.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 색목인으로 분류된 각 부족들은 물론 정(正) 몽골인으로 구성된 부족들까지 부족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각지로 흩어졌고, 부하라 한국, 카자흐 한국, 크림 한국, 티무르 제국, 북원, 오이라트 등의 구성 부족이 되었다.[5] 한편 16세기 몽골 고원에서는 다얀 칸이 일시적으로 몽골 고원의 각 종족을 정복하고 6투멘 체제를 정립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종족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몽골인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17세기에 발흥한 이었다. 홍타이지는 여진 제부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릭단 칸의 팽창을 피해 투항한 동몽골의 각 부족을 복속했고, 이후에는 릭단 칸 사후 와해된 차하르를 복속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강희제는 1691년을 전후로 외몽골 지역의 할하 부족들을 복속시켜 나갔고, 옹정제코코노르 일대의 몽골계 부족과 오이라트계 호쇼트 부족 등을 정복했으며, 건륭제는 마침내 준가르러시아 제국에서 남하한 토르구트 등의 오이라트계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기에 이른다.

이후 청 정부는 이들을 '몽골'로 묶어 분류하기 시작했고,[6] 기존의 울루스와 오톡 제도를 파괴한 뒤 팔기제에 준하여 몽골 제부를 181기(旗: 호슌)와 13맹(盟: 출간)으로 재편하고 유목지를 지정했으며, 만주인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몽골인의 문화를 규정하고 투메드의 사간 세첸이 1662년에 저술한 어르더니 톱치(Erdeni-yin tobči)를 번역한 《흠정몽고원류(欽定蒙古源流, Hesei toktobuha enetkek tubet monggo han sai da sekiyen)》 및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伝, Hesei toktobuha tulergi monggo hoise aiman-i wang gung sai iletun ulabun)》을 편찬하여 하나의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이들의 문화적 균질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이 결코 통합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 맹' 혹은 '~ 기' 출신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청이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한족들이 투셰투 칸부 등으로 유입돼 개간을 시도하였고 이에 따라 유목 사회는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몽골로 유입된 한족은 유목민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위협적인 타자와 접촉하게 된 유목민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12년 청의 멸망 이후 북몽골의 탄누 우량카이에 속했던 튀르크어계 투바어가 모어인 투바인들은 현재 스스로를 몽골인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북몽골의 할하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몽골국을 건국했다. 진정한 몽골인으로 분류되지 못했던 오이라트계 부족들 중 중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몽골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7] 그리고 팔기몽고의 후손들은 만주족으로 편입되었다. 결국 몽골인들은 현재까지도 하나의 종족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몽골족이라는 명칭만 보고 처음부터 있던 하나의 종족이라고 간주하면 큰일난다. 실제로 내몽골의 차하르인과 몽골국의 할하인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20세기에 청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서 내몽골이 독립해서 몽강국이 되었을 때도 외몽골 쪽에서 몽강국을 합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아예 할힌골 전투 때는 각자 일본소련의 동맹국으로서 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3. 특징

3.1. 신체적 특징

체형[8]을 제외하고, 얼굴이 한국인과 흡사하다는 평이 있다. 한 몽골인 근로자가 편의점에 갔는데 사람들이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어로 말을 걸었는데 못 알아듣는 그 사람이야 당연히 대답을 안 했고, 그러자 사람 무시하냐고 시비가 붙어 한국인이 몽골인을 때려서 체포된 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몽골 방문 시 "몽골인들은 한국에 오면, 그냥 말만 안 하면 한국인으로 알 것이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한편에선, 한국인들이 몽골인을 한국인으로 착각하는 만큼이나 몽골인들도 한국이나 몽골에서 한국인을 몽골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몽골인과 한국인이 닮았다는 건 또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편견일 가능성도 있는 게, 실제로 몽골인들을 보면 한국인과 어느 정도 구별이 될 정도로 굵은 몸매에 튀어나온 광대뼈의 긴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편으론 몽골인 자신들도 한국인들을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민족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국인과 몽골인이 같은 민족에서 갈라졌다는 얘기는 몽골에서도 유명한데, 간혹 한국인들이 몽골인의 후손이고 많은 한국 문화도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몽골에도 판소리와 유사한 '벤스니 울게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근거로 들어 판소리의 원조가 몽골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부 몽골인에게 퍼져 있다. 그만큼 아전인수적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의 유전적 비교는 학자마다 연구 결과가 매우 상이해 아직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모계 유전을 보여주는 미토콘드리아 염기 서열의 경우 한국인과 몽골인 간 차이는 염기서열 4,000개당 7.8개의 차이점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인끼리의 차이는 7.4개, 몽골인끼리의 차이는 8.1개로 별반 다르지 않아 두 민족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참조 이를 통해 본다면 한국인과 몽골인은 '모계 유전'적으로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부계 유전을 보여주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의 경우는 다른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한국인의 경우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O2b그룹(약 40%)인데 이는 만주족일본인에게서는 보이지만[9] 한족이나 몽골족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룹이다. 또 하나의 주류를 이루는 그룹은 O3그룹인데(약 30%) 이는 중국 한족에게서 70% 정도로 월등히 많이 보이는 그룹이다. O3그룹은 만주족에게서도 약 40%, 몽골인과 일본인에게도 20% 정도 보인다. 반면, 몽골인의 경우는 C3그룹과 C3c그룹이 각각 30%, O3그룹이 20% 정도 보이고 있다. 이 중 C3그룹은 한국인에겐 15% 정도밖에 보이지 않고 C3c그룹은 아예 없다. C3c그룹은 북퉁구스 계통인 에벤키 족에게서 60% 이상 보일 정도다. 이 점으로 보면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아주 가깝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합해 본다면 한국인은 몽골 등 북방에서 내려온 계통과 본래 한반도에 정착해 있던 계통이 융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주로 전자 계통에 있던 여성과 후자 계통의 남성이 결혼해서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자세한 사항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이전 문서처럼 Y염색체 하플로그룹 달랑 하나만 놓고 한국인과 몽골인은 유전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정말로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가까운지 먼지는 좀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가깝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이나 혹은 멀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이나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놓고 주장한 게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다만, 최근의 국제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7700년 전 '북방 고대인'과 '베트남·대만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때에 지금 한국인들의 유전자 특성이 가장 잘 표현된다고 한다. 울산과기원(UNIST) 게놈연구소 등 국제연구진, 7700년전 고대인 게놈분석 울산과기원, 신석기시대 게놈 해독… 유전적 뿌리 첫 규명 이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사모예드족여진족이고 그 다음이 일본인 > 만주족 > 시버족 > 코리약족[10] > 다우르족[11] > 몽골인 > 한족(북중국인) > 이텔멘족 [12] > 한족(남중국인)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반도보다 훨씬 북쪽에, 그것도 러시아보다도 더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추위에 강하다. 한국에 오면 한국인들 다 추운데 혼자서 덥다고 할 정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밤이 추운 가을에도 에어콘 바람을 직접 쐬면서 팬티만 입고 이불도 없이 창문을 열어 찬 밤 공기 속에서 잔다.[13]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환경적인 요인 덕분에 시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다. 재산과도 같은 양과 같은 가축은 늑대와 같은 맹수의 먹이로 희생되는 일이 많기에 이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므로 시력이 좋아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몽골에 방문했던 한 교수는 갑자기 저 멀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어어이~" 하며 목청을 울리는 몽골인을 보고 토속적인 관습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몽골인들의 절반가량이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살고 있고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보통의 대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또 석탄으로 난방을 해서 공기가 매우 나쁘다. 그 때문에 요즘은 몽골인들 중에도 안경 쓰고 렌즈 끼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예시로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이 안경 착용자다. 아직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울란바토르에 사는 사람들은 시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자신들이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믿는 몽골인이 많다. 실제로 과거 몽골제국의 영토에 사는 현세대 민족 중 칭기즈 칸의 후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8%에 달하며 이는 1,600만 명이라는 대인구다. 실제 칭기즈 칸의 유전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동일 Y염색체를 가졌으며 약 1천 년 전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정확히 얘기하자면 칭기즈 칸 본인 하나의 유전자라기보다는 칭기즈칸 가문의 유전자. 그리고 칭기즈칸 유전자라 불리는 유전자는 만주, 중국 북부, 고비 사막, 바이칼,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북부 등지에 폭넓게 분포해 있다.

3.2. 국민성

국민성의 경우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을 하는 특성상 대체적으로 터프하지만 순수한 편으로 돌려말하기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빈말이란 개념도 없어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는 일본과는 정반대. 유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여행자 같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편. 한 사례로 몽골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생의 경험에 따르면 홀로 버스를 타고 몽골시내 곳곳을 여행하였는데 탑승하는 승객들이 모일 때마다 항상 시끌벅적했다고. 보이는 사람마다 대화와 관심을 비춰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고성방가는 기본 당연히 그 교환학생도 뜨거운 관심과 대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때에 따라 버스 안에서 술판, 춤판, 합창판이 되기도 한다고.

더불어 신세를 지거나 하면 반드시 갚는다. 매우 터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이드와 친해지면 몽골에서 겪는 위험한 상황 대부분은 넘길 수 있다. 다만 거꾸로 원수를 지면 잊지 않고 두고두고 보복한다는 말도 있다. 몽골인에게 모욕을 주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14] 뭐 어디나 안 그러겠냐만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몽골인들을 떠올리면 쉬울 듯. 다만 터프한 게 지나치다 보니, 몽골인 근로자들이 외국에서 문제 일으켜 국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경우가 많다.[15]

그러나 최근엔 몽골의 경제 사정이나 도시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겹친 데다, 몽골의 치안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몽관계를 참조 바람.

요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초식남 스타일의 여리여리한 남자를 좋아하는 데 비해,[16] 몽골에선 덩치가 크고 남자다운 스타일이 인기가 좋다. 속칭 근육돼지(데피니션 따윈 필요 없다.)라면 원빈보다 인기가 더 좋다.유퉁[17] 몽골뿐만 아니라 튀르크계의 터키중앙아시아 역시 유목민이라서 남자다운 스타일을 좋아한다. 터키 남자들은 대놓고 한국이나 일본식의 호리호리하고 뽀얀 미남자는 여자로 본다.[18]

술을 매우 잘 마시는 나라로, 소비량, 음용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폭음 문화는 역시 오래된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데, 유목민족들은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초면이더라도 반드시 서로를 지켜줘야 했고, 아무리 바빠도 상대가 술을 건네면 마셔야 했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스텝지역, 사막지역에서 인간은 동물이나 자연환경등과 싸워야 했고 인간끼리는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낮에 인적 없는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돕고 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밤에 잠 들 때, 한 명이 몰래 상대의 말이나 양 들을 몰고 도망가 버리면, 남은 한 명은 죽게 된다. 그러자니 서로 못 믿고 잠 안 자고 버티면, 둘 다 피곤하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모두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잠 드는 것이었다. 술이 주는 특유의 고양효과로 어색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 유목민들이 자신의 아내를 손님에게 하룻밤자리를 내어주는 문화까지 생각하면 손님이오면 그야말로 술과 섹스로 그날밤을 마무리. 이 문화는 제국을 설립한 이후 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국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은 중국인, 고려인[19], 페르시아인 등 타민족과의 공식석상에서도 상식을 초월한 폭음을 즐겨 피지배 민족을 경악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드넓은 초원에서는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술을 마셔도,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숙취와 함께 깨어나도, 이곳은 초원이어서 공기도 좋았고, 어차피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이런 기후에서 양 떼를 이동하는 것이, 꼭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에 꾸준한 승마와 육체노동을 해서 건강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 설립 이후에는 이들은 점령한 대도시의 궁에서 살았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자기들끼리 거의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는 또 숙취 때문에 지도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안 했다. 그러니 제국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피지배민들이 불만이 쌓였는데... 또 그렇게 술은 마시고, 귀족이라고 따로 운동은 하지 않았으니 체력도, 전투력도 엉망이 되었다. 이러니 제국이 유지될 리가... 거대한 원 제국의 몰락 원인을 주둔 병사들의 알콜 중독으로 보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술 좀 마신다 하는 한국인들도 몽골에 가선 그냥 발리는 편. 러시아와 가까워서 40도 이상가는 보드카를 주로 많이 마시기 때문에 20도짜리 소주 마시던 한국인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아예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의 경우 술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냥 비유가 아닌 게, 몽골에 여행 간 한국인들이 마지막 날 뒷풀이를 하려고 맥주를 잔뜩 쌓아놓고서는 몽골 현지인 가이드에게 같이 술 먹자고 하자, 몽골 현지인 가이드가 하는 말이 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다. 당신 눈앞에 있잖아! 다른 예로는 술을 전혀 못 한다는 한 몽골인이 맥주를 물처럼 마시자, 의아한 한국인이 술 못 하신다면서 맥주는 어떻게 드시나요??라고 물으니까 "맥주는 술 아니에요."라고 했다고 했다나. 다만 요즘은 알콜중독이나 폭음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그러나 몽골 자체가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국민성이라는 개념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몽골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4. 몽골 국외 거주 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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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골인들은 중국과 대립하는 감정이 있으며, 아울러 내몽골인이나 자국 내 튀르크계 카자흐인은 더욱이 혐오한다. 중국 정부는 내몽골자치구와 내몽골인부터 칭기즈 칸을 더욱이 외몽골인들도, 중화민족이라는 식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명분으로 삼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떡밥이지만, 중국 정부의 통합 노력과는 별개로 내몽골의 몽골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족과는 절대 다른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몽골계 중국인이다.

내몽골과 외몽골, 즉 독립국 몽골국과 내몽골자치구 간의 갈등의 근원은 부족의 차이인데 명나라 중기 몽골이 다얀 칸의 통치 아래 6부족으로 정리되었는데 내몽골은 이들 중 차하르 부족, 외몽골은 할하 부족이 조상이다. 양 몽골은 원나라 멸망 이후 북원과 오이라트로 갈려서도 서로 쌈박질을 해서, 오이라트가 고비사막을 넘어와 내몽골을 털거나 반대로 내몽골의 북원이 고비 사막을 건너 외몽골을 털고 정복하는 역사가 계속 반복되었다. 청나라의 건국 뒤에도 내몽골은 만주의 칸을 인정하여 호흡을 계속 같이 해온 반면, 외몽골의 할하나 오이라트는 이를 불인정해서 청 건륭제 때에야 복속되었다.[20]

일단 이 문서는 독립국 몽골국의 국민 90%를 차지하는 할하 몽골인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몽골국에는 몽골인 말고 소련 시대에 이주한 러시아인도 있는데, 인종부터 백인인 데다 정교회를 믿는 이들은 당연히 몽골인과 사이가 아주 안 좋고 몽골어도 모른다. 몽골인들은 러시아인을 침략자로 보는데, 또다른 이웃 국가인 중국의 한족에 비하면 러시아인의 이미지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이슬람을 믿는 5%의 튀르크계 카자흐인 및 키르기즈인도 있으며, 외몽골 서부 호브드 아이막에 산다. 튀르크인들 역시 몽골인과 사이가 나쁘며 그래서 몽골카자흐스탄 간 은근한 신경전이 있다.

최근 터키도 몽골에 관심을 가지면서 터키인도 늘어났다. 울란바토르에 대규모 터키 공동체가 있으며 이들은 그나마 몽골인이 우호적으로 대한다. 터키가 중앙아시아 튀르크 종족들의 큰형님을 자처하여 카자흐나 키르기즈, 위구르 등 외몽골 내 튀르크인들을 비호하긴 하지만 딱히 몽골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고, 몽골인 스스로가 "중국인이나 러시아인보단 터키인이 낫다"고 할 정도이다.

5. 유명 몽골인

5.1. 실존 인물


위의 인물들 중 티무르튀르크인으로 모계가 칭기즈 칸의 일족이지만 몽골튀르크는 형제나 다름없이 가까운 종족이라 진작 섞였다. 티무르는 페르시아인 피도 섞여서 용모는 페르시아계 백인 내지는 혼혈인으로 추정된다. 그의 6대손이 무굴 제국을 건국한 바부르이다. 물론 둘 다 몽골어는켜녕 터키어도 몰라 페르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했다. 그래서 티무르는 몽골인 위인이 아닌 튀르크 위인으로 봐야 타당하다.

대부분 몽골 제국, 원나라 시대 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원 멸망 이후 몽골은 약체화, 소수민족화 되었기 때문이다. 내몽골은 차하르가 후금에 복속되어 이후 청의 외척으로 나름 중요한 세력이었다만 인물은 별로 안 나왔고, 외몽골은 준가르 최후의 명군인 가르단이나 체왕 랍탄 등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족속 자체가 지리멸렬해져서 몽골인민공화국 (현 몽골국) 건국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5.2. 가상 인물

※ 해당 국가 작품 제외


[1] 과거 몽골을 다스렸던 법왕(젭춘담바 후툭투)으로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환생으로 제위를 계승하는 특징이 있다. 복드 칸은 8대 젭춘담바였는데, 참고로 역대 젭춘담바들은 1대와 2대를 제외하곤 모두 티베트 출신이다. 복드 한도 사실 티벳인 출신이다.[2] 몽골 서부에는 카자흐계 유목민도 많이 산다.[3] 중국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몽골인들 또한 국적만 중국일 뿐 민족은 몽골인이므로 여기에 포함된다.[4] 한어를 할 줄 아는 자는 한인으로 분류되었다.[5] 17세기에 히바 한국에서 활약한 나이만 부족과 병자호란에 동원됐던 나이만 부족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6] 오이라트는 청 황실이 분류하는 진정한 '몽골'으로 분류되지는 못했다.[7]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연방 칼미키야 공화국, 몽골 서부의 홉드(Ховд)와 웁스(Увс) 아이막에 거주하는 오이라트인들은 몽골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재자 윰자깅 체뎅발이 웁스 아이막에서 출생한 토르구트인이다.[8] 팔다리가 길고 곧은 사람이 많다.[9] 참고로 일본인의 주류 하플로그룹은 O2b와 D그룹인데 D그룹은 한국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룹이다.[10] 캄차카 반도 북부에 살던 민족이다.[11] 거란족(요나라를 새운 그 민족)의 후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2] 캄차카 반도 남부에 살던 민족이다.[13] 이건 과언이 아닌데 몽골인은 추위에 강한 동양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다. 작은 눈은 추위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큰 광대뼈는 열을 보존하는데, 몽골인 중에는 이런 특성을 지닌 사람이 꽤 많기 때문. 또 어깨가 살짝 곡선을 띠는 체형도 열을 보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14] 일부 개념 없는 사람들처럼 경제력만 믿고 거들먹거리다간 큰일나는 경우가 많다.[15] 그 예로 국내에서 외국인 범죄자들 중에서 몽골인들의 비율이 높다. 그 이유가 몽골에서 말보다 싸움으로 해결하는 문화 때문에 외국에 와서도 그걸 못 버려서 싸움질 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괜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 몽골 정부도 이런 범죄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16] 나라별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하다. 대체적으로 일본이 가장 극단적인 꽃미남 스타일이고, 중국은 좀 더 남자다운 스타일을 선호. 한국은 예쁘지만서도 살짝 남자다운 면을 갖춘 중간 정도를 선호.[17] 이는 북방계 민족이라 뼈가 굵고 덩치 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18] 한 예로 에네스 카야가 고향 친구들에게서 "너 요즘 한국에서 굶고 다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19] 고대 삼국시대 한족들부터 근대 서양인들까지 한결같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평한 민족이 이런 평가를 내릴 정도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인 것.[20] 이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에 몽골의 경우는 딱히 분단국가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도 몽골은 통상적인 의미의 "분단국가"에 속하진 않는 것으로 보는 게 훨씬 일반적이다.[21] 이해고에게 전사당하는 돌궐족장[22] 고려에서 사신으로 등장한다.[23] 칭기즈 칸의 후예이자 몽골의 공주라고 한다. 왕정은 폐지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