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2 20:13:35

탕우타이

Tangwutai
(? ~ ?)

여몽전쟁 시기 몽골 제국의 장수로, 고려 측 사서에는 당고(탕쿠, 唐古, tanggu), 《원사》에는 당올(唐兀), 당올태(唐兀台), 당올대(唐兀臺)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1231년 8월에 몽골의 사신인 저구유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탕우타이는 원수인 살리타이를 따라 고려를 침공했다. 탕우타이는 푸타우(포도), 디주(적거)와 함께 서로군을 이끌며 남하하다가 동선역 전투에서 채송년이 이끄는 고려군을 기습했지만 이자성, 이승자, 노탄 등의 항전으로 패배했다.

동선역의 패배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해서 살리타이와 합류한 탕우타이는 안북도호부에 주둔하다가 11월 29일(12월 24일)[1]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3군과 함께 개경을 포위했으며, 포리에 진을 쳤다. 살리타이가 고려에 강화 제의를 한 후, 12월 16일(1월 9일) 고려 조정으로부터 사신으로 온 회안공 왕정의 선물을 받았다. 12월 26일(1월 19일)에도 고려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에게서 선물을 받았으며, 고려와의 싸움이 귀주성과 자주성 등의 항전으로 장기화되어 강화를 맺자 살리타이와 함께 1232년 4월에 철수했다.

그러나 8월에 다루가치에게 욕보였다는 것과 강화로 수도를 천도한 것 때문에 원수인 살리타이를 따라 고려를 또다시 침공했다. 12월에 살리타이가 처인성에서 전사하자 철수했다가 1235년에 고려에서 원나라로 귀순한 동경총관 홍복원의 도움을 받아 용강, 함종 등 10여 개 성을 함락하면서 경상도를 침입했다.

1236년에 전라도, 1237년1238년에 걸쳐 경상도의 경주로 침입하여 황룡사를 불태웠다. 고려의 군민들이 온수군, 죽주 등에서 항전하면서 1238년 12월에 고려 조정에서 장군 김보정과 어사 송언기 등을 사신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하자 1239년 4월에 국왕의 출륙을 요구하면서 철수했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 국왕 대신에 신안공 왕전을 보냈으며, 1241년 4월에는 이시(伊恃), 합라(合剌), 아질(阿叱) 등 4명, 8월에는 이시, 합라, 아질 등 8명의 사신을 고려에 파견했다.


[1] 이하 괄호 안의 날짜는 모두 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