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17:52:10

독발부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d91e31> 민족
산융·동호† <colcolor=#000,#fff>산융† | 동호
선비&오환·거란† 선비(모용부 | 단부 | 우문부 | 탁발부 | 독발부 | 걸복부 | 하란부 | 철불부 | 독고부 | 유연)† | 오환족† | 해족† | 습족† | 오락후† | 거란
몽골족 실위(여러 부족들)† | 모골 | 둥샹족 | 다고르족 | 오이라트(준가르 | 칼미크 | 상몽골인) | 부랴트 | 몽구오르인 | 몽골인(차하르 | 할하)
국가 및 지역
독립국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자치지역 및
다수 거주지
파일:중국 국기.svg 내몽골 자치구 | 중가리아(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 보얼타라 몽골 자치주) |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부랴티야 공화국 국기.svg 부랴티야 공화국 | 파일:칼미키야 공화국 국기.svg 칼미키야 공화국
해당 지리적 인종 동아시아인 | 시베리아 원주민
문화 및 언어
신화 텡그리 신앙, 거란 신화, 몽골 신화, 부랴트 신화
언어 몽골어족 }}}}}}}}}


禿髮部

1. 개요2. 독발부 소속 인물

1. 개요

선비족 집단 중 하나로 하서회랑(서량, 간쑤성) 인근에 거주했다.

시조 독발필고가 성씨로 사용한 '독발'은 원래 '탁발'과 같은 음이었지만, 표기가 갈리면서 부족도 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인 독발수전이 이불에서 태어난 것을 계기로 독발을 성씨로 삼았다.

탁발부와 독발부가 둘로 나뉘고, 각기 세력을 이루었는데, 오호십육국시대때 건국하기 이전까지는 탁발부가 서진의 계략으로 정쟁에 휘말려 약화된 것처럼 독발부도 서진의 공격으로 세력이 한동안 약화되었다.

그들이 세운 국가로는 남량이 있다. 수령 독발오고오호십육국시대비수대전으로 저족의 전진이 몰락하면서 전진의 장수인 여광이 양주를 장악해 후량을 건국하고 독립하자 흉노 등과 함께 여광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장대예와 협력해 후량군과 싸웠으며, 후량과의 대립 과정에서 남량을 건국했다.

탁발부의 북위가 화북을 통일한 후 제7대 고조 효문제 탁발굉의 한화정책으로 탁발씨를 원(元)씨로 바꾸고, 독발부가 동족이라면서 역시 발음이 같은 원(源)씨를 사성했으며 북위 치하에서 황족의 대우를 받았다.

탁발부와 마찬가지로, 현재 러시아의 튀르크계 소수민족인 투바인과 민족명이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tūfǎ''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1]

2. 독발부 소속 인물

  • 독발필고
  • 독발수전 - 선비족의 수령. 독발수기능의 조부.
  • 독발수기능
  • 독발무환
  • 독발추근(禿髮推斤) - 선비족의 수령. 독발수기능의 사촌동생인 독발무환의 손자로 365년에 110세로 죽었다.
  • 독발사복건(禿髮思復鞬) - 선비족의 수령. 독발추근의 아들로 그가 죽자 즉위해 점차 세력을 강화했다.
  • 독발해우(禿髮奚于) - 독발사복건의 아들. 386년에 후량과의 싸움에서 왕목과 함께 30,000명을 인솔해 고장성 남쪽에 주둔했지만 여광의 공격으로 격파당해 참수되었으며, 20,000여 명이 죽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 독발오고(禿髮烏孤)
  • 부혼(苻渾) - 395년에 독발오고가 여러 부의 배반으로 걱정하자 부혼은 사람을 모아 정돈하고 타일러 그들의 죄를 토벌하지 않냐고 하자 독발오고가 여러 부를 공격해 격파했다.
  • 분타(紛陀) - 독발오고의 부하. 394년에 양주를 점령하기 위해 독발오고와 모의했는데, 양주를 뺏으려면 농업에 힘쓰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뛰어나고 현명한 인재에게 예의를 갖추고, 정치와 형벌을 잘 정리한 후에 가능하다고 진언했다.
  • 석진약류(石真若留) - 독발오고의 부하. 394년에 후량에서 독발오고에게 관군대장군, 하서선비대도통의 벼슬을 하사하자 석진약류는 관직을 받아 그를 따르는 척 교만하게 한 다음에 공격할 틈이 생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 석역간(石亦干) - 독발오고의 부하. 395년에 을불부, 절굴부 등 여러 부를 공격해 항복시키면서 석역간이 독발오고의 명으로 염천보를 쌓아 그 곳에 병사를 모았으며, 독발오고가 여광 때문에 근심하는 것을 알고 여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독발오고는 여광이 아닌 여러 부가 배반한 것 때문에 고민한 것이었다.
  • 원하(源賀) - 407~479. 본명은 독발파강(禿髮破羌)으로, 남량의 마지막 군주였던 독발녹단의 아들이었다. 남량이 서진에게 멸망하고 부친이 걸복씨에게 살해당한 이후 북위로 도망하여 귀순했다. 제3대 세조 태무제 탁발도로부터 서평후와 장군직에 원씨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태무제가 하서 원정을 나갈 때 선봉으로 활약하여 북량 정벌에 공헌했다. 환관 종애가 국정을 농단하여 세조 태무제, 동평왕 탁발한, 남안은왕 탁발여 등을 시해하자 다른 대신들인 유니, 육려, 장손갈후 등과 함께 들고 일어나 간신 종애를 처치하고, 태무제의 황태손인 탁발준을 제5대 고종 문성제로 옹립했다. '출장입상'으로 작위가 서평왕, 관직이 태위에 이르렀으며 노년에도 변방을 안정시키는 등 공적이 있었고, 충후함으로 인정받았다.


[1] 독발부탁발부는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