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魏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5cfd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서기(序記)」 | 2권 「태조기(太祖紀)」 | 3권 「태종기(太宗紀)」 | ||||
탁발부 · 대나라 | 탁발규 | 탁발사 | |||||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 5권 「고종기(高宗紀)」 | 6권 「현조기(顯祖紀)」 |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
7권 「고조기(高祖紀)」 | 8권 「세종기(世宗紀)」 | 9권 「숙종기(肅宗紀)」 | |||||
원굉 | 원각 | 원후 | |||||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선견 | |||||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 13권 「황후전(皇后傳)」 |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 |||||||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 |||||||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 ||||||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 |||||||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 |||||||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 ||||||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 위조 · 막함 · 유고인 |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 |||||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 27권 「목숭전(穆崇傳)」 | |||||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 울고진 | 목숭 | |||||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 ||||||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 해근 · 숙손건 | ||||||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 |||||||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 |||||||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 ||||||
우율제 | 고호 · 최영 · 봉의 | ||||||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 |||||||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 |||||||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 35권 「최호전(崔浩傳)」 | 36권 「이순전(李順傳)」 | |||||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 최호 | 이순 | |||||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 39권 「이보전(李寶傳)」 | |||||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 이보 | |||||
40권 「육사전(陸俟傳)」 | 41권 「원하전(源賀傳)」 |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 |||||
육사 | 원하 |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 ||||||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 ||||||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 47권 「노현전(盧玄傳)」 | |||||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 두근 · 허언 · 이흔 | 노현 | |||||
48권 「고윤전(高允傳)」 |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 |||||
고윤 | 이령 · 최감 | 울원 · 모용백요 | |||||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 |||||||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 |||||||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 |||||||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 |||||
이효백 · 이형 | 유아 · 고려 | 유명근 · 유방 | |||||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 58권 「양파전(楊播傳)」 | |||||
정희 · 최변 | 고우 · 최정 | 양파 | |||||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 한기린 · 정준 |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 |||||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 |||||
이표 · 고도열 | 왕숙 · 송변 | 곽조 · 장이 | |||||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 67권 「최광전(崔光傳)」 | |||||
형만 · 이평 | 이숭 · 최량 | 최광 | |||||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 |||||
견침 · 고총 | 최휴 · 배정준 · 원번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 |||||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 ||||||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 ||||||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이주영 |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 |||||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 |||||
노동 · 장열 |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 손소(孫紹) · 장보혜 | |||||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 ||||||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 ||||||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 ||||||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 이염지 · 조영 · 상경 | ||||||
83권 「외척전(外戚傳)」 | |||||||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 |||||||
84권 「유림전(儒林傳)」 | |||||||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 |||||||
85권 「문원전(文苑傳)」 | |||||||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 |||||||
86권 「효감전(孝感傳)」 | |||||||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
87권 「절의전(節義傳)」 | |||||||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
88권 「양리전(良吏傳)」 | |||||||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 |||||||
89권 「혹리전(酷吏傳)」 | |||||||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 |||||||
90권 「일사전(逸士傳)」 | |||||||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 |||||||
91권 「예술전(藝術傳)」 | |||||||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 |||||||
92권 「열녀전(列女傳)」 | |||||||
임성국태비 | |||||||
93권 「은행전(恩倖傳)」 | |||||||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 |||||||
94권 「엄관전(閹官傳)」 | |||||||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 |||||||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 |||||||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 |||||
사마예 · 이웅 | 환현 · 풍발 · 유유 | 소도성 · 소연 | |||||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 |||||||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 |||||||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 |||||||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 |||||||
101권 「저등전(氐等傳)」 | |||||||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 |||||||
102권 「서역전(西域傳)」 | |||||||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 |||||||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 |||||||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 |||||||
104권 「자서전(自序傳)」 | |||||||
위수 |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c143c><tablebgcolor=#dc143c>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 2권 「위본기2(魏本紀二)」 | 3권 「위본기3(魏本紀三)」 | |||
탁발규 · 탁발사 |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 원굉 | ||||
4권 「위본기4(魏本紀四)」 | 5권 「위본기5(魏本紀五)」 | |||||
원각 · 원후 |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 |||||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 ||||
고환 · 고징 | 고양 · 고은 · 고연 | 고담 · 고위 · 고항 | ||||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 |||||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 |||||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 |||||
양견 | 양광 · 양유 | |||||
}}}}}}}}}
- [ 열전(列傳) ]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농서선왕(隴西宣王) 源賀 | 원하 | |
시호 | 선왕(宣王) |
작위 | 서평후(西平侯) → 서평공(西平公) → 서평왕(西平王) → 농서왕(隴西王) |
성 | 독발(禿髮) → 원(源) |
휘 | 파강(破羌) → 하(賀) |
자 | 하두발(賀豆跋) |
생몰 | 407년 ~ 479년 10월 22일 |
부친 | 독발녹단(禿髮傉檀) |
본관 | 서평군(西平郡) 낙도현(樂都縣) |
아내 | 을복씨(乞伏氏), 맹씨(孟氏) |
자녀 | 3남 1녀 |
[clearfix]
1. 개요
북위의 인물. 선비족. 본래 성씨는 '독발(禿髮)'였으나 태무제에 의해 '원(源)'이라는 성과 '하(賀)'라는 휘를 하사받았다.2. 생애
남량이 서진의 걸복치반에게 멸망당하면서 독발녹단이 서진에 투항하자, 원하는 형 독발보주(禿發保周) 등 여러 친족들과 함께 낙도(樂都)에서 나와 북위로 도망쳐 왔다.원하는 준수한 용모를 지녔고, 기품이 뛰어났다. 태무제 탁발도는 그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만나 본 뒤에는 그의 기민함과 언변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에 그에게 작위를 내리고 용양장군(龍驤將軍)에 임명하였다. 이때 태무제가 말했다.
"경(卿)과 짐은 본래 근원이 같으나, 사정에 따라 성이 나뉘었으니, 이제부터 '원(源)'씨를 쓰도록 하라."
이후 원하는 반란을 일으킨 호인(胡人) 백룡(白龍)을 토벌하였으며, 또한 토경호(吐京胡)를 정벌할 때도 모두 선봉에서 적진을 돌파하였고, 그 공으로 평서장군(平西將軍)으로 승진하였다.태연 5년(439년) 6월, 태무제가 북량을 정벌할 때, 원하를 길잡이로 삼고 공격과 전투의 계책을 물었다. 이에 원하가 대답하였다.
"고장성(姑臧城) 밖에는 네 무리의 선비족 무리가 있어 각각 원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신(臣)의 조부 때부터 따르던 백성들이므로, 바라건대 신이 그 무리 앞에 나아가 국가의 위엄과 신의를 선포하고, 복과 화를 알린다면 반드시 스스로 항복할 것입니다. 외부의 지원이 무너진 후에야 고립된 성을 공격한다면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태무제가 말했다."좋은 계책이로다."
이에 원하를 보내 정예 기병을 이끌고 여러 부락을 순회하며 달래게 하니, 30,000여 호가 항복하고 온갖 가축 100,000여 마리를 얻었다. 이후 고장성을 포위할 때 외부의 우려가 사라져 전력을 집중하여 공격할 수 있었다.태연 5년(439년) 9월, 북량이 평정되자 원하는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승진하고, 서평공(西平公)으로 작위를 올려 받았다. 또한 이후로도 그는 유연을 정벌하고, 오성(五城)과 토경호(吐京胡)를 공격하였으며, 개오(蓋吳) 등 여러 도적을 토벌하여 모두 공을 세웠다. 이어 그는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임명되었고, 태무제의 남벌을 따라 장강에 이르렀을 때 전봉대장(前鋒大將)이 되었다.
원하는 성격이 용맹하고 과감하여 강적을 만나면 반드시 스스로 돌격하여 싸웠다. 이에 태무제가 경계하며 말했다.
"전쟁은 위험하며, 가벼이 적진을 범해서는 안 된다. 경은 마땅히 전술을 운용하고 지휘를 분배해야 하니,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지 말라."
원하의 본래 이름은 파강(破羌)이었는데, 이번 원정에서 태무제가 말했다."사람의 이름은 실상에 부합해야 하니, 어찌 함부로 지을 수 있겠는가?"
이에 그에게 '하(賀)'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그 후 전중상서(殿中尚書)로 임명되었다.승평 원년(452년) 10월, 남안왕 탁발여가 종애에게 살해되었을 때, 원하는 상서 장손갈후(長孫渴侯)와 금군을 지휘하여 안팎을 통제하고, 남부상서 육려와 함께 의논하여 책략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원하는 황손 탁발준을 추대하기로 결정하고, 육려와 유니에게 원중(苑中)으로 달려가 탁발준을 영접하도록 하였으며, 자신은 도성 평성(平城)을 지키며 내응하였다. 잠시 후 육려가 탁발준을 품에 안고 말을 달려 평성에 도착하자, 원하는 성문을 열어 맞이하였다.
흥안 원년(452년) 12월, 문성제 탁발준이 즉위하여 종애를 제거하면서 사직(社稷)이 크게 안정되었는데, 여기에 원하의 공로가 컸다. 문성제는 원하를 정북장군(征北將軍)으로 삼고 급사중(給事中)을 더하였으며, 책립(策立)의 공로로 작위를 서평왕(西平王)으로 승격시켰다. 문성제가 즉위한 후 조정 백관들에게 하사품을 내릴 때, 원하에게 말했다.
"짐은 유능한 신하에게 많은 보상을 내리고자 하니, 경은 마음껏 가져가되 사양하지 말라."
그러나 원하는 사양하였고, 문성제가 거듭 허락하여 취하게 하였으나, 원하는 오직 군마(軍馬) 한 필만을 가져갔다.당시 종애의 난에 휘말려 재판에서 억울하게 처형되는 일이 많았다. 이에 원하는 상소하여 말했다.
"법률에 따르면, 반역을 도모한 자의 집안은 그 자손이 비록 다른 가문에서 양육되었더라도 추적하여 처형하니, 이는 죄인의 후손을 끊고 대역죄의 중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도와 같은 범죄로 처형될 자의 경우, 그 형제나 자손이 만약 먼 곳에 있어 길이 관문으로 막혀 있다면 그들은 따로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를 삼가 생각건대, 선조(先朝)께서 법을 제정하신 뜻은 공모하지 않은 자는 그 혈통을 끊을 죄가 아니므로 특별히 사면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만약 역적의 집안에 13살 이하의 아이가 있다 해도, 이는 가문의 우두머리가 저지른 죄이고, 그 아이는 나이가 어려 범죄에 가담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니, 신은 그들의 목숨을 살리는 대신 국가에 예속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성제가 이를 받아들였다.태안 2년(456년) 11월, 원하는 정남장군(征南將軍)•기주자사(冀州刺史)로 임명되었고, 작위는 농서왕(隴西王)으로 개봉되었다. 이때 원하가 상소하여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온전한 삶이며, 가장 두터운 덕(德)은 죽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모두 용서하기는 어려우나, 그 경중을 따져 측은히 여길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북쪽에는 강한 적이 떠돌고, 남쪽에는 교활한 도적이 험준한 지형을 의지하고 있으며, 국경 지역은 여전히 수비할 병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이 생각건대, 대역죄나 직접 살인을 저지른 자가 아닌 이상, 뇌물·절도·과실로 인해 사형에 처해야 하는 자들은 모두 목숨을 살려 변방으로 유배 보냄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도 다시금 살아갈 기회를 얻고, 부역을 짊어진 백성들도 점차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형벌을 줄이는 교화의 정책이 실현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서(虞書)』에 '오형을 유배로 대체하라'고 한 것도 이러한 뜻입니다. 신은 깊은 은혜를 입고도 보답할 길이 없어, 이제 조정을 떠나면서도 더욱 그리운 마음이 큽니다. 감히 어리석은 말씀을 올리오니, 부디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문성제가 이를 받아들였고, 이후 사형에 처할 자들은 모두 사면되어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문성제가 신하들에게 말했다."원하가 짐에게 사형수를 용서하고 북방 변경으로 보내도록 권하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살아난 사람이 실로 적지 않다. 그로 인해 생명을 구제한 경우가 많아졌고, 변방의 수비 병력도 증가하였다. 그대들은 짐을 섬기면서 어떤 이로운 계책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모든 신하가 원하와 같다면, 짐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되돌아보니 그 말이 참으로 이롭구나."
이에 모든 신하들이 말했다."충신(忠臣)이 아니면 이러한 계책을 올릴 수 없고,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이 아니면 이러한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원하가 기주(冀州)에 부임해 있을 때, 형벌을 판단할 때는 인정에 따라 판단하였고, 부역을 간략히 줄였다. 한번은 무읍군(武邑郡)의 석화(石華)라는 간악한 자가 승려 도가(道可)와 원하가 함께 반란을 모의했다고 고발하였고, 관련 관청에서 이를 조정에 보고하였다. 그러자 문성제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원하는 진심으로 나라를 섬기고 있고, 짐이 그를 보증할 수 있으니, 이 고발이 허위임이 분명하다."
이에 정밀하게 조사하였고, 결국 석화가 무고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후 문성제는 사자를 보내 원하에게 조서를 내렸다."경은 충성스럽고 정직하게 나라를 섬겨왔으며, 그 사실은 선대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이나, 깨끗한 옷이라도 파리 한 마리의 더러움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짐이 즉시 조사하여 엄정한 법을 적용하였고, 이제 직접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그러니 맡은 바를 잘 다스리고, 요란한 중상모략의 말 때문에 스스로 걱정을 더하지 말라."
원하가 상소를 올려 감사를 표하자, 문성제는 그의 글을 받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원하조차도 무고를 당할 수 있는데, 그보다 덕이 부족한 자들은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조정에서 관리들의 치적을 평가하였는데, 원하의 통치는 최우수로 선정되었다. 이에 문성제는 그에게 의복, 말, 기물 등을 하사하고, 그 명성을 천하에 선포하였다. 얼마 뒤, 원하가 다시 상소하여 중앙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하였으나, 조정에서는 그가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음을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천안 원년(466년) 3월, 원하는 주(州)에 있은 지 7년 만에 마침내 소환되어 태위(太尉)로 임명되었다.
황흥 4년(470년) 9월, 헌문제 탁발홍이 유연을 정벌할 때, 원하도 황제를 따라 출정하여 이를 격파하였다.
황흥 5년(471년) 8월, 헌문제가 경조왕 탁발자추에게 제위를 선양하려 하였는데, 당시 원하는 여러 군을 감독하며 막남(漠南)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에 헌문제는 급히 파발을 보내 원하를 소환하였다. 원하가 도착하자 헌문제는 조정의 공경(公卿)들에게 선양에 대해 논의하게 하였으나, 원하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였다. 결국 헌문제는 자신의 뜻을 꺾고 원하에게 조서를 내려, 부절(符節)을 지니고 황제의 옥새와 인수를 태자 탁발굉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어린 효문제 탁발굉이 즉위하였고, 헌문제는 황위에서 내려와 태상황이 되었다.
연흥 원년(471년) 10월, 하서(河西)의 칙륵(敕勒)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원하를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원하는 이들을 공격하여 2,000여 호의 투항을 받은 후, 강행군으로 나머지 무리를 추격하여 부한(枹罕)에서 반란군의 수장인 울주어(鬱朱於) 등을 대파하였다. 이때 5,000여 명의 목을 베고, 남녀 10,000여 명을 포로로 삼았으며, 가축 30,000여 마리를 노획하였다. 이후 다시 진격하여 통만(統萬), 고평(高平), 상규(上邽) 세 진(鎮)의 반란을 진압하고, 잔당을 금성(金城)까지 추격하여 3,000명을 추가로 참수하였다. 반란을 모두 평정한 원하는 고금의 법과 선대의 유학자 및 노인들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중요한 부분을 간추려, 「십이진도(十二陳圖)」를 만들어 올렸다. 태상황 탁발홍은 이를 살펴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원하는 노쇠함을 이유로 사직을 청했으나,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조서를 내려, 그를 도독삼도제군(都督三道諸軍)으로 삼아 막남에 다시 주둔하도록 하였다. 당시 북위 조정은 매년 가을과 겨울이 되면 세 갈래로 군대를 출병시켜 북방 유연족을 정벌하고, 이듬해 봄이 되면 철군하였다. 그러나 원하는 이러한 방식이 백성들을 지나치게 피로하게 하며, 변경을 지키는 장기적인 방책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각 주(州)와 진(鎮)에서 무예가 뛰어난 자 30,000명을 모집하고, 그들의 부역과 조세를 면제하며, 두텁게 구휼할 것을 청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두 개의 진영 사이에 성을 쌓아 각각 10,000명씩 주둔시킨 후, 강노(強弩) 12상(床)과 무위군(武衛軍) 300승(乘)을 배치하고, 강노 1상당 소 6마리, 무위군 1승당 소 2마리를 지급하십시오. 또, 마창(馬槍)과 각종 병기를 대량으로 만들고, 무략대장(武略大將) 2명을 임명하여 이를 지휘하게 하십시오.
또한 겨울에는 군사훈련을 하고, 봄에는 농사를 짓도록 한다면 병력은 피로해지지 않고, 식량과 가축이 점점 불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백도(白道) 남쪽 세 곳에 창고를 세워 인근 주(州)와 진(鎮)에서 조세로 거둔 곡식을 비축하여, 식량과 병력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만일의 사태에도 훌륭히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대군을 동원하여 수도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조정이 끊임없이 북방을 걱정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건의는 채택되지 않고 묻혀버렸다. 이후 원하는 다시 상소하여 병세가 위중함을 이유로 사직을 요청하였고, 여러 차례 간청한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중요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여전히 그에게 자문을 구하였고, 의복과 약, 진귀한 음식을 하사하였다.또한 겨울에는 군사훈련을 하고, 봄에는 농사를 짓도록 한다면 병력은 피로해지지 않고, 식량과 가축이 점점 불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백도(白道) 남쪽 세 곳에 창고를 세워 인근 주(州)와 진(鎮)에서 조세로 거둔 곡식을 비축하여, 식량과 병력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만일의 사태에도 훌륭히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대군을 동원하여 수도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조정이 끊임없이 북방을 걱정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태화 원년(477년) 2월, 원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으로 갔다. 효문제와 문명태후는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건강을 염려하며 문안을 보냈고, 태의(太醫)를 보내 병을 살피게 하였다. 그럼에도 병세가 심해지자 원하는 도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병상에서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늙고 병들어 벼슬에서 물러나려 하였으나, 뜻밖에도 폐하의 은혜가 내려져 너희에게도 작위가 이어졌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만하거나 인색하지 말고, 방탕하거나 게으르지 말며, 사치하거나 지나치지 말고,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말라. 의심이 들면 반드시 물어보고, 말을 할 때는 신중히 생각하며, 행동할 때는 공손함을 지키고, 입을 옷은 검소함을 따져라. 악을 멀리하고 선을 드러내며,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간사한 자를 멀리하라. 눈으로 보는 것은 반드시 사실을 확인하고, 귀로 듣는 것은 반드시 바르게 들어라. 성심을 다해 임금을 섬기고, 맑고 검소한 삶으로 자신을 지켜라. 내가 죽은 후에는 간소한 옷과 단출한 관(棺)으로 장례를 치르고, 너희는 효심을 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추령(芻靈)이나 명기(明器) 같은 기물들은 일절 사용하지 말라."
태화 3년(479년) 9월 21일[1], 원하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조정에서는 그를 시중(侍中)•태위•농서왕으로 추증하고, 시호는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또한 비단 500필, 온량거(轀輬車), 명복(命服), 온명비기(溫明秘器)를 하사하고, 그를 금릉(金陵)에 배장(陪葬)하였다.
3. 가계
- 원하(源賀)
- 원연(源延) - 원하의 장남. 성품이 근면하고 후덕하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처음에는 공신의 자제로서 시어사중산(侍御中散)에 임명되었고, 무성자(武城子)의 작위를 받았으며, 서야도장(西冶都將)이 되었다. 사후 양주자사(涼州刺史)•광무후(廣武侯)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간후(簡侯)'라 하였다.
- 원린(源鱗) - 원연의 아들. 무성자 작위를 계승하였다.
- 원회(原懷) - 원하의 아들. 원연의 동생. 문서 참고.
- 원규(原規) - 원회의 장남. 자는 영도(靈度). 중서학생(中書學生), 우림감(羽林監)을 역임하고 작위를 계승하였다.
- 원숙(源肅) - 원규의 아들. 작위를 계승하였다.
- 원영(源榮) - 원회의 차남. 자는 영병(靈幷). 벼슬은 사도연(司徒掾)에 이르렀고,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후 광주자사(光州刺史)로 추증되었다.
- 원휘(源徽) - 원회의 삼남.. 자는 영조(靈祚). 벼슬은 직각장군(直閣將軍)에 이르렀고, 2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특별히 낙주자사(洛州刺史)로 추증되고, 시호는 '질(質)'이라 하였다.
- 원자옹(源子雍) - 원회의 5남. 문서 참고.
- 원연백(源延伯) - 원자옹의 장남. 문서 참고.
- 원효손(源孝孫) - 원연백의 아들. 부친의 작위를 계승하였으나, 북제가 세워지면서 작위가 강등당했다.
- 원사칙(源士則) - 원자옹의 차남. 요절하였다.
- 원사정(源士正) - 원자옹의 삼남. 화를 입어 동생 원사규와 함께 사망하였다.
- 원사규(源士規) - 원자옹의 4남. 화를 입어 형 원사정과 함께 사망하였다.
- 원해(源楷) - 원자옹의 5남. 자는 사질(士質). 아명은 아연(那延). 부친의 작위를 계승하였고, 무정(武定) 연간에는 고징 휘하에서 참군(參軍)을 지냈다. 북제가 세워지자 작위가 강등당했다.
- 원자공(源子恭) - 원회의 6남. 원자옹의 동생. 문서 참고,
- 원표(源彪) - 원자공의 아들. 자는 문종(文宗). 원자공이 살아있을 때 임영현 개국후(臨潁縣開國侯)에 봉해졌고, 무정 말기에는 태자선마(太子洗馬)를 지냈다. 북제가 세워지자 작위가 강등당했다.
- 원문요(源文瑤) - 원자공의 아들. 원표의 동생. 무정 연간에 양성현 개국남(襄城縣開國男) 작위를 계승하였고, 북제가 세워지자 형처럼 작위가 강등당했다.
- 원찬(源纂) - 원회의 7남. 자는 영수(靈秀).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郎), 정로장군(征虜將軍),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 양주대중정(涼州大中正), 태부소경(太府少卿)을 역임하였으나, 하음(河陰)의 변이 있어났을 때 살해당했다. 당시 나이는 37세. 사후 산기상시•정북장군•정주자사(定州刺史)로 추증되었다.
- 원환(源奐) - 원하의 아들. 원회의 동생. 문서 참고.
- 원현량(源玄諒) - 원환의 양아들. 원회의 4남. 본래 원회의 아들이었으나, 원환의 후사를 이었다.
[1] 기미년 갑술월 경신일. 음력으로는 9월 21일이고, 양력으로 10월 2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