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1 17:31:34

심문수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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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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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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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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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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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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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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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인물
沈文秀 | 심문수
<colbgcolor=#dc143c> 시호 없음
작호 신성현후(新城縣侯)
심(沈)
문수(文秀)
중원(仲遠)
부친 심소지(沈劭之)
생몰 426년 ~ 486년
출신 오흥군(吳興郡) 무강현(武康縣)
아들 심보충(沈保沖)
국적 유송북위
1. 개요2. 생애

1. 개요

남북조시대 유송북위의 인물. 유송의 태위 심경지의 조카. 남중랑행참군 심소지(沈劭之)의 아들.

2. 생애

심문수는 처음에 군(郡)에서 주부(主簿)와 공조사(功曹史)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큰아버지 심경지가 귀하게 된 뒤, 심문수는 동해왕 유의(劉禕)의 무군부(撫軍府)에서 행참군(行參軍)으로 재직하였다. 그 뒤 의양왕 유창의 동중랑부(東中郎府)로 옮겼다가, 동쪽 지역으로 나아가 전당현령(錢唐縣令)이 되었고, 다시 전임되어 서양왕 유자상(劉子尚)의 참군이 되었다. 이어 무강현령(武康縣令), 상서고부랑(尚書庫部郎), 본읍중정(本邑中正), 건강현령(建康縣令)을 역임하였다. 그러다 그가 심양왕 유자방(劉子房)의 사노비를 채찍질하다가 죽게 한 일로 관직을 잃고, 곤장 100대를 맞았으나, 얼마 뒤 복직되었다.

대명 8년(464년) 7월, 효무제가 붕어하고 전폐제 유자업이 즉위하자, 심문수는 건안왕 안남장군 유휴인의 녹사참군(錄事參軍) 및 사성교위(射聲校尉)가 되었다.

경화 원년(465년) 11월, 심문수는 청주의 동완·동안2군제군사(青州之東莞東安二郡諸軍事)•건위장군(建威將軍)•청주자사(青州刺史)에 임명되었다. 그 무렵 황제 유자업은 미쳐버리고 포악하며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일삼아, 조정 안팎이 모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심문수가 청주로 부임하려 하여 부대가 백하(白下)에 이르자, 그는 큰아버지 심경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주상이 이처럼 광포하고 폭악하니, 나라가 무너지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안은 온 가족이 그의 총애를 입어 벼슬을 누리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그와 마음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 자(유자업)는 성정이 일정하지 않고 의심이 심하여, 장차 닥칠 재앙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때 군중의 힘을 이용하면, 그를 치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울 것입니다.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니,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심경지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심문수는 여러 차례 간절히 청하였고, 말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으나, 심경지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심문수가 부임하여 떠난 뒤, 과연 심경지는 수도에서 황제 유자업에 의해 살해되었다.

심경지를 살해한 황제 유자업은 그가 병사하였다 공표하고, 태위로 추증하며 무척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는 한편, 직각(直閣) 강방흥(江方興)에게는 병사를 거느리고 심문수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강방흥이 도착하기 전에 수도에서 상동왕 유욱이 정변을 일으켜 유자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명제 유욱은 급히 역참을 보내 강방흥의 군대를 멈추게 하였는데, 명제의 사자가 따라잡았을 때는 강방흥이 이미 도착하였고 오히려 심문수에게 사로잡힌 상태였다. 곧 심문수는 그를 풀어주고, 수도로 돌려보냈다.

태시 2년(466년) 정월, 그때 진안왕 유자훈이 심양(尋陽)을 점거하고 황제를 칭하였다. 조정에서는 군대를 일으켜 토벌에 나서며, 심문수에게도 병력을 징발하였다. 이에 심문수는 유미지(劉彌之), 장영경(張靈慶), 최승선(崔僧琁)이 이끄는 세 개의 부대를 보내 조정의 토벌군에 합류하게 하였다. 그 무렵 서주(徐州) 자사 설안도가 이미 유자훈에게 호응하였는데, 사자를 보내 심문수에게 "사방이 이미 모두 함께 일어났으니 그대도 이에 동참하라"고 권하였다. 심문수는 유자훈에게 붙을 것을 결심하고, 즉시 유미지 등에게 사람을 보내어 돌아가 설안도의 군대와 합류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최승선을 제외한 유미지, 장영경이 곧 마음을 바꾸어 명제에게 귀순하고, 설안도의 사위 배조륭(裴祖隆)이 점거하고 있는 하비성(下邳城)을 공격하였다.

설안도의 조카 설색아(薛索兒)는 당시 수릉(睢陵)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유미지의 변심 소식을 듣고 하비로 달려가 유미지 등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유미지 등이 아직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그 군대는 이미 흩어져 도망치니, 장영경은 패하여 참수당하고, 유미지는 패주하여 북해(北海)로 들어가 지켰다. 유미지는 청주의 유력 가문 출신으로, 그 일족이 많았기에 여러 종족들이 연합하여 북해로 들어가 심문수에게 저항하였다.

태시 2년(466년) 4월, 평원(平原)·낙안(樂安) 두 군의 태수 왕현묵(王玄默)은 낭야(琅邪)를 점거하였고, 청하(清河)·광천(廣川) 두 군의 태수 왕현막(王玄邈)은 반양성(盤陽城)을 지켰으며, 고양(高陽)·발해(勃海) 두 군의 태수 유승민(劉乘民)은 임제성(臨濟城)을 점거하여 모두 의병을 일으켰다. 또, 산기시랑 명승고(明僧暠)도 의병을 일으켜 이들과 함께 심문수를 공격하니, 명제가 그를 청주자사로 삼고, 동완(東莞)·동안(東安) 두 군의 태수 이영겸(李靈謙)에게 이들과 더불어 심문수를 토벌할 것을 명하였다.

한편, 심문수는 명승고 등과 내통하던 자신의 사마 방문경(房文慶)을 죽이고, 또 군주(軍主) 해언사(解彥士)를 보내 북해를 공격하여 함락시킴으로써 마침내 유미지를 처단하였다. 이후 유승민의 아우 유백종(劉伯宗)이 고향에서 군사를 모아 북해를 다시 탈환하고, 그 세력을 이끌고 청주의 치소인 동양성(東陽城)으로 진군하였으나, 심문수가 유백종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무찔렀다. 유백종은 전투에서 패하고 부상을 입어 그의 아우 유천애(劉天愛)가 그를 부축해 가려 하자, 유백종이 말했다.
"대장부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야지, 어찌 아녀자의 손에서 죽겠는가? 어서 떠나거라. 두 사람 모두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결국 유백종은 전사하였고, 명제는 그의 충절을 기려 용양장군과 장광태수로 추증해주었다. 이후로도 왕현막, 유승민, 명승고 등은 함께 진군하여 동양성을 공격했으나, 매번 싸울 때마다 심문수에게 패하였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십여 차례나 반복하였다.

태시 2년(466년) 8월, 심양이 함락되면서 유자훈의 반란이 평정되자, 명제는 상서탁지랑 최원손(崔元孫)을 보내 여러 의병들을 위로하게 하였다. 그러나 최원손은 명승고를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심문수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그러자 명제는 심문수의 동생 심문병(沈文炳)을 보내 조서를 전달하게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제가 청주·서주의 동완·동안2군제군사 건위장군 청주자사에게 묻노라. 짐이 지난해 천하의 난을 평정하였을 때, 그 공이 온 세상에 진동하였으며, 경의 가문에게는 특별히 깊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경이 지금까지 목숨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힘이었겠는가? 어찌하여 나라를 등지고 은혜를 배반하여 반역자들과 어울리는가? 지금 천하가 이미 평정되고, 사방이 하나로 안정되었는데, 그대만 홀로 궁핍한 성을 지키며 누구를 섬긴단 말인가? 게다가 경의 일가족 100명이 모두 수도에 있고, 조상의 무덤도 그곳에 있는데, 경의 마음이 나무나 돌이 아닌 이상 어찌 돌아보지 않겠는가? 이에 심문병을 보내어 짐의 뜻을 자세히 전하도록 하였다.

모든 반역자 중, 직접 난을 일으킨 자라 할지라도 한 사람도 벌하지 않을지니, 경은 심문병이 전하는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경이 무엇을 믿고 홀로 나라를 거슬러 설 수 있겠는가? 속히 부하들을 이끌고 와 군문에 항복하라. 별도의 조서를 내려 해당 관청이 일체 추문하지 않도록 하겠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라에는 일정한 형벌이 있으니, 경뿐 아니라 아우와 아들들도 함께 주륙될 것이며, 또한 가문의 무덤까지 파괴할 것이다. 이는 제 땅의 백성들에게 죄인의 처벌을 알리고,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이 때문에 이 조서를 내린다."
또한 명제는 보국장군 유회진(劉懷珍)에게 보병과 기병 3,000명을 주어 심문병과 함께 청주로 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태시 3년(467년) 정월, 심문병과 유회진이 도착하기 전에 위나라에 투항한 설안도가 위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청·기2주자사 장영이 이끄는 50,000 대군을 격퇴하자, 유회진은 군대를 돌려 산양(山陽)을 진수하였다. 그때 심문수가 다시 명승고를 공격하니, 명제는 용양장군 왕광지(王廣之)에게 기병 500기와 보병 2,000명을 주어, 유회진과 함께 나아가 명승고를 구원하게 하였다. 유회진이 진격하여 구성(朐城)을 떨어뜨리고 검추(黔陬)에 이르니, 심문수가 임명한 태수가 검추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태시 3년(467년) 2월, 유회진이 마침내 심문병을 파견하여 심문수에게 조서를 전달하였으나, 심문수는 곧바로 항복하지 않고 망설였다. 당시 심문수가 임명한 장광(長廣) 태수 유도근(劉桃根)이 불기성(不其城)을 진수하고 있었는데, 심문수가 망설이는 사이에 유회진이 양수(洋水)에 진을 치고 왕광지와 기병 100기로 불시에 습격해 이마저도 함락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심문수는 결국 사자를 보내 항복하였고, 명제는 그를 용서하고 본래의 직임에 복귀시켰다.

이보다 앞서 심문수는 역성(歷城)의 기주(冀州) 자사 최도고와 함께 위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는데, 이로 인해 위나라 조정에서는 이미 정남대장군 모용백요를 보낸 상태였다. 모용백요는 하구(瑕丘)에서 출발하여 직접 역성으로 이동하는 한편, 평동장군 장손릉(長孫陵) 등은 심문수가 있는 동양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장손릉이 동양성에 도착하자, 심문수는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하였는데, 장손릉이 위나라군을 이끌고 서쪽 외곽에서 약탈을 일삼았다. 심문수는 곧장 후회하며 성을 걸어 잠그고, 보국장군 원침(垣諶)으로 하여금 장손릉을 공격하게 하여 대파하였다. 장손릉 등은 후퇴하여 청주 서쪽에 주둔하였다.

태시 3년(467년) 9월, 장손릉 등이 성의 동쪽으로 접근하였다.

태시 3년(467년) 10월, 장손릉이 동양성 남쪽 외곽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심문수는 원외산기시랑 황미지(黃彌之) 등에게 명하여 적을 맞아 싸우게 하였고, 그 결과 수천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태시 4년(468년) 정월, 명제가 심문수의 공을 높여 우장군(右將軍)으로 임명하고, 신성현후(新城縣侯)에 봉하였으며, 식읍 500호를 하사하였다. 한편, 위나라의 청주자사 왕융현(王隆顯)은 안구현(安丘縣)에서 심문수의 군주(軍主) 고숭인(高崇仁)에게 패하여 병사 수백 명이 죽었다.

태시 4년(468년) 3월, 역성을 함락시킨 모용백요의 군대가 동양성을 포위하였다.

태시 4년(468년) 8월, 명제가 심문수의 아우 심문정(沈文靜)을 보국장군으로 삼고, 고밀(高密), 북해(北海), 평창(平昌), 장광(長廣), 동안(東萊) 다섯 군의 군사들을 통솔하게 하여 바닷길로 청주를 구원하도록 했다. 심문정은 동안의 불기성(不其城)에 이르렀으나, 위나라군이 길을 끊고 막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였다. 이에 그는 불기성을 지키며 방어하였고, 위나라군이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매번 싸워 이겼다. 명제는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심문정을 동청주자사(東青州刺史)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불기성은 결국 무너져 심문정은 그곳에서 위나라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심문수는 포위를 세 해 동안 견뎠다. 밖으로는 구원군이 없었으나, 장병들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떠나거나 배반한 자가 없었다. 그들은 밤낮으로 싸웠으며, 갑옷 안에서는 이가 생길 정도로 고된 전투를 이어갔다.

태시 5년(469년) 정월 24일[1], 모용백요가 마침내 성을 함락시켰다. 성이 무너진 날, 심문수는 전투복을 벗고, 옷매무새를 느슨히 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절(節)을 가져오게 명했다. 위나라 병사들이 들이닥치며 "심문수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는 크게 소리쳐
"내가 바로 심문수다!"
라고 하였다. 이에 병사들이 그를 붙잡아 끌어내어 청사 앞에 세우고, 그의 옷을 벗겼다. 그때 모용백요는 성 서남쪽의 각루(角樓)에 있었는데, 병사들이 심문수를 알몸으로 묶어 모용백요 앞으로 끌고 가 그 앞에 절하게 하려 했다. 심문수는 말하였다.
"우리는 각각 두 나라의 대신이니, 서로 절하는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모용백요가 이에 노하여 매질하였으나, 심문수의 기개가 꺾이지 않는 것을 보고 명하여 옷을 돌려주고, 술과 음식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는 곧 그를 그의 장사 방천락(房天樂)[2], 사마 심숭(沈嵩) 등과 함께 쇠사슬로 묶어 평성(平城)으로 압송하였다. 그 밖의 사람들은 난병(亂兵)에게 살해되어,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명제는 앞서 상서공논랑 하여진(何如真)을 보내 청주의 문무 관리를 선발하게 하였는데, 그 역시 이때 살해당했다.

평성에 도착 후, 심문수는 포승줄에 묶인 채 여러 죄목을 낱낱이 자백하였으나, 사형은 면제되었고, 하객(下客)으로 대우받아 거칠고 소박한 옷과 채소 음식을 지급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이후 위나라의 황제인 헌문제가 심문수의 절개와 의리를 높이 평가하여 점차 예우를 더해 주었고, 외도하대부(外都下大夫)에 임명하였다.

태화 3년(479년), 심문수는 외도대관(外都大官)으로 옮겼다. 이후 효문제는 심문수가 송나라에 충성을 다한 것을 가상히 여겨, 무늬 있는 비단 200필을 하사하였다. 그 뒤 남정도장(南征都將)으로 임명되었고, 출정에 앞서 전투복을 하사받았다.

얼마 뒤, 심문수는 지절(持節)•평남장군(平南將軍)•회주자사(懷州刺史)에 제수되고, 가 오군공(假吳郡公)에 봉해졌다. 그 무렵 하남(河南)은 부유하고 인심이 후하여, 사람들이 자주 예물을 바쳤으나, 심문수는 단 하나도 받지 않고, 끝내 청빈함을 지켰다. 다만 정무에 있어서는 다소 관대하고 느슨하여 도적을 금하지 못했으나, 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논을 크게 가꾸어 공사(公私) 모두에 이익이 많았다.

태화 10년(486년), 심문수는 주(州)의 자사로 있은 지 여러 해가 되었을 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아들 심보충(沈保沖)은 태화(太和) 연간에 봉조청(奉朝請)으로 있다가, 대장군 송왕 유창의 외병참군(外兵參軍)이 되었으며, 이후 남서주(南徐州)에서 관군장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그러다 태화 21년(497년)에 련구(漣口)에서 구원병을 이끌다가 패전하였으므로, 담당 관청에서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권하였으나, 효문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심보충은 심문수의 아들이니 특별히 목숨을 살리되, 낙양(洛陽)으로 보내어 관청의 부역에 종신토록 복무하게 하라."
그 뒤 그는 다시 풀려나 목숨을 건졌다. 이후 선무제 때 하비태수(下邳太守)로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


[1] 기유년 병인월 을축일. 음력으로는 1월 24일이고, 양력으로는 2월 21일이다.[2] 청하(清河) 사람으로, 익살스럽고 재치가 많으며 지혜가 뛰어나, 심문수가 그를 발탁하여 장사로 삼고 제군(齊郡)을 감독하게 하였으며, 주부(州府)의 모든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