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9:47:25

문성문명황후 풍씨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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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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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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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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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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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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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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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황후
文成文明皇后 | 문성문명황후
<colbgcolor=#DC143C> 시호 문명태황태후(文明太皇太后), 문성황후(文成皇后)
풍(馮)
출생 442년
사망 490년 10월 17일
능묘 영고릉(永固陵)
재위 북위의 황후
456년 2월 20일 ~ 465년 6월 21일
북위의 황태후
465년 6월 21일 ~ 471년 9월 20일
북위의 태황태후
471년 9월 20일 ~ 490년 10월 17일
본적 장락군(長樂郡) 신도현(信都縣)
부모 부친 풍랑(馮朗)
모친 왕씨(王氏)
부군 고종 문성황제(高宗 文成皇帝)
1. 개요2. 생애3. 기타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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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고종 문성제 탁발준의 황후. 헌문제 탁발홍의 적모. 북연 출신인 진옹2주자사, 요서군공 풍랑의 딸. 시호로 '문명태황태후'를 받았으나, 풍태후, 문명태후, 혹은 부군의 시호인 '문성'을 따서 문성문명황후, 문성황후 등 다양하게 불린다.

헌문제와 효문제 시기에 2번의 섭정을 맡았고, 뛰어난 정치력과 결단력으로 그녀가 섭정 당시 조정을 휘어잡아 북위의 사실상 실권자로 평가받는다. 음란한 사생활과 측근들을 너무 감싸준 흠이 있긴 하나, 최근 학계에서 북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효문제 시기 전성기를 누릴 기반을 마련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 생애

아버지 풍랑은 북연의 황족으로 광평공에 봉해졌으나, 북연이 멸망할 때 형제인 장락공 풍숭(馮崇), 낙릉공 풍막(馮邈)과 함께 북위에 투항하였다. 풍랑은 북위에서 진옹2주자사, 서정대장군에 임명되어 나름 중용받는 듯 하다가 얼마 안 가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어린 풍씨를 돌봐줄만한 친척이 없어, 태무제 탁발도의 좌소의(左昭儀)인 풍씨의 고모가 그녀를 거두어 입궁시키고 친어머니처럼 돌봐주었다.

풍씨가 14세가 되었을 때, 문성제 탁발준이 그녀를 귀인으로 삼았고, 태안 2년(456년) 1월 29일[1]에 귀인 풍씨를 황후로 높였다. 그리고 황후로 선택받지 못한 귀인 이씨 소생의 탁발홍을 태자로 삼으니, 이씨는 문성제에게 남은 가족들을 잘 부탁한다는 서신을 남기고 북위의 자귀모사법에 의해 사사당했다. 풍씨는 죽은 이씨 대신에 아직 2세에 불과한 태자 탁발홍을 양육하였다.

화평 6년(465년) 5월 11일, 문성제가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붕어하니, 조야로 괴로워하였다. 3일 후, 탁발부의 풍습에 따라 문성제의 옷과 기물을 불태웠는데, 조정의 백관과 궁중의 후궁들도 모두 그 자리에 참석해 애도하던 중이었다. 이때 풍황후가 슬피 울부짖다가 기절하여 불 속으로 떨어지자, 좌우에서 급히 뛰어들어 그녀를 구출하였다. 풍씨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어났다. 헌문제 탁발홍이 문성제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하자, 풍황후는 태후로 높여졌다.

천안 원년(466년) 2월, 헌문제 재위 초기, 거기대장군, 태원왕 을혼(乙渾)이 황제가 어린 것을 기회삼아 조서를 조작하여 상서 양보년(楊保年), 평양공 가애인(賈愛仁), 남양공 장천도(張天度) 등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승상이 되어 조정을 농락하였다. 이에 시중 탁발비(拓跋丕)가 풍태후에게 을혼이 역모를 꾀한다 밀고하니, 풍태후는 농서왕 독발하(禿髮賀), 장수 우익(牛益)과 함께 병사를 거느리고 을혼을 체포해 주살하였다. 이후 조정에 들어가 섭정을 선포하고, 중서령 고윤(高允), 중서시랑 고려(高閭), 안원장군 가수(賈壽)와 더불어 친히 정무를 살폈다. 풍태후는 고윤의 건의대로 각 군에 학교를 설치하고, 박사(博士), 조교(助敎), 생원(生員)을 두어 백성을 교화하는 등의 한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황흥 원년(467년) 8월, 헌문제의 부인 이씨가 황자 탁발굉을 출산하자, 풍태후는 스스로 탁발굉을 양육하겠다 선언하며 섭정을 중단하였고, 이때부터 헌문제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황흥 2년(468년) 6월, 풍태후의 오빠인 창려왕 풍희(馮熙)가 태부에 임명되어 헌문제를 보좌하였다.

문성제 사후, 과부가 된 풍태후는 남부상서 이부(李敷)의 동생 이혁(李奕)을 특별히 총애하여 궁중에 자주 불러 시중을 들게 하였다. 평소 풍태후와 이혁의 관계를 알고 불쾌해하던 헌문제는 마침 이부가 절친한 친구인 의조상서 이흔(李訢)의 뇌물을 수수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주었다는 고발을 듣자마자 이흔을 소환해 조사하였다. 신문한 결과 이흔의 죄는 과연 죽어 마땅하였는데, 사건을 조사하던 관리는 이흔에게 이부 형제와 태후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고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은근히 진술을 유도하였다. 이흔의 사위인 배유(裵攸) 또한 옆에서 거들자, 이흔은 곧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진술하였고, 이를 바탐으로 범표(范檦)가 이부 형제의 죄 30여 가지를 열거하여 헌문제에게 보고하였다. 헌문제는 대로하여 즉시 이부 형제와 이부의 사촌 이현덕(李顯德) 등을 붙잡아 주살하고, 자백한 이흔은 감형하여 채찍질과 삭발, 노역장 유치로 대체하였다. 풍태후는 헌문제가 이혁 등을 주살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이로써 두 모자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헌문제가 이흔을 사면하고, 태창상서, 섭남부사로 삼아 국정에 참여케 하자, 풍태후는 분노하여 본격적으로 헌문제와 권력을 두고 다투었다. 당시 18세이던 헌문제는 총명하고, 어른스러우며, 결단력이 있었으나, 풍태후의 압박에 못 이겨 황실의 어르신이자 인후하기로 유명한 숙부 경조왕 탁발자추(拓跋子推)에게 제위를 선양하려 하였다. 그러나 황족들과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반대하여 태자 탁발굉을 황제에 앉히고, 스스로 태상황으로 물러나 숭광궁(崇光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비록 헌문제가 태상황으로 물러나긴 하였으나, 정권은 쥐고 있어 5살인 효문제 탁발굉을 대신해 이전처럼 친정을 계속 하였다. 이때 헌문제는 대양만족(大陽蠻) 추장 환탄(桓誕)을 복속시키고, 대외 정벌을 지휘하여 유연과 토욕혼을 물리친 후, 하서(河西)와 회주(懷州)를 순행하는 등 황제로 있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단 명목상 안빈낙도를 칭하며 태상황으로 물러났기에, 풍태후의 정치적 공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승명 원년(476년) 6월, 풍태후의 헌문제를 향한 증오는 더욱 심해져 결국 짐독으로 헌문제를 암살하였다. 풍태후는 태황태후로 높여지고, 어린 효문제를 위해 다시 섭정하여 정무를 보았다. 풍태후의 총애받는 환관인 왕거(王踞), 장우(張祐), 기역(杞嶷) 등은 모두 관직과 작위가 더해졌고, 풍태후로부터 무슨 짓을 해도 죽이지 않겠다는 철권(鐵券)을 하사받아 권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또, 이혁이 죽은 이후 새로 불륜 관계를 맺고 총애하여 자주 침실로 부르던 태복령 왕예(王叡), 비서령 이사충(李思沖)에게도 사사로이 상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풍태후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싫어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이가 있으면 바로 죽였다.

풍태후는 측근들의 부정은 눈감아주면서 막상 업무에 관한 과실은 엄히 다스려, 아무리 총애하는 이라도 작은 실수를 하면 100대에 가까운 채찍질로 다스렸다. 하지만 징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이전처럼 총애하여 악감정을 남기지 않으니, 그녀의 측근들은 벌을 받더라도 불만을 품거나 배신을 꿈꾸는 일이 없었다. 풍태후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으로 조정을 다시 한번 휘어잡을 수 있었고, 그녀와 그녀의 측근들이 권력을 남용해도 감히 지적하는 자가 없었다.

태화 원년(477년) 11월, 회주의 백성 이기구(伊祁苟)가 공현(共縣) 북쪽에 위치한 중산(重山)에서 무리를 모아 이기방훈의 후예라 자칭하고 반란을 일으키니, 낙주자사 풍희가 이를 토벌해 진압하였다. 풍태후는 공현의 백성을 전부 역모죄로 학살할 것을 명했으나, 옹주자사 장백택(張白澤)이 간하여 그만두었다.

태화 2년(478년) 6월, 호랑이가 우리에서 탈출하고 궁궐로 들어가 효문제와 풍태후가 앉아있는 어좌 가까이에 이르렀다. 좌우의 호위병들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크게 놀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이부상서 왕예가 극을 들고 호랑이의 앞을 막아 서면서 황제와 태황태후를 보위하였다. 이 사건으로 풍씨는 왕예의 충성을 치하하고 더욱 신임하였다.

태화 2년(478년) 12월, 효문제의 외할아버지 남군왕 이혜(李惠)는 청주자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선정을 펼쳐 뭇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풍태후는 그런 이혜를 시기하여 효문제에게 이혜가 남쪽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일렀고, 이로 인해 이혜와 그 처자식은 모두 주살당했다. 북위의 백성들은 이혜의 죽음을 무척 애석해 하였다.

태화 4년(480년), 풍태후가 총신 왕예를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중산왕에 봉했다. 또, 중산왕 휘하에 중서시랑 정희(鄭羲), 낭중령 이하(李遐) 등 22명의 관속을 두게 하였는데, 이들 모두 북위에서 이름을 떨치던 선비들이었다.

태화 5년(481년) 2월, 사문(沙門)의 승려 법수(法秀)가 요술로 백성을 현혹해 북위의 도읍인 평성(平城)에서 반란을 꾸미다가 사공 구퇴(苟頹)가 이끄는 금군에게 붙잡혀 주살되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나라의 도사들을 모조리 잡아 죽일 것을 주장했으나, 풍태후가 불허하고 왕예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수의 난에 연루된 자들을 사면하였다.

태화 5년(481년) 4월, 효문제와 함께 방산(方山)을 순행하던 풍태후는 그곳의 경치를 마음에 들어하며, 효문제에게 자신이 죽으면 여기서 장사 지내달라 청했다. 이후 방산에 미리 기영고석실(起永固石室)을 만들고, 산 위에 자신의 사당도 지었다.

태화 7년(483년) 5월, 효문제의 후궁인 귀인 임씨가 탁발순을 낳았다. 풍태후는 탁발순을 태자로 세우고자 귀인 임씨를 사사하고, 탁발순을 친히 양육하였다.

태화 7년(483년) 12월, 풍태후는 북위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혼(同姓婚)을 금지하였고, 2년 뒤인 태화 9년(485년)에는 조서를 내려 도참 사상을 금지하여 국내의 모든 예언서를 수거해 불태웠다. 또, 괴력난신을 엄히 금하여 무당부터 골목길에서 점치는 자들까지 통제하고, 《황고(皇誥)》 18편을 지어 태화전(太華殿)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태화 10년(486년) 2월, 당시 북위는 각 마을의 통치를 그 지역의 호족에게 일임하여 통제력이 약했다. 마을을 다스리는 호족들은 일부로 호구 수를 누락시켜 실제보다 적게 보고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였다. 이에 내비서령 이충(李沖)이 삼장제(三長制)의 실시를 건의하니, 중서령 정희를 비롯한 백관들은 지금의 제도를 시행한지 이미 오래되었다며 모두 반대하였다. 그러나 풍태후는 이충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삼장제로 지방의 호적을 정리하였고, 이는 헌문제가 시행했던 조조제(租調制)와 시너지를 내면서 조세 수취 비용을 10배나 절감하여 나라에 큰 이득이 되었다. 그리고 삼장제는 훗날 효문제가 시행하는 균전제의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태화 13년(489년) 6월, 여음왕 탁발천사(拓跋天賜), 남안왕 탁발정(拓跋楨)이 멋대로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다가 검거당했다. 본래대로라면 사형에 처해야 할 중죄였으나, 풍태후와 효문제는 그들이 경목제의 아들인 것을 감안하여 황신당(皇信堂)에서 그들의 죄를 묻고 삭탈관직과 금고종신에 처하는 것으로 사건을 끝냈다.

효문제가 점차 성장함에따라 그 영특함이 돋보이자, 풍태후는 자신의 권세에 위협이 될까 두려워 효문제를 빈 방에 3일 동안 가둔 뒤, 효문제를 폐위시키고 함양왕 탁발희(拓跋熙)을 황제로 세우려 하였다. 하지만 태위 탁발비, 상서우복야 목태(穆泰), 상서 이충이 목숨을 걸고 간곡히 간하여 그만두었다.

태화 14년(490년) 9월 18일[2], 태황태후 풍씨가 태화전에서 붕어하였다. 향년 47세. 풍태후가 세상을 떠난 날, 어디선가 장끼들이 날아와 황궁의 태화전(太華殿)에 모였다. 효문제는 5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풍태후를 위해 애도하여 지나치게 몸이 야위었다. 풍태후는 사후 '문명태황태후(文明太皇太后)'로 추시되고 방산의 영고릉에 안장되었다.

3. 기타

  • 현재 풍태후가 묻힌 영고릉은 산시성 다퉁시 신룽구(新荣区)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여느 고대의 무덤들이 그렇듯이 산시성에서 발굴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수 차례의 약탈과 도굴로 값비싼 유물들은 이미 오래 전에 모두 털린 상태였고, 구리 비녀, 화살촉, 도자기 조각 등만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능묘와 석실도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어느정도 복원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 풍태후 사후 효문제가 보인 태도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효문제가 사실 풍태후의 친손자 혹은 친아들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다.

4. 미디어 믹스

  • 측천무후여후 만큼은 아니지만 중국사의 몇 없는 여걸이다보니 풍태후를 나름 비중있는 조연급으로 등장시키는 중국의 사극 드라마가 종종 나오는 편이다. 풍태후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로는 〈북위풍태후〉가 있으며, 대만 출신의 배우인 우첸롄(吴倩莲)이 풍태후역을 맡았다.


[1] 양력으로 계산할 시 2월 20일.[2] 양력으로 계산할 시 10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