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20:25:20

단달

왕정(王鄭)의 사도
건국 초대 단달 멸망
段達
단달
<colbgcolor=#6A5BA8> 작위 양원현공(襄垣縣公)→진국공(陳國公)
최종직위 사도(司徒)
단(段)
이름 달(達)
출생 불명
북주 옹주 무위군(武威郡) 고장현(姑臧縣)
사망 621년 6월 5일
당나라
재임 수의 거기장군
? ~ 601년
정의 사도
619년 ~ 621년 6월 5일
조부모 조부 단연
부모 부친 단엄(段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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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정제) 대도독(大都督)
수(문제→양제→양동) 좌직재(左直齋)→거기장군(車騎將軍) 겸 진왕참군(晉王參軍)→의동(儀同)→의동(儀同) 겸 개부(開府)
태자자위부솔(太子左衞副率)→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1]→좌효위대장군(左驍衞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겸 납언(納言)
왕정(왕세충) 사도(司徒) }}}}}}}}}

1. 개요2. 외모3. 생애
3.1. 초기 생애3.2. 문제의 눈에 들다3.3. 기효덕과 장금칭의 난3.4. 당신은 나약하고 담력이 적습니다3.5. 양제가 붕어하다3.6. 권력을 잡다3.7. 최후
4. 평가5. 수서 단달전 번역본
5.1. 원문
6. 연의7. 가족관계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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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나라의 인물이자 정나라사도. 부친은 단엄(段嚴). 작위는 양원현공(襄垣縣公)이나 후에 진국공(陳國公)으로 봉해졌다. 성은 단(段), 이름은 달(達). 왕세충을 따라 사도까지 올랐으나 정나라가 멸망하자 끝내 피살되었다.

2. 외모

커서는 키가 8척(196cm)[2]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수서 단달 열전 中
커서 신장이 8자(8척)에 수염이 멋졌고 활쏘기를 잘했다.
북사 왕세충 열전 中
수서에 따르면 단달의 신장이 무려 8척(196cm)이나 되었고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북사 왕세충 열전에도 표기되어 있는 기록이다. 단달의 실제 신장이 8척이나 되었을 지는 불분명 하지만 그 만큼 장신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3. 생애

3.1. 초기 생애

단달은 북주 옹주 무위군(武威郡) 고장현(姑臧縣)에서 단엄(段嚴)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단엄은 북주의 삭주자사(朔州刺史)[3]를 지냈다. 단달은 이후 3살 때 양원현공(襄垣縣公)의 작위를 이었다. 커서는 키가 8척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3.2. 문제의 눈에 들다

이 때문에 문제는 단달을 눈에 여겼고 이후 문제가 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문제는 단달을 불러 대도독(大都督)에 임명해 친위병(親信兵)을 이끌게 했고 단달을 아껴 늘 곁에 두었다.이후 문제는 장안을 수도로 정하고 (隋)를 건국했다. 문제가 황제에 오르자 문제는 단달을 좌직재(左直齋)에 임명했다. 그 후에 단달은 빠르게 승진해 여러 관직을 거치며 거기장군(車騎將軍) 겸 진왕참군(晉王參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고지혜(高智惠)와 이적(李積)이 난을 일으키자 단달은 군사 10,000명을 이끌고 방주(方州)와 저주(滁州)를 공격해 평정했다. 이에 문제는 단달에게 비단 1,000필을 하사하고 의동(儀同)으로 승진시켰다. 또한 단달은 이후에 선주(宣州)에서 왕문진(汪文進)을 격파해 개부(開府)가 더해졌다. 인수 초년, 단달은 태자자위부솔(太子左衞副率)에 임명되었다.

3.3. 기효덕과 장금칭의 난

문제가 죽고 양제가 수의 황제에 오르자 단달은 자신이 왕으로 있을 때 보좌한 신하였기 때문에 양제는 그를 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에 임명했다. 이후 토욕혼을 정벌할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승진했다. 양제가 요동을 정벌할 때 백성들은 노역으로 힘들어 했는데 이 때문에 평원(平原) 사람 기효덕(祁孝德)과 청하(清河) 사람 장금칭이 사람들을 모아 도적이 되어 성읍을 공격했다. 군현에서는 이들의 위세가 강해 이들을 막을 수 없었는데 양제는 단달에게 기효덕과 장금칭을 토벌하게 했다. 양선회(楊善會)가 계책을 올렸는데 단달은 이를 무시했고 단달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여러번 참패를 당해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기효덕과 장금칭을 포함한 여러 도적들은 단달을 ‘단할미’라며 조롱했다. 단달은 기효덕과 장금칭에게 패한 뒤 자신에게 계책을 올렸던 양선회의 계책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양선회와 같이 계책을 논의했고 적과 대치하자 양선회의 조언대로 계책을 써 기효덕과 장금칭을 격파했다. 허나 이후 공적인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3.4. 당신은 나약하고 담력이 적습니다

이듬해, 양제는 요동정벌에 나서면서 단달에게는 탁군(涿郡)의 수비를 맡겼다. 이후 단달은 다시 좌익위장군(左翊衞將軍)에 다시 임명되었다. 고양군(高陽郡)에서 위도아(魏刀兒)가 10만에 달하는 무리를 이끌고 역산비(歷山飛)로 자처해 연(燕)과 조(趙)를 약탈했다. 단달은 탁군통수(涿郡通守) 곽현(郭絢)을 이끌고 위도아를 공격해 격파했다. 위도아의 무리가 너무 많아 도적들과 관군 사이에서 엄청 치열한 전투가 벌여 졌다고 한다. 단달은 승리할 수 있는 기민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군사들의 대오를 유지하며 성을 굳게 지켰다. 군사들을 정비하고 식량을 저장했지만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단달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약하고 담력이 적습니다.
수서 단달 열전 中

3.5. 양제가 붕어하다

616년, 양제는 강도궁(江都宮)으로 행차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단달과 태부경(太府卿) 원문도(元文都)에게 동도(東都)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이밀이 낙구(洛口)를 근거지로 삼고 군사들을 지휘해 동도의 성 아래까지 침략했다. 단달은 감문랑장(監門郎將) 방옥(龐玉), 무아랑장(武牙郎將) 곽거(霍舉)와 성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막았다. 단달은 공을 많이 세워 자효위대장군(左驍衞大將軍)에 임명되었다. 왕세충이 패하고 이밀은 다시 북망(北芒)을 차지하고 상춘문(上春門)으로 돌아왔다. 단달은 판좌승(判左丞) 곽문의(郭文懿)와 상서(尚書) 위진(韋津)과 출병해 이밀을 막았다. 그러나 단달은 적의 세력이 강한 것을 확인하고 진을 치지도 않고 달아났고 이밀은 기세를 타고 단달의 군사들을 공격해 단달의 병사들을 크게 무찔렀고 단달과 곽문의는 달아났으나 위진은 결국 군진에서 죽었다. 이로서 이밀의 군대는 날마다 기세가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양제가 붕어해 버린다.

3.6. 권력을 잡다

양제가 붕어하고 단달은 전에 같이 동도를 수비했던 원문도와 함께 월왕(越王) 양동을 군주로 추대하고 자신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겸 납언(納言)이 되었고 진국공(陳國公)에 봉해졌다. 그러나 얼마 뒤 노초가 원문도에게 권하니
왕세충은 밖에서 작전하는 군대의 일개 장수일 뿐입니다. 본시 도성에 남아 지키는 무리가 아닌데 어찌 우리 일에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낙구에서 당한 패배는 그 죄로 치면 죽여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오만 방치하게 날뛰며 정사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장래에 국가의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수서 원문도 열전 中
원문도는 노초의 말이 그렇다고 여기고 거사를 준비했는데 이것을 단달이 왕세충에게 알렸다.[4] 당시 조당에 있던 왕세충은 두려워 말을 타고 성으로 돌아가 단달과 함께 모반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고 원문도가 여러 번을 왕세충을 불렀으나 그는 가지 않았다. 이후 저녁에 단달은 왕세충을 따라 반란을 일으켜 동태양문을 함락하고 끝내 원문도는 무릎을 꿇었다. 당시 원문도와 함께 모의한 노초는 본래 황보탄의 아들 황보무일과 함께 원문도를 버리고 탈출할 수 있었는데 노초는 의리를 지키며 그에게 말했는데
나는 원공(元公)과 약조했네. 나라에 재앙이 일어나면 함께 죽기로 맹세했네. 지금 이를 저버리고 떠난다면 의롭지 않은 일일세
수서 노초 열전 中
원문도와 노초가 왕세충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양동은 사신을 보내 왕세충에게 물었는데 왕세충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문도와 노초가 신을 죽이려고 모의했나이다. 원문도를 참수하길 청하오니, 사구(司寇)에게 가서 죄를 논하소서
수서 원문도 열전 中
양동은 왕세충에게 원문도를 넘겼고 원문도는 끝내 사형 당하고 노초는 왕세충에 의해 몸이 갈라졌다. 원문도의 아들도 해를 당했다. 왕세충은 이 사건으로 단달에게 크게 감격해 그를 매우 각별히 대했다. 왕세충이 이밀을 무찌른 이후 단달은 여러 신하들과 양동에게 찾아가 왕세충에게 아홉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3.7. 최후

얼마 후 단달은 이번에는 양동에게 찾아가 재위를 왕세충에게 양위할 것을 종용했다. 이로서 수가 멸망했고 왕세충은 정을 건국하고 연호를 개명(開明)이라 했다. 단달은 이 공으로 정의 사도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 왕세충이 몰락하면서 동도가 평정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단달은 피살 되었으며 처와 아들은 관노가 되었다.

4. 평가

천지간에 모습을 가진 동물 중에 인간이 가장 영물이라고 말하는 짓은 짐승과 달리 부자지간의 도리를 알고 군신간의 예의 범절을 알게 때문이다. 전적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중시할 것은 삼강(三綱)에 있고, 상대를 섬길 때에는 한결 같아야 한다.”고 했다. 즉, 군신과 부자의 이치는 같은 것이다. 부친이 부친 같지 않으면 안 되고, 아들이 아들 같지 않으면 안되고, 군주가 군주 같지 않으면 안 되고 신하도 신하 같지 않으면 안 되는 갓이다. 그래서 군주는 하늘과 같으니 하늘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대신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나라가 위험에 청했을 때는 임명 받아 충성과 절개를 다해 신하 된 사람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절개를 바꾸어 구차하게 삶을 도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인 들은 그들이 남긴 자취를 듣고 강대한 마음을 품는다. 천년이 지나도 이러한 사람을 신하로 심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어서도 사람들이 애통하게 여기며 전대 선현들에게 추앙받는 이유다. 누구는 군주에게 예물을 올려 신하가 되고, 누구는 자신의 이름을 서류에 기록하고, 누구는 대대로 경대부의 높은 자리에 있고, 누구는 핵심 측근으로 중임을 받아 조정을 나가서 일하고, 누구는 조정에서 기밀을 다루는 일을 하고, 누구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조고 처럼 교활한 행위를 거침없이 하고, 대대로 막강한 권세를 가졌음에도 왕망처럼 반역을 일으켰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짓이니, 개와 돼지라도 이런 사람들의 살을 먹지 않을 것이다. 사직을 더럽히고 궁전을 오염시켰어도 이들의 죄악을 만천하에 드러내 처형하고, 관을 열어 시신을 불태워 권력을 찬탈하고 군주를 시해한 죄상을 공개적으로 성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사악한 짓을 저지른 신하들을 벌할 수는 있어도 후인들에게 경계로 삼게 하기에는 부족하다. 옛날 공자춘추를 짓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 공자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얻고자 한 명성을 얻을 수 없게 만들었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덮고 싶어도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의 죄명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그들의 일을 본편의 앞에 두어서 후에 군자들이 본편의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夫肖形天地,人稱最靈,以其知父子之道,識君臣之義,異夫禽獸者也。傳曰:「人生在三,事之如一。」然則君臣父子,其道不殊,父不可以不父,子不可以不子,君不可以不君,臣不可以不臣。故曰君猶天也,天可讎乎!是以有罪歸刑,見危授命,竭忠貞以立節,不臨難而苟免。故聞其風者,懷夫慷慨,千載之後,莫不願以為臣。此其所以生榮死哀,取貴前哲者矣。至於委質策名,代卿世祿,出受心膂之寄,入參帷幄之謀,身處機衡,肆趙高之姦宄,世荷權寵,行王莽之桀逆,生靈之所讎疾,犬豕不食其餘。雖薦社污宮,彰必誅之釁,斵棺焚骨,明篡殺之咎,可以懲夫既往,未足深誡將來。昔孔子修春秋,而亂臣賊子知懼,抑使之求名不得,欲蓋而彰者也。今故正其罪名,以冠於篇首,庶後之君子見作者之意焉。
수서 우문화급등전[5]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이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먼저 황제가 되려고 사람들을 이끌고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앞장서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서 본말을 뒤집고 사대부들의 체면을 모조리 깎아 내렸다. 이들 중에 누구는 직접 도적들의 수령이 되었고, 누구는 직접 군주를 시해했다. 그 죄악이 사슴을 말이라고 한 조고 보다 더 심했다. 일은 춘추시기 군주를 시해한 선례보다 다 지나쳤다. 그들의 행위는 천지가 용서할 수 없고 사람과 신의 공분을 자아냈다. 그래서 이러한 추한 무리는 한 명씩 살육되어 당시 충직한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었고 장래에도 후인들을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계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서 우문화급등전 평 中
위와 같이 월왕 양동을 폐위하는 데 협력하고 왕세충을 따라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에 평가가 당연히 나쁠 수 밖에 없다. 수서의 저자 위징은 이를 진나라간신 조고와 비교하며 조고 보다 심하다며 혹평을 했다. 반대로 왕세충과 단달을 몰아 내려던 원문도는 위징에게 호평을 받았다.

위징은 단달을 우문화급, 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세충과 함께 묶어 이들의 악행이 심하다는 것을 여러 인물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다만 열전 초반 부에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는 기록과 위징의 평가에 언급되지 않은 점[6], 중국 최고의 명군이자 성군인 수문제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 수양제 밑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점을 보면 그가 비록 간사한 인물이었지만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달은 양제가 사망하고 월왕 양동을 옹립 하면서 권신 원문도를 제거하고 왕세충을 따르며 수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이 점에서 단달을 옹호하기는 힘들다.

5. 수서 단달전 번역본

이하 내용은 위징이 지은 수서를 번역해 옮긴 것 입니다. 원문과 문체가 다릅니다만, 내용상 빠트리거나 상충한 내용은 없습니다.
단달은 무위 고장 사람이다. 부친 단엄은 북제에서 삭주자사를 지냈다. 단달은 북주에서 3세 때 양원현공 작위를 이었다. 커서는 키가 8척에 멋진 수염이 났으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고조는 승상이 되자 그를 대도독의 신분으로 친위병을 이끌도록 했고, 늘 곁에 두었다. 고조가 제위에 오르자, 단달은 좌직재가 되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거기장군 겸 진왕참군으로 승진했다. 고지혜와 이적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단달은 군사 10,000명을 이끌고 방(方)과 저(滁) 두 주를 공격해 평정했다. 이에 황제는 그에게 비단 1,000필을 하사하고 의동으로 승진시켰다. 또 선주에서 왕문진을 물리쳐 개부가 더해졌고, 노비 50명과 비단 400필을 받았다. 인수 초년, 태자자위부솔(太子左衞副率)에 임명되었다.

대업 초년, 양제는 단달이 자신이 왕으로 있을 때 보좌한 신하여서 그를 좌익위장군에 임명했다. 토욕혼을 정벌할 때 관직이 금자광록대부로 승진했다. 양제가 요동을 정벌할 때 백성들은 노역으로 힘들어 했다. 평원 사람 기효덕과 청하 사람 장금칭 등이 사람들을 모아 도적이 되어 성읍을 공격하자 군현에서는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황제는 단달에게 이들을 공격토록 했으나 장금칭 등에게 여러 번 패해 큰 전력 손실을 입었다. 도적들이 그를 무시하며 단할미라고 조롱했다. 후에 유령 양선회의 계책을 써서 다시 도적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었다. 도성으로 돌아와 공적인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이듬해, 양제는 요동 정벌에 나서면서 단달에게 탁군을 지키게 했다. 얼마 후 또다시 좌익위장군에 임명했다. 고양의 위도아가 무리 10여만 명을 이끌고 역산비로 자처하여 연과 조 땅을 약탈했다. 단달은 탁군통수 곽현을 이끌고 위도아를 공격해 물리쳤다. 당시 도적들이 아주 많아져 관군은 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단달은 승리할 수 있는 기민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군사들의 대오를 유지하며 성을 굳게 지켰다. 군사들을 정비하고 식량을 저장했지만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나약하고 담력이 적다고 말했다.

대업 12년, 양제는 강도궁으로 행차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단달과 태부경 원문도에게 동도를 지킬 것을 명했다. 이밀이 낙구를 근거지로 삼고 군사들을 지휘해 동도의 성 아래까지 침략해 왔다. 단달과 감문랑장 방옥, 무아랑장 곽거가 성안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가 막았다. 단달은 많은 공을 세워 좌효위대장군으로 승진했다. 왕세충이 패하자, 이밀은 다시 북망을 차지하고 상춘문으로 왔다. 단달은 판좌승 곽문의, 상서 위진과 출병해 그를 막았다. 단달은 적의 세력이 강한 것을 보고 진을 치지도 않고 달아났다. 이밀이 기세를 타고 공격해 단달의 군사들을 크게 물리쳤다. 위진은 군진에서 죽었다. 이로서 적의 기세가 날로 강해졌다.

양제가 강도에서 붕어하자 단달은 원문도 등과 월왕 양동을 군주로 추대하고, 개부의동삼사 겸 납언에 임명되고 진국공에 봉해졌다. 원문도 등이 왕세충을 죽이려고 모의하자, 단달은 이 사실을 몰래 왕세충에게 알리고 그와 내응하기로 했다. 일이 드러나자 월왕 양동은 원문도를 잡아 왕세충에게 넘겼다. 왕세충은 이 일로 단달에게 매우 감격해 그를 각별하게 대했다. 왕세충이 이밀을 무찔렀다. 단달 등은 월왕 양동에게 왕세충에게 아홉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을 권했다. 얼마 후 또 양동에게 재위를 왕세충에게 양위 할 것을 종용했다. 왕세충은 황제가 되자 단달을 사도에 임명했다. 동도가 평정되자 피살되었다. 처와 아이들도 관노가 되었다.

5.1. 원문

段達,武威姑臧人也。父嚴,周朔州刺史。達在周,年始三歲,襲爵襄垣縣公。及長,身長八尺,美鬚髯,便弓馬。

高祖為丞相,以大都督領親信兵,常置左右。及踐阼,為左直齋,累遷車騎將軍,兼晉王參軍。高智惠、李積等之作亂也,達率眾一萬,擊定方、滁二州,賜縑千段,遷進儀同。又破汪文進等於宣州,加開府,賜奴婢五十口,緜絹四千段。仁壽初,太子左衞副率。

大業初,以蕃邸之舊,拜左翊衞將軍。征吐谷渾,進位金紫光祿大夫。帝征遼東,百姓苦役,平原祁孝德、清河張金稱等並聚眾為羣盜,攻陷城邑,郡縣不能禦。帝令達擊之,數為金稱等所挫,亡失甚多。諸賊輕之,號為段姥。後用鄃令楊善會之計,更與賊戰,方致剋捷。還京師,以公事坐免。

明年,帝征遼東,以達留守涿郡。俄復拜左翊衞將軍。高陽魏刀兒聚眾十餘萬,自號歷山飛,寇掠燕、趙。達率涿郡通守郭絢擊敗之。于時盜賊既多,官軍惡戰,達不能因機決勝,唯持重自守,頓兵饋糧,多無剋獲,時皆謂之為怯愞。

十二年,帝幸江都宮,詔達與太府卿元文都留守東都。李密據洛口,縱兵侵掠城下,達與監門郎將龐玉、武牙郎將霍舉率內兵出禦之。頗有功,遷左驍衞大將軍。王充之敗也,密復進據北芒,來至上春門,達與判左丞郭文懿、尚書韋津出兵拒之。達見賊盛,不陣而走,為密所乘,軍大潰,津沒於陣。由是賊勢日盛。

及帝崩於江都,達與元文都等推越王侗為主,署開府儀同三司,兼納言,封陳國公。元文都等謀誅王充也,達陰告充,為之內應。及事發,越王侗執文都於充,充甚德於達,特見崇重。既破李密,達等勸越王加充九錫備物,尋諷令禪讓。充僭尊號,以達為司徒。及東都平,坐誅,妻子籍沒。

6. 연의

《설당연의(說唐演義)》에서는 왕세충의 휘하의 원수로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의 주무기인 방천화극(方天畵戟)에 능하다고 나온다. 이후 적군과 싸우러 나갔으나 몇 합 버티지 못하고 전사한다.

7. 가족관계

  • 부 : 삭주자사(朔州刺史) 단엄(段嚴)/(? ~ ?)
  • 모 : 성명 미상/(? ~ ?)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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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개 · 영호희 · 설주 · 우문필 · 장형 · 양왕 노사도 · 이효정 · 설도형
58권 「명극양등전(明克讓等傳)」
명극양 · 위담 · 육상 · 두대경 · 신덕원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59권 「양제삼남전(煬帝三男傳)」 60권 「최중방등전(崔仲方等傳)」 61권 「우문술전(宇文述等傳)」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최중방 · 우중문 · 단문진 우문술 · 곽연
62권 「왕소등전(王韶等傳)」 63권 「번자개등전(樊子蓋等傳)」
왕소 · 원암 · 유행본 · 양비 · 유욱 · 조작 · 배숙 번자개 · 사상 · 원수 · 양의신 · 위현 · 유권
64권 「이원통등전(李圓通等傳)」
이원통 · 진무 ·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심광 · 내호아 · 어구라 · 진릉 · 왕변
65권 「주나후등전(周羅睺等傳)」
주나후 · 주법상 · 이경 · 모용삼장 · 설세웅 · 왕인공 · 권무 · 토만서 · 동순 · 조재
66권 「이악등전(李諤等傳)」
이악 · 포굉 · 배정 · 유장 · 원사 · 낭무 · 고구 · 장건위 · 영비 · 육지명 · 방언겸
67권 「우세기등전(虞世基等傳)」 68권 「우문개등전(宇文愷等傳)」
우세기 · 배온 · 배구 우문개 · 염비 · 하조
69권 「왕소등전(王劭等傳)」 70권 「양현감등전(楊玄感等傳)」
왕소(王劭) · 원충 양현감 · 이자웅 · 조원숙 · 곡사정 · 유원진 · 이밀 · 배인기
71권 「성절전(誠節傳)」
유홍 · 황보탄 · 유원 · 풍자명 · 장수타 · 양선회 · 독고성 · 원문도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72권 「효의전(孝義傳)」
육언사 · 전덕무 · 설준 · 왕반 · 양경 · 곽준 · 전익 · 유회 · 유사준 · 낭방귀 · 적보림 · 이덕요 · 화추 · 서효숙
73권 「순리전(循吏傳)」
양언광 · 번숙략 · 조궤 · 방공의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유광 · 왕가 · 위덕심
74권 「혹리전(酷吏傳)」
사적사문 · 전식 · 연영 · 조중경 · 최홍도 · 원홍사 · 왕문동
75권 「유림전(儒林傳)」
원선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76권 「문학전(文學傳)」
유진 · 왕규 · 최표 · 제갈영 · 손만수 · 왕정 · 우작 · 신대덕 · 왕주 · 유자직 · 반휘 · 두정현 · 상득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유빈
77권 「은일전(隱逸傳)」
이사겸 · 최곽 · 서칙 · 장문후
78권 「예술전(藝術傳)」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위정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허지장 · 만보상 · 왕영언
79권 「외척전(外戚傳)」
여씨 · 독고라 · 소규
80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81권 「동이전(東夷傳)」
고려 · 백제 · 신라 · 말갈 · 유구국 · 왜국
82권 「남만전(南蠻傳)」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83권 「서역전(西域傳)」
토욕혼 · 당항 · 고창 · 소그드인 · 강국 · 안국 · 석국 · 여국 · 언기 · 구차 · 소륵 · 우전 · 발한 · 토화란 · 읍달 · 미국 · 사국 · 조국 · 하국 · 오나갈 · 목국 · 파사 · 조국 · 부국
84권 「북적전(北狄傳)」
돌궐 · 서돌궐 · 철륵 · · 거란
85권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우문화급 ,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충 · 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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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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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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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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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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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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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현공(襄垣縣公)
단엄 단달 폐지[7]
우문화급등전(宇文化及等傳)
우문화급 우문지급 사마덕감 배건통 왕세충 단달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왕세충 단달


[1] 공적인 일에 연루되어 면직 되었다가 수양제가 요동 정벌의 나서면서 탁군(涿郡)의 수비를 맞았다. 이후 다시 양제의 의해 좌익위장군에 임명되었다.[2] 당척(24.5cm) 기준[3] 삭주는 삭방자사부(朔方刺史部)라고도 한다. 현 내몽골 자치구 어얼둬쓰 시 일대[4] 수서 원문도전에는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나오지만 단달전에는 이것이 단달이 실행 했다고 나온다.[5] 따로 이름이 붙지 않아서 망정이지 붙었으면 십중팔구 역신전으로 붙여졌을 것이다.[6] 우문화급과 왕세충이 언급되었으며 이 둘은 도량이 좁다고 평했다.[7] 단달이 진국공에 봉해지면서 폐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