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12:44:39

조옹(북위)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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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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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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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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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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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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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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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동안간공(東安簡公)
刁雍 | 조옹
시호 간공(簡公)
작호 동안후(東安侯) → 동안공(東安公)
조(刁)
이름 옹(雍)
숙화(淑和)
출생 390년
사망 484년 (향년 94세)
부친 조창(刁暢)
출신 발해군(勃海郡) 요안현(饒安縣)
자녀 6남
국적 동진후진북위
1. 개요2. 생애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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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서진의 어사중승 조유(刁攸)의 고손자. 증조부 조협동진원제 사마예를 따라 강남으로 내려가 경구(京口)에 정착했으며, 관직은 상서령까지 올랐다. 부친 조창(刁暢)은 안제 사마덕종 시기에 우위장군을 지냈다. 먼 친척 손자로는 조쌍이 있다.

2. 생애

초기에, 조창의 형 조규유유가 경박하고 행실이 나쁘다고 여겼는데, 유유가 사채 30,000전을 시간 내에 갚지 않자 그를 말뚝에 묶는 수모를 주었다. 이후 환현을 토벌하고 정권을 잡게 된 유유는 조규에 대한 악감정으로 인해 그의 가문을 멸족하였다. 이때 조옹은 조창의 옛 부하에게 숨겨졌다가, 후진의 예주목(豫州牧) 요소가 지키고 있는 낙양(洛陽)으로 도망쳤고, 이후 후진의 도읍인 장안(長安)에 이르렀다. 조옹은 경전과 역사서를 널리 읽었기에, 후진의 황제 요흥은 그를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로 임명하였다.

태상 2년(417년) 9월, 태위 유유가 북벌하여 요흥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요홍을 토벌하고, 장안(長安)을 함락시킴으로써 후진을 멸망시켰다. 이에 조옹은 사마휴지 등과 함께 북위로 귀순하였다. 이때 조옹은 명원제 탁발사에게 표문을 올려 충성을 다짐하고, 남쪽 국경에서 힘쓰겠다고 청하였다. 명원제는 이를 허하고, 조옹에게 건의장군(建義將軍) 직위를 임시로 부여하였다.

태상 2년(417년) 10월, 조옹은 하제(河濟) 사이에서 유랑민을 모아 5,000여 명의 병력을 얻었고, 남쪽으로는 대□(大□)을 방어선으로 삼아 서주(徐州)와 연주(兗州) 지역을 어지럽혔다. 그는 군영을 세우고 군사를 모아 맹세하며, 변경 지역에 격문을 돌렸다. 동진의 태위 유유는 장수 이숭(李嵩) 등을 보내 조옹을 토벌하게 했으나, 조옹은 이숭의 군대를 격파하고 적장 이숭을 몽산(蒙山)에서 참수하였다. 이로써 조옹의 군사는 20,000명에 이르렀고, 고산(固山)에 주둔하며 진군하였다.

태상 7년(422년) 3월, 조옹의 사촌동생 조미(刁彌)도 군사를 이끌고 경구(京口)로 들어가 조옹에게 내응하며 유유를 공동으로 도모하려 하였으나, 유유가 군사를 보내 조미를 격파하였다.

태상 7년(422년) 6월, 조옹은 송나라의 청주(青州)를 침공했으나 패배하였다. 이에 조옹은 흩어진 병사를 수습하여 마이산(馬耳山)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 그러나 송나라의 청주군에게 다시 압박을 받자, 조옹은 대향산(大鄉山)으로 들어갔다.

태상 8년(423년) 정월, 명원제가 남쪽 업(鄴)에 행차했을 때, 조옹은 행궁(行宮)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명원제가 물었다.
"예전에 듣기로는 경(卿)의 집안 사람이 유유를 말뚝에 묶었다 하던데, 그 자는 경과 어떤 관계였는가?"
조옹이 답하였다.
"그는 신(臣)의 백부(伯父)입니다."
명원제가 웃으며 말했다.
"유유 부자(父子)는 마땅히 경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옹에게 말했다.
"짐이 먼저 숙손건 등을 보내 청주(青州)를 공격하게 했으나, 백성들이 모두 숨었고 성은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 적들은 본래 경의 위엄을 두려워하며, 사민(士民)들도 경을 믿고 따르니, 이제 짐은 경을 보내 숙손건 등을 돕게 하려 한다. 경은 부디 힘쓰기를 바란다."
이에 명원제는 조옹에게 진동장군(鎮東將軍)•청주자사(青州刺史)•동광후(東光侯) 직위를 임시로 부여하고, 50,000기의 기병을 주어 별도의 의군(義軍)을 조직하게 하였다.

당시 숙손건은 먼저 동양(東陽)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조옹이 도착하여 의병 5,000명을 모아 그와 합류하였다. 조옹이 군현을 순찰하며 백성들을 위무하니, 토착민들이 모두 항복하며 조세를 보내 북위군에게 군량을 공급하였다. 이후 조옹도 동양성을 공격하여 북쪽 성벽을 30보(步) 정도 평탄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동양성에서 농성하던 송나라의 청주자사 축기(竺夔)는 성 안에서 지하도를 파 면수간(澠水澗)으로 통하는 퇴로를 만들었다. 조옹이 숙손건에게 말했다.
"이 성은 이미 평탄해졌으니, 지금 들어가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이 모두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나 숙손건이 병사들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망설이자, 조옹이 다시 말했다.
"만약 관병(官兵)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신다면, 제가 의병을 이끌고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럼에도 숙손건은 듣지 않았다.

축기가 마침내 동쪽으로 도망가려 할 때, 송나라의 소제 유의부는 장수 단도제 등을 보내 동양성을 구원하도록 하였다. 조옹이 숙손건에게 말했다.
"적들은 관군의 기병을 두려워하여 수레를 쇠사슬로 연결해 함진(函陣)을 만들었습니다. 대현(大峴) 이남은 곳곳이 좁아 병력이 나란히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제가 의병 5,000명을 이끌고 험로를 틀어 막아 적의 구원군을 격파하겠습니다."
숙손건이 말했다.
"우리 병사들이 이곳의 수토(水土)를 견디지 못해 전염병으로 절반 이상이 쓰러졌소. 만약 대치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병사들이 저절로 죽어 전투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지금 대군(大軍)을 손상시키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오."
숙손건은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철수하면서 동양성 공략은 실패로 끝났다.

태상 8년(423년) 4월, 조옹은 윤묘(尹卯)에 주둔하여 스스로 방어를 굳히는 한편, 조령(詔令)을 받아 남쪽으로 진격하여 적의 경계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옹은 항성(項城)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때 조칙을 받아 기회를 따라 공을 세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조옹은 초(譙), 양(梁), 팽(彭), 패(沛)의 백성 5,000여 호를 모아 27개 영(營)을 설치하고, 진(鎮)을 옮겨 제음(濟陰)에 주둔하였다.

연화 2년(433년) 12월, 태무제 탁발도가 외황성(外黃城)에 서주(徐州)를 설치하고, 초(譙), 양(梁), 팽(彭), 패(沛) 4개 군(郡)과 9개 현(縣)을 두었다. 이때 조옹은 평남장군(平南將軍)•서주자사(徐州刺史)로 임명되었고, 동안후(東安侯) 작위를 정식으로 받았다. 그는 7년 동안 진(鎮)에 머물면서 그 지역을 다스렸다.

태연 4년(438년), 조옹은 수도로 소환되었으나, 여러 해 동안 변방 백성들이 그를 다시 부임시켜줄 것을 조정에 요청하였다. 태무제는 이를 가상히 여겼다.

태평진군 2년(441년), 태무제는 조옹을 다시 사지절(使持節)•시중(侍中)•도독양·예·연·서4주 제군사•(都督揚豫兗徐四州諸軍事)•정남장군(征南將軍)•서·예2주 자사(徐豫二州刺史)로 삼았다.

태평진군 3년(442년) 7월, 송나라의 용양장군 배방명(裴方明)과 장수 호숭지(胡崇之)가 구지를 침략해 함락시키자, 태무제는 조서를 내려 조옹과 건흥공 고필 등 10여 명의 장수들에게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태평진군 5년(444년) 4월, 조옹은 본래의 장군 직위를 유지한 채 박골률진장(薄骨律鎮將)으로 임명되었다. 조옹이 진(鎮)에 도착한 후,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신은 조정의 은총을 입고 출진(出鎮)하게 되어 서쪽 변경을 지키라는 명을 받들어, 여러 군대를 통솔하고 호구(戶口)가 번성한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융마(戎馬)를 총괄하여 뜻밖의 변고에 대비하고, 여러 둔전(屯田)을 감독하여 비축을 늘리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에 신은 밤낮으로 근심하며 편안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올해 4월 말에 진(鎮)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름이어서, 농사를 준비하기에는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 농부들을 생각하니, 비록 들판에 씨를 뿌렸지만 관개 수로에 물이 부족해 널리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전부터 이곳은 수확량이 부족해 세금을 채우기 어려웠고, 병사와 백성들은 누구나 굶주림과 궁핍에 시달렸습니다. 대략 살펴보니,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릇 백성을 기르고 나라를 풍요롭게 하려면 반드시 대규모의 농사 지을 땅이 필요합니다. 이 지역은 비가 부족하니, 황하(黃河)를 끌어다 쓰는 것이 마땅하나, 옛 수로와 둑을 살펴보니, 상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지 오늘날의 것이 아닙니다. 부평(富平) 서남쪽 30리(里)에 애산(艾山)이 있는데, 남북으로 26리, 동서로 45리이며, 황하로 통하도록 뚫은 것이 마치 우(禹) 임금의 옛 흔적과 같습니다. 그 양쪽 기슭에는 농토를 관개하는 큰 수로가 있는데, 너비가 10여 보(步)이며, 산 남쪽에서 물을 끌어 이 수로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옛날에 이 수로를 만들었을 때는 높이가 1장(丈)보다도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황하의 물살이 급하고 모래와 흙이 쓸려 내려와, 지금은 이 수로가 황하의 물보다 2장 3척(尺) 더 높아졌습니다. 또한 황하 물이 침식하여 수로가 자주 무너지고, 수로가 높이 매달려 있어 물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비록 여러 곳에서 옛 방식을 따라 물을 끌어오려 해도 물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애산 북쪽 황하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어 물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서쪽 강은 좁아서 너비가 140보(步)입니다. 신이 청하건대, 내년 정월에 하서(河西) 고구(高渠) 북쪽 8리(里)와 황하 5리 지점에 평지를 뚫어 수로를 만들고자 합니다. 수로의 너비는 15보(步), 깊이는 5척(尺)으로 하며, 양쪽 둑을 쌓아 높이를 1장(丈)으로 만듭니다. 북쪽으로 40리를 진행한 후, 고구거(古高渠)로 다시 들어가 고구를 따라 북쪽으로 80리를 더 가면, 총 120리를 연결하여 넓고 좋은 농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계획상 4,000명이 40일 동안 일하면 수로가 완성될 것입니다. 새로운 수로 입구를 뚫으려면 황하 하류 5척 아래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소하(小河) 동남쪽 기슭에서 북서쪽 기슭까지 사선으로 끊어, 길이 270보, 너비 10보, 높이 2장으로 만들어 소하를 완전히 차단하려 합니다. 20일이면 이 공사를 마칠 수 있으며, 총 공사 기간은 60일입니다. 소하의 물이 모두 새로운 수로로 들어가면 물이 충분해져 관전(官田)과 사전(私田) 40,000여 경(頃)을 적실 수 있습니다. 10일 안에 물이 한 번 돌고, 총 네 번 관개하면 곡식이 잘 익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세금도 항상 충족되고, 백성들도 풍족해질 것입니다."
이에 조서가 내려졌다.
"경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황하(黃河)의 물을 다시 끌어와 대규모 농토를 조성하고자 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마땅히 이를 시작하여 완성하는 데 힘쓰라. 어찌 반드시 날짜에 구애받아야 하겠는가? 나라에 이롭고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진행하고 상황만을 보고하라."

태평진군 7년(446년), 조옹이 다시 표문을 올렸다.
"조서에서 고평(高平), 안정(安定), 통만(統萬) 및 신이 지키는 네 진(鎮)에서 수레 5,000여 대를 내어, 둔전(屯田)의 곡식 50만 곡(斛)을 운송하여 옥야진(沃野鎮)으로 보내 군량을 공급하라 하셨습니다. 신의 진(鎮)은 옥야진에서 800리 떨어져 있고, 길에 깊은 모래가 많아 가벼운 수레로도 오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만약 곡식을 싣는다면 20석(石)을 넘기 어렵고, 깊은 모래를 지날 때마다 반드시 빠지거나 막힙니다. 또한 곡식은 하서(河西)에 있으니, 야진으로 운송하려면 황하를 건너야 합니다. 수레 5,000대로 곡식 10만 곡을 운송하면 100여 일이 걸려 한 번 오갈 수 있으며, 이는 백성들의 농사에 큰 지장을 줍니다. 수레를 끄는 일꾼과 소가 힘들어 모두 도착하기 어렵고, 1년에 두 번 운송할 수 있어도 50만 곡을 운송하려면 3년이 걸립니다.

신은 앞서 조서를 받아, 나라에 이롭고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보고하라 하셨습니다. 신이 듣건대, 정백거(鄭白渠)는 멀리 회하(淮河)와 바다의 곡식을 끌어와 수천 리를 거슬러 올라가 1년 만에 한 번 도착하더라도, 나라에 비축된 곡식이 있으면 백성들이 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청하건대, 견둔산(牽屯山) 황하 근처에서 배 200척을 건조하되, 두 배를 한 뗏목(舫)으로 만들어 한 배에 곡식 2,000곡을 실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한 뗏목에 10명이 타면 총 1,000명이 필요합니다. 신의 진(鎮) 안의 병사들은 대부분 수상 작업에 익숙합니다. 한 번 운송에 20만 곡을 실을 수 있으며, 배가 순조롭게 흐르면 5일 만에 도착하고, 옥야진에서 끌어올려 10일 만에 돌아오니, 총 60일 만에 한 번 오갈 수 있습니다. 3월부터 9월까지 세 번 운송하면 60만 곡을 운송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면 인력이 수레 운송보다 10배 이상 덜 들고, 소의 힘을 쓰지 않아도 되며, 농토도 황폐화되지 않습니다."
이후 조서가 내려졌다.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송하려는 계획을 알았으니, 한 겨울이면 완성되어 백성의 힘을 크게 아낄 수 있고, 소를 쓰지 않으며 농토도 황폐화되지 않으니 매우 좋다. 이는 단순히 한 번의 운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이제 별도로 통만진(統萬鎮)에 명령하여 병사를 내어 곡식 운송을 지원하게 하겠다. 경의 진(鎮)에서는 100명의 병사를 내어 배를 만드는 일꾼으로 삼으라. 어찌 1,000명을 모두 배정해야 하겠는가? 비록 배를 만드는 장인(匠人)을 보내더라도, 경이 지시하고 가르쳐야 하니, 단독으로 주관할 수는 없다. 나라에 이롭고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이와 같다면, 계속 보고하라."

태평진군 9년(448년), 조옹이 표문을 올렸다.
"신이 듣건대, 평안할 때 함부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선왕(先王)의 정치입니다. 하물며 변방 성곽과 연결된 지역은 방어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적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신의 진(鎮)이 관할하는 하서(河西)는 변방에 위치하여 항상 뜻밖의 변고를 두려워합니다. 평지에 곡식을 쌓아두면 지키고 수확하기가 어렵고, 병사들이 흩어져 살아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만약 반역자나 간사한 자가 나타나면 반드시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것이고, 비록 스스로 방어하려 해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 성을 쌓아 곡식을 저장하고 병사를 배치하여 방비하길 청합니다. 진(鎮)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니, 관청에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농한기를 이용해 농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년, 2년 안에 완성되지 않더라도 3년 안에는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 성을 세우는 해에는 반드시 수륙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를 정하고, 크기와 높이는 힘에 맞게 조절하겠습니다."
조서가 내려져 허락되었고, 태평진군 10년(449년) 3월에 성이 완성되었다. 이에 조서가 다시 내려졌다.
"경이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며 근심하고 수고하여, 성이 완성되어 변방에 뜻밖의 걱정이 없고 천 년 동안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니, 짐은 무척 기쁘도다. 이제 이 성을 '조공성(刁公城)'이라 이름하여 경의 공적을 표창하노라."

흥광 2년(455년), 문성제 탁발준이 조서를 내려 조옹을 수도로 소환하고 특진(特進)으로 임명하였으며, 장군 직위는 그대로 유지하게 하였다.

화평 6년(465년), 조옹이 표문을 올렸다.
"신이 듣건대, 나라와 가정을 다스리는 자는 예악(禮樂)을 우선시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예(禮)는 바깥을 다스리는 것이고, 악(樂)은 안을 수양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화기(和氣)가 가운데에서 풀어지고, 공경(恭敬)과 온문(溫文)이 함께합니다. 이 때문에 위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예(禮)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풍속을 바꾸고 교화하는 데에는 악(樂)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한 백성과 한 풍속을 다스리는 데에도 예악(禮樂)을 숭상하고 사용해야 하는데, 하물며 팔방(八方)을 통치하고 육합(六合)을 조화롭게 만드는 자야 말할 것도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요(堯) 임금은 오례(五禮)를 닦아 법전(法典)을 밝히고, 《함지(咸池)》를 지어 만물을 조화롭게 하였습니다. 또, 운대(雲岱)에서 황제의 도리를 드러내고, 개구(介丘)에서 큰 교화를 펼쳐, 나무와 돌이 마음을 바꾸고 새와 짐승이 춤을 추게 하였습니다. 천지(天地)의 정서를 포용하고 신명(神明)의 덕을 이루었으니, 하늘을 감동시키고 신령을 움직이는 데에는 예악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대악(大樂)은 천지와 함께 화합하고, 대례(大禮)는 천지와 함께 절제합니다. 화합하므로 만물이 번성하고, 절제하므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냅니다. 예(禮)가 교외(郊外)에서 행해지면 위아래가 화합하고 엄숙해집니다. 엄숙함은 예(禮)의 본질이고, 화합은 악(樂)의 극치입니다. 악(樂)이 극에 이르면 원망이 없고, 예(禮)가 극에 이르면 어긋남이 없습니다. 공손히 양보하며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예악(禮樂)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성인(聖人)만이 예악(禮樂)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악(樂)을 지어 하늘에 응하고, 예(禮)를 만들어 땅에 맞추었습니다. 이는 하늘의 도(道)를 이어받아 사람의 정서를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왕자(王者)는 다스림이 안정되면 예(禮)를 만들고, 공적이 이루어지면 악(樂)을 지었습니다. 우(虞), 하(夏), 은(殷), 주(周)는 시대가 바뀌면서 일어났으나, 주(周)나라 말기에 이르러 왕정(王政)이 쇠퇴하였습니다. 중니(仲尼, 공자)는 예악이 무너지는 것을 슬퍼하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도가 떨어질 것을 통탄하며,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와 각각 그 중도(中道)를 얻었습니다. 진시황 시대에 이르러 도술(道術)을 버리고, 전적(典籍)을 불태우며, 유학자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고, 천하의 눈을 멀게 하여 상위(象魏)의 법도를 끊었으니, 《소소(簫韶)》의 아름다운 음악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漢)나라가 일어나 역법(曆法)을 고치고, 복색(服色)을 바꾸며, 음악을 조화롭게 하고, 예의(禮儀)를 제정하여 정성(正聲)과 고례(古禮)를 대략 갖추었습니다. 효장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번 삼대(三代, 하·은·주)의 증감(增減)을 살펴 우열(優劣)이 다름을 탄식하며, 덕(德)이 얕아 백성의 시청(視聽)을 바꿀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박사(博士) 조포(曹褒)가 조서를 보고, 임금이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뜻을 알고는 상소를 올려 여러 의식(儀式)을 정하여 한(漢)나라의 예(禮)로 삼으려 했으나, 결국 폐지되고 중단되었습니다. 위(魏)와 진(晉)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정은 했으나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무위(無為)로써 스스로를 공손히 다스리고, 현인(賢人)을 등용하여 세상을 다스리시며, 화란(和鸞)의 종소리를 울리며 대종(岱宗, 태산)에 오르고, 여러 제후를 거느리고 중악(中嶽)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삼례(三禮)는 당(唐)의 시대 때부터 결여되었고, 상무(象舞)는 주(周)나라 때부터 쇠퇴하였습니다. 임금의 행적은 반드시 기록하는 것이 옛 법도이며, 시망(柴望)의 예(禮)는 제왕(帝王)의 성대한 일입니다. 신이 이제 생각하건대, 시기는 있으나 예(禮)가 없고, 덕(德)은 있으나 악(樂)이 없습니다. 역사에는 봉석(封石)의 글이 빠져 있고, 악공(樂工)은 청송(清頌)의 제향(祭享)이 끊어졌으니, 이는 모두 예악(禮樂)이 흥하지 못하고 왕정(王政)에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듣건대, 악(樂)은 예(禮)에서 나오므로 덕(德)을 상징하고, 예(禮)는 악(樂)에서 나오므로 음란함을 방지합니다. 오제(五帝)는 시대가 달라 서로 따르지 않았고, 삼왕(三王)은 세대가 달라 서로 이어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이 시대와 함께하고, 이름이 공적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선대 유학자들의 지혜를 깊이 알지 못하고, 좁은 식견으로 멀리 내다보지 못하나, 마땅히 예(禮)를 닦고 악(樂)을 바로잡아 성스러운 다스림을 빛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성제는 조서를 내려 이를 공경(公卿)들에게 의논하게 하였으나, 문성제가 갑자기 붕어하면서 마침내 중단되었다.

황흥(皇興) 연간(467년 ~ 471년)에 조옹은 농서왕 원하(源賀) 및 중서감 고윤(高允) 등과 함께 노년에 특별한 예우를 받았다. 헌문제 탁발홍은 조옹에게 궤장을 하사하고,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전전(殿殿)에 출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매달 진수성찬을 보내주었다.

조옹은 성품이 너그럽고 부드러웠으며, 문장을 좋아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았으며, 그가 지은 시(詩), 부(賦), 송(頌), 논(論) 및 잡문(雜文)이 100여 편에 이르렀다. 또한 두루 학자를 사랑하였으며, 마음이 고요하고 욕심이 적었다. 조옹은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교계(教誡) 20여 편을 지어 자손을 훈계하였다.

태화 8년(484년) 겨울, 조옹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부의로 명복(命服) 한 벌과 비단 500필을 하사받았으며, 장군의 직위를 유지한 채 의동삼사(儀同三司)•기주자사(冀州刺史)로 추증되었다.

시기는 불명이나, 묘비에 따르면 조옹은 동안공(東安公)으로 작위가 승격되었고, 시호는 '간공(簡公)'라 하였다.

조씨 가문은 조옹 사후에도 대대로 영예와 복록을 누렸으나, 가풍이 그다지 청렴하고 단정하지 못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경멸받았다.

3. 가계

  • 조옹(刁雍)
    • 조찬(刁纂) - 조옹의 장남. 자는 봉종(奉宗). 중서시랑(中書侍郎)을 지냈으나 요절하였다.
    • 조준(刁遵) - 조옹의 아들. 조찬의 동생. 문서 참고.
      • 조해(刁楷) - 조준의 장남. 자는 경백(景伯). 주(州)에서 수재(秀才)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였다.
        • 조충(刁沖) - 조해의 아들. 조해의 동생. 문서 참고.
      • 조상(刁尚) - 조준의 아들. 조해의 동생. 자는 경등(景勝). 기주(冀州)에서 치중(治中)을 지냈으나 요절하였다.
      • 조정(刁整) - 조준의 아들. 조상의 동생. 문서 참고.
        • 조공(刁恭) - 조정의 아들.
      • 조선(刁宣) - 조준의 아들. 조정의 동생.
    • 조소(刁紹) - 조옹의 아들. 조준의 동생. 자는 봉세(奉世). 무기시랑(武騎侍郎)을 지내다가 양주(涼州)에서 여음왕 탁발천사의 정서부(征西府) 사마(司馬)를 지냈다.
    • 조헌(刁獻) - 조옹의 아들. 조소의 동생. 자는 봉장(奉章). 비서랑(秘書郎)을 지냈다.
    • 조융(刁融) - 조옹의 아들. 조헌의 동생. 자는 봉업(奉業). 여음태수(汝陰太守)를 지냈다.
    • 조숙(刁肅) - 조옹의 아들. 조융의 동생. 자는 봉성(奉誠). 중서박사(中書博士)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