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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위서 魏書 Book of Wei | |
저자 | 위수 |
시기 | 6세기 북제 |
언어 | 한문 |
권 수 | 114권 |
분량 | 220년 ~ 550년 (330년) 후한 헌제 재위 31년(연강 원년) ~ 동위 효정제 재위 27년(무정 8년) |
1. 《위서》(魏書)
1.1. 개요
魏書중국의 정사인 24사 중 하나로 남북조시대의 국가들 중 하나인 북위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서다.
북제(北齊)의 초대 황제인 현조 문선제(文宣帝)의 치세때였던 천보(天保) 10년(559년)에 위수(魏收)가 서술한 사서로 114권[1]으로 되어 있다.[2]
서진시대 진수가 쓴 《삼국지》〈위서〉[3]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1.2. 특징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다.- <본기> 서두: <서기>라는 형식으로 북위 왕조 창건 이전의 선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북제 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북제의 전신인 동위 정권과 그 후계 국가였던 북제를 정통으로 하고 있다.
- <열전>에 5호의 제국(諸國)과 남조의 계승을 내세우고 있다.
- 불교 및 도교 관련의 사건을 기록한〈석로지〉가 있다.
선비 탁발부부터 시작하여 북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동위를 정통이라 했으나, 북제의 역사를 왜곡하고 <열전>(列傳)의 서술이 불공평하다. 특히 남조의 한족 국가들에 대해 극히 불평등하게 기록하는 등 공정성이 심히 낮다. 예를 들어 남조 유송의 무제(武帝) 유유, 남제의 고제(高帝) 소도성을 도이[4][5]로 기록하고[6] 거기다 동진의 원제 사마예가 사실은 사마근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부장이었던 우금의 아들이라고 기록하는 등 괜히 더러운 역사서(穢史, 예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7]
또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분열된 계기인 효무제(孝武帝)의 도주[8] 때문에 그를 '도망친 황제'라고 조롱하는 의미로 '출제'(出帝)라고 기록했다. 그에 반해 당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북사》와 《북제서》에서는 '효무제'라고 제대로 기록했다.
《위서》는 당대에도 논란이 되어 신명나게 까였고[9] 북위 - 서위 - 북주 -수 - 당을 정통으로 하는 위담의《위서》(92권)나 당나라 시기 장태소의《후위서》(100권) 등의 개정판이 만들어졌지만 모조리 소실되었다. 더구나《위서》 자체도 난리통에 부분부분 소실되어서《위서》를 포함해 편집되었던 《북사》에서 역으로 내용을 가져와야만 했다. 현재 전하는《위서》는 잃어버린 부분을 북송 시기인 1066년, 송 인종의 명령으로 보완한 것이다.[10] 이조차도 1127년에 일어난 정강의 변 때 망실되었으나, 병란을 입지 않은 촉(蜀) 땅의 보존분을 겨우 수습하여 1144년 촉땅 미산(眉山)이라는 지방에서 다시 간행했는데, 이를 이른바 송촉대자본(宋蜀大字本)이라고 한다. 이후에 판각된 판본은 모두 이 송촉대자본을 저본으로 한다. 하지만 이미 북송 인종의 명령으로 보완한 저본부터 오•탈자가 많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단적으로 선비식 이름을 한화된 이름으로 명기하거나 하는 등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중국 중세 가족사 등의 제도사를 연구할 때는 또 귀중한 사서이다. 왜냐하면 <열전> 등에 당시 문벌귀족들의 명단과 그 가문들의 계보 및 구성원들을 대량으로 나열하는 등 당대 호적이나 가족사와 관련해 연구할 거리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 항목과 상관은 없지만 제목은 같은《위서》가 또 있다. 바로 삼국시대 조위의 역사서인《위서》로 왕침이 썼다. 현존하지는 않고 진수의《삼국지》와 배송지의 주석에 인용되었다. 고려시대에 저술된《삼국유사》에 인용된 《위서》가 이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1.3. 구성
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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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권 「외척전(外戚傳)」 | |||||||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 |||||||
84권 「유림전(儒林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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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권 「문원전(文苑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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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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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권 「서역전(西域傳)」 | |||||||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 |||||||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 |||||||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 |||||||
104권 「자서전(自序傳)」 | |||||||
위수 |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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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제기>(帝紀)
제기 구성 | |||
권1 | 제기제1 帝紀第1 | 서기 (序紀) | 탁발부, 대나라 |
권2 | 제기제2 帝紀第2 | 도무제기 (道武帝紀) | 탁발규(拓跋珪) |
권3 | 제기제3 帝紀第3 | 명원제기 (明元帝紀) | 탁발사(拓跋嗣) |
권4 | 제기제4상 帝紀第4上 | 태무제기 (太武帝紀) | 탁발도(拓跋燾), 탁발황(拓跋晃) |
제기제4하 帝紀第4下 | 경목제기 (景穆帝紀) | ||
권5 | 제기제5 帝紀第5 | 문성제기 (文成帝紀) | 탁발준(拓跋浚) |
권6 | 제기제6 帝紀第6 | 헌문제기 (獻文帝紀) | 탁발홍(拓跋弘) |
권7 | 제기제7상 帝紀第7上 | 효문제기 (孝文帝紀) | 원굉(元宏) |
제기제7하 帝紀第7下 | |||
권8 | 제기제8 帝紀第8 | 선무제기 (宣武帝紀) | 원각(元恪) |
권9 | 제기제9 帝紀第9 | 효명제기 (孝明帝紀) | 원후(元詡) |
권10 | 제기제9 帝紀第10 | 효장제기 (孝莊帝紀) | 원자유(元子攸) |
권11 | 제기제11 帝紀第11 | 폐출삼제기 (廢出三帝紀) | 원공(元恪), 원랑(元朗), 원수(元脩) |
권12 | 제기제12 帝紀第12 | 효정제기 (孝靜帝紀) | 원선견(元善見) |
1.3.2. <열전>
열전 구성 | |||
권13 | 열전제1 列傳第1 | 황후 皇后 | 신원황후 두씨(神元皇后竇氏), 문제황후 봉씨(文帝皇后封氏), 환제황후 기씨(桓帝皇后祁氏), 평문황후 왕씨(平文皇后王氏), 소성황후 모용씨(昭成皇后慕容氏), 헌명황후 하씨(獻明皇后賀氏), 도무황후 모용씨(道武皇后慕容氏), 도무선목황후 유씨(道武宣穆皇后劉氏), 명원소애황후 요씨(明元昭哀皇后姚氏), 명원밀황후 두씨(明元密皇后杜氏), 태무황후 혁련씨(太武皇后赫連氏), 태무경애황후 하씨(太武敬哀皇后賀氏), 경목공황후 욱구려씨(景穆恭皇后郁久閭氏), 문성문명황후 풍씨(文成文明皇后馮氏), 문성원황후 이씨(文成元皇后李氏), 헌문사황후 이씨(獻文思皇后李氏), 효문정황후 임씨(孝文貞皇后林氏), 효문폐황후 풍씨(孝文廢皇后馮氏), 효문유황후 풍씨(孝文幽皇后馮氏), 효문소황후 고씨(孝文昭皇后高氏), 선무순황후 우씨(宣武順皇后于氏), 선무황후 고씨(宣武皇后高氏), 선무영황후 호씨(宣武靈皇后胡氏), 효명황후 호씨(孝明皇后胡氏), 효정황후 고씨(孝靜皇后高氏) |
권14 | 열전제2 列傳第2 | 신원평문제자손 神元平文諸帝子孫 | 상곡공 흘라(上谷公紇羅), 건덕공 영문(建德公嬰文), 진정후 육(眞定侯陸), 무릉후 인(武陵侯因), 장락왕 수락(長樂王壽樂), 망도공 퇴(望都公頹), 곡양후 소연(曲陽侯素延), 순양공 욱(順陽公郁), 의도왕 목진(宜都王目辰), 목제장자 육수(穆帝長子六修), 길양남 비간(吉陽男比干), 강하공 여(江夏公呂), 고량왕 고(高涼王孤), 서하공 돈(西河公敦), 사도 석(司徒石), 무위장군 위(武衛將軍謂), 회릉후 대두(淮陵侯大頭), 하간공 제(河間公齊), 부풍공 처진(扶風公處眞), 문안공 니(文安公泥) |
권15 | 열전제3 列傳第3 | 소성자손 昭成子孫 | 탁발식군(拓跋寔君), 진명왕 한(秦明王翰), 상산왕 준(常山王遵), 진류환왕 건(陳留桓王虔), 비릉왕 순(毗陵王順), 요서공 의열(遼西公意烈), 탁발굴돌(拓跋窟咄) |
권16 | 열전제4 列傳第4 | 도무7왕 道武七王 | 청하왕 소(淸河王紹), 양평왕 희(陽平王熙), 하남왕 요(河南王曜), 하간왕 수(河間王修), 장락왕 처문(長樂王處文), 광평왕 련(廣平王連), 경조왕 려(京兆王黎) [논평1] |
권17 | 열전제5 列傳第5 | 명원6왕 明元六王 | 낙평여왕 비(樂平戾王丕), 안정상왕 미(安定殤王彌), 낙안선왕 범(樂安宣王範), 영창장왕 건(永昌莊王健), 건녕왕 숭(建寧王崇), 신흥왕 준(新興王俊) |
권18 | 열전제6 列傳第6 | 태무5왕 太武五王 | 진왕 복라(晉王伏羅), 동평왕 한(東平王翰), 임회선왕 담(臨淮宣王譚), 광양간왕 건(廣陽簡王建), 남안은왕 여(南安隱王余) |
권19 | 열전제7상 列傳第7上 | 경목12왕상 景穆十二王上 | 양평유왕 신성(陽平幽王新成), 경도강왕 자추(京兆康王子推), 제음선왕 소신성(濟陰宣王小新成), 여음영왕 천사(汝陰靈王天賜), 낙랑여왕 만수(樂浪厲王萬壽), 광평상왕 낙후(廣平殤王洛侯) |
권20 | 열전제7중 列傳第7中 | 경목12왕중 景穆十二王中 | 임성강왕 운(任城康王雲)[논평2] |
권21 | 열전제7하 列傳第7下 | 경목12왕하 景穆十二王下 | 남안혜왕 정(南安惠王楨), 성양강왕 장수(城陽康王長壽), 장무경왕 태락(章武敬王太洛), 낙릉강왕 호아(樂陵康王胡兒), 안정정왕 휴(安定靖王休)[논평3] |
권22 | 열전제8 列傳第8 | 문성5왕 文成五王 | 안락여왕 장락(安樂厲王長樂), 광천장왕 략(廣川莊王略), 제군순왕 간(齊郡順王簡), 하간효왕 약(河間孝王若), 안풍광왕 맹(安豊匡王猛) |
권23 | 열전제9상 列傳第9上 | 헌문6왕상 獻文六王上 | 함양왕 희(咸陽王禧), 조군영왕 건(趙郡靈王乾), 광릉혜왕 우(廣陵惠王羽), 고양문목왕 옹(高陽文穆王雍), 북해평왕 상(北海平王詳)[논평4] |
권24 | 열전제9하 列傳第9下 | 헌문6왕하 獻文六王下 | 팽성무선왕 협(彭城武宣王勰)[논평5] |
권25 | 열전제10 列傳第10 | 효문5왕 孝文五王 | 폐태자 순(廢太子恂), 경도왕 유(京兆王愉), 청하문헌왕 역(淸河文獻王懌), 광평무목왕 회(廣平武穆王懷), 여남문선왕 열(汝南文宣王悅) |
권26 | 열전제11 列傳第11 | 위조등전 衛操等傳 | 위조(衛操), 막함(莫含), 유고인(劉庫仁)[논평6] |
권27 | 열전제12 列傳第12 | 연봉등전 燕鳳等傳 | 연봉(燕鳳), 허겸(許謙), 장곤(張衮), 최현백(崔玄伯), 등연(鄧淵)[논평7] |
권28 | 열전제13 列傳第13 | 장손숭등전 長孫嵩等傳 | 장손숭(長孫嵩), 장손도생(長孫道生) |
권29 | 열전제14 列傳第14 | 장손비등전 長孫肥等傳 | 장손비(長孫肥), 울고진(尉古眞) |
권30 | 열전제15 列傳第15 | 목숭전 阮籍等傳 | 목숭(穆崇) |
권31 | 열전제16 列傳第16 | 화발등전 和跋等傳 | 화발(和跋), 해목(奚牧), 막제(莫題), 유업연(庾業延), 하적건(賀狄乾), 이률(李栗), 유결(劉潔), 고필(古弼), 장려(張黎) |
권32 | 열전제17 列傳第17 | 해근등전 奚斤等傳 | 해근(奚斤), 숙손건(叔孫建) |
권33 | 열전제18 列傳第18 | 왕건등전 王建等傳 | 왕건(王建), 안동(安同), 누복련(樓伏連), 구퇴(丘堆), 아청(娥淸), 유니(劉尼), 해권(奚眷), 차이락(車伊洛), 숙석(宿石), 내대천(來大千), 주기(周幾), 두대전(豆代田), 주관(周觀), 여대비(閭大肥), 울발(尉撥), 육진(陸眞), 여낙발(呂洛拔) |
권34 | 열전제19 列傳第19 | 우율제전 于栗磾傳 | 우율제(于栗磾) |
권35 | 열전제20 列傳第20 | 고호등전 高湖等傳 | 고호(高湖), 최영(崔逞), 봉의(封懿) |
권36 | 열전제21 列傳第21 | 송은등전 宋隱等傳 | 송은(宋隱), 왕헌(王憲), 굴준(屈遵), 장포(張蒲), 곡혼(穀渾), 공손표(公孫表), 장제(張濟), 이선(李先), 가이(賈彝), 설제(薛提) |
권37 | 열전제22 列傳第22 | 왕낙아등전 王洛兒等傳 | 왕낙아(王洛兒), 차노두(車路頭), 노노원(盧魯元), 진건(陳建), 만안국(萬安國) |
권38 | 열전제23 列傳第23 | 최호전 崔浩傳 | 최호(崔浩) |
권39 | 열전제24 列傳第24 | 이순전 李順傳 | 이순(李順) |
권40 | 열전제25 列傳第25 | 사마휴지등전 汝南王亮等傳 | 사마휴지(司馬休之), 사마초지(司馬楚之), 사마경지(司馬景之), 사마숙번(司馬叔璠), 사마천조(司馬天助) |
권41 | 열전제26 列傳第26 | 조옹등전 刁雍等傳 | 조옹(刁雍), 왕혜룡(王慧龍), 한연지(韓延之), 원식(袁式) |
권42 | 열전제27 列傳第27 | 이보전 李寶傳 | 이보(李寶) |
권43 | 열전제28 列傳第28 | 육사전 陸俟傳 | 육사(陸俟) |
권44 | 열전제29 列傳第29 | 원하전 源賀傳 | 원하(源賀) |
권45 | 열전제30 列傳第30 | 설변등전 薛辯等傳 | 설변(薛辯), 구찬(寇贊), 역범(酈範), 한수(韓秀), 요훤(堯暄) |
권46 | 열전제31 列傳第31 | 엄릉등전 嚴棱等傳 | 엄릉(嚴棱), 모수지(毛修之), 당화(唐和), 유휴빈(劉休賓), 방법수(房法壽) |
권47 | 열전제32 列傳第32 | 나결등전 羅結等傳 | 나결(羅結), 이발(伊馛), 을괴(乙瑰), 화기노(和其奴), 구퇴(苟頹), 설야저(薛野𧗠者), 우문복(宇文福), 비우(費于), 맹위(孟威) |
권48 | 열전제33 列傳第33 | 위랑등전 韋閬等傳 | 위랑(韋閬), 두전(杜銓), 배준(裴駿), 신소선(辛紹先), 류숭(柳崇) |
권49 | 열전제34 列傳第34 | 두근등전 竇瑾等傳 | 두근(竇瑾), 허언(許彦), 이흔(李欣) |
권50 | 열전제35 列傳第35 | 노현전 盧玄傳 | 노현(盧玄) |
권51 | 열전제36 列傳第36 | 고윤전 高允傳 | 고윤(高允) |
권52 | 열전제37 列傳第37 | 이령등전 郭璞等傳 | 이령(李靈), 최감(崔鑒) |
권53 | 열전제38 列傳第38 | 위원등전 尉元等傳 | 위원(尉元), 모용백요(慕容白曜) |
권54 | 열전제39 列傳第39 | 한무등전 韓茂等傳 | 한무(韓茂), 피표자(皮豹子), 봉칙문(封敕文), 여나한(呂羅漢), 공백공(孔伯恭) |
권55 | 열전제40 列傳第40 | 조일등전 趙逸等傳 | 조일(趙逸), 호방회(胡方回), 호수(胡叟), 송요(宋繇), 장담(張湛), 종흠(宗欽), 단승근(段承根), 함인(闞駰), 유병(劉昞), 조유(趙柔), 색창(索敞), 음중달(陰仲達) |
권56 | 열전제41 列傳第41 | 이효백등전 李孝伯等傳 | 이효백(李孝伯), 이충(李衝) |
권57 | 열전제42 列傳第42 | 유아등전 游雅等傳 | 유아(游雅), 고려(高閭) |
권58 | 열전제43 列傳第43 | 유명근등전 游明根等傳 | 유명근(游明根), 유방(劉芳) |
권59 | 열전제44 列傳第44 | 정희등전 鄭羲等傳 | 정희(鄭羲), 최변(崔辯) |
권60 | 열전제45 列傳第45 | 고우등전 高祐等傳 | 고우(高祐), 최정(崔挺) |
권61 | 열전제46 列傳第46 | 양파전 楊播傳 | 양파(楊播) |
권62 | 열전제47 列傳第47 | 유창등전 劉昶等傳 | 유창(劉昶), 소보인(蕭寶夤), 소정표(蕭正表) |
권63 | 열전제48 列傳第48 | 한기린등전 韓麒麟等傳 | 한기린(韓麒麟), 정준(程駿) |
권64 | 열전제49 列傳第49 | 설안도등전 薛安都等傳 | 설안도(薛安都), 필중경(畢衆敬), 심문수(沈文秀), 장당(張讜), 전익종(田益宗), 맹표(孟表) |
권65 | 열전제50 列傳第50 | 이표등전 李彪等傳 | 이표(李彪), 고도열(高道悅) |
권66 | 열전제51 列傳第51 | 왕숙등전 王肅等傳 | 왕숙(王肅), 송변(宋弁) |
권67 | 열전제52 列傳第52 | 곽조등전 郭祚等傳 | 곽조(郭祚), 장이(張彝) |
권68 | 열전제53 列傳第53 | 형만등전 邢巒等傳 | 형만(邢巒), 이평(李平) |
권69 | 열전제54 列傳第54 | 이숭등전 李崇等傳 | 이숭(李崇), 최량(崔亮) |
권70 | 열전제55 列傳第55 | 최광전 崔光傳 | 최광(崔光) |
권71 | 열전제56 列傳第56 | 견침등전 甄琛等傳 | 견침(甄琛), 고총(高聰) |
권72 | 열전제57 列傳第57 | 최휴등전 崔休等傳 | 최휴(崔休), 배연준(裴延俊), 원번(袁翻) |
권73 | 열전제58 列傳第58 | 유조등전 劉藻等傳 | 유조(劉藻), 부영(傅永), 부수안(傅竪眼), 이신(李神) |
권74 | 열전제59 列傳第59 | 배숙업전 裴叔業等傳 | 배숙업(裴叔業), 하후도천(夏侯道遷), 이원호(李元護), 석법우(席法友), 왕세필(王世弼), 강열지(江悅之), 순우탄(淳于誕), 이묘(李苗) |
권75 | 열전제60 列傳第60 | 양니등전 陽尼等傳 | 양니(陽尼), 가사백(賈思伯), 이숙호(李叔虎), 노시경(路恃慶), 방량(房亮), 조세표(曹世表), 반영기(潘永基), 주원욱(朱元旭) |
권76 | 열전제61 列傳第61 | 혜강생등전 奚康生等傳 | 해강생(奚康生), 양대안(楊大眼), 최연백(崔延伯) |
권77 | 열전제62 列傳第62 | 이주영전 爾朱榮傳 | 이주영(爾朱榮) |
권78 | 열전제63 列傳第63 | 이주조등전 爾朱兆等傳 | 이주조(爾朱兆), 이주언백(爾朱彦伯), 이주도률(爾朱度律), 이주천광(爾朱天光) |
권79 | 열전제64 列傳第64 | 노동등전 盧同等傳 | 노동(盧同), 장열(張烈) |
권80 | 열전제65 列傳第65 | 송번등전 宋翻等傳 | 송번(宋翻), 신웅(辛雄), 양심(羊深), 양기(楊機), 고숭(高崇) |
권81 | 열전제66 列傳第66 | 손소등전 孫紹等傳 | 손소(孫紹), 장보혜(張普惠) |
권82 | 열전제67 列傳第67 | 성엄등전 成淹等傳 | 성엄(成淹), 범소(範紹), 유도부(劉桃符), 유도빈(劉道斌), 동소(董紹), 풍원흥(馮元興), 녹여(鹿悆), 장습(張熠) |
권83 | 열전제68 列傳第68 | 주서등전 朱瑞等傳 | 주서(朱瑞), 질렬연경(叱列延慶), 곡사춘(斛斯椿), 가현도(賈顯度), 번자곡(樊子鵠), 하발승(賀拔勝), 후막(侯莫), 진열(陳悅), 후연(侯淵) |
권84 | 열전제69 列傳第69 | 이염지등전 李琰之等傳 | 이염지(李琰之), 조형(祖瑩), 상경(常景) |
권85 | 열전제70상 列傳第70上 | 외척전상 外戚傳上 | 하눌(賀訥), 유나진(劉羅辰), 요황미(姚黃眉), 두초(杜超), 하미(賀迷), 여비(閭毗), 풍희(馮熙), 이준(李峻), 이혜(李惠) |
권86 | 열전제70하 列傳第70下 | 외척전하 外戚傳下 | 고조(高肇), 우경(于勁), 호국진(胡國珍), 이연실(李延實) |
권87 | 열전제71 列傳第71 | 유림전 儒林傳 | 양월(梁越), 노추(盧醜), 장위(張偉), 양조(梁祚), 평항(平恆), 진기(陳奇), 상상(常爽), 유헌지(劉獻之), 장오귀(張吾貴), 유란(劉蘭), 손혜위(孫惠蔚), 서준명(徐遵明), 동징(董徵), 조충(刁沖), 노경유(盧景裕), 이동궤(李同軌), 이업흥(李業興) |
권88 | 열전제72 列傳第72 | 문원전 文苑傳 | 원약(袁躍), 배경헌(裴敬憲), 노관(盧觀), 봉숙(封肅), 형장(邢臧), 배백무(裴伯茂), 형흔(邢昕), 온자승(溫子昇) |
권89 | 열전제73 列傳第73 | 효감전 孝感傳 | 조염(趙琰), 장손려(長孫慮), 걸복보(乞伏保), 손익덕(孫益德), 동낙생(董洛生), 양인(楊引), 염원명(閻元明), 오실달(吳悉達), 왕속생(王續生), 이현달(李顯達), 장승(張昇), 창발(倉跋), 왕숭(王崇), 곽문공(郭文恭) |
권90 | 열전제74 列傳第74 | 절의전 節義傳 | 우십문(于什門), 단진(段進), 석문덕(石文德), 급고(汲固), 왕현위(王玄威), 누제(婁提), 유갈후(劉渴侯), 주장생(朱長生), 우제(于提), 마팔룡(馬八龍), 문문애(門文愛), 조청(晁淸), 유후인(劉侯仁), 석조흥(石祖興), 소홍철(邵洪哲), 왕영세(王榮世), 호소호(胡小虎), 손도등(孫道登), 이궤(李几), 장안조(張安祖), 왕려(王閭) |
권91 | 열전제75 列傳第75 | 양리전 良吏傳 | 장순(張恂), 녹생(鹿生), 장응(張應), 송세경(宋世景), 노옹(路邕), 염경윤(閻慶胤), 명량(明亮), 두찬(杜纂), 배타(裴佗), 두원(竇瑗), 양돈(羊敦), 소숙(蘇淑) |
권92 | 열전제76 列傳第76 | 일사전 逸士傳 | 휴과(眭誇), 풍량(馮亮), 이밀(李謐), 정수(鄭修) |
권93 | 열전제77 列傳第77 | 열녀전 列女傳 | 최람 처 봉씨(崔覽妻封氏), 봉탁 처 유씨(封卓 妻 劉氏), 위부 처 방씨(魏溥妻房氏), 호장명 처 장씨(胡長命妻張氏), 평원여자 손씨(平原女子孫氏), 방애친 처 최씨(房愛親妻崔氏), 경주정녀시 선씨(涇州貞女兕先氏), 요씨 아내 양씨 (姚氏婦楊氏), 장홍초 처 유씨(張洪初妻劉氏), 동경기 처 장씨(董景起妻張氏), 양니 처 고씨(陽尼妻高氏), 사영주 처 경씨(史映周妻耿氏), 임성국태비 맹씨(任城國太妃孟氏), 구금룡 처 유씨(苟金龍妻劉氏), 노원례 처 이씨(盧元禮妻李氏), 하동효녀 요씨(河東孝女姚氏), 조사준 처 노씨(刁思遵妻魯氏 ) |
권94 | 열전제78 列傳第78 | 은행전 恩幸傳 | 왕예(王叡), 왕중흥(王仲興), 구맹(寇猛), 조수(趙修), 여호(茹皓), 조옹(趙邕), 후강(侯剛), 정엄(鄭儼), 서흘(徐紇) |
권95 | 열전제79 列傳第79 | 엄관전 閹官傳 | 종애(宗愛), 구낙제(仇洛齊), 단패(段霸), 왕거(王琚), 조흑(趙黑), 손소(孫小), 장종지(張宗之), 극붕(劇鵬), 장우(張祐), 포의(抱嶷), 왕우(王遇), 부승조(苻承祖), 왕질(王質), 이견(李堅), 진송(秦松), 백정(白整), 유등(劉騰), 가찬(賈粲), 양범(楊範), 성궤(成軌), 왕온(王溫), 맹란(孟鸞), 평계(平季), 봉진(封津), 유사일(劉思逸) |
권96 | 열전제80 列傳第80 | 유총등전 劉聰等傳 | 유총(劉聰), 석륵(石勒), 유호(劉虎), 모용외(慕容廆), 부건(苻健), 요장(姚萇), 여광(呂光) |
권97 | 열전제81 列傳第81 | 사마예등전 司馬叡等傳 | 사마예(司馬叡), 이웅(李雄) |
권98 | 열전제82 列傳第82 | 환현등전 桓玄等傳 | 환현(桓玄), 풍발(馮跋), 유유(劉裕) |
권99 | 열전제83 列傳第83 | 소도성등전 蕭道成等傳 | 소도성(蕭道成), 소연(蕭衍) |
권100 | 열전제84 列傳第84 | 장식등전 張寔等傳 | 장식(張寔), 걸복국인(乞伏國仁), 독발오고(禿發烏孤), 이고(李暠), 저거몽손(沮渠蒙遜) |
권101 | 열전제85 列傳第85 |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물길(勿吉), 실위(失韋), 두막루(豆莫婁), 지두우(地豆于), 고막해(庫莫奚), 거란(契丹), 오락후(烏洛侯) | |
권102 | 열전제86 列傳第86 | 저(氐), 토욕혼(吐穀渾), 탕창(宕昌), 고창(高昌), 등지(鄧至), 만(蠻), 요(獠) | |
권103 | 열전제87 列傳第87 | 서역전 西域傳 | 선선(鄯善), 우전(于闐), 차사(車師), 언기(焉耆), 구자(龜茲), 오손(烏孫), 소륵(疏勒), 열반(悅般), 파사(波斯), 대월지(大月氏), 안식(安息), 대진국(大秦國) |
권104 | 열전제88 列傳第88 | 연연(蠕蠕), 우문막괴(宇文莫槐), 단취육권(段就六眷), 고차(高車) | |
권105 | 열전제89 列傳第89 | 자서 (自序) | 위수(魏收) |
1.3.3. <지>(志)
1.전상십지계 (前上十志啓)2.지 제1 - 천상지1 天象志1
3.지 제2 - 천상지 天象志2
4.지 제3 - 천상지 天象志3
5.지 제4 - 천상지 天象志4
6.지 제5 - 지형지 地形志 상
7.지 제6 - 지형지 地形志 중
8.지 제7 - 지형지 地形志 하
9.지 제8 - 율력지 律暦志 상
10.지 제9 - 율력지 律暦志 하
11.지 제10 - 예지 禮志1
12.지 제11 - 예지 禮志2
13.지 제12 - 예지 禮志3
14.지 제13 - 예지 禮志4
15.지 제14 - 악지 樂志
16.지 제15 - 식화지 食貨志
17.지 제16 - 형벌지 刑罰志
18.지 제17 - 영징지 霊徴志 상
19.지 제18 - 영징지 霊徴志 하
20.지 제19 - 관씨지 官氏志
21.지 제20 - 석로지 釈老志
2. 《정사 삼국지》<위서>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정사) 문서의 위서(魏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三國志 魏書
<촉서>(蜀書), <오서>(吳書)와 함께 《삼국지》를 구성하는 역사서다.
이 문서 첫 번째 각주에도 나와 있듯이 이〈위서〉는 딸랑 〈위서〉라고 쓰이는 경우는 잘 없고, 《삼국지》〈위서〉~ 또는 《삼국지》〈위지〉~ 라는 식으로 《삼국지》와 함께 붙여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와 관련된 내용 때문에도 많이 거론되지만, 특히 문헌자료가 부족한 한국 삼국시대 초기의 여러 국가와 민족에 대한 서술이 기록되어 있어 자주 거론되는 주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되어 인용될 때는《삼국지》〈위서〉 -동이전- 또는《삼국지》〈위지〉 -동이전-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1] <본기> 12권, <지> 10권, <열전> 92권[2] <본기>와 <열전>은 554년(천보 5년), <지>는 559년(천보 10년)에 완성했다.[3] 이 책의 경우〈위지〉라고도 불린다.[4] 島夷, 섬 오랑캐[5] 이것을 전후사정도 모르는 환빠들이 유유=소도성=한반도인 또는 유송=남제=한반도 역사라고 날조하는 명목이 되기도 했다.[6] 이에 맞서 남조에서는 북조를 위로(魏虜, 위나라 오랑캐) 또는 삭로(索虜)라고 기록했다.[7] 물론 자국을 높여주고, 타국을 낮추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서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기를 쓰며 깎아내리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8] 실권자였던 고환이 효무제를 꼭두각시 황제로 세웠는데 훗날 효무제가 고환을 죽일려다가 발각되자 효무제는 말을 타고 수도 업성을 떠나 장안으로 도주했다. 장안에 도착한 효무제는 관중대도독이었던 우문태에게 의지해 실권을 넘겼는데 고환은 효무제에게 돌아오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고환이 따로 효무제의 일족이었던 효정제를 세우면서 북위는 우문태가 실권을 잡은 서위와 고환이 실권을 잡은 동위로 분열되었다. 이후 서위는 북주, 동위는 북제로 왕조가 바뀌었다.[9] 고씨의 북제가 멸망한 이후《위서》를 편찬했던 위수(魏收)가 사후《위서》 때문에 굴묘편시를 당한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북주 이후 통일왕조였던 수나라와 당나라는 서위와 북주로부터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였기 때문에 동위와 북제를 정통으로 본《위서》는 당대의 지식인들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10] 북송 때 30권 정도의 소실본이 발견되어《북사》를 인용해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 때문에 군데군데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논평1] 자기 부모를 잡아먹는 올빼미도 하늘이 낳은 것이며, 어미를 알고 아비를 잊는 것 역시 짐승에 불과하니, 원소라는 인물은 이보다도 못하지 않은가! 양평왕 이하는 일찍이 죽어서 그 영재와 무략이 시대에 드러나지 못했다. 회남정왕과 무창간왕, 두 왕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인물로 칭송받았다. 원감은 이미 명성이 있었고, 탁발혼은 그 기량이 드러났다. 남평왕 탁발소는 고조를 도왔고, 원계는 태화(太和)의 임무를 받았으니, 만약 그들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어찌 명성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원차는 모두 사사로운 총애에 기대어 권력을 얻었으나, 지혜는 적고 꾀는 많아 중임을 맡기에는 재능이 부족하였다. 결국, 나라를 어지럽히고 자신을 죽게 하였으니, 그가 제사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행운이 아니겠는가![논평2] 현조(顯祖)의 선양 사건은 국가의 대절(大節)이라 할 만하다. 강왕(康王)은 의연하게 조정에서 간언했고, 그의 덕성은 분명히 드러났다. ‘한마디 말이 나라를 일으킨다’는 말이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문선왕(文宣王)은 굳건하고 재능이 뛰어나 종친 중에서도 탁월한 인물이었고, 여러 황제를 거치면서 평탄한 때와 위기를 모두 극복했다. 그가 사직을 맡은 것은 마치 대들보와 같은 기대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원순은 강직하고 직언하는 성품을 지녔고, 탁월한 기질을 가졌으며, 급암(汲黯)의 풍모를 닮았다. 그러나 시대와 맞지 않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원숭은 전장에서의 기개를 지녔던 것을 보면, 준걸들은 결국 관(冠)이 찢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논평3] 남안(南安)은 시작을 중요하게 여기며 끝을 완수하려 하였으나, 선이 악을 가리지 못했다. 다만 뛰어난 장수로서 그 능력이 당대에 명성이 있었다. 원희와 원략 형제는 일찍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어떤 이는 재능이 부족하면서 뜻은 크고, 어떤 이는 그릇이 좁으면서 큰 임무를 맡아 모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에 이르렀으니 안타깝도다. 강왕(康王)는 오래 살지 못했고, 원란은 가문의 명성을 세웠다. 원휘는 지혜를 꾸며 감정을 왜곡하고, 겉으로는 아첨하고 속으로는 시기하니, 영안(永安)의 화(禍)에 대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그의 죽음은 마땅한 일이었다. 장무(章武)와 낙릉(樂陵)은 언급할 만하지 않다. 정왕(靖王)은 총명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위엄이 중하여 태화(太和) 시대에 칭송을 받았으니, 훌륭하다.[논평4] 현조(顯祖)의 여러 아들들은 모두 태화(太和)의 시기에 도(道)를 배웠다. 함양왕(咸陽王)은 명망이 높고 지위가 우뚝하였으나, 스스로를 의심하며 반란을 도모하였다. 조군왕(趙郡王)은 왕도의 법도에 어긋났으니, 끝내 시호를 '영(靈)'이라 하였다. 광릉왕(廣陵王)은 일찍이 명철하고 식견이 뛰어나다고 칭송받았으나, 불행히도 요절하였으니 애석하다. 북해왕(北海王)은 형제간의 의리를 어두이 하였고, 사치와 음란함으로 스스로를 망쳤다. 비록 화가 참소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이 또한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 것이다. 원호는 기회를 얻는 것이 마치 떨어진 물건을 줍는 듯 쉬웠으나, 몰락도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니, 어찌 지킬 방법이 없어서였겠는가? 이는 하늘이 그를 망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논평5] 무선왕(武宣王)은 효(孝)를 품성의 바탕으로 삼고, 충성으로써 행실을 세웠으며, 문모(文謀)와 무략(武略)을 겸비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덕행을 이루었다. 그가 태화(太和) 시기에 조정을 안정시키고 융성하게 한 공로가 어찌 헛된 것이겠는가! 위험 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하는 태도와 선황(先皇)을 전송하고 사후를 보살핀 절도는 주공 단의 의로운 정신을 이어받았으며, 곽광의 이성(異姓)으로서의 충성심을 넘어섰다. 그의 공적은 임금을 감동시킬 만큼 컸고, 덕은 풍속을 움직일 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한 번의 참언으로 끝내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다. 아아! 주성왕(周成王), 한소제(漢昭帝)와 같은 임금을 다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리라.[논평6] 시조(始祖)부터 환제, 목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적(王跡)이 처음으로 세워졌으나, 풍덕(風德)이 아직 펼쳐지지 못하였다. 위조와 막함이 몸을 의탁하여 전장에서 분주히 달리며, 스스로 공명(功名)을 세운 것은 그 뜻과 식견이 높은 선비라 이를 만하다. 유고인 형제는 충성을 마음으로 삼아 성쇠(盛衰)에도 변치 않았고, 순결한 절개를 지키려 하였다. 그 뜻은 실로 깊고 원대했으나, 끝내 비명(非命)을 맞이하였으니 애석하구나![논평7]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문(文)과 무(武)를 겸비하여 운용하지 않음이 없다. 연봉은 박식하고 견문이 넓어 소성제(昭成帝)의 예우를 받았으며, 이웃 나라와 화목을 도모하고 국가를 유지함에 있어, 그 재능을 드러내었다! 허겸은 재주와 기량이 모두 뛰어나 어려운 시절에도 분투하였으며, 기미를 살피고 독자적으로 권면하여, 그 행적이 운명과 들어맞았다. 장곤은 재능과 책략으로 인정을 받아 일찍이 은혜를 입었으나, 당시 정사에 관대함이 없었기에 그의 발언이 화를 초래하였다. 현백(玄伯)은 대대로 명문가의 훌륭한 인재로, 권력의 중추를 맡고 중대한 임무를 짊어졌다. 그는 정도를 지키며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그 업적은 청묘(清廟)에 새겨졌으니, 마땅하지 아니한가! 최관과 최모(崔模)는 모두 기회를 살피고 행동하였으나, 결국 운명이 다하여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등연은 정직하고 결백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재능과 학문으로 필력을 발휘하였으나, 화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으니 슬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