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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거록공(鉅鹿公) 于烈 | 우열 | |
시호 | 불명 |
작호 | 창국자(昌國子) → 낙양후(洛陽侯) → 요성현 개국자(聊城縣開國子) → 요성현후(聊城縣侯) → 거록군 개국공(鉅鹿郡開國公) |
성 | 만뉴우(萬忸于) → 우(于) |
휘 | 열(烈) |
자 | 불명 |
생몰 | 435년 ~ 501년 8월 |
부친 | 우낙발(于洛拔) |
출신 | 대군(代郡) 상건현(桑乾縣) |
형제자매 | 6남 중 장남 |
자녀 | 5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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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선비족. 신안공 우낙발의 아들. 본래 성씨는 '만뉴우(萬忸于)'이었으나 효문제의 한화 정책으로 인해 그의 집안은 모두 '우(于)'로 바뀌었다.2. 생애
우열은 활쏘기에 능했고, 과묵하며 범접할 수 없는 기색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젊어서 우림중랑(羽林中郎)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우림중랑장(羽林中郎將)으로 승진하였다.연흥 원년(471년), 우열은 조정의 명을 받아 녕광궁(寧光宮)의 숙위 업무를 맡았다가, 둔전급납(屯田給納)으로 전임되었다.
태화 3년(479년) 4월, 진주(秦州) 자사 울낙후(尉洛侯), 옹주(雍州) 자사 탁발목진, 장안진장 진제(陳提) 등이 탐욕스럽고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하였다. 우열은 조정의 명을 받아 이를 조사하여 그들의 죄증을 모두 밝혀내었고, 이로 인해 울낙후와 탁발목진은 형벌을 받아 사사되었으며, 진제는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우열은 본래의 관직을 유지하면서 진주와 옹주의 일을 관할하게 되었다.
태화 5년(481년) 2월, 우열은 사위감(司衛監)으로 승진하여 금군(禁軍)을 총괄하였고, 효문제 탁발굉을 따라 중산(中山)으로 행차하였다. 효문제가 사주(肆州)에 머물렀을 때, 사공 구퇴(茍頹)가 상소를 올려 사문(沙門) 법수(法秀)가 백성을 미혹시키며 몰래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효문제는 우열에게 이부상서 □승조(□丞祖)와 함께 기병을 타고 이를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마침 구퇴에 의해 법수가 이미 평정된 상태였으므로, 우열은 돌아와 좌위장군(左衛將軍)으로 전임되었고, 창국자(昌國子)에 봉해졌다. 이후 그는 전중상서(殿中尚書)로 승진하였고, 비단 3,000필을 하사받았다.
당시 효문제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문명태후가 섭정하였는데, 우열은 원비, 육예(陸叡), 이충(李沖) 등과 함께 금으로 만든 책(策)을 문명태후로부터 하사받으며, 죄를 지어도 죽지 않을 특권을 허락받았다. 우열은 이러한 문명태후의 신임 덕에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임명되었고, 이어 전장군(前將軍)으로 승진하였으며, 작위는 낙양후(洛陽侯)로 올랐다. 곧이어 그는 위위경(衛尉卿)으로 전임되었고, 효문제가 장성하여 친정하게 되었을 때는 황제를 따라 남정을 수행하면서 진남장군(鎮南將軍)으로 승진하였다.
태화 17년(493년) 9월, 효문제가 낙양(洛陽) 천도를 계획할 때, 백성들은 본래의 수도를 그리워하며 많은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효문제가 우열에게 물었다.
"경(卿)의 생각은 어떠한가?"
우열이 대답하였다."폐하의 성스러운 지략은 깊고 원대하여, 어리석은 신하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오나 감히 속마음을 드러내어 말씀드리자면, 낙양으로 천도하려는 마음과 본래의 수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서로 반반일 뿐입니다."
효문제가 말했다."경이 이미 반대하지 않는다면, 곧 동의하는 것이니라.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이익을 가져다줌을 짐은 깊이 느낀다. 우선 경은 옛 수도로 돌아가 대읍(代邑)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효문제는 명령을 내려 우열을 평성(平城)에 남게 하고, 유대(留臺)의 모든 정무를 일임하여 처리하게 하였다.태화 18년(494년) 8월, 효문제가 대읍(代邑)에 행차하여 우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종묘는 매우 중대하고, 이를 호위하는 임무 또한 가볍지 않다. 경은 마땅히 신령의 가마를 공경히 받들어, 때에 맞추어 이를 낙읍(洛邑)으로 옮기도록 하라. 짐이 이 일을 경에게 맡기는 것은 그 책임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태화 18년(494년) 10월 7일[1], 우열은 고양왕 탁발옹과 함께 종묘의 신주(神主)를 낙양으로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효문제는 그의 공로와 충성을 크게 치하하며, 그를 광록경(光祿卿)으로 승진시켰다.
태화 19년(495년) 12월, 효문제가 광극당(光極堂)에서 백관을 대규모로 선발할 때, 우열의 아들 우등(于登)이 관례에 따라 승진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열이 표문을 올려 말했다.
"신(臣)은 위로는 가까운 신하의 지위에 있으면서, 아래로는 한 사람을 천거하는 일조차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의심을 일으켜 은혜가 분수를 넘게 되어 영록(榮祿)을 받으려 함이 될까 두렵습니다. 지금 성명(聖明)한 조정에서는 마땅히 겸양을 실천해야 함에도 신의 아들 우등이 스스로를 추천하여 승진을 요청한 것은 신이 평소에 가르치고 훈육하지 못한 탓입니다. 이에 그를 파면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효문제가 말했다."이는 참으로 통찰력 있는 말이로다. 우열이 이와 같은 판단을 할 줄은 생각지 못하였구나!"
그리고는 우등을 불러들여 면담하고 조서를 내렸다."짐이 지금 새로운 도읍에서 예를 세우고 천하를 밝히고자 하노라. 경의 부친은 겸양의 본보기를 실천하며 강직한 선비의 풍모를 보였으니, 이에 경을 태자익군교위(太子翊軍校尉)로 임명하노라."
또한 우열에게 산기상시의 직위를 더하고, 요성현개국자(聊城縣開國子)에 봉하였으며, 식읍 200호를 하사하였다.태화 21년(497년) 2월, 목태(穆泰)와 육예가 옛 수도 평성에서 반란을 모의하자, 효문제는 대읍(代邑)으로 행차하였고, 목태와 육예는 결국 법에 따라 처형되었다. 이때 효문제는 우열과 이충에게 옥새로 찍은 조서를 내려, 금책(金策)의 뜻을 다시 설명하였다. 이번 반란은 대읍의 옛 세력들이 연루된 일이었으며, 이에 동조한 자가 많았으나, 우열의 가문만은 전혀 물들거나 연루되지 않았다. 효문제는 우열의 충성스러운 절개와 지조를 칭찬하며 더욱 신임하고 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원엄(元儼)은 결단력과 위엄, 은혜를 겸비하여 크게 악평을 받지 않았으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고 결단력과 용맹을 발휘함은 우열만 못하다. 그날 우열이 대읍에 있었더라면 반드시 반란의 주동자 다섯 명의 목을 직접 베었을 것이다. 우열의 절조와 기개는 김일제가 지닌 것에 못지않다."
이후 조서가 내려져, 우열은 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었다.태화 21년(497년) 9월, 효문제가 형면(荊沔) 일대를 정벌할 때, 우열은 본래의 관직을 유지한 채로 종군하였고, 고취(鼓吹) 한 부대를 추가로 하사받았다. 효문제가 팽성왕 원협에게 말했다.
"우열은 선조의 옛 공신으로, 지혜와 용맹을 겸비하였다. 군사에서의 중대한 계책은 반드시 그와 함께 의논하며 결단해야 한다."
전투 끝에 완(宛)과 등(鄧) 지역이 평정된 후, 효문제가 낙양으로 돌아와 공적을 논하였고, 우열에게 산기상시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직책을 더하였다.태화 23년(499년) 3월, 제나라의 태위 진현달(陳顯達)을 보내 마권(馬圈)을 침공하였다. 효문제는 병세를 무릅쓰고 이를 막기 위해 출정하며, 우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도읍이 비어 있는 상태이니, 방어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 경은 두 궁(二宮)을 진수하여 멀고 가까운 백성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라."
진현달은 패주하였으나, 효문제는 행궁(行宮)에서 붕어하였다.태화 23년(499년) 4월, 팽성왕 원협이 효문제를 대신해 육군(六軍)을 통솔하며 황제의 붕어를 비밀로 하고 귀환하였다. 그는 조서를 고쳐 태자 원각을 노양(魯陽)으로 소환할 것을 선포하였다.당시 우열은 도읍을 지키는 중책을 맡았고, 효문제의 붕어 소식을 은밀히 전달받았다. 그는 행정과 군사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며, 기색이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이후 태자 원각이 노양으로 가 황제로 즉위하자, 우열은 이전과 같이 신임을 받고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경명 2년(501년) 정월, 당시 함양왕 원희는 재보(宰輔)로서 권세가 당대에 매우 막강하였다. 그는 자신의 하인을 보내 우열에게 말을 전하기를,
"옛 우림(羽林)과 호분(虎賁) 병사들을 다시 배치하여 내가 출입할 때 호위하도록 하시오. 영군장군이 이를 지휘한다면 적절히 차출할 수 있을 것이오."
라 하였다. 우열이 답하였다."천자께서 상중(喪中)에 계시니, 모든 일은 재보(宰輔)에게 귀속된다고는 하나, 영군장군은 오직 숙위(宿衛)를 관리할 뿐이므로, 조서가 내려오지 않는 한 감히 이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치상 사적으로 병력을 제공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인은 멍한 표정으로 돌아가 이 말을 원희에게 전하였다. 이에 원희는 다시 사람을 보내 우열에게 따졌다."나는 천자의 아들이자, 천자의 숙부이다! 원보(元輔)의 명령이 조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우열은 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앞서 제가 왕(王)을 천자의 아들이자 숙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진정 조서라면 마땅히 관리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로이 집안의 하인을 보내 관가(官家)의 우림(羽林)을 요구하다니, 차라리 제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우림은 얻을 수 없습니다!"
원희는 우열의 강직함을 싫어하여 그를 외직으로 내보낼 것을 논의하였다. 결국 우열은 원희에 의해 사지절(使持節)•정북장군(征北將軍)•항주자사(恆州刺史)•산기상시로 임명되었다. 우열은 변경으로 나가는 임무를 원하지 않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임명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애매한 답변만 거듭할 뿐 우열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열은 하는 수 없이 팽성왕 원협을 찾아가 말했다."전하께서는 선제(先帝)의 남양(南陽)에서 내린 조서를 잊으셨습니까? 어찌 늙은 신하를 이토록 몰아붙이십니까?"
그 후, 우열은 병을 핑계로 자사 직책을 굳게 사양하였다.한편, 선무제 원각은 함양왕 원희 등이 권력을 전횡하고 있음을 염려하여 은밀히 그들을 폐위할 계획을 세웠다. 정월 초에 약제(礿祭)를 지내기 위해 삼공(三公)이 모두 종묘에서 재계에 들어갔을 때, 선무제는 밤중에 우열의 아들 우충을 불러 말했다.
"경(卿)의 부친은 충직하고 정직하며 국가의 신하로서 믿음직스럽다. 내일 아침 일찍 들어와야 할 것이다. 분명히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충은 선무제의 말을 받들고 물러나 우열에게 전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우열이 도착하자, 선무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여러 숙부들이 점점 태만하고 권한을 남용하여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경으로 하여금 병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소환하려 하니, 경은 이를 행할 수 있겠는가?"
우열이 대답하였다."이 늙은 신하는 여러 조정을 섬기며, 용맹으로 인해 여러 차례 관직을 하사받았습니다. 오늘의 일 또한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우열은 즉시 직각(直閣) 이하의 병력 60여 명을 이끌고 황제의 명을 선포하며, 함양왕 원희, 팽성왕 원협, 북해왕 원상을 소환하고, 그들을 좌우로 호위하여 선무제 앞으로 보냈다. 이에 그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정권을 선무제에게 반환하였다. 이후 선무제는 우열을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산기상시•영군장군으로 삼고, 작위를 후(侯)로 승격하며, 식읍 300호를 더하여 총 500호를 하사하였다. 이리하여 외직으로 나가는 것을 피하게 된 우열은 궁중에 상시 근무하며, 기밀한 대사(大事)를 모두 참여하여 처리하였다.경명 2년(501년) 5월, 함양왕 원희가 반란을 모의하였을 때, 무흥왕 양집(楊集)이 북망(北邙)으로 달려가 이를 고하였다. 당시 선무제는 사냥 중이었고, 좌우가 흩어져 직위(直衛) 병력이 거의 없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선무제는 우열의 아들 우충에게 명하여 실정을 정찰하도록 하였다. 이때 우열은 도읍을 지키며 이미 대비를 갖추어 놓은 상태였고, 우충을 통해 이를 선무제에게 보고하며 말했다.
"신(臣)이 비록 늙고 쇠약하나, 마음과 힘은 아직 쓸 만하니, 이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염려할 것이 못 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돌아가 백성들의 기대를 안정시키소서."
선무제는 이 말을 듣고 매우 안심하고 기뻐하며, 화림원(華林園)을 통해 환궁하였다. 선무제가 궁에 이르자, 원희는 일이 발각되었음을 깨닫고 이미 도망친 뒤였다. 선무제는 우열에게 명하여, 직각 숙손후(叔孫侯)와 호분 300명을 이끌고 원희를 추격하게 하였다. 원희는 도망치다가 백곡오(柏谷塢)에서 추격병에게 사로잡혀 화림도정(華林都亭)으로 압송되었다.경명 2년(501년) 8월, 우열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선무제는 조당(朝堂)에서 곡을 올렸고, 동원(東園)의 제1비기(秘器)와 조복(朝服) 한 벌, 의복 한 벌, 금전 200만 전, 비단 500필을 하사하였다. 우열은 사후 사시절•시중(侍中)•대장군(大將軍)•태위공(太尉公)•옹주자사(雍州刺史)로 추증되었고, 작위는 거록군 개국공(鉅鹿郡開國公)으로 추봉되었다. 또한, 식읍 500호를 더하여 총 1,000호를 하사받았다.
우열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고, 장남 우조가 거록군공 작위를 이었다.
[1] 갑술년 을해월 무신일. 음력으로는 10월 7일, 양력으로는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