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5:14:28

최호(북위)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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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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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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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崔浩
(381~ 450)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북위 초기의 한족 책사이자 명신. 오늘날로 따지면 허베이성 헝수이시 구성(고성:故城)현 출신이라고 한다.

북위의 화북 통일(439)을 실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책사로, 자는 백연(伯淵)이었고 명문 청하(清河) 최씨 출신이었다. 동생으로 최간(崔簡)[1]과 최염(崔恬)[2]이 있었다.

2. 생애

아버지 최굉(崔宏)은 북위 초기에 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지휘자 역할을 했으며, 태조(太祖) 도무제(道武帝)때 정책 고문을 맡았다. 최굉은 북위 제2대 태종(太宗) 명원제때 유일한 한족 출신의 대신이었다.

최호는 유학, 사학, 서도, 천문, 술수 등에 능하여, 어린 나이에 직랑(直郞)으로 임명되었으며, 북위 제3대 세조 태무제 시기인 431년에 한족이 될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이었던 사도(司徒)에 임명되었다. 최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북위 조정에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다. 또 그는 도사 구겸지를 천거하여 한족의 전통종교인 도교를 숭상하게 하고, 태무제의 폐불정책에 찬동하며 외래종교인 불교를 탄압했다.

그러다가 449년에 북위의 국사 편찬 작업의 총책임을 맡게 되었는데, 이 작업은 한족 관료들이 주관한 편찬 사업이었다. 사서의 편찬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최호가 완성한 북위의 국사 30권은 그 형식상 편년체에다가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따랐으며, 국사를 편찬할 때 가감없이하여 북위의 창업 과정에서부터 태무제 당대까지의 내용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여기에 선비계 탁발씨 황실이 중화문명을 받아들이기 이전 가지고 있었던 이민족으로서의 야만적인 풍습과 신조들을 서슴없이 기록했다. 이렇게 다 적은 것 자체는 나라의 역사를 가감없이 상세히 적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로에 돌로 된 비석을 세우고, 여기에 떡하니 새겨서 북위 선비족 탁발씨 황실의 치부를 일반 백성들이 길가에서 대놓고 그냥 볼 수 있도록 만천하에 공개해 버린 것이었다... 당시 황제인 세조 태무제 탁발도와 선비족 귀족들이 이를 좋게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3] 결국 최호의 일족과 내외손 관계에 있었던 화북의 한족 귀족 128명이 함께 숙청되었으며 최호의 집안인 청하 최씨뿐만 아니라 범양 노씨, 태원 곽씨, 하동 유씨 등 최호의 친척 한인 사족들이 죄다 큰 화를 입었다.[4] 이를 일명 국사필화사건이라고 한다. 중국 국내에서 자국사(중국사)에 대해 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올리는 중국사 블로그 중 한 글에 따르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에 병사들 수십명이 오줌을 누었다고 한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신하로서의 처세를 초한지의 한신처럼 거의 신경을 안 써서 죽을 짓 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안 그래도 최호는 황태자와 관원 문제로 다투기도 하는 등 신하로서는 위험한 행동을 했다. 또한 남조의 한족 왕조인 유송을 정벌하는걸 반대하고, 오로지 흉노족의 북하, 선비계의 유연 등 호족 국가만 정복하길 주장한 것 등 그가 냈던 계책들은 전부 한족의 입장에서 한족의 안위만을 살피는 계책이었다.

또 최호는 북방의 사족대성(士族大姓)으로 성족문제(姓族門第)를 구별할 것을 주장하면서 5등 봉작의 회복을 기도하여 한인 사족 세력을 발전시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북위 선비족 고위층들과 충돌을 야기했다. 상황이 이랬으니 북위 탁발씨 황실 입장에선 이들이 한인 명문 귀족이랍시고 겉으로만 충성하고, 속으로는 지배층인 황실과 선비족들을 더러운 오랑캐로 깔보며 대역죄로서 능멸하려 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호를 비롯한 북위 최고의 한인 문벌사족들이 주살되었던 이 사건의 이면엔 호족과 한족 관료들 사이의 종족적인 대립, 불교와 도교 간의 사상적인 투쟁, 통치계급 내부의 권력투쟁 등이 깔려 있었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최호의 주장은 단순 한족의 안위만이 아닌 북위의 안위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먼저 화북내 이민족 문제보다 장강 이남의 동진에 더 관심을 쏟았다가 망한 나라가 바로 전진이었다. 북위의 탁발부 또한 전진이 망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을 틈타 독립할 수 있었던 만큼 북위가 제2의 전진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원인은 부견의 재상 왕맹의 유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왕맹은 부견에게 화북의 한족들은 아직도 동진을 그리워하고 있고 동진은 일치단결하고 있으니 동진을 공격해선 안되고 대신 내부의 적인 선비족과 강족을 경계하고 기회를 틈타 제거할 것을 당부하였다. 당시 전진은 막 화북이 통일되긴 했지만 그 안에는 선비족, 강족 같은 정복된 이민족들이 있었으며 그보다 더 많은 한족들이 있었다. 실제로도 부견이 동진을 정복하고자 벌인 비수대전에서 한족 출신들이 동진에 투신해버린 점, 전진 패배 후 왕맹이 경계하던 선비족과 강족이 전진에게서 독립하고 끝내 강족의 후진이 전진을 멸망시킨걸 감안하면 왕맹의 판단은 옳았다. 특히 이 때 유송은 개국군주 유유가 많은 땅을 수복한 상태였으며 당시 유송의 황제인 유의륭은 유송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인지라 비수대전 시기의 동진, 혹은 그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정말로 괜히 유송에 올인했다가 제2의 전진이 되는 것보단 내실을 다지는게 더 나았다.

한편 태무제는 최호를 죽이고 나서 유송을 정벌하러 갔으나 군량 부족으로 후퇴했고, 도중에 유송의 대신인 장질이 지키고 있었던 우이성을 공격했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때의 남정에서 군사의 절반을 잃는 등 큰 손실을 보았다. 이전까지 최호의 조언을 듣고 싸워서 연전연승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결과였고 이는 최호의 군사적 식견이 매우 뛰어났다는 걸 방증했다.


[1] 자(字)는 중량(仲亮)이다.[2] 자(字)는 숙현(叔玄)이다.[3] 특히 태무제는 최호를 두텁게 신뢰했으므로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4] 이와 함께 사관 제도 자체도 없어졌다. 이 영향은 사관 제도가 제5대 고종 문성제 때인 460년에 가서야 복원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