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22:56:51

원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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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북위 헌조의 황자
팽성무선왕 | 彭城武宣王
출생 473년
북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사망 508년 10월 27일
북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미상
재위기간 북위 팽성왕
? ~ 508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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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성씨 하남 원씨
협(勰)
부모 부황 헌문제
모후 번씨
왕비 팽성왕비 이원화
자녀 왕자 효장제
종교 불교
첨화(彥和)
작호 팽성왕(彭城王)
묘호 숙조(肅祖) → 폐지
시호 팽성무선왕(彭城武宣王)
→ 문목황제(文穆皇帝)
→ 팽성무선왕(彭城武宣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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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가족4. 참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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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황족으로 헌문제와 귀인 반씨(潘氏)의 아들이자 효장제의 부친이다. 자는 첨화(彥和).

2. 생애

499년 효문제의 뒤를 이은 선무제를 보좌하게 되었으나 외척 고조의 시기를 사게 되었다. 이 둘의 갈등은 507년 심화되었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선무제의 황후 선무순황후(宣武順皇后)가 독살당해 새로 황후를 세워야 했다. 고조는 자신의 친족인 고영(高英)을 황후로 추천해 고씨 일족이 정권을 장악하고자 했는데, 이를 눈치챈 원협이 추천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선무제는 고영을 황후로 세웠기에 원협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아지게 되었다.

508년, 경조왕 원유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고조의 부하 원진(元珍)[1]이 원협은 반란에 가담하였다며 무고했고,[2] 선무제는 원진을 시켜 원협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였다. 원협은 결백을 주장했기에 사사를 거부했고 결국 원진은 부하에게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였다.

본래 시호는 선무제가 내린 무선(武宣)이었으나, 아들 원자유(효장제)가 즉위하자 원협은 묘호 숙조(肅祖), 시호 문목황제(文穆皇帝)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절민제 시기 원협의 위패는 종묘에서 철거되었고 효장제가 추존한 제호(帝號)들은 폐지되었다.

3. 가족

  • 부황: 헌문제
  • 모후: 반씨(潘氏)
  • 황후: 이원화(李媛華) - 문목황후(文穆皇后)로 추존되었으나 절민제가 삭탈함.
  • 황자: 효장제

4. 참고 항목



[1] 북위의 국성을 사용하나 황제인 조상이 열조부(6대조, 탁발울률)까지 올라가야 할 정도로 본 황실과는 촌수가 멀었다.[2] 원협의 외삼촌 반승고(潘僧固)가 원유의 협박으로 반란에 가담했기 때문에 무고하기가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