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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ece5b6> 북위 추존 황제 탁발의타 | 拓跋猗㐌 | |||
출생 | 266년 | ||
서진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
사망 | 305년 7월 31일 (향년 39세) | ||
서진 운중군 성락 (現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허란거얼현) | |||
능묘 | 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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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의타(猗㐌) | ||
부모 | 부황 문황제 모후 문황후 | ||
형제자매 | 4남 중 장남 | ||
배우자 | 환황후 | ||
자녀 | 3남 | ||
시호 | 환황제(桓皇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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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비족 탁발부의 인물.참소를 당해 죽은 탁발사막한의 아들이자, 탁발의로의 형이었다.
2. 생애
탁발의이(拓跋猗㐌)로도 알려져 있으며, 호삼성의 음주에 따르면 㐌는 '이'가 아니라 '타'로, 타(他)와 같은 글자로 볼 가능성이 있다.295년에 탁발록관이 대인으로 즉위해 나라를 셋으로 나눌때, 중부인 대군의 참합피 북쪽을 받아 이를 통치했으며, 대 지역의 사람인 위웅의 유세로, 서부 대인 탁발의로와 함께 서진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나라의 일을 맡겼다.
사막을 건너 북쪽을 순회했고 이를 통해 서쪽으로 가서 5년 동안 여러 나라를 경략했는데, 이로 인해 항복하고 귀부한 나라가 30여 개국이었다.
304년에 동탁공 사마등의 요청으로 한나라(전조)의 태조 광문제 유연을 공격했는데, 탁발의로와 군사를 합쳐 서하에서 유연을 격파했으며, 사마등과 분하의 동쪽에서 맹약을 맺었다. 305년에 전조에서 사마등을 공격하자 사마등을 구원하여 기무돈을 죽였으며, 이에 서진에서 조서를 내려 탁발의타에게 대선우의 직책을 내렸고, 6월 24일에 사망하자 아들인 탁발보근[1]이 계승했다.
북위가 건국된 이후 태조 도무제 탁발규에 의해 환황제(桓皇帝)로 추존되었다.
[1] 숙부인 탁발의로가 아들에게 살해당하자, 탁발의로의 아들을 죽여 대나라의 제2대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