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6:03:31

내몽골 자치구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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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행정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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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蒙古自治区 | ᠦᠪᠦᠷ ᠮᠤᠩᠭᠤᠯ
내몽골 자치구 | Nèi Měnggǔ Zìzhìqū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Inner_Mongolia.svg.png

청사 소재지 후허하오터시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지역 화베이
면적 1,183,000 km2
하위 행정구역 9 지급시, 3 맹, 23 시할구,
11 현급시, 17 현, 49 기, 3 자치기
인구 25,050,000명
인구밀도 20.2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리지헝(李纪恒)
정부주석 부샤오린(布小林)
HDI 0.767(2017)
GRDP $2,612억 6,900만(2018)
1인당 GRDP $10,322(2018)
행정구역 한자 약칭 内蒙古[1]
ISO 3166-2 CN-NM
  • 한국어: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자치구/내몽고자치구
  • 태국어: เขตปกครองตนเองมองโกเลียใน
  • 간화자: 内蒙古自治区
  • 정체자: 內蒙古自治區 / 内蒙古自治區[2]
  • 영어: 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 몽골어: ᠦᠪᠦᠷ ᠮᠤᠩᠭᠤᠯ[3], Өвөр монгол[4]

1. 개요2. 상세3. 역사4. 행정5. 행정구역6. 문화7. 인물8. 지명9. 사건10. 관련 문서

1. 개요

내몽골 자치구는 중국의 자치구이다.

약칭하여 내몽골(内蒙古, 중국어 발음으로는 네이멍구)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몽(蒙). 최대도시는 후흐허트(ᠬᠥᠬᠡᠬᠣᠲᠠ, Хөх хот, 呼和浩特), 중국어 음차로는 후허하오터이다.

2. 상세

북쪽 국경지대에 독립국 몽골(외몽골),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면적은 1,183,000km². 국경선이 무려 4,22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몽골과 접경선이 3,192㎞, 러시아와 접경선은 약 1,000㎞이다.

내몽골자치구 중 다싱안링 산맥(大興安嶺山脈/大兴安岭山脉, 대흥안령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은 넓은 의미의 둥베이(동북) 지방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일대를 동4맹(東四盟/东四盟)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속하는 행정구역은 치펑시(赤峰市, 구 자오우다맹 昭烏達盟/昭乌达盟 ), 퉁랴오시(通遼市/通辽市, 구 저리무맹 哲里木盟 ),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呼伦贝尔市, 구 후룬베이얼맹), 싱안맹(興安盟/兴安盟)이다. 여기서 '맹'은 내몽골 자치구에만 있는 행정구역 단위인데, 현재 행정구역 개편이 되어 본래의 동4맹 중 3개가 시로 승격되었다. 현재도 이 네 곳을 묶을 땐 예전 행정구역을 따서 동4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바뀐 행정구역에 맞춰 3시 1맹(三市一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몽골은 고비 사막 내외부에 따라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뉘며 독립국인 몽골국(구 몽골인민공화국)은 외몽골이고, 중국에 속해있는 몽골은 내몽골자치구라 명명한다. 내외몽골은 역사적으로 마찰이 심해서 같은 몽골인이라지만 서로를 상당히 적대시한다. 몽골의 사서를 보면 서로 노예로 삼겠다는 소리를 할 정도니.

외몽골은 러시아 적백내전 직후인 1921년 소련의 후원으로 사실상 위성국화되어 독립에 성공해 세계 두 번째 공산국가가 되었고 내몽골은 약간의 저항의 기미가 있었으나 외몽골이 사실상 외면하는 바람에 중국에 병합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현재 내몽골에서는 몽골 문자몽골어를 사용하고 있다. 외몽골에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권에서 주로 쓰는 키릴 문자를 몽골어 표기에 사용한다. 물론 몽골 문자도 사용하지만 그 사용 빈도는 높지 않다. 아직 몽골인의 모어는 엄연히 몽골어라서 몽골인 사이에서는 몽골어로 의사소통하며 중국어는 한족과 섞여 사는 특성상 공용어로 사용한다. 내몽골 몽골어는 차하르어로 할하어인 외몽골과는 방언 정도 차이가 있다.

내몽골인들은 외몽골을 소련식민지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자부한다. 외몽골은 1921년 몽골의 장군인 담딘 수흐바타르에 의해 독립국 지위를 얻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외몽골, 즉 현 몽골국에서도 내몽골을 중국에 굴복한 식민지인이라고 쳐서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다. 사실 외몽골은 할하 족, 내몽골은 차하르 족이며 내몽골 쪽이 예전부터 중국의 침략을 많이 받아서 항복을 자주 했던 역사가 있어서 외몽골인은 내몽골인들을 열등하게 여긴 반면 내몽골인들은 외몽골인들을 중국의 침략은 방관이나 하면서 통수나 치는 족속들로 여기는 터라 사이가 좋지 않다.

사실 과거 시절에 이렇게 다른 나라들끼리 인접한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민족 출신들도 많이 살았다. 한나라 시절에는 대나라가 내몽골 지역에 있었기도 했고, 투메드부의 지배 지역에 유입된 한인 정주민을 거주시키는 마을로 건설된 중국식의 성곽도시 바이신(大板升)이 도시 후허하오터의 기원이다. 명나라 역시 이런 유목민들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유목민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라 근대적 민족주의가 대두되기 이전에는 이런 경우 민족이 달라도 자기가 살아온 나라 편을 드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5] 현재 내몽골에선 중국어가 더 많이 쓰이는데, 이는 인구의 80%가 한족 이주민으로 채워져 본진에서조차 소수민족으로 전락해버린 탓이 크다. 또한 내몽골인은 중국 내에서 소수민족이므로 몽골인이 아니라 몽골족으로 분류된다. 오늘날에 몽골인이란 단어는 독립국가인 몽골(외몽골)의 국민을 지칭하며, 내몽골인은 국적상 중국인으로 분류된다.

2012년에 내몽골에서 한족과 몽골족 간 마찰이 벌어지는 등 이쪽도 한족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티베트나 위구르에서처럼 독립 시도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3. 역사

파일:mongolia_so.png 몽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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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세근현대
청나라
(청나라 치하 몽골)
중화민국/북양정부중화민국/국민정부 중화민국/국민정부 중화인민공화국
(내몽골 자치구)
몽강연합
자치정부
내몽골 인민 공화국
투바 인민 공화국소련
(투바 자치주)
러시아
(투바 공화국)
복드 칸국 몽골 인민 공화국 몽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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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때는 흉노의 땅이었으며, 흉노의 후예로 추정되는 돌궐 역시 내몽골과 외몽골, 남시베리아, 북중국, 신강에 걸친 영역을 확보했다. 왕조에 들어서 태종의 북방 원정으로 중국에 귀속되어 기미주가 되었었으나 돌궐의 부활로 빼앗겨서 돌궐이 다시 차지했고, 다시 돌궐을 멸망시킨 위구르 제국이 차지했다.

원래 북만주에 살던 원시 몽골족인 몽올실위족이 초원으로 진출 한 후, 그들 중 한 씨족인 보르지긴 씨족에서 칭기즈 칸이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나와 몽골 부족을 통일하면서 몽골족이 생겼다. 이 몽골족은 나중에 북중국에서 금나라서하를 멸망시키고 몽골 제국을 세웠다.

북송 때는 서하, 요나라, 금나라가 있었다. 특히 요나라는 내몽골 전체를 지배했으나 서하와 금나라는 일부를 지배하는 데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르도스 일대는 서하가, 내몽골의 동부 흥안성 일대(만주로도 간주)는 금나라가 가졌고 내몽골고원은 칭기즈 칸의 등장 이전까진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는 내분 상태다.

그러다 칭기즈 칸의 등장으로 각 부족이 통일되어 "몽골"이라는 문화적,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이 드디어 생겼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은 그저 수많은 부족 중 하나의 이름에 불과했으나 칭기즈 칸은 최초로 모든 유목민에게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것은 몽골대제국, 그리고 현대의 몽골로 이어진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 사후 후손들에 의해 나뉘어 지게 되고 그 중 하나인 원나라는 몽골과 중국을 가로 지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후 원나라 시대를 거쳐 명나라 대에는 원나라는 100년 조금 못 가서 한족에게 밀려 몽골 고원으로 물러나 북원이라 칭했다. 한동안 내몽골 일대에는 북원과 몽골 칸국들이 일어나 명과 대치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시금 몽골부족을 통일한 다얀 칸과 어느 정도 부흥기를 성립시킨 알탄 칸이 있다. 이후 계속하여 이들 차하르 부족이 다스리다가 만주족이 세운 후금에 릭단 칸의 아들 에제이가 항복해 이후 만주와 함께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내몽골 지역 전체가 독립된 몽골족의 땅이었으나 청나라가 아직 중국 본토를 장악하기도 전인 1635년 청나라가 차하르를 제압하고 원의 옥새를 얻어 내몽골은 청의 일부가 된다. 이후 청은 만주족과 몽골족 연합제국의 형태로 가며 건륭제 때는 외몽골까지 평정한다. 이후 청나라는 18세기에 건륭제 시기에 외몽골과 신강, 티베트에 걸쳐있던 준가르 제국을 없애버리고 이 지역들까지 정복해 버린다.

신해혁명 후 청나라가 망하고 들어선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1928년 러허성(熱河省)과 차하얼성(察哈爾省), 쑤이위안성(綏遠省) 등의 행정구역을 두어 내몽골을 분리해 관리하였고 외몽골까지 포함하여 중화민국의 영토라 주장하였다. 중화민국/미수복지구 참조. 1936년 데므치그돈로브를 옹립한 관동군수동사변을 일으켜 내몽골 병탄을 시도했으나 푸쭤이의 반격에 격퇴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군에게 내몽골은 병합 당하고 몽강국이 세워진다.

1945년 8월, 공산주의 몽골군과 소련군의 합동작전인 8월의 폭풍 작전으로 인해 소련군 플리예프 기병-기계화 집단이 내몽골 사막을 건너 쳐들어와 이미 미국에 의해 망해가던 일본제국이 세운 괴뢰국 몽강국은 멸망하였다. 당시 군비의 대부분을 해군력에만 쏟으며 미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던 일본은 손쉽게 무너진다. 소련은 아예 내몽골을 몽골에 병합시키고 조만간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시키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철회하였다. 1945년 9월에는 내몽골 인민 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가 세워졌지만 몇 달 못가 중국 공산당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마오쩌둥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외몽골은 소련에 의해 독립되었고, 내몽골은 1947년 5월 1일 중국 공산당의 행정개혁으로 내몽골자치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행정

면적은 1,183,000km²로 중국 국토면적의 약 12%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시린궈러멍, 싱안멍, 아라산멍, 등 3개의 멍(盟)과 후허하오터를 비롯하여 바오터우, 우하이, 츠펑, 퉁랴오, 후룬베이얼, 오르도스, 우란차부, 바옌나오얼 등 9개 지급시(地級市), 11개 현급시(縣級市), 17개 현(縣), 49개 기(旗), 3개 자치기(自治旗)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3분의 1 정도가 대외적으로 개방되고 있으며, 얼롄하오터와 만저우리 등에 국경사무소가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한 뒤로 전세계 6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거래를 하고 자매결연을 맺었다.

인구 구성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비롯하여 몽골족[6], 다우르족[7], 에벤키족, 오로촌족, 시버족, 회족, 러시아족, 조선족 등 49개 민족이 있다. 소수민족의 비중은 자치구 전체 인구의 약 20%이며, 몽골족은 약 400만 명에 이른다.

내몽골 자체가 인구가 워낙 적어서 대부분의 주민이 원나라와 북원, 차하르 통치시기에 이주한 한족으로 채워졌다. 오히려 몽골족은 원 지배기에 대거 중원으로 이주해 버렸고, 오늘날 베이징산시 성한족들에게 진하게 몽골족의 피가 섞였다. 인구의 80%가 한족이라는 현실 때문에 티베트, 위구르와 달리 분리독립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 이것을 후원할 수 있는 나라인 몽골의 힘이 티벳의 지원국인 인도와 천양지차인 것도 크다.

현재 중국 땅인 내몽골의 인구는 몽골보다도 훨신 많다. 중국 전체의 몽골족 수는 600만, 몽골국민은 300만에 불과하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중국 조선족이 남북한 인구보다 많은 셈. 게다가 경제적으로는 당연히 내몽골이 더 앞서서 몽골에서 일하러 오는 판이다. 대한민국이나 터키와는 반대인 셈이다.

내몽골에서 몽골어는 모어(母語)이지만 그렇다고 주요 언어는 아니다. 내몽골은 엄연한 중국의 자치구 중 하나인지라 초원에서 생활하는 일부 내몽골인들도 중국어를 구사한다.

게르에 진짜로 살면서 유목하는 유목민이 꽤 많은 몽골과 달리 내몽골의 게르는 대부분 관광지이다. 실제 대다수의 내몽골인들은 큰 도시에서 정착 생활을 한다.[8] 이는 내몽골의 기후변화와 중국-몽골-러시아의 확실한 국경선 설정 등으로 유목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내몽골에 여행 와서 접할 만한 게르 등 유목민 거주지는 한국으로 치면 민속촌이나 하회마을 비슷한 곳이라 보면 된다.

5. 행정구역

중국어/몽골어
  • 맹/아이막(盟/ᠠᠢᠢᠮᠠᠭ)

6. 문화

복장은 도포에 장화를 신고 허리띠를 즐겨 찬다. 유목민으로 쇠고기와 양고기를 즐겨 먹으며, 분해와 조립이 간편한 천막 모양의 이동식 주택 게르에서 산다. 오늘날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파트나 현대식 가옥, 또는 게르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고대 몽골족은 탱그리신앙을 신봉하였으나, 원나라 이후 티베트 불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해마다 7월 중순에는 몽골인이 모여있는 곳에서 나담(Наадам) 축제를 열어 물품을 교환하고 기마·사격·씨름 경기 등을 거행한다. 외몽골에서는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되며 타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도 이 축제를 즐긴다.

문화대혁명 시기 내몽골 지역 유목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늑대 토템이 있고, 이를 원작으로 한 2015년 영화 "울프 토템"이 있다. 감독은 <베어>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

7. 인물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 칸과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있다. 쿠빌라이 칸의 경우 몽골의 전통을 벗어나 원나라를 세워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몽골을 갖고있는 중국은 자치구 내에 칭기즈 칸 무덤을 조성하고 중화민족의 자랑스런 위인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칭기즈 칸은 오늘날 외몽골에 해당하는 헨티 아이막의 빈데르 솜 출신이다.

내몽골 출신의 역사적 인물로는 18세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한족 출신 명안도(明安圖)가 있다.

그리고 수원 토막살인사건 용의자 오원춘이 내몽골 싱안맹 출신이기도 하다.

스포츠 쪽으로는 내몽골 출신 최초의 NBA 선수였던 멍크 바타르가 있다. 비록 NBA에 있었던 시간은 3시즌 뿐이고, 그 기간동안 팀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지만, 2002-03 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무려 NBA 우승을 했다.

8. 지명

그 외에도 황사나 미세먼지 근원을 이야기할 때 중국의 지명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고비 사막의 모랫바람이 공업단지 먼지를 먹다보니...

미분양 부동산대륙의 기상급으로 지나치게 많아서 이렇게 유령도시화 되어버린 곳이 있다. 오르도스 참고.

9. 사건

10. 관련 문서



[1] 자동차 번호판 등에서는 蒙을 쓴다.[2] 대만의 표준 정체자인 국자표준자체나, 대한민국에서 주로 쓰는 강희자전체의 경우 內(冂 안에 入)의 형태가 표준이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필요 시 사용하는 번체자로는 간화자와 동일하게 内(冂 안에 人)의 형태로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이 그렇다는 거지 꼭 이것을 칼같이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손으로 필기를 할 때는 국가·지역을 막론하고 内(冂 안에 人)의 형태로 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3] Öbür Mongghul. 전통 몽골 문자 표기.[4] 내몽골을 지칭하는 몽골식(외몽골) 표기법. 내몽골 현지에서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5] 사실 근대적 민족주의 이후에도 이런 사람들을 민족이 다르다고 걍 죽이려고 해서 대립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위구르나 내몽골 지역에 원래부터 살던 한족 출신들은 심지어 종교나 문화까지 똑같아서 거기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었고 위구르인들이나 내몽골인들이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기 전까지는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제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더 문명화된 그들은 위구르 지역은 아예 무력으로 털어버리고 중국에 갖다 바치고, 내몽골에서도 역시 중국과 합병하는데 일조했다. 오스만 제국에서 터키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학살한 아르메니아인들도 원래는 아예 충성스러운 밀레트라 불릴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터키인들이 그들을 학살하기 전까지는 터키인들이 부정부패로 제국을 망치고 있는데, 오히려 아르메니아인들이 나라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둥 터키인들보다 더 충성하기도 했다. 물론 탄압과 학살을 받자 테러를 일으키거나 오스만의 적이었던 러시아에 붙어버렸다.[6] 여기서 몽골족은 독립국 몽골의 국민이 아니라 자치구내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골족을 의미한다.[7] 거란의 후예 민족으로 자기들 조상을 요나라 태조로 본다.[8] 우리가 갖고 있는 오랜 오해 중 하나가 몽골인들 아직도 전 인구가 초원에서 유목 생활한다는 건데, 현재는 유목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별장용으로 게르를 가지거나 돈이 없어서 게르에 산다거나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