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03:05:50

산둥성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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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행정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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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东省
산둥성 | Shāndōng Shě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5px-China_Shandong.svg.png

청사 소재지 지난시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지역 화둥
면적 157,100 km²
하위 행정구역 2 부성급시 17 지급시
인구 100,060,000명
인구밀도 630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류자이(刘家义)
시장 궁정(龚正)
HDI 0.758(2017)
GRDP $1조 1,555억 8,500만(2018)
1인당 GRDP $11,525(2018)
행정구역 한자 약칭
ISO 3166-2 CN-SD

1. 개요2. 지리3. 산업과 교통4. 문화5. 역사
5.1. 고대5.2. 중세5.3. 근현대
6. 기타7. 행정구역8. 출신인물
8.1. 고대8.2. 중세8.3. 현대8.4. 연예인

1. 개요

중국의 행정구역 중의 하나.

북쪽에는 허베이성, 서쪽에는 허난성, 남쪽에는 장쑤성이 있고 안후이성과도 아주 약간 접해 있다. 이름의 유래는 남북으로 뻗은 태항(太行)산맥의 동쪽에 있어서다. 성도는 지난(济南) 시. 성의 인구는 약 1억명(2017년 기준)으로 중국 전체에서 2위의 인구 수를 자랑한다. 약칭은 (鲁)로, 이 지역 서쪽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국가인 노나라에서 유래했다. 덧붙여, 춘추전국 강대국 중 하나인, 산둥성 동쪽에서 시작한 제나라에서 유래한 제(齊)란 명칭도 자주 쓰이며[1] 과거에 제나라와 노나라 모두 지금의 산둥 성 지역에 있었기에, 산둥 지역을 가리킬 때 따로 제로(齊魯)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당시에는 춘추오패에 드는 제나라가 더 강했지만 공자의 고향 노나라 명칭이 지금은 더 우세한 것이 아이러니.

2. 지리

서쪽에는 황하삼각주를 이루면서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평야 지대가 위치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인구가 많고 인프라가 발달한 지역은 서쪽의 평야 지역이다. 그에 반해 중부와 동부는 주로 해발고도 800m 내외의 구릉지와 산지 투성이이다. 그 중에서도 중부의 산지가 약간 더 험준한데, 이 지역 최고봉이 그 유명한 태산이다. 각종 시조에서 허구한 날 나오는 높은 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최고봉인 옥황봉은 해발 1535m에 지나지 않는다.[2] 하지만 전체적으로 평야가 넓은 이 지대에서 이 정도 해발고도면 충분히 높은 산으로 인식될 만 하다. 그리고 동부의 산으로는 칭다오에 위치한 노산(崂山)이 유명하며 여기 해발고도는 1132m로 화강암지대라 산줄기를 타고 물이 정수되어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고 이 물로 담근 맥주가 바로 칭따오 맥주다.

산동 반도에 위치해 있다. 물론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하긴 하지만 생각 외로 반도가 아닌 부분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3] 성도인 지난 시도 반도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다. 지리적 특성상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국땅으로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 예로 다른 국가의 화교들은 광동성, 복건성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한국의 1세대 화교들의 대부분은 이곳 산동성 출신이고,[4] 거기에다가 중국 본토이면서도 한국과도 비교적 가깝다는 점때문에 많은 한국기 업들이 산동성에 많이 진출해서 공장을 지었기 때문에[5] 교민들과 조선족들도 산동성 지역에 많이 살고있으며, 한국인과 조선족을 합해서 약 25만명~30만명이 살고있다. 칭다오(청도)에 한국 영사관이 설치되어있으며 웨이하이와 옌타이에도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각각 인천광역시 위해구(웨이하이), 연대구(옌타이)라는 별칭도 있을 정도다. 재미있게도 태안반도에서는 이곳에서 쏘는 라디오가 나온다. 날씨가 좋으면 아주 좋은 퀄리티로 나온다. 사실 칭다오나 웨이하이, 옌타이 등에서 날씨가 좋을 때는 한국방송 전파가 닿기 때문에 산동에 사는 교민들이나 조선족들이 안테나를 설치해서 한국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해안 일대에서 산동 지역 방송전파가 닿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

주요 도시로는 성도인 지난을 비롯해 타이안, 칭다오, 허저, 르자오, 웨이하이, 웨이팡, 옌타이 등이 있다.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은 주로 산동성 동반부에 위치한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에서 많이 살고있다.

3. 산업과 교통

서부에 평야가 넓게 자리해있기 때문에 서부지역에서 농업이 발달해있으며 농업은 농사가 대부분이지만 남부의 일부에서는 를 재배하기도 한다. 공업은 황하 하류에서 석유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6] 석유산업이 발달되어있지만 석유매장량이 많다고 해도 주요 산유국급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수준은 아닌지라 당연히 중국의 많은 인구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7] 일부 산지에서 석탄도 채굴되며 금도 많이 매장되어있어서 금 채굴량도 중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바다에 넓게 접해 있기 때문에 산동성은 주로 중화학 공업이 발달해 있다. 한편 해안 도시 칭다오를 중심으로 첨단 산업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

수도 베이징에서 상하이를 비롯한 경제특구로 통하는 도로철도가 이 곳을 지나가 교통의 중요성에서도 상당히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서쪽의 이야기이고, 반도 내로 들어가면 사정이 상당히 달라진다. 별로 중요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서부처럼 인프라가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반도 지역은 대한민국과 교류하기 가장 유리한 지역이기 때문에 인천항 및 평택항과 다수 항로가 개설되어 있어 해운 교통 면에선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산둥 성의 옌타이, 웨이하이, 칭다오로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웨이하이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한다.

2015년 가을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TV 광고도 하고 있다. 공자의 땅, 휴양지 등.

다만 위에서 언급한 중화학공업 등으로 인한 산업화로 인해 생겨난 폐수에, 무분별한 저인망을 이용한 남획으로 인해 이 일대의 수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로 넘어와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의 대부분이 이 산둥성의 어선들이다.

중국에서 오는 한반도 미세먼지가 심각해지자, 공장을 중국 동부의 산둥성으로 옮겨서 그렇다는 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측은 산둥성 지역은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해안의 공장지역을 오히려 계속 내륙으로 옮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

4. 문화

언어로는 산동 방언을 쓴다. 산동 방언은 표준중국어와는 어느정도 다르기는 하지만[8] 그래도 남방 방언처럼 아예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서 많은 산동성 주민들이 동북 3성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중국 동북방언과 비교적 의사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이 가운데서 해안부 방언은 어느정도 알아먹을만한데 내륙부 방언의 경우에는 영 알아먹기가 힘들다는 평이다. 하지만 외국어 소리를 듣는 남방방언보다는 훨씬 차이가 덜한 편. 산동성 주민들은 공자와 맹자도 산동어를 썼다며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9]

4.1. 요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산동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요리도 꽤나 유명한데 이 가운데서 공자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는 공부채가 특히 유명하다. 덧붙여 산동성이 한국과 가까운 만큼 한국식 중화 요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짜장면도 원래는 산동성에서 먹던 요리였지만 한국에 오면서 여러가지 변화과정을 거쳐서 정착된 음식이다. 당연하겠지만 산동성에서 먹는 짜장면은 한국 짜장면과는 맛이 다르며, 그래서 중국에 대한 정보가 없던 시절에 본토 짜장면을 찾은 한국인들이 종종 낭패를 보았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산동성내에서도 한국인과 조선족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돈과 시간만 있다면 한국식 짜장면을 맛볼 수 있기는 하다.

5. 역사

5.1. 고대

지금이야 중국의 심장부에 있어서 상상하기 어렵지만 춘추전국시대를 기점으로 중원에 동화되기 이전에는 중원이라고 불리는 허난성 일대의 주민들과는 별개의 문화(웨스문화 岳石文化)와 정체성을 지닌 '래이'(來夷)라는 동이족계 이민족이 살고 있었고, 상나라-주나라 시기에는 산동성 일대에 수많은 성읍국가들을 형성해나갔다.

이들을 통칭해서 동이라고 불렀고 한민족도 후에 동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이때는 다르게 동이족이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상나라와 주나라 동쪽에 살던 여러 종족들을 통칭한 개념인데다가 한반도에서도 수많은 부족-군장국가가 난립해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관계가 있다하더라도 공통의 정체성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 래이라는 이민족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뚜렷하게 우세를 점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제나라와 노나라,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에게 완전히 잠식당하여 서쪽 허난성 일대를 중심으로 발원한 초기 중국에 완전히 흡수된다. 중원과 위도가 같고 기후지형적 환경이 비슷해서 중원 동서남북 중에서는 가장 먼저 동화, 편입되었다.

하지만 가운데 황해 두고 마주보고 있다는 지리적 인접함 때문에 이래저래 한반도와 관련이 많은 건 사실로, 고대로부터 산동지역 주민들이 배를 타고 한반도로 이주하거나 반대로 한반도에서 산동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는 빈번했다. 산동성에서 한반도 스타일 고인돌이 발견된다던가, 반대로 초한쟁패기 때 제나라 주민들이 고조선으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며[10] 그 이후로도 멸망한 고구려계와 발해계 유민들이 산동성 일대에 대거 정착해 이정기제나라를 세웠고 신라인들도 산동성 해안도시에 정착해 신라방을 차려 한중일 삼각무역을 했다.

아무튼 춘추전국시대에 산둥성 지역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이합집산을 거치며 점차 통합되어나가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 시절에 산둥 성 지역에 위치한 나라로 노나라제나라가 있다. 노(魯)나라는 그 유명한 공자의 출신지이고[11] 제(齊)나라는 한때 전국시대 최강의 자리를 거머쥐었던 강국이었으나 나중에는 서쪽의 진(통일왕조)(秦)이 폭풍처럼 성장해 세력다툼에 밀려 멸망하고 만다.[12]

백제 위덕왕이 당시 중국에서 '동청주지사'라는 책봉명을 받았는데, 이 '동청주'가 바로 중국 '산동지방'이었다. 산둥경략설? 오오 이거슨 백제의 기상! 당시에는 남의 영토 이름을 책봉명으로 하사받는 일이 매우 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2. 중세

당(통일왕조)의 중당시기에 약 60여년간 고구려 유민 출신 이정기의 치청번진(후에 잠시 제나라(齊) 왕조를 칭하기도 했다)의 세력권이기도 했다. 당나라 시기에는 수많은 신라 주민들이 산동반도로 이주하여 신라방이라는 고대의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들의 수가 많았는지, 이들을 다스리기 위한 소수민족 특수 기관으로 신라소라는 행정기관이 설치되기도 했고, 이들의 종교활동을 돕는 신라원이라는 곳도 생겨났다고 한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바닷길을 통해 한반도와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한반도와의 접경 지역인 동북 3성 지역과 함께 한국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미 고조선 이전시대부터 무역이 활발히 이루졌으며, 고려 시대에는 무역항인 벽란도와의 무역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명나라 만력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자 한반도에서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13] 산동성쌀을 대거 매입해서 황해를 건너 조선에 원조했다고 한다.

5.3. 근현대

청나라 멸망 이후에는 톈중위가 4년간 산동성을 지배했으나 임성 사건으로 인해 정사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1924년 2차 직봉전쟁, 제노전쟁을 거쳐 봉천군벌인 개고기 장군 장쭝창의 영지가 되었다가 국민당의 2차 북벌 이후 펑위샹이 차지했다. 허나 반장전쟁에서 펑위샹이 패배하면서 펑위샹의 부하였던 한푸쥐가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바로 밑에 난징 국민정부가 번성하면서 독립성은 다른 성에 비해서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1927년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국민당의 1차 북벌을 저지하기 위해 1차 산동파병을 강행했으며 1928년에 2차 산동파병을 거행해 일본군이 북상하던 국민혁명군을 공격하면서 제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일전쟁 때는 일본제국이 이곳을 지배했다. 류보청덩샤오핑이 거느린 8로군 129사단이 이곳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뒤이어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이들은 게릴라전으로 장제스군을 괴롭혔고, 화북지역과 화남지역의 보급선을 차단, 중공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

6. 기타

여담으로 옛부터 협객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지금도 중국에서 왠지 산동성 사람이라고 하면 호걸을 연상할 정도. 일반적으로 산동성 사람들은 자타공인 호방한 성격으로 술을 잘 마시고, 손님 접대를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중국 내에서 강하다. 수호전의 배경인 양산박이 바로 산동성의 지명이다. 민국시대에도 수십만에 달하는 토비가 들끓어 1923년 임성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7. 행정구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50px-Shandong-map.png
산둥 성에는 부성급시 2개, 지급시 15개로 총 17개의 지급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 지급시
    • 빈저우(빈주)
    • 더저우(덕주)
    • 둥잉(동영)
    • 허쩌(하택)
    • 지닝(제녕)
    • 라이우(내무)
    • 랴오청(요성)
    • 린이(임기)
    • 르자오(일조)
    • 타이안(태안)
    • 웨이팡(유방)
    • 웨이하이(위해)
    • 옌타이(연태)
    • 짜오좡(조장)
    • 쯔보(치박)

8. 출신인물

8.1. 고대

8.2. 중세

8.3. 현대

8.4. 연예인


[1] 제남, 제녕 등.[2] 덕유산보다 낮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구절이 정말 무색해진다.[3] 대표적으로 성도인 제남, 곡부, 요성 등 서남부 내륙일대는 중원하남일대이던 '연주'에 속해있었고 반도 아래 남부해안지역은 월나라/서나라 등 남방국가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한대에 서주에 속했다.[4] 다만 국적은 대부분이 중화민국(대만_이며,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 3성과는 다르게 재중동포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5] 현재는 중국도 생활수준이 어느정도 향상되면서 봉급수준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나 제조업체들의 경우에는 더 멀리 떨어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동남아로 공장을 옮겼다. 하지만 산동성의 인구만 해도 억에 가깝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서비스업 중심으로 남아있는 한국 기업들도 많다.[6] 확인매장량은 8억 배럴에 추정매장량은 30-40억 배럴 정도로 추산된다.[7] 전체적인 생산량이 적은건 아니지만 중국의 석유소비량이 미국 다음인 것을 생각해보면 자급자족하기엔 당연히 턱없이 부족한 양인게 맞다. 괜히 2000년대 중반기에 중국이 세계의 석유값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다.[8] 일부 구개음화되지 않은 음이 보존되어 있다. '깐풍기'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표준중국어로는 '지'로 읽는 글자를 산동 방언에서는 '기'로 읽는다. 이 영상 36초부터 나오는 산동 방언을 직접 들어보자. 여기서도 '气(qì)'를 '키' 비슷하게 발음한다.[9] 다만 현대 중국어와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중국어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기는 멀다.[10] 사기 조선열전.[11] 그런데 이 미칠 듯한 네임밸류와는 달리 노나라는 군사적으로는 별로 보잘 게 없는 작은 나라였다.[12] 그래서 산동성의 자동차 번호판은 鲁를 쓰는데, 이게 여기서 따온 것으로 지역별 분류는 다음에 오는 알파벳으로 구분한다. 지난시는 鲁A, 칭다오는 鲁B 이렇게. 하단부의 鲁Q는 린이 지역의 번호판이다. 파일:external/img5.imgtn.bdimg.com/u=772827718,1276754095&fm=21&gp=0.jpg[13] 만주지역이 붙어있긴 하지만 명나라의 행정력이 잘 미치지 못했다.[14] 매우 크고 아름답게 지은 청사건물로 유명하며 그것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 한국으로 친다면 충청남도청이나 성남시청, 일본으로 친다면 치바 현청을 크게 지은것에 비견될 수준의 일. 물론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아서 세금낭비하냐며 지난시민들과 네티즌으로부터 엄청나게 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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