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9 16:06:00

랴오닝성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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辽宁省
랴오닝 성 | Liáoníng Shě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Liaoning.svg.png

청사 소재지 선양시
국가 중국
지역 둥베이
면적 148,000km²
하위 행정구역 14 지급시, 59 시할구, 16 현급시, 17 현, 8 자치현
인구 43,680,000명
인구밀도 288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천추파(陈求发)
성장 탕이쥔(唐一军)
HDI 0.772(2017)
GRDP $3,825억 5,700만(2018)
1인당 GRDP $8,766(2018)
행정구역 한자 약칭
ISO 3166-2 CN-LN
1. 개요2. 설명3. 지형(지리)과 기후4. 산업5. 교통6. 역사7. 관내 주요 도시8. 출신인물9. 기타

1. 개요

랴오닝 성(요녕성, 遼寧省)은 중국 동북부의 성급 행정구역이다. 성도는 선양(沈阳/瀋陽)시. 한자 그대로 읽어 심양이라고도 부른다. 행정상 간칭은 요(辽).

인구는 43,900,000명, 면적은 145,900 km2남한보다는 넓으나 중국 내에선 비교적 작은 편이다.(...) 서쪽은 허베이 성, 북쪽은 내몽골 자치구, 동쪽으로는 지린 성, 남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한다. 서남쪽으로는 황해, 보하이 해 바다와 접한다.

2. 설명

한국사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인 요동요서 지방을 합쳐서 요령이라 한다.

그 유명한 요하(遼河)가 성 중심부를 관통하며 요하를 기준으로 서쪽을 요서(遼西)라 부르고 동쪽을 요동(遼東)이라 부른다.

요하 하구에 위치해있다 보니 광활한 평야를 지니고 있는데, 이 지역은 개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요택(遼澤)이라 불리는 거대한 늪지대였다. 고구려를 조지러 왔던 수나라 양제와 당나라 이세민 군이 대패하고 신속한 퇴각을 위해 이 곳을 지나면서 숱한 인명피해를 낸 곳으로 유명하다.

대도시도 엄청나게 많다. 이 성의 인구만 4,000만이 넘는다. 그러나 인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부터는 출산율이 매우 낮아져서 1000명당 출생률은 6명대이고 출생아수는 27만명대에 머물고있다. 인구도 매년 유출되고 있는 중. 이건 지린 성이나 헤이룽장 성도 비슷하게 겪고있는 문제이다.

인구의 84%가 한족이고, 만주족은 인구의 13%에 달한다. 동북 3성중에는 만주족이 많은 편이다.[2]그외에 몽골족이 2%, 조선족회족은 각각 0.6%이다. 옆 지린성에 비하면 조선족 인구는 적은 편. 특히 만주족 비율은 요령성 동부 산지 쪽에서 높게 나타나며, 랴오닝 성 동부에 6개 자치현이 있다.

랴오닝 성은 지린 성,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처럼 여행유의 지역이다. 북한과의 접경지대이기 때문. 이 곳은 북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납북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지정되었다. 취소선이 있었는데 성 전체에 북한 특무들이 있어 주의해야 하는게 사실이며, 특히 중국을 기점으로 북한 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들이 대게 여기서 납북당했다.

3. 지형(지리)과 기후

지형은 대체로 동고서저형. 서부는 얕은 구릉지, 중부는 평원, 동부는 험한 산지로 구분된다. 큰 도시는 주로 중부에 집중돼 있고 동부는 거의 불모지이다.

내몽골자치구와 인접한 북쪽 일부 지역인 시라무렌 일대에는 건조 기후도 나타난다.

기후는 연교차가 매우 큰 냉대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겨울에 영하 20도를 찍는 건 예삿일이고 발해만에는 유빙이 언다. 그렇다고 해서 여름이 시원한 건 결코 아니다. 한반도 북부 지역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특히 차오양 시의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경우가 잦고 최고 43.3도까지 오른 적도 있다. 이러한 기후는 한반도 북부지방인 평안도, 황해도 정도 수준으로 한반도 중남부는 겨울에 그렇게까지 춥진 않은 편으로 인천광역시경기도 안산시황해 연안지역은 상대적으로 내륙보다 따뜻한 편이며 저 정도 온도는 강원도 영서지방인 홍천군, 춘천시, 철원군 정도다. 그리고 매우 건조해서 사실상 스텝기후에 가까운 모습으로 눈이 통 내리지 않으며 대기가 아주 건조하다.

요동 반도 또한 랴오닝 성에 포함되어 있는데 산동 반도 쪽으로 툭 튀어나온 그 반도 맞다. 물론 랴오닝 성은 반도가 아닌 내륙쪽 부분의 면적이 훨씬 더 크다.

주요 도시로는 요서에 위치한 진저우(錦州), 중부에 위치한 선양, 다롄, 잉커우(營口), 안산, 동부의 단둥 등이 있다.

이 중 단둥은 북한 국경지대로 신의주시와의 접경이기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이 실제로 많이 찾고 있는 곳인데,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스파이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위험한 편이다. 한국인일 경우 탈북하려는 북한 주민으로 오인받아 납북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이 점은 연해주의 하산이나 블라디보스토크, 자르비노 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국/러시아와 북한 접경도시들의 경우 여행유의 경보가 내려져 납북을 주의하도록 하고 있다.

4. 산업

중국에서 공업이 굉장히 발달한 지역이다. 이 곳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중공업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들이고 이들 공업 지대는 중국 제 1의 중화학 공업 지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첨단 산업은 남쪽의 따뜻한 대도시들 몫이고 이 곳은 첨단 산업 불모지. 중국 정부가 노력을 하긴 하는데 춥고 오지라서 아직 타 지역에 비해 진전이 느린 편이다. 흔히 말하는 유해 공업들이 밀집해 있다. 농업도 발달했는데 주로 밭농사로, 재배하는 것은 옥수수, 등. 여름에는 이 곳도 푹푹 찌기 때문에 구한말 진출한 조선인, 지금의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족들도 벼농사를 한다.

2017년 2월 랴오닝 성의 작년 GDP가 전년 대비 23% 감소하여 경제규모 조작이 드러났다대공황?. 중국 지방정부의 경제통계 상향조작 일면을 볼 수 있다.

5. 교통

북경한반도를 잇는 철도가 통과해 교통상 매우 중요하다. 북쪽 김씨 왕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 항상 이 곳을 지나갔다.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그 중요성은 가히 메가톤급. 이 곳을 통과해 러시아 치타에서 러시아 철도와 연결되며, 이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하여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된다.

한국 인천항에서 랴오닝성의 잉커우, 다롄, 단둥 등으로 가는 배편도 있다.

6. 역사

랴오허 강 즉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요서와 요동으로 나뉠 수 있는데, 시기별로 다르나 대체로 요서는 전통적으로 연나라, 공손찬 같은 한족계 세력이 지배했고 요동은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물론 여진족, 거란, 몽골인, 만주족 등 북방 이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요동은 거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중국 한족 왕조의 통치력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많아 랴오닝 성도 중국사에선 변방의 이미지가 강하다.[3] 한족 왕조가 강성할 때는 중국의 통치권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왕조가 쇠퇴하면 어김없이 변방민족의 통치 하에 들어간 지역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비롯해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의 나라들이 중국이 약해진 틈을 타 쫓아내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러다가 명나라가 원나라의 군벌 나하추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 중원 왕조의 영토가 되었으며, 훗날 만주족인 청나라가 이곳을 기반으로 중국을 지배하게 된다.

변방이긴 하지만, 한족 왕조들이 통일 이후 가장 먼저 눈독에 들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랴오닝 성 일대는 중원과 동/북방의 이민족[4]과의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교역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이민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제압할 수 있는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 중국 역사를 보면, 요동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 한족 통일왕조는 높은 확률로 이곳에서 일어난 이민족에 의해 정복/멸망 당했다.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요동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가 점거하고 있건 간에 중요 요충지로 취급을 받아서 끊임없이 보수되고 유지되어 왔다.

한 예로 명나라는 결국 요동을 만주족에 빼앗겨 망했으며, 이민족 뿐 아니라 제일 최근의 사례로는 국민당군이 공산당에 요동을 빼앗겨 결국 패퇴한 국공내전을 들 수 있다.

요동을 확실히 점유했던 한나라는 내부에서 무너졌을지언정 이민족에 의해 멸망하지는 않았고, 당나라도 결국 상실하긴 했지만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왕조의 가공할 국력을 이곳에 각인시켜서 발해를 조공체제내에 확실히 편입할수 있었고 이 덕에 최후까지 자멸했지 적어도 이민족에 의해 멸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동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말기 명나라, 말기 서진도 그렇고 아예 전혀 힘이 미치지 못했던 송나라를 보면 하나같이 이민족에게 큰 위협을 받거나 멸망당한다.

기간을 좀 더 뒤로 보면, 근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도 이 지역을 러시아일본에게 빼앗긴 이후에는 침략을 받으며 비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 중국 선양군구에는 상당한 전력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편 한국인에게 역시 매우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상 예맥인이라 불리는 고대 한국인들의 출발점이 이곳이었다.

한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이 형성된 곳은 세부적인 위치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오늘날 요령성에 위치했다고 보는게 통설이며, 제나라와의 무역으로 국력을 키워나갔다. 이후 3세기 초반경에 연나라에게 요동지역을 내주면서 수백년간 중국계 국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다가 선비족과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중국세력은 이후 한동안 이곳에 발붙이지 못한다.

선비족의 한 일파인 모용선비와 고구려가 이곳의 패권을 두고 다퉜는데, 결국 고구려가 승리하여 이곳을 차지하게 된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나당전쟁이 벌어져 신라군이 한 달간 압록강을 건너 여기에서 싸우기도 했고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도 벌어지지만 결국 이 지역 점유에는 실패했다.
698년 발해가 지금의 지린 성 지역에서 일어나고 동시에 대륙 반대편의 토번 등 이곳저곳에서 이민족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점차 이곳에 대한 당나라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잠깐 소고구려라는 나라를 만들지만, 당의 기미주로 있다가 안록산의 난 이후로 당나라는 이곳에 대한 영향력을 영구히 상실하고 결국 발해에 의해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러나 요나라에 의해 발해가 멸망하고, 잠깐 이후 흥료국이라는 발해 유민들의 반란이 일어났었었다

그 후 고려도 후기에 두차례 탈취를 시도하나[5] 1차에서 잠시 점령하였지만 지속적인 지원이 없어 영토로 하는 것엔 실패하였고 2차 공략에서는 아예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고 얼마 뒤 왕조가 멸망한다.

고려가 멸망하고 들어선 조선왕조 역시 태조 이성계 초기에는 명과의 관계 악화에 따라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정도전이 죽고 조명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흐지부지됐다.[6] 그 이후는 계속 한반도계 국가의 통치 밖에 있는 상황. 다만 요동 지역에 조선계 명나라 장수들이나 관료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나타난 것[7]으로 보아, 소수 한국인들이 적어도 명나라 시기까지는 요동에 살다가 이후 점차 한족이나 만주족, 몽골인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호란 때 몽골어, 만주어 실력을 무기로 행패를 부리던 매국노 정명수도 의주 관아의 관노였다 압록강을 건너 이 지역으로 도망친 후 계속해서 청인 행세를 했다.

명/청교체기 이후 청나라의 봉금정책에 의해 랴오닝 성 지역에서 더 이상 한국인들의 흔적은 사라졌고, 이후 일제강점기에나 다시 한국인들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주해오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피땀흘려 투쟁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 지역은 북한과 접경하며, 한국이나 해외에서 북한선교에 나서는 선교사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다.

7. 관내 주요 도시

8. 출신인물

9. 기타

  • 중국의 모든 외국에 대한 사건은 랴오닝성 관할이다. 중국도 한국처럼 형사사건은 장소주의를 채택한다. 범죄가 일어난 장소에서만 재판을 여는 식. 그러나 국외범 및 범죄인 인도 심사(재판)는 한국처럼(한국은 서울고등법원 관할) 범죄인 인도 및 국외범 관할 장소가 정해져 있고 그 위치가 바로 랴오닝 성이다. 즉 중국의 모든 자국민 국외범 재판은 랴오닝 성의 중급인민법원 및 고급인민법원에서 재판[8]을 하게 되어 있으며, 중국에서 검거되어 외국으로 인도되는 외국인 범죄인도 랴오닝성 중급인민법원과 고급인민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게 되며, 이후 중국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서 해외로 인도한다.[9]
  • 2016년에 인민대표대회 대표들이 부정선거에 연루돼 무더기로 자격 박탈된 사건이 당국의 보복성 조사로 촉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 중생대 동물 화석으로도 유명하며, 1990년대부터 여러 깃털 공룡화석의 발견으로 많이 주목받는 화석지가 있기도 하다.
  • 중국 최초의 항모랴오닝급은 이 지역에서 이름을 따왔다.
  • 북한의 북극성-2형이 발사될 당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과 랴오둥(遼東)반도가 뚜렷이 보이며 중국에 대한 경고 및 위협을 하였다.기사1기사2

[1] 멀 료(遼)와 편안할 녕(寧)을 쓰지만, 한국어에 존재하는 활음조 현상의 영향을 받아 표준어에서는 요령성으로 발음한다. 그외 사례로는 경남 의령군, 함북 회령시 등이 있다. # 반면 북한 문화어연변 조선말에서는 두음법칙과 속음현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료녕성'이라고 표기한다. 근데 북쪽에서도 회령은 또 회령이라 하드만[2] 정작 만주족의 조상인 숙신이 유래한 헤이룽장 성은 인구의 96%이 한족이고 다음이 몽골인이다.[3] 그나마 동북 3성 중 랴오닝 성의 경우 한족 왕조의 입김이 강하게 미쳤지만 이름부터 만주어 지린우라에서 비록한 지린 성이나 대놓고 후룬부이르가 북원의 수도였던 헤이룽장 성 쪽으로 넘어가면 얄짤없다.[4] 중국에겐 한반도계 국가들도 이민족이니 포함한다.[5] 사실 초기에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에서 서희가 ‘요나라와 소통할 수 있는 육로만 보장해주면 수교하겠다’는 구실로 많고 많은 육로 중에서 굳이 콕 집어서 얻어낸 강동 6주가 바로 한반도에서 요동 지방으로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으면서도 요새화를 통해 안전하게 수비할 수 있는 육로였다. 즉 고려 초기에도 요령으로의 진출을 끊임없이 모색했었다는 증거. 즉 서희는 고려라는 나라 전체의 성문을 건설한 것이다. 후일 고려가 축조하는 천리장성도 정확하게 강동 6주만 제외하고 다른 지역들을 틀어막는 구조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 한 예로 함경도 북부 쪽은 여진족이 차지하게 그냥 놔뒀고 후대 지도에서도 백두산 일대는 여진 내진 생여진이라고 표기된다..[6] 훗날 명나라가 멸망하고 여진족 청나라가 들어선 뒤, 효종 시절에 북벌론이 일어났고 숙종 시절에 윤휴 등의 남인계 인사들에 의해서 북벌론이 다시 제기되기도 하였다.[7] 요동총병 이성량과 임진왜란 당시 명군 장수 이여송이 대표적으로 유명하다.[8] 중국은 형사사건 및 범죄인 인도 재판이 2심제도이다.[9] 랴오닝성 범죄인 인도 재판의 예시로 한국인 여성들을 상대로 마약을 운반하게 시킨 프랭크 오비하 친두가 있다. 프랭크 오비하 친두는 중국에서 검거되어 랴오닝성 고급인민법원에서 한국으로 인도하도록 판결을 받았고 한국에서 무기징역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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