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5 10:17:01

정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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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리웨이펑 112회 1998.11.22 2011.11.15
2 가오린 109회 2005.7.31 2019.1.24
3 정즈 108회 2002.12.7 2019.11.14
4 장린펑 107회 2009.12.30 2024.3.21
5 판즈이 106회 1992.8.22 2002.6.4
하오하이둥 1992.8.22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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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FC
广州足球俱乐部
파일:20200725134553_2915.jpg
<colbgcolor=#be0019><colcolor=#fec600> 이름 정즈
鄭智 | Zhèng Zhì
출생 1980년 8월 20일 ([age(1980-08-20)]세)
랴오닝성 선양
국적
[[중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73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be0019><colcolor=#fec600> 선수 선전 루비 (2001~2004)
산둥 루넝 타이산 (2005~2007)
찰턴 애슬레틱 FC (2007 / 임대)
찰턴 애슬레틱 FC (2007~2009)
셀틱 FC (2009~2010)
광저우 헝다/광저우 FC (2010~2021)
감독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9 / 선수 겸 감독 대행)
광저우 FC (2021 / 선수 겸 총감독)[1]
광저우 FC (2022)
행정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20 / 단장)[2]
국가대표 109경기 15골 (중국 / 2002~202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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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쑨지하이, 판즈이와 더불어 중국 출신 중 몇 안 되는 성공한 유럽 리그 선수 경력을 가진 선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001년 선전 루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2004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선전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는 데 일조하였으며, 시즌 후 산둥 루넝으로 이적한다. 이적 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던 중 2006년 겨울에 프리미어리그 찰튼 애슬레틱 FC로 임대 영입되어 리그 12경기에서 1골을 기록한다.[3] 그러나 찰튼 애슬레틱 FC는 결국 강등당했고, 정즈는 이후 다시 산둥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찰튼에서 정즈의 활약을 나름 높이 샀는지, 2007년 8월에 찰튼 애슬레틱 FC로 완전히 이적하게 된다. 2009년까지 찰튼에서 리그와 컵대회 등을 포함해 총 58경기에 출전, 10골을 넣었다. 2008/09 시즌 후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 FC로 이적해 1시즌 동안 뛴 뒤, 2010년 광저우로 이적하였다. 광저우 이적 후 몇 년 동안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16년 들어 부쩍 노쇠화된 기미를 보이며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2021 시즌을 끝으로 구단의 재정난을 이유로 광저우와 계약을 해지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2년 12월 7일,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으며, 2004년 고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결승 일본전에서 석패하며 준우승을 경험했다.

2006년 6월 7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리버풀 FC지브릴 시세에게 살인태클을 걸어 다리를 부러뜨린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시세의 팬들은 정즈라면 치를 떨게 되었다. 이 부상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시세가 앞으로 활약했어야 하는 팀인 리버풀에서 방출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23세 이하 대표팀의 주장으로 나섰다. 가오훙보 감독이 부임한 때부터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나서고 있으며, 중국 공격 전개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1차전인 대한민국전에서 전반 21분에 자책골을 넣었다.

2018년 6월 2일, 태국과의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에 출장하였다.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다. 무려 38세(...)의 나이로. 이게 심각한 게, 38세는 좀 오래 버틸 수 있는 골키퍼 포지션이라도 슬슬 선수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시기이다.[4][5] 예외가 있다면 미로슬라프 클로제 정도인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36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이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고, 호나우두의 월드컵 최다 골 기록을 경신까지 했다. 하지만 정즈는 클로제 같은 전설적인 수준에는 비비지도 못하고, 찰튼과 셀틱 같은 외국 클럽에서 뛴 경력이 있다지만 다 2010년 이전의 경력이며, 특히나 중국 리그에서도 2016 시즌 이후로는 급격히 노쇠화된 폼을 보여주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진작에 은퇴를 해야할 이런 선수까지 리피가 굳이 불러와야 했다는 점에서, 중국 축구 선수 신예들의 폼이 상상 이상으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하며, 세대 교체는 암담한 수준으로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6]

하지만 리피가 원래 노장을 중용하는 성향도 있고[7], 특히 광저우 헝다에서 자신의 지도를 받았던 애제자들을 주전으로 쓴 것을 보면 후임 감독이 어떤 선수를 뽑는지 두고 봐야 결론을 낼 수 있을 듯.

3. 지도자 경력

2019년 10월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기업 문화 연수를 이유로 잠시 자리를 비우면서 광저우의 감독 대행직을 맡게 되었다.
#

칸나바로의 경질이 유력해 보였으나 의외로 칸나바로는 A매치후 복귀했고, "모기업 문화 연수"가 효과가 있었음인지 이후 2연승으로 광저우는 슈퍼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20시즌 광저우가 ACL에 탈락하자 구단의 단장으로 선임되었지만 두달도 안 돼서 물러났다.#

2021년 광저우 구단 모기업이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칸나바로 감독이 팀을 떠나자 팀의 감독 대행직에 다시 한번 올랐다.#

2021년 12월에는 선수 겸 총감독으로 등록이 되었다.

라이센스 문제로 리즈위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다시 선임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정즈가 감독 역할도 수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인하여 계약해지되면서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4. 여담

  • 원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라 라이트백이었다. 하지만 그의 은사라 할 수 있는 감독을 만나서 포지션이 지금처럼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이 되었다.
  • 2006년 지브릴 시세에게 살인 태클을 가해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려 독일 월드컵에 불참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세는 이 부상이 화근이 되어 소속팀인 리버풀에서 방출되기까지 했다.
  • 찰튼과 셀틱에서 활약한 덕분인지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쑨지하이, 리웨이펑[8] 함께 실력을 갖춘 중국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쑨지하이가 중국 선수 중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이긴 하지만, 정즈도 EPL에서 나름 활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EPL의 중국 축구선수라고 하면 "유니폼팔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선수를 두웨이, 둥팡줘, 하오하이둥과 같은 부류에 넣는건 실례다.
  • 워낙 리더십이 있고 인품이 훌륭해서 따르는 후배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팀동료 김영권과도 매우 호흡이 잘 맞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월드컵에 나가는 김영권을 응원해 주기도 했다.


[1] 선수 겸임으로 실질적인 감독 역할 수행[2] 48일 만에 내려왔다[3] 데뷔전이 맨유 원정경기였는데 그 경기에서 박지성이 결승골을 터뜨렸다.[4] 당장 같은 시기 대한민국 주장이었던 기성용이 당시 겨우 30세였으며, 심지어 기성용은 이 대회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물론 이 분이 분도 남아있지만[5] 단지 2018년 기준 40세인 잔루이지 부폰이 특이 케이스다.부폰은 축구 역사를 통들어봐도 손꼽히는 괴물이고...[6] 정즈뿐만 아니라 2010년 무렵 샬케에서 뛴 경력이 있는 하오쥔민이나 비슷한 무렵 전북에서 뛴 경력이 있는 펑샤오팅, 광저우 헝다의 전성기를 연 가오린 등의 선수가 각각 32~34세의 나이로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7] 특히 2006, 2010년 이탈리아 대표팀을 보면 대부분 노장이다. 심지어 지금 광저우 감독인 칸나바로도 2010년 월드컵 맴버였다.[8] 에버튼 경력은 짧고 한때 평판이 안좋았지만 수원에서 2년 활약 덕택에 실력과 평판이 많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