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6:43:27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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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국가주석
习近平
시진핑
파일:시진핑.png
이름 习近平 / 習近平
한국 한자음 : 습근평[1][2]
출생 1953년 6월 15일 ([age(1953-06-15)]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3]
국적 중화인민공화국 파일:중국 국기.png
신체 180cm, 100kg
가족 부친 : 시중쉰(习仲勋)[4]
모친 : 치신(齐心)[5]
본처 : 커링링(柯玲玲) (이혼) [6]
후처 : 펑리위안(彭丽媛)[7]
딸 : 시밍쩌(习明泽)[8]
종교 무종교 (무신론)
학력 칭화대학 화공과 학사
칭화대학 대학원 법학과 박사
정당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주석
임기 2013년 3월 14일 - 현직
중국 공산당 제9대 중앙위원회 총서기
임기 2012년 11월 15일 - 현직
중국 공산당 제6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임기 2012년 11월 15일 - 현직
중화인민공화국 제9대 부주석
임기 2008년 3월 15일 - 2013년 3월 14일

1. 개요2. 정치력 평가3. 생애4. 집권5. 임기 중 행보6. 비판
6.1. 경제성장률 하락6.2. 1인 독재
6.2.1. 종신 집권 추구6.2.2. 비판 차단
6.3. 우상화
6.3.1. 영화, 영상물6.3.2. 문학6.3.3. 게임, 앱6.3.4. 흉상, 초상6.3.5. 종교 공작6.3.6. 충성 맹세6.3.7. 찬양가
6.3.7.1. 목록
6.3.8. 기타
6.4. 측근 비리에 대한 관대함6.5. 외교, 민족 문제의 악화
6.5.1. 팽창주의6.5.2. 소수 민족 탄압6.5.3. 특별행정구 간섭6.5.4. 양안관계6.5.5. 유엔 제재 무력화
6.6. 중화사상한국 역사 논란
7. 저서8. 필모그래피9. 어록10. 기타11. 관련문서

1. 개요

중국의 제6대 군 통수권자(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자 독재자. 제7대 국가주석이자 제5대 중국 공산당 총서기이며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인 독재, 종신집권을 위하여 명목상의 반부패 정책을[9]을 추진한 한편, 북한이나 과거 왕정시대에서나 볼법한 대대적인 개인 우상화 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인 덕분에 대중적인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데 성공하여 중국에서는 시다다(习大大: 시씨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10] 현재까지 내부 지지는 탄탄한 편이다.[11]

그리고 설마설마했던 2018년, 결국 국가주석의 임기 철폐 개헌으로 사실상의 종신 집권을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마오쩌둥 이후의 지도자들이 자제하던 1인 독재, 개인 우상화 체제를 부활시켰고, 더불어 그나마 숨통 트일 정도만큼은 있었던 중국의 사회적 자유화 수준을 급격히 하락시켰다. 또한 편협함과 음험함이 역대 중국 지도자 중 최악이라서 자신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시진핑을 비판한 일반 국민, 학자, 명사들이 은밀히, 혹은 실시간으로 체포,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시진핑 치하의 중국이 북한을 닮아간다며 자신들의 조국을 서조선(西朝鮮; 시차오셴)이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을 정도.[12]

중국블라디미르 푸틴[13],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명목상으론 민주주의 국가라 야당도 있고 대선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밟아야 최고 권좌에 오를 수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달리,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가 합법화 되어 있는 중국의 시진핑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독재 자체가 중국 헌법과 공산당 당헌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본인의 권력 행사에 별다른 우회 수단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2. 정치력 평가

  • 도올 김용옥은 한때 시진핑을 푸젠성 위 부서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 후보 위원 150명 중에서 151등의 꼴찌였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당 총서기가 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찬양했는데, 그건 그냥 당시 당 간부들이 특채해서 중앙위 후보 위원이 됐기 때문에 서열상 꼴찌였을 뿐이다. 원래 관례상 150명만 뽑는 중앙위 후보 위원 자리에 당 고위 간부들이 시진핑을 억지로 밀어넣어서 151위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원로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은 불문가지. 애초에 태자당 출신에 당 고위 간부들의 배후 지원까지 받는 중앙 후보 위원이면 승승장구하는 세습 엘리트의 전형이지 핸디캡을 논할 계제가 아니다. 한때 중국의 축복으로까지 찬양하던 김용옥은 시진핑이 종신 집권을 추구하는 걸 보며 자신의 안목이 틀렸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 시진핑이 당시에 대권 후보로는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후진타오 시대에 태자당의 선두주자였던 보시라이가 무리수를 범하다가 몰락하지 않았다면 시진핑은 절대 대권 주자로 발돋움할 수 없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잘해봐야 말석으로나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대권을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사실 총서기가 된 것은 몸을 낮춰서 된 것이지만 총서기가 된 이후 절대 권력자가 된 것에는 시진핑의 정치력을 인정해야 한다. 총서기가 된 2012년에는 사람들은 그가 강력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청단이나 상하이방 계파 소속이 아니라서 2012년 당시에는 자기 세력이 없었고 온화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몸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아 당내 계파들의 타협으로 총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보시라이와 같은 태자당이지만 시진핑은 그 같은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지도자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니까 원래 금수저인 시진핑이 당 고위 간부에 진입하는 것은 쉬웠어도, 당 최고위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공산당 내부의 살벌한 경쟁을 뚫어야 하며, 이것을 뚫고 대권을 장악한 것은 아버지 덕이 아니라 본인이 이뤄낸 것이다. 물론 보시라이의 자폭과 파벌간 타협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운이 따랐음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 공산당 서열 2위이자 국무원의 총리인 리커창은 사실 성격이 호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진핑은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색무취하고 안정지향적으로 보였다. 계파의 타협을 통해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집단지도체제의 허수아비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임자였던 후진타오도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덩샤오핑이 죽기 전에 장쩌민의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다는 정통성이 있었고 공청단이라는 지지 세력이 있었다. 그런 스토리와 뒷배경이 없었던 시진핑은 약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 2011년~2012년 당시 기사들을 보면 시진핑은 "조심스럽다" "튀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위키리크스에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자들로부터 지도력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총서기 취임 이후에도 반부패 운동 초기에는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시적인 백일 엄포로 고위직은 무사할 것'이라는 과소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성격까지 숨기며 몸을 낮추던 시진핑은 총서기 취임 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내 생각에 나와 당신은 성격이 닮았다"고 말하며 절대 권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패한 인사는) 호랑이든 파리든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을 펴기 시작해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숙청해 나가며 반대 세력을 일소시켰다.[14] 그리고 마침내 2018년 3월 11일에는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직은 세 번 이상 맡을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여 종신 집권으로 가는 문까지 열어버렸다. 그리고 역대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에 태어난 인물이기도 하다.[15]

3. 생애

파일:Xi_Jinping,_Xi_Yuanping_and_Xi_Zhongxun_in_1958.jpg
5살 때 찍은 사진. 좌측 인물.

1953년(중화인민공화국 5년) 베이징에서, 혁명 원로로 부총리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원래 섬서성의 토착 공산주의자로 류즈단(劉志丹, 1903.10.4 - 1936.4.14)[16]과 함께 해방구를 건설했는데, 중국 최남단에 있던 장시 소비에트국민당군의 공격으로 붕괴하면서 공산당 지도부가 대장정으로 섬서성으로 피신해오자, 시중쉰은 혁명의 새로운 근거지를 건설했다는 공로로 일약 당고위직에 진입한다.

시중쉰은 동료 공산당원 하오밍주(郝明珠)와 결혼했다가 1남 2녀를 낳고 1943년 이혼을 하고, 1944년 치심(齐心)과 재혼했다. 시중쉰은 치신과 2남 2녀를 두는데, 시진핑은 그중 셋째이다. 그러니까 총 3남 4녀중에서 6번째 자녀이다.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17]에서 시중쉰이 펑더화이[18]파로 몰려서 반당(反黨) 집단의 낙인이 찍혀 오지로 귀양갔고, 당연히 초등학생였던 9살짜리 시진핑도 아버지를 따라 산시 성 시골로 하방(추방)되어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 당시 시진핑이 토굴에서 7년간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어렵게 산 건 사실이다. 아버지가 실각해서 평민이 되었는데다가,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아버지가 마오에게 대약진운동에 대해 항의하다가 실각해서 대역죄인으로 찍힌 펑더화이의 부하에다가 반동을 미화한 소설을 펴낸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박해를 받았다. 이 때, '''아버지가 전처와 낳은 이복 맏누나 시허핑(习和平)은 이때 "반동의 딸"로 홍위병에게 두들겨 맞다가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시진핑도 이 당시 상당히 힘든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FPQc-fykcpru8013304.jpg
1973년 당시. 왼쪽에서 2번째 인물

소싯적부터 리더십이 있었는지 하방 당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최고의 생산량을 올렸다고 한다.[19] 아버지가 반동으로 찍혔기 때문에 입당 신청을 했으나, 여러 번 퇴짜를 맞다가 문화대혁명이 완화된 1973년에야 겨우 입당했다. 이어 베이징으로 올라와 1975년 칭화대학의 화공과에 입학했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화궈펑이 정권을 잡고, 중앙군사위 주석, 당 총서기, 국무원 총리 세자리를 모두 장악했지만, 화궈펑은 리더쉽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국 1979년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실각했고, 실권은 부총리이자 인민정치협상위원회(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全国委员会)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장악했다. 덩샤오핑은 부총리던 1978년 1962년 이래 16년간 죽 야인으로 지냈던 시중쉰을 정계로 복귀시켰고, 시중쉰은 1970년대 말부터 당고위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즈음 대학을 졸업하게된 시진핑도 당당히 태자당에 진입하게 되었다.

대학졸업 3년후인 1982년부터 허베이성의 정딩현의 당부서기를 맡는 것을 시작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이후 허베이성을 거쳤다가 1990년대부터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보이는 남부로 전직했다. 그리하여 푸젠 성, 저장 성 등 동남부 지방 정부에서 지냈는데, 2007년 상하이 시 당위서기를 지내면서 장쩌민주룽지의 파벌인 상하이방과도 관계를 맺게 되어 태자당상하이방 양쪽의 후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 직에 올랐다. 하지만 이때까지 보시라이와 리커창에 비해 외국에 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도 그가 중국의 주석에 오를 것으로 미리부터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부주석을 지냈던 쩡칭훙 외에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지지와 후원 모두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주석 겸 정협의장으로 있다가 2010년에 당 중앙 군사위 부주석 직에 오르면서 후진타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공인되었다.

영국 주재 대사의 딸이었던 첫 아내와는 성격 차이로 이혼했고, 재혼한 현 부인 펑리위안중국 인민해방군 예술단 소속의 가수[20]로 중국의 국민 가수로 불리는 사람인데, 펑리위안의 인기도 시진핑의 권력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

4. 집권

전임인 후진타오 주석은, 전전임인 장쩌민이 자기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바람에 5년 동안 반 쪽 짜리 권력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3년 중국 공산당 제18회 당 대회 때 후진타오로부터 당 총서기와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 자리를 동시에 이양받았고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국가 주석 임기가 끝나면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 주석 직도 승계하였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2013년 3월 14일부터 별 일이 없는 한 2018년 3월 14일의 연임을 거쳐서 2023년 3월 14일까지 중국과 중국 공산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사실 시진핑이 국가 주석에 오른 이면엔 장쩌민후진타오의 권력 암투가 있었다. 장쩌민은 후임인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승계하지 않고 그를 일종의 꼭두각시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이 둘은 물밑에서 박터지게 싸웠는데 이런 암투 끝에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것. 장쩌민 입장에서는 태자당이야 어차피 자기 측근 쩡칭훙이 있으니까, 시진핑 역시 자기 사람이나 마찬가지고 후진타오 입장에서도 공청단 소속이 태자당에도 소속되는 등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인원들이 나름대로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진핑도 장쩌민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후진타오와 손을 잡고 장쩌민에 대항했고, 이게 현재 반부패를 핑계로 한 상하이방 대규모 숙청의 원인이 된다. 원래 장쩌민이 차기 주석으로 삼으려던 인물은 천량위였고 천량위가 실각한 이후 보시라이가 뜨자 보시라이를 주석으로 삼으려고 했다.

5. 임기 중 행보

분류:시진핑 시대를 참고하면 좋다.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부작용이 확대하는 것을 감안, 개혁으로 국가 동선을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부정부패를 감시, 처단하는데 힘을 쏟고, 역시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빈부격차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장과 복지에 모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중국 국내에서 2000년대 후반기부터 문제시 되어오던 한 자녀 정책은 시진핑 시대를 기점으로 폐지되었다.

1%의 국영 기업이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듯하다. 하지만 중국 내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의 복합적인 이익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사회적 혼란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정치와 법 분야의 개혁은 안정적인 기조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 기업의 몫이 늘어나겠지만, 전면적으로 정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권한이 집중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임기 초반부터 개방 개혁을 우선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이에 대해 보수 세력[21]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던 것 같다. 그가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찾기보다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데 의구심을 표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마오쩌둥 기념식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정책을 실행해나가는 상황이며 계획생육정책의 골자인 한 자녀 정책을, 부모 중 한 쪽이 한 자녀일 경우 둘째까지 허용하는 방침이 그 중 하나이다. 노동 교화소 폐지도 정책으로 실행된다고 하였는데, 정식으로 폐지되었는지 아직 확인되진 않았다. 대대적으로 출범한 전면 심화 개혁 영도 소조 조장도 직접 맡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내외 현안 전반에 걸쳐 추진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중국 공산당 독재 체제에 대한 변화를 근본적으로 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고, 미국과 똑같은 민주 정치 제도의 시행에는 부정적이며, 이 점에서는 여태까지의 다른 중국 권력자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2013년 8월 뉴욕타임스 기사.

파일:/image/023/2016/04/22/2016042200246_0_99_20160422080128.jpg

2016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 구조를 대규모로 개편한 데 이어, 2016년 4월에는 '중앙군사위 연합 지휘 중심 총지휘'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 군사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뺨 때리는 거 아니다.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추가하였다. 사실상 덩샤오핑 이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온 집단지도체제를 종식하고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게다가 헌법 개정안을 사실상 공개투표로 통과시킨 것이 알려졌다.관련기사 1인독재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의식한 것인지 개헌 직후의 연설에서 "이 개헌은 개인의 공명을 위한것이 아니며, 인민들의 평판과 역사의 앙금이 가신 뒤 진정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하며 개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상적으로는 제2의 마오쩌둥보다는 제2의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향하는 듯하다. 분명 중국의 천자... 아니 국가주석임에도 마오쩌둥이 아니라 칼 마르크스블라디미르 레닌을 중점적으로 띄우고, 마오쩌둥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을 계승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산당 당원들에게 마오쩌둥 사상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학습할 것을 권하고, 18년 5월엔 마르크스 탄신 200주년 기념식을 열어서 "10월 혁명은 오늘날의 중국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상 중국판 주체사상이나 다를 바 없고 무엇보다도 경제개발이 진척되어 생산력이 충분히 성장한 중국의 현실에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마오주의와는 다소 거리를 두면서 소련식 스탈린주의 개발독재 쪽으로 가려고 하는 듯하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시절에는 없었던 일련의 행보들을 보면 중국을 제 2의 소련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러한 노선은 덩샤오핑 이전의 마오주의 노선이나,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집권기의 사회주의적 정체성이 옅은 개발독재 노선 모두와 비교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6월 들어서 홍콩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면서 시진핑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시진핑이 자기 하수인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시켜서 홍콩인을 중국에서 처벌하는 범죄인 송환법을 만들려고 했다가, 홍콩 국내의 거센 반발 뿐 아니라 세계적인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혈맹인 북한, 우방인 러시아까지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때와 달리 중국의 입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침묵 상황"만 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이 궁지에 몰렸다. 2019년 7월 1일 영국 가디언은 이번 홍콩 시위가, 중국 공산당의 1인자가 된 후 권력욕을 드러내며 독재를 강화해 온 시진핑독재정치에 개인적으로 거센 도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기사

5.1. 외교

5.1.1. 서방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일 때 멕시코를 방문하여
中国一不输出革命、二不输出饥饿和贫困、三不去折腾你们、还有什么好说的。
우리는 혁명을 수출한 적이 없고 배고픔을 수출한 적도 없으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가한 서방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30년을 지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수위를 높여오자 이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대충 방식을 보여준 셈이다.

제18회 당 대회에서 취임 기자회견 이후 중화 문화의 부흥에 대해서 강조했고, 채택된 내부 정치 보고 문안에서는 "국제적 위치에 맞고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고 명시함으로써 태평양 지역에서 이제는 미국,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 국가 안보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피력하였다.[22]

5.1.2.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버락 오바마가 아시아 쪽에 대한 외교에서 시진핑과 충돌은 하면서도 서로 직접 비난은 자제했다. 그러나 자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완전히 사이가 냉각된 상태가 됐다.

시진핑은 트럼프한테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파일:손빼라.gif
소국이 대국을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본인이 아예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진이 이 움짤. 2017년 한겨울에 미-중 정상회담을 하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으로, 자금성을 관람하던 중 중국의 수장인 시진핑이 트럼프가 눈치를 주자 바로 차렷자세로 바지에서 손을 빼는 장면이다. 그 후 시진핑의 떨떠름한 표정은 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시진핑에게는 자국, 즉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해서 저런 장면을 만들어낸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싶겠지만, 트럼프가 중국에 찾아왔는데 호스트인 시진핑이 게스트인 트럼프의 눈치를 보고 바지에서 손을 뺀 것누가봐도 명백한 저자세 외교이다.[23]

위의 주머니 사건은 기사로도 났다.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에서도 시진핑은 트럼프의 공세가 들어올 때마다 제한적으로 보복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고 적극적인 대응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2018년 11월 1일 시진핑이 트럼프한테 먼저 전화를 걸어서 "무역 갈등 원치 않는다."며 먼저 숙이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하지만 시진핑과 트럼프의 자존심 싸움 자체는 2019년인 현재에서도 ing 형태인데 미국 측에서 화웨이 관련 논란 등의 사안으로 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진핑도 희토류 수출 제한 및 미국산 대두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며 반격을 시도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자초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24]. 최근 6월 초 있었던 러시아 방문 과정에서 시진핑이 트럼프를 "내 친구" 라 지칭한 것으로 보아 2018년과 똑같은 흐름을 타리라 전망되고 있다.

2019년 6월 28일, 시진핑이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텍스 오사카를 찾아갔다. 그리고 미국중국은 정상회담 시작 전부터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 앞서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주재한 "디지털 경제 규칙 만들기" 세션에 트럼프와 시진핑이 모두 참가했다. 여기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황금방패 인터넷 검열을 거론하며 중국을 비난하고, 시진핑 주석은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 따른 화웨이 제재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는 거친 설전이 오갔다. 기사

5.1.3. 일본

아베 신조와 시진핑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본 민주당 정권 시절 중일 양국이 희토류 무역 분쟁을 빚는 등 최악의 관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아베 역시 미일관계에서 미일동맹을 강조하며 반중, 친대만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등 여러가지로 시진핑 입장에서 아베의 일본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중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상황을 바꿨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계속된 통상 압박을 받자 그 돌파구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다. 대가로 시진핑은 엄청난 대일 저자세 외교도 불사했다. 밑에도 나오지만 2018년 10월 26일 시진핑이 아베를 초청해서 한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 제목을 일본과 중국의 2018년 베이징 공동선언이라고 할 정도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전격적으로 일본을 앞에 써줄 정도로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2018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왕치산 부주석 등이 아베 신조를 초청하였다. 기사1 기사2 전격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고, 중-일간 무역분쟁은 빠른 시일 내에 타협, 그리고 미국의 자유무역 지대 복귀를 공동으로 촉구하는 등 중일관계가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2018년 10월 23일10월 26일 발표된 일-중 베이징 공동선언[25]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전면 참여 허용, 중국-일본 공동 인프라 투자펀드 1조 달러 어치 창설, 한화 20조원에 상당하는 기업협력, 중국인민은행일본은행기존의 10배인 한화 35조원 상당(3조 4000억 엔)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에 중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등 급속도로 중일관계가 화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중일관계가 화해를 보이는 것도 잠시였다.

2019년 6월 28일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 1일차에서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중일 정상회담이 있었다. 여기서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은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해 시진핑과 회담을 했다. 중일정상회담에서 아베는 시진핑한테 "홍콩에서 발생한 시위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주석한테 "일국양제 제도 아래에서 홍콩이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번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유와 인권, 법에 의한 통치와 다른 보편적인 가치들을 보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고 밝혔다. 기사 G20 오사카 정상회의 주관국인 일본이 공개적으로 중국한테 홍콩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5.1.4. 북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 보유[26]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단호하고 국제적인 규범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천명하였지만 북한의 동향이 줄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므로 북한에 대한 전통적인 외교 경제적인 후견인 역할이 어느 면에서 한국과 안정적으로 공조가 이루어져 변화하고 조정될 수 있는지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진핑은 예전에 "항미원조전쟁은 조선을 도운 중국의 정의로운 전쟁" 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북한 제재를 조이고 있다. #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방중했다. 시진핑은 중국 건국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와 높은 수준의 의전[27]으로 김정은을 맞이했다. 외신에서는 이 의전을 두고 황제급 의전이라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리설주가 동행했으며 최룡해·박광호·리수용·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및 리용호 외무상 등이 수행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를 이야기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 "韓美, 단계적 조치하면 비핵화"…시진핑과 한반도 대화

시진핑이 김정은을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했고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상호 이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남북정상회담 이후 차이나 패싱이 나오자 다롄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미정상회담 끝난지 일주일만에 또다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청하여 3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3개월 사이 북중 정상이 세번이나 만난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2019년 1월 7일,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일시와 장소 발표를 앞두고 김정은을 또다시 베이징으로 전격 초청하였다.#

2019년 6월 19일, 방북을 하루 앞두고 <중조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아로새기자>라는 제목으로 북한 로동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방안으로 ① 전략적 소통·교류 강화 ② 친선 왕래·실무적인 협조 강화 ③ 대화·조율·협조 강화 등 3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 그리고 20일~6월 21일 김정은의 초빙으로, 국가 주석 취임 이래로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

5.1.5. 대한민국 - 한중관계

주석 등극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고, 박준영전라남도 지사, 새누리당정몽준 전 의원, 국민의당손학규 고문,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포스코 정준양 회장 등 한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깊어 지한파로 알려져 있으며, 예전 중국의 지도자들에 비해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한 점이 작용했는지 2014년 7월 3일 대한민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중국과의 수교 이후 처음으로 최고 지도자가 혈맹국인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박근혜 역시 한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반적으로 미국을 처음 방문하고, 그 다음에 일본을 방문하는 관례를 깨고 미국 방문 이후 중국을 먼저 방문하였다.

한편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 "일본에 우호적인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악화된 한일관계를 개선할 대통령으로 알려졌으나, 임기 내 계속된 한중관계의 강화로 박근혜가 졸지에 반일 지도자로 제대로 각인되었다.(...) 한국 내의 친미/친서방 성향의 인사들도 지나친 친중 외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에서 시진핑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아베 총리에게 보여준 표정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사뭇 달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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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THAAD 한반도 배치에 크게 반발하여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줄곧 우호적이었던 외교 관계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이해찬 특사를 만났을 때, 본인은 상석에 앉고 이해찬 특사는 그 주위에 앉게 해서 결례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2017년 여름 북한 문제로 한미일과 대립하자, 급기야 "인민군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승리했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방중했고 그 사실을 한국 정부에 미리 통지를 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돌아간 즉시 바로 양제츠 정치국 위원을 한국에 특사로 파견했다.

5.1.6.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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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7일 마잉주 대만('중화민국')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에 대만-중국 간의 정상회담이 66년 만에 싱가포르에서 진행되었다. "중화민국 총통"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한 사례가 되었다. 기사

하지만 2016년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회의적인 민주진보당차이잉원총통으로 당선되어 사이가 급격히 냉각되어있다.

2018년 8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 형식으로 차이잉원 총통이 NASA를 방문했다. 대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잉원한테 초청장을 보냈기때문에 중국에서는 당연히 하나의 중국 위반, 시진핑도 가본 적 없는 NASA를 차이잉원한테 보여주다니!! 등등으로 방방 뛰고 있다. 그래서 2018년 8월 21일 전격적으로 엘살바도르중화민국과 단교시키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이로써 대만의 수교국이 17개국으로 하나 더 줄게 됐다. 그러나 정말 대놓고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잉원한테 NASA 초청장까지 써줄 정도라 조만간(2018년-2019년 경) 미국과 대만이 정상회담 하는 것 아니냐는 설까지 돌고 있다.

2019년부터 대만에 대한 강경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이 대만의 반중을 자극하는 바람에 차이잉원 지지를 높여주는 꼴을 보여주고 있다.

5.1.7. 러시아

러시아와는 잘 맞는 듯 잘 맞지 않지만 잘 맞는 것 같은 관계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서로 훈장을 수여하는 등 양국이 미국에 대한 견제를 같이 하려고 시도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도 서로 군사력 부분에서도 겨우 한 계단 차이가 나고 영토도 딱 붙어있어서 겉으로만 우호적일 뿐 내부적으로는 미국 못지 않게 서로 견제 중이다. 자세한 부분은 중러관계 참고.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관계다.

6. 비판

6.1. 경제성장률 하락

시진핑이 총서기가 되기 전인 2011년만 해도 중국의 성장률은 9.5%였으나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2012년 7.9%로 하락하였고 2014년에는 7.3%, 2015년에는 6.9%, 2018년에는 6.6%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에는 중국 성장률이 20년 이상 10%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에 시진핑 정권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단순히 중국 경제 규모가 커져서 불가피하다고만 볼 수는 없고 이렇게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한 원인은 시진핑의 경제적 무능도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현재 중국 성장률도 정부가 고의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08년 세계 금용위기 여파와 세계적으로 경기 침제로 수출을 크게 의존하는 중국이 타격을 입는 것과 시진핑 집권 전에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을 해결되기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책임이 적다고 할 수 없다.

6.2. 1인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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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석, 마오쩌둥을 흉내내다 - 타임 중국에 새로 재림한 천자 - 이코노미스트[29][30]
나는 호랑이든, 파리 새끼든 다 때려잡을 겁니다.

보시라이 숙청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나가며 권력을 강화시켜 가고 있다.# #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마저 부패 및 국가 반역 시도 혐의로 처벌 수순에 오르면서 # 시진핑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점점 줄고 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반대 세력이 건재해서 저우융캉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는 걸로 최악을 피할 수 있었다.[31]

단순히 정적 제거 뿐 아니라, 마오쩌둥 이후로는 전례 없는 지도자 선전 등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1인 절대권력 체제처럼 그가 점차 권력을 강화시키려고 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행정 기관 설립으로 인해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맞먹는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올 정도.# 오죽하면 전직 대만 총통 리덩후이가 시진핑의 행보에 대하여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시진핑이 추진하는 반부패 드라이브의 진정성은 이 기사에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반부패 대책을 세우는 일반인들을 탄압하고, 그 재판 과정조차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조차 의심이 간다는 내용. 사실상 숙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시 주석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몇몇 매체를 통해 시진핑 암살 미수 및 쿠데타 음모가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기사 처음 이 기사를 보도한 매체가 반중 성향이 강하고 신뢰도가 비교적 낮은 보쉰이라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중국 주요 언론에서도 "비조직 정치 활동"에 대해 언급한 걸로 보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홍콩의 주요 월간지 중 하나인 개방에 따르면 시진핑 암살 시도만 현재까지 6차례나 된다고 한다.

#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행보로 인해 시진핑의 종신 집권을 점치기도 한다. 중국/정치 항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중국 정치는 공산당 1당 독재로 민주주의와는 많이 달라서, 주석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더라도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계속 집권할 수도 있는 식으로 언제라도 1인 독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32] 시진핑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이런 일을 막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압박이 약해지기 때문에 이런 의혹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주석 임기의 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고 남은 임기 동안 그를 견제할 저우융캉 등 거물급들은 전부 반 부패 운동을 빌미로 전부 제거된 상태다. 기껏해야 남은 거물급은 장쩌민 정도인데 이미 시진핑이 과거부터 후진타오와 손잡고 철저하게 장쩌민의 측근들을 정리해 온 데다 고령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시진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33]

시진핑은 지금도 1인 독재자가 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이 종신 집권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나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 종신 집권을 추진할 것인지가 아직 불확실한데, "2021년까지 중국의 국민 소득을 2010년의 2배로 만드는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임기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봐선, 명분적으로는 샤오캉 사회의 실현을 명분으로 하여 종신 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도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해 오고 있다.

명분으로 샤오캉 사회의 실현을 내세운다면 나머지 하나는 덩샤오핑 이래로 이어진 당내의 10년 집권이란 불문율을 깨뜨릴 수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는데 이 불문율에 대해선 시진핑이 왕치산 중앙 기율 검사위 서기의 유임을 통하여 이 불문율을 박살낼 것으로 보인다. 왕치산의 유임 여부가 시진핑의 종신 집권 성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렛대인 이유를 들어보면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 위원에게 적용되는 칠상팔하(七上八下)[34]라는 내규가 있는데 이 원칙에 따르면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19대에서 은퇴해야 하며 왕치산은 내년에 69세가 되며 또한 시진핑이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정적 제거)의 가장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치산이 이 내규를 깨고 유임에 성공하여 선례를 만들어 놓을 경우 2022년에 70세가 되는 시진핑 역시도 왕치산의 유임을 통해서 만들어진 선례를 활용하여 칠상팔하를 무력화하고 종신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그 중에서 시진핑의 퇴진 요구 서한 연루설로 일선 퇴진설이 제기됐던 장춘셴 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서기가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당건 영도 소조 부조장에 선임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6년 제18기 중앙 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18기 6중 전회)가 개최하였는데, 중국의 정치는 집단 지도 체제로 가고 있지만, "7인의 표결" 대신 시진핑의 지시에 따라 정책에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18기 6중 전회 결과 공보문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구절이 등장함으로써 사실상 1인 지도 체제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6중 전회 이후부터 노골적으로 종신집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외국 정보의 유입이나 사회적 자유 수준 역시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래도 전임인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자신들의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서방의 문화와 가치관을 허용해 주었고 사회적 자유 수준도 숨통 트일 만큼은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장쩌민과 후진타오와 다르게 서방의 문화와 가치관을 심각하게 검열하였고 이에 중국 젊은이들이나 당 내 개혁파들의 불만을 많이 사게 되었다.[35]

그리고 민주화 세력 뿐만 아니라 당내 개혁파를 탄압하였는데 그 예로 사법부의 수장인 저우창이 삼권 분립과 사법부 독립은 서구의 사상이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사회주의 중국에서 다른 국가와 같은 철저한 삼권 분립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사법부가 당과 국가의 외압을 받으면 중요한 순간에 (그리고 혹시 당이나 국가의 공권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긴다거나 하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한 술 더 떠서 이번엔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하는 원로 경제학자들의 민간 연구소까지 폐쇄하였다. 기가 막힌 이유는 이들은 덩샤오핑에게서 경제정책을 자문한 학자들의 모임으로 민감한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경제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경제정책의 고언과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도 정치문제가 아니면 국가 경제정책의 대한 토론과 비판은 경청하고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었다. 국가를 위한 정당한 비판을 아예 경제 전문가도 아니면서 자신의 권위에 위협이 되니 아예 탄압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륭제문자의 옥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2017년 10월 24일 결국 당헌에 시진핑 사상을 넣게 되어서 마오쩌둥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살아서 자신의 이름을 당헌에 넣었다.[36] 이로 인하여 25일에 발표할 상무 위원에 차세대 지도자 (천민얼, 후춘화)가 없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만약 25일에 차세대 지도자로 평가받는 2명의 이름이 없을 경우, 시진핑은 자신의 임기를 일단 5년은 늘릴 것이라고 보여지며, 그게 5년일지 10년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는 시진핑으로서도 당연한 행동이긴 한데,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해서 수많은 정치적 적들을 수없이 쳐낸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권력을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시진핑의 안위를 차기 지도자가 보장해 준다고 해도 언제 내려올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예상대로 25일 발표한 상무위원에는 차세대 지도자는 없었고,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후의 최고의 권력을 가진 중국 지도자가 되는 데에 성공했다.

결국 2018년 3월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긴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현 임기가 끝나는 2023년 3월 이후에도 집권이 가능해졌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유지돼 온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고 마오쩌둥 이래 중국 역대 지도자 중 최고의 절대권력자로 등극했다. 또한 이른바 '시진핑 사상'이 헌법에 명시됨에 따라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정치적 권위도 확보했다.

6.2.1. 종신 집권 추구

#1 #2
집권 이래 약 4년간에 걸친 장쩌민 일파와의 정권의 사활을 건 권력 투쟁 끝에 결국 6중 전회에서 장쩌민을 정치적 무덤으로 보내버리고[37] 핵심 칭호를 손에 넣은 이후부터는 노골적으로 종신 집권을 향하여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일환이 바로 습가군(習家軍), 즉 시진핑의 측근들로 구성된 친위 파벌 집단의 약진으로, 이 중에서도 시진핑의 핵심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왕치산의 인맥들이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약진하고 있다고.

기존의 정치국 상무 위원회가 자문 기구로 변경되었다는 기사, 겉으로는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집단 지도 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본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19대에서 집단 지도 체제의 종언을 선포하고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1인 독재 체제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선포하기 위한 밑 작업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칠상팔하 역시도 "칠상팔하는 민간에서 떠도는 설에 불과할 뿐 당이 정한 규정은 아니다"라고 언급하였다. 이 발언을 한 덩마오성은 6중 전회 회의 문건 초안 작성조의 조원이며, 이 초안 작성조의 조장은 시진핑이다. 참고로 이 언급은 왕치산에 대해 내년 당 대회에서 연령 제한에 대한 예외가 적용되는지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나온 답변인만큼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중국 공산당원들에게 서로 '동지'(同志)로 호칭하라고 지시하였다.#

집권 이래로 강력하게 추진해오던 상하이방 대숙청도 핵심으로 등극한 이후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6중 전회에서 핵심에 등극한 기세를 몰아 아직도 남아 있는 상하이방을 전부 뿌리채 뽑아버림으로서 화근의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 중국 공산당도 이에 맞추어 총서기제 대신 주석제를 도입해 집단 지도 체제의 중심인 중앙 정치국 상무 위원회를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7년 3월 5일에 열린 전인대에서 '시 핵심'이라는 단어만 6차례나 언급되었다는 기사. # 기사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시진핑의 권력이 어느 정도에까지 위치해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리커창이 관할하던 경제 분야에서조차도 본인의 영향력을 강화해가면서 리커창과 공청단의 입지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시진핑, 왜 군부대 '일련번호'에 올인하나… 장쩌민 파벌 '정조준'
"中 반부패 칼날 금융으로… 장쩌민 손자·류윈산 아들 조준"
中시진핑 부패 사정 속 '대장급' 군 고위직 교도소서 자살
시진핑, ‘19차’ 앞두고 권력 집중 ‘순항’

2017년 들어서도 시진핑의 상하이방 숙청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시진핑의 최대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쩌민의 군부 내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서 제19대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 대회가 개최되기 이전에 상하이방을 패망시켜 장쩌민이 19대 당 대회에서 아무런 힘을 못쓰게 만들 목적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시진핑에 의해 홍콩에서 중국으로 납치된 장쩌민 일파의 자금책인 샤오젠화 밍톈 그룹 회장으로부터 장쩌민 일파의 비리에 대한 실토를 받아내는 등 상하이방의 완전 궤멸을 위한 명분을 만드는 중이다.

한편 2017년 8월, 1982년 폐지된 공산당 '주석' 자리의 부활을 지도부가 참가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제안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당 관계자를 인용해 30일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베이다이허 회의에선 리잔수(栗戰書) 중앙 판공청 주임이 주석직 부활과 관련,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방침이다. 참고로 이거 '마오쩌둥이 죽을때까지 해먹었던 자리'고 옛 헌법에선 당 주석이 '무장 역량을 통솔한다'고 규정해 당과 정부, 군에 강력한 권한을 갖도록 했다."시진핑, 마오쩌둥 맡았던 '공산당 주석' 부활 제안할 듯" 이것만 차지하면 옛날 마오처럼 국가 주석 자리에서 물러나도 무한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가 앉게될지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결국 2017년 10월 18일부터 동년 동월 24일까지 열린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를 통해 당장(黨章, 당헌)을 개정하여 당장에 '시진핑 사상'을 등재했다. 중국 공산당이 통치 이념을 명기할 때 주의, 사상, 이론, 관 순으로 표시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위상이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것으로 오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순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2017년 12월 말경 시진핑 진영이 장쩌민의 마지막 군사적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무장경찰부대마저 흡수쳐묵해버리면서 군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게 되었다.

비록 19대 당 대회를 통해서 비록 공산당 주석 직위 부활은 무산되고 심복 왕치산을 유임시키지 못했지만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삽입하는데 성공하고 또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종신 집권의 길을 열어놓는데는 대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퇴임한 왕치산도 칠상팔하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직책을 맡길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한 장쩌민은 한정[38] 한 명만 상무위원에 진입시킴으로서 시진핑과의 권력 투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게다가 은퇴한 왕치산은 은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진핑의 허가 속에서 상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의결권은 없다지만 은퇴한 사람이 정치국 상무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발언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특권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발언권만 주어진다고 하지만 시진핑의 최측근이 지속적으로 상무위원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영향력 행사나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2018년에 열리는 전인대에서 왕치산에게 국가부주석 자리에 앉힐 거라는 관측까지도 제기되는 상태. 이쯤 되면 사실상 칠상팔하는 붕괴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고 봐야하며 이래서는 은퇴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했듯이 2018년 1월에 열리는 2중전회에서 헌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장기집권의 가능성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해당 기사에서 인용한 독일의 소리에 따르면 개헌의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一. 시진핑이 헌법 개정에 대해 갖는 개헌의 방향성
二. 중국식 사회주의가 가진 모순을 헌법에 반영시키는 방식
三. 국가감찰위원회의 설치 여부
四. 국가주석의 임기 문제

개헌의 방향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상 3연임을 넘어 시진핑 개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이다. 후계자 후보군인 후춘화와 천민얼이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함으로서 격대지정은 사실상 폐기됨으로서 장기집권을 원한다는 신호는 이전부터 계속 발산하고 있었는데 국가주석의 중임 제한을 삭제시킨다면 이는 장기집권에 공식적인 쐐기를 박는 일이 되어버린다.

2018년에 열리는 양회에서 국가주석의 중임 제한 규정을 삭제하기 위한 밑밥 깔기의 일환이다. 현재 중국 헌법에서는 국가주석의 임기는 5년이고, 1회에 한하여 중임이 허용되는 체제에서 이 중임 제한을 폐지시켜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칠상팔하? 칠상팔하는 이미 왕치산이 은퇴하고 나서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참석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실질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봐야 한다. 결국 2018년 2월, 국가주석직의 연임 제한을 철폐했다.

또한 2018년에 설립될 예정인 국가감찰위도 그 내역을 뜯어보면 사실상 시진핑의 종신집권을 결사보위하는 중국판 국가안전보위부나 마찬가지다. 시진핑이 현재 하는 작태로 봐선 이 국가감찰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말 안해도 다 짐작가지 않겠는가. 에초에 감찰이라는 단어를 보기만해도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탄압을 해도 누구나 다 알것이다.

3월에 열린 전인대에서 개헌안 투표에서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기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삽입했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종신독재자가 되었다.# 그렇게 시진핑의 사실상의 신분은 임기 끝나면 물러나고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는 주석에서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임기가 계속되던 옛날의 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 3월 17일 국가주석직에 재선출 되었다. 관련기사 그리고 일시 퇴진했던 심복 왕치산도 부주석으로 임명되어 리커창 총리를 제치고 권력서열 2위로 올라섰다.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으로 인터넷 장악까지 병행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트위치 등 해외 IT기업을 축출한 후 자국 기업으로 그 자리를 메꾸어왔다. 자국 IT기업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게 되자 강력한 규제와 폐쇄를 일삼으며 목줄을 죄고 있다. 중국 내 인터넷에서는 정권 비판 게시물을 이미 찾아보기 힘든 상태가 되었으며 당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업체는 가차 없는 규제를 당하고 있다. 3대 중국 IT기업으로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 텐센트는 게임업체의 대표격으로 거의 탱커격으로 규제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아랍의 봄에서 보였던, 인터넷을 통한 반독재 세력의 결집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자유파’ 싱크탱크인 톈쩌경제연구소를 완전히 폐쇄한다.#

“중국, 힘 있는 공무원이 '법치의 사유화' 중단해야”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과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이 권력 독점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6.2.2. 비판 차단

시진핑은 문화 컨텐츠 등지에서 자신에 대한 비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상상 이상의 졸렬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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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곰돌이 푸의 검열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시진핑의 인상이 곰돌이 푸와 닮았다는 것 때문인지 시진핑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피하는 대신 곰돌이 푸의 이미지로 우회하여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중국 공산당은 곰돌이 푸 자체를 검열하는 졸렬한 행보를 보여서 비웃음을 샀다. 2018년 개봉한 곰돌이 푸 실사 영화도 공산당의 검열 조치로 개봉하지 않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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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검열 행태때문에, 역으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2019년 7월 1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이른바 시진핑 생매장 퍼포먼스라고 불리는 장면이다. 시진핑이 하도 곰돌이 푸를 검열해대니, 시진핑 생매장 = 곰돌이 푸 생매장이 되어버린 것.

심지어는 중국 서버에 올라온 소녀전선 4컷 만화에서는 푸 자체에 대한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의성어로 '푸(poo)'라고 적은 만화를 검열한 사례가 발견됐을 정도. 소녀전선은 중국 개발사가 만든 게임이라 개발사에서 자체검열을 했을 확률이 높으나, 자체검열을 했단 것 만으로 간접적 비난에 대한 검열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시진핑은 푸에 대해서 열성적으로 탄압을 벌이고 있는데 2018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하필 꿀을 선물로 줘서 은근히 푸와 엮여버렸다.#

보통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비난은 어느정도 쿨하게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사소한 것도 일일히 탄압하는 것은 반감을 사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독재 국가지만 민주주의 국가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야당의 비판을 흘려넘기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가 그 사례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며, 이미지를 통한 간접적인 비판까지도 차단해버리는 졸렬한 모습을 보여 특히 비웃음을 사고 있다.[39]

이러한 비판 탄압의 사례는 점점 심해지는 추세인데, 대만의 게임 개발사 '레드 캔들 게임스'가 만든 게임인 환원 -Devotion-은 발매 직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순항하고 있었는데 게임 내부에 시진핑을 푸와 도매금으로 묶어 비난하는 이스터 에그가 섞여 있었다는 이유로 우마오당으로 추정되는 대량의 중국 유저들이 몰려들어 악성 리뷰를 도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도 과도한 신고 누적 조치로 전부 내려갔을 정도.

비유하자면 북한에서 만든 게임에 한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스터 에그가 담겨 있었기에 유저들이 분노했다는 상황인데, 한국에서 이정도 가지고 다수의 유저들이 분노해서 집단적인 행동을 하려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본에서 만든 게임에서 한국 대통령을 비난했다 해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우호도는 진보-보수 진영마다 극단적으로 갈렸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돼서 분노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과거 한국 정치인들을 비난한 일본 게임은 적지 않은 수가 있었지만, 병먹금 수준으로 잊혀버린게 대부분이란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심지어 중국이 고수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따져보면 대만의 게임은 자국의 게임이기에, 자국의 게임이 자국의 정치 지도자를 이스터 에그를 숨겨서 비난하였다는 상황인데, 자국의 게임 회사가 겨우 자국 정치 지도자에 대한 비난을 숨겨놓았다는 것 하나로 집단적인 반응으로 달려드는 어이없는 상황인 셈이다.

타국의 상황에 빗대 보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에 대한 우상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시진핑에 대한 비판은 중국 내에서 절대적인 금기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일개 이스터 에그에 저런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추측이 있을 정도다.

다른 중국지도자들이나 독재자들도 그렇듯이 자신의 노골적인 비난만 아니면 가벼운 고언이나 비판은 경청하고 쿨하게 넘어갔다. 시진핑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이고 쪼잔한지 아래 후술대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쓴소리도 검열하고 통제하였다. 독재자인 마오쩌둥도 자신의 노골적인 비판만 아니면 가벼운 농담이나 쓴소리도 가볍게 대했다.펑더화이:???

6.3. 우상화

일당독재가 지속되는 중국이라지만, 문혁 이후 중국 공산당은 1982년 당대회에서 화궈펑의 우상화를 오류로 비판한 이래 최고 지도자라도 개인을 우상화하고 숭배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시진핑은 이 관례를 깨고 있으며, 자기 아버지의 묘를 성역화한 자오러지를 총애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중국인들은 이제 우리가 북한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독재 정부는 스스로가 정통성이 결여된 사실을 우려한 나머지 국민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실제 또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피해자 출신이란 결격성이 있는데다 가뜩이나 후진타오 시절만 해도 잘 나가던 중국/경제는 이미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양적 완화로 거품 잔치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천정 부지로 뛰어오르고 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로 심화되는 자본 유출, 폭발적인 지방 은행들의 그림자 금융에 각 지방의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이걸 감추기 위해 시진핑은 강경 외교 정책을 써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비뚤어진 중화사상을 조장했다. 이렇게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대외적으로 힘을 과시하면서 내부의 사회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사이 자신의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마오쩌둥 반열 오른다…'시(習) 사상' 당헌 포함 작업"

결국 마침내는 자신의 사상을 당헌에 집어넣는 초유의 일 까지 벌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 당헌에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자의 사상이 포함된 건 마오쩌둥 밖에 없으며 현대 중국의 설계자인 덩샤오핑 조차 '이론' 수준에 만족해야 했고 장쩌민, 후진타오의 경우 아예 이름으로도 넣지 못하는데, 이제 시진핑은 자신의 이름을 마오와 동등한 수준으로 넣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마오쩌둥이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 되어간다고 한다. *# 그때는 시진핑 못지않은 폭정이 있었지만[40] 잘사는사람이 따로 없이 모두 평등했기 때문. 그렇다고 시진핑도 그 마오쩌둥을 족칠수는 없으니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류층이나 고학력층에서 예전부터 강했던 마오쩌둥보다 장제스가 낫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까짓거 탱크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헤쳐먹어야지.[41]
결국, 2018년 미중 무역 전쟁 등 위기감이 찾아오자 선전부를 질타했다.#

6.3.1. 영화, 영상물

  • 후난 TV의 저녁 황금 시간대에 시진핑 퀴즈쇼가 등장했다. 2050년의 부흥한 중국에서 시간여행으로 날아왔다는 로봇이 내는 질문 목록에는 시진핑의 연설 내용을 보여주고 어디서 말한건지 맞추는 것도 있다. 첫화부터 프로그램 진행자가 시진핑이 당 조직에게 위대한 학습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요청했다고 운을 띄웠다.

6.3.2. 문학

<‘총서기시여, 당신의 뒷모습과 나의 눈길’>

"시진핑 총서기시여, 큰형님 같은 당신의 뜻 깊은 말씀에 손에 쥔 휴대전화가 뜨거워지고…."
"총서기시여, 당신의 뒷모습과 나의 눈길, 그 눈길이 이 시를 빚어냈습니다. 나의 손가락 열기휴대전화기가 뜨거워집니다."
"이 순간 우레 같은 박수소리쉬안우먼[44]을 삼키고, 오늘 우리는 마침내 큰형님 같은 당신의 사려 깊은 말을 가까이서 듣습니다."
"마음 속에서 오래 익혀낸 이 시는 황하장강을 오르내리고 만리장성을 달리며 일대일로의 낙타 종소리와 고속철의 열풍을 따라갑니다."

6.3.3. 게임, 앱

6.3.4. 흉상, 초상

6.3.5. 종교 공작

  • 예수보살에 이어 알라의 권위를 넘보는 것인지 이슬람교의 대표적인 축일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에서 시진핑을 숭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천주교도 같이 시진핑 사상과 오성홍기 계양하라는 내린 상태이다.#시진핑후 아크바르

6.3.6. 충성 맹세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들 중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시진핑 역시 도처에서 충성 맹세를 받는 걸 즐기고 있다. "당신에게 검열을 청합니다(...)." 언론 매체들의 충성맹세, 공안, 사법부의 충성맹세, 군의 충성맹세, 지방 관료들의 충성맹세, 검열당국의 충성맹세, 기업인들의 충성맹세

일련의 충성 맹세 열풍을 비판한 기업인은 관영 매체들로부터 자본주의자로 몰려 비판당하고, 웨이보 계정이 폐쇄 당했다.

6.3.7. 찬양가

시진핑이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시진핑을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낯 뜨거운 노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14년에는 '<시다다(习大大)는 펑마마(彭麻麻)를 사랑해>[46]'라는 노래가 나왔고(음원), 2015년에는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要嫁就嫁习大大这样的人)>라는 노래도 나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음원)[47] 이런 게 인기를 끈다는 시점에서 이젠 가망이 없다.

<시다다는 펑마마를 사랑해>는 5,4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는 댄스 뮤비[48]까지 나오면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고 검열 당국에서도 해당 노래의 인기를 크게 반기고 있다고 한다.

일련의 시진핑 우상화 열풍이 중국 인터넷을 강타하자 인터넷에서 '시다다' 애칭이 자취를 감추고 자신을 시다다라고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친근한 아저씨 같은 이미지보다는 위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덕분에 인기 동영상(?)이었던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도 중국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대륙에서 못 보는 유튜브같은 데에 이미 박제되어 있다는 건 함정

하지만 저 지시 이후에도 중국의 본격 모란봉악단 + AKB48 걸그룹 56둬화(56朵花)가 시진핑 찬양가 '당신을 어찌 부를지 모르겠다', '만두가게' 등을 부르는 등 개인 우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6.3.7.1. 목록
  • 중국은 시다다를 배출했네(中国出了个习大大)
  • 만두 가게(包子铺): 초반부 영상만 보면 평범해 보이는 노래지만, 역시나 2분 50초 즈음부터 나오는 친민, 애민하는 시다다라는 가사와 시진핑의 얼굴이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본질은 찬양가이다. 만두 가게를 방문해 시민들과 함께 만두를 먹는 시진핑의 애민 정신을 노래하는 내용. 기사. 이 노래 부르려고 가수 여러명이 경쟁(...) 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남자아이 버전(男童天真版)(...)도 있다.
    • 이 노래 때문에 대만에서는 만두(习包子, 시바오쯔)라는 시진핑의 새로운 별명이 생겼고 중국에서는 시진핑을 시만두라고 불렀다가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 시 주석 칭하이에 오셨네(习主席来到咱青海): 칭하이성을 방문한 시진핑을 추켜 세우는 내용.

뽕짝(?)에 록 음악(?)에 아이돌 군무,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다. 유고 내전 당시 프로파간다 노래들이 떠오르는 구성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시진핑 찬양가 영상들에 한국인들의 비웃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찬양가 영상들이 족족 삭제되고 있다. 대만, 홍콩 뿐만 아니라 한국 등 외국에서도 시진핑 찬양가가 조롱거리가 된걸 알아차린 중국이 영상을 삭제하고 있거나 박제 용도로 올려놓은 영상들을 우회해서 유튜브에 들어온, 혹은 해외에서 접속한 우마오당분청들이 신고, 저격하고 있는걸로 추정된다.

6.3.8. 기타

  • 마오쩌둥에게만 불렸던 '영수(領袖)'를 공산당 기관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반부패 어록도 띄워주고 있다.# ##
  • 이제는 날씨도 조종하는듯 하다. 관영매체가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가며 국가주석 재선출을 축하하는 상서로운 징조[52]로 보도했던 눈의 정체는 인공눈이었다. 과거 중국 역사속의 개국 군주들이나 선양받는 새 황제들이 즉위할 때 봉황기린을 발견했다는 등 온갖 상서로운 징조들이 나타났다며 요란을 떨었던 것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 2018년 7월 창춘 지하절시진핑 사상 열차(...)가 등장했다. 전동차 벽면, 손잡이를 시진핑 어록으로 도배한건 기본이고 창춘 시 당국은 시진핑 열차를 시진핑 사상이 고도로 응축된 영적인 안내서로 소개하고 있다. 열차 안에 죽비 소리 장단에 중국 전통 노래 스타일로 공산당 노선을 설교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덤. 참고로 그 북한조차 지하철 열차 내부에 김부자 초상화는 걸었어도 김부자 어록을 열차 벽면, 손잡이에 도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대륙답게 우상화 스케일도 크다

6.4. 측근 비리에 대한 관대함

2014년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재산을 처분하고 대외 투자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누나 등 가족들에 재산 처분 압박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 위원이 된 2007년 이후 친인척들의 재산이 크게 불어났다고 하니.

일단 부정부패 척결은 위에서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 이상 아래에서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강경 행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원체 정치인들이 해먹는 규모가 남달라서 부패를 강하게 때려잡아야 할 명분이 서고도 남는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가만 놔두면 중국의 암적 존재가 되어 경제 성장을 방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

다만, 이를 단순한 쇼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반 부패 정책이 실제로는 시진핑의 정적 숙청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 중국의 중앙 정치는 일당독재이기는 해도, 실제로는 공산당이라는 틀 내에서 수많은 계파가 싸우는 형국이라 모든 당원이 친주석파는 아니다.

또한 부패 척결이나 사회 정화 목적으로 내놓은 정책을 반대파 탄압에 악용하는 것은 상당히 자주 있는 일이다. 이로 인해 시진핑의 "반 부패 드라이브"의 진정성이 의심받기도 한다.# 반 부패 운동 자체가 그의 권력 강화를 위한 기반이 아니겠냐는 의혹이다. 반 부패를 위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 부패를 권력 강화에 이용하는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듯. 이러한 반 부패 운동에는 친누나도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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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앵커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쉬는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의 친인척이 4,000조 원을 탈세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시진핑의 친인척 한 명이 4,000조를 탈세했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친인척들이 그만큼 탈세했다는 말이다.[53] 저 어마어마한 액수의 탈세를 시진핑이 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시진핑은 이에 대해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공범이나 협력, 혹은 최소 방관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또한 기사에 보듯 저 액수는 중국 지도부가 2000년 이후부터 탈세해온 돈으로 시진핑이 국가 주석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시진핑의 매형인 덩자구이가 조세 피난처에 유령 회사를 세웠다는 의혹이 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시진핑은 부인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 참고.

공산당 기관지에서는 시진핑에 대한 이런 의혹을 서방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빈축을 샀다.

반부패 기관 국가 감찰 위원회를 2018년 3월에 창설한다. # 이게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아무리 봐도 저 조직은 비밀경찰이 될 게 틀림없다

2019년에 이르러선 시진핑의 저 모든 반부패 행보가 사실 자신의 독재권력 강화를 위한 경쟁자 제거와 우상화, 정치적 명분을 위한 쇼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6.5. 외교, 민족 문제의 악화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은 점점 대외적으로 강경하고 양보가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과거 덩샤오핑이 서방 세력과의 강한 충돌을 경계한 이래 중국은 그 동안 이웃 국가들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자극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했는데 시진핑의 등장 이후 중국이 주변국들은 물론 서방과의 충돌도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스프래틀리 군도센카쿠 열도로 대변되는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해 분쟁이 매우 심각해서 동중국해, 남중국해 일대가 세계 최대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대한민국과도 북핵 문제와 사드 보복 문제, 영해 문제,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문제 등으로 인해 점점 국민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국내에서도 덩샤오핑이 제시했던 일국양제 원칙을 훼손하면서 홍콩을 옥죄고 있으며, 대외적으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서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 전례없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쯔위 사태2018년 고려대 사건을 보듯이 대단히 오만하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반중감정이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중국이 대책없이 주변국들을 적으로 돌리는 팽창주의 외교를 하는 데는 시진핑 자신의 독재 체제 성립 시도와도 연관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시진핑의 1인 독재 시도는 중국 내외적으로 반발이 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 경제도 과거만큼 잘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쌓인 시진핑 및 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민족주의를 통해 외부의 이웃 국가들에게 향하게 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내부에서 크랙이 생긴다는 의미로 해석할수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니콜라이 2세가 이짓거리하다 소련이 건국되어버렸다.이렇게 가다간 진짜 정말 최악의 경우 홍콩, 마카오, 대만, 티베트잃을 수도 있을텐데

문제는 이런 방식의 통치는 국민들의 국수주의 성향 유지를 위해 계속 고압적이고 비타협적인 외교 방식을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기에 대화를 통한 외교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주변국과의 적대 관계가 높아질 위험이 크다는 것. 실제로 이로 인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그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더욱 좁힐 가능성이 높다.

6.5.1. 팽창주의

세계에 중국 위협론을 본격적으로 대두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전 지도부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중국의 외교 원칙을 깨부수고, 일대일로 정책 추진 등 적극적이고 팽창적인 대외 확장 외교를 실시함으로써,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 구성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고, 중국을 외교적으로 고립되게 하였다. 일부 친중 인사들은 "시진핑이 현 중국을 후진타오 시기의 중국보다 더 퇴보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이 석유를 시추하는 것에 대해서 로드리고 두테르테에게 전쟁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두테르테와는 죽이 맞는지 밀당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밀접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남중국해에 중국이 건설중인 섬에 대해서 필리핀이 항의는 커녕 고마워한다고(...) #

6.5.2. 소수 민족 탄압

시진핑 체제 수립 이후 소수민족 분리 운동에 대한 강경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람들에게 단호한 대응을 취하고 있다. 분리 운동 테러분자들에 대해 강경대응한다는 점에서[54] 기존 중국의 노선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안보 정책을 취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개혁 개방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6.5.3. 특별행정구 간섭

게다가 중국 내 특별 지역들은 물론 이제는 특별 행정구나 대만('중화민국')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시진핑의 강압적인 독재 스타일의 정치는 일단 민주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 홍콩과 대만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이수 없는 체제였고 중국이 홍콩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정에 간섭할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 홍콩에서의 반중 감정이 대단히 높아졌으며 대만도 홍콩이 겪는 꼴을 보고 양안이 다시 하나가 되느니 그냥 분리 독립하는게 낫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도 차이나 머니 때문에 친분을 유지하려고는 하지만 중앙 아시아 패권 문제 등으로 인해 충돌이 있다.

홍콩 특별행정구에서 행정 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중앙 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행정 장관 후보는 무조건 공산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벌어진 것이 홍콩 우산 시위다.

이후에도 홍콩에 부당한 대우는 계속되어 이 사건 외에도 중국공산당에 비판적인 논조를 띄는 인사들이 납치나 행방불명 되었다는 후문이다

홍콩은 중영공동선언에 따라 자치와 민주주의가 보장되지만,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가 본토로 확산되어 일당 독재에 위협을 줄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장치를 통해 완전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홍콩 문서의 정치 문단 참조.) 공산당 정부는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자치 및 민주주의에 이런저런 간접적인 방식으로 간섭을 해왔고, 따라서 이것이 시진핑 정권이 만들어낸 문제점은 아니다.

시진핑 정권의 문제점이라면 홍콩 및 마카오 양 특구에 대한 정치 및 사회적 간섭을 더 심화하고, 그에 따른 특구 주민들의 반발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일국양제 훼손 시도라고 비판하지만 중국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 중. 이 때문에 홍콩에는 "일국양제 안 지킬 거면 차라리 독립해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일부 존재한다.

다만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인해 중국의 홍콩 간섭은 잠시 주춤해졌다.

6.5.4. 양안관계

우리대만정책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 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 #
차이잉원이 대만 총통에 당선된 이후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차이잉원은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미 대외적 국호도 "중화민국 대만"이라고 바꾸기로 했고, 대만 주미 대표부의 수장도 기존의 '대표'에서 '대사'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기사. 이는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던 92공식에 변화를 주려는 것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독립 추구로 비춰지고 있다.

2016년 3월 6일, 시진핑 주석이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서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 당선인을 겨냥한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차이잉원은 아직까지 표면적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등 온건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으나 이미 양안관계는 크게 냉각된 상황이다.

중국 국민당의 홍슈주와 회담에서 대만이 독립하면 중국 공산당이 무너진다는 말까지 나왔다.

6.5.5. 유엔 제재 무력화

2017년 12월 북한에 석유를 공급했다고 알려진 홍콩 선박 '라이트하우스 윈모어'(Lighthouse Winmore)호에 대해 미국이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중국과 홍콩을 제재하려고 하였다. 이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배는 대만 기업이 임차했으며 중국의 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중국의 배이며, 대만 기업이 임차를 했든 안 했든 이미 홍콩 선박이므로 중국 선박이 맞다.유리한건 우리꺼, 불리한건 너네꺼 이전에도 미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중단을 요구한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계속 공급한 중국이었다. 당연히 반응은 중국의 악행과 관련된 뉴스에 따라붙는 타이완 넘버원은 물론 탈부착식 국가 드립으로 가득했다.

6.6. 중화사상한국 역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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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then went into the history of China and Korea. Not North Korea, Korea. And you know, you’re talking about thousands of years …and many wars. And 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And after listening for 10 minutes I realized that not — it’s not so easy. You know I felt pretty strongly that they have — that they had a tremendous power over China. I actually do think they do have an economic power, and they have certainly a border power to an extent, but they also — a lot of goods come in. But it’s not what you would think. It’s not what you would think.

이후 시진핑 주석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한이 아닌 한반도에 대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수천년 동안의 (역사와) ... 전란에 대해서 우린 이야기했습니다. 한반도는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도요. 그리고 한 10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다시피 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중국이 (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 확실히 광활한 대륙 전반에 걸쳐 국경을[55]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중국은 많은 것을 수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자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른 것이죠.

일단 트럼프의 말은 카더라일 뿐이라 정말 저렇게 말을 했는가에 대한 건 공식적으로는 알 수 없다.[56]# 이런 발언을 언론에 흘린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서도 치밀한 계산인가, 생각 없는 행보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한국 외교부는 즉각 반발했다. #

이 발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정부의 무례한 대처가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 "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한국민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 말하며 답변을 회피했다. # 환구시보의 사설에서는 "워싱턴 DC에 물어보라, 베이징에 물으면 외교적 결례"라고 하기까지 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시진핑이 대답해주면 끝날 문제를 이렇게 끄는 걸 보면, 실제로 저런 소리를 한 모양.[57][58]북한이 반발하지 않은게 더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이시하라 신타로6자회담이 실패하자 북한이 중국에 합병되는게 최선이라고 말했지 않는가? 그러자 조선중앙통신은 즉각 반발했다.기사 실제로 역사적으로 영국의 일부였던 미국의 대통령으로썬 황당할 따름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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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의 경우엔 마찬가지로 논란이 촉발되자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진핑의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한국이 수천년 간 독립적이었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훨씬 명확하고도 한국인들의 반발을 쉽게 무마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7. 저서

8. 필모그래피

9. 어록

각급 지도간부들은 모두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고 권력을 엄격히 사용하며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또한 일함에 있어 실속이 있고 착실하게 창업하며 성실해야 한다.
2014년 3월 9일 안휘대표단 심의 참가 때
신형의 정부와 기업가 관계를 총화하면 바로 ‘친(亲)’과 ‘청(清)’ 두 글자이다..
2016년 3월 4일 중국민주건국회, 공상업연합회 위원 방문 때
자신의 눈을 아끼듯이 민족단결을 아끼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민족단결을 소중히 여기며 석류알처럼 굳게 뭉쳐야 한다.
2017년 3월 10일 신강대표단 심의 참가 때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2017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을 맞아 국영 매체로 생중계된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념식 연설에서

10. 기타

  • 축빠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는 메시유니폼까지 선물받고 좋아할 정도. # 2011년 당시 민주당 대표이던 손학규와 만남 당시 "중국이 월드컵에 나가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내 3가지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중국의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체육 과목 구기 테스트 종목에 축구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 그래서 그런지 AC 밀란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잇따른 삽질현재는 중국 국가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중국 슈퍼 리그를 무지막지하게 키우자는 걸로 방향 전환을 했다고 한다. 축구굴기라 해서 중국 축구 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전국에 축구 전문 학교 2만 개 설립을 하고 있는데, 2만 개면 대한민국 전국에 있는 학교 수보다 많다.
  • 젊은 시절 복싱을 배웠었다고 하며, 자세를 취한 적도 있다. #
  • 바둑을 즐긴다고 하며, 이창호의 팬이기도 하다. 2014년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이창호의 얼굴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악수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국가 간 선물 교환 시에도 한국에선 바둑알을 선물했다.
  • 2014년 7월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서울대에 책 기증 의사를 밝혔고, 약 1년 후 서울대 도서관에 책, 정기 간행물, 영상물 약 1만 점을 기증함으로 약속을 지켰다. #
  • 시진핑이 등려군의 광팬이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항상 등려군의 노래만 들었다면서, "내가 젊은 시절에는 등려군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라고 훗날 고백했다.
  • 키가 180cm로 아시아의 정치인 중에서는 굉장한 장신에 속한다.
  • 베이징(北京, 북경)이 베이핑(北平, 북평)이던 시절 베이핑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이름이 近平(근평)이다. 동생은 가족들이 베이징과 멀리 있을 때 태어나 이름이 위엔핑(遠平).
  • 인도의 한 뉴스 앵커가 Xi Jinping의 Xi를 로마 숫자 11로 착각해 Eleven Jinping으로 읽었다가 해고된 적이 있다. BBC, WSJ, 연합뉴스
  •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나폴레옹이 중국한테 했던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잠에서 깨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라는 말을 인용해서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 "이 사자는 평화적이고 친절한 문명 사자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위구르 지역에 저지르고 있는 탄압을 보면 '''절대 이런 소리가 안나올 것이다.#
  • 중국산 스마트폰 골수 마니아라고 하며 현재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ZTE Axon 시리즈 스마트폰 중 하나인ZTE Axon 이라고 한다.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831158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에는 유독 호랑이를 때려잡는 시진핑 그림이 많다.[59]
  • 중국 대학생 네티즌들이 뽑은 카리스마형 훈남(...)이라고 한다. 참고로 미국 순위 선정 매체 ‘하티스트 헤즈 오브 스테이트’(Hottest Heads of State)[60]에서는 196위를 했다. 즉, 전세계의 지도자들 중에서 외모가 최하위권. 물론 꼴찌는 북한의 김씨.
  • 김용옥차이나는 도올 방송에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과 더불어 매우 칭찬했다. 서방이나 국내 언론에서 시진핑의 부패 척결이 권력 강화의 수단이기만 하다는 일각의 견해를 부정하고, 시중쉰이 어린 나이에 큰 공산주의 조직을 세웠던 것이나 천안문 사태후야오방을 지지했던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장기집권 의도를 드러내면서 독재와 우상화를 본격화하고 나선 2018년 시점에는 방송에서 스스로 자신이 "똥이 됐다"고 탄식하며 비판파로 돌아섰다.
  • 대기원시보에서는 시진핑을 중국 공산당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중국의 민주화를 이룩해낼 중화 민족의 메시아로 보고 있는듯하다. 습비어천가(1),습비어천가(2),습비어천가(3)
  • 청년들에게 "밤을 새면 건강에 나쁘다"고 조언하며, 자신은 아무리 늦어도 밤 12시 이후에는 취침한다고 하였다. 네이버 뉴스
  • 전원책 변호사에 따르면 시진핑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말을 최대한 아낀다고 한다. 아마 과거에 있었던 아버지 시중쉰이 숙청당하면서 온갖 고초를 경험해서 말 한마디가 나중에 발목잡힐 수 있다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61]
  • 2014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 애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시진핑의 지지율은 내치(內治) 94.8% 외치(外治) 93.8%라고 조사되었다고 한다.[62]
  • 사드 배치 논란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호감도가 상당히 높았던 인물. 2013년에는 호감 40% 비호감 20%로 호감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가당시에는 호감도가 55.1%로 오르기까지 했다. 사드 논란 이후에는 혐오대상이되어 호감도가 20%대로 떨어졌으나, 그래도 트럼프, 푸틴, 아베 등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괜찮았다. 하지만 당선이후에도 상당한기간 부정적인식이 많았떤 트럼프는 방한 이후 한국에서 트럼프의 호감도가 괜찮아졌고 시진핑이 장기집권에 성공하면서 호감도가 또 내려가는 중이다. 결국 트럼프에게 역전당했다. 지금은 아예 혐중감정이 온 대한민국을 지배하게된 상황. [63]
  • 철찌들 사이에서는 철권 스트리머인 엠아재가 이 사람을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
  • 소선풍 시진하고 관련이 없다. 다만 이름이 비슷해서 소선풍 시진핑라고 부른다.
  • 중국의 한 초등학생이 "시진핑 할아버지 살 빼세요"라는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도로 뺐으면 좋겠다던 이 편지를 보도한 기사들은 돌연 인터넷에서 삭제됐다고 전해진다.
  • 머리숱이 엄청나다... 머리숱까지 물려받은 금수저... 아버지 시중쉰도 머리숱이 엄청난데 역시 유전의 힘이란... 그동안 흰머리를 감추다가 공식석상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의 승인을 받은 감옥은 어떤 모습일까? 시진핑(習近平)식 ‘스마트 교도소’: 비밀 문서 공개되다

11. 관련문서



[1] 연변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습근평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시진핑이 저술한 서적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출판된 저서가 '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하다'인데,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습근평 국정운영을 론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북한 조선중앙TV에서도 진짜 중국이름을 부르지 않고 뉴스에서 습근평이라고 불렀다.[2] 신해혁명 전후로 한국 한자음, 중국 표준음으로 부르지만 여전히 전자로 부르는 경우가 꽤 된다.[3] 공식적인 출생지지만 대체적으로 원적지인 산시성(섬서성) 푸핑 출생으로 보는 편 이다. 진핑이라는 이름이 원적지인 푸핑에서 가까운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뜻.[4] 1913년 10월 15일 - 2002년 5월 24일[5] 1926년 11월 -[6] 1979년 - 1982년[7] 1987년 -[8] 1992년 6월 27일 출생([age(1992-06-27)]세). 후처 펑리위안 소생.[9] 중국 내부를 제외한 타국 외신에서는 '시진핑을 반부패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비판이 크다. 하술한 '자기 주변의 비리에 대한 관대' 단락 참조.[10] 시진핑을 싫어하는 일부 중국인들, 홍콩, 대만 네티즌들은 여기서 한 획 더해 习大(진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1]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 나와 있는 중국인에게 시진핑에 대해 물어보면, 열중 아홉은 "인민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라고 코렁탕 먹기 싫어서 찬양한다.[12] 풀이하자면 서쪽에 있는 북한이라는 뜻이다. 서한(西韓; 시한)이 아닌 서조선인 이유는 중국에서 북한을 가리키는 명칭이 조선(朝鮮; 차오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한국에서와 동일하게 북한(北韓; 베이한)이라고 부른다.[13]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습근평보다 지지를 받기 쉬운 이유가 있는데. 그는 상남자다운 이미지 구축으로 버터보다 강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입맛에 더 잘맞춰주는 등 노련한 면모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습근평은 그에 비해 괜히 미국의 어그로를 끌어 쳐맞고 있는건 덤.[14] 물론 자기 밑에 있던 지지 세력들이 저지르는 부패 행위는 봐주었다.[15] 통일날은 1949년 10월 1일. 시진핑의 생년인 1953년중화인민공화국형 연호로 하면 중화인민공화국 5년.[16] 대장정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지도부가 섬서성 옌안에 도착한 이후 류지단은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산서성 군벌 옌시산을 공격하러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한다. 공산당에선 류즈단의 고향인 "바오안"을 "즈단"으로 개칭해서 그의 공로를 기념했다. 국내에선 우리식 한자 독음 "유지단"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2000년 이전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유지단으로 표기.[17] 요약하면 시중쉰의 감독아래서 1954년 시중쉰의 동료인 류즈단의 전기가 나왔는데, 이 소설에서 중공정권 수립후 처음으로 숙청사건이 된 가오강 사건의 주범인 "반동" 가오강이 미화되었다는 판정을 받아서 여기에 연루된 여러 사람이 다친 사건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이를 펴낸 시중쉰 또한 반동이 되었다.[18] 시중쉰은 중공 정권 수립 후 서북(西北)지역 제1서기, 군정 위원회 주석이던 펑더화이가 6.25 전쟁 지휘관으로 불려가면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9월까지 서북 지역 군정위 부주석, 주석 대리와 경제 총책을 맡았다.[19] 다만 이런 류의 일화는 어린이 위인전마냥 후대의 미화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한다.[20] 2012년 기준 현역으로 계급은 소장이다.[21] 경제적으로 따지면 중국은 보수 세력이 좌파다.[22] 과거 독일과 일본이 군국주의를 내세우다가 망했고, 북한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다가 경제가 파탄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중국을 말아먹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미친 발언이다. 국가 차원에서 강한 군대 건설을 우선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군국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군사력이나 강하면 몰라...[23] 한 중국 전문가가 말하길 중국은 외교에 있어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는 찌질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중국보다 강자인 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 함정 뒤에서 얄미운 짓을 해도 겉으로는 예의를 지키는 일본과 다르게 중국은 대한민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틀리면 대놓고 깔아뭉개려 하는 동네 양아치같은 태도를 보여 왔다.[24] 중국산 희토류의 최대 수입국이 미국이기는 하지만 중국산의 수입 이유는 가격이 싸다는 것 하나 때문이며 희토류 제한 카드를 꺼내들자 미국에서는 자체 인프라를 가동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미국산 대두 수입의 제한 역시 미국산 대두의 가장 큰 시장이 중국이긴 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중국이 아니여도 팔 시장이 많다는 반응.[25] 중국 측에서 전격적으로 공동선언문에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일본을 앞에 쓰는 것을 허용했다.[26] 2014년 7월 4일 한반도 비핵화라고 언급을 하였으나, 이것은 단순히 북한의 비핵화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을 포함한 한반도의 비핵화, 즉 미국의 핵우산 전략 목적에 대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27] 쑹타오 등 중국공산당의 주요 요인들이 베이징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직접 단둥역에 가서 김정은을 맞이했고, 김정은이 되돌아갈 때도 고위 간부와 철도 요인들이 단둥역까지 나와 배웅하였다.[28] 잘 보면 아베도 제대로 웃지 못하고 있다.[29] 자세히 보면 곤룡포에 들어간 무늬 자체가 중국 군사적, 경제적 급성장을 나타내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마천루라던지, 군함이라던지 하는 것들. 참고로 기사의 제목에 있는 1793년은 건륭제가 마지막 원정을 끝내고 중국 주변 일대의 완전 평정을 천명한 해면서, 조지 매카트니를 위시로 한 영국 사절단을 상대로 자신의 위상을 과시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을 걸었다.[30] 일부 학자들은 시진핑의 1인독재체제가 공고해지고 중국이 폐쇄적이고 경직적으로 변하면서 중국이 과거 건륭제 시절처럼 서서히 쇠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예전 청나라 시절같이 이권을 뺏기고 반식민지화 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겠으나,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면서 강대국의 위상을 잃을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31] 그의 수하였던 보시라이가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것도 고려됐을 것이다.[32] 장쩌민도 이런 방식으로 꼼수를 부려 후진타오를 허수아비처럼 만든 전적이 있다.[33] 사실 후진타오 집권 초반까지도 여전히 장쩌민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후진타오 입장에서는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은퇴를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시진핑에게 유리해 진 것.[34] 당 대회 개최 시점에 67세이면 유임하고 68세 이후는 하차해야 한다는 원칙[35] 차라리 중국의 문화 컨텐츠가 서방의 그것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면, 중국 젊은 세대도 그냥 볼멘 소리 몇 마디 하고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컨텐츠는 삼국지연의초한지 같은 전근대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낙후된 상태며 예능 프로나 현대 드라마 거의 대부분이 타국의 그것을 표절하거나 플랫폼을 사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전근대 컨텐츠인 사극 조차도 무협 드라마 아니면 삼국지나 초한지,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닳고 닳은 내용이 전부인지라....[36]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론은 그가 죽고 난 후에 당헌에 삽입되었다.[37] 전임자인 후진타오만 하더라도 장쩌민의 훼방과 간섭으로 인해서 핵심 칭호를 달지 못했다. 시진핑이 핵심 칭호를 손에 넣은 건 장쩌민과의 사투 끝에 획득한 것이다.[38] 그조차도 시진핑이 상하이시 당서기 자리에 있을 때 상히이 시장으로 있으면서 시진핑을 보좌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넓게보면 습가군의 일원이기도 하다. 장쩌민에게 발탁됐지만 시진핑의 책사이기도한 왕후닝을 포함하여 그냥 구색만 최소한의 계파분배를 한 셈. 참고로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커리어상 시진핑과 아무런 고리가 없는 인물은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미는 전 광동성 당서기 왕양 상무 부총리 1인 뿐이다. 리커창도 따지고보면 국무원 총리 1기 재직중에 조용한 행보와 미국 등과의 관계에서 시진핑이 하지못할 유화적 발언등을 대신해주는등 시진핑 권력 강화에 협조한 습가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39] 이런 시진핑의 대처는 1차원적인 단순한 대처이자 장기적인 의미의 자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적절히 활용하여 오히려 지지율 상승의 수단으로 써먹는 것이 독재자 입장에서는 훨씬 효과적인데 그런 방법 자체를 써먹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경우는 일부러 방송을 통해 인터넷으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댓글을 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비판에 관대하고 진심으로 러시아를 위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는 식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역이용하여 지지율을 올리는 데 잘 써먹었고,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꼬마 아이들을 만찬에 초대하여 자신이 직접 차 등을 따라주며 예뻐해주는 태도를 보이며 자비로운 모습을 보였다. 반면, 시진핑은 자신에 대한 풍자나 비판을 전혀 이용할 줄 모르며, 무조건적으로 강경하게 차단하는 조치를 보여주어, 자신에 대한 반감을 사는 데 열심히 일조하고 있다. 그야말로 졸렬함의 극치.[40] 하지만 시진핑 폭정의 원조가 마오쩌둥의 이다. 더군다나 시진핑은 마오쩌둥 폭정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41] 이미 이전부터 중국 마오쩌둥주의 공산당이라는 마오주의 정당이 존재하고 있으나 금지당해 활발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들은 현 중국 공산당을 짝퉁 공산당이라며 공산주의의 탈을 쓴 제국주의로 여기고 있다.[42] 인터뷰 중간의 위니 더 푸빅브라더 언급 때문에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복절도중이다.[43] 정답은 옥보단 괴테파우스트라고 한다.[44] 선무문. 베이징의 거리.[45] 그럴만한게 중국의 종교인은 각 종교 협회가 아닌 정부에서 뽑는다고한다. 당연히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종교인이 나올리 없다.[46] 시다다는 시진핑의 애칭이고 펑마마는 펑리위안의 애칭이다.[47] 가사가 압권이다. "시집을 가려거든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요. 그는 결단력 넘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죠. 파리든 호랑이든 다 때려잡지요." "굽힐 줄 모르는 그는 어떤 변화와 어려움이 닥쳐도 계속 전진할 거예요" 해당 링크는 대만, 홍콩 네티즌들의 비추천 폭탄을 받아 추천:비추천 비율이 1:10이다.[48] 시다다 금지령을 내린 후에는 요우쿠 등지에서 삭제됨.[49] 중국에서 아침마다 야외에서 추는 야외 무용과 시진핑 찬양가들이 결합해 해괴한 물건들이 만들어졌다. 아래에 나오는 《우리들의 시다다》 댄스 버전도 비슷한 종류.[50] 중국의 56개 민족별로 멤버를 한명씩 뽑았다.[51] 사실 맨 앞의 가곡 버전 말고 이게 원곡이다.[52] 중국은 기후적 특성상 눈이 매우 귀하다.[53] 물론 그래도 무시무시한 액수임에는 변함없다. 시진핑 혼자 1%만 했다 쳐도 40조, 2016년 포브스가 집계한 이건희 재산이 약 14조다. 중국 1년 예산보다도 1.5배 이상 많은 액수다.[54]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자치구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왜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6월 25일에는 테러죄로 113명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 문제는 69건의 재판 중 4건의 재판의 판결 내용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는 것. 즉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55] 정황상 '무역 장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56] 국제 정상회담의 정상 간 발언기록은 비공개가 국제외교의 대원칙이다. 훗날 공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누가 속시원하게 대화를 하고 통크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여기서 무기를 빼는 대신 여기서 어떤 제재를 풀어주겠다와 같이 민감한 문제들은 절대 논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57] 다만 시진핑의 이 발언은 정말로 있었는지 불확실하다.여러가지 정황상 뭔가 어떤 말을 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이런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은 감안하자.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면 주변국들과의 충돌을 감수를 해야할것이다. 가뜩이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중에서 남중국해, 동중국해, 양안관계 가 겹쳐있는 상황인데, 특히 양안관계에 신경을 더 많이쓴다. 대표적으로 국공내전인데, 내전에서 승리한후 타이완 섬으로 공격하려고 할 찰나에,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모든 전력을 한반도로 쏟아붓는 바람에 대만 통일기회를 잃어버렸다.[58] 당시 마이클 안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공보 담당 부보좌관은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상 간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즉, 정상들간의 대화내용을 공개할수 없다는 내용을 밝힌것, 다시 말해 대화내용을 대중에 공개를 하지 않는 외교원칙이라 볼수있다.[59] 해당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들은 부패한 고위 관료들을 빗댄 것이다.[60] 'Hot'을 평가하는 것이면 단순히 미남이 아닌 매력남을 보는 것이다.[61] Tvn 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 평존. 유아독존에서[62] Tvn 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 평존. 유아독존에서[63] 중국에는 중국인은 다 죽었고 짱깨만 남았다던지 착한 짱깨는 죽은 짱개라던지 라는 혐중 유행어가 많은 공감을 얻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