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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성 계엄령 臺灣省戒嚴令(台灣省戒嚴令) | Martial law in Taiwan | |
《공포의 검사(恐怖的檢查)》, 황롱찬 1947, 목판화. | |
원인 | |
제2차 국공내전의 패전과 국부천대에 따른 타이완 내 사회 통제 강화 | |
승인일 | |
1949년 5월 19일 | |
근거법령 | |
「타이완성정부, 타이완성 경비총사령부 포고계자 제1호」 (臺灣省政府、臺灣省警備總司令部佈告戒字第一號) 「동원감란시기 임시조관」 (動員戡亂時期臨時條款) | |
발효시기 | |
1949년 5월 20일 ~ 1987년 7월 15일 | |
장소 | |
중화민국(대만) 타이완성 |
[clearfix]
1. 개요
대만 계엄령(臺灣戒嚴令), 혹은 타이완성 계엄령(臺灣省戒嚴令)은 국부천대 직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을 이유로 '타이완성정부, 타이완성 경비총사령부 포고계자 제1호'를 공포하여 1949년 5월 20일부터 1987년 7월 15일까지 타이완성 전역에 발령한 계엄령을 말한다. 이 계엄령이 발령된 시기를 대만에서는 계엄시대(戒嚴時代) 또는 계엄시기(戒嚴時期)라고 한다.발령 후 무려 38년 동안 이어졌는데,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이 경신하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계엄령 기간이었다.[1]
본 문서에서는 타이완성 계엄령과는 별도로 중화민국 푸젠성(진먼, 마쭈) 지역에 적용된 계엄령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계엄령까지 포함할 경우 43년이나 된다.
2. 역사
관련 문서: 백색 공포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시 위안환(圓環) 빌딩 안의 복도에서 과부인 린장마이(林江邁)가 담배 노점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대만(타이완성)에서 담배는 정부만 독점으로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 전매국 직원과 경찰이 이 노점을 단속하면서 그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에 항의하는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학생 천원시(陳文溪)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2.28 사건이라고 하며, 이를 계기로 타이베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시위가 타이완 섬 전역으로 확대되자, 아직 국공내전 중이었음에도 국민당은 3월 8일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 섬으로 증원군을 보내 대대적인 유혈진압을 강행했다. 이후 5월 16일 계엄령은 일단 해제된다.
국민당 정부는 1948년 5월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을 제정해 헌정을 사실상 중단하고, 임시조관을 근거로 12월 10일 전국에 계엄령을 발령한다.[2] 그러나 전장이 아니었던 타이완성은 계엄령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국공내전 패배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의 이전을 시작했다. 이에 맞춰 1949년 5월 20일 오전 0시를 기해 타이완성 정부주석 겸 경비총사령 천청의 명의로 타이완성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국공내전을 반대하거나, 국공평화회담을 주장하거나, 평화건설, 민생문제개선, 민주화 등을 요구하면 공산당 간첩이나 용공분자, 혹은 친일파 및 독립분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계엄령 기간 동안 대만에서는 주민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탄압이 이루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중국 대륙과 구분되는 대만 고유 문화를 억압하고 중국화를 강요했는데, 그 예로 학교에서 대만어나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면 벌금을 내고 해당 학생은 "나는 대만어를 사용했습니다"라고 적인 팻말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수만 명의 민간인들이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도 대만 특색의 것들, 지역적인 문화들이 억압당했다.
계엄령에 기반한 정부의 탄압에 맞서 대만인들은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지하에서 정치 운동을 진행해나갔다. 개중 강경한 세력은 체제 변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중화민국 정부를 때려엎고 대만인 본위의 국가를 세우자는 대만 독립을 주장했고 장제스에 대한 암살시도 등 폭력을 수반한 저항도 있었다.
장징궈 당시 총통의 명의로 '총통부 공보(總統府公報)'에 실린 대만 해엄령(解嚴令) |
원문 | 한국어 번역 |
新聞局六時舉行記者會
詳情請看7:30中視新聞 || 뉴스특보
장총통이 지금 선포한
내일 0시 계엄령 해제와 관련하여
신문국의 6시 동행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상세한 사항은 7시 30분 CTV 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대만 계엄령의 해제와 관련된 뉴스특보 자막 및 관련뉴스 예고
타이완 지구[3]의 계엄령은 장징궈가 총통으로 있던 1987년 7월에 해제되었다. 장징궈는 독재권력을 휘둘렀지만 아버지이자 선대 총통 장제스에 비해 유화적인 정치를 행하였으며 점차적인 자유화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계엄령을 해제했다.
1987년 7월 14일 해엄 관련 기자회견에서 샤오위밍 행정원 신문국장은 해엄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依據戒嚴法的規定,戒嚴就是可以實施軍事管制和軍事審判的措施,因此解嚴至少具有三方面實質的意義:
계엄법 규정에 따르면 계엄령은 군사력에 의한 통제와 군사재판을 가능케 하는 조치이다. 따라서, 계엄령 해제는 다음 세가지 의의를 갖는다.
一、軍事管制範圍的縮減與普通行政及司法機關職權的擴張
하나, 군사력에 의한 통제 범위의 축소 및 민간 행정 및 사법 기관 권한의 확대
例如,平民不再受軍法審判,而且縱使是現役軍人,如其所(觸犯)觸犯者為較輕微的犯罪行為,也不受軍法審判。
이를테면 민간인은 군사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현역 군인의 경우에도 경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군사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중략)
二、人民權力的大幅增進
둘, 국민 권리의 대폭 증진
例如,人民從事政治活動的權力,今後將以法律保障並鋪陳,因此在不久將來立法院通過人民團體組織法與集會遊行法以後,人民將可依法組黨、結社及集會遊行。
이를테면 계엄령 해제 후에는 국민의 정치 활동 권리는 법률에 따라 보장된다.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입법원이 인민단체조직법 및 집회시위법을 통과시킨 후에는 법률에 의하여 정당이나 결사 및 집회시위를 조직할 수 있다.
三、行政必須依據法律
셋, 행정행위는 법률에 준거하여야 한다.
(후략)
2.1. 연혁
- 1949년
- 5월 20일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성 전역에 계엄령 선포
- 12월 7일 국부천대 -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공산당에게 패배. 전쟁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패배한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 섬으로 본거지를 옮김.
- 1954년
- 우궈전 사건 발생.
- 1957년
- 자유중국 포위 사건 발생.
- 1958년
- 1960년
- 자유중국 사건 발생.
- 1964년
- 중화민국의 고속도로가 최초 개통(타이베이-지룽, 중산고속 공로의 구간 중 하나)
- 1971년
- 1975년
- 장제스 사망
- 1978년
- 장징궈 총통 취임.
- 1979년
- 1987년 7월 15일
- 타이완성 계엄령 해제
2.2. 번외: 푸젠성 지역의 계엄령
푸젠성은 1948년 12월 10일 전국 계엄령 발효에 따라 해당 계엄령의 적용을 받았다. 따라서 이 지역은 타이완성과 같이 계엄 상태였지만 두 지역의 계엄령은 법리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때문에 이 지역의 계엄령은 타이완성의 계엄령이 해제되더라도 자동으로 함께 해제될 수 없었고, 별도로 해제하는 절차를 거치거나 또는 계엄령 선포의 근거가 된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이 폐지되어야 해제될 수 있었다.1949년 국부천대로 인해 중화민국은 푸젠성 거의 대부분을 잃고 진먼과 마쭈만 남은 상태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치한다. 그리고 1956년부터 푸젠성 지역(진먼, 마쭈)은 계엄 상태를 넘어 아예 군정 상태에 들어갔다. 푸젠성 정부는 타이완 섬(타이베이 현 신뎬)으로 옮겨놓은 채 그 기능을 간소화했다. 비교하자면 타이완성은 계엄령이 적용되기는 했으나 일반 공무원으로 구성된 성정부가 있었고 거수기로나마 성의회가 있어 민정이 이뤄졌다.
타이완성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1948년에 발효된 전국 단위 계엄령은 해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1987년 이후에도 이 지역은 계엄 상태였다. 전국 단위 계엄령의 근거가 되는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이 1991년에 폐지된 이후에도 이 지역은 국방부가 다시 계엄령을 선포했고, 1992년 11월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3. 기타
- 일본 제국이 타이완 섬을 지배할 때도 계엄령이 내려졌던 적이 있다. 이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 함대에 타이완 섬이 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1905년 4월 13일에 펑후에, 그리고 5월 12일 대만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7월 7일 해제됐다.
- 2007년 민심 하락으로 국민소환 위기에까지 몰린 천수이볜 총통이 계엄령의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과거 계엄령 체제와 백색테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민주진보당 소속 총통이 계엄령을 운운하자 야당인 국민당, 친민당은 물론 여당인 민진당 입법위원들까지 동요했고, 결국 천수이볜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1 #2
4. 관련 문서
- 2.28 사건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
- 반교 -Detention- - 대만에서 만든 공포 게임으로, 대만 계엄령 시기의 독재와 탄압을 다루고 있다.
- 비정성시
- 여친남친: 대만에서 제작한 계륜미 주연의 로맨스 영화. 작중 시대배경으로 대만 계엄령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