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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해협 위기 | ||
1954 ~ 55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9.3 포격전) | 1958 제2차 대만 해협 위기 (진먼 포격전) | 1995 ~ 96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 |
관련문서: 양안관계 | 국공내전 | 국부천대 | 진먼 | 롄장 | 2022년 위기 |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관련 둘러보기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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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대만 해협 위기 Third Taiwan Strait Crisis 台灣海峽飛彈危機 | ||
기간 | 1995년 7월 21일 ~ 1996년 3월 23일 | |
장소 | 대만해협 일대 | |
대립 당사국 | 대만 | 중화인민공화국 |
지원국 | 미국 | |
지휘관 | 리덩후이 장정린 창야오밍 빌 클린턴 아치 R. 클레민스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 장쩌민 장젠 |
결과 | 교전없음, 현상유지 | |
영향 | 중국 인민해방군의 현대화에 박차, 미국의 대만 지원 의지 확인 | |
병력 | 중화민국 국군 미합중국 해군 | 중국 인민해방군 |
전력 | 중화민국 육군 중화민국 해군 중화민국 공군 USS 인디펜던스 USS 니미츠 USS 벨라우드 USS 벙커힐 등 | DF-15 J-7 J-8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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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5년부터 1996년 초까지 벌어진 중화민국(대만)-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군사 충돌 위기. 1954년의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1958년의 제2차 대만 해협 위기에 이어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혹은 1996년 대만 해협 위기라고 불린다.2. 배경
중화민국 총통 리덩후이는 19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실용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휴가나 골프 등을 명목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진과 중화민국의 경제가 호황이었던 것과 맞물려 좋은 효과를 낳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1992년 중화민국에 F-16 전투기 150대 판매를 승인하고 1994년부터 클린턴 행정부는 중화민국에 호의적인 정책들을 펴는 것으로 화답했다. 반대로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 중화인민공화국에겐 당연히 리덩후이 총통이 이뻐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96년 3월 23일에 치러질 중화민국 최초의 직선제 총통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여기엔 리덩후이 총통 자신도 출마할 예정이었다.3. 전개
리덩후이 총통은 이미 1994년에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미국에 가려고 했을 때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공작으로 인해 호놀룰루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군용 비행장에서 노숙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이때 자신을 2급 지도자 정도로나 취급하는 외교적 결례를 받고 있다고 크게 불평했고 이런 배경 속에 그가 모교인 코넬 대학교에 '대만의 민주화 경험'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에 첸치천(錢其琛)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은 크리스토퍼 워렌 미 국무부 장관에게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중화민국)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은 옳지 않다'는 정책 유지를 확인받고 만족했다.그러나 이번엔 리덩후이를 위해 미국 의회가 직접 나섰다. 5월 22일 미국 상원과 하원은 리덩후이 총통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라는 결의안을 각각 97:1(기권 2), 396:0(기권 38)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1]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이 미중관계를 망치고 있다며 비난했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의회의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2] 리덩후이 총통의 비자 발급은 승인되었고 그는 코넬 대학교에서 6월 9~10일까지 머무르며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 이것은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미 리덩후이 총통의 외교 전략이 실효를 보이던 와중에 미국의 중화민국에 대한 정책 변화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중화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장쩌민 주석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권고를 받아들여 무력시위에 나서기로 한다. 7월 21~26일에 인민해방군은 중화민국 근해 반경 10해리 지역에 DF-15 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하면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공표했으며 같은 날 인민해방군이 대만해협 건너편의 푸젠성으로 재배치되기 시작했고 선전 공작도 시작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의 각종 언론에 리덩후이 총통으로 인한 양안관계 악화에 대한 논평과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미사일 도발을 중단한 후 8월 1일에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에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지만 회담에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요구를 분명히 거절했고 이후 8월 15일부터 25일까지 다시 미사일 발사 도발이 진행되었다. 별개로 8월부터 11월까지 대만을 목표로 한 상륙작전 훈련도 진행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에 이 훈련이 '대만을 목표로 하는 훈련'이라고 명백히 밝혔고 이 시점부터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미국도 중화민국을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 없었고 12월 19일 니미츠 항공모함이 대만 해협을 강행돌파하면서 군사행동에 나설 것을 명백히 했다.
선거가 점점 다가오며 1996년 2월까지 푸젠성에는 12만 명의 인민해방군이 재배치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3월 12일부터 20일까지 군사훈련이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하며 3월 8일부터 15일까지 해상봉쇄로 중화민국을 압박하기 위해 중화민국 영해 내인 가오슝 항의 4~60㎞ 거리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당시 대만해협의 해운이 마비되었고 항공기들 역시 해당 공역을 우회하느라 주변의 항공기들이 모두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노림수로,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리덩후이를 선거에서 떨어트리고 중화민국에 해상 봉쇄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중화민국 국방부장 장중링(蔣仲苓)은 즉시 '영해 12해리 이내로 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즉각 공격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대응할 경우 전면전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3월 8일부로 중화민국 전역에 준전시태세가 발령되었으며 진먼섬 등 중화인민공화국의 위험에 노출된 지역엔 1급 전쟁대비 태세인 상황3이 하달되었다.
미국은 이에 대항해 3월 8일 제7함대의 제5항모전대(항공모함 USS 인디펜던스 기함)과 강습상륙함 벨라우드를 중화민국 인근으로 재배치했고 다시 3월 11일에 제7항모전대(USS 니미츠 기함)를 페르시아 만에서 중화민국 인근으로 집결시켰다.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미 해군 집단이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결국 자신들에게 미국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누가봐도 양안 간에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중화민국을 도울 게 보이는 이 강력한 제스처에 중화민국은 당연히 환호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외세의 개입, 간섭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비난에 '미국은 대만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발언으로 일축했고 그럼에도 대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은 3월 18일부터 25일까지 300대 이상의 전투기와 5척의 유도탄 구축함 잠수함들이 동원된 상륙작전 훈련을 진행하면서 중화민국의 각 선거구를 상대로 리덩후이를 지지하는 것은 곧 전쟁을 뜻하는 것이라는 선전을 시작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이 일련의 도발은 공포보다 분노를 훨씬 많이 낳았고 민진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의 상당수도 리덩후이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맞서는 지도자로 인식하여 리덩후이의 지지율이 5%p 이상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결과적으로 3월 23일 대선에서 리덩후이가 54%의 표를 획득하여 민진당 펑밍민의 21%보다 30%p 이상 득표해 압승을 거두었고 동시에 치러진 국민대회 선거에서도 의석 수가 줄기는 했지만 국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183석/334석)을 확보했다.
이렇게 리덩후이와 국민당의 압승으로 선거가 끝나자 정말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었던 양측의 분위기도 자연스레 가라앉았고 푸젠성으로 재배치된 인민해방군은 원 주둔지로 하나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는 도발했다가 투표에 참여한 중화민국 유권자의 ¾ 이상이 반중공 감정을 드러낸 셈이나 마찬가지였던지라 본전도 못 건진 셈이었다. 미 해군도 중화민국 인근 해역에 주둔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4월 내로 원 작전 구역으로 전부 귀환하면서 위기가 종료되었다.
4. 결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뼈저리게 느껴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1996년 12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러시아에서 킬로급 잠수함과 Su-30MK 100대를 구입했고 이후에도 첨단 무기를 도입하며 현재의 강군을 만들었다.[3] 특히 미사일 발사 중 미국의 GPS 재밍으로 DF-15가 엉뚱한 곳에 착탄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베이더우'라는 자체 GPS 시스템을 만들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적어도 미 해군이 자기네들 앞바다에서 간섭하는 것을 막으려면 항모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대두되어 랴오닝급의 건조 및 취역의 먼 계기가 되기도 했다.이 군사위기는 반대로 미중관계의 안정화로 이어졌고 1997년 빌 클린턴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해 주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중화민국 입장에선 전쟁 위기를 미국의 도움으로 넘겼지만 1997년 빌 클린턴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그간의 외교 정상화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이 중화민국의 국제적 인정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을지언정 현상 유지는 계속 지원하겠다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쁘지만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이 위기는 미국이 중화민국에 무기 판매를 늘려 자주국방력을 늘리도록 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일본은 조금이나마 의외의 수혜국이었는데 미국보다 가까운 곳에서 중화민국을 지원할 국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때부터 제한적인 해군력 증강을 묵인받았다. 이때는 해상자위대가 한창 공고급 구축함을 뽑아내면서 해상자위대를 강화하던 시점으로, 다카나미급과 하야부사급을 거쳐 휴우가급 헬기모함을 뽑아내기 시작하면서 해상자위대가 본격적인 지역해군으로 떠오르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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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에서는 의회 결의안도 법률의 효력을 가지며, 결의안에 대통령이 서명하면 그대로 법이 된다. 물론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상하 양원에서 각 재적 2/3의 찬성으로 거부권을 무력화(override)하면 그대로 법이 된다. 이 사안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씹힐 것이 너무나 뻔했기에, 국무부에서 별 수 없이 법에 따라 리덩후이 총통에게 비자를 내주어야 했던 상황.[2]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나라에서 국민주권의 최고 기관은 의회다. 행정부는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국정을 펴야 하기 때문이며 실제로 각국의 헌법은 행정부에 앞서 입법부를 먼저 규정하고 있다.[3] 현재의 중국 인민해방군, 특히 이전까지는 70년대 이전 수준의 장비를 운용하던 해공군의 전력이 비약적으로 증강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육군도 최신 자주포, 3세대 MBT 도입등을 통해 현대화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