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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공산당이 1990년대 이후 새로 창조해낸 중국의 신종 국가관이자 역사관. 중국은 한족만의 나라가 아니라 56개 민족이 어울어진 통일된 다민족 국가라는 개념이다.2. 상세
원래 중국에서는 한족 정권을 침략하고 정복한 타민족들(몽골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을 중국의 적으로 여겼다. 즉, 본래 중국인들에게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이고 자신들(한족)을 공격하거나 침입한 민족들은 적대세력이며 타자였다. 일례로 쑨원은 멸만흥한(만주족의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 국가를 부흥시킨다)을 외치며 신해혁명을 일으켰다.이는 현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마오쩌둥은 1958년 11월에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라고 하고, 1964년 10월에는 북한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요동)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등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북한)의 역사로 인식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도 1963년 6월 28일 북한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라고 얘기했다.
새로운 중화민국은 ‘오족공화(五族共和)’를 내세우면서 청 제국 내부의 여러 비한 종족을 그 구성원으로 포함하고자 하였으나 이는 당시 한족과 비한족들이 ‘중화민족’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생 중화민국의 영토를 드넓은 청 제국의 판도에 걸쳐 구성하고자 이들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한족 집단들은 이전 청조 아래 주어졌던 정치적 승인이 철회되고 한화의 대상으로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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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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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사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를 구성하는 ‘중화민족’ 다원일체론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조는 화하(華夏)의 역사적 강역을 넘는 유목민족을 포괄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고 한족은 그 일부로서 이에 포함되었는데, 중국은 오히려 이러한 청제국의 역사를 한화나 혹은융합을 전제로 다원일체의 ‘중화민족’이 만든 역사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청 제국 안에서 한족에 비해 특별한 지위를 승인받았던 만주 몽골 티베트인들이 제국 붕괴 이후 ‘과분’ 담론과 오족공화의 논의와 함께 그 역사적 목소리가 억눌려버린 것을 의미한다. 여기엔 중국의 오랜 역사를 일정한 역사 목적론적 입장에서 권력 담론으로 재구성하면서 청사가 중국 역사와 관련해서 담고 있는 많은 역사적 내용들이 잠식시켜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청조(淸朝)의 제국 통치와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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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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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사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를 구성하는 ‘중화민족’ 다원일체론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조는 화하(華夏)의 역사적 강역을 넘는 유목민족을 포괄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고 한족은 그 일부로서 이에 포함되었는데, 중국은 오히려 이러한 청제국의 역사를 한화나 혹은융합을 전제로 다원일체의 ‘중화민족’이 만든 역사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청 제국 안에서 한족에 비해 특별한 지위를 승인받았던 만주 몽골 티베트인들이 제국 붕괴 이후 ‘과분’ 담론과 오족공화의 논의와 함께 그 역사적 목소리가 억눌려버린 것을 의미한다. 여기엔 중국의 오랜 역사를 일정한 역사 목적론적 입장에서 권력 담론으로 재구성하면서 청사가 중국 역사와 관련해서 담고 있는 많은 역사적 내용들이 잠식시켜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청조(淸朝)의 제국 통치와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그러나 중소결렬과 1990년대 들어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에서 독립을 외치며 테러가 발생하는 등 변방지역이 불안정해지자 내부단속을 도모하고자 했고, 1980~90년대 들어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하며 국력이 커진 한국이 나중에 한반도를 통일한 후 고구려 영토 회복을 노릴 것를 우려하였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새로운 역사관과 국가관을 만들어내었고 실제 과거 국가나 민족들의 계승이나 귀속의식 같은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현재 중국의 국경선 안에 있는 모든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문화는 중국의 것'이라는 황당한 개념을 창조해냈다.
몽골의 칭기즈 칸을 중화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과거에는 여진족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으로 여겨지던 악비가 격하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거나 한국의 전통문화를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 문화로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