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8:18:42

동주

1. 인명
1.1. 실존 인물1.2. 가상 인물
2. 대한민국의 영화3. 국명
3.1. 견융 침략 이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주나라를 지칭하는 말3.2. 전국시대의 국가
3.2.1. 역사3.2.2. 역대 군주

1. 인명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주로 남자에게 많이 쓰이는 이름이지만 여성에게도 쓰인다.

1.1. 실존 인물

1.2. 가상 인물

2. 대한민국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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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명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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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견융 침략 이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주나라를 지칭하는 말

주(周)나라가 이민족의 침략으로 수도인 호경이 공격을 받아 쇠락하자 기원전 771년 평왕 때 호경에서 동쪽의 낙읍[1]으로 천도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점이 되며 이때 중흥한 국가를 그 이전과 구분할 때 쓰는 말이다. 견융 침략 전의 수도인 호경이 낙양보다 서쪽에 있었으므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시기부터 천도 이전까지의 주나라를 서주, 그 이후 전국시대까지 생존했던 주나라를 동주라고 부르며[2] 보통 역사 연구에서 동주라고 하면 이 동주를 의미한다.

이미 오랑캐에게 털리고 축소되어 세력이 미약했지만 형식상이나마 춘추시대에는 천자라며 조공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국가의 수가 크게 줄어들어 통폐합되고, 주변 국가들이 상당한 강대국들이 되자 무시당하다가 고왕 때에 사실상 땅이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3.2. 전국시대의 국가

3.2.1. 역사

전국시대에 이르러 주나라 제31대 왕 고왕은 형 사왕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다. 그리고 다음해에 동생 희게를 하남에 봉해 서주공국을 만들었고 희게는 사후 서주 환공 시호를 받았으며, 작은 아들 희반은 공 땅에 봉해 동주공국의 초대 군주가 되었다.

이와 같이 원래의 수도인 성주(낙읍) 부근 밖에 지배가 미치지 않게 된 주왕국의 영역은 서주공국, 동주공국으로 나뉘었으며, 직할령이 아예 없어진 주왕실은 서주공국에 얹혀살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 전국시대의 시작을 고왕으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물론 서주공국과 동주공국은 아예 왕칭하면서 주 왕실을 무시하던 전국칠웅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었기에 주 왕실을 예우하였고 주 왕실은 이 두 공실에 대해선 발언권이 있었으나, 문제는 안 그래도 약소국인 주 왕국이 둘로 쪼개진 데 있었다.

한편 서주니 동주니 하는 이런 명칭들은 다 후대 역사가들이 구분을 위해 붙인 것일 뿐 당대 정식 국호는 어디까지나 주(周)였고, 당대 다른 나라 그 누구도 서주나 동주로 부른 바 없었다. 그러나 서주공국과 동주공국은 정말로 국호가 '서주', '동주'였음이 특이사항이다.

서주공국이 진(秦)나라에게 공격 받아 기원전 256년에 망하게 되는데, 이는 주난왕이 합종에 동조하여 반진 연합군에 서주공국 군대를 파병한 게 원인이었다. 이 정치적 결정은 서주공국 군주가 한 게 아니라 주난왕이 주도적으로 한 것이기에, 비록 실권과 통치는 서주공국 군주가 하였으나 주난왕의 정치적 영향력이 없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주난왕을 비롯한 주왕실 및 서주공실의 왕족들은 진나라로 압송되고 주나라 왕 자리 자체는 일단 그 단계에서 없어졌으나, 동주공국은 비록 그 군주의 작위가 군(君)으로 강등되었을망정 7년은 더 버텼다. 그러나 결국 진(秦) 장양왕 원년(기원전 249년), 당시 진나라의 상방이었던 여불위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249년에 멸망했다.

3.2.2. 역대 군주

  • 혜공(惠公) 반(班) - 기원전 367년 ~ 기원전 360년, 서주 위공의 아들.
  • 무공(武公) - ? ~ ?
  • 소문군(昭文君) - ? ~ ?
  • 동주군(東周君) - ? ~ 기원전 249년

[1] 낙양을 말함.[2] 이는 전한을 서한, 후한을 동한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이 두 나라도 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한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