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12 16:55:36

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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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 | Chu Dynasty
파일:십팔제후왕.png
십팔제후왕 임명 직후의 후초 (기원전 206년)[1]
기원전 208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6년 (칭제)
<rowcolor=#ece5b6> 성립 이전 멸망
서초
별칭 후초(後楚)
위치 중국 남동부 → 중국 전역
수도 팽성(彭城) → 침성(郴城)[2]
민족 화하족
언어 상고 중국어
문자 한자
종교 중국 토속 종교
화폐 불명
정치체계 군주제, 봉건제
국가원수 [3]황제[4]
국성 미성 웅씨(羋姓 熊氏)
주요 황제 의제 (? ~ 기원전 206년)
주요 재상 범증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04년)
주요 섭정 항우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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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역사
3.1. 연표
4. 군사
4.1. 지휘관
5. 정치6. 역대 황제7. 관련문서


1. 개요

항우초나라 부흥을 명분으로 몰락한 초나라의 왕족인 초 회왕(楚懷王)을 옹립하여 건국한 나라. 이후 항우가 통일 진나라의 함양을 정복하며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의 통일 왕조가 되었다. 그러나 초의제가 항우에게 피살되고 각 지역의 제후들이 반역하며 황제국으로서의 후초 체제는 1년도 못가고 붕괴되어 버린다.

2. 상세

사실 통일왕조라는 것도 명목상에 불과하지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울뿐인 왕조에 불과했다. 출발 자체도 옛 초나라 영토에서 거병한 항량에 의한 옹립이었으며, 항량의 뒤를 이어 대륙의 패권을 잡은 항우가 중원을 나누어 십팔제후왕을 봉할 때까지도 명분에 불과한 허수아비 왕조였다. 게다가 후초의 섭정이자 실권자인 항우마저 각 군벌이 난립하는 중원을 통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후초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왕조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냥 명분뿐인 황제국, 천자국 정도로 보면 된다.

일단 진나라를 정리한 항우가 초의제를 형식상으로나마 천자로 받들고 항우 본인은 통일 초나라, 즉 후초의 제후국인 서초를 건국하고 스스로를 패왕[5]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중원 각 지방의 군벌들도 이를 수용하여 항우의 자의적인 분봉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후초에는최소한 형식적인 분봉 주체로서의 의미 정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실상 초의제가 피살된 시점에서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후부터는 명분상의 천자마저 폐위시킨 서초패왕 항우가 절대자로 군림하는 서초만이 남게 된다. 물론 중원 각지에 봉해진 여러 제후들은 찬탈자 혹은 대역죄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항우에 대하여 대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6]

3. 역사

3.1. 연표

기원전 208년 항량송의에 의해 웅심 초회왕으로 옹립
기원전 207년 거록대전
기원전 206년 웅심 황제로 즉위 / 웅심 사망, 멸망

4. 군사

명목상 초나라를 계승한 국가로서 반진(反秦)전쟁의 맹주였던 국가인 만큼, 그 군사력은 상당했다. 실제로 항량과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의 활약을 통해 그 막강한 전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항씨가문은 명분상으로만 후초의 신하이지 실상은 세력의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즉, 후에 서초 군사력의 핵심이 되는 이들을 제외하면 후초 자체의 전력, 의제가 장악한 병력은 전무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의제가 후한의 헌제와 같이 그저 명목상의 군주가 아니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의제는 후초 황제로서 직분을 실제로 하였고, 자신만의 세력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세력이 항우에 비해 미약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의제의 최후를 묘사한 기록을 살펴보면 항우가 구강왕(九江王) 영포(英布),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 등 맹장 영포를 포함한 세 명의 왕을 동원해서 의제를 시해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아무런 실권이나 군사력조차 없는 의제를 시해하기 위해 왕을 세명이나 동원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실상은 단순한 황제 시해와 같은 정변이 아니라 후초 황제와 세 제후국 간의 전투가 있었고, 거기서 패한 웅심이 전사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항우가 황제 시해에 대한 책임소지를 분산하기 위해 왕을 세명이나 동원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항우가 그정도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었을리 만무하다.

아무튼 항씨 가문이 장악한 병력도 후초의 전력으로 본다면 당대 최강이라 할만한 군사력을 지닌 셈이고, 항씨 가문의 전력을 제외하고 계산한다면, 군사력은 미약했을 것이다.

4.1. 지휘관

後楚
후초의 상장군(上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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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말대
항량 송의 항우
※ 둘러보기: 한의 대장군 (大將軍), 서초의 대사마 (大司馬) }}}}}}}}}}}}}}}

일단 명목상으로나마 의제를 받들어 후초의 소속에서 활약한 지휘관들은 다음과 같다.
  • 항량 - 후초의 개국 공신1이자, 초기 후초의 군사적 기반을 다지고 안정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준수한 지휘관. 그러나 거듭되는 성공에 자만한 탓인지, 진나라 최후의 명장 장한을 상대로 패사했다.
  • 송의 - 후초의 개국 공신2이자, 항씨 가문을 견제하기도 했던 유력인. 그러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 자체를 보여주기도 전에 항우에게 살해당해 군권을 빼앗긴다. 행적을 보면 야전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 항우 - 패왕(覇王)이라 불리는 당대 중국 최강의 야전지휘관이지만 의제에 대한 충성심이 전혀 없었다.

  • 유방 - 간과하기 쉽지만, 유방은 송의 사후에 항우의 대항마로 낙점되어 의제의 오른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받았다. 실제로 항우와 함께 관중으로 진격하라는 의제의 명을 수행하여 관중왕 레이스의 주자로 뛰었고, 중원 최초로 관중을 함락시킨 인물이다. 항우와 한신에 가려져서 그렇지 당대에서도 손에 꼽는 군사능력을 지닌 지휘관이다.

5. 정치

군현제를 시행했던 진나라나 군국제를 통해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행하던 한나라와 달리, 후초는 봉건제를 시행했다.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을 보면 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의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후초의 실질적인 집권자인 권신 항우의 세계관이 봉건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초는 이렇게 나눠진 천하를 통치할만한 군사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6. 역대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이름 출생 사망 연호 재위기간 능호
1 없음 의황제
(義皇帝)
심(心) BCE ? BCE 206 - BCE 208 ~ BCE 206 없음


7. 관련문서


[1] chu(초록색)은 항우서초이고, 후초는 지도에 나온 모든 나라를 아우른다. 서초는 명목상으로는 후초의 제후국인데, 실상 후초의 의제서초항우가 세운 허수아비 황제로 전락한다. 결국 후초 제국은 기원전 206년, 딱 1년 동안만 단명하였다. 진나라를 멸하고 의제를 황제로 추대한 항우는 바로 그 해 의제를 시해했기 때문. 참고로 유방한나라(당시 명목상 후초의 제후국)는 서쪽에 있는 연보라색(Hàn)이다.[2] 후대의 한나라 형주의 계양군 부근이자 현재의 천저우시. 말이 옛 초나라 영토지 그 당시 기준 촉(蜀)을 능가하는 저개발지역이었다. 당장 당대 한족의 중심지이던 하남성 낙양시나 섬서성 서안시와의 거리만 고려해 봐도 얼마나 벽지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초나라가 묘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시간 동안 중원권 국가의 영향을 받던지라 중화문명권에는 포함되어있었는데 그 초나라 기준으로도 깡촌에 가까웠다. 광둥성 바로 북쪽에 위치해있었는데 당시 광둥성은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통의 언어를 쓰는 종족들(남월(南越)이라고 부르는 국가였다)이 살던 땅이었다. 심지어 이 침성은 항우의 심복인 임강왕 공오의 영지 안에있는 지역이었다.[3] 기원전 208년부터 칭왕[4] 기원전 206년부터 칭제[5] 항우가 패왕이라고 칭한 것은 자신이 다른 제후국의 왕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6] 물론 초의제 피살 이전부터 항우에 대한 제후들의 불만은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초의제 피살은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십팔제후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