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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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colcolor=#ece5b6> 초 楚 | Chu Dynasty | ||
십팔제후왕 임명 직후의 후초 (기원전 206년)[1] | ||
기원전 208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6년 (칭제) | ||
<rowcolor=#ece5b6> 성립 이전 | 멸망 | |
진 | 서초 | |
별칭 | 후초(後楚) | |
위치 | 중국 남동부 → 중국 전역 | |
수도 | 팽성(彭城) | |
민족 | 화하족 | |
언어 | 상고 중국어 | |
문자 | 한자 | |
종교 | 중국 토속 종교 | |
화폐 | 불명 | |
정치체계 | 군주제, 봉건제 | |
국가원수 | 왕[2] → 황제[3] | |
국성 | 미성 웅씨(羋姓 熊氏) | |
주요 황제 | 의제 (? ~ 기원전 206년) | |
주요 재상 | 범증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04년) | |
주요 섭정 | 항우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 | |
현재 국가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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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항우가 초나라 부흥을 명분으로 몰락한 초나라의 왕족인 초 회왕(楚懷王)을 옹립하여 건국한 나라. 이후 항우가 통일 진나라의 함양을 정복하며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의 통일 왕조가 되었다. 그러나 초의제가 피살되고 각 지역의 제후들이 반역하며 후초 체제는 1년도 못가고 붕괴되어 버린다.2. 상세
사실 통일왕조라는 것도 명목상에 불과하지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울뿐인 왕조에 불과했다. 옛 초나라 영토에서 일어날 때부터 패권을 잡은 항우가 중원을 나누어 십팔제후왕을 봉할 때까지도 명분에 불과한 허수아비 왕조였고, 실권자인 항우마저 각 군벌이 난립하는 중원을 통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통일왕조라고 보기는 어렵다.일단 진나라를 정리한 항우가 초의제를 형식상으로나마 천자로 받들고 항우 본인은 통일 초나라, 즉 후초의 제후국인 서초를 건국하고 스스로를 패왕[4]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중원 각 지방의 군벌들도 이를 수용하여 항우의 자의적인 분봉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소한 후초에게 형식적인 분봉 주체로서의 의미 정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실상 초의제가 피살된 시점에서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후부터는 명분상의 천자마저 폐위시킨 서초패왕 항우가 절대자로 군림하는 서초만이 남게 된다. 물론 중원 각지에 봉해진 여러 제후들은 찬탈자 혹은 대역죄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항우에 대하여 대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5]
3. 역대 황제
대수 | 묘호 | 시호 | 이름 | 출생 | 사망 | 연호 | 재위기간 | 능호 |
1 | 없음 | 의황제 (義皇帝) | 심(心) | BCE ? | BCE 206 | - | BCE 208 ~ BCE 206 | 없음 |
4. 관련문서
[1] chu(초록색)은 항우의 서초이고, 후초는 지도에 나온 모든 나라를 아우른다. 서초는 명목상으로는 후초의 제후국인데. 실상은 후초의 의제는 서초의 항우가 세운 허수아비 황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기원전 206년 딱 1년 동안만 단명하였다. 진나라를 멸하고 의제를 황제로 추대한 항우는 바로 그 해 의제를 시해한다. 참고로 유방의 한나라(당시 명목상 후초의 제후국)는 서쪽에 있는 연보라색(Hàn)이다.[2] 기원전 208년부터 칭왕[3] 기원전 206년부터 칭제[4] 항우가 패왕이라고 칭한 것은 자신이 다른 제후국의 왕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5] 물론 초의제 피살 이전부터 항우에 대한 제후들의 불만은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초의제 피살은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십팔제후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