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6:44:40

후초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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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 | Chu Dynasty
파일:십팔제후왕.png
십팔제후왕 임명 직후의 후초 (기원전 206년)[1]
기원전 208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6년 (칭제)
<rowcolor=#ece5b6> 성립 이전 멸망
서초
별칭 후초(後楚)
위치 중국 남동부 → 중국 전역
수도 팽성(彭城)
민족 화하족
언어 상고 중국어
문자 한자
종교 중국 토속 종교
화폐 불명
정치체계 군주제, 봉건제
국가원수 [2]황제[3]
국성 미성 웅씨(羋姓 熊氏)
주요 황제 의제 (? ~ 기원전 206년)
주요 재상 범증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04년)
주요 섭정 항우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
현재 국가
[[중국|]][[틀:국기|]][[틀:국기|]]

1. 개요2. 상세3. 역대 황제4. 관련문서

[clearfix]

1. 개요

항우초나라 부흥을 명분으로 몰락한 초나라의 왕족인 초 회왕(楚懷王)을 옹립하여 건국한 나라. 이후 항우가 통일 진나라의 함양을 정복하며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의 통일 왕조가 되었다. 그러나 초의제가 피살되고 각 지역의 제후들이 반역하며 후초 체제는 1년도 못가고 붕괴되어 버린다.

2. 상세

사실 통일왕조라는 것도 명목상에 불과하지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울뿐인 왕조에 불과했다. 옛 초나라 영토에서 일어날 때부터 패권을 잡은 항우가 중원을 나누어 십팔제후왕을 봉할 때까지도 명분에 불과한 허수아비 왕조였고, 실권자인 항우마저 각 군벌이 난립하는 중원을 통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통일왕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진나라를 정리한 항우가 초의제를 형식상으로나마 천자로 받들고 항우 본인은 통일 초나라, 즉 후초의 제후국인 서초를 건국하고 스스로를 패왕[4]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중원 각 지방의 군벌들도 이를 수용하여 항우의 자의적인 분봉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소한 후초에게 형식적인 분봉 주체로서의 의미 정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실상 초의제가 피살된 시점에서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후부터는 명분상의 천자마저 폐위시킨 서초패왕 항우가 절대자로 군림하는 서초만이 남게 된다. 물론 중원 각지에 봉해진 여러 제후들은 찬탈자 혹은 대역죄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항우에 대하여 대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5]

3. 역대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이름 출생 사망 연호 재위기간 능호
1 없음 의황제
(義皇帝)
심(心) BCE ? BCE 206 - BCE 208 ~ BCE 206 없음


4. 관련문서


[1] chu(초록색)은 항우서초이고, 후초는 지도에 나온 모든 나라를 아우른다. 서초는 명목상으로는 후초의 제후국인데. 실상은 후초의 의제서초항우가 세운 허수아비 황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기원전 206년 딱 1년 동안만 단명하였다. 진나라를 멸하고 의제를 황제로 추대한 항우는 바로 그 해 의제를 시해한다. 참고로 유방한나라(당시 명목상 후초의 제후국)는 서쪽에 있는 연보라색(Hàn)이다.[2] 기원전 208년부터 칭왕[3] 기원전 206년부터 칭제[4] 항우가 패왕이라고 칭한 것은 자신이 다른 제후국의 왕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5] 물론 초의제 피살 이전부터 항우에 대한 제후들의 불만은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초의제 피살은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십팔제후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