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4-19 17:27:14

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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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족을 하고 있는 발.jpg
전족
缠足(간체자), 纏足(정체자)

1. 개요2. 역사
2.1. 연원2.2. 성행2.3. 소멸
3. 실상4. 전족을 하는 이유5. 매체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과거 중국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발가락을 꺾어 발바닥에 붙여 하나로 뭉친 뒤 으로 꽁꽁 동여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막았던 풍습, 혹은 그 풍습으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발을 일컫는 말.

전족(纏足)이란 단어에서 전()이란 글자는 묶는다, 휘감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전족'이란 '(무언가로) 휘감은 발'이란 뜻이다. 북송 때부터 10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하다가 본토에서는 1930년대 후반 들어서, 식민지(대만, 홍콩, 마카오 등)에서는 식민 정부의 금지 조치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족이 사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미국 남침례회 소속 선교사 로티 문(Lottie Moon 1840-1912)이다.[1]

전족이 된 발은 이렇게 된다.[2] 심지어 저 사진조차 전족 사례 중에선 나름 깔끔하고 잘 된 전족에 속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전족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한 외형이며, 실제로 그 과정 또한 많이 고통스럽다. 또 사진을 대충봐도 알겠지만 돼지의 발과 굉장히 유사하다.

2. 역사

2.1. 연원

21세기 기준으로 언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으며 중국 전설 중에선 하나라 시절 전설 중에 전족이 언급되었단 것도 있고 오대십국시대 초 즈음에 시작되었다는게 정설인 양 퍼져 있으나[3] 현재까지 발견된 전족 관련 유물 중 제일 오래된 것은 북송 시기에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그 형태도 보편적으로 알려진 살과 뼈를 뒤틀어 만드는 기이한 형태가 아니라 그냥 발을 끈 같은 것으로 조여 매서 발 성장을 막고자 하는 원시적이며 뒷세대의 전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덜 잔혹한 형태이다.

북송 시기에 어떻게 전족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한족이 모종의 이유로 자체적으로 이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부터 남당 때 궁녀 요랑(窅娘)이 헝겊을 발에 감고 춘 춤이 황제 이욱의 마음에 들어서 이에 사람들도 너도 나도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 서방 지역의 이민족들의 전통인 발 끝으로 추는 춤이 중국에 전래 및 유행되는 과정에서 발을 작게 만드는 게 유행하기 시작되었다는 등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이 시기에는 후술할 것과 같이 아직 대규모로 유행하진 않아 기녀나 일부 상류층 등에서나 어느 정도 유행하던 수준으로, 북송 초기 태평흥국 8년(983) 때의 돈황 벽화를 보면 귀족 부인들의 발이 전족이 아닌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이며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전족은 아마도 11세기쯤 생겨서 송 휘종 선화 년간에 많이 보급되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따라서 북송시대에는 전족이 아직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고, 남송에 이르러 상당히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도 궁중의 여인들이나 가기(歌妓)들에게만 보편적인 것이었을 뿐 사대부 계층의 여자 가운데에는 여전히 전족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상술한 대로 북송 시기 전족은 비교적 가벼운 방식으로 행해졌으며, 그만큼 '전족'이란 이름에 비해 신체를 기형적으로 뒤트는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잘 된 전족이 대략 17cm 정도 되었다는데 3치 금련은 고사하고 발이 가시적인 수준은커녕 조금이나마 효과를 보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이때의 발에 대한 미적 감각도 후기 전족의 발등이 부풀어오른 형태와 달리 보통 발처럼 평평한 형태를 선호했다. 남송 시절 전족 유물들도 대부분 14cm 정도였으며 송나라 시절에는 전족에 거부감도 많아 북송시대 11세기 정이(程頤)나 남송시대 13세기 차약수(車若水)와 같은 사람은 당시 퍼져나가던 전족을 반대하고 집안 여인들에게도 하지 못하게 했다.

사서에 의하면 송대의 전족의 기준은 곧고 날씬한 것이 미의 기준이었다. 송나라 시대의 전족은 명나라청나라 때보다 길어 13.4cm에서 17cm 정도였다. 또한 송대의 전족은 귀부인들의 전유물로 보통 여인들은 전족을 하지 않았다. 즉 송나라 시대의 전족은 현대와 비슷하게 작고 곱고 길쭉하게 뻗은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나름대로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유지하려는 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2.2. 성행

이렇듯 남송때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유행을 탈 정도도 아니었으며, 신체를 기형적으로 바꾸는 수준도 아니었으나, 원나라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에 알려진 전족 유행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명확한 예는 원나라 잡극이나 산곡에서 사람을 묘사할 때 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없고 작은 발에 대하여 악명 높은 삼촌금련(三寸金蓮)이 언급된다. 이상적인 발은 크기가 3촌(약 9cm)쯤 되고 모양이 금빛 연꽃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4] 명나라 대에 이르면 궁의 여자들에겐 전족이 필수가 되었는데, 홍무제 주원장이 자신에게 끝까지 저항한 장사성의 본거지 백성들을 처벌할 때 남자는 글을 배우지 못 하게 하고 여인은 전족을 못 하게 함으로써 전족을 하지 않는 것이 천민죄인의 상징처럼 통하여 전족이 더욱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자들은 아내의 전족용 신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발 크기를 자랑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내의 신발이 유독 작으면 그만큼 부러움을 샀던 모양. 명나라 초대 황후였던 효자고황후 마씨는 본래 하류층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전족이 되지 않아서 발이 컸으므로 백성들에게 '큰 발 마황후'라고 놀림을 당했다.[5]

청나라가 세워진 뒤 청나라 황제는 민족 구분 차원에서 한족 여성의 전족은 신경쓰지 않은 대신 만주인 여자들은 전족을 하지 못하도록 이 부분을 엄격히 다스렸다.[6] 강희제 때 한 번 전족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힌 데다가 정치와 크게 상관없는 여자들의 일인지라 문자 하나하나까지 트집 잡아 한족 문인들을 탄압한 청나라도 극심한 반발을 감수하고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7] 또한 청나라 조정의 전족 혐오는 오히려 한족 여인들을 분기탱천하게 만들어 "남자들은 굴복하여 변발을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면서 전족을 더 심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막힌 민족 투쟁 정신

거기다 만주인이라고 무조건 전족 문화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는데, 대표적으로 건륭제처럼 한족 여인의 전족을 아주 좋아한 황제도 있었다. 청대의 전족의 변형으로 10대 초중반 만주족 여자아이들이 한 도조아가 있지만 여자의 자율에 맡겼고 한족보다 시행 연령이 높고 길이가 길었으며 발을 부러뜨려서 묶는 게 아니라 발이 커지지 않도록 꽉 조이는 정도라 염증이나 감염, 기형의 위험은 전족과 비슷비슷하긴 했어도 최소한 한족 여자들처럼 장애인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도조아 말고도 만주족 귀족 여인들은 하이힐처럼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어 전족한 여인의 종종걸음을 모방했다. 화분혜(花粉鞋)라는 신발로, 걷는 데도 시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파일:화분혜.jpg
화분혜의 모습. 종종걸음을 걷기 위해 신발굽이 매우 불안정한 모습으로 디자인되었다.
명청대에는 원나라 때 나온 삼촌금련(또는 삼치금련)이란 말이 더 발전하여 '발의 크기는 9~10cm를 넘지 않고 칼날처럼 가늘며 냄새까지 좋아야 한다.'는 현대인 관점에선 야만스럽기 그지없고 해괴한 기준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여자들의 고통이 극심해졌으며 그와 반비례로 전국적으로 청명절전족 미인 선발대회까지 열렸다. 이 날만은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보여주어선 안 되는 전족된 맨발을 문 밖으로 내놓고 남자들의 평가를 받았고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 집의 남자는 모든 남자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상술한 대로 심사 기준은 (그 시대 기준)모양이 예쁘기만 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 제일 낮은 등급이었고 모양만이 아니라 촉감도 좋은 전족이 중등급, 이에 더불어 향기까지 좋은(...) 전족이 최상급의 전족으로 극찬받았다.

그러나 청말에 태평천국에서 전족을 금지했고[8] 변법자강운동을 전개한 캉유웨이량치차오가 전족을 금하는 모임을 만들었으며 강희제 이후 백수십년이 지난 1894년 서태후가 다시 금지령을 내려 이를 근절하려 했으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전족 문화가 수백 년 넘게 지속되면서 이미 미의 기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터라 여성에게 전족을 금지한다는 말은 현대로 치자면 화장을 하지 말고 일부러 옷을 추레하게 입으며 추녀 행세를 하라라는 식으로 시집을 못 가는 노처녀가 되라는 말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도 대부분의 여성들의 진로는 시집을 가는 게 유일하다시피 했으므로 이런 혼삿길에 제약을 주는 정책은 거부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한창 성행할 때 전족은 신분 상승 수단까지 될 정도였다. 전족에 완벽하게 적합한 을 가진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어떤 여자아이든 아무리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도 전족만 완벽하게 되면 높은 가문에 시집을 갈 수 있었고 가족들의 출세는 물론 그 여자아이를 배출한 마을 사람들 전체도 연줄이 생기거나, 최소한 소소한 선물이라도 받아챙기는 식의 직, 간접적인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3. 소멸

전술하듯 전족이란 것 자체가 의도적으로 여자의 발에 장애를 만드는 행위였기에 고통도 고통이나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9] 이렇듯 여러 문제점이 존재했기에 청나라 건국 후에는 강희제서태후가 직접 이를 근절시키려 시도했을 정도였으며, 중국이 본격적으로 근대에 들어서면서 더더욱 이런 기조가 강해졌음에도 고착화된 전통인지라 쉽게 축출시키지 못했다.[10] 1911년 신해혁명 이후 1912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의 인식이 바뀌지는 않아 비공식적으로 행해졌다.

그러다가 1919년 5.4 운동 이후 중국인들도 인식이 바뀌게 되면서 전족이 사라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중국이 서구 열강에 침략당하는 상황에서 전족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중화민족을 나약하게 만든 원흉으로 지목당했다. 전족을 거부하는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 여성 운동의 중요한 모토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저우언라이 초대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의 아내 덩잉차오. 중화민국북양정부국민정부, 이후의 중국 정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졌던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전족이라는 악습의 타파였다. 나머지 하나는 문맹 퇴치.

물론 이 때도 초기에는 상당수의 중국 여인들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많았다. 해당 세대의 전족은 미의 기준인 동시에 남들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부위로, 당시 문화적 관점에서 비유하자면 전족에 간섭하거나 전족을 드러내라는 행위는 여성의 성기를 상대로 해당 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변법자강운동 당시 일어났던 천족운동(天足運動)은 전족된 발을 모두 풀고 전족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전족된 발을 보인 여성들 중에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도 빈번했다고 할 정도였다.[11]

하지만 이전과 달리 연달아 정부측에서 이를 강행하기를 반복했고, 서양 문화 또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전족에 대한 반전(反纏) 여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10년대부터 해안가 지역을 기점으로 하여 여자아이에게 전족을 시키는 풍습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내륙 지역 또한 점차 많은 지역에서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중화민국 시절에는 행정력이 전국에 완전히 미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족 풍습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전족을 한 발이 미의 증표로 보는 시각이 많이는 줄어들었고, 중국 수립 이후인 1950년대에는 전족 풍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전족 풍습을 유지했던 곳은 윈난성 퉁하이현 류이(六一)촌[12] 등 중국 남부인데 이런 곳들도 1957년 쯤에 전족 풍습이 완전히 근절되었다. 그래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시점에서는 전족을 한 사람들이 중년층 이상을 중심으로 꽤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신발 공장이 1970년대 무렵까지도 성업했으나, 1980년대 들어 마지막 전족 세대 여성들마저 고령으로 상당수 떠나기 시작해 전족 전용 신발 공장도 1980년대부터 폐업되기 시작하였고 1999년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1세기 기준으로는 전족 세대가 일부 농촌 지역에 드문드문 생존해 있는 초고령 노인들만 남았다.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과거에 이미 전족이 된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상대로도 대대적인 박해가 가해져서 홍위병들이 전족이 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을 끌어내어 욕하면서 조리돌림을 했다.

중국 본토 외에 다른 중화권에서도 전족 풍습이 사라졌는데, 이쪽은 외세의 식민지배로 인한 영향이다. 대만대만일치시기일본 제국의 영향을 받아서, 홍콩싱가포르는 각각 영국령 홍콩 시절과 영국령 말레이시아 시절에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마카오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서 전족 풍습이 사라졌다.

3. 실상

전족이라는게 흔히 천을 강하게 감싸 발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극히 순화되어 알려져 있지만, 이는 실제 행위가 너무나 잔혹하고 역겨울 수 있어 일반인에게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엔 애로사항이 많으므로 불가피하게 간략화시킨 것이다.

원나라 시기부터 자리잡힌 삼촌금련(三寸金蓮)식 전족은 아이가 보통은 4~6살, 최저는 3살, 최대는 12살일 때 늦가을이나 겨울에 주로 시작되었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발이 약간 감각이 둔해져 처음 며칠 동안의 고통이 덜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을 따뜻한 물에 담갔는데, 피부와 살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약초나 동물의 피를 섞은 경우가 많았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발톱을 잘랐는데 심한 경우에는 발가락이 서로 부딪히면서 발톱이 안쪽으로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발톱을 완전히 제거하기도 했다.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들을 발바닥 쪽으로 꺾어 부러뜨리거나 접힌 상태로 만들었다. 또한 발등을 위쪽으로 구부려서 곡선을 만들었다. 최대 3m 정도의 면이나 비단으로 된 으로 발을 동여매면서 발가락을 누르고 발꿈치와 발바닥을 서로 가깝게 당겼다. 천을 실로 꿰매어 고정했고, 뼈를 부러뜨리고 발 모양을 잡기 위해 이 상태에서 아이가 걷도록 만들었다. 또한 살이 썩도록 하기 위해 깨진 도자기 조각이나 벌레들을 넣기도 했다. 벌레들의 경우에는 그 벌레들이 아이의 발을 물고, 나중에 죽어서 시체가 쌓이도록 했다.

심지어 저게 끝이 아니라 조치를 취한 초기 1~2년간은 억지로라도 많이 걷게 만들어 발가락 관절에 의도적으로 상처와 부하를 가하게 만든 뒤 부러트리는 것을 반복해 점진적으로 을 작게 만들었다. 이를 반복하면 뼈가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고 곪아가며 연해지는데, 이래야 이상적인 형태의 전족을 만들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전족 전용 작은 신발인 궁혜를 신는다. 사진, 컬러(9번째) 이때 천은 발 모양을 유지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떼어내 세척한 후 다시 동여맸다. 어떤 가문은 상처를 치료하거나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약초 연고, 명반 가루나 소독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맞춤 제작된 나무 신발이나 철제 발판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까닥 잘못하면 죽거나 심신 양면으로 장애가 생기기 좋은 행위인데, 당시엔 위생관념과 거리가 멀었으며 현대에 비해 후진적인 의료기술에 더불어 항생제같은 약품도 없었으므로 이 과정에서만 하더라도 적지않은 여아들이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등으로 죽어나갔고 살아남더라도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발가락이 일부 손실될 수 있고, 발바닥을 뒤튼 것 외에도 추가로 큰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저런 조치를 제대로된 치료도 없이 하는데 정상인 게 이상할 지경이긴 하지만 이렇게 전족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린다. 그러니깐 뼈를 강제로 부러뜨리고 그 상태로 강하게 묶어서 성장을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의도적으로 기형적인 신체를 만든 것이다. 당연하지만 저렇게 멀쩡한 신체를 뒤틀어버리니 아이가 느낄 고통 자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만에 하나 무사히 전족 만들기가 마무리되어도 발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어 평생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다. 평생 [13]은 물론이고 다리와 허리에 만성 통증을 느끼고, 장시간 서 있거나 멀리까지 걸을 수 없고, 무릎과 엉덩이에 관절염이 자주 발생하고,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다리 근육이 약해지기 때문에 낙상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당연하게도 현재의 보편적인 미적 감각과는 매우 떨어진 기형적인 생김새인데 이는 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단지 사이즈를 작게 만드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발가락과 발꿈치가 뒤틀려 버린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 X레이 촬영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발가락만이 아니라 척골[14]이 발등 쪽으로 둥글게 휘어 솟아올라 있으며 엄지발가락과 발뒤꿈치가 맞닿아 있는 형태가 된다. # 전족된 발의 사진에서 발등기형적으로 높은 것은 발등뼈를 위로 꺾어가며 발 길이를 줄인 결과이다.

발을 감싼 상태로 생활하기 때문에 악취가 상당히 심해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손님: 응? 이 고약한 냄새는 무엇이냐?
하인: (머뭇거리며) 저... 저희 댁 주인 마님께서 전족을 잠시 풀었습니다.
손님: 이상하구나. 전족을 풀었다고 이 정도 냄새가 날 리가 없다. 솔직히 대답하거라. 들어주마.
하인: (더욱 머뭇거리며) 저... 그게 말입니다. 실은 양쪽 발을 다 풀었습니다.

4. 전족을 하는 이유

이렇게 끔찍하고 고통스러우며 반인륜적인데도 전족이 성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과 분석이 있다. 아래의 가설 중 어느 하나만이 이유가 아니라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전족을 통해 지배층이 우월감을 표출하려 했다는 설. 전족이 된 여자는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지팡이를 짚고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한다. 따라서 전족이 된 여자는 앉아서 하는 바느질이나 가내수공업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즉, 노동력을 상실한다. 그 때문에 전족이 된 아내 = 부의 상징이 되어 부자들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족이 된 아내를 선호했으며 이것이 유행으로 번져 평민들까지 전족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설. 그러나 이 가설은 이제 거의 폐기되었다. 지금의 중국은 남아 선호 사상계획생육정책의 영향으로 극심한 남초 현상을 겪지만 중국 역사상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던 기간은 별로 없었다. 중원국가 간의 내전은 물론, 외부 이민족의 침략 때문에 남성 인력의 전투손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전근대 중국에서는 아내가 도망가면 새로 아내를 들이면 되었고 정실 아내만이 아닌 도 둘 수 있었다. 더구나 전족은 상류층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상류층간의 결혼은 순수한 연애결혼보단 여러 정치적,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진 정략결혼이었던 만큼 단순히 변심만으로 아내가 도망간다 뭐다 할 입장이 아니었다.
  • 예상 외로 전족된 발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선호했다는 설. 현재 남아있는 전족 관련 자료의 대부분은 중년 혹은 노년의 여인들의 발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15] 이는 발을 성기와 마찬가지로 생각하여 젊고 어린 여자들이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 여자의 전족된 발은 대부분 아기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했다. 방중술 관련 도서인 소녀경에 따르면 이러한 어린 여자의 전족된 발을 이용하여 성교에 활용하기도 했다고 나왔다.
  • 전족이 여자의 질 조임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주요 기득권인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유행처럼 번져나가 사회 풍습이 됐다는 설. 전족을 하면 발이 기형이 되어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자란 여자는 회음부 근육이 단련되어 성관계 시 남자가 여자에게서 느끼는 성감이 더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 설은 질 근육이 전족을 통해 뒤뚱거리며 걷는 것으로 단련될 수 있는지에 관한 정확성이 불분명하다.[16] 가장 좋은 확인법은 전족을 한 여자와 정상인을 비교하는 것이겠지만, '전족을 한 여자'라는 표본 자체가 이젠 거의 없기도 하고 민감한 주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하다.

2017년 연구에서는 여자를 소녀 때부터 장시간 앉혀 가족을 위해 직물을 짜고 옷을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전족을 만들었다는 설이 제기됐다.#, #

5. 매체

오랜 기간 내려온 풍습답게 전족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문학 작품도 무척 많다. 하지만 중화권 무협지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시대극에서는 거의 안 나온다. 발만 CG 처리하면 굳이 과거를 반영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사극에서 어차피 전족이 스토리 흐름과 연관이 없는 생활상의 이야기인지라 가끔씩 언급되는 수준이다. 아무튼 절대다수의 시대극에서 여자들은 그냥 잘 뛰어다니고, 무협영화에서는 발차기도 잘한다. "보아하니 그대는 귀족 집안 출신인 듯 한데 왜 전족을 하지 아니하셨소?" 같은 실례되는 질문을 하는 남주인공도 없다. 무술에서 풋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전족을 하고 무공은 절대 무리다. 굳이 과거 반영을 위해 등장시킬 때는 신발을 신은 모습이 작아 보이도록 분장하거나, 전족을 해서 제대로 뛰거나 걷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 금병매: 서문경반금련전족반한다고 나온다. 영화 버전에서도 이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전족은 그냥 크기가 작아진 발 정도로 나와 사람들이 "독특하긴 하지만 이해 못할 취향은 아닌 것 같아."하고 반응한다. 금병매나 나온 시점은 명나라 대이고 작가도 명대의 풍습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작중 시점 자체는 송나라 대이니 억지로라도 시대를 따져보자면 말 그대로 그냥 성장이 억제된 작고 예쁜 발이었을 것이다. 상기했듯이 그 당시 전족은 딱히 발 뼈를 꺾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더 자라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수준이었다.
  • 대지: 펄 벅은 "중국에서 가장 없애야 할 것이 전족"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3부 '아들들'에선 "중국인은 모두 전족을 한다."고 말하며 비웃는 백인들을 풍자했다. 분명 타파해야 할 악습이긴 하나 서양인들이 함부로 조롱하거나 시혜적인 관점에서 '없애주어야 할'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 본인이 주체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보았던 듯 하다. 게다가 원래 펄 벅은 자기 자신이 중국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는 꽤 적극적이었지만 자기 이외에 다른 서양인이 중국을 나쁘게 말하는 것은 대단히 싫어했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중국에서 성장하여 동양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자신은 중국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극복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동양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서양인들의 비판에는 편견이나 혐오감정, 차별의식 등이 섞일 수 있다고 우려한 것. 사실 이처럼 오해가 섞인 외부인들의 강압적 개입은 오히려 전족같은 악습을 중국의 상징으로 만들게 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면도 분명 있다.
  • 설화와 비밀의 부채(Snow Flower and the Secret Fan): 전족에 관련된 정보를 자세히 읽고 싶다면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사 시가 쓴 이 소설을 추천한다. 뜨겁게 삶은 닭 속에 어린아이의 발을 집어넣어 뼈를 부드럽게 한 후 부러뜨리는 과정, 맨발로 사금파리 위를 매일같이 걷게 하여 고름과 썩은 살을 제거하는 과정, 매파가 전족을 보고서 소녀의 등급을 매기는 과정 등이 아주 리얼하게 묘사되었다.
    • 설화와 비밀의 부채: 위의 동영상은 전족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을 편집한 영상. 상술한 소설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장면이다. 원작보다 많이 순화됐다. 뭐?! 이게?!
  • 송가황조: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쑹칭링이 아버지뻘인 쑨원과 결혼하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방에 갇히자 한밤중에 탈출을 감행하고, 친척 할머니들이 달려가는 쑹칭링을 붙잡으려 하나 제대로 뛰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전족으로 속박된 구세대 여자의 모습과 자유롭게 뛰어가는 신세대 여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이현세 만화 세계사 넓게보기: 이 학습만화에선 직물공장의 마담이 까치가 발에 대해 칭찬하자 고마워하며 엄지를 억지로 전족시켜서 까치는 마담이 잘해줘서 편하다고 하지만 엄지는 전족을 못 견디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 지식채널e
  • 체험 짱 지구촌 별난 풍속: 소재로 등장했다. 딩동이 나무에 기대 하품을 하는데, 이 때 지나가던 칭칭이 딩동을 째려보곤 중국 도깨비냐고 묻는다. 아니라는 딩동의 말에 칭칭은 아직도 중국인들이 전족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전족이 뭐냐는 딩동의 말에 칭칭은 전족은 아기 때부터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 매어 작은 신발을 신겨서 발을 못 크게 하는 행위라고 말해준다. 그에 이어서 옛날 중국인들은 여자는 발이 작아야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했다며 남자들이 여자를 무시하는 못된 풍습인 전족은 싫으니 하지 말라고 딩동에게 소리친다. 하지만 딩동은 다리를 다친 터라 양 발에 깁스를 한 상태였고[17] 화가 나서 이건 전족이 아니라고 짜증을 내지만, 칭칭은 전족을 영어로 깁스라고 하는 것 아니냐며 안 믿으려 한다. 그 후, 에필로그에서 나온 한 중국인은 딩동에게 요새도 전족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고, 답답해진 딩동은 전족이 아니라고 소리친다.
  • 큰 발 중국 아가씨: 렌세이 나미오카[18]가 쓴 소설로 전족에 관해서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이 전족으로 표상되는 '구시대가 강요하는 여성상'을 거부하고 교육의 기회와 자유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 주인공 아이린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녀인데, 통상적으로 전족을 시작하는 나이를 넘겨서도 발을 묶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언니로부터 전족의 진실을 알게 된 아이린은 충격을 받고 전족을 거부했으며, 이 때문에 명문가인 예비 시가에서 파혼 통보를 받고 보수적인 친척 어른들에게 가문의 수치라며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린의 아버지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으로, 끝내 전족을 하지 않기로 한 아이린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을 뿐 아니라 아이린을 공립학교에 보내 신식 교육을 받게 해 준다. 아이린은 학교에서 쉬에옌이란 또래 소녀를 만나 친해지고, 쉬에옌도 전족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끼고 용기를 얻으며, 영어를 배워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병약했던 아이린의 아버지가 죽자 백부는 여자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낭비라는 이유로 아이린의 학비를 끊어 버리지만, 아이린은 굴복하지 않고 집을 나가서 학교의 영어 교사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집에 보모로 취직을 한다. 이후 고용주 부부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아이린은 그들을 따라가기로 하고, 미국행 배에서 제임스 추라는 이름의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를 만나 친해진다. 제임스로부터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 여자들은 전족을 했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고, 큰 신발을 신고 솜을 채워넣어 전족을 감추려 하지만 걸음걸이는 감출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전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아 온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충격을 받기도 한다. 제임스와의 교류를 이어 가며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가던 아이린은 마침내 그를 사랑하게 되어, 고용주 부부가 다시 중국으로 갈 때 그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제임스와 결혼해 미국에 남는다. 이후 아이린은 제임스와 함께 중국 식당을 차려 성공적으로 경영하며 잘 살고 있다가, 오래 전 파혼한 옛 정혼자가 우연히 손님으로 찾아온 것을 만나게 되어 회포를 풀고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실제로 당대 여자들 중 드물게 전족을 거부했었다는 작가 자신의 어머니가 모델이고, 책에는 작가가 어머니께 바치는 헌사도 있다.
  • Nine Sols: 봉래 행성의 표국인 상나라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풍씨 가문의 영애 여와가 귀족 문화를 따라 전족을 하고 있다.

6. 기타

  • 아름다움을 위해 발을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신체 건강을 망가트린다는 점에서 하이힐현대의 전족이라는 시각도 있다. 물론 이 둘은 각각 그 배경과 형태, 미용효과[19] 등이 전부 차이가 크고, 신체 건강에 미치는 해악 측면에서 보면 전족이 하이힐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는 점도 다르긴 하다. 참고로 전족이 된 발의 실루엣은 어찌 보면 웨지힐 형태의 하이힐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 전족 수준이 아니라도 '작은 발'이 미인의 한 가지 조건이었음은 서양에서도 비슷했던 듯하다. 근대 영국 배경인 유명한 동화 <소공녀>에선 주인공 세라 크루의 작은 발을 놓고 제시가 라비니아에게 "분명 비싼 신발로 작아 보이게 했을 거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멀리까지 갈 것 없이 신데렐라봐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직접 노동하는 하위계층'과 '직접 노동하지 않고 하위계층의 생산력으로 부양받는 상위계층'이 분화된 문화권에서는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흔히 나타나고,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나타난 문화권에서는 육체노동에 유리한 큰 손과 큰 발등의 신체적 특징을 천시하는 풍조 역시 흔하게 나타난다. 즉, 고강도의 노동에 종사하기 유리한 신체적 특징, 또는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발달한 신체적 특징들이 하위계층의 특징으로 여겨져 천대받고, 그 반대의 특징이 귀족적인 외모로 대우받았다는 것.

    이런 풍조는 특히 여자의 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이었지만, 남자에 대해서도 '큰 발'을 노동계급의 신체적 특징이라고 여겨 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예를 들어 근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남주인공 레트 버틀러가 남자다운 당당한 풍채를 가지고 있고 말타기나 사격 등 신체적 활동능력 역시 뛰어나다고 묘사된 것과는 별개로, 이 인물의 외견에 대한 묘사에는 '귀족적인 작은 발'이 포함되었다. 이 부분은 사실 찰스턴의 명문가 출신이라는 레트 버틀러의 혈통적 특성을 설명하는 장치 중 하나이다.

    즉, 당대의 유럽보다 귀족주의 문화의 영향력이 훨씬 약했던 근대 미국에서조차 '작은 발'과 같은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적 특징을 그 인물의 귀족적인 면모로 보고 아름답게 여기는 풍조는 있었던 것. 다만 남자는 귀족 출신이라 해도 대외활동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무조건 '귀족적인' 특징이 선호되진 않았지만, 여자는 대외활동을 제약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특징이 선호되는 경향이 더욱 강했던 것 뿐이다. 전족뿐 아니라 코르셋 같은 풍속도 결국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족을 받아들이지 않은 한반도에서도 발이 크면 '도둑발'이라며 놀렸던 풍습이 있었고, 여인들이 외씨버선같이 버선을 작게 만들어 신었고, 발이 작은 여인을 귀인이라 했다.
  • 처음 전족포를 감는 날에는 찹쌀떡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 사회 풍조 때문에 여자에게 영구적인 장애를 입히는 악습이라는 점은 여성할례와 유사하다. 여성에게 지독한 악습이자 규탄의 대상이었음에도 근절되는 데 오래 걸렸다는 점에서 사티와 유사하다.
  • 경극에서 전족을 나타낼 때에는 특수한 신발을 신어서 표현하는데 이 기술을 교공(跷功)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경극은 여배우들이 출연할 수 없었고 남자들이 여성 역할까지 전담하는 남성극[20]이라는 것에서 나타난 기술로, 암만 이쁘장한 남성들을 여장시켜 출연시킨다지만 이들은 발을 동여매지는 않았으니 아름다운 전족을 지닌 여인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저런 기술이 등장했던 것이다.
  • 중국은 과거 전족 문화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광고에 여성의 발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성 상품화로 여기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2020년대 들어 관련 광고가 SNS에서 논란이 되며 광고주가 사과 및 해당광고를 삭제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 #2

7. 관련 문서


[1] 이 사람은 로티 문 성탄절 특별헌금(Lottie Moon Christmas Offering)이 있을 정도로 중국 선교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다.[2] 발가락과 발바닥이 안쪽으로 휜 사진이다.[3] 청나라 시기 편찬된 정관응의 이언에서 남당 후주가 자신의 궁인에게 처음 전족을 행했다고 적은 바 있다.[4] 송나라-원나라 시절의 단위는 1척이 10촌이었다. 1척이 31.2cm 가량이므로 1촌은 3.12cm, 즉 3촌은 약 9.4cm정도이다. 현대 한국의 성인 여성 발바닥 크기가 대략 22cm~26cm 정도임을 고려해 보면 전족을 하지 않은 여성의 발바닥 크기의 절반 미만이란 뜻이 된다.[5] 한 번은 효자고황후의 발이 크다고 비웃는 그림이 붙었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비웃은 적이 있다. 주원장은 이를 알고 노발대발하여 비웃은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했는데 황후가 만류해서 그냥 넘어갔다는 일화도 있다.[6] 이는 앞서 말했듯 민족 구분 의도도 있었으나, 기마 민족 풍습이 짙게 남아있는 만주인 특성상 여성도 승마를 권장하는 만큼 그런 승마를 불리하게 만드는 전족은 받아들여선 안되는 외지의 악습이었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금기시될 만한 이유가 있던 것. 연암 박지원열하일기에서도 전족이 됐는지 여부로 한족과 기인 여성을 구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7] 이는 청나라 조정에서도 강행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했던 게, 이미 전족이 굳어버린 성인 여성들을 원상복구시키는 건 불가능하므로 해당 정책이 효과를 보는 건 전족을 하기 전이거나 한지 얼마 안 된 어린 여아들이 성인이 될 때 즈음일 텐데, 거기까지 약 십수년이 걸리는 만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도 힘들고 보통 이렇게 효과가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확인되는 초장기적인 정책은 현대는 물론이요 고대나 근대에서도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다.[8] 아이러니하게도 홍수전을 제외한 태평천국의 고위 간부들은 전족한 여인들을 가까이 했다. 흡사 광해군[9] 당장 이를 흉내내려 하이힐 비슷한 신발을 신는 만주 귀족 여성들마저 시녀의 보조 없이는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으니 전족을 한 당사자들은 말을 할 것도 없었다. 귀족이면 그래도 집안일을 시녀나 하녀에게 맡긴다지만 서민들은 그러지도 못하니 집안일을 할 인력이 전족 탓에 매우 제한적인 활동만 가능해졌다.[10]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많은 중국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중국인 및 한국인들에 대한 소설도 쓴 근현대의 여류작가 펄 벅의 소설 대지에 주인공 왕룽이 전족된 롄화에게 반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시로,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중국 내에서 전족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11] 현대 관점에서 보자면 발 좀 드러내는 정도로 뭐저러냐 싶겠지만, 상술했듯 전족은 제대로 봉하지 않으면 악취가 심하게 나는 데다가 살과 뼈가 뒤틀렸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흉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부위다. 심지어 전족된 발을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슬람권에서 여성이 히잡을 벗고 머리카락을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존재했을 만큼 이 시대의 전족은 여성의 또다른 국부나 다를 바 없는 인식이었다.[12] 2012년 기준이라 이후에는 전족을 유지한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13] 고통은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14] 발 뒤꿈치에서 발가락 사이의 뼈[15] 심지어 그조차도 전족이 거의 풀린 상태다. 전족은 계속 발을 동여매고 뼈를 곪게 해야 하지만 현대에 남은 노년 여자들은 더 이상 발을 고통스럽게 동여매지 않고 편하게 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적인 전족과는 모습이 좀 다르다.[16]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관련한 스트레칭과 요가 자세 등이 실제로 인터넷에 자주 소개되고 있으나, 이들조차 과학적으로 어떤 원리를 통해 단련되는 것인지 출처를 찾기 어렵다.[17] 보통은 한쪽에만 깁스를 하는데, 뭘 하다가 다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쪽에 다 깁스를 해서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다.[18]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 중일 전쟁의 여파로 미국에 피난해 정착했다.[19] 전족이 발에만 미용효과를 기대한다면, 하이힐은 키 높이, 각선미, 신체비율 개선 등의 미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20] 물론 지금은 여성도 경극 출연이 가능하다. 남자가 여성 역할까지 다 하는 것을 기괴하다고 느낀 장칭이 경극에서 남자 배우의 여성 역할 담당을 금지시키고 성별 역할을 맞추라고 지시하여 한동안 남성 배우의 여성 연기는 맥이 끊겼다가 지금은 여배우 출연도 남성의 여성 연기도 모두 가능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