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3 14:41:54

정략결혼

政略結婚

1. 개요2. 역사적 정략결혼3. 대중매체4. 예시
4.1. 실존 인물4.2. 가공 인물
5.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5.1. 실존 인물5.2. 가공 인물
6. 혼동7.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8. 기타

1. 개요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을 말한다. 스케일이 커지면 집안이 아닌 나라 사이에 왕실의 공주왕자가 결혼하여 나라 간의 동맹 등을 이루기도 한다. 나라간의 결혼으로 동맹을 강화한 역사적 사례로 나제동맹이 있다.

단,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정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가 어떤 일[1] 때문에 법적 관계를 맺어서 사회적 위상과 보호를 얻기 위해 사무적으로 결혼하는 것 역시 서로의 자의로 했어도 정략결혼이라 부른다. 더 정확히는 돈만 보고 한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혼테크라 부른다. 정말 사회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한 결혼만이 정략결혼으로 불린다. 혼테크 문서 참조.

2. 역사적 정략결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행위이며 주로 정략결혼은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귀족이나 왕족들이 많이 해온 풍습이다. 특히 뼈대있는 집안들에서 정략결혼은 꽤나 흔한 경우였고 정략결혼을 통해서 서로간에 가족관계를 맺어서 이득을 취하는 일도 역시 많았다. 왕족들은 이것으로 나라간에 평화를 이루는데 많이 써먹었으며 대개는 약소국가에서 힘 있는 강대국에게 이 자신의 공주를 강대국의 왕족에게 시집보냄으로써 사돈관계도 맺고, 동맹국으로 만들어 전쟁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클리셰 중에서 사랑하던 연인 중 다른 1명이 정략결혼으로 곁을 떠나고 서로간에 그리워한다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로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이야기거리 중 하나다.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난 비운의 연인은 사랑의 도피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재벌들은 지금도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민왕노국대장공주의 금슬은 굉장히 유명했는데,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공민왕이 비탄에 빠져 고려 멸망을 앞당겼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다만 정략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반원정책의 완벽한 지지자였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결혼은 원나라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해 버린 정략결혼이다. 서양에서는 이사벨라 1세페르난도 2세의 금슬이 유명하다.[2]

근세근대 이후로는 정략결혼이라도 무조건 시키는 게 아니고 정치적 사정상 동등한 여러 후보 중 마음이 맞는 상대와 시켜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특정국 왕가의 인물들 중 하나와 한다거나.

서양에서의 수많은 정략결혼 중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마리 앙투아네트루이 16세의 결혼이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통의 강국들인 프랑스오스트리아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정략결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강대국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결혼한 여성이 그 나라에서 좋지 못한 대접을 받거나 홀대를 당한다는 소식이 강대국에 전해졌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간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비단 나라간의 일만이 아니라 집안끼리 결혼시킨 남녀들 중에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이들도 많았으며, 만약 여자가 못 생겼거나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략결혼을 하고도 아내남편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또다른 비극으로 정략결혼이 사실상 딸 하나를 희생해 상대 나라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던 경우가 있다. 553년 백제성왕신라 진흥왕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정략결혼을 맺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바로 이 때부터 성왕은 동맹국 일본과 함께 신라와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불과 1년 뒤 관산성 전투로 폭발하게 된다.[3] 진흥왕에게 시집간 성왕의 공주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는 다이묘들의 세력확장을 막기 위해 정략결혼을 금지시켜놓고 정작 본인의 자식과 가족은 모두 정략결혼을 시켰다. 물론 금지를 시켰어도 다이묘들 간에 정략결혼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정략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부부로서 존중하거나 존경의 감정을 보이며 남매, 친구, 부녀처럼 원만하게 지내긴 해도 연인으로서 서로를 원하거나 사랑하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대중매체

대중매체에서는 재벌, 명문가 같은 높으신 분들 속성이 있는 집안 출신 캐릭터가 으레 안고 있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즉 집안에서 정해준 미래의 배우자가 존재하고 상대방도 상당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략결혼에는 관심 없고 상대방에게 연애적인 감정이 일말도 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과 이런저런 일로 엮여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 뭐 이런 식. 막장 드라마에서도 꽤나 보이는 클리셰이다.

정략결혼과 관련되는 배신하는 딸이란 클리셰가 있다. 일단은 서로 정치적인 이익을 보고 결혼한 두 집안이 나중에 정치적인 이득 때문에 갈라설 때, 시집간 딸이 친정과 시댁(남편) 중 어디를 선택하냐는 문제.

4. 예시

※ 금슬이 좋았던 경우는 ♡, 금슬이 나빴던 경우는 ♥표시를 한다.
※ 남자 & 여자 식으로 기재한다.

4.1. 실존 인물

  • 합스부르크 가문: 이 가문의 모토가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일 정도로, 철저한 정략 결혼을 통해 한적한 지방 영주에서 유럽 최고 명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과도한 정략+근친 결혼의 폐해도 주걱턱을 통해 가장 많이 보여준 가문(...).
  • 공민왕 & 노국대장공주 (♡): 공민왕의 반원정책원나라 공주 출신이었음에도 후원했을 정도로 사랑했다. 심지어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이 공민왕을 죽이려 하자 자신이 직접 가로막았다. 보통 같으면 노국대장공주도 끔살행이였지만, 그 반란이 친원세력이 일으킨거라 결국 공민왕노국대장공주도 죽이지 못했다. 물론 노국대장공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와 사별한 공민왕이 피폐해져 고려의 개혁을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 프란츠 1세 & 마리아 테레지아 (♡) :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의 정략결혼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 모두 서로 첫눈에 반했던지라, 정략 결혼을 가장한 사실 상의 흔치 않은 연애결혼이었다.
  • 루이 16세 & 마리 앙투아네트: 서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략결혼. 루이 16세는 이전의 프랑스 국왕과는 달리 그 흔한 정부도 두지 않았고 사생아도 없이 오로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충실했다. 하지만 이게 당시 프랑스 대중들이 생각하기엔 매우 '왕 답지 못한' 모습이라서 두 사람에게 '못난 남편과 그걸 등쳐먹는 못된 아내'라는 루머가 생겼다.
  • 유비 & 손부인 (♥):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흔히 연의의 모습으로 사이가 좋았을거라 하지만 오해. 손견의 기질을 물려받아서 싸움을 좋아하는 손부인과는 달리 유비는 치고박고 하는 것을 꺼려하는 성격인지라 코드부터가 안맞았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아사히히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요로 둘은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강제로 결혼했고 특히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사히히메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결혼시키기 위해 고의로 이혼시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놈의 여동생과 결혼하자니 매우 껄끄러웠고 아사히히메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남편이 있는데 이 결혼 때문에 억지로 이혼한 것으로 인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 소 다케유키 & 덕혜옹주: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은 덕혜옹주조현병 때문이었는데, 병의 원인은 적어도 부부 사이의 불화는 아니다. 이미 10대 중후반부터 정신 질환의 증세가 있었기 때문. 증세가 호전되는 듯 하자 양가에선 서둘러 둘을 결혼시켜 버렸다. 그 후 아이를 낳고 잘 사는 듯 했으나... 재발. 특히 조현병은 여성 환자는 아이를 낳고 살 무렵인 20대 후반~30대 전반에 본격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4.2. 가공 인물

5.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5.1. 실존 인물

5.2. 가공 인물

6. 혼동

영어의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결혼)과 정략결혼의 의미 차이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7.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 혼테크
  • 혼맥 - 왜 정략결혼이 아닌지는 정략결혼 문서 토론 참조
  • 중매결혼

8. 기타



[1] 돈을 서로 배분할 일이 생겼는데, 서로 배분을 못하는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등 주로 돈에 관계된 일 때문에[2] 현대에서는 '권력이나 재산을 위해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혼한다'라는 점 때문에 비극적인 결혼, 불행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실제 역사상 이루어진 정략결혼 중 당사자들의 감정이 나빴던 경우가 더 드물다. 일단 정략결혼을 한다는 건 그 사람이 상당히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는 소리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사람들은 이성과 만나 사랑을 키울 기회가 굉장히 드물다보니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와 헤어지게 되는' 경우 자체가 발생하기 어렵다. 게다가 결혼 자체에 작게는 가문과 가문, 크게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설령 상대의 첫 인상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해 줄 수 밖에 없다. 부부라는 공적 관계로 얽혀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배려해가며 붙어 살다 보면 뒤늦게라도 애정이 싹틀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허구한날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비극적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3] 이후 신라의 장군 도도가 성왕의 목을 벨 때 성왕의 죄로 '맹세를 어긴 것'을 드는데, 이것이 혼인동맹을 뒤집고 기습공격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고 있다.[4]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다스리던 바빌로니아는 평지에 가까웠는데 아미티스의 고향인 메디아는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5] 처음에는 사이 좋은 척 연기하였으나 나중에는 세자가 먼저 고백하면서 좋아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 대비는 옛 애인인 결혼한 시동생(=서방님)과 바람을 피웠다. 애초에 세자가 자기 동생의 여자친구한테 정략결혼 하자고 청혼해서 결혼하긴 했지만.. 결국 이율을 낳고 잘 살기는 한 모양이지만 의강세자는 병으로 요절하고, 대비는 세손에서 세자의 아들인 정2품 군으로 격하된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난다. 이후 세월이 지나 남편이 왕으로 추존되어 대비로서 궁으로 돌아온다.[6] 위의 실제와는 정 반대인데, 연의에선 두 사람의 관계는 좋았지만 유비와 동오의 형주 문제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었고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없던 손부인을 동오에서 어머니 오국태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다시 데려와 사실상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 촉한과 동오의 전쟁이 벌어지자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랄 정도로 그리워 했지만 유비가 패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에 장강에 투신자살을 해 비극적으로 끝을 맺게 된다.[7] 원래 연인이 있었으나 일국의 황제라는 신분 탓에 신분에 걸맞는 여자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결혼. 다만 연인과 아예 헤어진 것은 아니다. 그녀를 비밀리에 정부로 두고 내연관계를 이어갔으며 결국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까지 가진다(...)[8] 이 둘은 어렸을 때 서로 결혼을 약속을 하였지만 남편이 바람둥이가 되어버려 아내의 체질이 잠들지 않는 체질이라며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아내는 거들떠 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마르가리타는 옆에만 있어도 좋아고 한다. 그리고 카스팔은 마르가리타가 준 gift로 인해 죽고 결국엔 마르가리타도 그걸 먹고 자살한다.[9] 소비에슈가 라스타를 정부로 데려온 후부터 사이가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그 전까지 부부간의 사이는 동료에 가까운 관계였다. 오히려 나비에는 나중에 소비에슈에게 이혼당하고 재혼한 하인리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금슬좋은 관계로 발전한다.[10] 작중 정략결혼으로 결혼했다는 언급이 있다. 다만 아이린이 멸룡 마법을 손에 넣은 이후 용화가 되자 남편은 그녀를 괴물로 인식하고 마구 학대하였으며 결국 아이린이 완전히 드래곤이 되어버린 뒤 남편을 죽여 파탄나게 된다.[11] 이쪽은 별 문제없이 잘 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표르도바 2세에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라 왕비와 결혼한 것이었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에이레네를 그리워하며 파라 왕비를 냉대하다가, 결국 에이레네가 궁을 떠나면서 둘 사이에서 외동아들 비욘을 낳는다.[12] 단 작품 완결 시점까지 실제 결혼에는 이르지 않았다. 약혼 상태를 유지하는 듯.[13] 여포와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어 원소, 조조를 견제하려 했다. 진궁 등 호족들도 긍정적으로 봤지만, 진규의 방해와 여포의 뒷끝때문에 결국 다 성사될뻔했던 것이 파토가 나 버렸다. 재밌는건 여포의 뒷끝이란게, 원술이 자기를 쫒아내서였는데 그 이유도 결국 여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원인이라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14] 동오에서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에게 정략결혼을 권했으나 관우가 동오의 사자를 모욕하며 쫒아냈다. 연의에선 여기에 좀 더 각색해서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냐고 대놓고 까댔다.정작 자기 형수는 그 개의 누이였는데 관계는 좋진 않아도 어쨌던 동맹 세력의 군주를 일개 장수가 모욕을 주는 셈이어서 인격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매우 큰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15] 이쪽은 주인공인 사토미 코타로포르트제에서의 진짜 신분으로 인해 격이 달라져버렸다. 22권 이후 루스의 부모님들이 오히려 코타로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16] 마리의 정략결혼 대상은 작중에서 밝혀지지 않았다.[17] 강유라의 고모 강나미가 자신의 시아버지인 엄일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했던 결혼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엄일남은 윤정애와 재혼 후 콩순이김강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에 엄일남이 허상순을 갈궜다. 이때 엄일남의 속내는 김강재를 정략결혼시킬려고 했는데, 콩순이 임신으로 무산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18] 파혼이 아니라, 둘 다 비명에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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