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01:35:50

며느리

1. 개요2. 어원 논란

1. 개요

에미야 국이 짜다. 랩음악

아들아내. 혹은 자부(子婦)라고 한다. 영어로는 daughter in law라고 한다. 실제 자식은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자식과 같다는 의미의 표현.
중국어로는 儿媳(妇)érxí(fù), 일본어 嫁(よめ); 息子(むすこ)の妻(つま). 프랑스어 belle-fille(예쁜 아가씨?), bru

관용어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세를 풍미했던 고추장 광고에 등장한 신당동 떡볶이집의 마복림 할머니의 대사 "며느리도 몰라"에서 비롯되었다. 마씨가 2011년에 작고한 이후 지금은 '이젠 며느리도 알아요'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이 문구는 장차 떡볶이 사업을 이어받을, 정말 가까운 사이인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떡볶이 양념의 비밀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며느리조차 모른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했다. 이런 의미로 미스터 부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막장 시어머니들의 적. 고부갈등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올가미[1]. 물론 진심으로 며느리를 딸처럼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시어머니들도 가끔 있으니 너무 오해하진 말자.

연애노선이 그려지는 미디어물들에서는 주인공과 가까운 진 히로인이나 메인 히로인급 캐릭터들을 주인공의 부모님이 공인해주는 상황이면 흔히 며느리라고 팬들이 부르기도 한다.

대미지라는 막장 로맨스 영화에서는 예비 시아버지랑 눈이 맞아 놀아나는 내용도 나온다(...) 물론 실제 사례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시부-며느리 불륜 사례는 당현종-양귀비.

본인이 여자로서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그 남자의 누나나 여동생, 즉 예비 시누이의 생활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시 될 사람들이 친자식을 대하는 방식이, 며느리 대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 만약 예비 시부모가 친자식(특히 딸)에게 통금 등으로 과다한 제약을 가했다면, 며느리도 그에 준하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시부모가 아들딸 차별하는, 여성을 혐오하는 집안이었다면? 아들과 며느리의 차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랑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사랑만으로 결혼하기엔, 시월드는 무척 냉혹한 곳이다.

가출했을 땐 전어아욱이 특효약이라 카더라[2][3]

2. 어원 논란

여성단체에서 며느리가 여혐 단어라며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었다.

중세 국어의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1447년에 쓰여진 (한글반포 다음해다!) 석보상절에 이미 "며느리"라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단어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사음식 중 밥을 지칭하는 단어인 '메' 와 나르는 사람 '나리'가 합쳐진 것이라는 도시전설이 있으나 역시 위의 이유로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며느리의 원형은 "며느리"가 아니라 "메나리"가 되어야 한다. 그건 둘째치고 "제삿밥"+"나리"가 사람의 호칭이 된다는 얘기는,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니 책님이고 화가는 그림님이라고 부르자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가. 일단 한국어에 이런 식의 조어법이 사용된 전례가 없고 있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근거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또한 어원에 근거하여 며느리를 여혐 단어로 치부하는 것은 발생학적 오류에 해당한다. 어원이 어떻던 간에 현재 그 어원에 해당하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고 단순히 아들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써 사용되고 있는 이상, 단어의 어원은 며느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1] 다만 올가미의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이기 전에 개막장 정신병자라서 좀 애매하다.[2] 좀 무서울 수 있는 내용이라 각주에 적는다. 전어 굽는 냄새가 얼핏 시신을 화장하는 냄새와 비슷해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화장을 하는 줄 착각하고 돌아오는 거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쓰이는 대부분의 속담이 만들어진 조선 시대의 장례법은 매장이 기본이었고 화장은 불교계에서나 행해지는 마이너한 장례법이었으므로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 설.[3] 가장 무난한 해석은 그 정도로 전어가 맛있다는 것이고, 그 외에 전어 구울 때가 되면 상대적으로 한가한 농한기이기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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