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3 01:15:44

경비 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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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파일:경비 강씨.jpg
성씨 강씨
직위 대명태황후궁 정1품 경비

대명태황선황의 후궁 경태비
봉호
국적 대명태황

1. 개요2. 성격3. 행적
3.1. 시즌23.2. 시즌33.3. 시즌4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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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慶妃 姜氏[1]

작약만가: 불환곡 시즌2 에서 추가 등장한 인물로, 직접 등장은 25화에서 시작했다. 황제후궁 중 한 명으로 품계는 정1품 비다.

갸름한 얼굴에 길게 찢어진 눈매, 붉고 윤기 없는 입술연지 덕에 약간 날카로워보이는 인상의 여성.[2] 눈썹이 가늘고 완만한 스타일인데, 독자들이 추측하기로는 과거 중국 귀족들의 화장기법 중 하나였던 원산대(遠山黛)라는듯.[3]

2. 성격

경비가 되기 이전에는 가주의 명령으로 팔리다시피 전 남편과 결혼했지만 금슬은 좋았다고 한다. 그저 평범하고 시대상에 순종했던 전형적인 귀족 여성이었던 것 같고, 마음 잘 맞는 남자와 혼인해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가주의 만행으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뒤 복수귀가 되어, 남자들을 깊이 혐오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현 황제도 비로서 모시기는 하나 독백으로는 자기가 다스리는 줄 착각하지만 여인네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한낱 남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까댄다.[4]

3. 행적

3.1. 시즌2

23화에서 의 휘하 내관의 언급으로 나온다. 가백문 채려가 속한 집안이 경비가 속한 강씨가 다스리던 땅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황제는 1황자비 후보로 경비 집안의 여자도 고려했었다고. 뒤늦게 입궁했지만 온빈, 순빈 못지 않는 대귀족 출신에 서쪽의 금광 산지까지 황실에 바쳤다고 한다. 이렇듯 막대한 재산을 황실에 바치고 서쪽 귀족임에도 이국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인이어서 황제가 중앙 귀족이 아님에도 강씨에게 정1품 비를 내를 정도로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25화에서 시녀들의 언급으로 나온다. 가백문 채려를 측근 시녀로 고용하고 있는 인물. 본래 태황의 황실에는 황후 하나와 귀비 하나, 그보다 많은 비빈과 희희 이후 무봉호 후궁들이 있다. 하지만 당대의 황제인 순제는 봉오제 사건을 겪고 혜화비 사건 때와 같이 수많은 비빈들이 갈려나갔다고 하며, 덕빈은 소용인으로 강등당하고 자살, 성빈은 희희로 강등당한 상태로, 중상위급 후궁으로는 빈의 신분인 롱희 이외에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정권유지와 귀족포섭의 일환으로 경비, 온빈, 순빈, 침빈 등의 비빈을 새로이 들였다.[5] 경비는 그들 중 들어온 시기는 가장 늦지만 덕빈 궉씨가 추락한 뒤 빈틈을 노리고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24화에서 채려가 1황자궁에 잠깐 모습을 비춰서 1황자가 당황했는데 심부름을 다녀온 것이라고 하며, 선녀머리 가체에 반묶음머리와 옅은 화장을 한 모습을 보고 자기가 봐도 잘 꾸몄다면서 부디 황자가 마음에 들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26화에서는 온빈과 함께 롱희를 찾아온다. 온빈은 1~2년 전에 입궐했다고 하며 경비는 1달 전에 들어왔다고 한다. 온빈이 황후파라는 것을 믿고 활개치는 것과 달리 조용히 있다고. 희희[6]를 비롯한 후궁들이 이미 롱희와 만나고 있자 온빈은 자기가 상전이니까 치우고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이에 경비가 온빈을 크게 꾸짖어 온빈은 그냥 떠나고만다.

롱희에게 차를 주면서 온빈의 무례는 자신이 사죄하겠다 하자 롱희는 이러시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거절한다. 온빈이 오해가 많은 것 같아 직접 보고 오해를 고치라 데려온 건데[7] 이리돼서 사죄하고 싶은 거라고. 하는 김에 교응에게도 차를 타 준다. 교응은 자신은 희희(喜姬)니까 하대해도 된다고 하며 말하는 도중 1황자 운이 들어오자 효를 다하고 정사를 돕느라 늘 바쁘시다며 추켜세운다.

운은 경비가 후사가 생기면 그 자를 더 크게 도울 거라 하자 누가 장성한 황제를 넘어서겠냐며 자신은 겁이 많다고 겸양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고는 이 시기가 아니면 구하기 힘든 고향의 진귀한 차를 구해왔다며 측근 시녀를 시켜 차를 내오게 한다. 남방 최고의 백차라 불리는 백라보다 좋다고 하는데 이 때 내온 측근 시녀가 채려라서 운은 놀라고, 경비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인다.

얼마 뒤 경비는 자리를 떠나고 3품 이하의 후궁들은 롱희가 가장 총애를 받으니까 염탐하러 온 거 아니냐고 쑥덕거린다. 온빈이 무례하게 구니까 굳이 쫓아냈다고 하며 경비가 롱희와 손잡고 싶은 거 아니냐 추측한다. 이 후궁들은 롱희와 교응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8] 자신들의 파벌에 경비의 힘이 붙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그냥 롱희와 1황자의 눈치를 보자고 결론을 내린다.

27화에서는 돌아가다 온빈과 만난다. 기세 좋게 달려가더니 아직 궁에 안 돌아갔냐고 묻자 왜 망신 주고 쫓아내냐 따지는 온빈에게 네 발로 나간 거라며 그 자리에 1황자가 있었다 말한다. 정무를 나누어 하는 1황자가 이 시간에 궁에 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로 누가 불렀다는 뜻이며, 1황자가 기세등등한데 그의 눈앞에서 생모인 롱희를 욕보였다 1황자가 황제에게 말해서 덕빈처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내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채려가 운과 만나고 돌아오자 환대한다.[9]

온빈은 겉으로는 받아들인 척하지만 강씨 주제에 누굴 시녀로 부릴 생각이냐면서 경비가 부른 거라 오해하고[10] 경비가 같은 집안의 여인을 측근시녀로 데려왔다는 말에[11] 강씨 신분패를 들고 왔지만 하나도 닮지 않은 얼굴 봐서 어디서 주워온 여자고 자기 집안에서 2황자비만 나오면 응징할 거라 생각한다.

그 뒤 가백문 채려는 운을 찾아가서 경비가 롱희를 찾아간 것은 경계할 필요가 없다 진언하며 본래 한참 전에 입궁했어야 하나 숙정 氏(황후 일가) 일파 때문에 좌절되다 이제 들어온 것이라 근간부터 반숙정 파라 말한다.

28화에서 운과 어상락의 대화에 경비가 언급된다. 가백문 채려의 집안은 강씨가 다스리는 서쪽 땅에 속해 있으며 무슨 이유로 사냥터가 폐쇄된 뒤 경비가 데려온 것이라 추측한다. 경비 강씨는 금광 산지를 바친 것으로 특혜를 받아 정1품 비(妃)로 입궐한 것으로 지지자보다 적이 많으니 수를 쓴 것이라 판단한다. 이들은 사냥터 폐쇄에 강씨가 연루되어 있다고 추측한다. 황자는 경비가 이쪽에 줄을 대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라면, 이쪽에서 시험하는 걸 알아차려도 거부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 채려를 감시하도록 시녀를 고용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한 번 건드려 보는 게 낫겠다며 채려를 빼돌리기 위해 시녀 하나를 뽑는다.

29화에서 롱희가 경비에게 친분의 표시로 시녀 하나를 교환하자는 서신을 받아 채려를 부른다. 경비는 이런 호랑이 소굴에서 긴 세월 동안 총애를 유지하고 살아남은 여자인 만큼 의미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아들인 운과 함께 떠보는 것이라 알아차린다. 받아들이면 그들의 뜻대로 되지만 이걸로 자기 편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니 거부하면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거라 판단해 채려를 보내기로 한다. 위험할 거라 물어보자 채려는 그들이 트집잡아 제거하려 해도 경비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경비의 시녀 지위는 유지하게 해 달라 요청하고 수긍한다. 그러면서 채려에게 너에게는 기대가 높으니 서로를 위해 잘해보자 말한다.

한동안 안 나오다 36화에서 운에게 불려가는 채려와 만난다. 1황자의 재녀라는 자가 자신을 찾아와서 채려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자 이상해서 사람을 보냈더니 대뜸 끌려간 것을 알고 물어 물어 서둘러 온 것이라고 한다. 상황을 듣고 제2황자에 온빈을 건드리다니 사고치는 머리 하나만 비상하다 생각한다. 온빈이 재녀의 일에 협조해준 게 이상하다며 막무가내로 떼 써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한다.[12] 재녀는 1황자 사람이고, 채려는 롱희의 시녀 지위이니 이들이 처벌받았으면 이 일로 얼마든지 트집잡아 그들을 공격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들의 멍청함 때문에 기회를 놓친 황후도 속이 터질 거라 생각하면서 황후가 온빈을 도와주라 한 이유가 밝혀진다.

재녀와 만나지 않을 거라는 채려의 말에 그게 좋을 거라며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채려가 재녀에게 한 말을 듣고 그걸 그렇게 해석하다니, 제 집인 줄 알았냐고 말한다. 흔히들 롱희와 1황자를 만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인데, 궁이 사람 사는 곳이고 윗전이 사람이라 착각한 것 같다 말하며 여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때 속으로 이걸로 일이 날 텐데 누가 책임지고 누가 수습할지 우려한다. 그들의 처신은 어디까지나 생존전략일 뿐이기에 그걸로 오판하는 자들은 온 일가가 관짝 안에 누워 울어대야 깨달았다고 한다. 그 재녀가 1황자를 먼저 본 게 독이 된 것 같다며 채려에게 너를 잃을 수는 없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말하고 조심하라 말해준다.

40화에서 롱희의 측근 시녀인 후수가 운의 명령을 받아 가백문 일가의 죽음을 조사하러 그쪽 일대에 가는데, 그 지역의 시통관은 강씨로, 경비가 속한 집안과 같은 가문으로 추정된다.[13] 가백문 일가의 공동묘지에 가서 가장 마지막에 묻혔다는 가백문 채려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짝을 열자 반대하지만 열고, 안의 상태를 보고 후수는 어떻게 된 거냐며 당황한다.[14][15]

3.2. 시즌3

강씨의 집안은 칠 년 전 2황자가 가백문씨에게 저지른 만행을 덮고자 가백문씨를 몰살시켰으며, 경비를 입궐시키기 위한 구실로 2황자가 사고친 건을 이용해서 황후의 집안인 숙정씨의 반발을 억눌렀다고 한다. 당연히 황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강씨 집안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 무시했다.

가백문씨는 1황자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했지만 이는 전해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채려를 포함한 가백문씨는 1황자가 자신들을 버리고 방관했다고 여겼다.

가백문씨들을 강씨가 몰살시킬 때 본래 가백문 채려도 생매장당했지만 경비가 모종의 이유로 채려를 살려주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경비는 채려가 어디까지 약속을 지킬지 우려되는 모양. 황운은 가백문 채려에게 경비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해서 경비를 견제할 생각을 하고 있다.

파일:경비 강씨.젊은 시절.png
젊은 시절의 경비.[16]

경비의 집안인 강씨 일족은 태황이 점령한 서쪽 변방의 대귀족 출신이었다. 경비는 본래 후궁으로 입궐할 뻔했지만 황후에 의해 가로막혀 실패했는데, 그 때문에 광맥을 가진 다른 귀족의 아들에게 팔리다시피 정략결혼을 했다. 다행히도 부부 사이가 좋은 편이라 아들 하나 낳고 잘 살고 있던 도중에[17], 아버지인 강씨 가주로부터 후궁으로 들어가라는 강요를 받았다.

이에 경비는 집안에 자기보다 더 어리고 야망이 많은 여식들이 많은데[18] 왜 하필 유부녀인 자기를 끌어들이냐고 거세게 반발한다. 막내 동생은 아직 결혼 자체도 안 했다고. 강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늙었으면서 탄국에서 들어온 약물로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어린 첩이나 두고 있다면서 매우 아니꼽게 봤다.

강씨 가주는 노쇠한 황제에겐 어린 소녀보다 아들의 생산 능력이 입증된 경비가 더 유리하다면서 롱희를 견제할 도구로 이용하려고 한다.[19] 경비는 이전에도 황후 때문에 실패했는데 또 실패하면 어쩔 거냐고 하지만 강씨 가주는 이를 무시하고 이혼시키겠다면서 나가자마자 바로 밖에서 문을 잠궈버린다.[20]

경비는 창문을 열어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남편이 어린 아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하인들에게 붙잡혀 칼로 난자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21] 절망에 빠진다.

남편이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그 충격으로 시름대던 날로부터 며칠 후,[22] 2황자의 만행에 의해 생매장당한 일족들이 가백문 집안이란 것을 알아내고, 2황자의 치부를 무마시키는 조건만으로는 황궁에서의 자신의 입지가 부족할 것이라면서[23] 1황자 파벌에 들어가기 위해 생매장된 가백문 일가 중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빨리 꺼내달라고 아버지에게 요구한다.[24]

황제는 그동안 수많은 여자가 있었음에도 아들이 고작 셋밖에 없었으니 황제가 제대로 아이를 가지기 힘든 체질이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 자이며, 이미 생식능력이 현격히 저하되는 노인이기 때문에 더 아이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25] 실제로 강씨 집안은 서쪽 사람이지만 황실, 중앙과 혈연이 가까운 집안이라는 설정을 생각할 때 젊은 시절에 가서 아이가 생겨도 기형아밖에 안 태어났을 것이다.[26]

강씨는 옷을 싹 바꾸고 머리도 완전히 틀어올리는데 화장은 안 한 모습으로 바꾼다. 황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채려를 이용하려고 그녀를 땅 속에서 끄집어내고 자기만 바라보라고 한다. 경비는 단순히 황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험의 의미가 아닌 권력을 위해 자신의 남편을 죽인 아버지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강씨 집안에 일족이 몰살당한 채려에게도 같은 배를 탄 사이라는 걸 상기 시켜주면서 마음 속에 칼을 품고 같이 가주에게 복수하자고 종용한다.[27] 선택의 여지가 없던 채려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28]

강씨의 계략으로도 황후의 견제 때문에 입궁이 몇 년째 미뤄지자 경비는 전남편에게 결혼 당시 받은 금광산을 황족에게 팔아넘기는 조건으로 황제의 지지를 얻어 입궁하게 된 것이다. 하인들을 통해 1황자가 채려를 내쳐버릴 거라는 소식을 듣자 가백문 채려에게 무덤 속에서의 공포를 상기시켜 주면서 약속을 어길 셈이냐고 묻지만, 채려는 어차피 경비도 강씨 집안 사람이므로 1황자의 파벌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경비 또한 자신을 언제든지 짐승 우리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예상하며 두려워한다.[29]

53화에서 운이 중앙양식으로 꾸미게 한 채려를 대동하고 경비를 찾아오는데,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사촌언니가 하씨의 후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 인맥으로 하씨와 연결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말을 듣고 경비는 매우 놀라며 북쪽 이남으로 오는 게 금지된 집단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황제의 어명임을 확인한다.

운은 경비가 봉림의 생일축하연회에 태정군을 데려온 것으로 꾸미고 교섭은 자신이 다 하겠다고 제안한다. 경비는 그 말을 듣고 황제가 큰 계획을 그리고 있으며 그 늑대같은 괴인이 중앙에 어슬렁거리면 숙정씨라고 해도 주춤할 수밖에 없고, 황후의 기를 꺾을 수 있다면 자신에게 복수의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판단해서 사촌언니에게 연락을 해 보겠다고 받아들인다. 그 사촌 언니와는 먼 사이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손을 쓴 모양.

결국 얘기가 잘 된 모양인지 2황자의 생일 연회에 태정군이 등장하고 좌중은 경악한다. 이 상황에도 침착한 운을 바라보며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는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정군을 중앙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온빈 방씨의 친부에게 "다 늦게 들어와 잘난척은... 감히 하씨 따위를 황궁에 끌어들이다니 계집 주제에 폐하의 총애만 믿고 나대는 꼴이 아닌가?!"라는 모욕을 당한다.[30][31]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욕을 들은 태정군에게 화도 안 내시고 자비로우시다고 말한다.

61화에서 복권된 성빈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선물을 가지고 그녀를 찾아온다. 성빈은 우리가 축하를 나눌만한 친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껄끄러워하지만, 그녀를 온빈 방씨의 아버지인 방씨 가주를 비롯한 귀공자들이 참석한 다과회에 초대한다. 아니나다를까 태정군을 제외한 다과회에 참석한 사내들은 경비와 성빈을 두고 여성이 있어야 자리가 빛난다, 아름다운 여성은 나라의 보물이라고 아부하며 구경거리 삼는다.

성빈이 사내들에게 품평을 당하는 걸 불편해하자 태정군을 불러들여 그들을 팩폭으로 떡실신 시킨다. 이와중에 성빈 앞에서 무능한 사내들은 여인에 대해서 무조건 깎아내리고 욕을 하면서, 사내에겐 칭찬하고 아첨하는 꼴이 마치 사내한테 사랑받으려 비굴하게 구는 환관 같다고 대놓고 방씨 가주 일행들을 조롱한다. 이어서 속으로 2황자만 믿고 자신을 면전에서 모욕하던 자들이 이제와서 태정군과 다리를 놓아달라고 자기를 매일 귀찮게 한다고 비웃는다.[32]

경비 본인도 방씨 가주에게 과거 2황자의 생일 연회에서 모욕당했던 일을 기억해서 보복하기 위해 끌어들인 속셈이었고 태정군이 방씨 쪽 측근이 쫓아낸 경비의 사촌을 후처로 들이자마자 딸과 아들을 나란히 얻은 것을 자랑하면서 여러 젊은 여자들을 갈아치웠으면서도 사내 구실을 못해 자식 하나만 겨우 낳은 방씨 가주를 대신 모욕한다.[33]

64화에서 멋대로 성빈과 접촉한 사실이 1황자측에게까지 알려져 채려와 어상락이 그녀에 대해 얘기한다.[34] 또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살아있음이 채려를 통해 밝혀졌다. 그 아들은 강씨 가주가 숨겨 기르고 있었고 경비는 남편이 죽고 단 한번도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그대로 후궁이 되어야 했다고. 이 말을 들은 어상락은 그 아들을 먹이로 줄 겸 빼내오고자 한다.

3.3. 시즌4

90화에서 채려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태정군 하씨의 양자로 들이라는 조언을 받는 한편 가백문 일족 학살 증거와 관련해 거래를 한다.

이후 채려가 목 저아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채려가 죽기 전 자신에게 보낸 서신을 받는다. 채려의 서신은 두 가지 글을 담고 있었는데 하나는 '가백문 일가 학살 건을 강씨 가주가 밝혀내 2황자의 치부를 관료들에게 알리려고 했다'는 거짓 증언을 담은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채려의 개인적인 전언이었다. 개인적인 전언은 채려가 경비에게 '내가 어떤 이유로든 살아 있지 않다면 바로 이 서신을 황후에게 보이고 목숨을 구해라. 이는 처음부터 당신이 나를 죽이도록 유도한, 그러나 당신이 끝내 나에 대한 인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당신 자신의 목숨을 구명할 글이었다'라는 내용이었다.[35] 또한 채려는 전언을 통해 경비 당신이 늘 자신을 협박하고 휘둘렀던 것을 기억하지만 자신을 무덤에서 꺼내준 것 또한 기억하며, 이것으로 우리의 복수는 완성했고 나의 시간은 모두 써버렸으니 이별을 고하자며 경비에게 느꼈던 두려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전한다. 이에 채려의 서신을 읽고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즉시 황후에게 달려가 채려가 권한 대로 행동한다. 예상대로 황후는 황제가 된 2황자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강씨 가주를 버리고 경비를 선택하였으며, 경비는 이렇게 해서 황제의 사후 순장을 피한 것은 물론 그리도 증오하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까지 완수하게 된다.

황후궁에서 나온 경비는 채려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다가, 목씨의 딸을 데려오라고 살벌한 기세로 명령한다. 이후 자신에게 잡혀온 목 저아를 태자비의 예장으로 꾸민 뒤, 1황자와 함께 순장시켜 버림으로써 채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한다. 이후 궁 안에서 아들을 잃고 비탄에 잠긴 롱희를 마주치고, '의인을 위해 마련된 기회를 내가 잡아먹고 살았다'고 자책하며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난다.

황후와의 거래를 통해 순장을 면했으므로, 서리꽃 시점에서는 선황의 후궁 경태비가 되어 고향인 서부에서 살면서 롱희의 시녀인 주수와 희사를 자신이 거두어 데리고 있었다.[36] 주수에게 황궁 내의 반정 계획에 대해 전해듣고, 이에 협조하기 위해 태황릉에 손을 쓰기로 한다.[37] 그러면서 드디어 자신도 채려에게 진 빚을 갚는다고 읊조리며, 주수가 "경비가 죽은 채려 대신 나와 희사를 데려올 때는 그 진의를 몰랐으나, 이제야 경비도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황자님 덕분에 얻은 기회인데 정작 1황자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사무친다"고 말하자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4. 기타

화려한 화장에 빨간 입술을 칠한 캐릭터라는 점과 시녀인 가백문 채려가 1황자인 운의 연인이라는 것 때문에 이 사람 앞날도 좋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많다. 작약만가 시리즈에서 경비처럼 입술 색이 진한 인물은 대체로 성격이 표독하거나, 말로가 비참하거나, 둘 다(...)인 경우가 많다. 전작주인공 괴롭히다 비참하게 망한 여자도 빨간 입술과 화려한 화장을 하고 있으며, 흑화한 이후의 서리꽃의 주인공도 독해지면서 빨간 연지를 바르게 된다. 1기의 악역인 덕빈자주색 연지를 칠했던 인물이다. 황후도 초반부에는 큰 행사 아니면 안 바르다 2기부터 늘 바른다.

작약만가 불환곡 시즌2 작가후기에 따르면 경비 강씨는 덕빈처럼 중앙인은 아니지만(덕빈은 동방, 경비는 서방 출신이다) 중앙귀족 못지 않은 권력자 집안이며 황실과 친화도가 높아 중앙 양식의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작중에서 귀족 부인의 계급이 정실부인인 정공인[38], 신분 높은(주로 귀족 출신) 제2부인인 측공인[39] 귀족 혹은 평민 출신의 제3부인인 측서인[40], 그보다 아래로 시첩이나 시비 등이 있다고 하는데 불환곡에 등장하는 내명부 인물들을 귀족 가문에 대입해 보자면 경비가 측공인에 해당한다고 한다. 황후 숙정씨는 당연히 정공인이고, 롱희가 측서인에 해당한다고. 이는 태황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외국인을 심하게 배척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경비는 입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41] 20여년 전에 입궁하여 황제의 장남과 삼남을 낳은 롱희보다 서열과 품계가 앞선다. 황제가 '황자들의 생모가 속국 출신이면 모양이 안 좋다'는 이유로 송하국을 속국에서 우방국 지위로 격상시켰으니, 롱희는 태황의 우방국의 왕위 계승권자인데도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비보다 서열이 밀리는 것이니.

대부분 조용한 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다소 첫인상이 날카롭다는 평가 이외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강씨 가주의 만행으로 인해 가백문 채려를 끌어들여 전 남편의 복수를 계획할 때 눈만 번뜩이며 눈물을 흘리는 표정은 호러물 뺨치도록 소름끼친다. 새로 입궁을 하는 후궁인데도 용모에서 원숙미가 느껴지고 상당히 처세에 공을 들이는 모습은 경비 또한 나름의 개인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42]

경비의 과거와 흑화한 사연이 밝혀지자, 독자들은 경비의 흑화 버전에 가백문 채려의 용모를 끼얹으면 리빈이 나오겠다는 평을 내렸다. 차이점이라면 리빈은 이겼고 경비와 채려는 끝내 패했다는 것.... 그러나 서리꽃 시점에서 일어난 반란에 경비가 동조해 결국 황제가 된 2황자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볼 때 꼭 실패했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리고 경비는 채려를 죽인 목 저아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비극의 원흉인 아버지 강씨 가주를 죽이면서 복수에 성공한다.

초혼 후 아이를 하나 낳고도 수 년이 지난 뒤 입궁했으니, 입궁 당시 나이는 20대 후반쯤 됐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과 좀 거리가 있는 곳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기 전에 미리 대비를 많이 하고 왔는지, 아니면 눈치가 귀신같이 빠른건지 황가가 굉장히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사실에 대해 잘 꿰고 있으며 꽤나 정치적으로 머리를 많이 쓰는 면모를 보인다. 등장 초반부터 온빈을 이용해 은근슬쩍 자기 이미지를 올려치기하거나, 목 저아의 그간 나대다 큰 일을 당할뻔한 행각을 채려에게서 듣고 '여기가 제 집처럼 만만해보였나?' 하고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이거나, 태정군 하씨를 불러들인 후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그 자리에 온 중앙 귀족들을 태정군의 발언을 통해 엿먹여주거나 하는 것이 그 예시.

눈치가 빠른 일부 독자들은 경비의 과거가 밝혀지기 이전에 이미 뭔가 사연이 있긴 있으리라는 짐작을 했었다. 경비가 수 년 전에 입궁하려 했으나 황후의 방해로 무산되었던 적이 있다는 언급이 나온 바 있는데, 설마 명문가의 귀공녀가 수 년 동안이나 황제의 간택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비는 그 사이에 한 번 혼인을 했었다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갈라졌음이 밝혀졌다. 하여튼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덕인지 독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동정적인 평가가 올라갔다.[43]

위의 각주에서 언급된 것처럼 경비와 채려가 서로를 이용하다가 배신하는 결말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으며 두 사람 모두 마지막까지 인의를 저버리지 않고 서로를 지켰다. 채려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서조차 황후에게서 경비의 목숨을 구명할 서신을 남겨 경비가 순장을 피하게 하는 건 물론 그녀의 복수까지 성공하게 해준다.[44] 경비 또한 이를 잊지 않고 황태자인 이 죽어 순장당해야 할 채려 대신, 운의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고 채려를 죽인 목 저아를 황태자비로 꾸며 산 채로 순장시키면서 채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한다. 이후 선황의 후궁으로 출궁하면서 롱희의 시녀였던 주수와 희사를 거두고 선황의 태황릉에 손을 써 리빈의 반정을 도우며, 드디어 자신도 채려에게 진 빚을 갚는다고 읊조리는 걸 보면 수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채려를 잊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두었던 여성도 상황에 따라 이혼당하고 입궁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서리꽃 시점의 황제리빈에게 눈독을 들일 당시, 리빈이 이미 정혼자와 혼인한 뒤였다고 해도 황제가 이혼시키고 끌고 가면 그만이었을 것이라며 어차피 리빈이 입궁을 피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슬픈 의견도 나왔다.

작가가 그린 경비가 아직 입궁하기 전 모습인데# 본편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자연스럽고 환한 모습이라 작중행적을 놓고 보면 꽤 씁쓸하기 그지없다.[45]

[1] 慶은 '경사스러운 일' 할때의 '경사' 를 의미한다.[2] 화장 안 한 모습을 봐도 기본적인 인상이 날카롭다는걸 알 수 있다.[3] 원산대(遠山黛)는 눈썹을 가늘고 길게 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눈썹화장 기법이다. 중국사의 유명한 미인 중 한 명이었던 한성제황후 조비연의 여동생이었던 조합덕(趙合德, 나중에 조소의(趙昭儀)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소의 조씨라고도 불린 후궁)이 이 화장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치면 초승달 눈썹 그리기 같은 거.[4] 이를 볼 때 후궁들 중 아무도 황제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입발린 말만 해주고 있다는거에 대해 꽤 빨리 눈치챈듯하다.[5] 가늘고 날카로운 인상의 경비를 제외하면 모두 후덕한 모습이다.[6] 성빈에서 희희(喜姬)로 강등된 교응 가능사락. 온빈이 날뛴다는 것을 듣고 시녀에게 시켜 1황자 운을 불러오게 한다.[7] 경비가 온빈을 데려왔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온빈이 경비 집안을 낮잡아본다 하더라도 품계 상 비가 빈보다 높기 때문.[8] 서리꽂 내용을 보면 이들은 당연히 나중에 전부...[9] 이때 속으로 1황자는 사소한 걸로 보복하지는 않지만 겁은 주는 게 좋고, 이런 걸 끼고 다녀야 자신이 온화하게 보일 거라 생각한다.[10] 1황자 운은 교응이 불렀지만 실은 경비가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하였다.[11] 조선의 궁녀는 한 번 입궁하면 죽을 때까지 출궁할 수 없었고 혼인도 할 수 없었지만, 중국/일본에서는 하급 귀족 여성이 결혼 시장에서 값을 높이려고 궁에서 일하다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유럽 궁정의 시녀와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불환곡도 이 설정을 적용하였다.[12] 황후가 온빈에게 재녀를 이용하라고 언질을 줬다.[13] 복속된 땅은 복시라 부르고 할당된 진상을 바치면 현으로 승격하며, 그 땅을 다스리는 시통관은 땅과 피지배인들을 관리하는 노예 관리자에 가깝다고 한다. 태황이 정복한 곳마다 태황인을 보내 착취하고 지배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는 흔히 보인다고. 덕빈의 궉씨 집안은 그런 자들의 노비 장사로 떼돈을 번 집안으로, 궉씨 가는 덕빈 몰락 이후 많은 노비들과 재물을 바쳐 살아남았다.[14] 40화에서 운과 채려의 대화로 가백문 채려가 살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거나 대타가 있는 모양.[15] 대타가 있는 걸로 확인됐다. 동행한 의관 曰 채려의 관에 든 시신은 남성의 것이라고.[16] 현재 황제의 후궁으로서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화장도 연하고 순한 모습이다.[17] 이 당시의 경비는 갓 결혼했는지 외모가 더 어려보이고 머리도 올리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최소 유치원생 나잇대는 되어보이므로 결혼한지 4년 이상 흘렀을 가능성이 높다.[18] 이를 볼 때 강씨 집안에서도 후궁으로 들어가 중앙 진출을 노리는 이들이 꽤 있는 모양.[19] 황제는 이전에도 비빈이 많았지만 거의 다 딸이었고, 기록되지 않은 아들들은 죄다 기형아에, 그나마 사지라도 멀쩡히 태어난 아들은 꼴랑 셋이다. 그러다보니 아들, 그 와중에도 멀쩡한 아들을 무려 둘이나 낳은 롱희가 황후까지 제치고 가장 총애받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강씨 입장에서도 일반적인 여식을 들여보내봤자 딸을 낳거나 아예 애를 못 낳을 경우 안전빵도 못해먹으리라 생각해 일단 아들이라도 낳은 경비를 안전빵 삼아 보낸듯(...) 물론 태아의 성별을 남성으로 결정하는 건 Y염색체가 있는 남성 정자이고, 따라서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 해서 다음에도 또 아들을 낳는다는 보장 따위는 없지만, 생물학과 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모든 일이 여성에게 달려 있다고 여겼던 과거에는 정말로 진지하게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 = 아들을 낳을 능력이 있는 여성'이라 생각하였다.[20] 이후 있을 경비의 남편 살해 장면을 경비가 못 말리거나 못 보게 하기 위한 조치로 추측된다.[21] 경비와 전 남편의 아이는 친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고 아버지를 부르며 엉엉 우는 장면만 나왔을 뿐 어찌 되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독자들 사이에선 '심의 문제 때문에 유아 살해 장면이 직접 나오지 않았을 뿐, 경비가 황후로 들어가는 데 걸림돌이 될까 봐 경비의 아버지가 이 아이마저 죽였을 것'이라 보는 쪽과 '남아 생산 능력의 증거인데다, 강씨 집안의 피가 섞인 아이라 여차하면 집안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존재이니 살려는 뒀을 것'이라 보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는데, 64화에서 살아는 있었다고 밝혀졌다. 경비는 남편이 살해당한 날 이후 한 번도 아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어쨌든 죽진 않았고 경비의 아버지가 숨겨 키우고 있었다고.[22] 이 당시 경비는 남편이 살해당한 것에 대해 충격을 먹은 탓인지 얼굴이 매우 초췌해져 있었다.[23] 오히려 2황자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황후가 자신을 제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24] 경비가 이를 요구한 시점은 가백문 일가가 생매장당한 바로 당일이었다. '가백문 가문을 몇 달간 괴롭히다가 오늘 아침에 생매장했다면서요?'라고 언급한다. 이를 볼 때 경비는 (시집가서 다른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가백문 일가에 대한 소식을 꽤 늦게 접한 듯하다.[25] 결론적으로 치면 강씨의 추측 중 셋이 모두 들어맞았다(...) 황제는 근친상간으로 오염된 황가 혈통인지라 제대로 아이를 만들기도 힘들었고, 만들어봤자 오염된 형질을 가진 기형아가 출산될 확률도 높고,[46] 결정적으로 불환곡 시작 시점에서도 40대인데다가 경비를 후궁으로 맞이할 적엔 더 늙어서 생식능력도 저하될 시기였다.[47][26] 태황의 권문세족 중에서 그나마 피가 좀 먼 숙정씨 출신의 황후만 해도 기형이 의심될 정도로 추한 외모에 정신질환이 의심될 정도로 성격이 심각하게 뒤틀린 아들 딱 한 명만 출산했다. 그나마 겉과 속 모두 멀쩡한(...) 아들을 둘이나 출산한 롱희의 경우, 태황과는 아예 관계도 없는 쌩 외국인에 피가 별로 오염되지 않은 그녀의 형질이 아들들 대에서 더 강하게 작용한 운 좋은 케이스에 불과했다. 그리고 피가 더 가깝다고 의심되는 후궁들이나 자기 형질을 강하게 물려주는데 자식 형질유전 가챠운이 안 따라줘서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후궁들의 아이들 중 남아들은 죄다 기형아. 황제의 자식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딸들 중 멀쩡한 애들도 좀 더 건강한 어머니 쪽을 닮았을 뿐이었다. 황가와 황가에 혈연적으로 가까운 중앙 귀족의 피가 얼마나 근친상간 개족보로 인해 오염되었는지 알 수 있다.[27] 마냥 순수한 선의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경비가 그대로 죽을뻔한 채려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28] 채려의 아버지도 살아난 걸 보면 채려 외에도 채려의 아버지를 포함해 가백문 일족도 소수나마 살아 있긴 했던 듯.[29] 어차피 경비도 채려를 1황자 파벌에 들어가게 해주는데 도움이 될 도구로써 살려준 것에 불과하니, 채려가 용도를 다하지 못하면 경비 입장에서도 챙겨줄 필요가 없으므로 채려가 겁먹는 것도 당연지사.[30] 황제의 후궁들 중에도 귀비를 제외하면 가장 격이 높은 정1품 비의 품계를 받은 경비를 일개 대신이 모욕하고 하대하는 것만 봐도 태황이란 나라가 얼마나 남녀차별이 극심한지 알 수 있다.[31] 다만 온빈의 가문은 현 황후의 충신격인 가문으로 황후가 경비의 가문과는 오래전부터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덩달아 적대하는걸 수도 있다.[32] 2황자가 황제의 명으로 전장에 끌려가게 생기자 어떻게든 태정군에게 빌붙기 위해서였다.[33] 그 겨우 낳은 자식이 온빈인 것으로 추정된다.[34] 여기서 경비가 자신의 아비를 찍어누르기 위해 귀비 자리를 탐내긴 했지만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채려에 의해 언급된다.[35] 즉, 경비가 처음 계획했던대로 황후에게 1황자가 가백문 학살 사건을 2황자의 약점으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면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황후에 의해 순장당했을거란 것.[36] 원래는 입술을 진하게 칠한 것 외에는 화장을 그리 짙게 하는 편이 아니었다. 황제의 후궁으로 입궁한 뒤부터 화장이 전반적으로 짙어졌는데, 황제 사후 출궁한 뒤에는 아예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이다. 후궁에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자신을 꾸며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음을 나타내는 듯.[37] 서리꽃에서 리빈의 반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선황의 능이 도굴당하는 바람에 태후가 이를 살피러 출궁했기 때문인데, 해당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서리꽃에서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진범이 주인공 일행과 결탁한 경비였던 것.[38] 정공인만이 당당하게 정처로 행사할 수 있다.[39] 정공인이 없을 경우, 측공인이 '정측인'으로 불리며 정공인을 대리한다.[40] 가장의 부인/자녀로 인정받는 건 측서인과 그 자녀들까지.[41] 황제 사이의 자식만 아직 없을 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한 명 있다. 이 때문에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증명+2황자건의 무마 문제+광산을 바친 로비의 영향으로 높은 품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42] 초혼 때의 경비는 인상은 비록 눈매는 날카롭지만 권력다툼에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다. 이때 본인 말을 보면 전 남편과 결혼하기 이전 후궁으로 입궐할 뻔했다가 황후에 의해 저지된 뒤, 금광산을 노리고 전 남편에게 팔려가다시피 혼인했다고 한다.[43] 그러나 경비가 불쌍한 사연을 지녔다 해도 마냥 좋은 인물이라 속단하기는 이른게, 가백문 일가를 살려내려 했던 것도 어디까지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득이 될 패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며 채려에게 무덤 한 번 들어간 일 가지고 협박하는 걸 보면 자기 가문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이기도 한 채려 역시 그냥 도구 쯤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어느 독자는 경비는 값비싼 도자기를 깨뜨리고는 그 값을 아비에게 떠넘기지만 결국 그 깨진 조각을 치우다가 손을 다치는 건 채려라고 상징적인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44] 채려 역시 아버지에 대한 복수에 집착해 수시로 자신을 협박하는 경비에게 공포심을 느꼈지만 "당신이 늘 나를 협박하고 휘둘렀던 것을 기억하지만 나를 무덤에서 꺼내준 것 또한 기억한다."라며 경비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장본인이라는 것 또한 끝까지 잊지 않았다.[45] 경비는 황궁의 경직된 문화와 캐릭터의 사연을 나타내기 위하여 궁중에 있을 때는 경직된 차림새와 가면 같은 얼굴로, 사가에 있을 때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이 드러나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사가 시절은 남편을 잃고 아들과 생이별한 사연을 설명할 때와 에필로그에서 선황릉 훼손을 계획할 때 이외엔 거의 나오지 않았고, 대체로 궁중에서의 경직되고 초췌한 모습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독자들에겐 편안하고 행복한 경비의 모습을 볼 기회가 거의 전무할 정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