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에 따른 국가 분류 | |||
약소국 | 강소국 | 중견국 | 지역강국 |
강대국의 최소 | 강대국 | 초강대국 | 극초강대국 |
1. 개요
강대국(强大國, Great power)은 세계적인 규모[1]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국가를 의미한다. 강대국은 거대한 경제력과 강력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외교적, 문화적 영향력 등 소프트 파워를 보유하여 자국에 우호적인 우방국들을 범지구적인 범위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2. 강대국의 기준
모두에게 합의된 강대국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몇몇 국가들이 강대국으로 폭넓게 인정받기도 하기 때문에 강대국의 기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존재한다. 21세기에 들어 국제정치학에선 강대국과 강대국이 아닌 국가를 구분하는 중심 기준으로 역량적 · 공간적 · 지위적 차원이 제시된다.- 역량적 차원: 국력 자체가 기준이다. 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강대국의 여섯 가지 기준으로 '인구와 영토, 자원 기부, 군사적 세력, 경제적 역량, 정치적 안정성과 능력'을 제시했으며,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상대로 전면적 재래식 전쟁에서 심각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충분한 군사 자산을 보유한 국가'로 정의한다.
- 공간적 차원: 모든 국가는 국익 추구와 국력 투사 측면에서 지리적 범위를 가지는데, 이는 강대국과 지역강국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지역강국은 자국이 위치한 지역에만 영향력을 투사하나, 강대국은 이를 넘어 당대를 지배하는 국제적 체제의 범위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강대국은 '사회의 가장 넓은 범위에서 작동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세력'으로 정의된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주요 전장이 유럽에 국한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강대국들은 '세계 열강'(world-powers)에 해당하는데, 이는 1차 대전 발발 당시 서구 사회가 이미 '세계적'(world-wide)이었기에 유럽에서의 대전(大戰)이 곧 세계 대전이었던 탓이다.
- 지위적 차원: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타 국가들로부터 강대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도 기준이다. 빈 회의에서 '5두 체제'에 포함돼 강대국의 지위를 공인받았던 5개국[2]은 빈 체제가 무너질 때까지 40여 년간 그 지위를 유지하면서 평화를 누렸고,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승전국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 지위를 맡아온 5개국[3]도 전후 체제에서 명백한 강대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공인을 받지 못한 강대국은[4] 다른 강대국들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어떠한가, 강대국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있는가,[5] 당대의 정치 · 외교적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만큼 영향력이 있으며 그 문제의 결과나 해결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등으로 평가받는다.
번외로 역사학자 필립스 오브라이언(Phillips O'Brien)은 '강대국'이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그 예로 경제, 기술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을 군사 부분을 제외하고는 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으로 묶는 것을 들었으며, 대안으로 'full-spectrum power'라는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의 지위는 빈 체제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왔다. '강대국'이라는 표현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들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고, 전후 유럽 질서 정의를 위해 프랑스와 승전국들이 모인 빈 회의(1814-15년)를 계기로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이 공식적인 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빈 체제 하의 평화는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하면서 40여 년만에 무너졌고, 그 이후로도 1860-70년대의 이탈리아 통일 전쟁,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등 유럽의 세력 균형에 크고 작은 변화가 여러 번 일어났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20세기 전반기에 있었던 제1차 세계 대전(1914-18년)과 제2차 세계 대전(1939-45년)이었다. 1차 대전 종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국제연맹이 창설되어 주요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이 초기 상임이사국을 차지했으나, 정작 창설을 주도한 미국은 당시 상원의 다수였던 공화당이 미국의 전통적인 고립주의(먼로 독트린)를 이유로 가입을 거부하여 참가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상임이사국을 맡은 강대국들에게 걸맞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군사적 제재 수단도 전무했기에 전쟁 방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1939년 더 크고 참혹한 세계 대전이 일어났으며 종전 후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한 유엔(국제연합)이 신설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해당하는 국가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요 승전국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에서 교체), 러시아(소련에서 승계)다. 이들은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들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상정된 안건은 통과되지 못한다. 또한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하에서 완전한 핵무기 보유국의 조건을 충족한 다섯뿐인 국가들이며 국방비 지출에서도 모두 세계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19세기부터 강대국으로 여겨졌던 독일, 일본은 상임이사국 대열에 합류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유엔의 설립 이유부터가 이 두 나라가 일으킨 제2차 세계 대전이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군사적인 행동 반경도 제한되기에 정치적 영향력이 상임이사국들보다 많이 미약하나, 전후 영국과 프랑스보다 빠른 경제 재건을 이룬 덕에 세계 3 · 4위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확보했다.
인도는 과거에는 강대국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으나[6] 2020년대에 들어선 완전한 강대국으로 여겨진다.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이미 세계 4위 군사 대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이었고, 최근에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7]이라는 거대한 체급을 발판 삼아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2020년대에 조만간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고 세계 3위 경제 대국에 등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차세대 초강대국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할 만큼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앞세워 신냉전 시대에 미국과 중국 · 러시아 사이에서 제3세계의 수장 격을 자처함으로써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2.1. 강대국의 최소
자세한 내용은 강대국의 최소 문서 참고하십시오.강대국의 최소에 해당하는 나라는 이탈리아가 있다.
이탈리아의 국력은 강대국의 최소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탈리아를 강대국으로 보는 시선은 적고 오히려 인도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으나 이 어원이 태동할 당시 이탈리아는 독일, 일본과 마찬가지로 전후 경제 성장의 대명사이자 명실상부한 강대국의 최소였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지금의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놀라겠지만 1990년대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세계 6위에 육박하였다.[8] 1989년 한 해에는 영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하였으며, 1993년에는 미국, 일본, 통일 독일, 프랑스, 영국 다음가는 세계 6 ~ 7위의 경제대국이었다. 이탈리아가 G7에 가입할 수 있었고 영프독과 함께 유럽 빅4(European Big Four)로 불리는 데에는 이러한 강국이자 경제대국으로 있었던 역사가 자리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파리 강화 회의에서도 이탈리아 총리 비토리오 오를란도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클레망소와 함께 협상국의 주요 지도자로 기록되었다.
이탈리아와 국력이 비슷하거나 다소 밑도는 국가들의 강대국의 최소 여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대한민국: 2010년대 중후반부터 경제규모 평균 11위(10위 ~ 12위 안밖)와 육군과 해군, 공군 포함 군사력 순위에서 5위 안밖, IT 산업 및 조선업과 무역규모 등에서 세계 1위나 평균 5 ~ 7위 등등 현재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총합한 실질 국력 면에서 이탈리아와 동급 내지 우위인 강대국의 최소라 평가받고 있다. 다만 비교적 최근에야[9] 세계적으로 지역강국으로 인정받은 신흥강국이라는 것과 지정학적 위치 등의 이유로 실질 국력에 비해 지역 내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서 영향력 면에서는 지역강국으로 평가된다.[10]
- 브라질: 남미 패권국으로서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긴 하나[11] 남미가 국제정세에서는 북아메리카, 유럽, 동아시아에 밀리는 변방이라는 점, 경제력 등 국가의 내실이 다소 부실하다는 점이 지적받는다.[12] 때문에 국력으로는 이탈리아, 한국에 밀린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 호주: 오세아니아 패권국인 동시에 파이브 아이즈로서 영국, 미국의 최대 혈맹 관계이기는 하나 국제 무대의 변방에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인구 수와 절대적인 영향력 행사가 제한적인 편인 데다가[13] 국력(경제규모, 군사력, 지역 영향권 등)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이탈리아, 브라질에게 밀린다.[14]
- 캐나다: 경제력은 한국에 맞먹지만 지구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강대국은 커녕 지역강국 취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15] 더군다나 군사력과 문화뿐 아니라 USMCA로 대표되는, 캐나다의 장점인 복지와 무역도 미국에게서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기에, 주권국가로서 지역강국보단 중견국이자, 미국의 우방국 겸 작은 동생(...)이라는 별칭을 국제사회에서도 듣는 경우가 잦다.[16][17]
3. 현존하는 강대국 목록
2024년 9월 기준 강대국 지표 | ||||||||
국력 | 국명 | 경제규모[18] | 군사력[19] | 소프트 파워 | 인구[20] | 영토[21] | 핵보유 | |
주요 강대국 | UN 상임이사국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 $ 26.94 [1위] | 1위 | 1위 | 341,814,406 [3위] | 9,833,517 [3위] | O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중국 | $ 17.70 [2위] | 3위 | 5위 | 1,423,826,457 [2위] | 9,640,821[4위] | O |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러시아 | $ 1.86 [11위] | 2위 | 16위 | 146,150,789 [9위] | 17,098,246 [1위] | O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영국 | $ 3.33 [6위] | 5위 | 2위 | 67,961,439 [21위] | 243,891 [79위] | O |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프랑스 | $ 3.04 [7위] | 9위 | 6위 | 64,881,830 [23위] | 663,336 [41위] | O | ||
비상임이사국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독일 | $ 4.42 [3위] | 25위 | 3위 | 83,252,474 [19위] | 357,022 [63위] | △[*] |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일본 | $ 4.09 [4위] | 7위 | 4위 | 122,631,432 [12위] | 377,975 [64위] | X[44] | ||
[[인도| ]][[틀:국기| ]][[틀:국기| ]] 인도 | $ 3.73 [5위] | 4위 | 29위 | 1,441,719,852 [1위] | 3,287,263 [7위] | O | ||
강대국의 최소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 $ 2.18 [8위] | 10위 | 9위 | 58,697,744 [25위] | 301,340 [73위] | △[*] | |
※한국의 현황[52]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대한민국 | $ 1.86 [12위] | 5위 | 15위 | 51,271,480 [29위] | 100,449 [108위] | X[56] |
국제적으로 강대국이라 하면, UN에서의 발언권과 거부권을 사용 가능한 상임이사국을 떠올린다. 근대 이후, 평균화된 강대국 국가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구) 소련, 프랑스, 영국을 두고 세계의 강대국으로 오랫동안 떠올린 나라들이고, 여기에 경제규모와 기술력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일본, 독일이 강대국으로 불린다. 2020년대 들어 많은 인구와 핵무기,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력으로 외교적인 영향력이 증가하는 인도가 강대국으로 취급받고 있다. [57]
강대국의 최소로는 이탈리아가 세계 대전부터 이탈리아를 넘어가면 강대국이다라는 포지션을 오랫동안 유지했으며,[58] 이를 독일은 진작에, 일본이 70년대 이후로 추월하였고, 2010년대 중후반엔 인도가 추월하였다. 최근엔 한국이 이탈리아와 경제규모가 비슷해지면서 수치로서 강대국의 최소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다. 브라질도 이탈리아와 경제력이 비슷하나, 자원과 인구수를 빼고선 모든 부분에서 밀리거나 약간 비슷한 정도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다수다.[59][60]
참고로 강대국 중 중국, 러시아 2개국은 독재국가고, 나머지는 민주주의 국가다. 다만 인도는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민주주의 지수와 세계의 자유가 떨어지는 등 민주주의 내실이 선진국들에 미치지 못한다. 나렌드라 모디의 집권하에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된 것은 아니다.[61]
3.1. 미국
- 역사
미국은 1776년 동부 해안 13개 식민지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건국되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은 미국은 이후 서부 개척에 착수하였다. 미국의 독립을 인정한 파리 조약(1783)은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미시시피강에 이르는 영토를 보장했고, 미국인들이 그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거주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발생해 원주민들은 고향에서 축출되거나 문화적인 말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확장을 위한 노력은 미국을 반(半)자치적인 주들의 느슨한 연합에서 강력한 국가 구심점을 가진 연방 국가로 전환시킨 미국 헌법(1787)이 제정되면서 대단히 강화되었다. 또한 1803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면서 단숨에 영토가 두 배로 늘어나 로키산맥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국력과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여, 1823년에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세력권이며 개입을 시도하는 유럽 강대국을 상대로 군사 행동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먼로 독트린을 발표할 만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는 미국이 아메리카의 지역강국으로 부상한 시발점이라 여겨지며, 미국의 지역 패권 행사는 1846년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있었던 양국 군대의 소규모 교전 이후 미국이 멕시코를 침공하면서 시작한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바로 나타났다. 멕시코인들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점령한 이 전쟁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고, 협상을 제안한 멕시코와 미국은 과달루페 이달고 협정을 체결하여 리오그란데강을 국경선으로 확정,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등 멕시코 북부 지역 대부분이 미국에 합병되어 오늘날 미국 서남부 지역을 형성하였다. 또한 멕시코와의 전쟁 발발 직전에 오리건 일대를 놓고 분쟁이 있었던 영국을 위협해 북쪽 국경을 북위 49도까지 끌어올려 영토를 더욱 확장함과 동시에 양면전쟁의 위험을 없앴다. 1860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미합중국과 미연합국 두 개의 국가로 찢어질 위기에 놓였으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지도 하에 미연합국이 미합중국에게 굴복하며 하나된 연방이 지속될 수 있었다. 1867년엔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이 러시아 제국과 알래스카 조약을 맺어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헐값에 할양받았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선 스페인 제국을 격퇴하고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태평양 건너 필리핀을 획득하였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 왕국도 1898년 미국에게 멸망했다.
이미 1890년대에 서유럽 전체의 생산량을 능가한 미국은 20세기에 들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모두 협상국(1차)/연합국(2차)의 승리에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 주요국들이 큰 타격을 입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간기에 제1의 경제 대국 자리에 올라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오늘날까지도 화자되는 막강한 생산 능력과 풍요로운 경제력을 과시하며 양면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도래한 냉전 시대에는 소련과 함께 강대국을 넘어 유이(唯二)한 초강대국으로 여겨졌고, 소련 붕괴에 따라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부턴 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자리에 등극했다.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대에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 칭한다.[62]
20세기 중후반 냉전 시대에 미국의 정치적 지위는 자본주의 & 자유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확고하게 정의되었다. 두 동맹국 영국, 프랑스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한 미국은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와 영연방 국가, 라틴아메리카 및 여러 동아시아 국가(일본, 대한민국, 대만)와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또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마셜 플랜 등 대규모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실행하였다. 냉전기 미국은 반공 우익에 해당한다면 독재 정권과 민주주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63]
- 현황
경제적 역량은 미국의 국력에서 중요한 원동력이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위로 전 세계 GDP의 약 25%를 점유하고 있고, 전 세계 부(wealth)의 약 30%를 미국 혼자서 차지하고 있으며 백만장자의 약 39%가 미국인이다. 또한 세계 3~4위 규모의 광활한 국토에서 산출되는 엄청난 양의 천연 자원에 더해 거대한 현대식 농업 및 제조업과 세계 최대의 내수 시장까지 갖춰 세계 2위의 수출국, 1위의 수입국으로서 국제 무역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 달러는 브레턴우즈 체제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기축 통화이다. 미국의 시스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기반하며,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워싱턴 합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 등을 통해 경제 위기를 겪는 세계의 개발도상국에게 개혁 모델로서 요구되기도 하였다.
미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선진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맹국들에게 핵우산 등 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중앙정보국(CIA)도 손꼽히는 첩보 능력을 바탕으로 파이브 아이즈로 칭해지는 국가들과 가장 높은 급의 기밀을 공유한다. 이러한 군사적 역량을 바탕으로 냉전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실책과 다른 국가들의 성장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미국의 일극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64]
'미국화'(Americanization)로 잘 알려진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음악, TV 프로그램, 영화, 예술, 패션, 스포츠, 게임 등 세계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 미국 문화는 세계 각지에 뿌리내려 전 세계인이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또한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권리의 보장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수많은 신생 독립국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3.2. 중국
- 역사
최초의 중국계 국가로 여겨지는 상나라 시대부터 영토가 최대 1,250,000km2에 달할 만큼 대국이었고, 기원전 221년 시황제의 진(秦)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종결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면서 최초의 중화제국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대륙의 새 주인이 된 한나라는 영토를 약 6,000,000km2까지 확장했으며 인구는 약 55,000,000명에 이르렀고, 이 시대에 중국이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강대국으로서 한반도, 일본, 몽골, 베트남과 중앙아시아 등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북방 유목제국 흉노의 공세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정략결혼 관계를 맺은 적도 있었으나, 한 무제 대에 들어서 흉노를 만리장성 이북으로 격퇴하고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해 지중해 세계와도 교류를 시작하였다. 또한 활발한 정복 사업을 벌여 남쪽의 남월과 동쪽의 고조선을 멸망시켰고, 춘추시대에 출현한 유교가 처음으로 국학(國學)의 위상을 차지하여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400여 년에 걸친 한나라 시대에 중국의 정체성이 비로소 확립되었고,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책봉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중화 질서가 탄생하였으며 이로써 한자문화권의 밑바탕이 형성되었다. 한나라 멸망 이후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와 오대십국시대 때 분열되어 영향력이 줄긴 했으나 수나라-당나라-송나라 때 다시 회복했고 특히 당나라, 송나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해 전성기 때는 전세계 GDP의 30%를 독점하기도 했다. 한족계 국가는 몽골 제국에 의해 송나라가 멸망하며 몽골의 지배를 받고 쇠퇴하긴 했으나 곧 한족의 반란으로 몽골을 몰아내고 명나라가 건국되며 다시 패권을 누리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은 무역은 규모가 막대해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수많은 양의 은이 유입되었다. 명의 환관 정화는 여러 차례의 항해와 탐험에 걸쳐 아프리카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만주족의 청나라에 의해 중국의 명나라는 쇠퇴하다 멸망했고 청나라는 이를 틈타 중원을 차지하여 중국의 한족들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청나라는 중국화되어 중국 왕조로 변해가 중국 왕조로 인식된다. 강희제 치세인 1684년에 청나라는 중국 전역을 평정하였다. 다민족 국가였던 청 제국은 현대 중국 영역의 기반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데, 실제 청나라는 비록 만주 국가였긴 했으나 중국사상 가장 거대한 왕조였으며 세계 사상 네 번째로 넓은 제국이었다.[65] 이는 '강건성세'(1683 ~ 1799)로 칭해지는 청나라의 황금기에 이뤄진 것으로, 타이완, 몽골, 티베트, 그리고 준가르 완전 복속은 청나라 번영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12년 멸망 당시 청나라의 인구는 약 432,000,000명으로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었으며, 연구에 따르면 청나라의 경제는 1820년 절정에 이르러 세계 경제의 약 32%를 차지했다고 한다.
1840년 아편 무역 문제를 놓고 발발한 영국과의 제1차 아편전쟁을 신호탄으로 일명 '백년국치' 시대가 개막하면서 청나라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국에게 패전한 청나라는 난징조약(1842)으로 홍콩 섬을 영국에 넘기는 치욕을 겪었으며, 제2차 아편전쟁(1856 ~ 1860)에서도 영국과 프랑스 제2제국, 미국, 러시아 제국의 연합군에게 당하면서 연해주 전체를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청프전쟁(1884 ~ 1885) 패배로 베트남에서, 청일전쟁(1894 ~ 1895) 패배로 조선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리면서 전통적 중화 질서도 완전히 붕괴하여 강대국의 자리를 잃어버려 지역강국으로 추락한다. 한편 내부에서는 태평천국 운동(1850 ~ 1864)과 의화단 운동(1899 ~ 1901)이 일어나면서 제국주의 열강에게 군사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고, 청 정부의 여러 근대화 개혁 정책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청나라는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자꾸만 뒤쳐져 갔다. 이후 청나라는 열강들의 반식민지로 전락하여 중견국도 못하는 수준으로 더 추락한다. 결국 1911년 신해혁명으로 이듬해 청나라가 멸망하고 한족 국가인 중화민국이 건국되었고 국력도 청나라 시절보단 약간 회복했으나, 중국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륙 전역에서 여러 군벌들이 군웅할거해 다투는 군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국은 다시 혼란에 빠졌고, 이 틈을 노린 일본 제국과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은 계속되었으며 1931년에는 일본의 선제 공격으로 만주사변이 발발, 이후 1937년 중일전쟁(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으로 확전되면서 중국은 난징 대학살 등 전쟁의 참화 속에서 엄청난 인명 및 물적 피해를 입었다.
현대 중국이 강대국의 위상을 되찾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4명의 경찰관'(Four Policemen) 구상에 중화민국이 연합국의 주요 일원으로서 포함되면서부터였다.[66] 1945년 8월 2차 대전 종전 후 재개된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해 1949년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중국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 섬으로 도피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6.25 전쟁(1950~1953) 참전과 1960년대의 중소결렬을 거치면서 3극 체제(중국-미국-소련)의 한 축으로 떠올랐고, 1960년대엔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도 성공해 핵확산금지조약 하에서 인정받은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를 근거로 유엔에 가입하면서 대만을 사실상 축출했고, 대만이 가지고 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획득함과 동시에 중국(China)의 대표성까지 넘겨 받았다. 이런 와중에도 내부적으로는 대약진 운동(1958~1962), 문화대혁명(1966~1976)과 같은 혼란과 국력 손실이 계속되었으나,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1978년 집권한 덩샤오핑이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입각한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쳐 눈부신 경제 성장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탄력을 받아 수출 경쟁력이 상승했고, 그 결과 2010년에는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으며 잠재적인 초강대국 후보로 평가받는다.
- 현황
현재 중국은 1,423,826,457명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2위 인구 대국이며,[67] 미국에 이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에 올라있는 경제 대국이자 미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 군사 대국이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 중국은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노력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68] 이는 서방세력에 대항하고 자급자족이 어려운 중국의 특성상[69] 서방 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BRICS)의 설립하여 개발금융에서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와 경쟁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는 강대국임은 학계와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이미 널리 인정받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과 이에 따른 대봉쇄의 초기였던 2020 ~ 202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이 2026 ~ 2028년이면 명목 GDP에서도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2021년 하반기부터 중국의 미국 추월은 2030년대에나 가능할 것으로 미뤄졌으며 어쩌면 절대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거대한 노동 인구였는데, 중국의 인구는 역사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작금의 인구학적 추세는 여러 경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국력 신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건설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채무 중심 경제 성장은 대규모 디폴트 위험이나 잠재적인 금융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일각에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유사한 장기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3.3. 러시아
- 역사
러시아 제국은 표트르 1세 치세에 형성되었다.[70] 표트르 1세는 여러 차례의 전쟁과 서구화 · 근대화 정책으로 러시아를 유럽의 주요 강국 중 하나로 성장시킨 차르였다. 예카테리나 2세도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 근대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정복과 식민지 개척, 외교를 통해 영토를 확장하여 제국은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러시아 원정을 좌절시키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했고, 프랑스 혁명에 맞선 보수 전제군주제 국가들의 연합체인 신성 동맹을 구성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러시아 제국은 정복 활동을 거듭한 끝에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고, 국경이 동쪽으로는 폴란드 동부에, 서쪽으로는 알래스카에 이르렀다. 19세기 말에는 약 22,400,000km2, 지구 육지 면적의 ⅙을 차지해 당대 대영제국에 비견될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 중 하나였다. 또한 당시(1897년 기준) 제국의 인구는 약 125,600,000명으로 청나라, 대영제국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이러한 국력을 기반으로 19세기 내내 대영제국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그레이트 게임으로 칭해지는 패권 경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20세기 초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붕괴되고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건국됐는데, 소련은 제국의 인구와 영토 대부분을 거의 그대로 승계하였다.[71] 레닌 사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계획경제를 통해 소련을 대규모 산업화로 이끌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소련은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시작되자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던 소련도 폴란드, 발트3국, 루마니아 북부, 핀란드 동부를 침공해 병합하였다. 1941년에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독소전쟁이 일어났다. 소련은 2차 대전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소련군은 독일군을 격파하고 끝내 베를린까지 점령하면서 독일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그 덕분에 동유럽 전역을 공산화했고, 전후 제2세계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에 맞서 냉전을 전개하게 된다.
전후 소련은 연합국의 주요 일원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코메콘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결성해 공산권을 구축하였다. 냉전 초기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는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인류 최초의 타 행성 탐사선 모두 소련이 일궈낸 성과일 정도였다. 또한 여러 사회적 · 기술적 성취와 군사 분야에서의 혁신에 힘입어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최대의 상비군을 자랑했으며, 1949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핵무기 보유국 대열에 참가하였다. 40여 년에 걸친 냉전 시대에 소련은 때때로 소비에트 제국이라 불릴 만큼 미국 못지 않은 양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동유럽 · 중부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패권을 행사했고, 그 밑바탕에는 강한 군사적 · 경제적 역량, 개발도상국에서의 대리전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력, 과학 연구(특히 우주공학과 무기)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
- 현황
1991년 출범한 러시아 SFSR 후신 격인 러시아 연방은 소련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했고, 국제사회에서 소련의 공식적인 후신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보유한 핵보유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어마어마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강대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기에 이런 지리적 특성을 기반으로 동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는 여러 권역에서 모두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세계 2위 수준의 군사력과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 시리아 내전, IS 토벌 등 국제사회 곳곳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소련 시절부터 기술력을 축적한 방위산업과 항공우주공학도 우수하다.
GDP 순위는 세계 10위 전후로 이탈리아보다 밑이라 조금 부족하다.[72] 제조업 기반이 빈약하고 천연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으며, 푸틴의 팽창주의 행보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으며, 부정부패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막대한 자원, 광활한 영토, 제국 시절부터 쌓은 기초과학 등 강점이 남아있어 충분히 강대국으로 분류되며 잠재적으로는 초강대국 후보에 들어간다.
다만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시절 처럼 되기 위해서는 인구의 열세, 공산주의라는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부재 등으로 인한 한계점이 있다. 러시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우방국들을 최대한 확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구 소련 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중국과 외교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제 3세계 국가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지고 있는 인도[73]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추가로 반미 국가이면서 중동의 지역강국인 이란, 미국과 껄끄러운 외교 역사가 있는 중남미[74], 반서방 성향의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 외교 역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75]
3.4.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모두 명목 GDP 순위에서 6~7위에 머무르며, 군사력 또한 비슷한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중세부터 유럽의 중심을 담당한 강대국이었으며 제국주의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쳐 최전성기를 누렸다. 전후 40여 년간 세계 정세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 구도로 흘러갔고, 눈부신 경제 회복을 이룬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경제력에서 앞서 가면서 현재는 과거의 영광이 많이 퇴색된 상태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시절 경쟁적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확장했던 덕에 영국은 영연방, 프랑스는 프랑코포니를 중심으로 구 식민지 국가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2차 대전 패전국이라는 정치적, 외교적 제약이 남아있는 독일 및 일본과 달리 핵무기 보유국이며,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갖고 있기에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은 이들보다 확실히 앞서 있다.3.4.1. 영국
- 역사
과거 알비온(Albion)이라 불렸던 브리튼 섬에는 켈트족들이 거주하였으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도 로만 브리튼 시기 건설된 것이다. 로마인들이 떠난 영국에는 앵글로색슨족 등 게르만인들이 영국에 도달해 잉글랜드 지역을 차지했으며 브리튼인들은 스코틀랜드나 브라타뉴 지역으로 밀려난다. 앵글로색슨인들이 수립한 칠왕국은 바이킹들의 침략 끝에 통일을 달성해 잉글랜드 왕국을 건국한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친 영국은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등 현명한 국왕들이 등장하며 국력이 성장하였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했으며 산업 혁명이 발생하는 등 세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707년에는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완전히 합쳐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세워졌다. 이 시기 대영제국(영국 식민제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인도,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홍콩 등 수많은 국가들을 정복하고 다양한 민족들을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다.[76]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국력 손실을 겪어 아일랜드를 상실했으며,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체결해 자치령들의 권한을 확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워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전후 미국과 소련에게 밀려 수에즈 전쟁 이후 완전히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1948년 왕관의 보석이라고 불리던 인도가 독립하였고, 1997년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하며 대영제국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 현황
비록 과거의 영광만 남은 늙은 사자라고 비웃음당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국력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영국은 세계 6위의 경제 대국으로 런던 카나리 워프의 금융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석유화학·항공우주·제약 산업 역시 발달했다. 또한 영국은 옥스브리지로 대표되는 우수한 대학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의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친다. 군사적으로도 영국군이 독일, 싱가포르 등 세계의 여러 지역에 주둔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브렉시트 이후 사회 혼란과 경제난이 심해졌다는 점이 있다. 영국은 일본처럼 확고한 친미 외교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자신의 입지를 보장받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77] 영국은 파이브 아이즈 국가로, 미국의 수많은 대외 원정에서 자국의 병력을 파견하는 등 미국의 파트너 성향의 외교를 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에는 심화된 유럽 내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및 영연방 국가와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78]
3.4.2. 프랑스
- 역사
프랑스 땅은 고대에 골족을 필두로 한 여러 켈트계 민족들이 살고 있어 갈리아라고 불렸다. 로마 공화국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필두로 베르킨게토릭스 등 골족의 족종들을 물리치고 갈리아를 점령하였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갈리아에 로마식 문화를 주입해 라틴화시켰다. 로마의 쇠퇴 이후 프랑스 땅에는 프랑크 왕국과 프랑스 왕국이 수립되었다. 백년전쟁에서 영국을 상대로 승리하였으며,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서유럽의 맹주 격인 막강한 국력을 오랫동안 행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구체제는 많은 모순과 병폐가 있었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해 구 제도가 일시에 척결되었고 프랑스 혁명 전쟁이 전개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공포정치 등의 광기에 젖기도 했지만 시민 세력이 왕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성립한 대사건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등 정치적인 자유가 증진되어 타국의 시민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일련의 전쟁을 일으켜 민족주의를 전파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프랑스는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프랑스 제2제국 등 다양한 체제를 거치다가 보불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공화정이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벨 에포크로 나름 번영을 누렸으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남자들이 전사해 사회적으로 한 세대가 거의 소멸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 6주 만에 항복하는 수모를 겪는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등의 활약 끝에 전승국으로 어찌저찌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전쟁에서 얻은 피해로 인해 식민지와 영향력을 대거 상실했다.[79] - 현황
비록 패권국의 자리에서는 내려온 지 오래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인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무려 300%를 넘으며, 원자력 기술, 항공우주 기술이 뛰어나다. 프랑스는 인구 구조 역시 안정적인 편이고, 예술, 요리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영향력도 강력하다.[80] 제국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하나 프랑스 외인부대 등의 군사력을 구 프랑스령 아프리카 지역에 투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경제 상황이 예전같지 않고, 이슬람계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토착민들과의 사회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사회의 문제점이다. 영국과 프랑스 둘 다 서방 진영의 핵심 국가이지만 외교 전략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유럽 대륙 본토 국가인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의 주도 국가로서 좀 더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냉전기 프랑스는 핵개발을 위해 NATO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도 했다. 오랜 기간 EU를 주도해 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하면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EU의 핵심적인 인물로 부상했다는 평이 있다.
3.5. 독일과 일본
이 두 국가는 전근대에는 주요 열강들보다 발전이 느렸으며 봉건제의 역사가 길어 국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독일과 일본은 각각 프랑스·오스트리아, 중화제국 등 기성 강대국들에게 밀리는 신세였다. 독일과 일본은 근대에 들어서 민족주의의 대두, 산업화의 성공으로 인해 국력을 증진시키게 된다.근대에 들어서 독일은 프로이센 왕국이 주도하여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하며 독일 통일을 완수해 독일 제국을 수립하였다. 독일은 산업화를 거치며 국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영제국의 경제력을 추월할 정도로 신흥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독일은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꽤나 선전했으나 결과적으로 패배했고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여러 손실을 입는다. 독일 제국이 무너진 이후 출범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배후중상설로 인한 반유대주의의 대두, 나치당과 독일 공산당의 체제 전복 시도로 인한 정국 혼란을 겪었다. 대공황이 터지고 당세가 강해진 나치당은 1933년 수권법을 통과시키고 아돌프 히틀러를 독재자로 추대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킨다. 나치 독일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히틀러와 나치당은 그릇된 이념을 바탕으로 유대인 600만 명을 포함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였다. 결국 독일은 소련군과 서방 연합군에게 멸망하며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고, 1990년 독일 재통일을 겪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헤이안 시대에 이르러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구축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이룬다. 일본은 에도 막부 때부터 난학 등 서양의 학문을 어느 정도 익혔으며, 많은 인구와 발달된 상업으로 인해 근대화를 시도할 역량을 갖추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추진해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체화했으며, 비서양권 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근대화를 성공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서구 열강들에게 강대국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발달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국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국력을 늘려 이탈리아 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도의 강대국에 안착한다. 그러나 대공황이 닥친 이후로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물든 일본은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으며, 폭주하기 시작한 일본은 중국을 침공했고 미국까지 공격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도중 일본은 수많은 전쟁범죄를 일으켰으며,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비이성적인 발악을 하던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이은 무조건 항복으로 끝을 맺는다.
잔후 독일과 일본은 냉전 체제 하에 자유진영에 편입되어 빠른 재건과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 현재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둘 다 2차 대전 추축국이었기에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런 끔찍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유엔이 창설됐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 세계 3위, 4위의 경제대국임에도 위에 열거된 강대국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약하다. 영국 · 프랑스와 비교하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는 영국 · 프랑스가, 경제적인 영향력에서는 독일 · 일본이 각각 서로 약점을 상쇄하며 균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국내총생산 세계 3위로 같은 유럽에 위치한 상임이사국들인 영국 · 프랑스 · 러시아보다 높으며, 소프트파워는 세계 3위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실질적인 주도국으로서 유로존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다. 일본은 국내총생산 세계 4위, 군사력(GFP) 세계 7위, 소프트 파워 세계 8위 등 국력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위치한다. 또한 TPP와 아시아개발은행의 주도국이며 IMF 투표권 세계 2위, 유엔 분담률은 세계 3위일 만큼 국제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이다.
독일과 일본은 천연자원이 전무하고 자연환경 또한 척박한 편이지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제조업 강국이자 과학 · 기술 강국이기에 산업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 전 세계의 제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기계의 대부분은 일본과 독일에서 만들어지며, 자동차 시장 또한 두 나라의 비중이 매우 크다. 또한 로봇, 센서, 광학기기와 자동차 부품 등 일명 '소부장'(소재 · 부품 · 장비) 분야에서도 독일과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무역 규모에서 독일은 세계 3위, 일본은 세계 5위에 위치한다. 양국 모두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ODA(공적개발원조) 규모에서 독일은 세계 2위, 일본은 세계 3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 각지의 개발도상국들에게도 무시 못 할 위상을 갖고 있다.#
학문 분야에서 독일의 지분이 상당하며, 인문학,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학자들은 대부분 독일인일 정도이며, 특히 근대 철학과 현대 물리학은 그야말로 독일인의 학문이라 해도 될 정도로 독일의 기여가 대단했다. 그리고 독일의 노벨상 개수는 무려 111개이다. 일본 또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노벨상을 29개 수상한 학문 강국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 포함한다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 비해 열세이긴하나, 아시아 대륙에서만큼은 자연과학, 응용과학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를 따라잡을수 있는 나라는 전무하다. 특히, 2차대전 이후의 현대 물리학에 대한 일본의 비중은 영국, 프랑스에 견줄수도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두 나라 모두 무리하게 세계 대전을 일으켜 패전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높은 국력을 영위했을지도 모른다. 독일 제국은 당시 세계 경제력 3위이자 육군 1위, 해군 2위의 강대국이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군사력이 크게 제약당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경제력만큼은 건재해서 그 당시 세계 경제의 10.4%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나치 독일의 GDP는 세계 2위로, 미국의 40%에 달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하며 출범한 일본 제국 또한 태평양 전쟁 직전의 GDP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서양 열강들보단 부족했으나[81]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양권에선 독보적으로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으며, 2차 대전 중엔 독자적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했다.
전쟁으로 수많은 인구와 영토를 상실했으나 둘 다 여전히 역내에서 손꼽히는 인구 대국이다.[82] 인구 순위는 일본 세계 11위, 독일 19위이다. 일본은 14억 인구대국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간과하기 쉽지만,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유이하게 1억 이상의 인구(1억 2천만 명)를 보유한 선진국일 만큼 엄연한 인구 대국이다.[83] 독일 역시 8,4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유럽과 아시아 '점이지대'에 위치한 러시아와 튀르키예를 제외한 순수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것이다.
3.5.1. 제2차 세계 대전 책임으로 인한 정치적 제약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으로서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대열에서 제외되었으며, 이에 따라 다른 강대국들과 달리 범세계적인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보통 강대국으로 일컬어지려면 전 세계를 상대로 국가의 의지와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UN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 독일과 일본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인도, 브라질을 끌어들여 G4의 형태로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 노력하지만, 둘 다 현재진행형인 과거사 문제로 인해 주변국들이 이들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할 목적으로 커피 클럽을 만들 정도라 현재로써는 상임이사국 진출이 요원한 상황이다.[84]때문에 비상임이사국과 같은 형태로 상임이사국들과 유사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이에 주변국과의 연대도 중요한데, 그나마 독일은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주변국들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일본은 더 심각한데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열세인 외교적 입지와 군사력 문제로 인해 미국을 등에 업지 않는 이상 일본 자체만의 파워게임에서 한참 밀리는 형편이며,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대한민국과도 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해 독일과 마찬가지로 주변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85]
대만과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경우 일본에 우호적인 국가라 할 수 있으나 이들은 세계 주요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86] 이들 역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을 도울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 실제로 동남아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친일 스탠스를 보이고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정작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로 유엔 상임이사국의 권한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2차 세계 대전 추축국이자 패전국이라는 족쇄로 인해 경제력에 비해 미약한 군사력을 갖고 있고 핵무기 보유도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영국·프랑스에 비해 영향력 투사가 제한적이다. 물론 이것들은 독일과 일본 스스로도 원했던 것인데 그중 하나가 국방 예산을 줄인 만큼 여유 예산을 다른 부분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일본은 미국과 한국에게 어느 정도의 국방 부담을 전가하며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사회 건설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독일과 일본은 워낙 부유한 경제대국인지라 예산 비율을 적게 잡았음에도 어지간한 국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독일은 세계 7위, 일본은 세계 10위 가량의 국방비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영향권의 부재 역시 국력 평가에 있어 양국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적 국가 체급이 비슷한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비교했을 때 영국은 영연방, 프랑스는 프랑코포니라는 구 식민지 모임이 있으며 러시아 역시 구 소련 국가들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이라는 독자적인 영향권을 형성한다.[87] 반면 독일과 일본은 구 식민지도 적을뿐더러 그나마도 지배 기간이 짧은 데다가, 그들과의 외교 관계도 원활하지 못해 이들을 앞마당이라 보기 어렵다. 독일과 일본이 EU와 동남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 역시도 경제력에 기반한 비공식적인 영향력이라 경제력이 쇠퇴하면 같이 쇠퇴한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으며, 경제 외 현안에 있어서는 정치적 주도권이 전무한 수준이라 단순히 경제를 넘어 정치, 군사, 문화 등 다방면에서 자신들의 앞마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비교하기 어렵다. 다른 강대국들의 공용어인 영어(미국·영국), 프랑스어(프랑스), 중국어(중국), 러시아어(러시아)는 모두 유엔 공식 언어로 지정되었지만, 일본어와 독일어는 그렇지 못한 것만 보아도 두 나라의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알 수 있다.[88]
한편으로는 독일과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하필 일본의 적성국인 중국, 독일과 일본 양국의 공통 적성국인 러시아 모두 군사대국이자 핵보유국이다 보니, 두 나라 모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향후 행사할 수 있는 국제적인 영향력의 한계 역시 명확하다. 그렇다고 두 나라가 각각 인접한 한국이나 영국, 프랑스를 군사력으로 압도하지도 못한다. 그나마 일본은 한국과 큰 차이는 나지 않으나, 독일은 오랜 기간 동안의 군축으로 인해 영국·프랑스에 비해 군사력이 확실히 열세이며 심지어 피지배국인 폴란드에도 군사력이 밀리는 처지다.
그래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양국 모두 나름대로의 정치적 이유로 인해 굳이 여기에 신경쓰지 않는다. 먼저 독일은 냉전 시절과 달리 지금은 딱히 인접한 적국도 없고, 유사시 폴란드 등 NATO 회원국들의 상당수를 간접적으로 동원할 수 있으며, 이미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재무장해 다시 전쟁을 일으켰던 전례가 있는지라 굳이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며 주변국들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89] 일본 역시 국내에서는 보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성 발언이 주로 부각되지만, 기본적으로 섬나라다 보니 자위권을 위한 해군력, 공군력 증강에만 힘을 쓰지 육군력에 대한 투자는 미미한 편이다.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여론 역시 오히려 미국의 요구 등으로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며, 평화헌법을 유지하려는 목소리가 강한 편이다.[90] 또 상술했듯이 양국은 과학기술 역량이 매우 뛰어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일본은 핵연료 재처리 시설 역시 보유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그늘막에서 경제성장에 몰두하고 안보를 미국에 맡기며 이런 관성이 생겼는데, 2차 대전 이전까지 주요 강대국 중 가장 호전적이었던 두 국가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된 데에는 2차 대전 후 미소 양극의 이념 대결로 세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된 영향이 크다. 2차 대전 이전까지의 다자 안보 체계였다면 일본/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동맹국처럼[91] 승전국의 통제를 받으면서 운 나쁘면 오늘날까지 감시당하면서 민족적 굴욕을 겪었을 테지만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위협에 이들은 패전국으로서의 대가를 치르기도 전에 반공 선봉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92] 어차피 패전의 대가로 열강의 새로운 한 축이 될 순 없으니 반공 최전선으로서 서면서 지원을 받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미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등 패권 지향적인 서방 강대국들은 이러한 독일과 일본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일본의 경우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서방의 합동 군사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경제적 지원으로만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서방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고, 동시에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의 문제에 참여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받았다. 독일은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꾸준히 군축을 진행했고 2010년에는 징병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독일도 안보를 폴란드 등 주변국에 의존하려 든다는 서방의 비판에 직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은 아베 신조 집권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지와 중국·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재무장을 빠르게 진행해 2022년에는 반격 능력을 보유하며 재무장을 사실상 완성,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동서독 통일 이후 꾸준히 군축을 진행하던 독일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를 대폭 늘리며 재무장에 나섰기에 두 나라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3.6. 인도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인도는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서 인도양의 패권국이다.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인구대국이며, 우주기술 등 첨단기술에서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신흥강국이다. 역사적으로 무굴 제국 시절에는 세계 1위의 총 경제력을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로[93] 상당한 강국이었으나 18세기 초중반에 제국이 분열되어 급격히 쇠퇴했고 결국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였다. 이후 1947년에 독립에 성공했는데 경제력이 너무나도 빈약하여[94] 엄청난 인구&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빠른 경제 성장 속도로 강대국의 최소 급에 진입했고 2020년대에는 과거의 식민지배국인 영국의 GDP도 추월하며 명백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이며,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강국 중 하나이다. 21세기 초에는 견해에 따라 강대국 여부가 갈리곤 했으나 현 시점에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평가받는다.#1 #2 중립국 문서에서 보듯 인도는 오늘날 각종 국제정세에 필요에 따라 중립을 지키는 등 타국과 무관하게 자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강대국의 행방을 보이고 있다.인도가 강대국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이후부터다. 인도의 하드 파워는 이미 강대국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인도를 강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를 지역강국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가까운 미래에 인도가 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며, 일부는 인도가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프트 파워와 국제적인 위상을 배제하고 단순히 인구, 경제력, 군사력, 핵 보유 여부만으로 평가한다면 인도는 강대국에 해당하는 국력을 가졌고 향후 잠재력 역시 높다고 평가받는다.
2022년 발표된 향후 5년의 IMF 통계치를 보면 2027년에 인도가 독일과 일본의 경제력을 제치고 세계 3위가 되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다. 일본의 저성장세가 전혀 호전되지가 않는 반면 인도의 성장세는 여전히 폭발적인 추세가 유지되기 때문에 IMF는 2027년 인도의 명목 GDP는 약 5조 3000억 달러에 달하여 5조 1000억 달러로 예상되는 일본을 앞서는 것이 확실한 것으로 전망한다. 인도의 명목 GDP는 2022년 기준 5위이며 구매력 평가지수에서는 일본의 두 배에 달해 세계 3위이다.[95]
군사력도 2005년 시작된 군사력 평가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4위를 유지하고 있을만큼 강하다. 인도군은 핵무기를 개발해 운용하고 있으며, 카슈미르에서 중국군, 파키스탄군과의 무력 충돌을 겪어 실전 경험 역시 어느 정도 존재한다.
한편 인도는 사회 문제가 굉장히 많고 심각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로 악명 높은 카스트는 1947년 건국헌법에서 카스트로 인한 차별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일부 지역에서는 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또한 인도는 수많은 민족과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등 여러 종교로 분열되어 갈등이 있는 등 사회 분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 때문에 기존의 강대국처럼 국력을 온전하게 행사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과거에 거대한 영토와 막대한 부를 가졌던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도 당시에는 사회가 분열된 수준이 아니라 대륙 자체가 여러 국가들로 분열되어 힘을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강력한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매년 엄청난 수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기술 인력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우주공학과 IT산업, 기초과학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인도의 우주기구 ISRO가 고안한 찬드라얀 3호는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과 같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다른 강대국에 비해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으며 R&D 투자도 GDP의 0.8% 수준으로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한 인도는 공용어가 영어인 국가라 영어에 능통한 인도의 엘리트들은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편인데, 힘들게 배출한 인도 출신 학생들이나 과학자, 기술자들이 미국, 영국, 캐나다 같은 선진국으로 떠나며 두뇌유출이 일어나는 것 또한 인도에게는 큰 고민거리이다.
4. 대한민국은 강대국인가?
역사적으로 고구려, 발해 때 한국은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고 중원 국가들과 대등한 패권을 누렸을 정도로 강대국이었던 전적이 있고 고려 때도 30만 이상의 군대를 동원하며 요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몽골 제국에게는 결과적으로 항복하긴 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했고 멸망을 면하는 등 상당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 고려에 비해 군사력이 낮았던 조선도 초반에는 선전했고 인구도 당시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인구 대국이었다. 다만 조선 후기부터 청나라의 조공국으로 전락해 위상이 내려갔고 대한제국 ~ 20세기 중후반까지는 약소국으로 추락하기도 했으나 한강의 기적으로 급성장하며 순식간에 국력이 엄청나게 강해졌고 이르면 2010년대 중반[96]부터 한국의 국력이 일반적인 지역강국 수준을 넘어섰으며 2020년 이후로는 순수 국력 자체로는 주요 지역강국들인 스페인, 호주와 캐나다에 이어 1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을 넘었다.[97] '강대국의 최소'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세계 5위의 영토와 7위의 인구 규모를 가진 브라질[98]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그 이상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본적인 국력으로는 강대국의 최소 급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옛 고구려 시절의 동아시아 패권국 수준의 지위는 아니더라도,[99] 매우 부유하고 군사적으로 강력해 동아시아 주강대국이었던 고려보단[100], 신라와 부여, 통일 신라같은 동아시아의 주요 강국의 위상을 완전히 회복했다.[101] 그러나 주변국 대부분이 초강대국 후보 ~ 강대국인 불리한 지리적 특성상 한국은 국력 스펙에 비해 영향력이 비교적 낮다. 이탈리아 및 타 지역강국들과 한국의 국력 추이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이탈리아: 군사력 평가는 2010년부터 앞서기 시작했고, 1인당 GDP는 2014년부터 이탈리아의 80%를 넘겼으며 2020년에는 이탈리아의 1인당 GDP를 잠나마 추월하기도 했었다.[102] 2017~2022년에는 GDP가 이탈리아의 80%를 넘겼다.
- 브라질: 군사력은 2011년부터 앞서기 시작했고, GDP는 1999년부터 2008~2014년과 2017년, 2023~2024년 정도를 제외하면 항상 브라질의 80%를 넘기고 있으며, 심지어 2002~2005년과 2020~2021년에는 아예 브라질의 GDP를 추월하기도 했다.
- 호주: 군사력은 늦어도 2005년부터 앞서기 시작했고, GDP는 이미 1991년 처음으로 추월한 후 거의 항상[103] 한국이 앞서고 있다.[104]
- 캐나다: 군사력은 늦어도 2005년부터 한국이 앞섰으며, GDP는 1994년 캐나다의 80%를 처음으로 넘겼다.[105]
- 스페인: 군사력은 늦어도 2005년부터 앞서기 시작했고, 경제 면에서도 2013년에는 GDP를, 2015년에는 1인당 GDP를 추월했다.[106][107]
- 튀르키예: 군사력은 서로 엎치락 뒤치락하다 2018년 한국이 확실한 우세를 점하게 되었고,[108] GDP 규모는 이미 1981년, 1인당 GDP는 1980년부터 한국이 앞서 있었다.[109]
- 멕시코: 1986년에는 한국에 1인당 GDP를 추월당했으며, 뒤이어 1987년에는 한국에 전체 GDP를 추월당했다.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다[110] 2009년 이후 한국이 확실한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다만 2023년 한정 멕시코가 한국보다 GDP 규모가 높았다. 군사력은 늦어도 2005년부터 한국이 앞서 있었다.
국력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일례로 캐나다의 경우 G7 국가이고, 1960년대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60여 년동안 단 한번도 GDP 순위에서 11위 밖으로 탈락한 적이 없는 경제대국이지만 주변국이 초강대국인 미국 하나뿐이라 영향력 투사가 크게 제한되며 정치 · 경제 ·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에 사실상 종속되어 있기에 강대국의 최소는커녕 지역강국으로 보는 시각조차 소수이다. 다른 예시론 스페인이 있는데, GDP 규모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지역강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을 상회할 뿐만 아니라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수장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변에 강대국 영프독과 '강대국의 최소' 이탈리아가 존재하는 탓에 역내 서열 5위에 그쳐 지역강국 여부에 논란이 있다.[111] 또 한국은 주변에 강대국이 셋이나 존재하기에 동아시아의 맹주로 여겨지지 않으나, 한국보다 국력이 약한 인도네시아[112],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주변국 대부분이 약소국인 덕에 각각 동남아시아/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중동[113]의 맹주로 여겨지는 것도 '국력의 상대성'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순수 국력은 이탈리아 급의 강대국에 속한다고 해도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영향력이 그에 비해 부족하기에 외교적으로 강대국으로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국과 국력이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다소 하회하는 국가들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브라질은 남아메리카 면적과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해 권역 내 최대 국가로서 패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상임이사국 후보로 거론될 정도이고,[114] 호주는 오세아니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고 있다.[115] '강대국의 최소' 이탈리아도 그 수식어에 걸맞게 영프독과 러시아의 입김이 비교적 약한 지중해 일대에서 부분적으로 패권을 행사하며[116] 십수 억 신자를 보유한 가톨릭의 종주국으로서[117] 위상을 갖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국제 유가를 좌우할 수 있는 대형 산유국의 지위와 이슬람 최대 종파 수니파의 대표국 지위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튀르키예도 특유의 지정학적 입지 덕택에[118] 중동은 물론 발칸 반도와 중앙아시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보다 국력이 부족한 지역강국들도 나름대로 권역 내에선 패권국이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들과 많이 다르다.
일단 동아시아에는 인구 2위, 면적 4위의 거대한 체급을 바탕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 3위 군사대국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대립하는 초강대국 후보 중국이 존재한다. 또한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각각 경제적으로, 군사&외교적으로 미국에 가장 근접했던 강대국 일본[119]과 과거 소련 시절 미국과 양대산맥을 이루던 초강대국이었고 현재도 중국 급의 최상급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 후보 러시아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반서방 진영의 쌍두마차인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뻗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특성상 태평양 건너 현존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도 동아시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강대국은커녕 중견국도 못 되는 북한마저 지구 최악의 독재국가[120]라는 점과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지위만 믿고 호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압도할 수 있는 주변국은 단 하나도 없으며, 브라질과 호주처럼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손쉬운 환경인 것이 아닌 것을 넘어 이탈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범국가적 구심점이 되지도 못하기에 실질적인 국력 대비 영향력 행사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2012년 영문 기사)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자주국방은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절대적인 경제규모는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영국, 프랑스[121]와 독일, 일본[122]에 가까워야하며, 또한 글로벌 프로세스와 국제질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려는 의지도 보여야 한다. 강대국이라는 자리는 국제 정치와 국제 무역의 질서를 직접 정의하는 자리이며, 강대국이란 자국의 이익을 스스로 지키고 이를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에 행사할 영향력이 미약하다.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의 행보를 보면 명확하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며 자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 안보를 지켜내고 있다.[123]
마지막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강대국의 지위를 보편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2021년 영문 기사
5. 기타
- 의외로 한국에서는 선진국과 강대국의 개념을 혼동하는 사례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몇 개만 꼽자면 이탈리아를 강대국의 하한선이 아닌 선진국의 하한선이라고 주장하거나, 한국이 2020년대 초반에야 '눈 떠보니 선진국'[124]이 되었다고 주장한다거나 등등이 있다.
[1] 이 점에서 자국 주변에만 부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강국과 차별화된다.[2]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3]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에서 교체), 러시아(소련에서 승계).[4] 2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여기에 해당되며, 2020년대에 확고한 강대국으로 떠오른 인도도 마찬가지다.[5] 현대에 강대국으로서 행동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패권주의나 제국주의로 비판 · 비난받기 십상이라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이를 대놓고 말하는 것은 자제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국제적 행보를 면밀히 관찰해야 알 수 있으며 그 판단 결과는 주관적이다. 한편 19세기엔 직접적 팽창 행위의 국제적 반응이 비교적 우호적이었다.[6] 이는 인도가 1987년부터 2009년까지 GDP 순위 10위에도 들지 못했고, 1991~2006년에는 (1998년을 제외하면) 한국보다 GDP 규모가 작았을 정도로 경제력이 매우 빈약했기 때문이다.[7] 2023년 인도 인구가 중국을 추월했다. 인도의 인구 통계가 부실함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추월은 더 빨리 했을 수도 있다.[8] 현재까지 G7의 일원인 캐나다는 최고 7위이며, 한국과 브라질은 최고 순위 9위이다.[9] 대략적으로 2009~2010년. 물론 캐나다, 스페인처럼 지역적 입지로 인한 낮은 영향력 때문에 지역강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실제로 이 무렵까지만 해도 스페인에 비해서도 유의미하게 강한 편도 아니었다. 다만 하드 파워로는 이미 1987~1988년 무렵에, 소프트 파워로는 2002년에 지역강국 언저리에 진입했다.[10] 자세한 것은 하술.[11] BRICS 창립 멤버이며 차기 상임이사국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12] 공업이 비교적 빈약한 대신 경제 대부분을 농업과 광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GDP 규모도 엄청난 인구수와 아마존을 비롯한 자원들에 힘입은 것이고, 2002~2005/2020~2021년에는 브라질보다 영토, 인구 규모가 훨씬 작은 한국에 GDP 규모를 추월당하기도 했다. 군사력 순위 역시 2011년부터 한국보다도 낮게 평가받는 건 물론 차이가 더 벌어져 한국이 엄청난 우세를 점하고 있으며, 2020~2022년을 제외하면 이탈리아를 앞선 적조차 없다.[13] 오세아니아의 패권국인 것도 주변에 군소 섬나라들이 워낙 많기에 그런 것이다. 그나마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가 규모가 큰 편이긴 하다.[14] 일단 인구가 2000만 명 대로 이탈리아, 한국보다 2배 이상 적고 캐나다보다도 1500만 이상 적다.[15] 브라질, 멕시코는 중남미 권역이라서 평가라도 받지만 캐나다는 (영국/아일랜드처럼) 미국과 함께 미국권역으로 묶인다.[16] 아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많은 캐나다인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원한다"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다. #[17] 비슷하게 파이브 아이즈이자 앵글로색슨의 후손 국가인 호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세아니아의 지정학을 이용해 군사력을 팽창하여 지역강국의 상위권을 점위하고 있다.[18] USD, Trillion[19] GFP는 각국의 군사력을 다루는 언론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서 많이 인용되는 수치이나, 해당 지표는 공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군사력 측정의 객관적인 척도라고 볼 수 없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의 비판 문단 참고.[20] 명[21] km2[1위] [3위] [3위] [2위] [2위] [4위] [11위] [9위] [1위] [6위] [21위] [79위] [7위] [23위] [41위] [3위] [19위] [63위] [*] 미국과 핵공유.[4위] [12위] [64위] [44] 핵보유국은 아니나 미국의 핵우산 제공국이자, 핵연료 재처리 기술 보유국.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준핵보유국.[5위] [1위] [7위] [8위] [25위] [73위] [*] [52] 영향력: 지역강국, 순수 국력: 강대국의 최소 급.[12위] [29위] [108위] [56] 다만 원자력 기술이 세계적으로 뛰어나기에 사실상 단기간에 핵을 개발할 수 있어 준핵보유국으로 취급된다.[57] https://v.daum.net/v/20230824120132897, https://www.youtube.com/watch?v=IdM9lsEqZTc[5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858_2019년 당시 참고[59] GDP 규모와 인구수도 상당히 유사한데다 기술력과 잠재성, 군사력,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정치 영향력 등 한국이 이탈리아보다 우위에 있다. 소프트파워는 논쟁의 범위에 있으므로 중립.[60] 여담으로 제3세계의 몇몇 네티즌들은 현재 한국의 겉모습만 보고 제국주의 가해국으로 착각하며 한국에게 '제3세계에 저지른 과거 잘못에 책임을 지라'며 비난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달리 보면 '선진국 겸 강대국 = 과거 제국주의 가해국'이라는 사실상의 공식을 한국이 깼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61] 강대국의 최소로 범위를 넓히면 브라질, 이탈리아, 대한민국 그리고 마찬가지로 캐나다, 호주 역시 민주주의 국가이다.[62] 그러나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러시아의 부활을 알린 2008년 8월 남오세티야 전쟁,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9월 세계 금융 위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2017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고립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2021년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와 이에 따른 탈레반 정권 부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20여 년간 미국 일극 체제의 권위가 흔들리는 사례가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2020년대 현재로선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존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는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63] 냉전 시대에 독재 국가임에도 미국의 동맹이었던 사례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치하 대한민국이 대표적이다.(다만 명목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긴 했다) 냉전 이후에도 전제군주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64] 대표적으로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있는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테러단체들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면서 전쟁의 수렁에 빠졌으며 이 틈에 러시아와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의 일극 체제는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65] 대영제국, 몽골 제국, 러시아 제국 다음가는 넓이였다.[66] 본래 '4명의 경찰관'에 포함된 국가는 미국, 영국, 중화민국, 소련 4개국이었으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주장에 따라 1945년 프랑스도 추가되어 이들 5개국이 그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입성했다.[67] 2023년 인도에게 역전을 허용해 2위로 내려왔다.[68]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로 일컬어지는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69] 물론 영토가 매우 광활한 만큼 생산되는 농산물과 천연자원이 막대하긴 하나 14억 명이 넘는 중국인의 수요에 맞추기엔 부족하다. 실제로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2000년에는 93.6%에 달했으나 2020년에는 65.8% 정도이다.[70] 그의 치세부터 러시아의 군주는 더 이상 차르가 아니라 임페라토르라고 불리게 된다.[71] 폴란드, 핀란드 등은 러시아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를 형성하였다.[72] 한때는 대한민국보다도 총 GDP가 낮은 적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경제제재가 잦은 러시아의 특징상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PPP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기도 한다.[73] 러시아의 외교적 장점으로 꼽힌다. 중국의 경우 인도와 매우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중국과 양적으로 비슷한 인도와 대립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반대로 러시아는 강대국의 최소로 올라온 인도와 협력관계를 통해서 추후에 중국과 관계가 나빠질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셈이다. 러시아가 러우전쟁 이후 서방에게 경제제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인도와의 외교를 통해서 지하자원 소비시장을 미리 확보를 해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74] 다만 현재 중남미 대다수 국가들은 친미 성향의 국가들이다. 반미 성향이 두드러지는 국가는 쿠바, 베네수엘라 정도이다.[75] 2020년대 이후 사헬 지역에서 쿠데타가 급증하며 쿠데타 벨트가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쿠데타들을 주동한 군부는 대부분 반서방, 친러 성향을 띈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 등 서방 세력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의 행보라고 볼 수 있다.[76] 덤으로 수많은 분쟁과 학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영제국을 인류 사상 최초의 초강대국으로 평가하기도 한다.[77] 본토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이러한 외교노선을 취해온 편이다. 특히 강경 우파 성향의 법과 정의가 집권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다만 현재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온건 우파 성향인 시민 연단 소속의 도날트 투스크가 총리로 재임하고 있어 친유럽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78] 일본도 비슷하게 과거사 및 영토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거의 모두와 관계가 좋지 않기에 더욱 친미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79] 프랑스는 알제리, 베트남 등의 식민지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해서 전쟁까지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독립을 허용하게 되었다.[80] 프랑스어는 여전히 위상이 매우 높다. 공통어라는 뜻의 단어인 링구아 프랑카부터 '프랑크인들의 언어'를 뜻할 정도이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도 많이 통용되고 있다.[81] 물론 이탈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보다는 강력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렬 정도로 열강들 중 꼴찌 신세는 아니었다. 이후 2차 대전에는 더 발전하여 중화민국 영토의 절반을 먹고 동남아 대부분을 점령하는 등 서양 열강에 결코 밀리지 않은 군사력을 보유했다.[82] 단, 식민지는 물론 동프로이센 지역 등 상당한 면적의 본토를 상실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본토의 상실이 거의 없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은 조선, 대만, 남사할린 등 근대화 이후 식민지배로 획득한 영토만을 상실했다.[83] 다만 미국의 인구는 3억 4천만으로 일본과 차이가 크며, 고령화가 심한 일본은 미국과의 인구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84] 일본 제국의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진출을 반대하고, 독일 제국 및 나치 독일의 피해를 입은 유럽, 아프리카 일부, 이스라엘은 독일의 진출을 반대한다.[85] 단적으로 일본의 재무장 문제가 있는데,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들로부터 보통국가화에 대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작 같은 친미, 친서방 인접국인 한국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 물론 한국도 일본의 재무장이 일본을 넘어 초강대국 미국의 대전략인 만큼 북중러와 같은 수위로 반대하지는 않는다.[86] 태국은 나름 인도차이나의 맹주라고 할 수 있으나 중진국 함정에 빠졌으며, 대만은 경제규모가 크나 미승인국이라는 점이 뼈아프다.[87] 단, 과거에 소련의 구성국이었거나 영향권이었다고 해서 꼭 러시아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전근대에 오랜 시간동안 중국의 영향권이었던 한국과 베트남의 반중 감정이 강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폴란드, 발트 3국 등 오랫동안 러시아 제국-소련의 영향권에 속했던 국가들도 반러 감정이 강하다. 이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다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88] 독일어는 독일 밖에서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정도에서만 통용되며 일본어는 본국 일본을 제외하면 공용어 수준으로 사용하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스페인어와 아랍어는 전승국의 공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고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엔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89]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의 재부상을 우려하는 동유럽 국가들은 독일에게 군사력 증강을 촉구하고 있긴 하지만, 독일은 지리적으로 최전방도 아니고 패전국이라는 명분도 있는지라 그리 군비 지출에 적극적이지 않다. 다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위협이 현실화되자 독일 내에서도 과거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국민과 주변국의 요구에 따라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90] 사실 과거에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일본에 재무장을 요구했으나,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가 거부하면서 자위대를 창설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후로도 일본은 미일동맹에 따른 주일미군의 존재와 반공 진영 최전선에 위치한 한국에 안보를 의존했고, 국방비를 크게 아끼면서 경제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91]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이 패전 후 맺은 조약들은 굴욕적이었던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동맹국 중에서 지금까지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뿐이며, 오스트리아는 공중분해되고 튀르키예 역시 거의 오스트리아 수준으로 조각날 뻔했지만 튀르키예 독립 전쟁과 로잔 조약으로 지역강국의 지위라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92] 심지어 일본은 오키나와 정도를 제외하면 본토에 지상군이 상륙하지도 않았고 분단도 식민지 조선이 대신 겪었다. 일본 본토는 섬인 반면 조선-만주는 대륙에 이어져 있어 소련의 8월의 폭풍 작전이 수월했기 때문이다.[93] 다만 평상시에는 세계 2위였다. 이 당시 경제력 1위였던 명나라가 각종 반란과 청나라의 침공으로 경제가 파탄나고 난리도 아니었기 때문. 이후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청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다시 무굴 제국은 청나라에 밀려 세계 2위로 내려갔다.[94] 인도의 GDP는 1987~2009년까지 10위 미만이었고, 1991~2007년까지는 (1998년을 제외하면) 한국보다도 GDP가 낮았다.[95] 단, 구매력 지수(PPP)는 질적지표가 아닌 양적지표로서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기에 참고만 하자. 2024년 현재 PPP 순위대로는 중국이 미국보다 높고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높지만 실제로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추월했고 인도네시아의 경제력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여기는 학자들은 없다시피하다.[96] 대략 2014~2015년[97] 사실 대침체 이전 2000년대 중~후반과 10년대 초반에도 한국의 국력은 멕시코, 튀르키예와 경제력, 군사력을 비교해도 우세하거나 크게 밀리지 않은, 대략적으로 세계 15위급 수준이었다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지역적 영향력은 비슷한 국력이었었던 튀르키예에 비할 바 없이 밀렸지만 G7 자리에 있는 캐나다의 국력이 한국, 호주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당시 저 저 둘보다 경제력이 컸던 한국이 저 둘보다 실질 국력이 강하다 보는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하지 않다.[98] 군사력은 2011년경 진작에 추월당했으며, 2020년대 코로나 19 시국에 경제가 휘청거리며 한국에게 2년간(2020~2021) GDP를 추월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한국보다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주변에 브라질보다 약한 나라밖에 없어서 남미의 패권국 지위는 여전하다.[99] 고구려의 위상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동아시아 주요 패권국이었으며, 고려도 유럽의 신성 로마 제국같이 부유하고 잠재성이 큰 동아시아 주 강대국이었다.[100] 통일 한국이 이에 걸맞을 거란 예측이 많다.[101] 현재 한국의 국력은 호주는 확실히 추월했고 브라질과 비교해도 우세이며, 심지어 분석에 따라서는 이탈리아보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대략적으로 세계 9~10위 수준의 또 다른 강대국의 최소라 봐도 무방하다.[102] 사족으로 2015년부터는 항상 90%를 넘기고 있기에 이탈리아랑 1인당 GDP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103] 1998년, 2008년, 2010~2013년, 2022~2024년 제외. 사실 이들 중 한국이 호주에 유의미하게 뒤쳐졌던 해는(호주 GDP의 80% 미만) 없다.[104] 사실상 늦어도 2000년대 중반부터 순수 국력만 따지면 한국이 호주보다 더 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외적 영향력 차이 때문에 이조차 별로 눈에 띄지 못했다.[105] 이후에도 한국의 GDP는 1995~1997년, 2002년, 2014~2021년, 2023년에 캐나다의 80%를 넘겼으며, 1995~1996년, 2015~2021년에는 캐나다의 90%를 넘겼다.(1995년, 2015년, 2019년을 제외하면 95%를 넘겼다) 특히 2018년에는 한국과 캐나다의 GDP가 거의 차이가 없었으며, 심지어 통계에 따라서는(IMF 통계 기준) 이 해 한국의 GDP가 캐나다를 추월한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106] 사족으로 1인당 GDP의 80%는 2012년부터 넘어섰는데, 사실은 1995~1997, 2000년 이미 스페인의 80%를 넘어선 적이 있다.[107] 스페인어의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듯 소프트파워는 강력하지만 하드파워가 비교적 취약한 편인데, 이는 하드파워는 강력하지만 소프트파워가 취약한 인도의 대척점격이다.[108] 다만 2010년대에도 군사력 순위는 튀르키예가 앞서는 연도에도 2016~2017년을 제외하면 별다른 순위차는 없었다. 게다가 2016~2017년 시점에서 한국은 명실상부 지역강국 최상위권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라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109] 사실 튀르키예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GDP 순위가 20~25위권으로 경제 면에서는 지역강국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한 수준이었다. 오늘날 이란이나 이집트와 비슷한 케이스. 지금은 GDP 순위가 20위권 안으로 진입해서 17~19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GDP PPP 순위는 11위로 GDP와 PPP간 매우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와 비슷한 케이스이다. 즉 튀르키예는 박살난 자국통화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따라서 순위가 변동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110] 1987~1991, 1995~1997, 2005~2006년에는 한국이 멕시코를 앞서기도 했다.[111] 또한 순수 유럽 국가는 아니지만 동유럽의 러시아도 강대국이기에 유럽 대륙 전체로 보면 역내 서열 6위까지 밀려나고, 이 때문에 대륙별 안배를 고려하는 G20의 정식 회원국도 되지 못했다. 물론 영구초청국이라 실질적으로 회원국이긴 하다.[112] GDP 규모는 인구빨로 한국보다 약간 작지만, 1인당 소득은 한국이 인도네시아의 9배나 될 정도로 비교가 안되고(인도네시아는 1인당 GDP 기준 중진국 수준도 되지 못한다) 군사력은 한국이 세계 5위의 고무적 국가로 평가받기에 20위권 정도의 인도네시아와 엄청난 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높다. 이쪽은 한국보다는 튀르키예, 스페인과 비교하는 게 더 타당하다.[113] 다만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에 국력이 꽤나 강한 이란이 있으나 서로 국력이 비슷하여 의미가 크게 없다.[114] 남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브라질 다음가는 국력을 가진 또 다른 지역강국이 아르헨티나인데, 경제 규모나 군사력뿐만 아니라 영토나 인구 등 기본 체급부터 브라질에 한참 밀린다.[115] 다만 오세아니아에서 호주를 빼면 인구가 500만 명이라도 넘기는 국가가 뉴질랜드와 파푸아뉴기니 둘뿐이고, 나머지는 인구 100만은커녕 50만도 안 되는 나라가 수두룩하기에 호주가 실제 국력에 비해 손쉽게 권역 내 1인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감안해야 한다. 주변에 북한을 제외하면 한국도 뛰어넘는 강대국들만 있어서 주변국에 '갑적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한국과는 완전히 대조적. 그리고 호주 인근 국가 중 강국이라 자부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도 호주보다 국력이 약한 편이다.[116] 다만 언급했듯 그 범위가 부분적이다. 지중해권 국가들을 살펴보면 일단 스페인은 남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경제규모가 크고 중남미 스페인어권의 수많은 국가들과 무리를 형성하며, 스페인보단 규모가 작은 포르투갈도 지역강국 중 최대급인 브라질과 매우 친밀하기에 이탈리아가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는 이탈리아보단 유로존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더 강한 지역이다. 지중해 건너에 있는 북아프리카의 경우 이탈리아에 노동력을 제공하며 경제적으로 적지 않게 의존하고 있지만, 이 지역은 과거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리비아를 제외하면 이집트는 튀르키예에게,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알제리와 튀니지는 프랑스에게 더 크게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남은 곳이 발칸반도인데, 물론 이탈리아도 이 지역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발칸반도 유일의 선진국인 그리스를 필두로 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독일어권의 영향력이 우위에 있으며 이슬람 교세가 강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에선 인접한 이슬람 지역강국 튀르키예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 이 지역에서 이탈리아가 휘어잡을 수 있는 국가는 그나마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몰타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앞의 셋은 규모, 인구 모두 한국의 도(道) 수준이고, 몰타는 아예 미니국가라 패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매우 떨어진다.[117] 엄밀히 따지자면 바티칸 시국이 종주국이지만 이탈리아 영토 내부에 위치하기에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다.[118]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적 위치에 있다. 실제로 터키항공은 이러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무려 122개국을 운항하는 세계 최다 국가 운항 항공사로 자리잡았다.[119] 게다가 과거 식민지-지배국 관계였다는 특성상 같은 친미 진영에 속함에도 관계가 좋지 못하다. 양국 국민들의 반일/반한 감정을 생각하면 양국 정부가 한일관계 밀착을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거의 득이 되지 않으나, 동아시아에서 한일 연대로 중국 견제 전선을 형성하길 원하는 미국의 요구와 현실적인 경제 · 안보 협력의 필요성 때문에 완전히 등 돌릴 수는 없는 관계다.[120]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이렇게까지 호전성을 보일 수 없지만, 독재자 한 명의 뜻에 따라 2천만 인민이 움직이는 전체주의 사회라 가능한 것이다.[121] 상임이사국에서 담임선생님의 지위를 가진 패권국 미국과 미국의 라이벌인 2, 3인자 중국, 러시아에 비해 인구, 규모, 영향, 군사, 경제에서 절대치가 크게 부족한 대신 인구수와 영토, 기술과 경제, 군사력에서 강대국의 표준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둘 다 G5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도 하고[122] 강대국의 위치인 상임이사국에 반열에 들기엔 언어 영향력과 지역에서의 영향, 비핵보유국, 전쟁범죄 등으로 세계적인 지위보단 경제와 기술로 강대국이 된 사례들이다.[123] 이런 이유로 통일 찬성론자들은 대한민국이 명백한 강대국으로 등극하려면 남북통일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lMmnZgoVIcs 자세한 내용은 남북통일/이점 참조.[124] 사실 당시 근거자료로 제시된 내용들을 보면 '눈 떠보니 강대국'이라 칭하는 게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