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07 17:34:37

홍콩 섬


파일:hongkong emblem.png 홍콩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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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ongkong emblem.png 홍콩 구획
주 구역 홍콩 섬 구룡반도 신계
하위 구역 센트럴 스탠리 침사추이 몽콕

파일:external/www.hkcrystal.com/hkisland.jpg
파일:external/ak6.picdn.net/12.jpg
1. 개요2. 역사3. 구획
3.1. 중서구(中西區, Central and Western District)3.2. 동구(東區, Eastern District)3.3. 남구(南區, Southern District)3.4. 완차이구(灣仔區, Waan1 Zai2 Keoi1, Wānzǐ Qū, 만자 구)
4. 교통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Map_of_Hong_Kong.svg.png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의 일부분이자 일반적으로 홍콩 하면 떠올리는 곳. 위 지도에서 15~18번. 간판이 난립한 이미지(구룡반도), 디즈니랜드 등 일부 이미지를 제외하면 홍콩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 대부분이 홍콩 섬 지역의 분위기다.

홍콩이라는 현대 도시의 발상지이자 홍콩의 또 다른 중심지로, 행정기관 같은 정치 시설 및 여러 쇼핑몰과 상업 건물이 몰려 있다. 홍콩 섬 북부부터 구룡반도까지 이어진 지역이 홍콩의 중심지이다.

크기는 면적은 78.59 km²로[1]란타우 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홍콩 개항 이후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영국 식민지할양된 지역이다. 청나라영국이 처음 교역했을 시점부터 홍콩섬이 발달했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부터 발달했다는 이야기. 덕분에 좀 더 오래된 빅토리아 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아예 속어로 '빅토리아 시'라고 할 정도고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항구인 홍콩 빅토리아항(Victoria Harbour)도 있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이라 좁은 평지에 마천루가 있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빈부격차가 심한 홍콩에서는 부자들이 산에서 많이 산다. 서민들은 주로 노스 포인트, 코즈웨이 베이, 완차이에 거주하는 편이며, 한국인들은 동부 홍콩 섬의 타이쿠나 사이완호에 밀집 되어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사이완호가 가까운 노스 포인트에선 한국인 보기가 힘들다.

2. 역사

홍콩 특별행정구는 홍콩 섬 외에도 중국 대륙 본토 부분(구룡반도, 신계)이 포함되어 있지만 1842년 난징 조약 체결 당시에는 홍콩 섬 지역만 할양받아 영국령이 되었다.

영국은 센트럴을 중심으로 빅토리아 시(Victoria City) 건립과 함께 총독부를 신설하였고 한동안 홍콩이라고 하면 홍콩 섬만을 일컫는 말이었다. 영국이 차지하기 이전의 홍콩 섬은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영국의 동방 거점으로서 발전하게 된다.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면서 바운더리 스트리트(Boundary Street, 限界街)의 남쪽 구룡반도(몽콕 주변)와 스톤커터스 아일랜드(石環島)가 1860년 제1차 베이징 조약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99년간 조차 이후 중국에 돌려줘야 했던 땅은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할양된, 신구룡과 신계 지역으로, 홍콩 섬은 원칙대로면 영국이 영구히 할양받은 땅으로서 돌려줘야만 하는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는 이미 홍콩 시가지가 신계 북부 너머로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때 와서 신계 북부만 중국에 돌려주고 달랑 홍콩 섬과 구룡반도, 일부 신계(칭이, 췬완, 콰이청, 샤틴, 청콴오, 레이유문, 란터우 등)만 남기면 비록 인구의 대부분은 이 쪽에 있다지만 이 쪽을 유지하는 사회간접자본위성도시가 신계에 있어 결국 홍콩이라는 도시의 기능이 마비될 판이었고, 무엇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49년 건국과 함께 기존 국민정부, 북양정부, 청나라가 체결했던 모든 외국과의 조약 중에서 오로지 중국의 입장에 유리한 조약만 승계하고 나머지는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라서 홍콩 섬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부정하고 여차하면 무력으로 회수하겠다고 위협했다.[2]

물론 당시 중국의 군사력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고[3], 영국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는 냉전 시대여서 실제로 중국이 무력 회수를 시도해도 미국이 제7함대 소속 항모전단과 이에 딸린 해병대 등을 보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국제 여론과 소련의 존재(...). 소련의 존재 때문에 3차 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고, 제국주의 식민지를 지키는 전쟁이라 욕 먹기 딱 좋았다.

그러나 1961년 중소 국경분쟁 및 사회주의 종주권 분쟁,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중소관계가 나빠지고, 1975년 중국과 미국이 핑퐁외교로 미중 외교관계가 정상화되며 뒤이어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까지 이루어지자 조금씩 정국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중관계가 정상화되고 중국이 개방까지 한 이상 굳이 영국이 중국과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영국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행정권을 영국에 위임한 형태로 통치 연장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중국은 완강히 거부했고 대신 중국 측이 민국시절 특별행정구 관리 원칙에 대만 통일원칙인 1국2체제를 결합한 일국양제 반환원칙을 먼저 들고나와 결국 영국은 중국과의 친선을 위해서 홍콩 섬을 신계 북부와 같이 돌려주게 된다.

바운더리 스트리트 이북의 땅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의 건설로 99년 조차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고, 중국 반환 대상의 신계는 초록 택시가 들어가는 진짜 외곽의 클리어 워터 베이나 사이쿵 반도, 툰문, 윈롱 등의 황무지들로 제한되었지만 이 지역들도 배후지 겸 완충지로 가치가 있었다. 아무튼 원래대로 홍콩 섬구룡반도만 영국이 차지했다면 지금도 홍콩 섬구룡반도(신구룡 및 신계 남부 포함) 등의 시내는 영국령이었다. 물론 땅이 좁아서 본토 쪽 신계 북부지역들에 크게 의지해야 했을 것이고, 홍콩과 중국의 국경지대는 대혼란이 펼쳐졌을 게 뻔하다. 싱가포르섬과 센토사만 갖고 있어서 이 둘만 뚝 떨어져 독립한 싱가포르보다는 훨씬 나았다.[4]

3. 구획

인구의 절대다수는 구룡반도와 항만시설이 가까운 북부에 밀집해 있으며 남부는 개발이 제한되어 한적한 해변과 시골 마을들이 있다. 안그래도 비좁은 섬에 125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그것도 대부분이 북부연안에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체감밀도는 아주 높다.[5] 만일 홍콩섬만 영국이 차지하여 현재까지 중국에 반환하지 않았다면 공항은 이 쪽에 만들어졌거나 바다 건너 라마 섬을 간척해 만들었을 것이다.

홍콩 섬 인구는 130만 명 선인데 197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크로스하버 해저터널과 홍콩 지하철이 만들어지기 전의 홍콩섬 인구는 190만 명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홍콩섬 인구는 도심 공동화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줄어든 숫자이다.

북부의 경우 육지가 아니라 섬인 것만 빼면 부산광역시와 지형이 비슷하다. 가운데에 큰 산이 버티고 있어 거주지는 연안의 쬐금 있는 평야들이다.

남부는 주거지역으로 흔히 중심가는 센트럴이라고 하고 셩완(上環, Sheung Wan)과 애드미럴티(金鐘, Admiralty)까지 한 축을 형성한다. 그 왼쪽으로 완차이(灣仔 Wan Chai)와 코즈웨이 베이(銅羅灣, Causeway Bay), 오른쪽으로 노스 포인트(北角, North Point)와 쿼리 베이(Quarry Bay) 그리고 차이완(紫灣, Chai Wan)이 있다.

북부 시가지의 중심부로 2층 노면전차가 지나기 때문에 전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이국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상 타보면 별 거 없지만.(…) 오션 파크와 리펄스 베이[6]도 남부에 위치해 있다.

지명들의 경우 보통화 발음으로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광동어영어로 말하는 게 낫다.

3.1. 중서구(中西區, Central and Western District)

3.2. 동구(東區, Eastern District)

3.3. 남구(南區, Southern District)

3.4. 완차이구(灣仔區, Waan1 Zai2 Keoi1, Wānzǐ Qū, 만자 구)

4. 교통

부산처럼 좁은 지역에 시가지가 길게 이어져있기 때문에 MTR 홍콩섬선홍콩 트램이 거의 병행하며 홍콩 섬 북부를 횡단하며 교통을 책임진다. 그 외 버스들이 각지를 운행하고 있다. 섬이지만 본토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스타페리라 불리는 배도 저렴한 가격으로 활발히 운행하고 있다.

2016년 12월 홍콩섬 남부까지 가는 MTR 남부섬선이 새롭게 개통했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대부분 중국 관련 영화라면 거진 홍콩이 등장한다.
  • 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한다.
  • 슬리핑 독스에서 배경으로 쓰인 홍콩은 실제 홍콩섬 부분에서 지명만 빌려옴+마이너 체인지 해서 옮겨놓은 것에 가깝다.
  • 아랑전설 2에서도 애버딘 지역이 쳉 신잔 스테이지로 등장하며, 배경에 점보 레스토랑도 재현되어 있다.[7]

[1] 울릉도와 대략 비슷한 크기이다.[2] 다만 위협만 가하고 실게 공격은 가하지 않았는데 홍콩이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서방국가와의 교역창구로 써먹었기 때문에 중국정부 입장에서 적절하게 써먹는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소리는 쳤으나 막상 힘이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주둔군이 문제가 아닌, 본토에서 증원오는 영국 해군+ 오키나와미합중국 해병대 3원정군+ 미합중국 해군 제7함대+ 주한 미7공군 등이 모두 달라붙을 게 뻔한데 이 정도 전력은 대국굴기한 현재도 중국군 절반이 녹아버린다.[3] 당시 중국군은 아직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영국군에 비해 크게 질적으로 밀렸다. 오키나와 주둔 주일 미해병대 등의 증원만 이루어지면 광동의 중국군은 영미 연합군의 상대가 안 됬다.[4] 싱가포르는 독립 후 사회간접자본이나 위성도시 등이 모두 말레이시아 쪽인 조호르바루에 있어 한동안 힘들었다.[5] 바다 건너 구룡반도 및 신계에는 신도시가 대규모로 있어서 홍콩섬의 숨통을 트여 준다. 대륙에 접한 구룡반도가 없었으면 홍콩 인구는 지형의 한계 때문에 싱가포르처럼 100만명 대에서 멈췄을 것으로 보인다.[6] 홍콩섬에서 스탠리와 함께 제대로 된 몇 안 되는 해변으로 모래는 전부 하와이에서 수입해 온 인공 모래다. 홍콩 섬은 산이 많아 해변이 거의 없어 인천과 비슷하다. 지형이 비슷한 부산광안리, 해운대, 송도, 다대포 등에 해변이 있다.[7] 작중에서는 'JUMBU'로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