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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도 망산도 유적 望山島 | Mangsando Isl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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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산189-1 |
| 면적 | 1,884㎡[1] |
| 인구 | 무인도 (0명) |
| 종류 |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7호) |
| 행정구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관할 (법정동: 송정동) |
1. 개요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녹산국가산업단지 남안 앞바다(조만강 하구)에 위치한 작은 암석섬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허황옥 왕후의 건국 신화가 깃든 유서 깊은 유적지이다. 섬 전역과 인근의 유주암이 역사학적 및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과거에는 먼바다에 홀로 솟은 외딴섬이었으나 낙동강 삼각주 대개발과 녹산공단 매립 사업을 거치며 현재는 해안선 육지와 불과 수십 미터 거리로 밀착되어 사실상 육지화되었다.2. 지명 유래
공식 행정명인 망산도(望山島)라는 이름은 수로왕이 아유타국에서 올 배를 타전하고 '바다 멀리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던(望) 섬'이라는 신화적 사건에서 직접 유래했다.[2]지명학적 고증과 문헌 분석에 따르면, 이 섬은 고대 가락국 시기부터 《삼국유사》 가락국기 원전에 '망산도(望山島)'라는 한자 표기로 직접 박제되어 전해진 유서 깊은 지명이다. 수로왕이 신하인 유천간에게 "망산도에 가서 가락국으로 다가오는 허황옥 왕후의 배를 바라보라"고 지시한 역사적 서사 자체가 지명의 근간을 이룬다.[3] 공식 행정명이 고착된 이후 현지 녹산동 송정마을 토박이 고령층 주민들의 일상 구어 전승 속에서는 섬 도(島) 자를 생략하고 편하게 망산이라는 명칭으로 오랜 세월 통용되어 왔다.[4] 일각에서 이 섬의 한자화 이전 고유어 명칭으로 '바다개바위'나 '배맞이섬'이라는 구체적인 전래 지명이 구전된다고 기술되기도 하나, 이는 국립무형유산원 구비문학 대관 및 민요 완판본 채록 사료 어디에서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 지학적 와전이자 오류이므로 위키 편집 시 주의를 요한다.
3. 가야 신화와 유적
망산도는 대한민국 고대 국가 형성과 동아시아 해상 교류사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신화적 영토이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 48년 음력 7월 27일,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수로왕의 배필이 되기 위해 하늘의 명을 받들고 바다를 건너올 때 수로왕은 이 섬에 신하들을 보내 서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왕후의 행렬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망산도에서 북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공단 매립지 내부에는 유주암(維舟巖)이라 불리는 나지막한 바위 뭉치가 보존되어 있다.[5] 유주암은 허황후가 타고 온 배의 닻줄을 묶어 매어두었던 배바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허황후가 타고 온 배가 바다 위에서 뒤집히면서 돌바위 형태로 변한 것이 바로 이 유주암이라고 전해진다. 과거 바다였던 유주암 주변이 공단 부지로 전면 매립되면서 현재는 육지 한가운데 펜스로 둘러싸인 기이한 구도로 보존되어 있으며, 망산도와 함께 가야 불교 및 해상 건국 설화의 영험한 증거물로 대대손손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학계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망산도와 유주암의 배치는 고대 남해안의 해안선과 조류의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6] 허황옥 전승을 단순한 신화가 아닌 '인도 및 동남아시아 해상 세력의 한반도 도래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학자들은 망산도를 고대 남해안의 천연 관문이자 대외 교역 항로의 핵심 이정표로 비정한다. 특히 유주암과 망산도에 얽힌 파사석탑 및 불교 전래 전승은 삼국시대 공식 불교 공인보다 수백 년 앞선 '가야 해상 불교 초전설(初傳說)'을 뒷받침하는 핵심 고고학적 지표로 다루어지며, 현재까지도 한·인도 고대 교류사 연구의 중추적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7]
4. 역사 및 근현대 변천
조선 시대 공식 문헌인 동래부지(1740) 및 김해부읍지 등의 사료를 보면 본래 이 섬은 김해부 관할의 가락면 남쪽 외해에 존재하던 연안 바위섬이었다.[8] 주변에 미사토가 지속적으로 쌓였으나, 거센 남해의 조류 덕분에 무인도로서 명맥을 유지하며 어민들이 만선의 안녕을 빌던 영험한 기점으로 쓰였다.근현대사 속에서 망산도는 서부산권의 대대적인 연안 매립 및 산업단지 확장 공사와 맞물려 격동의 지형적 대전환을 맞이했다. 1990년대 대규모 녹산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단행되면서 망산도 주변의 남해안 바다가 전면 대토목 공사로 매립되었고, 이 과정에서 외딴섬이었던 망산도는 공단 남쪽 끝 해안 도로망 경계선에 인접하여 살아남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김해군 녹산면이 부산직할시 강서구로 편입됨에 따라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관할의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확정되었다.[9]
현대의 망산도는 녹산산업단지 근로자들과 서부산을 찾는 역사 탐방객들의 숨은 도보 여행 명소로 기능하고 있다. 섬 전역이 아담한 소나무 수풀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만조 때는 물길이 차올라 분리되지만 간조 때가 되면 육지와 바위가 드러나 걸어서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독특한 지학적 묘미를 자랑한다. 가락국의 출발점이자 한반도 남해안 해상 실크로드의 도래지라는 독보적인 역사적 정통성을 품은 채, 친환경 녹지 보존 유적으로 기능하고 있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