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3:28:23

여씨춘추

呂氏春秋

1. 개요2. 구성3. 특징4. 후대의 평가5. 관련 고사성어

1. 개요

의 재상이자 뛰어난 상인이었던 여불위가 자신과 진나라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전국의 논객과 식객 3천여 명을 모아 저술 및 편찬한 책. 기원전 239년, 즉 진시황 8년에 집필되었다.

당시 여불위는 제나라맹상군 등을 본받아 각지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진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또 진나라의 통치 체제를 다지기 위해 이 책을 지었으며, 완성된 뒤 그 책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은 책이라고 자부하며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千金)을 주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고사성어 일자천금(一字千金)의 유래.[1]

2. 구성

총 26권 160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권은 기(紀) 12권, 람(覽) 8권, 론(論) 6권으로 나뉘는데, 각각 지침서 모음집, 보고서 모음집, 그리고 논문집에 해당된다. 기, 람, 론의 배열 순서가 따로 전해지지 않아 후대에 논란을 야기했으나[2], 상당수 학자들은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의 요지가 실린 기라고 인정한다.

기는 각 권의 제목을 계절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권 12개를 3권씩 묶어 4묶음으로 만들고 각각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이라고 이름 짓고, 각 묶음을 한 권씩 각각 맹(孟), 중(仲), 계(季)[3]라는 이름을 붙여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배열되게 하였다.
  • 맹춘(孟春) - 생명의 탄생과 양육에 대한 옛 선인의 지혜
  • 중춘(仲春) - 위와 동일
  • 계춘(季春) - 위와 동일
  • 맹하(孟夏) - 교육법과 배움의 자세, 훌륭한 임금과 스승의 자세
  • 중하(仲夏) - 음악의 유래나 원리, 이치에 따르는 좋은 음악의 예, 정치와 음악의 관계[4]
  • 계하(季夏) - 위와 동일
  • 맹추(孟秋) - 전쟁할 때 명분의 중요성, 강력한 군대의 요건, 무력으로 질서를 유지한 사례
  • 중추(仲秋) - 위와 동일
  • 계추(季秋) - 현인 열전
  • 맹동(孟冬) - 상례 등 죽음 관련 내용
  • 중동(仲冬) - 충신과 성군의 모습
  • 계동(季冬) - 지난 일년 간의 베풂에 보답하기 위해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

각 계절에 따라 권의 주된 내용이 다르다.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인 춘이 들어간 권은 생명의 탄생과 양육을, 소생한 생명을 자라게 하는 하가 들어간 권은 음악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만물이 시드는 추가 들어간 권은 전쟁을, 추위가 깊어지는 동이 들어간 권은 죽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법을 다룬다.

람과 론은 각각 팔방관람(八方觀覽), 육합론의(六合論議)라고도 불리며, 제자백가의 주장과 일화를 재편집하고, 정치, 천문, 지리, 경제, 공업 등 각종 지식을 다루는 권들로 특히 도가를 가장 많이 다룬다.

3. 특징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들을 여불위의 시각을 토대로 억지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아 모순적 서술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상들의 장점을 군주의 통치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관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자면 군(君)과 사(士), 즉 국가 통치의 정점에 있는 군주와 자신의 능력을 정치에 보태는 신하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올바른 위치에서 행해야 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4. 후대의 평가

반고는 여씨춘추가 초기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제자백가 사상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하나의 새로운 학설을 형성하므로 한서 예문지(藝文志)에서 여씨춘추를 잡가(雜家)[5]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도가 사상을 근본으로 한 점이 돋보이기 때문에 신(新)도가로 분류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또한 여불위 생전에 이미 진나라에 법가를 토대로 한 율령과 사회규범이 존재하였는데 여불위가 굳이 학자들을 모아 새로이 사상을 만들어 내려고 한 걸 보아 그가 진나라의 전제왕권체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5. 관련 고사성어



[1] 그러나 후한 말의 문학자 고유(高誘)는 사람들이 여씨춘추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없었던 건 여씨춘추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여불위가 높으신 분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라고 깠다(...). 실제로도 단순 오자(誤字)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오류가 제법 있다.[2] 일례로 사마천은 람-론-기 순서라고, 후한 말의 문학자 고유(高誘)는 기-람-론 순서라고 주장하였다.[3]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계절을 분류하는 방법 중 사계절을 다시 셋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이 맹중계이다. 맹은 계절이 시작된 한 달, 중은 맹 이후 계절이 지속되는 한 달, 그리고 계는 계절이 끝나가고 다른 계절이 오는 한 달이다.[4] 당시 음악은 민간의 여론을 조정에 고할 때, 조정의 권위를 드러내는 제사를 할 때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5] 제자백가의 이론과 주장을 절충, 집대성, 해설하는 학파로, 전국시대에 제자백가 간 교류와 이론 체계화로 사상의 종합이 일어나며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