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02:11:14

홍콩 경찰

1. 개요2. 계급3. 역사4. 조직 및 차량5. 평가6. 폭력적 시위진압고문 자행7. 경찰청장8. 수사권9. 매체에서의 등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18px-HongKongPoliceLogo.svg.png
휘장[1]

1. 개요

홍콩 특별행정구의 경찰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는 별도 조직이며 분위기나 제복 등도 확실히 다르다. 영국 경찰에서 많은 걸 받아들여서 영국과 비슷하고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국에서 받아들인 요소도 꽤 많다. 당장 새로 창설한 대테러 초동조치 부대인 CTRU대도 뉴욕 경찰 대테러 초기대응반의 영향을 받아 창설하였다.

2. 계급

파일:홍콩경찰 계급.webp
  • 처장 (处长) (경찰 내에서 단 한명만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경찰청장급이다.)
  • 부처장 (副处长) 홍콩 경찰내의 2인자급 계급으로써, 단 2명만 임명된다.
  • 고급조리처장 (高级助理处长)
  • 조리처장 (助理处长) (이 계급부터 경무관 계급이다.)
  • 총독사 (总督司) (식민지 영향을 받아서 총독이란 명칭을 총독찰과 함께 달고있다.)
  • 고급경사 (高級境司)
  • 경사 (警司)
  • 총독찰 (总督察)
  • 고급독찰 (高級督察)
  • 독찰 (督察)
  • 패습독찰 (见习督察)
  • 경서경장 (警署警处) (이 계급부터 제복을 흰색으로 갈아입게 된다. 즉 경찰간부급이다.)
  • 경장 (警处)
  • 고급경원 (高級警員)
  • 경원 (警員)

3. 역사

1986년 1990년
왕립 홍콩 경찰 당시의 모집 홍보 광고로 영어로 되어 있다. 광동어 버전도 있다.
파일:external/www.police.gov.hk/royal_logo.gif

홍콩경찰의 시작은 아편전쟁홍콩 섬을 점령한 영국 해군 육전수병 즉 해병대에서 유래했다. 1841년 센트럴에 상륙한 영국 해군 수병들이 해안선에 요새를 설치해 화포를 배치, 방어에 나서는 한편 육전수병들이 점령지 질서유지에 나선 것이 기원이다.[2]

홍콩은 영국식민지 시기 왕립 홍콩 경찰(Royal Hong Kong Police, 香港皇家警察)을 두었고, 이 경찰 조직은 최초에는 인도 출신의 시크교 신자들을 고용했으며, 식민지로 파견된 영국 해군 장교들이 간부를 맡았다.

그러다 구룡반도신계 등 육지 부분까지 할양되어 영국홍콩 영유권이 확실해진 이후 중국인 경찰관을 선발하기 시작했으며, 소방 업무와 구급 업무를 맡는 홍콩 소방처가 경찰에서 분리되어 별도 조직이 되었다.

이 때 해안경비대 역할을 하는 수상경찰(水上警察)과 일반 경찰과 갈등이 있었고 영화 <프로젝트 A>[3]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당시 해적들이 남중국해에서 깽판치고 다녀서(...) 해안경비대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 해군이 홍콩에 주둔하며 해적을 소탕하곤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현지 바다를 잘 아는 중국계 경찰관들이 단속을 한 뒤에야 해적들의 횡포가 잦아들었다. 대략 1900년대 초에는 그 흔하던 해적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광동 앞바다가 툭하면 해적들이 나타나던 곳임을 생각하면 이는 홍콩 경찰의 첫 쾌거다.

1941년 일본군의 침략의 마수는 중화민국을 넘어 홍콩까지 들이닥쳤다.

1차 영일동맹으로 홍콩의 영국 영유권을 보장한 일본은 갑자기 이 동맹을 일방 파기하고 육군 병력과 해군 육전대로 광둥 성에서 홍콩으로 국경을 넘어 쳐들어 갔다.

영국군은 이 기습에 소수의 해병대수병을 포함한 영국 해군, 식민지 인도 제국 용병대나 캐나다군중국인 수비대로 구성된 역시 1개 사단 급의 소수인 육군만으로 중요한 식민지인 홍콩을 지키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방어선은 일본군 해군의 육전대의 홍콩 섬 상륙과 일본 육군의 국경 돌파로 간단히 뚫려 버렸다.

이 때 법관 출신이던 홍콩 총독은 일본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침사추이 소재 페닌슐라 호텔에서 194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촛불을 켠 방에서 영국 해군 장교 예복 차림으로 일본군 남양군도 원정대 총사령관인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에게 항복해 홍콩은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4]

일본군의 점령 이후 군정 기간 중 당연히 포로로 잡힌 영국군과 현지 영국인중국인 등 홍콩 시민들은 고초를 겪었다.영국인 남자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여자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인들은 툭하면 감시나 당하고 2인 이상 못 모여 다니게끔 했으며 일본군은 스타페리홍콩 트램 좌석 중 백인에게만 허락되던 2층에 앉아 위세를 부렸다.

기독교 교회 또한 전부 폐쇄 조치했는데 기독교 교회들이 저항의식을 선동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성공회 본부교회 역할을 하는 세인트 존 성당[5]의 경우 일본 육군 장교클럽으로 전락했으며 일본군은 절대 손으로 그것도 비신자가 먹으면 안 되는 성체를 마구 집어먹는 신성모독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군과 함께 저항세력의 한 축이던 경찰은 해체되어 일본의 헌병들이 이 역할을 대신했고, 소방처 역시 해산, 일본군 헌병들이 역할을 대신했으며 일본군 헌병대는 공포 정치를 펼쳐 저항을 난폭하게 억눌렀고 이 시기는 홍콩의 흑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짧은 일제강점기 덕분에 홍콩은 친일 성향이 있는 대만과 달리 반일 감정이 은연중에 있다. 어느 정도냐면 문화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으로 여행도 자주 가며 일본산 브랜드도 흔하지만 막상 역사로 언급이 나오면 날을 세우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만과는 달리 욱일기는 일식집에서조차 함부로 걸기 힘들다.[6]

이 시기 경찰관들은 중국인들이 조직한 항일 게릴라에 합류해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거나 영국군을 따라 호주로 후퇴한 후 훗날을 기약하며 대일 항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본토의 항일 의용군이나 국부군에 합류하는 경찰관들도 많았다. 홍콩의 호국경찰 시기인 셈인데 실제로 많은 경찰관들이 이때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포로로 잡혔다.[7]

1945년 일본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두 방에 나가떨어진 후 영국은 홍콩을 수복했으며 왕립 홍콩경찰도 재조직되었다.

1967년에는 구룡반도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 몽콕, 자운산 일대에서 대규모의 반영 공산폭동이 일어났다. 일명 67폭동으로 중국 공산당이 사주한 폭동인데 어이없게 원인이 스타페리 요금을 쬐금 올린 게 발단이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사람들이 중국의 문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데다, 아직 중국이 개방 안 되던 죽의 장막 시절인지라 문혁의 실상에 대해 대부분 무지했다. 그래서 문혁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중국 공산당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1967년 한 해 동안 격렬한 폭동이 벌어졌다. 상점이 약탈당하고 멀쩡한 건물에 방화를 하거나 폭도들이 밤만 되면 강도 패거리로 변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그 때는 아직 홍콩 경찰에 경찰기동대 같은 조직도 없어 일반 순찰경관들이 나무 방패와 진압봉 등을 들고 나가 진압해야 했다.

1968년 결국 홍콩정청은 보다 못해 경찰에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하는 긴급법[8]을 적용했으며 1968년 이후 급속히 정국이 안정되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9]

1974년에는 염정공서가 들어서 부패 수사를 전담하면서 기존 부패로 악명높던 경찰 조직엔 사정의 칼바람이 분다. 서슬 퍼런 감찰에 소위 말하는 차 값 즉 뇌물 받아 챙겨먹으며 잘 살았던 경찰간부들 대부분이 나가 떨어져 버렸다. 이때 경찰관 총원의 절반 이상을 해고 한 후 감옥 보내거나 직위해제 조치하고 그 자리엔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제대로 된 미국식 경찰교육 후 경찰관으로 임용한다. 그리고 미국 등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느와르 영화의 단골소재였던 부정부패는 1979년 무렵이면 완전히 사라진다. 진정한 질적 선진국이 된 것이다.

한편 67폭동을 겪은 후 전문적인 경찰 전술부대의 필요성을 느껴 1969년에는 다중범죄 진압과 무장강도 등 특수범죄 제압, 주요시설 경비를 맡는 경찰기동대 PTU가 창설되었고, 1971년에는 대테러부대로 SDU[10]라는 경찰특공대가 조직된다. 이들 신설 비호대원들은 영국군 SAS에서 교관까지 모셔와 최고의 대테러 기술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무법 천지였던 구룡성채를 때려 잡는가 하면 홍콩 마피아인 삼합회도 PTU와 함께 때려 잡아서 1990년대 이후 삼합회는 세력이 위축되어 버렸다.

한편 홍콩반환협정이 체결된 1985년 이후 영국은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의 처장 자리를 중국인 경찰간부들에 오픈한다. 원래는 처장만은 백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0년부터는 백인 대신 현지 홍콩인 처장이 부임하기 시작한다.

1997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후 홍콩 특별행정구가 설립되어 왕립 홍콩경찰에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바뀐다. 이 때 문장도 홍콩의 특구화인 자형화[11]로 바뀌며 문장 배경도 과거 한적한 어촌에서 고층빌딩이 즐비한 현재 홍콩의 모습으로 바꾼다.

2014년 발생한 홍콩 우산 시위 당시 진압 작전을 펼쳐 시위대와 충돌해 욕을 먹기도 했다.

2016년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 참석한 북한 고등학생이 한국 영사관을 통해 탈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탈북자 대처에 대한 논의를 거쳐 지금은 탈북자가 나올 경우 북송하지 않고 신변 보호 후 한국으로 보낸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경찰은 또 한번 욕을 먹는다. 우산혁명 후 이미지가 나빠진 걸 끝내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친중파들은 경찰에 대해 거침없는 신뢰와 사랑을 보낸다.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당시 홍콩경찰 제복을 입었으나 가짜 배지를 착용하고[12], 광동어 대신 표준중국어로 대화하는 괴한들이 홍콩 시민들을 진압했다는 목격담이 시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 빈과일보 등에서 중국 본토와 홍콩의 국경을 몰래 넘는 군복 차림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이른바 중국경찰의 홍콩경찰로 신분 세탁설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경무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해명했다. #.

그리고 이 주장은 지속적으로 경무처가 해명했으며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쉰 떡밥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면에서 의구심이 남는 건 사실이다.[13]

중국 경찰의 홍콩 잠입설을 총 정리한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된 엉터리 번호를 적은 가짜 배지 외에도 경찰관들이 서로 표준중국어를 썼단 증언도 있었다. 홍콩에선 절대 쓰지 않는 표현인 동지들(同志们)라는 호칭으로 불렀다는 증언[14]과 일반적인 홍콩 경찰과 다른 모양인 중국 경찰이 취하는 진압자세인 기마자세를 취하며 봉술을 구사했단 증언 등이다. 이런 증언들을 종합해 볼때 적어도 시위를 벌이던 기간만은 보조경찰로 광동 성 소속 무경대원 일부를 몰래 홍콩경찰에 합류시킨 것만은 사실로 봐야 할 듯 하다. 실제로 시위를 독하게 하던 2019년 당시 경찰들은 대게 국방색 전투복에 복면, 방독면까지 착용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엉터리 배지가 논란이 되자 쌈빡하게 배지와 명찰을 없애 버리기까지 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번호판을 단 구급차가 시위 현장에서 목격되기도 했다든가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트럭이 시내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이들이 주홍콩부대 소속인지 선전에서 홍콩으로 침투한 것인지는 불명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들은 시위와 무관한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으로 모두 구룡반도 조던 지역에 있는 중국군 통합병원 및 카우룽통 소재 육군부대 등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다.[15] 사실 천안문 사태 이후 현역 인민해방군을 절대 시위진압에 투입조차 안하는 중국이 굳이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을 시위진압에 투입하는 모험을 할리 없었다.[16]

홍콩경찰에 中 무장경찰 투입설…"정체불명 남성들 본토서 넘어와" 목격담.

중국 공산당의 관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폭력배들이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데 경찰관들이 30분이나 지나서야 출동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이 때 폭력배들 사이에 중국 무경부대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경찰의 소극적 대응도 그래서 설명 가능한 부분이다. 윈롱에서는 이 사건 직후 무경부대 장교 군모가 있던 주인 없는 렉서스 승용차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단순히 동네 폭력배들만이라 보기에는 너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현재 이 사건은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구의회에서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실제로 시위를 벌이던 2019년 여름 간 진짜로 중국 무장경찰대원들이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밤중을 틈타 몰래 넘어온 후 절반은 보조경찰 모집 때 몰래 홍콩경찰에 합류하고 나머지 절반은 각각 윈롱역 사건 같은 백색테러를 벌이는데 써먹거나 시위대로 위장시켰다고 보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2019년 8월 31일 시위에서 무려 글록 권총을 차고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 참가자가 찍혔는데 중국과 홍콩 둘 다 이에 대해 해명조차 없었다.[17]

어쨌든 이래저래 중국경찰의 홍콩 잠입설이 자꾸 나돌자 홍콩정청은 2019년 11월 교도소를 관리하는 징교서 소속 경비교도대원들과 이민국 소속 특수기동대원 등을 보조경찰로 채용해서 경찰 인력을 증강하였으며 이후 이러한 중국경찰 잠입설은 쏙 들어갔다.

경찰 내에서도 무능한 홍콩 정치권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본토의 입김이 커지면 커질수록 홍콩 경찰의 자율권은 위축될 테니 경찰관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에도 안 드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신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정치인들이 마음에 안 들 법도 하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가뜩이나 나빠졌던 홍콩경찰의 이미지는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아예 중국과 홍콩의 차이를 설명할때도 경찰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애둘러 깔 정도니 말 다 했다.

강철 주먹으로 불리는 초강경파 크리스 탕2019년 11월 총파업 때 용무파라 불리는 과격 시위대를 토끼몰이해 홍콩이공대학에 가두는 신종 전술을 써서 간단하게 과격시위를 무력화시켜 버려 악명을 떨쳤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졸지에 갇혀버려 물도 없고 식량도 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탈진하는 극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때 경찰은 과격 시위대 일부가 양궁까지 꺼내서 쏘는 등 격렬히 저항하자 굳이 캠퍼스에 진입하기보단 캠퍼스를 봉쇄해 가둬서 말려죽이는(!!!) 고립 포위를 택했고, 대부분 갓 대학에 온 신입생이거나 10대 어린아이들이었던 과격 시위대는 결국 현실적인 공포를 못 이기고 용무파고 뭐고 전의를 상실해 투항했다. 처음에는 홍콩과 함께 타 죽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나중에 막상 고립되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경찰의 기습이라는 현실적인 공포를 마주하자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울부짖을 정도로 정신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활이나 화염병 등 살상무기에 대해서는 헤드샷을 날리겠다고 엄포했고 실제로 SDU 저격수들과 장갑차까지 배치됬으며 장갑차엔 M16 돌격소총을 거치했다. M-16은 자동소총이라 산탄총과 달리 실탄밖에 쏠 수 없고 고무탄은 쏠 수 없는지라 명백히 과격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전원 사살 조치에 들어갈려 했다고 봐야 한다.

이때 과격 시위대도 진짜로 군용 자동소총이 나오자 당혹해하고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이미 미칠대로 미쳐버린 경찰이라 실제로 과격 시위대 몇 명 쯤은 헤드샷 날리는 것도 가능했는지라, 그리고 거기에 현실적으로 물과 전기, 식량도 없고 12월이 되어가며 기온까지 떨어져 가는지라 탈진 등 환자도 많이 발생하는 통에 대부분 전의를 잃고 항복했다.[18]

이렇게 강경 오브 초강경 진압을 펼친 크리스 탕은 두고두고 예비 살인자라는 욕을 먹었으나 친중파 진영과 중국 정부는 무한의 신뢰를 보냈다.

중국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잡지 환구인물은 홍콩 경찰을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후로는 별다른 사고는 치지 않고 뒷북으로 이래저래 폭력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는 보여주기 식 퍼포먼스(...)만 벌이고 있다.

4. 조직 및 차량

  • 경무처장(CP)
    • 작전부청장(DCP OPS)
      • 작전지원부
      • 수사보안부
        • 수사부
          • 경제수사국
          • 사이버수사국(CTSCB)
          • 마약수사국
          • 범죄기록국
          • 범죄조직및삼합회수사국(OCTB)
          • 범죄정보국
          • 법의학화기국
          • 신원관리국
        • 보안부
          • 요원보호조(VIPPU)
    • 행정부청장(DCP MAN)
      • 인사교육부
        • 인사관리단
          • 인적자원부
          • 환경규율부
          • 홍콩경찰학교
      • 운영지원부
        • 정보화기술단
        • 양질근무단
      • 재무기획부
        • 행정관리단
        • 재무관리단
        • 기획개발부

경찰관서 중 최고 기관인 경무처는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부 보안국 산하이다. 경무처 본청 사무실은 홍콩 섬 완차이에 있으며 흔히 경찰본부라고 부른다.

산하에는 경찰기동대인 PTU가 장갑차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PTU 휘하에는 다시 대테러부대인 SDU, 대테러 초동조치 부대인 CTRU, 그리고 일명 랩터부대라 불리는[19] STS라는 시위진압 체포조 부대를 보유한다. STS는 한국경찰이 과거 운용하던 백골단과 같은 과격 시위대 검거 역할을 하며 SDU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는 우수한 기동경찰들만 여기 배치한다. 이 부대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후 대규모 시위에 대비해 창설했다.

해안경비대인 수경(水警) 즉 해양경찰대도 경무처 예하부대로 해양경찰 사령부는 홍콩 섬 남부 에버딘에 위치하고 경비정과 함께 고속정고속단정을 다량 보유한다. 고속정 및 고속단정에는 해경 기동대원들이 탑승하며 밀입국 선박이나 마약/ 무기 운반 등 범죄에 사용되는 것이 의심되는 의아선박, 그리고 홍콩특별행정구 영역 내로 넘어오는 전마선 등을 붙잡아 검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타국 해안경비대들처럼 해상사고 발생 시 구조업무도 이들 몫이며 잠수부가 필요하면 홍콩 소방처 심해잠수팀에 도움을 요청한다.

대한민국 경찰청 본청에 해당하는 경찰본부에는 여러 부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보서는 미국의 FBI처럼 특수수사를 맡는 형사보안국이다. 형사보안국은 좀 큰 규모의 범죄를 수사하는 역할을 하며 삼합회 수사대와 마약수사대, 보안수사대 등이 있다. 보안수사대는 외사 부분을 담당하며 대테러 수사도 이 보안수사대 몫이다.

홍콩 국제공항은 공항 전담 경비대인 공항경찰대가 있고 SDU도 분대 정도 규모가 파견나와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공항 점거시도 후 공항경찰대는 폭동진압용 장비로 무장하며 24시간 경계 중이며 현재 공항 보안은 거의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김포국제공항 수준으로 격상되어 아무나 못 들어오게 막고 있다

PTU는 전술한 것처럼 경찰기동대로 다중범죄 진압, 은행강도나 인질극 등 특수 강력범죄 진압, 주요시설 경비를 담당한다. 주요 시위진압 사례 중 하나인 2014년 홍콩 우산 시위 당시 PTU는 곳곳에서 홍콩 시민과 충돌했으나 홍콩인은 PTU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주고 우산을 씌워 주는 등 신사적인 방식의 시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저번 우산혁명 후 독이 올랐는지 초장부터 무력진압을 서슴치 않고, 시민을 조롱하는 등 좋지 않은 태도로 욕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이 PTU는 다시 전문적 대테러부대를 보유 중인데 SDU와 CTRU가 그들이다.

SDU는 홍콩의 경찰특공대1960년대에 이미 창시되었으나 제대로 갖춘 건 1978년 영국 육군 SAS에서 교관이 초빙되어 전문적인 대테러 훈련을 시키면서부터이다. 창설 당시에는 왕립 홍콩경찰, 현재는 홍콩 특별행정구 경찰이며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와 달리 그리 군대스럽지 않고 실력도 뛰어나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테러부대이다.

한 번 이들의 신원이 공개되어 난리가 난 적 있다.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으나 어떻게 사태를 수습했다.

SDU는 삼합회 킬러로도 활약했는데 1980년부터 SDU는 PTU 및 본청 형사보안국 심지어 염정공서와 함께 삼합회 때려잡기 선봉에 나서 현재 삼합회는 거의 무력화되다시피 되었다.

그 외 이슬람 극단주의 폭력조직인 IS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이나 마피아, 마약 카르텔 등 세계구급 폭력조직 등 각종 국제범죄의 위협으로부터 홍콩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과거 IRA영국을 상대로 끈질기게 투쟁하던 시절 홍콩도 영국령인데다 중요한 식민지인지라 당연히 IRA의 표적이 되었기에 SDU는 IRA와도 싸워야 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IRA가 무장 해제를 선언한 현재는 그저 역사 속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20]

파일:external/img7.itiexue.net/21353575.jpg

한때 홍콩 액션영화에 SDU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아예 대놓고 제목이 비호대인 영화까지 나왔으니 말 다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도 청바지에 샌달 신고 작전을 나가는 등 좀 지나치게 캐주얼한 차림으로 유명했으나 그것도 옛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SDU는 규정된 전투복이 원래 한국군의 구형 전투복과 같은 우드랜드 전투복이지만, 활동 편의를 위해 사복 차림도 허가했던 것이라 봐야 한다.

평시에는 다른 경찰들처럼 당연히 근무복을 입는다. 대테러 시범훈련 등에서는 근무복 차림에 기관단총방탄모 그리고 방탄조끼만 착용하고는 한다.

2016년 1월 10일. 인질 구출 훈련 중의 SDU. 2010년대 들어 서방권 특수부대의 표준 장비나 다름없게 된 멀티캠 컴뱃셔츠/컴뱃팬츠, 옵스코어 헬멧, 플레이트 캐리어에 SIG 516 자동소총[21][22] 등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경찰 개방 행사에서는 트로피컬 멀티캠을 착용한 SDU 대원도 목격되었다.#

물론 2014년 발생한 Kai Ching Estate 총격 사건[23]에 출동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SDU 대원도 있었던 것을 보면[24] 활동 편의를 위해 여전히 사복 차림도 허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얘네는 한국과 달리 복제에 그리 얽매이지 않고 활동성을 중시해 자율을 보장해주는 면이 있다.

SDU와 더불어 대테러부대 CTRU(Counter-Terrorism Reaction Unit/反恐特勤隊)가 2009년부터 창설되어 활동 중이다.

영국 SAS의 지도를 받은 SDU와 대조적으로 CTRU는 미국 뉴욕 경찰 NYPD의 Hercules Team[25]을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테러 위협이 있는 주요 장소와 행사를 보호하거나 테러 발생 시 초동 대처하는 등의 임무를 갖고 있다.

또한 요인 경호를 위한 부대로 일본 경찰SP와 유사한 요원보호조 VIPPU[26]가 있다.

그리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의 공포의 대상이 된 STS 즉 특별전술소대[27]도 있다.

위의 모든 경찰 작전부대는 PTU대 소속이며 PTU 대원 중 우수한 자들만이 까다로운 선발과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PTU 근무 경력이 3년 이상이고, 신체건강하며 정신에 문제가 없어야 위 부대들에 갈 자격이 주어진다. 조금이라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탈락시킨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lice_Patrol_Car_AM6800.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KPF_Hybrid_Police_Patrol_Car_AM8944.jpg

경찰차로는 벤츠 스프린터토요타 프리우스가 가장 흔하다. 시내에만 있으면 경찰차라고는 이 스프린터 및 프리우스와 바이크 뿐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일:external/i1.trekearth.com/hk-police-fortress-08b.jpg

혼다의 바이크.

복제의 경우 순경-경사 급 비간부는 하늘색 근무복, 경위 이상 간부급은 흰색 근무복을 착용해 신분을 구분한다.

과거에는 흰색 근무복은 경정 이상 고급간부만 착용했고 그나마 내근직이거나 회의, 행사 등이 있을 때만 착용했다.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 당시 경찰 근무복은 국방색 상/하의로 된 하복과 흰색 와이셔츠와 네이비 블루 색상의 자켓, 그리고 네이비 블루 색상 바지로 된 동복으로 나뉘었으며 모자는 따로 기동모가 없이 정모를 기동모로 착용했다. 현재 이 국방색 근무복은 경찰훈련학교 훈련생도들이 훈련복으로 착용한다. 홍콩의 덥고 습한 기후 상 특이하게 하복은 반바지로 되어 있었다.

모자는 원래 정모와 기동모를 겸용하다 2010년대 이후 활동이 편한 야구모자 형태 기동모를 착용하고 정모는 행사 시 정복이나 예복 차림일 경우에 착용한다.

경찰관들은 권총삼단봉, 수갑, 모자걸이 등이 있는 탄띠 및 전술조끼를 착용하고 3인1조 혹은 4인1조로 순찰을 돈다. 모자는 범인 추격 등 현장활동 시 탈모가 가능하며 대놓고 모자걸이가 탄띠에 있다.

5. 평가

"홍콩 사람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들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했고, 또한 홍콩의 법을 벗어나는 일들을 많이 해왔을 것입니다."
- 제레미 탐 공민당 의원. 이 사람 말고도 민주파의 경찰에 대한 시각은 대게 이런 식이다.

거의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이중적이다.

친중파는 홍콩 특별행정구 경찰로 넘어오며 완전히 부패문제를 해결하였고 특히 골칫거리였던 삼합회 소탕을 업적으로 꼽는다. 그리고 민주파에서 제기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들을 단지 징징거림으로 폄하한다.

민주파는 과거 왕립 홍콩경찰은 아시아 최고라 표방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불렸었으나 중국 반환으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연락판공실, 일명 중련판에 의해 움직이게 되자 영국 식민지 시절의 헌신적이며 성실한 모습은 간데 없고 민중을 탄압하고 인권유린도 거리낌없이 저지르며 중공을 위해 헌신하는 민중의 적으로 퇴화해버렸다(...)는 평가를 내리며 이러한 평가는 우산혁명 이전부터 팽배했다.

안 그래도 우산혁명 무력진압으로 중공의 개(狗官)으로 불리던 경찰의 평판은 이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한 또 한번의 무력진압과 공권력 남용으로 나락으로 추락했으며 검은 경찰이라는 뜻의 흑경(黑警)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중국 공안 못지 않은 무자비한 인권탄압으로 악명이 높으며 아예 '''자국민을 죽여야 할 적으로 취급하기까지 한다.[28]

안 그래도 홍콩인들은 중국과 홍콩이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조차 경찰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찰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으며, 최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경찰의 폭력 과잉진압 문제가 불거지자 거의 확인사살 수준으로 이르렀다.

그러나 자국민을 적 취급하는 것과 달리 외국인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뇌물수수 문제 등도 없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일단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선 동남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청렴함을 앞세워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홍콩의 본국인 중국만 해도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하고,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말 안 해도 뻔한 수준인지라 그래도 경찰이 할말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게 가능하다.

과거 1960년대까진 뇌물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삼합회와 결탁한 사건이 빈번했고, 증지위의 아버지 증계영은 경찰 고관을 하다가 문제되자 대만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영국인 경찰 간부인 피터 고드버의 전횡사건이 터졌고 이때문에 염정공서가 출범하기도 했다. 고드버는 나중에 영국으로 튀었다가 염정공서 설립 후 범죄인 인도로 강제 송환되어 처벌받았고 이후 경찰관 해고 및 염정공서의 경찰조직 대대적 수사에 반대하는 경렴충돌이 1977년 벌어져 염정공서 사무실에 짱돌이 날아오고 수사관이 폭행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에 되면 외국 전문가 초빙, 젊고 의욕 넘치는 신임 경찰관들의 대대적 선발, 부패방지 3륜법 등으로 부패문제가 사라졌고, 홍콩을 깨끗히 하는 클린 홍콩 운동까지 더해져 지금의 아시아 최고의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친절한 것도 사실로 경찰관은 영어표준중국어, 광둥어는 물론 심지어 일본어로도 모두 말할 수 있어 외국인이 곤란해하면 유창한 영어와 함께 친절히 도와준다. 경찰 말고도 홍콩 소방처소방관이나 구급대원, MTR 철도회사 직원, 공항 직원, 세관원, 캐세이퍼시픽 승무원 및 지상직원 등 모든 제복 입은 사람은 전부 다 친절하다.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본부에 무전으로 물어볼 정도.

물론 이 모든 것은 반체제 성향 자국민들에게는 일절 해당사항 없으며, 반체제 성향의 자국민들에게는 감시국가의 경찰 그 자체인 공포의 대상이자 주적 1호인 쓰레기 집단에 불과하다. 애초 이들은 자국민들을 대놓고 적으로 취급한다.[29]. 이 자국민들의 경우도 친중파에게는 한없이 순한 양이며 야누스를 방불케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1980년대~1990년대 영국령 홍콩 왕립 홍콩경찰은 멋지게 테러범을 제압하던 주성치의 도학위룡 시리즈 등에서 보듯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하고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아시아에서 믿을만한 경찰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현재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도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하고 성실한 경찰이다.[30] 무엇보다 골칫거리 삼합회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건 분명히 업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이면으로 대놓고 친중파 경찰간부들이 득세, 홍콩 정부의 말을 안 듣는 인사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벌이고, 반정부 시위는 중국 무장경찰대나 러시아 내무군 못지않게 무자비하게 때려 잡아 인권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점은 싱가포르 경찰청도 마찬가지로 리콴유를 인터넷에서 욕하면 바로 24시간 인터넷을 감시하는 싱가포르의 사이버 경찰이 잡아내어 체포, 구속하며 영혼까지 털어버린다. 리콴유가 싫어 호주 등 해외에 도망나와 사는 싱가포르인들도 있을 정도다. 리콴유 사후에도 리콴유 일가를 욕하거나, 리콴유 아들들이 벌이는 소위 왕자의 난 등을 언급하는 그 순간 싱가포르 경찰이 들이닥쳐 연행하고 조져버리기 때문(...)에 안전한 해외로 나와 욕한다. 그러나 드러난 표면으로는 다들 알다시피 싱가포르 경찰은 세계적으로 일 잘하고 청렴하며 신속출동하는 경찰로 이미지가 아주 좋다.

결국 아시아 전체적으로는 민주화와 강력한 공권력 그리고 청렴함을 모두 가진 대만 경찰 즉 중화민국 내정부 경정서와 법무부 사법조사국[31]이 가장 우수한 경찰인 셈이다. 한국 경찰은 부패문제가 잊을만 하면 터지는 등 대만 경찰이나 이 홍콩 경찰에 비해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아 아시아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버닝썬 게이트만 해도 한국 경찰이 아직까지 부패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비교 자체가 모욕이겠지만 부패 쓰레기에 불과한 다른 동남아시아 대부분 경찰들보다는 낫다. 홍콩 주변국인 필리핀에선 대놓고 경찰들이 마약 던져놓고 잡아가는 셋업 같은 짓거리를 한다.

그러니까 한국인처럼 외국인 입장에선 반중/반정부 언행만 삼가하고[32] 엎드려 지내면 홍콩 경찰을 안좋게 마주할 일은 절대 없다. 어차피 어느 나라나 외국인은 해당 국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내정간섭이기 때문에 좋아할 나라는 아무 곳도 없다. 본인이 소신을 갖고 의견을 갖는 것과 막상 진짜 시위에 참여해 남의 나라에서 경찰에 끌려가는 건 다른 얘기다. 후자는 모두가 본인 한 사람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6. 폭력적 시위진압고문 자행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전형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의 모습을 보여주어 이미지가 매우 실추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친중파 경찰이 득세하고 있다는 소문은 돌았는데 결국 그게 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친중파 경찰간부들은 왕립경찰 시절부터 은근히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 내무부의 노골적인 푸쉬를 받았으며 현 경무처장 크리스 탕은 아예 대놓고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미국, 영국, 싱가포르, 스페인,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 경찰의 대테러부대에서 훈련받았을 정도이다. 전 처장인 스티븐 로도 왕립경찰 시절부터 친중 성향을 드러내던 사람이었으며 PTU대 부사령관인 백인 경찰간부도 친중 성향 인물이다.[33]

당시 시위진압 현장에서 폭동적 시위진압을 저지르는 인원들이 홍콩경찰로 위장한 중국본토 경찰관 즉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광동성 공안부 내지는 광동지역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인원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이유로 대만 언론이 한 경찰관의 근무복에 부착된 배지와 명찰을 통해 경찰의 신원을 조회해봤는데 엉뚱한 인물이 나오기도 했고[34]갑자기 표준중국어로 경찰들이 대화하거나, 혹은 영어도 할 줄 몰라 외신기자에게 사진 찍지 말라며 We Are not background(...)[35]라는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심지어 홍콩경찰에선 절대 쓰지 않는 중국본토 기동경찰의 진압자세인 기마자세 봉술을 구사하는 장면도 포착되었기 때문이다.[36] 2014년부터 경찰과 대처해 온 반정부 인사들은 홍콩경찰은 절대 저 기마자세 봉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무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직접 해명하였다.

https://www.facebook.com/HongKongPoliceForce.

그리고 종주국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역시 홍콩특별행정구와 홍콩 경무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허위사실 유포라며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등 정색했다.

위 사안이 루머이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스티븐 로 경무처장의 '집에 안가면 남은 여생동안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망언만큼은 처장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이미지의 실추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종합해 보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가 독하게 심했던 2019년 하반기에 일시적으로 보조경찰을 늘릴 때 광동 지역 무장경찰대원들을 1~2만 명 정도 홍콩으로 사복 차림으로 여행객을 가장해서 파견한 후 일부는 시위대로 변장시키고[37], 일부는 7월 21일 윈롱역에서 있었던 백색테러에 동원했으며[38] 나머지는 보조경찰관으로 홍콩경찰 PTU대에 끼워넣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39]

결국 경무처는 자꾸만 중국경찰 위장잠입설로 시끄럽자 공개적으로 징교서 및 세관, 이민국 등에 협조를 얻어 경비교도대원과 세관 특수기동대, 이민국 특수단속반 등을 청원경찰로 지하철역이나 정부청사 등 주요 시설에 실탄이 장전된 자동소총으로 무장시켜 투입하였으며 진압용 전투복의 배지와 명찰 등은 쌈빡하게 제거했다.

게다가 홍콩 각지의 병원에서 치료받던 시위 참가 시민들이 연이어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자 의구심을 느낀 병원 관계자들이 홍콩 의료전산체계를 조사한 결과 전산망에 진료 기록을 무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홍콩 경찰용 백도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백도어는 원래 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경찰 추적을 받는 범죄자를 추적하거나, 대형사고 발생 시 희생자들의 신원파악을 위해 만든 건데 이를 악용한 것이다.

그야말로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 일제강점기나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한국 같은 감시국가의 경찰 그 자체라고 할 만한 내용.
파일:QEcv79Z.gif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 한 PTU대 간부급 경찰관이[40] 경찰을 공격한 것도 아닌, 인터뷰 중인 노인 시위자의 팔을 끌어당겨 쳐다보게 한 다음, 최루가스를 얼굴에 직접 분사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과잉진압을 넘어선 희롱이나 다름없는 짓이기에 파문이 일고 있다. 건강한 청년도 잘못 맞으면 실명할 수 있는데 노인한테 캡사이신 최루가스를 눈에 직사하면 쇼크사할 수 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놀라 제지 할 정도의 과잉진압인데 홍콩 경찰이 인권같은 건 이미 내다 버린지 오래라는 것이다.


2019년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일대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도중 과격 시위대와 친중파 시민 간 패싸움이 벌어지자 이를 진압하려 출동한 PTU대 기동경찰들과 랩터부대원들이 역 안과 전동차내에 난입, 과격 시위대뿐 아니라 평범한 시위 참가자들 심지어 시위와 아무 상관없는 시민들에게까지 대대적인 폭행을 일삼은 야만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을 벌인 동영상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때문에 홍콩인들의 공분을 사서 분노가 매우 커진 곳이다.

2019년 9월 4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이 철회되었지만, 몽콕 지역 주민들과 동맹휴학 중인 학생들이 역에서의 시민을 공격하는 홍콩 경찰의 야만적인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현재도 매월 30일이나 31일에는 이 역 앞에서 집회를 연다. 현재는 시위가 누그러들어 폭력시위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며 경찰을 규탄하고 있고,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파는 이 사건과 7월 21일 윈롱 백색테러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의결한 상태다.

반정부 성향의 홍콩인들은 경찰을 POPO라고 부른다. 영어짭새 비슷한 뜻의 욕이다!!!

그리고 나쁜 경찰이라는 뜻의 흑경(黑警)[41]이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참고로 랩터부대[42]는 한국경찰의 백골단 못지 않은 만행으로 악명 높다. 외신기자들도 이 랩터부대원들에게 여럿 얻어 맞고 연행되었을 정도다. 시위 기간 동안 경찰이 외신에 대해 아주 히스테릭한 거부 반응을 보여서 외신기자들도 마구 때리고 끌고 가고 카메라를 뺏엇다.

그 외 중공의 개라는 뜻의 견찰(狗官) 등의 욕도 흔히 쓰이며 시위가 한참 강렬하던 지난 여름에 몇몇 시위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서에 개밥을 놓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7월 21일 백색테러 직후 폭력배들의 폭력을 방치하자 삼합회와 똑같은 놈이라며 黑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위가 누그러든 현재에도 경찰에 대해서 인터넷상에서 저 별명으로 조롱하는 사람이 많다.

2019년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관련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앰네스티는 시위 기간 동안 홍콩경찰이 폭동적 시위진압을 하고, 체포한 시위대에 대해 고문을 자행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계 지역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사람에 따르면, 이 인원은 시위를 마치고 집에 가는 도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근처 경찰서로 압송된 후, 경찰서에서 경찰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하고 자백을 안 한다며 물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하였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경찰이 "자백하지 않으면 전기고문을 시행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정청과 중국 공산당 등 유관기관과, UN유럽연합국제기구에 홍콩 인권 상황 관련 해당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기사

블룸버그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홍콩인들의 홍콩 경찰 신뢰도가 낮고 반감이 매우 큰 상황에서,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사용 보고서가 알려질 경우 시위 규모를 매우 극단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사

국제엠네스티는 해당 보고서에서, 8월 25일의 여성 시위대 공개 알몸수색 건과, 여성 시위 참가자를 경찰이 체포하여 경찰서로 압송한 이후, "진술을 거부하면 성고문을 하겠다"며 대놓고 위협한 것이 성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며, 홍콩 경찰이 여성폭력도 저지르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기사

9월 20일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홍콩 경찰의 폭동적 시위진압 및 시위대 폭력, 고문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에 대해, 스티븐 로 홍콩 경찰청장은 "홍콩 경찰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 순수한 거짓말(Pure Lying)이다. 국제앰네스티는 홍콩 경찰을 모욕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제앰네스티를 거세게 비난했다. 기사

결국 초강경파인 크리스 탕 취임 후 과격시위는 홍콩이공대학에 토끼몰이 후 가두어 놓고 물과 전기, 식량 공급을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어 제압했으며 구의회 선거 투표장에는 자동소총을 보유한 무장 기동경찰을 배치하고,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더 이상 시민사회도 경찰을 비판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게 되었다.

한편 홍콩 경찰의 경우 무차별 불심검문으로도 악명높다.

원래부터 3인1조로 전우조를 편성해 순찰다니며 한밤중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연행해 가곤 했다. 실제로도 불법체류자들이나 마약 중독자가 꽤 많은 구룡반도 특히 조던과 야우마테이, 몽콕 일대가 아주 심한 편이고 홍콩 섬은 안전한 지역인지라 덜하다.

우산혁명 그리고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최근 들어 여러 시위가 계속되자 이제는 기자나 의료인력 등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조차 무차별 검문을 행하고, 이에 항의할 경우 연행해 간다. 이 불심검문에 외신기자도 예외 따위는 없다.

참고로 홍콩은 한국과 달리 신분증 제시를 거부할 시 100% 연행된다. 거의 일본 경찰 수준의 불심검문이다.

물론 이러한 불심검문으로 민생치안이 세계 최고급 수준이기는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불심검문 간 경찰들의 태도가 아주 고압적이다.

7. 경찰청장

홍콩 경찰 경찰청장의 정식 직책명은 경무처장이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아래 두 처장들의 악명이 높다.

8. 수사권

홍콩은 영미법이 적용되는 보통법계로 따로 검찰이 없다. 그래서 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이러한 수사 전담을 위해 경무처에는 형사보안국이 있으며[43] 형사보안국에는 삼합회 전담 조직범죄 및 강력사건 수사대, 마약을 잡는 마약수사대, 금융범죄나 컴퓨터 사용범죄인 해킹, 그리고 보이스피싱이나 몸또 등 통신매체 이용 사기범을 잡는 첨단수사대, 외사 사건 수사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 등이 있다. 테러리스트를 수사하는 대테러 수사는 외사 업무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가 맡는다.

경찰은 수사 전담기관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기소는 율정사 검찰관의 몫이다. 홍콩은 한국 등 대륙법계처럼 별도 검찰청은 없으나 율정사가 검찰 역할을 한다.
공직자 부정부패나 횡령, 탈세, 공문서/사문서위조, 승부조작 등 부정사건 수사만 별도의 행정장관 직속기구 염정공서가 맡는다.

9. 매체에서의 등장

성룡이 주연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1, 2편은 1980년대 홍콩 경찰의 여러 모습이 잘 고증되어 있다.

또한 1992년에 나온 성룡의 시티헌터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하여 선상을 점거한 테러조직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유덕화가 주연을 맡은 여락 시리즈는 1950년대부터 염정공서가 생길 때까지의 홍콩 경찰 사회 속 부패한 모습을 그려낸다. 부패경찰로 승승장구하던 뇌락(유덕화)의 아들(곽부성)은 염정공서 초대 멤버가 되고, 경찰 내부는 물론이요 삼합회까지 주무르던 경찰간부 뇌락은 해외로 도피해서 법망을 피하게 된다. 유덕화는 이후 추룡이란 영화에서 또 한 번 여락 시리즈의 주인공 뇌락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그외에도 금전제국이란 영화에서 양가휘가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다크 나이트(영화) 에서 배트맨(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이 라우를 홍콩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납치할때 모든 불이 꺼지고 라우와 라우 부하들이 쏘는 총격음을 듣고 건물 경비들이 신고 전화를 걸고 이내 SDU 대원들과 형사가 건물로 진입한다. 하지만 이내 배트맨이 건물 유리벽에 부착된 폭탄으로 탈출구가 확보되고 이내 배트맨이 풀톤 회수 시스템으로 라우를 대려가자 닭 쫓던 개(...) 마냥 지켜 보기만 한다.

무간도에서 황지성 국장과 부하 경찰관들은 OCTB 소속이다. 작중 아예 OCTB라고 쓰인 자켓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유건명은 양질근무단(Service Quality Wing) 내사수사부 소속. 무간도 2 시점에선 둘 다 구룡반도 서부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무간도 3에선 지금은 폐쇄된 구 중부경찰서가 배경이며 오히려 구룡반도 서부경찰서가 폐쇄된 것으로 묘사된다.

콜드 워의 주인공 이문빈과 류걸휘는 각각 작전부청장과 행정부청장으로, 청장의 퇴직이 다가오면서 두 사람이 경찰 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과 이에 더불어 현장직 경찰관들과 내근직 경찰관들의 갈등이 영화 전반에 잘 드러난다. 근데 스토리를 보면 현장직들이 부패하고 삽질한 걸 내근직이 보다못해 사무실을 뛰쳐나가 몸으로 때우며 수습하는 내용이라 은근히 내근직들의 편을 들고 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서 SDU 대원 잉, 리전이 등장한다.

1991년에 만들어진 주성치 주연의 작품인 도학위룡 시리즈의 주인공인 주성성이라는 경찰관이 대테러부대인 SDU 소속의 대원으로 등장한다. 특히 2편에서는 아담 스미스 국제학교라는 외국인 학교를 점거하여 폭탄테러를 일으키려는 테러리스트 조직들에게 맞서서 주성치가 이끄는 잘 훈련된 SDU 대원들이 MP-5 기관단총 등의 총기를 사용하여 테러범을 때려잡는 등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


[1] 그려져 있는 건물은 왼쪽부터 퀸즈웨이 행정사무소, 중국은행 타워, 홍콩 시청, HSBC 본사, 익스체인지 스퀘어 1997년 7월 1일 부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바뀌며 만들어졌다. 홍콩 소방처와 입경처, 해관도 같은 자형화 문양을 쓴다.[2] 원래 해병대는 해군 헌병 역할과 해안선 육상 해군기지 방어 역할이 평시 역할, 적국 영토 상륙이 전시 역할로 출발하였다. 이 중 해안선 해군 육상기지/ 항만방어와 전시 적 해안 상륙이 현재까지 남은 임무고 해군 헌병은 지금 대부분 국가가 분리하여 별도로 갖고 있다.[3]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의 영화로 한국인들은 옷 보고 해군인 줄 알았지만 사실 해경이다. 이 때 해경은 해군 수병용 세라복을 말단 경찰들이 착용했고, 간부들은 영국 해군에서 파입된 장교들이었다.[4] 총독들의 경우 문관이라도 유사시를 대비해 군복을 갖추고 있었다. 홍콩은 섬이라 해군 군복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2차대전 당시 영국 왕실에서도 군복 차림으로 집무를 보았는데 군 통수권자가 국왕이기 때문이었다.[5] St. John Cathedral로 Cathedral은 성전이라는 뜻이며 큰 교회를 카데드랄, 작은 교회를 Church라고 한다. 영어권에선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간 예배당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크트램 타는 곳 바로 옆이다.[6] 가끔 보이긴 하는데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이나 노인들이 개쌍욕 하며 저거 당장 치우라고 막 욕하고는 한다.[7] 지금도 센트럴의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 존 성당에 가면 이때 산화한 경찰관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8] 정식명칭은 공안조례로 계엄령보다 낮은 조치이며,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선에서 총독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질서를 단시간에 잡도록 한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는 적용하려 했으나 뜻밖에 위헌 크리를 맞아 적용이 안됬다.[9] 한편 이 폭동을 계기로 영국이 구룡과 섬 간 연결을 중시하게 되어 홍콩 지하철과 크로스하버 해저터널을 1975년 이후 만든다. 물론 삶의 질을 높이고자 1976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인 오션파크를 개관한 건 덤이다.[10] 특별임무부대, 통칭 비호대로 불린다.[11] 골든 바우하니아로 불리는 꽃으로 사실 자생하는 꽃은 아니고 유럽 꽃과 중국 꽃을 섞어 만든 잡종이다.[12] 모든 홍콩 경찰관은 뱃지에 경찰번호가 일종의 군번으로 적혀 있어 이름과 경찰번호로 신분을 조회하는 게 가능하다. 대테러부대 SDU만 이게 없다. 이런 식으로 대만 언론 하나가 한 경찰관의 신분을 조회했는데 분명 남경인 사람이 막상 엉뚱하게 여경이고 이름도 다르다고 떴다.[13] 참고로 항간에선 초강경파 크리스 탕 취임 후 중국에 의해 노골적으로 이것저것 지원받아 먹은 그의 경력을 보며 이제야 모든 게 설명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14] 이 영상도 참조. 이라든가 PTU 대원이 그 전까지는 광동어로 이야기하다가 53초 부근에서 별안간 표준중국어로 "동지들! 이쪽이야!(同志们!这边!)"라고 한다.[15] 조던 지역에 인민해방군 소속 군 병원과 장교 사교클럽인 삼군회(三軍會)가 있다. 해당 시설들은 영국령 홍콩영국군 시설을 그대로 인수받은 것들이다.[16] 참고로 2008년 티베트 소요사태 및 2009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소요사태 당시 중국은 본토에 속하는 저 두 지역에 인민해방군 대신 무장경찰부대를 투입했다. 쓰촨 성칭하이 성, 간쑤 성의 무경부대들을 칭짱철도 등으로 실어 날라서 라싸우루무치를 1주일 간 봉쇄 후 그냥 조져버려 두 지역의 소요는 한달도 안되 금방 진압되었다.[17] 글록 권총은 중국이 무단카피하여 공안에 지급한 권총이거나 홍콩 경찰의 사복경찰들이 쓰는 것으로 보인다.[18] 한 두 명 총맞아 쓰러지는 것과 막상 수십명 이상 대량 사상자가 나오는 건 전혀 얘기가 다르다. 과격 시위대가 계속 무기를 사용하며 저항했으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제2 천안문 사태가 되며 경찰에 의한 대량 사살이라는 비극이 됬을 것이다.[19] 중국어로 랩터소대라는 별명으로 부른다.[20] 현재도 미국, 영국 등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싫어하는 나라들의 이권이 모여 있고 국제범죄 특성 상 각종 조직범죄가 꼬이기 쉬워 SDU는 늘 최상의 대테러 대비태세를 유지한다. 홍콩에는 각종 자질구레한 국제 행사도 많다.[21] 2015년 3월부터 도입이 확인된 장비다.[22] 미국 SIG사에서 2009년 발표한 소총. 가스피스톤식 AR-15H&K HK416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더욱 개선했으며(주임 설계자가 HK416의 설계자였다.) HK416과는 가스블록이 좀 더 큰 점과 4방향 쿼드 레일 핸드가드의 네모난 구멍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홍콩 SDU와 더불어 대한민국 해군 UDT/SEAL, 영국, 조지아, 태국, 터키 등에서도 사용한다.[23] 중국어로는 啟晴邨槍擊案이라 한다[24] 출처[25] 9.11 테러 이후 창설된 새 경찰 특수부대다.[26] VIP Protection Unit. 중국어 명칭은 要員保護組. G4라는 별칭으로도 자주 불린다.[27] 별명은 랩터부대다. 크리스 탕이 이 부대 소대장을 역임했다. 일반 기동대가 중대 단위지만 여기는 소수정예를 표방해 소대 및 분대 단위로 움직인다.[28] 일어나고 있는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스티븐 로 경찰청장이 집에 안 가면 남은 평생동안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한 망언으로 인해 결국 홍콩 경찰도 중국 공안처럼 폭동적 시위진압을 부추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미지 자체는 이미 우산혁명 이후부터 많이 실추된 상태라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들이다.[29] 외국인이라고 해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응원하거나 중국 및 홍콩 정부를 비난한다면 예외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거리에서 친절하던 경찰들의 태도가 돌변한다.[30] 당장 부패 쓰레기에 불과한 동남아 주변국인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 경찰들의 한심한 꼴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안다.[31] 미국의 FBI나 한국 경찰에 신설될 예정인 국가수사본부와 비슷한 사법경찰 기관으로 특수수사만 전담한다. 민생치안은 경정서, 해상치안은 해순서 전담이다.[32] 인터넷에 한국어로 떠드는 것까지 일일히 검열해 잡진 않기 때문에 주로 경찰관을 모욕하거나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는 짓만 안 하면 된다.[33] 이 사람은 2005년 한국 농민과 금속노조가 WTO 반대시위를 벌일 당시 첫 등장했다. 이때는 기동부대 소대장을 맡았다.[34] 홍콩경찰의 모든 경찰관은 한국군의 군번처럼 경찰번호를 부여받아 배지에 부착한다. 경관0000 + 관등성명 식이다. 이 사람의 경우 이름도 그렇고 실제로도 남자 경찰관이었는데 막상 번호를 조회하자 이름도 전혀 다른 왠 여자 경찰관이 나와버렸다. 이 지적이 빈과일보에 나오자 경무처는 쌈빡하게 배지와 명찰이 부착된 근무복 대신 아무 표식이 없는 전투복을 착용하도록 지시한다.[35] 문자 그대로 우리는 배경이 아니다라는 뜻이며 명백한 엉터리 영어다. 홍콩경찰은 영어, 광동어, 표준중국어 세 언어에 모두 능숙해야 하기 때문에 이 경찰이 진짜 홍콩경찰 소속일 리는 절대 없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광동 무경대원이 보조경찰로 잠입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36] 기마자세로 하체에 무게를 실어 타격력을 늘리는 봉술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경찰관들이 배우는 진압술이다. 봉의 길이부터가 말도 안 되게 길다. 중국 여행 시 기차역이나 공항 등 다중 밀집장소에서 경계근무 중인 경찰들이 사람 키만한 봉이나 도깨비 방망이처럼 철심(!!!)이 박힌 장봉을 들고 근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37] 8월 31일 정부청사 앞에서 화염병을 투척하던 폭력시위 참가자가 글록 권총을 찬 모습이 언론에 딱 걸려버렸다. 정황 상 무단복제된 글록을 사용하는 무경 장교나 중국 대외정보기관 국가안전부나 홍콩 경찰에서 보낸 스파이일 수 있다. 현재 중국 정부나 홍콩 경찰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의혹이 더 커져버렸다.[38] 마침 역 근처에서 무장경찰대 장교 정모가 있는 렉서스 차량이 방치된 체 발견되었다. 당시 흰옷 입은 괴한들의 움직임도 전술적으로 일사불란해서 최소 무경부대 장교가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39] 위의 표준중국어 사용 사례 말고도 남경이 단 배지를 조회하니 이름도 다른 왠 여경이 나오는 등 엉터리 배지 및 명찰 착용, 주로 중국 경찰관들이 취하는 기마자세 봉술 사용 등 물증이 여럿 있다.[40] 흰색 근무복은 간부, 하늘색 근무복은 비간부 제복이다. 직책이 소대장이나 중대장급인 간부로 보인다.[41] 원래는 흑색 군복을 입는 랩터부대를 일컫던 말인데,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이 랩터부대가 폭력진압으로 악명을 떨치며 시위대 여럿이 다쳐나가자 나쁜 경찰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42] 정식 명칭은 STS/특별전술소대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 창설한 사복 체포조다.[43] 정식 명칭은 형사보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