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7 22:11:15

염정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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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기타

1. 개요

廉政公署(림징궁취(lim4 zing3 gung1 cyu5))[1]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ICAC)

1974년 2월 15일 설립된 홍콩부패수사 전문기관이다. 홍콩에서는 중국어 약칭으로 廉署(림취)라 부른다. 본부 사무실은 홍콩 섬 노스 포인트에 있으며 MTR 홍콩섬선 쿼리 베이(Quarry Bay) 역에 본부가 있다. 그리고 홍콩 섬 완차이에 홍콩섬 지국이 있고 구룡반도신계 등에도 지국을 두고 있다.

공무원 등 공직에 의한 비리나 부정, 민간기업의 경우는 경영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2] 수사 및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수사는 시민의 신고나 밀고 또는 염정공서의 재량에 따라 이루어진다. 또한 영장이 없어도 부패 혐의자의 체포가 가능하고 필요시 권총 등 무기 휴대 및 경찰특공대인 SDU 동원도 가능하다.

염정공서는 강력한 수사권이 있지만, 용의자 기소 여부는 검찰을 거느린 율정사 몫이다.

자유 무역항이라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와 달리 홍콩에서 돈 세탁이나 조세 피난처 노릇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 무서운 기관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의 시중은행들의 계좌 개설 절차가 아주 까다로운 것도 이유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외국인이든 홍콩인이든 간에 일정한 주거[3] + HKID를 요구하며 이것이 없으면 계좌 개설이 안 된다. 중국은행HSBC, 항셍은행 등 메이져 은행들이 아닌 로컬 은행들의 경우는 아예 외국인은 계좌 개설을 안 받기도 한다. 그리고 염정공서가 고객 정보를 요구하면 내야 한다. 이러니 홍콩에서 돈 세탁 및 조세포탈을 저지를 바보는 없다.[4]

물론 홍콩도 훌륭한 조세피난처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일반적 개념의 조세피난이 아닌 관세 면제이다. 아시아의 무역항인데다 홍콩 정부의 정책으로 여기는 이미 1963년부터 부가가치세관세가 전면 폐지되었다. 즉, 법인세 회피같은 목적이 아니라 관세회피를 위한 행위는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안 그래도 무역거점에다가 부가가치세가 없어서 공산품류가 특히 싼 편에 속하는데, 관세까지 없으니 뭐...물자 조달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실제로도 중국 기업들은 홍콩 지사를 통해 우회수입을 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또한, 아마존닷컴 홍콩지사 홈페이지를 통한 해외직구가 활발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조세피난과 관세회피는 조금 다르다. 둘 다 세금을 안 낸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조세피난은 법인세 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홍콩이 조세피난처 역할을 한다는 서술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세피난은 했다간 이 염정공서에 의해 경을 친다(...). 관세회피는 절세에 더 가깝다.

2. 역사

1950~60년대 영국 식민지 홍콩은 겉보기에는 일본과 함께 경제성장을 이루어 발전한 부유한 도시였으나 내부로는 총독부 관료부터 하급관리와 민간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썩은 최악의 부패도시였다. 홍콩 섬에선 롤스로이스가 택시로 돌아다니고 란콰이퐁이나 완차이 등의 고급 클럽에는 여전히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현판을 내 걸고 식민지의 특권층인 영국인 이주민들이 불야성의 문란한 파티를 벌이며 떼돈을 번 중국인 재벌들은 피난민으로 건너온 본토인 비서들을 하인 부리듯 부리며 큰소리를 치고 사치를 일삼았다. 그러나 같은 홍콩이지만 바다 건너 구룡반도중일전쟁, 국공내전 때 피난온 중국 대륙광동 성 주민들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인 피난민들이 배 위에서까지 살며 어렵게들 살았고 섬의 사치, 향락, 번영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5] 이렇게 사회 자체가 아주 불합리했으니 부패는 당연한 거였다.

이때 홍콩인들은 차 값을 낸다며 뇌물을 은어로 표현했다. 어떤 경찰서장은 소위 차 값만으로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다는데 실상은 마작을 하는 도박장을 삥뜯은 거였다[6].

공공기관의 부정부패도 심각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소방서에선 有水放水, 無水就無水放(돈이 있으면 물을 내주고, 돈이 없으면 철수한다)(...)라며 뒷돈을 안 주면 소방호스를 안 열어주었고, 구조작업 등을 했을때 수고비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구급대는 소위 유류비를 챙겼다.[7] 병원에선 뒷돈을 찔러줘야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해줄 정도였다. 민간 기업도 채용시 면접관에게 소위 찻값을 건네야 합격이 되었고 차 값을 내지 않으면 합격해도 발령을 내지 않았었다. 학교 선생들도 백인이고 중국계이고 할것 없이 촌지를 챙겼었다.

당연히 부패를 잡아야 할 경찰이나 사법부도 마찬가지로 부패했었다. 판사들은 영국인, 중국인 할거 없이 둘 다 썩었었다. 본국인 영국 본토부터 영국병을 앓으며 부패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으니 당연하다.

그러던 중 1973년, 영국출신의 홍콩 경찰 간부인 피터 고드버(葛柏)가 당시 430만 홍콩 달러의 전횡을 저지르고 홍콩에서의 출국금지를 무시한 채 영국으로 튄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일제히 시위를 벌이며 영국 중앙정부와 총독부에 고드버를 당장 홍콩으로 다시 데려오라고 들고 일어났다.

처음엔 고드버를 잡자고 시작한 시위가 더 커지고 커지며 홍콩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해 마침내는 그간 불합리하던 사회, 억압적인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전이된다. 이 저항운동은 훗날 홍콩을 아시아 최고(The best of Asia)라는 소리를 듣는 곳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자 근원이 된다.

결국 여론에 굴복한 영국 중앙정부는 홍콩 총독 산하의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기구 염정공서를 세웠다.[8] 이후 염정공서의 서슬 시퍼런 부패단속과 지속적인 대국민 홍보로 인해 1980년이 되면 부패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 제공자였던 피터 고드버는 결국 1974년 4월, 영국에서 체포되어 75년 1월 자로 홍콩으로 송환되었다. 재판 후 징역 4년을 받고 살다 출소했다.

그리고 부패제거와 높은 경제자유도를 토대로 홍콩은 영국병을 앓으며 지리멸렬해지는 본국 영국보다도 더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엔 다들 잘 알다시피 아시아 최고의 국제도시가 된다.

1973~1974년을 사이에 두고 홍콩의 부패방지 3륜법과 염정공서 등 반부패와 관련된 기본적인 것들이 생겼고 이것들은 영국 식민지빨로 경제적인 번영은 누렸으나 내부는 후진적이었던 당시의 홍콩을 진정한 선진도시로 바꾸었다. 이 당시에 반부패 운동과 함께 홍콩을 청결하게 하는 클린 홍콩 운동까지 벌어졌으며 경찰의 경우 전부 다 해고하고 젊은 경찰관을 새로 채용했다. 반부패 정책에 있어서는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의 노력도 벌였고, 그 노력은 1980년이 되자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1979년이 되면 크로스하버 터널 개통, 홍콩 트램을 대신할 새 도시철도MTR의 개통, 클린 홍콩 운동 등으로 인프라가 대폭 향상되고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홍콩이 된다. 이때쯤 홍콩이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도 그럭저럭 해결되어[9] 부패 자체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당연히 현재 홍콩인들은 그때의 부패상은 상상도 못 한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소리는 아니었다. 경찰 해고건의 경우엔 경찰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실제로 1977년 10월 28일에 경찰관들이 염정공서 건물에 난입해 유리창을 부수고 직원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를 경렴충돌(警廉衝突)이라 한다. 이 후 경찰과 염정공서와의 충돌은 2002년, 2010년에도 있었다.

3. 기타

염정공서는 이외에도 부패방지 확산을 위한 포스터와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으며 TVB와 합작해서 드라마도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 드라마가 1994년부터 2016년까지 2년마다 7개의 시리즈로 제작한 염정행동 시리즈가 있다.

2003년 7월에 홍콩 연예계의 고위 인사들을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했지만 아무 성과도 못냈고, 2010년도엔 前 TVB 사장 스티브 찬(陳志雲)을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2013년 무죄 선고를 받아 결과적으로 삽질이 된 흑역사가 존재한다.

200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홍콩인의 99%가 ICAC를 신뢰한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수사 대상이 경제·행정에서 정치 쪽으로 선회함과 동시에 여러 삽질과 피의자 조사수법 등이 비판을 많이 받으며 인터넷 상에서는 예전만큼의 지지를 못 얻는 듯하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염정공서가 실패했다는 오해를 할만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홍콩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곳 중 하나이다.

그리고 2016년부터 염정공서가 다시 옛 명성을 되찾고 있는데 2012년부터 시작한 썬 홍 카이 그룹[10]이 연루된 전직 행정장관 도널드 창의 전횡 사건 수사 결과 마침내 2017년 2월 도널드 창을 감옥에 쳐넣는데 성공한다(!). 사실 상 미니국가인 홍콩의 특성 상 전직 대통령을 순전히 전횡 혐의로 감옥에 보낸 것이다.


[1] 표준중국어로는 롄정궁수(liánzhènggōngshŭ)로 발음한다.[2] 주로 횡령죄 및 사문서 위조, 탈세 등. 도박사들이 걸려있는 프로축구 승부조작 역시 염정공서가 수사한다. 돈 세탁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3] 무려 홍콩 정부의 주택국으로부터 거주증명을 받아야 한다. 자신이 확실한 주거가 있기만 하면 부동산 사무실에 요청하면 해 준다만 귀찮다.[4] 이웃 마카오는 아직까지 금융 관계법이 허술해 돈 세탁 및 조세 피난처로 각광 받고 있다. 그 중 중국 본토의 공산당원들도 주요 고객이다.[5] 이때는 MTR도 해저터널도 없어서 페리로만 바다를 건널 수 있어 섬과 구룡쪽이 따로 국밥으로 놀았다. 그냥 다른나라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섬 사람들은 구룡 주민들을 냄새 나는 중국 촌놈이라며 멀리했고 구룡 주민들은 섬 주민들을 돼지라고 비하하는 지역감정도 심했다![6] 물론 민간에서 돈을 뜯기도 했는데 그 당시 상황을 겪었던 어느 노인의 증언에 따르면 매 절기(오월절, 중추절, 동지 등)마다 돈을 뜯었다고(...).[7] 이 시기는 홍콩 소방처가 현대화되기 전으로 이런 문제는 1979년 소방훈련학교 건립, 영국에서의 간부단 파견, 해외 유학, 젊고 유능한 신임 대원의 대규모 채용 등으로 질이 향상되어 없어졌다.[8] 이 기구 수장의 경우는 심지어 영국 왕/여왕의 통제도 받지 않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했다![9] 동시기 한국보다는 훨씬 잘 살긴 했으나 진정한 질적 선진국 진입은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의 일이다. 물론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건 거진 30년이 뒤진 2007년이다.[10] 화교계의 부동산 재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