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3 22:52:13

마카오


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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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PLP 깃발.png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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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정체 한자 中華人民共和國澳門特別行政區[1]
간체 한자 中华人民共和国澳门特别行政区
포르투갈어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da República Popular da China
한국어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
약칭
정체 澳門 광동어 Ou3mun4
간체 澳门 표준중국어 Àomén
한국어 마카오 한자 澳門
澳门
(오문)
영어 Macao(공식)
Macau(민간)
일본어 マカオ
포르투갈어 Macau(공식)
Macao(고어)
에스페란토 Makao(마카오)
상징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Macau_SAR_Regional_Emblem.svg.png
특별행정구기 휘장[2]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ationMacau.png
언어
공용어 포르투갈어, 중국어(사실상 광동어)
정부형태
주권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
행정부 수반
(행정장관)
페르난도 추이 사이 안 (崔世安 / Fernando Chui Sai On)
임기 2009년 12월 20일2014년 12월 20일
2014년 12월 20일2019년 12월 20일
ISO 3166-1
MO, MAC[3]
도메인
.mo, .mo.cn,[4] .澳門, .澳门
중국 성급행정구역 지역코드
기타
면적 30.5㎢[5]
인구 652,500명(2016 추산)[6]
민족구성 중국인 95.0%, 포르투갈인 2.0%, 기타 3.0%
1인당 GDP $91,376(2013)
화폐 파타카[7]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1. 개요2. 상징
2.1. 명칭2.2. 깃발2.3. 노래
3. 역사4. 정치
4.1. 입법부4.2. 행정부4.3. 사법부
5. 마카오인6. 언어7. 행정구역과 관광지
7.1. 마카오 반도(Península de Macau, 澳門半島)7.2. 타이파(Taipa, 氹仔)7.3. 코타이(Cotai, 路氹)7.4. 콜로안(Coloane, 路環)
8. 교통
8.1. 대외 교통8.2. 시내 교통
9. 경제
9.1. 도박산업9.2. 기타
10. 관광11. 교육12. 군대와 경찰
12.1. 군대12.2. 경찰
13. 구급 및 소방14. 스포츠
14.1. 마카오 그랑프리
15. 대외관계
15.1. 중국 본토15.2. 홍콩15.3. 포르투갈15.4. 바티칸15.5. 한국
16. 등장 매체

파일:external/www.macaucasinos.com/101830694-macau-skyline.1910x1000.jpg
파일:external/www.pctours.com/macau01.jpg
파일:external/images.chinahighlights.com/the-ruins-of-st-pauls.jpg
마카오 전경

1. 개요

동아시아의 도시이자 중국에 속한 특별행정구. 전신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포르투갈령 마카오였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마카오는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다. 마카오는 몇몇 국가 대표팀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고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또다른 특별행정구인 홍콩과 바다 건너 멀지 않은 곳에 이웃하며 같은 광동어를 쓴다. 홍콩과의 큰 차이점은 홍콩이 영국 직할령으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가 중국 반환 이후 일국양제에 따라 최소 50년간 자치가 허용되는 것과는 달리 마카오는 1976년부터 포르투갈의 특수 영토(special territory)로서 속령에 준하는 자치권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처음 포르투갈이 차지했을 때는 중국 본토와 떨어진 섬이라서 해협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수백년간 퇴적을 거쳐 말 그대로 '반도'가 되어버린 마카오 반도와 그 남쪽의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의 두 섬까지 마카오는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에는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 지역을 매립해(코타이) 두 섬이 사실상 붙었고 그 매립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지노와 호텔이 지금도 들어차고 있다. 대체로 마카오 반도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화된 지역, 코타이는 대형 카지노가 널찍하게 자리잡은 곳, 콜로안은 남중국과 포르투갈풍이 섞인 전원지역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인구 약 63만. 홍콩과 한 세트처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도시국가인 홍콩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홍콩은 울산광역시보다 좀 더 큰 크기지만, 마카오는 한국 광역시의 일개 구(행정구역) 수준의 넓이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작았는데 간척에 간척을 거듭해 그나마 좀 넓어진 것이다. 작은 면적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인구밀도는 상당히 높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아주 작은 행정단위에 불과하다. 홍콩과 직접 면적을 비교하면, 홍콩의 중심지인 홍콩 섬(78.59 km2)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역시 세계 최대 수준의 카지노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유흥메카로 2007년 이미 라스베가스를 도박 매출에서 추월했고 그 격차는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온 남유럽풍 고건축과 문화가 남아있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여러모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화폐파타카이지만 홍콩 달러가 파타카와 가치가 거의 같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홍콩 달러를 대신 사용하며 작은 식당이나 구멍가게에서도 홍콩 달러로 계산이 가능하다. 마카오 내에서는 홍콩 달러와 1:1의 가치로 사용이 가능한데, 정확히는 1홍콩 달러 = 1.03 마카오 파타카다. 국내에서는 마카오 파타카의 환전이 어려워 대부분 홍콩 달러를 들고 간다.

2017년 초대형 태풍 하토가 상륙해 코타이가 해일로 침수되고 전기와 물 그리고 가스 공급이 끊기는 등 괴멸적 타격을 입어 사실상 도시기능이 마비되었다. 마카오 경찰 및 소방당국만으로 역부족이라 인민해방군 해군 육전대(해병대)를 중심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투입되어 복구를 돕고 치안 유지를 도왔다.

2. 상징

2.1. 명칭

이름의 유래는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당도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주위에 있던 '아마 사원'이라는 대답인 '아마 까오(사원)'라는 말을 착각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마조각(媽祖閣)'을 잘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마조(媽祖)'는 중국 푸젠 성을 중심으로 하는 바닷가 지역에 거주하며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했던 바다의 여신이다.

마카오의 포르투갈어 표기는 Macau.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Macao가 쓰였다. 1911년에 포르투갈이 공식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정하면서[8] 강세가 없는 o의 발음 약화 현상을 반영해 라틴어 유래가 아닌 포르투갈어 단어의 강세 없는 o를 u로 고쳤는데 이에 따라 Macao가 Macau로 바뀌었다. ISO 코드가 MO인 것은 옛 철자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옛 포르투갈어 표기인 Macao와 현재 포르투갈어 표기 Macau가 모두 옳은 표기이며, 2016년 1월부터 마카오 정부에서는 Macao를 공식 영어 명칭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도 여전히 Macau라는 표기를 선호하고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Macau를 표제어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와 포르투갈어에서 Macau라고 쓰든 Macao라고 쓰든 발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영어로는 머카우, 포르투갈어로는 마까우 정도의 발음. 한국어 '마카오'나 일본어 'マカオ'는 Macao라는 철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2005년 제정된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마카우'가 된다.

통칭과 원어명이 대강 비슷하기라도 한 홍콩(광동어 '헝껑'/표준중국어 '샹깡')과 달리, 마카오라는 이름은 중국어 명칭과는 아예 달라서, 중국어에서는 澳門/澳门이라고 쓰고 오우문(광동어)/아오먼(표준중국어) 비슷하게 발음된다. 말 그대로 '항구의 문'이라는 뜻.

2.2. 깃발

현재 마카오(특별행정구)의 깃발은 1993년 3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정된 것이다.

깃발의 초록색은 번영을 의미하며[9] 연꽃은 마카오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 개의 꽃잎은 마카오를 구성하는 세 개의 큰 지역인 마카오 반도,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을 뜻하며 연꽃 앞에 있는 선은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섬을 잇는 카르발류 총독 대교(Ponte Governador Nobre de Carvalho)와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항만으로서의 마카오의 위치와 역할을 뜻한다. 다섯 개의 노란색 별은 중국 오성홍기의 다섯 개 별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카오가 중국의 영토임을 상징한다.

파일:포르투갈령 마카오 기.png
마카오 반환 이전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이렇게 독자적인 깃발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엄밀히는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의 깃발이고, '포르투갈령 마카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깃발은 따로 없이 포르투갈 국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2.3. 노래

마카오를 상징하는 공식적 지위의 노래는 따로 없다. 마카오 대표팀이 경기를 치르는 경우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을 연주한다.

3. 역사

옆동네 홍콩보다 300여 년이나 빠른 1542년(명나라 시대)에 포르투갈의 교역 기지인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되었으며 대 중국 수출입 거점이었다.

포르투갈이 중국에게서 마카오를 얻어낸 것을 "포르투갈인들이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가 마카오를 상으로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이건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창작한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은 1553년에 포르투갈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체류하게 된 것이 이 도시의 시초라고 한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 가정제불로장생에 집착해 채향사(採香使)들을 시켜 방방곡곡에서 용연향을 구하게 했는데, 전세계에 연락선이 있는 포르투갈 상인들은 용연향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황제의 환심을 샀다. 1557년부터는 매년 뇌물을 주어 거점 구축에 나섰고,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과 그 뒤를 이은 청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를 공식 허용하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연안에 왜구중국인 해적들이 들끓어서 골치를 앓았는데 이때의 마카오는 일개 작은 섬에 불과한지라 작은 섬 몇 개나 떼주고 귀찮은 일 없애자는 식으로 영구 임대안을 승인했고 그 이후부터 뇌물이 아닌 정식 임대료, 즉 명 조정에 대해 세금을 지불하고 대신 마카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포르투갈에 주권이 이양된 건 아니었다.[10]

중국은 마카오 이후로는 수백년 간 서양인들에게 이런 창구를 추가로 더 내주려 하지 않았고, 마카오는 중국 대륙 내의 주요 무역거점으로 써먹을 수 있는 땅이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명청교체기 와중에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침공해서 거의 함락할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방교역에 있어서 마카오를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것은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는데, 네덜란드인들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포르투갈인들은 예수회 수도자들까지 전부 다 동원해서 맹렬히 저항했다.

수학에 능통했던 예수회 수도자들이 계산하고 지휘한(!) 포격이 네덜란드인들을 강타하면서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착각한 네덜란드인들은 도망간다. 지금도 이 전쟁 당시 포격했던 몬테 요새가 마카오의 관광지로 남아있다. 당시 네덜란드영국, 스페인과 더불어 해양 제국으로서 맹위를 떨친 나라였다.[11]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하자 마카오는 전성기를 맞았다. 양국의 직접적인 조공무역이 막힌 빈틈을 파고들어 마카오-나가사키 중개무역을 했고 큰 이득을 얻었다. 명나라와 만주의 청나라가 싸우기 시작하자 양쪽에 홍이포 등 무기를 팔아서 이득을 보았다.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고 대만정씨 왕국을 말려죽이기 위해 강력한 해금령을 내리자 마카오도 타격을 입을 뻔했지만 강희제의 신임을 받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덕분에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마카오의 위상은 갈수록 약해졌다. 마카오는 수심이 얕아 대항해시대 초반의 범선은 드나들 수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거대한 배들이 정박하기는 힘들었다. 포르투갈이 근대로 가면서 이류 열강으로 떨어지며 상업도 쇠퇴했다. 결정타는 옆에 영국령 홍콩이 세워진 것이었지만 그 전에도 마카오는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1842년 영국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를 박살내자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를 점점 호구로 보기 시작하고 청나라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수많은 이권을 뜯어냈다. 포르투갈도 이에 편승해 1851년과 1864년에 원래 마카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무인도인 타이파와 콜로안을 점거하고 1887년에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정식으로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그러나 1840년에 포르투갈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던 영국이 마카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홍콩 섬난징 조약으로 따내고,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 교역 시대가 열리면서 홍콩이 급속히 성장한 것과 달리 쇠퇴하는 본국처럼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점차 쇠퇴한다. 이때의 역사적인 배경에 라틴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까지 더해져 마카오 하면 깔끔하고 금융업 위주의 선진국인 홍콩과 달리 북한 공작원 및 중공 스파이가 득실거리고 마피아가 판치는 무법천지 정도로 인식하는 어르신들도 아직 많다. 실제로도 19세기~20세기 중후반까지의 마카오는 창구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홍콩에 밀리고 도박과 매춘으로 생계를 잇는 퇴락한 도시였다. 1847년 도박을 합법화하자마자 200개가 넘는 도박장이 들어섰고 지금은 관광지가 된 펠리시다데 거리는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거대한 홍등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에 속한 영국과 달리 포르투갈이 일단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홍콩광저우일본군에 점령되었을 때도 마카오는 무사했는데 이때 그쪽 지역의 피난민이 몰려와 인구가 잠깐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 정부 하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편이었기에 마카오를 통해 일본에 석유를 약간 팔기도 했었고, 이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일제중화민국을 압박하기 위해 마카오 영사관을 설치하고 중국의 항일 활동을 감시했고, 물론 중국인들의 일제 인사에 대한 습격도 있었다.[12]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포르투갈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주를 우려했으나 서방과의 정면 대결을 바라지는 않던 중국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존중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홍위병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점령을 시도했으나 포르투갈이 아무리 약체화되었어도 이딴 오합지졸 민간인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서 군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카오 주민들 역시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한족 중국인이기에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마카오에서도 마오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중국 공산당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당시 반공주의가 강렬했던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 역시 반공주의적 입장을 취하며 이들을 탄압하다가 1966년의 12.3 사건같은 중국계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폭동 정도야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와 마카오 주둔 포르투갈군이 진압했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포르투갈에 '당장 사죄하고 주동자들에 보상하지 않으면 마카오로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했고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마카오를 해상봉쇄하는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 이 때 포르투갈은 중국과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폭동 진압에 대해 사죄하고 당시 총독과 관련 경찰을 파면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사실 총력전을 벌여도 중국과 싸워 승산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인데 더구나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으로 이미 거의 모든 군사력이 아프리카에 향해 있었던데다 독재 국가의 식민지 관련 이슈라 NATO를 비롯한 서방권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미 비슷한 과정으로 고아인도에 내준 경험을 볼 때 전쟁하면 도저히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3]

이 일로 굴욕을 당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는 반공 색채를 누그러뜨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던 본국의 방침도 무시하고(당시 포르투갈은 중화민국과 수교한 상태였다) 중화인민공화국과 교류하며 중국 국민당 관련 기관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 대륙 중국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실상 이 일로 포르투갈의 마카오에 대한 주권은 끝장났다고 평가할 정도.출처

마카오뿐 아니라 전 세계 식민지를 어거지로 유지하려고 독립운동을 틀어막던 포르투갈 정부는 결국 1974년에 끝이 없는 독립탄압 전쟁에 염증을 느낀 군부가 일으킨 카네이션 혁명 이후 모든 원거리 식민지를 자진해서 포기하기로 했고 당시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같이 중국에 반환하기로 했는데, 오히려 중국이 돌려받는 것을 거부했다.

1970년 당시는 아직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중국이 아닌 대만 섬중화민국을 유일한 정통 중국으로 승인하던 상황이었고 공산중국은 죽의 장막 건너로 얼마 없는 서방과의 협상창구 마카오를 일단 놔두고 활용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영국이 홍콩 전체의 반환을 거부하고 신계 외곽만 반환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협상이 길어졌고, 중국은 이 문제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포르투갈과 중국은 마카오를 '중국 땅이지만 포르투갈 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해석하는 데 합의하여[14] 언젠가 반환이 이뤄져야 하는 데는 양국이 입장의 일치를 보였고, 포르투갈 정부도 이에 근거해 1976년부터 마카오 정부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이양했다.

영국이 전향적으로 홍콩 전체를 반환하고 중국이 특별 행정구역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한 1984년 중영공동선언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1987년에 또 다시 반환 의사를 표명하였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받아들임으로써 1987년 3월 26일에 홍콩과 유사한 일국양제의 논리로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함을 규정한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마카오는 1999년 12월 20일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최소 2049년까지는 포르투갈령 당시 경제, 정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그와는 별도로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홍콩처럼 마카오도 사실상 본토 사회주의 체제가 영구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를 어기면 포르투갈 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 다만 현대까지도 그럭저럭 강대국영국과 달리 유럽에서도 소국인 포르투갈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국에 직접 압력을 가할 수단이 거의 없는 만큼, 그 방법은 마카오 거주자 및 자본의 일괄 철수와 같은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홍콩광동 성 정부와 공동으로 마카오 옆 주하이시의 일부인 헝친다오를 개발하고 있다. 마카오 대학의 캠퍼스를 주하이 시가 임대 형식으로 떼어줬는데 실질적으로 영구 임대로 보면 되며 점진적으로 마카오의 확장에 헝친다오를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 내 경제특구인 선전이나 주하이보다 별도 국가로 취급되는 자본주의 특별행정구들인 홍콩과 마카오가 더 돈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는 중국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땅 일부를 떼어 내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곳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라 볼 수 있다.

물론 자치나 민주주의와는 별 상관 없는 별도 관세구역 및 자본주의 경제체제 전면 적용지역[15]인데 하는 김에 사실상의 자치를 허용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실상 자치가 중앙에서 직접 특별행정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옛 식민지에 이미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주민 및 그 후손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였다. 특히 포르투갈 국적법이 개정된 1981년 11월 19일 이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혈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 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 연합 소속국인 포르투갈 국적이 있으면 사실상 유럽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만큼 이는 상당한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포르투갈이 마카오인 모두에게 국적을 부여한 이유에 관한 설 중 하나는 마카오보다 앞서 1970년대 카네이션 혁명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할 당시, 3대 이내 포르투갈 본토 태생의 선조가 있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식민지 전쟁 당시 포르투갈군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던 식민지 태생 주민들이 독립 후 내전이 발발하면서 반역자로 몰려 대거 숙청당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 주민들에게 국적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포르투갈대항해 시대 이후 오랜 세월동안 역사적으로 심각한 인구부족에 시달렸는데 경제력이나 시민 의식이 매우 낙후된 아프리카 식민지들과 달리 본국 못지않게 시민 의식이 높고 경제력이 있는데다 포르투갈 본국과 문화적 연대가 있는 마카오인들은 잠재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이민자가 될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지금도 유럽 연합 역내에서 부유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투자이민을 가장 많이 받아주는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어쨌든 이에 따라 반환 이전 마카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43만 명[16]은 반환 이후에도 포르투갈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는데 이는 영국홍콩 주민들을 외면한 것과 비교되는 처사로 평가되고 있다.[17]


마카오 반환식 영상이다. 2년 전 홍콩에서도 유사한 의식을 거행했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일본에서부터 브라질까지 세계 각지를 항해하며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1999년 12월 20일 마지막 동아시아 거점을 반환하면서 이들의 제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중국 반환 이후, 공산당 정부가 인근 도시 주하이인민해방군을 주둔시키고, 포르투갈령 시대에 막장 치안으로 악명높았던 마카오에서 범죄 타파에 나섰고, 현재 치안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물론 카지노로 슬슬 이름을 날리면서 고객 끌어모으려고 마카오 주민들 스스로 치안을 정리한 점도 있지만.(...) 또한 배후의 경제특별구인 광둥 성 주하이 시와 연계해 카지노 일변도에서 조금씩 벗어나 여러 제조업도 가동되고 있다. 시진핑이 반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마카오 카지노들의 숨통을 억죄는 판국에 카지노만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유력산업은 여전히 카지노인데 대상이 영미권 관광객으로 바뀌었다. 2006년 홍콩을 처음 1인당 GDP에서 추월하였으며[18], 현재는 관광객 수조차 동등한 수준까지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스위스를 따돌리고 1인당 소득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흠좀무. 현재 마카오의 1인당 GDP가 한화 1억원 정도니 말 다 했다.

이런 경제적 번영 덕인지 현재 마카오 사람들은 홍콩에 비해서 중국 대륙에 반감이 적은 상황이다. 또 홍콩은 예전 지배국이던 영국이 여전히 손꼽히는 강대국이자 최선진국인데 비해 포르투갈은 경제위기 등 이런 면에서 현격히 딸리기 때문에 마카오 사람들이 미련이 덜한(...) 점도 있다. 사실 마카오가 반환 되었을 당시에는 치안이 그리 좋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중국 본토보다야 훨씬 잘살았기는 했지만 홍콩이나 대만에 비해서 봉급수준이 짜서 잘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었는데[19] 본토로 반환된 이후로 월급 수준이 이전과 비교도 할수없이 뛰게 되면서 공무원이나 은행원같은 직종들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본토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공부안해도 잘 먹고 잘살수있게 되다보니까 그런감도 없지 않다. 집값도 같이 뛰다보니까 집을 구하는것이 문제일뿐.

물론 홍콩에 비해 상대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뿐이지, 여기도 중국 본토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홍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본토인의 원정출산이나 묻지마 부동산 투기 같은 문제가 마카오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고[20], 본토인들의 매너없는 행동이나 과격한 애국심 등으로 적극적으로 호감을 갖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사실 단순히 본토인들의 매너만을 탓할수 없는게 카지노 산업 특성상 돈을 잃고 오는 손님이 많고 마카오는 세계적인 도박도시이다보니까 그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카지노에서 돈을 잃어서 이판사판으로 덤벼드는 도박중독자들이 많이 모일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트러불이 잦을수밖에 없다.

본인들도 같은 취급 받기는 싫은지, 실제로 마카오 현지인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자신은 '마카오인'이라고 정정해준다.(...) 다만 돈을 잔뜩 싸들고 와 카지노에서 실컷 탕진해주니 겉으로는 환영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카오인들의 유튜브 계정에도 깽판치는 대륙인들과 이들을 말리는 경찰 간의 싸움이 자주 나온다.

영상 중에는 중국 관광객이 카지노 판을 뒤엎고 시위도 벌이면 경찰 기동대가 출동해 이들을 진압하는 광경도 보이고, 술 먹고 진상 부리는 대륙인과 보통화로 이 대륙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찰관도 나온다. 포르투갈계든 중국계든 마카오인들은 이 진상 대륙 관광객들에 학을 뗀다. 물론 마카오에서 도박사업을 하고있기 때문이 크기때문에 반은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리커창 총리가 마카오 방문할 때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 또, 2017년에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홍콩 반환 20주년을 앞둔 시점에 마카오를 방문해 일국양제의 원활한 시행을 칭찬하고 일국양제 지속을 언급한 것을 두고 홍콩의 독립파들을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 실제로 중국 정부는 홍콩/마카오를 성공적인 일국양제 시행 지역으로 선전하고 있다.

마카오 원주민으로 포르투갈인과 혼혈된 중국계인 원래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는 포르투갈어광동어를 둘 다 모어로 사용하며 중국 지배를 별로 환영하지 않고 여전히 반환 전 부여된 포르투갈 국적을 갖고 있으며[21] 중남미이베리아 반도 문화권에 자신이 포르투갈과 중국의 혼혈인 독자적인 그룹임을 어필하고 있다. 반대로 마카오인 중 80%를 차지하는 중국 대륙 출신들은 중국 반환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홍콩과 달리 중국 대륙인이 여전히 중국 후커우나 대만 국적을 갖고 있어 세수에 포함도 안 된다.

4. 정치

홍콩과 마찬가지로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이 헌법 역할을 하며,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별도 관세 및 경제구역에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이 인정되고 있고 홍콩과 같이 삼권분립이 되어 있다.

그러나 홍콩처럼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즉 베이징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홍콩과 달리 대륙과의 갈등이 적은 편이라 아직 홍콩만큼 이 부분에서 문제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홍콩과 마찬가지로 자치권과는 별개로 중국과 포르투갈 정부의 합의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는 영구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마카오 특별행정구 별도 관세 지대로 분류하고 당연히 대륙하고는 세법부터 다르다.

마카오의 정치 체계는 포르투갈을 따라해서 유럽식 체계에 더 가깝다. 이웃 홍콩이 영국식인 것과 반대. 그리고 법 체계도 대륙법을 따른다. 이웃 홍콩은 당연히 영미법을 따르며 국적 부여도 방식이 달라 마카오는 출생 당시 부모의 국적이 마카오인이어야 마카오 특별행정구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주 후 2세대에게도 자동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영주권이 나오지 않았다.[22] 그래서 마카오에 거주하는 실제 인구의 90% 이상인 중국 대륙 출신자들의 경우 중국 국적자들이다.

4.1. 입법부

입법부는 입법회(澳門立法會, Assembleia Legislativa de Macau)가 있다. 총 33석 중 14석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12명은 직능 선거구의 제한된 유권자들 사이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7명은 마카오 행정장관에 의해 임명된다. 선거에서는 홍콩에 비해서 친중파 정당들의 지지율이 좀 더 높은 편으로, 2017년 선거에서는 33석 중 29석을 친중파 의원들이, 4석을 민주파 의원들이 차지했으며 직접선거 득표율로 비교하면 친중파 정당들이 68%, 민주파 정당들이 24% 정도를 차지한다.

4.2. 행정부


행정부의 수반인 마카오 행정장관(澳門特別行政區行政長官, Chefe do Executivo da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은 400명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선으로 선출되며 각 직업별로 위원회 위원 수가 할당된 직능선거구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이 위원회 위원들은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지만 유권자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2014년 당시 5448명출처) 행정장관은 무소속이어야 하며 임기는 5년에 1회의 연임이 가능하다. 임명권자는 중국 국무원 총리이지만 임명장 주는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4.3. 사법부

사법에서도 중국 대륙과 달리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마카오 기본법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서 중국 본토의 법률은 특수한 경우[23]를 제외하고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대륙법 체계를 따르며, 최고법원인 종심법원(終審法院, Tribunal de Última Instância)과 2심법원인 중급법원(中級法院, Tribunal de Segunda Instância)과 1심법원인 초급법원(初級法院, Tribunal Judicial de Base)이 있다. 법률 해석도 마카오 종심법원에서 담당하지만, 마카오의 헌법인 마카오 기본법의 해석 등은 중국 본토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 마카오에는 2심인 고등법원(高等法院)까지만 있었고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대법원(Supremo Tribunal de Justiça)에서 최종심을 맡았으나 대법원 상고를 할 수 있는 사건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24] 사실상 고등법원이 최종심이었는데, 반환 이후 마카오에 새로운 대법원을 세운 것이다. 사법부 수장인 종심법원 원장은 행정장관이 지명하고 입법회의 동의를 얻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임명한다. 종심법원 원장은 반드시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국적을 갖지 않는 마카오인이어야 한다.

5. 마카오인

6. 언어

마카오의 공용어중국어(사실상 광동어)와 포르투갈어로 표지판이나 책, 공문서 등에는 두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6.1. 중국어/광동어

중국어는 마카오의 공용어 중 하나로, 표준 방언은 엄밀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광동어가 널리 쓰인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마카오인 중 95%가 일상 언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며, 그 중 대부분(전체 인구 대비 85%)이 광동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한다.

표준중국어(보통화)는 반환 이후 의무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보통화가 모어인 화자는 매우 적고(전체 인구 대비 3.2%) 생활 회화에서 널리 쓰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청년 세대는 교육의 영향으로 보통화로 소통이 가능하다. 광동어와 표준중국어 외 중국어 방언(주로 민남어 등)을 일상 언어로 쓰는 화자는 전체 인구 대비 6% 정도..

문자는 한국, 대만, 홍콩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정체자 한자를 쓰고 있다. 다만 의무교육에서의 표준중국어(보통화) 과목에서 홍콩이 정체자로 교육하는 것과 달리 마카오는 간체자로 교육한다.

6.2. 포르투갈어

10% 정도의 마카오 원주민인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25]들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한국에서 포르투갈어는 브라질식 포르투갈어가 대세지만 마카오의 포르투갈어는 유럽식 포르투갈어에 가깝다. 물론 남미 포어가 유럽 포어에 비해 영향력이 크다보니 젊은 세대는 대세인 남미 포어에도 관심이 높다.

아직 구 식민모국의 언어인 영어가 많이 쓰이는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어의 입지는 그리 높지 않으며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포르투갈어를 일상 언어로 쓰는 사람들은 전체 마카오 인구 대비 0.6%로 영어보다도 적고(...) 의무교육에서 아예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마저 있을 정도이다. 절대다수 주민이 중국 본토 출신이고 중국으로 반환된 오늘날에는 마카오 인구 중 포르투갈 혈통은 2%도 안 되는데다 원주민인 중국계 마카오인들의 숫자도 대륙인들보다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영어 못 쓰면 일자리 질이 낮아지는 등 난감한 경우가 많은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를 못 써도 난감해지는 경우가 적다. 주변에 포르투갈어 쓰는 나라가 없다보니 밖에 나가 쓸 일이 적은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여전히 포르투갈어는 공용어이고 (근대 이전부터 마카오에 거주한)중국계 마카오인이나 포르투갈계 마카오인을 중심으로 아직 많은 마카오인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문서 등은 영어/포르투갈어가 중국어와 함께 병기되니 포르투갈어만 알아도 사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그 외에도 가톨릭을 믿는 중국계 원주민인 마카오인들은 아직도 종교 언어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을 광동 출신 대륙인들과 구별하는 아이덴티티 비슷하게 삼고 있다. 포르투갈이 허접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마카오인의 인구가 대륙 이주민에 비해 터무니없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중일전쟁 등 중국의 혼란만 없었다면 마카오의 인구는 20~30만 명 선이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어 사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근대 이전부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마카오 반도에서는 아직도 포르투갈어를 많이 쓴다. 미국 및 중국 본토의 자본으로 개발된 코타이-타이파 지구에서는 포르투갈어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며 되려 표준중국어영어가 잘 통한다.

아시아에서 굉장히 드문 포르투갈어 사용 지역인 만큼 중국은 마카오를 통해 멀리 떨어진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와의 경제 협력을 진전하고자 한다. 현재에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영향으로 마카오는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포르투갈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정작 마카오 안에서 포르투갈어 사용자가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소수이지만 마카오에서 변형된 포르투갈어인 마카오어도 사용된다. 크리올어의 일종으로서 그들 말로는 Patuá라고 하는데 불어로 사투리를 의미하는 Patois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5,000명의 구사자 중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50명에 불과해서 소멸위기에 처해 있고 마카오에선 마카오어를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

6.3. 기타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의 범용성이 영어에 비해 떨어지다보니 포르투갈어보다 차라리 영어를 배우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 미국 자본이 코타이를 개발한 등의 이유로 이웃 홍콩과는 달리 미국식 영어를 주로 공부한다. 이름도 영문식 이름이 대부분이다. 특히 2000년을 기점으로 매립지인 코타이에 미국라스베가스, 뉴저지 카지노 자본들과 중국 회사들, 홍콩대만의 회사들이 합작으로 투자하여 대규모 리조트를 만들며 현재 타이파 섬과 코타이는 영어가 잘 통한다. 미국의 라스베가스 자본이 중국 자본과 함께 들어온 코타이와 타이파 섬의 경우 미국식 영어가 통용되고 표기 등이 미국식을 따른다. 샌즈 등의 임직원들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영어를 잘 한다. 아예 영어를 일상언어로 쓰는 사람들(전체 인구 대비 1.5%)이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보다도 많을 정도.

영어가 아직까지 안 통하는 쪽은 택시 및 버스, 그리고 마카오 반도로 이쪽은 표준중국어도 잘 안 먹힌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대답은 광동어로 하고, 몇몇 표준중국어 단어는 아예 못 알아 먹는다.

과거에는 영어가 잘 안통해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광동어/포르투갈어를 모르면 아예 여행이 안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미국 자본 유치와 마카오 특별행정구 및 중국 중앙 정부의 영어/보통화 공용으로 현재는 마카오 반도 일부만 빼면 영어 통용이 원활한 편이다. 특히 젊은 층은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쓴다. 바로 앞이 영어가 공용어인 홍콩이고 미국 문화가 마카오에서도 인기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려는 젊은 층이 많아 비영어권 중 가장 영어를 잘 하게 되었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선 광동어나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영어만 써도 뭐 찾아가거나 할 때 문제없다.

7. 행정구역과 관광지


면적은 30.5㎢이다. 서울 노원구 크기보다 좀 작다. 너무나도 작은 면적 때문인지 타이파와 콜로안 사이의 바다를 막아 새 땅을 조성하는 등, 간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마카오의 인구 밀도는 km2당 19,500명(2014년 Macao Yearbook 기준)이나, 실질적으로 마카오 인구의 99%가 거주하는 반도의 인구만을 계산하면 km2당 54,226명 정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Santo António지역은 평방 킬로미터당 118,000명으로, 까우룽 반도와 함께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 이다. 이를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마카오에서 방 3칸짜리 노후 아파트 하나를 구매하려면 한화 2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요즘은 마카오 반도에서 괜찮은 아파트는 35-40억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파일:external/www.hotels-in-macau.com/macau-cotai-districts-map.jpg

마카오는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마카오 반도, 타이파, 코타이, 콜로안이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의 처럼 마카오는 당구(堂區)라는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그러나 하나의 '법인' 격인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의 구와는 달리 마카오의 당구는 법인이 아닌 동네 구획 이름일 뿐이며, 그래서 이름은 구지만 구청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행정은 마카오 특별행정구 정부가 전담한다. 이 당구는 Freguesia라고 하는데 영어의 parish(교구)와 같은 뜻으로 본래 가톨릭 성당 교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반환 이후 개발된 코타이는 어느 당구에도 속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어 중국어 지역 면적(km2) 인구 인구밀도(명/km2)
노사세뇨라드파티마
Nossa Senhora de Fátima
花地瑪(堂區) 마카오 반도 3.2 244,000 74,218
산토 안토니우
Santo António
聖安多尼(堂區) 마카오 반도 1.1 136,000 118,000
상 라자루
São Lázaro
望德(堂區) 마카오 반도 0.6 33,100 55,166

大(堂區) 마카오 반도 3.4 49,200 15,352
상 로렌수
São Lourenço
風順(堂區) 마카오 반도 1.0 53,700 51,700
노사세뇨라두카르무
Nossa Senhora do Carmo
嘉模(堂區) 타이파 7.6 101,200 12,131
상프란시스쿠샤비에르
São Francisco Xavier
聖方濟各(堂區) 콜로안 7.6 26,700 1,221
코타이
Cotai
路氹(填海區) 코타이 5.8 [26]

포르투갈령 시절과 2001년 이전에는 저 작은 마카오도 마카오 시(Concelho de Macau, 澳門市)와 다스 일랴스 시(Concelho das Ilhas, 海島市)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마카오 반도가 마카오 시, 나머지가 다스 일랴스 시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그냥 다 통합해 마카오 특별행정구 정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7.1. 마카오 반도(Península de Macau, 澳門半島)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중국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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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 한글 마카오 역사 지구
영어 Historic Centre of Macao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Macao
국가·위치 중국 마카오 특별행정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5년
등재기준 (ii)[27], (iii)[28], (iv)[29], (vi)[30]
지정번호 1100

마카오를 구성하는 지역 중 하나. 위 지도에서 가장 위쪽 부분으로 중국 본토 주하이와 연결된 반도 지형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한 이래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마카오의 중심지였다. 사실 마카오 특별행정구 안에 타이파, 코타이, 콜로안 같은 다른 지역들이 있지만 이 지역들은 아주 최근에 개발된 곳으로, 원래 마카오라고 하면 당연히 마카오 반도를 칭하는 것이었다.

중국과 이베리아 반도의 분위기가 혼재하여, 혹자는 중국과 포르투갈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평가도 한다.

평방 킬로미터당 54,226명 정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산토 안토니우(Santo António) 지역은 평방 킬로미터당 118,000명이 거주한다. 이는 세계에서 (까우룽 반도와 함께) 가장 높은 인구밀도 수준으로서, 마카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경을 품고 본토에서 정착해 내려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현재는 코타이 등의 개발로 분산이 이루어져서 예전 같진 않다.

아래에 설명할 코타이 스트립의 라스베가스 자본 신흥 카지노 단지 때문에 관광객이 그 쪽으로 약간 분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마카오에 오는 관광객은 당연히 들르는 지역이며 미국 라스베가스계 자본인 MGM, Wynn 위 2 개 카지노는 초 고액 베팅이 주로 이루어지는 슈퍼리치를 위한 카지노로서, 코타이스트립이 시설 대비 저렴한 가격, 수천여 개의 객실로 일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제곱미터당 카지노시설 매출은 여전히 반도 지역이 높다.

그리고 문화재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투갈령 마카오 식민지 시대의 남유럽풍 건축물들이 거의 다 여기에 있고, 마카오 타워 등의 관광지가 있다. 구시가지 하면 일반적으로 세나두 광장이 유명하지만, 사실 거기 말고도 식민시대의 유럽풍 건축은 마카오 반도 각지에 많은데 유독 세나두 광장에 관광객이 미친듯이 많이 몰리는 편으로, 다른 곳들은 상당히 조용하게 구경할 수 있다.

반도 동쪽에 홍콩 등으로 가는 배(터보젯, 코타이젯)가 출도착하는 페리 터미널이 있다. 공항은 여기가 아니라 타이파 섬 쪽에 있다.

해안에 자꾸 토사가 매립되어 이쪽으로는 조만간 배가 드나드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위치가 주장 강 삼각주라 퇴적이 잘 된다.

7.2. 타이파(Taipa, 氹仔)

원래 이었지만 마카오 반도와 3개의 크고 아름다운 교량으로 연결됐다. 아래 설명할 콜로안과도 별개의 섬이었지만 가운데 땅 코타이가 간척되면서 붙어버렸다.

원래는 작은 어촌 정도로, 타이파 빌리지라고 부르는 작은 포르투갈풍 마을이 있다. 섬 동쪽에 마카오 국제공항이 있으며, 홍콩에서 배를 타고 마카오로 오면 주로 마카오 반도 쪽의 페리 터미널로 가는데 타이파에도 공항 옆에 페리 터미널이 있어서 홍콩으로 갈 수 있다. 배가 뜨는 스케줄은 마카오 반도 쪽보다 조금 뜸한 편. 그래도 2017년 6월 새로운 터미널이 개장한 덕에 출입국심사가 매우 한산해졌다.

7.3. 코타이(Cotai, 路氹)

파일:external/mice.net.au/Cotai-Strip-Resorts-Macao-header-850x250.jpg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 바다를 간척해서 만든 일종의 신도시. 이름 유래는 중국어나 포르투갈어나 타이파와 콜로안에서 한 자씩 따다 붙인 명칭이다(...).

널찍한 땅에 세계 최대의 카지노호텔 베네시안을 비롯한 초대형 카지노 단지들이 밀집해 있다. 여기의 카지노들은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표방하고 있어서, 카지노 자체의 매출이 상대적으로 낮고, 객실이나 엔터테이먼트 관련 매출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볼거리로만 생각해도 매우 화려하다. 2017년 현재 3조 원 가까운 건설비가 들어간 스튜디오 시티가 오픈했고, 축소한 에펠탑이 있는 파리지앵, 마지막으로 4조원이 넘는 건설비가 들어간 윈 팰리스 호텔이 오픈하였고, 지금도 새로운 호텔들이 건설 중이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갈 예정이다.

온 동네가 카지노와 호텔이라 거주자는 없다시피하다.

7.4. 콜로안(Coloane, 路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u_coloane_village_1.jpg

마카오 최남단에 있는 가장 한적한 시골 지역. 여기도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대의 아기자기한 남유럽풍 마을이 있어서 찾는 관광객이 꽤 있다. 콜로안 해변이라는 작은 해변도 있고, [31] 바다를 내려다보는 골프코스, 카지노가 없는 리조트와 이런저런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위 사진은 후술된 영화 도둑들에도 등장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인데, 특이하게도 매주 한국어 미사가 열린다. 미사가 열리는 이유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여기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에서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기사

8. 교통

우측통행인 중국과 달리 지금도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20세기 초반까지 좌측통행을 했는데, 포르투갈 본토는 이후 우측통행으로 전환했지만 멀리 떨어진 마카오는 통행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이웃 홍콩과 맞추기 위해서였을 듯. 그렇지 않았다면 완충지도 없고 면적도 조그만해서 포르투갈을 따라 우측 통행을 했을 것이다.

8.1. 대외 교통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o_airport_terminal.jpg
해상에 지어진 마카오 국제공항은 마카오의 관문격인 공항. 한국에서는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그리고 대구국제공항에서 마카오 공항으로의 직항 항공편이 있다.

홍콩을 안 가고 마카오만 갈 때, 훨씬 더 노선이 많은 홍콩 국제공항으로 일단 날아가서 홍콩 입국심사도 안 받고 공항 면세구역에서 바로 마카오로 배 타고 오가는 것도 가능하다. 공항 바로 옆에 페리 터미널이 있다. 반대로 홍콩 갈 사람이 마카오로 가서 배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가능하다.

주하이 공항을 통해서 가는 방법도 있고, 주하이 공항에서 마카오로 갈려면 좀 돌아서 가야되지만 거리 자체는 그리 멀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서 주하이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것 보다, 한국에서 마카오 공항까지 직행하는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잘 이용되지 않은 편이고 한국인들은 중국 교민 정도가 아니라면 거의 해당없다고 봐도 된다. 중국은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고 주하이까지 상하이 등에서 중국 국내선을 타야 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un_Tak_Centre_Overview_201105.jpg
공항만큼 더 많이 외국인을 실어나르는 것이 홍콩과 이어지는 페리 터미널이다. 부산광역시일본 대마도, 후쿠오카를 잇는 것과 비슷한 쾌속선이다. 홍콩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마카오를 당일치기한다.

마카오의 페리 터미널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마카오 반도 쪽에 있는 마카오 페리 터미널이고 다른 하나는 타이파 페리 터미널로 마카오 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다. 마카오 페리 터미널에서는 홍콩 섬의 셩완 슌탁 센터(Shun Tak Centre), 까우룽 반도 침사추이나 신계의 투엔문(Tuen Mun), 홍콩 국제공항, 선전으로 가는 페리가 있고, 타이파 페리 터미널에서는 홍콩 국제공항, 홍콩 섬 셩완 슌탁 센터, 까우룽 반도 침사추이로 가는 페리 노선이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91105-TurboJET_Urzela.jpg
홍콩 섬 셩완의 슌탁 센터와 마카오 외항을 잇는 터보젯으로 홍콩 향토업체인 슌탁 투자 회사가 운영한다.

홍콩과 마카오, 주하이를 잇는 30km 정도의 교량(일부는 해저터널)인 강주아오 대교가 완공되어 서로를 자동차로도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서로를 오가는 시외버스도 있다. 그러나 일반 여객의 입장에서는 페리의 이점이 적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페리는 잘 다닌다.

돈을 더 낸다면 홍콩에서 마카오로 가는 헬리콥터를 탈 수도 있다. 15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헬리콥터는 매우 비싼데, 한화 55만원 정도. 헬리콥터 역시 슌탁 센터와 마카오 페리 터미널을 오간다.

마카오는 중국 대륙과도 육상으로 이어져 있으나 경계 검문소가 여럿 있는 홍콩과 달리 마카오의 경우 주하이와 이어져 있는 중국 측의 궁베이 검문소(拱北口岸)와 마카오 측의 포르타스 두 세르쿠(Portas do Cerco, 關閘[32])만이 존재한다. 물론 서로를 드나들려면 서로의 비자(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여행증)가 있어야 한다. 주하이와 마카오 모두에 각각 버스 터미널이 있어 두 도시의 많은 시내버스가 이 곳을 종점으로 한다. 마카오는 철도가 없으나 주하이역(珠海站)이 이 경계 검문소 근처에 있으므로 마카오 사람들이 철도를 통해 중국 내륙으로 나가고자 하는 경우 경계를 통과해 주하이역을 이용한다. 이 주하이역에는 중국철로고속 열차도 들어와서 광저우로 갈 수도 있고, 일반열차라면 지금도 베이징행 혹은 상하이행 직통 열차가 있다.

8.2. 시내 교통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u-Taxi.jpg
땅이 작아서 택시가 유용하다. 다만 기사가 엄청나게 불친절한 경우 답이 없다. 영어도 거의 안 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홍콩처럼 마카오 택시 기사들도 중국 본토인으로 광동 성 주하이와 포샨, 레이저우 반도 출신 이주민들이다. 실제로 홀리데이 인 코타이 센트럴 입구에서 택시기사가 어떤 외국인[33]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모습이 목격되었을 정도. 분명, 다른 택시와 다를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바가지 요금의 경우가 심각한데 마카오 공항에서 코타이 지역의 각 호텔로 가는 거리는 근거리임에도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잦다. 마카오 택시는 캐리어마다 추가요금이 붙긴 하지만 그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요금을 부과할 경우 문제를 제기해서 낮추도록 하자.[34] 주로 공항에서 출발하는 택시가 그런 경우가 많고 호텔이나 기타 지역에서 타는 경우는 좀 덜한 편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u_bus_50814.jpg
시내버스는 新福利라고 쓰여있으며 한 회사가 모든 노선을 운영하는데, 포르투갈어중국어를 모르면 불편하다. 외국인으로서는 버스노선을 잘 알기도 힘든 점도 불편한데, 문제점을 따져보면 노선마다 버스 요금이 다르고 정류장 이름들도 주요 시설이 아니라 포르투갈어 도로명이라서 잘 와닿지 않는다. 가축수송이 심각하며 기사에게 영어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몇몇 문제점만 빼면 시내버스도 의외로 유용하다. 특히 세나두 광장에서 아마묘 갈 때! 마카오에서도 나름의 녹색의 버스 카드가 있기는 한데, 어떤 위키러가 마카오 여행당시, 페리 터미널이고 시내 편의점에서고 간에 카드 파는 곳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사기가 쉽지 않다. [35]홍콩의 옥토퍼스 카드는 셩완의 페리터미널이든 심지어 홍콩 국제공항에서도 사기가 쉬운 것에 비하면 불편하게 되어 있다. 그 외에도, 구글맵으로 행선지 검색시, 구마모토/나가사키의 경우 트램 위주, 홍콩 섬의 경우 MTR 위주로 해서 경로를 안내하는 것에 비해, 마카오에 대해서는 지하철이 없어서 버스로 자세히 보여주는 편이다. 그 놈의 버스카드 사기가 쉽지 않고, 버스기사 또한 외국인이다 싶으면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서 문제라서... 그러니까 자신이 탈 버스가 다가올 경우 손을 뻗어 타고자 할 의사를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버스 정차시 입구에서 머뭇거리면 문도 안 열어주고 그냥 출발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시내버스는 위와 같이 문제점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카지노 셔틀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무료이며, 카지노가 마카오 곳곳에 있는데다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카지노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유용하게 타고 다닐 수 있다. 특히 리스보아 카지노는 세나두 광장 등 역사지구에서 가까워서 유용하다. 또한 카지노가 모여있는 타이파 쪽으로 갈 거라면 역시 페리에서 내려서 터미널 앞에 대기중인 카지노 셔틀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다. 대형 카지노 셔틀버스의 경우 와이파이도 무료로 개방되어있기 때문에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 사용하기에도 좋다.

아직까지 도시철도가 없어서 버스/택시 밖에 답이 없고, 어떨 땐 차라리 렌트카가 나을 정도. 홍콩보다 대중교통이 열악해 의외로 돌아다니기 빡세다. 택시 수도 홍콩과 달리 터무니없이 적고 유커들이 몰리는 주말이면 택시 잡기조차 어렵다! 말 그대로 택시 스탠드에 시장바닥을 만든다.

파일:attachment/마카오/noseond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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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반기 개통을 목표로 마카오 LRT 경전철노선을 건설하고 있다. 11m짜리의 차량 2량이 연결되어 다니기 때문에 수송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 게다가 2019년에 1차 개통하는 구간은 전부 타이파섬 지역이다. 2019년에 개통하더라도 공항에서 마카오반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택시나 버스를 활용해야 한다.

연장 구간이 개통하기 전인 2023년까지는 홍콩MTR의 자회사인 MTR마카오에서 운영을 맡는다. 이후 연장 구상 구간은 위의 노선도 참고.

원래 마카오는 인천송도국제도시 정도의 조그만 면적이라 굳이 도시철도를 놓지 않았으나 반환 후 치안이 안정되어 관광객이 늘고 타이파 섬 등으로 확장하면서 최초로 도시철도가 지어지는 것이다. 노선이 다소 돌아가는 편이지만 워낙 면적이 조그만한 섬이라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파 섬에서 국경 관문까지는 쭉 달리면 15분에서 20분이다. 전술하다시피 송도국제도시 정도의 크기이다.

9. 경제

중화권, 아시아에서 1인당 국민소득 1위 지역이다. 이웃 홍콩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지만 경제력도 높고 사회안전망도 훌륭한 선진 지역이다. 시민의식 또한 높은 편이다. 포르투갈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포르투갈인들이 되려 마카오에 일하러 건너오고 있다. 복지도 좋아서 소액이나마 정부가 시민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카지노에서 뜯는 세금 수입이 많아서 세금을 돌려주는 셈이다.

9.1. 도박산업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 이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동양의 모나코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마카오는 카지노로 유명하다. 아니, 이미 동양의 XX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6jyJ9rbFmE LET'S GO 마카오.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 역사는 포르투갈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콩이 조차되면서 마카오는 중국 교역의 중심지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서 도박을 허용했던것이 시초로 이때부터 중국 남부에서 도박꾼들이 몰려들었다. 멀리 떨어진 식민지를 관리하기 힘들어하던 포르투갈이 아예 1975년 앙골라, 모잠비크 등 옛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줄줄이 독립할 때 마카오를 특수 영토로 지정하고 사실상 거의 완전한 자치를 허용했는데 이 덕택에 더더욱 도박산업의 육성이 절실했다.

중국 대륙대만 내에서 자국민의 카지노 출입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이웃 홍콩도 영국 영향으로 카지노가 불법이라[36] 카지노가 없지만, 대륙인들이나 홍콩인, 대만인들이 마카오에서 카지노에 출입하는 것은 합법이다. 그래서 대륙인이나 홍콩인들이 마카오로 가서 카지노 출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카지노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1년에 수천만에 달하는 수준이니 당연히 도박중독으로 재산을 날리고 거지꼴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으며 가정이 파탄나거나 파산당해서 은신을 하거나 길거리를 전전거린다거나 자살을 하기까지도 하고, 시시때때로 카지노에서 도박하다 돈을 잃은 관광객들이 판을 뒤엎는 등 난동을 피운다거나 하기도 한다.

당연히 중국과 홍콩, 대만 내에서도 도박하러 마카오로 가는 것이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어서 본토인이 카지노에 출입하는 것이 합법이라고 해도 마카오 바로 위에 위치한 광동 성에서 마카오에 연고나 직장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제3국행 왕복 항공권이 없는 한 두 달에 한 번씩만 마카오 출입을 허용하며 당원들과 기업인들이 공금까지 횡령하면서 도박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다보니 마카오를 출입하려면 사전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강원랜드 주변 주민들에게 한달에 한 번씩만 출입허가를 내주는것과 비슷하다. 물론 홍콩 방문에도 방문증을 받아야 되지만 홍콩방문의 경우에는 자유사상의 유입을 통제하기 위해서인 측면이 강한 반면에 마카오 출입통제는 말 그대로 카지노 출입통제 조치라서 홍콩 출입통제와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

물론 마카오로 가는 수요가 줄었다고 해도 돈 있는 사람은 싱가포르미국라스베가스, 모나코, 한국제주도 그리고 정말 드물게 강원랜드도. 아무래도 국내 카지노 중 시설이 제일 크기 때문에... 등으로 가서 도박을 하고 온다는건 함정(...) 그렇지만 이런 규제를 마카오측에서 무시는 할 수 없는 것이 중국 측에서 규제할 때마다 카지노 업체의 매출액이 출렁거리기 때문에 마카오 경제가 휘청거리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고 시진핑 정부 들어서 고위급 당원들이나 기업인들의 마카오 원정이 크게 줄면서 2년가량 세수가 크게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중국 당국에서도 마카오에 카지노 관련으로 이런저런 압력을 가한다지만 현실적으로 마카오를 거지꼴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카지노를 아예 금지시키자는 수준은 아니기는 하다.

2000년 초반까지는 스탠리 호[37]라는 홍콩 출신 재벌이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을 꽉 쥐고 있었다. 1921년생으로 한자 이름은 하홍신(何鴻燊), 광동어로는 호훙산(Ho Hung Sun), 표준중국어로는 허훙선(Hé Hóngshēn)으로 읽는다. 증조할아버지가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백인으로 혼혈인데, 1960년대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마카오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으로 세계 100대 부자 순위에도 여유롭게 들 것으로 예상되나 추정재산이 불명이라(...)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며, 마카오 세금의 70%를 냈다고 한다. 포르투갈 지배 하에서는 스탠리 호가 내는 세금과 카지노 간접세로 충분해서 마카오 시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을 정도. 다만 이렇다 보니 이 도시 안에서는 스탠리 호의 위상이 절대적이라 과거엔 비판도 함부로 못했다고 한다. 과장 좀 보태서 스탠리 호의 사설도시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또한 마카오의 백화점 중에서 스탠리 호가 운영하는 곳은 해마다 스탠리 호 아내의 생일날에 모든 품목을 50% 세일한다고 한다. 근데 와이프만 4명째[38]

그러나 2001~2002년에 걸쳐 카지노 허가에 대한 규제가 풀려 독점이 깨진 후 라스베가스 쪽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적인 도박산업 자본이 몰려왔고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마카오에서 거액을 탕진할수있는 여행자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성장을 거듭해 2006년에는 규모(도박 총액) 면에서 라스베가스를 제쳤다. 이후 2010년대 와선 격차가 넘사벽급으로 더 벌어져 2위 라스베가스는 1위는 엄두도 못내고 3위 싱가포르와 경쟁해야 될 판국.(...)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카지노[39]도 마카오에 있으며, 2008년 금융 위기에 타격을 입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리수를 상회한다고 한다. 중국 당국의 카지노 규제로 성장률이 떨어진 현재에도 오히려 시민들에게 (소액이지만) 돈을 나눠주고 있다.

이런 경제적 번영 덕인지, 현재 전세계를 괴롭히는 청년실업 문제는 적은 편이다. 물론 마카오 자체의 인구가 적기 때문인 점도 있다.

양적 규모에서 홍콩과 마카오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오로지 카지노 산업의 성공으로 마카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는 1999년 중국에 반환된 뒤로도 여전하고, 오히려 중국 자본 및 중국인 관광객의 유입으로 더 흥성하고 있다. 다만 홍콩의 배후 중국도시인 선전(심천)이 급속히 발전한 것에 비하면 마카오의 배후 도시인 주하이의 성장 규모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주하이가 인구 150만이라지만 인구 150만명 정도면 중국에서 내몽골이나 위구르, 티베트같이 인구가 적은 지역이 아닌이상 중도시에 속한다. 홍콩과 마카오 인구 규모부터가 10배 이상 차이나기도 하고.

2016년엔 호텔업, 금융업을 육성하는 등 카지노 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산업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마카오에 가면 보통 거리에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 카지노에 박혀 있거나, 자고 있거나, 출근해 있거나 셋 중 하나라 출퇴근/등하교 시간대를 제외하면 한산하기 그지없다.

9.2. 기타

그래픽 카드 제조사로 유명한 ZOTAC의 본사가 마카오에 있다.

1970년대 초부터 북한의 국제 금융거래 창구 역할을 해 온 소규모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가 마카오에 있다. 북한이 BDA에 수십 개의 계좌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지자,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 조치의 하나로 2005년 9월에 이 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해 북한 자금의 거래를 동결했다. 당시 BDA의 북한 계좌에 들어가 있던 돈은 2,500만 달러였다. 이에 돈줄이 막힌 북한은 2007년 6월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우회하여 자금을 북한 계좌로 이체했다.

불법적인 쪽으론 도박으로 제일 유명하지만 마카오에 또 유명한 것이 매춘산업이다.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 잔뜩 모여서 이런 조그만 땅덩어리에 상상도 못 할 만큼 빌딩을 차지하는 거대한 사우나가 곳곳에 있는데 가히 성매매 테마파크를 방불케하는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인들에게 한국 윤락녀가 인기가 있어 한국인도 엄청나게 많이 진출해있어서 2015년에 대대적으로 검거하기도 했다.

10. 관광

11. 교육

초/중등 교육은 이웃 홍콩과 유사하지만 사실 마카오에 있는 대학교는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기 어렵다. 마카오는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대학진학률 대략 10%정도인데, 평범한 카지노 딜러로 취직해도 초봉 4000만원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10년차쯤 되면 1억 가까이 된다. 일단 마카오의 카지노 딜러는 마카오인만 될 수 있다보니...

그나마 대학을 가도 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건 호텔경영학과나 기계공학과다. 마카오에서 호텔경영학과야 당연히 인기 있을 것 같지만 기계공학과가 의외인데 이유는 카지노 안의 수많은 오락 기구들을 수리, 관리하기 위한 기술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카오에서 제일 인기 없는 전공이 의예과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얻는게 적기 때문이다. 마카오가 워낙 소득이 높다보니 태국 등 인접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사람들이 의대 진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교육열도 낮고 이 때문에 교육 수준도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40] 여러 이유로 마카오 내에 정규대학이 여러곳[41]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려는 마카오의 우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홍콩이나 중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연일 잭팟이 터지니 공부할 맛이 안나는듯

마카오 당국도 이 사실에 대해 컴플렉스가 매우 심했다. 결국 마카오는 2009년 중국의 허가를 받아 20억 달러(!)를 투자해 마카오에 근접한 주하이 시의 땅을 사들여 1.09㎢[42] 의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마카오 국립대학인 마카오대학의 신 캠퍼스를 짓는데 이른다[43]. 마카오가 작심하고 투자한 만큼, 캠퍼스의 기상은 실로 엄청나다. 부지 경계에 인공 수로를 둘러쳐 완벽한 섬으로 만들어 버려 국경을 대체한 데 이어[44], 부지 코앞에 주하이와 마카오를 잇는 국경 검문소와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마카오 시내로 연결되는 별도의 해저터널을 파서 출입국 및 세관 문제에 따를 불편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신규 캠퍼스맵

신 캠퍼스는 2014년에 문을 열었고, 마카오 측은 카지노를 통해 창출되는 엄청난 돈을 마카오대학에 투자해 질 좋은 교육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2015/2016년 입시가 막 치뤄진 현재의 결과는 암울하다. 마카오대학 측에서 목표하는 대학 내 국제학생 비율은 35%지만 홍콩, 대만 등 중화권을 제외하면 국제 학생 비율이 0에 가까우며 아직까지도 마카오의 대부분 수험생들은 차라리 가까운 홍콩의 레벨 낮은 대학교를 가거나 돈만 있으면 영미권으로 가버린다. 본격 한화 2조원이 날아가는 순간 그래도 캠퍼스는 역대급인지라 예쁜 캠퍼스 속에서 휴양을 즐기고 싶어하는(...) 중국 본토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다만 최근에는 꾸준한 투자와 지원으로 대외적인 인식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일단 저렴한 학비를 기준으로 최고의 시설 교수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점과 국제화를 위해 CPLP 에 속해 있는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면서 제한적으로 국제화된 환경(포어권)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 중화권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학교로 알려지면서 입결이 상승하였다. 아직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중화권과 포어권 학생들로 구성된 점은 결점이지만, 세계 대학 순위(Times Higher Education)에서는 400위대에서 300위대로 꾸준히 상승 중이기도 하며, 이는 2014년 신 캠퍼스로 이전 후 현재 2019년까지 5년의 기간치고는 도드라지는 성과이다.

12. 군대와 경찰

12.1. 군대

마카오 시민들은 병역 의무가 없다. 국방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맡는다.

홍콩처럼 마카오를 경비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주마카오부대가 있으며, 육해공 통합부대이다. 사령관(중국 명칭 사령원)은 육군 소장이 맡는다. 마카오에도 타이파에 주둔지가 있고 마카오 반도에 따로 사령부도 있어 일부 병력이 주둔하기는 하나 대부분의 병력은 마카오와 경계를 맞댄 주하이에 주둔하며 훈련도 인근에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해방군 해군이 마카오에 소규모 분함대를 주둔시키고 있고 육상경비는 육전대, 즉 해병대가 맡는다.

홍콩처럼 마카오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출동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마카오에 태풍 하토가 들이닥쳐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반환 이후 최초로 마카오에 인민해방군이 출동하여 재해 복구에 기여했다.

12.2.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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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보안부대휘하의 치안경찰국[45]과 사법경찰국[46]이 맡는다. 이름과는 다르게 마카오 특별행정구 휘하의 주방위군 그런건 아니고(...), 그냥 공안 관련 기관을 한 군데 모아놓은 기관이다. 휘하에 보안부대 사무국, 경찰총국, 치안경찰국, 사법경찰국, 소방국, 징교관리국, 해관을 둔다. 항목 참조.

13. 구급 및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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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보안부대 휘하의 마카오 소방국이 담당하며, 구급 업무의 경우 마카오 적십자가 일부 분담한다. 마카오소방관경찰공무원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14. 스포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는 가맹이 돼 있지 않지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가맹이 돼 있다. 그래서 올림픽에는 별도의 국가 대표팀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지만(과거에는 포르투갈 대표팀 소속, 현재는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 아니면 드물게 홍콩 대표팀으로 가는 경우도 있음) 패럴림픽에서는 대표팀을 내보낸다. IOC 회원은 아니지만 유관 기관인 IPC와의 관계 때문에 IOC 국가코드는 할당돼 있다.[47] 1987년부터 계속 가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96년에 올림픽 헌장이 개정되어 속령이 신규 가입할 수는 없어서 마카오 올림픽 대표팀이 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웃 홍콩의 경우 속령의 가입이 허락됐던 시절부터 올림픽 대표팀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아시안 게임에는 대표팀을 내보낸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종목은 우슈.

여기도 홍콩처럼 따로 축구리그가 있고 피파에 따로 가입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영향으로 60년대부터 안정적인 2부리그 체제를 갖춘 홍콩과 달리 마카오 리그는 열악했다고 한다. 죄다 카지노만 하니까 100만도 안 되는 인구라 어쩔 수가 없을 듯.

피파에 가입하여 월드컵 예선도 따로 나가지만 당연히 동네북. 당연히 홍콩보다 피파 랭킹도 더 낮다. 국대 축구는 마카오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14.1. 마카오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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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기아 서킷(Guia circuit)에서 열리는 레이싱 이벤트이다. 기아 서킷은 시가지 트랙으로, 1954년부터 레이스가 시작되었으며, 1961년부터는 오픈휠 카테고리 레이스도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점점 그 규모를 불려 오면서 현재는 FIA F3 월드컵[48]을 비롯해 FIA GT 월드컵, 마카오 모터사이클[49] 그랑프리 등이 열린다. 최근에는 마카오 기아 레이스 2.0T라는 시리즈도 함께 열리고 있다.
초반부터 속력을 줄이지 못한 차량들이 단체로 충돌하여 아비규환이 되었다. F1급도 아니고 F3급이. 애초 이 곳은 F3를 위해 있는 서킷이지만 저 코너의 특성과 어린 드라이버들의 실수들이 얽혀 항상 저런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영상은 1분 40초부터 보면 되고, 프로레이서들이 포진한 GT3도 예외는 없다. 한번 실수하면 바로 사고로 직행하는데, 비슷한 사고가 GT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곳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서킷으로, 난이도가 어렵기로 유명한 모나코 서킷은 물론 최근에는 바쿠 시티 서킷같은 막장 서킷이 등장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이런 녀석들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헬 오브 헬 서킷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구불구불하면서 노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마카오 도시 구역을 그대로 서킷에 옮겼기 때문. 특히 위 트랙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멜코 헤어핀의 경우 폭이 7m 밖에 되지 않는다. 즉, 모나코에 있는 페어몬트 헤어핀보다 더 타이트하고 좁아서 속도를 정말 많이 줄여야 한다. 전체 길이도 6km로 꽤 길어서 한번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로 사고 직행이다. 그래서 매년 대회를 보면 사고가 항상 터진다.
감이 잘 안온다 싶으면 이 서킷이 들어가 있는 레이싱 게임이 몇개 있는데 한번 달려보면 된다. 달려보면 "뭐 이런 서킷이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서킷 타입이 시가지라 노면의 그립이 부족한 것은 물론, 애초에 아스팔트가 일반 공도의 그것이기 때문에 도로 가장자리로 갈 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거지같은 역뱅크 코너가 수두룩하다. 좁은 노폭때문에 추월시도는 굉장히 적고 사고때문에 트랙이 막혀서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도 흔하다. 모험수를 걸기보다 사고 안내고 집중력 있게 잘 달리는 드라이버가 이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드라이빙 스킬이 없으면 도전할 수조차 없는 곳이다.
샤를 르클레르의 원랩 온보드. 턴3부터 지옥이 펼쳐진다.

F3 이벤트가 열리기 시작한 후로 F1의 등용문 역할[50]을 하여, 예전엔 F1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위 포뮬러 시트 확보가 극도로 불황인 최근에는 그리 대단한 대접은 못 받는 듯 하다. 다만 여전히 F1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드라이버들은 마카오에서도 특출난 모습을 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위에서 시작해 마지막 랩에서야 결정된 댄 틱텀[51] 의 드라마틱한 레이스
2017 FIA GT World Cup 예선 당시의 크래시. 이 사고로 인해 20명 중 12명이 사고를 당했고, 이중 스페인의 Daniel Juncadella를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제대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크래쉬 장면이 있으므로 시청에 주의바랍니다.

그러나 2018년 마카오 그랑프리에서는 역대급으로 심각한 크래쉬가 나와버렸다. 네덜란드의 반 아메르스푀르트 레이싱(Van Amersfoort Racing)의 유일한 여성 드라이버인 소피아 플뢰르쉬(Sophia Floersch)의 경주차가 거의 날아가는 상태로 벽에 들이박혔기 때문. 이전에는 목격되지 못했던 사고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사망했을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살아있었고 척추 쪽 골절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15. 대외관계

홍콩의 대외 관계에 대한 언급과 같이, 갈등을 중재해 주는 중재지 역할을 널리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스페인 사이의 갈등[52], 한반도 내부에 경색되어 있는 남북 관계라던가, 양안 갈등(중국-타이완, 중국-홍콩 등)의 중재지를 주로 쓰이지만 홍콩 내부에서 중국 본토와의 갈등을 중재해 주는 곳으로 봐야 한다.

15.1. 중국 본토

이웃 홍콩과 달리 중국 본토 중앙 정부와는 마찰과 갈등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현지 시민들은 중국 본토에서 놀러온 중국인 관광객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단지 돈을 팍 쓰니까 좋아해주는 척 할 뿐이다.

15.2. 홍콩

오랫동안 중국 본토와의 교류가 막혀 있었고 반면 작은 땅과 많은 인구를 지닌 홍콩과의 교류가 많았다. 그러나 홍콩에 비해 마카오의 인구가 훨씬 적고, 본국 뒷배경에서도 마카오가 훨씬 밀렸기에 아직 홍콩에 밀리는 면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마카오의 화폐파타카이지만 홍콩 달러도 대부분의 경우 통용된다. 그러나 반대로 홍콩에서는 파타카를 사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홍콩 달러를 대신 사용하며 작은 식당이나 구멍가게에서도 홍콩 달러로 계산이 가능하다. 마카오 내에서는 홍콩 달러와 1:1의 가치(정확히는 1홍콩 달러 = 1.03 마카오 파타카)로 사용이 가능한데 1983년부터 고정 환율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홍콩달러나 파타카로 지불하면 거스름돈은 파타카로 주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파타카로 지불해도 홍콩 달러로 거스름돈을 주는 경우도 많다. 파타카로만 잔돈을 주는 악독 영업소들도 있는데 이 때는 강하게 홍콩 달러를 요구해야 한다.

경제 규모는 홍콩이 더 넘사벽으로 거대한데다가 홍콩은 금융업 등 서비스업이 발달해 해외취업을 위해 홍콩으로 이민 가는 마카오인들도 많은 편이다.

15.3. 포르투갈

반환 후에도 대개의 구 포르투갈령들이 다 그렇듯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직도 각계에서 상류층으로 꽤 영향력을 발휘한다. 포르투갈어는 마카오 반도에서 통용이 잘 되는 편이고 마카오인 중 포르투갈과 중국의 혼혈들도 많다. 이들을 마카니즈 내진 마카이엔사라고 부르며 마카오의 원주민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마카오인의 성명 중 포르투갈/스페인식 이름인 하무스(라모스), 주제(호세), 페르난두(페르난도), 카타리나, 루이사, 이사벨라 등의 이름들도 자주 보인다. 홍콩영화 <이사벨라>에 나온 마카오 배우 이사벨라 렁은 원래 이름이 이사벨라 루이사 다 실바(Isabella Luisa Leong Da Silva)라는 포르투갈 혼혈 중국인이며 양락시라는 중국어 성명을 갖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53]은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15.4. 바티칸

마카오는 바티칸과도 밀접한 관계이다.

15.5. 한국

한국 가톨릭 최초의 신학생인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박해를 피해 유학을 와서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최방제는 도중에 병으로 죽었지만, 김대건과 최양업은 무사히 자라나서 신부가 되었다.

정식 외교관계는 한국포르투갈과 1961년 수교하면서 성립되었다. 이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면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일부로서 교류하고 있는 상황. 다만 인구 규모가 작고 한국인들도 많지는 않은 편이라, 홍콩 총영사관에서 같이 관리하고 있다.

영어가 통하는 지역 + 쇼핑 천국 + 대도시 관광이라는 여러 가지 메리트가 있는 홍콩과 달리 한국인들의 마카오에 대한 이미지는 포르투갈 옛날 식민지 + 카지노 정도. 실제로 한국인들이 종종 여기서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세계의 한국인>이라는 책자에서 마카오편을 보면 한국에서 정치인으로 알아주고 부유하게 살던 어느 사람이 마카오에서 도박에 빠진 끝에 알거지가 되어 마카오 길거리에서 쓸쓸히 쓰러져 죽은 적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 책자를 보면 한국인이 거지처럼 지내다가 한국 관광객을 보고 구걸하여 그 돈으로 도박하는 경우도 있으며, 카지노 내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마카오의 치안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편이니, 관광 갈 때 동남아처럼 '원 달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인당 GDP가 한국의 세 배가 넘는데 그런 걱정 자체가 기우인 셈. 웬만한 호텔 근처라면 새벽 2~3시에도 돌아다녀도 무방할 정도다. 되려 취업난이 심한 한국에서 마카오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카오가 한국인들에게 홍콩에 비해 무관심을 받는 건 강대국인 영국의 지배를 받은 홍콩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서유럽의 빈국인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데다 경제적으로도 딸렸던 것이 크다. 그리고 북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홍콩과 달리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서 꽤 많이 있는 마카오는 치안 면에서도 충분히 불안을 느낄 만했다. 신상옥 감독 납치 역시 마카오에 있던 북한 공작원들이 벌인 짓으로[54] 이후 마카오는 납북당하기 좋다며 불안해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물론 대북제재가 실시된 현재 대부분 북한인은 철수했다.

반면 마카오는 한국에 꽤 적극적이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후원하거나 엠넷MAMA 같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도 했다. 마카오 정부에서는 마카오로 한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관광청이 주도하여 활발한 SNS 활동은 물론이고 한국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홍보대사로 만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마카오 내의 대학들마저 한국 유학 박람회에 뛰어들고 있다. 이웃 홍콩에 비하여 저렴한 교육비와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발전 가능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거 같다.

북한 관련해서 김정남이 이곳에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카오 경찰 및 베이징 중국 중앙정부의 보호를 받는 듯 했고 2007년에는 홍콩 입국을 시도했다 거부당했던 적도 있다. 남한 언론인들을 만나면 그렇게 술을 잘 샀다고... 아들인 김한솔 역시 이 곳에 거주하다 프랑스로 유학가고, 포르투갈 국적을 보유한다. 김한솔은 놀랍게도 가톨릭 신자로서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며 할아버지와 삼촌이 나쁜 독재자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김정남은 안전지대인 마카오를 벗어나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이 고용한 걸로 보이는 동남아시아 청부 살인업자들에게 독살당했다(...)

한국 영화 도둑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걸어가는 영화 포스터의 배경인 "행복의 거리"를 비롯하여 마카오 항구와 차이나타운, 카지노의 풍경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주연인 김윤석의 극중 이름이 "마카오 박"일 정도.

2015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몇몇 이 곳에서 원정 도박을 한 정황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16. 등장 매체

모나코라스베가스와 함께 카지노로 유명하고, 범죄조직의 거점으로 자주 등장한다.범죄 조직은 돈이 되는 곳에 있으니까

이웃한 홍콩에는 해피밸리에 위치한 경마장 이외에는 실존하는 카지노가 없다. 그래서 홍콩 영화에서 주인공은 항상 마카오에 도박을 하러 가고는 한다.

가수 싸이의 정규 8집 4x2=8의 타이틀곡 New Face의 뮤직비디오는 마카오의 베네시안 호텔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 스카이폴
    엄청난 규모의 카지노가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악당 파트리스의 카지노 ID칩을 이용해 그의 의뢰비를 획득하고, 라울 실바가 있는 장소를 알게 된다. 물론 이곳에서도 목숨을 건 격투를 벌인다. 위 장소는 슬프게도 마카오에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를 위해 가공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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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우 유 씨 미 2
    중반부의 주 배경지. 호스맨 멤버들이 탈출하던 중 모종의 계략으로 여기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설정상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마술가게가 여기에 있다.
  • 도둑들
    카지노를 비롯, 콜로안 빌리지 등 마카오 여러 군데가 배경인 한국 영화. 홍콩도 같이 나온다.

[1] 양자는 거의 비슷하되 '별'이 別과 别로 다르다. 중국 대륙(본토)에서 번체자(정체자)를 써야 할 때 쓰는 표준 자형은 간화자와 동일한 别이지만, 대만에서는 別을 쓴다(대한민국과 일본에서도 別을 씀). 여권 표지에 번체자인데도 别을 쓰는 이유는, 마카오는 행정상으로 중국에 속해 있고, 중국에서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에 없는 번체자(구자형(舊字形)이라고 한다.)를 써야 할 경우에는 중국에서 쓰는 신자형(新字形)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학술 목적으로 쓰는 번체자도 그러하다. 한편 澳 자의 형태도 두 종류가 있는데, 대만이나 대한민국·일본의 폰트로는 釆이 들어가 있는데 반해 중화인민공화국의 폰트로는 米가 들어가 있는 형태로 렌더링된다. 유니코드에서는 양자를 다른 글자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 대륙(본토)의 표준 자형은 澳 자를 정체자와 간화자 모두 米가 들어간 형태로 적도록 하고 있지만, 마카오를 비롯해서 실제 정체자가 쓰이는 지역에서는 釆자가 들어간 형태의 자형이 꽤 많이 쓰인다. 여권에 적혀 있는 澳 자는 澳의 두 형태(약칭에 단 주석 참고) 중 어느 쪽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바람. 澳 자의 경우 인터넷에 있는 마카오 여권 사진으로는 식별이 어려워서 실물을 봐야 확인할 수 있을 듯. 희미하지만 米 모양 위에 선 하나가 더 확인되므로 釆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쓰거나 일부러 본을 떠서 쓰지 않는 이상 이쪽도 釆 들어간 澳를 쓰는 듯 어느 한자든 무슨 상관이랴... 정 궁금하면 마카오 당국자에게 물어보자[2] 국가가 아니므로 국장이 아니라 그냥 휘장이다. 중국어로는 구휘(區徽)라고 한다.[3] ISO 3166-2에 중국의 하위 행정구역으로써 형식적으로 CN-MO를 할당해두었지만 사실상 MO, MAC만이 쓰인다.[4] 중국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인 .cn 산하에 형식적으로 할당해 놓았으나 잘 쓰이진 않는다.[5] 반환 당시에는 16.92㎢(대략 서울특별시 광진구 수준의 면적)였다. 간척 사업으로 코타이 섬을 개발하면서 커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도시인 구리시 또는 전라남도 완도군에 달린 도서지역인 신지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6] 남양주시와 거의 비슷하다. 남양주 시민들이 구리시 땅에 모여 있는 셈[7] 홍콩 달러도 법정 화폐는 아니지만 널리 통용된다.[8] 그 전에는 민간 관행에 의존했다. 지금의 영어와 유사한 방식이다.[9] 초안 중 하나로 홍콩과 똑같은 빨간색 바탕을 사용한 것도 있었으나 기각되었다.[10] 이렇게 주권은 중국에 있지만 실제 통치권은 유럽 국가가 행사하는 모델은 현대사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홍콩 반환 협상 당시 영국은 반환 이후의 홍콩 통치제도를 이런 식으로 하자고 제안했던 것. 중국이 주권을 가지되 영국이 홍콩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와 홍콩의 기존 자본주의 체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이 나왔다. 물론 중국이 이 방식을 거부하고 대신 역제안한 일국양제(1국가 2체제)로 협상이 타결됐기 때문에 영국이 제안한 모델은 도입되지 못했다. 그리고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똑같이 중국에 반환된 뒤 일국양제를 시행 중이고...[11] 이 때 달아난 네덜란드인들이 이후 대안으로 스페인인들을 몰아내고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대대적으로 침략해 온 정성공에게 쫓겨나고 남명정씨 왕국이 들어섰다 강희제의 친정으로 만주족의 손에 떨어져 청나라 영토가 된다.[12] 당시 일본은 마카오도 포르투갈의 아시아 식민지였던 동티모르처럼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했으나 시행하지는 않았다.[13] 홍콩의 친중 좌익들도 이 사건에 영감을 받아 1967년에 67폭동을 일으키는데, 영국령 홍콩 정부는 폭동을 강경 진압하고 주동자 전원을 감옥에 쳐넣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 때에도 마카오처럼 홍콩으로 쳐들어가는 계획을 세운 바 있는데(...) 저우언라이가 막아서 실현되지는 않았다.[14]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부터 포르투갈령 마카오영국령 홍콩에 대해 "중국 땅(주권)이지만 영국/포르투갈이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주권과 치권은 불가분이므로 반드시 반환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포르투갈은 1974년에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인정한 것이다.[15] 이리 되면 중국 본토 내의 사회주의 규제들이 완전히 적용되지도 않고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다국적 기업들의 마케팅에 꼭 필요하자만 중국 본토 내에서는 막혀있는 SNS의 사용도 가능하며 이래저래 장점이 많다. 경제자유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상관없다는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예시이기도 하다.[16] 대부분 19세기 이전부터 살아온 중국인들인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들이다. 20세기가 되어 대륙에서 유입된 광동인들은 포르투갈 국적을 못 받았다. 이들은 포르투갈어도 못 한다. 이 사람들은 반환 이후 중국(마카오) 국적을 받았다.[17] 영국 정부로서는 홍콩 반환 후에도 계속 영국 국적을 유지하게 해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구가 몇십만에 불과한 마카오와 달리 홍콩은 인구가 700만 명이 넘어서 본국 소속 지역인 스코틀랜드(500만 이상), 웨일스(300만 이상), 북아일랜드(200만 미만) 인구보다 많다. 물론 영국 국적 유지를 희망했던 홍콩인들 전부가 영국 본토로 이주하지는 않겠지만(중국에 반환된 홍콩에 '외국인' 자격으로 계속 거주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영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럽다. 게다가 영국 출산율이 한국, 일본만큼 심각하다면 모르지만 합계 출산율이 선진국치고는 꽤 잘 나와서 인구가 부족하지도 않기 때문에, 영국은 무책임하다고 욕 먹는 쪽을 감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때 영국은 홍콩인들을 북아일랜드로 이주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기각되었다고 한다#. 만약 마카오도 홍콩처럼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면, 포르투갈 역시 국적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로는 마카오의 인구가 얼마 안 된게 다행일지도.[18] 물론 삶의 질은 아직까지 홍콩이 앞선다.[19] 물론 당시 마카오의 1인당 GDP가 홍콩에 뒤쳐지기는 했어도 대만보다는 높기는 했다. 물론 이건 카지노 빨이었고, 실제 봉급수준은 대만보다 못한 수준이었다.[20] 청년실업 문제는 없는 편이지만, 대신 월세와 집값이 크게 오르다보니 주하이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카오의 봉급 수준은 중화권에서는 높은 수준이라지만 집세가 턱 없이 높다보니 실제 봉급 수준은 몹시 짜게 느껴진다.[21] 포르투갈 본국이 아무리 국력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유럽 연합 회원국인 포르투갈의 여권은 여전히 중국 여권보다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쓸모가 많다. 중국 여권으로 무비자 입국이 되는 국가는 아직도 별로 없지만 EU국가인 포르투갈 여권으로는 많은 나라에 무비자 입국할 수 있다.[22] 홍콩과 비교하자면 홍콩은 영주권이 곧 국적이라 2세에게는 물론 7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도 영주권이 부여된다. 홍콩은 영미법계인 만큼 홍콩 특별행정구 출생자는 100% 영주권자가 되고 7년 이상 취업비자 및 학생비자 등을 가지고 합법 거주해도 영주권이 나오며, 홍콩에서는 영주권이 곧 시민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국 국적이 없는 자는 홍콩 영주권을 취득해도 본국의 여권을 사용해야 하고 홍콩 여권을 받을 수 없으며, 한국 정부 역시 이를 귀화로 보지 않는다.[23] 거의 중국 본토와 거래를 할 경우나 마카오인이 중국 본토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혹은 중국계 마카오인의 국적 문제.[24] 본국인 포르투갈과 관계가 있는 사건이 아니면 상고가 불가능했다.[25] 이들도 한족에는 포함되지만, 19세기부터 조상이 마카오에 살았던 순수 마카오 토박이들이며 포르투갈인과 혼혈도 잦았다. 오늘날 마카오 인구의 80% 이상은 20세기 근대에 들어와서야 마카오로 이주한 대륙 출신이다.[26] 카지노, 호텔 천국이라 거주자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27]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8]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9]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0]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31]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촬영지이다.[32] 포르투갈어나 중국어 모두 '경계 검문소'라는 뜻 그 자체이다.[33]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사람 내진 1999년 반환 이후 카지노 자본 개방으로 대거 몰려온 미국인으로 보인다. 코타이면 미국인과 포르투갈인 둘 다 많다.[34] 30파타카 이내의 요금인데 100을 달라고 하길래 본 위키러는 절반인 50에 합의.[35] 지금 해당 주석을 작성하는 위키러의 경우, 타이파 페리 터미널에서 2019년 3월에 마카오 패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 140파타카에 구매 가능했으며, 이 중 40파타카가 카드 가격, 100파타카가 잔액이었다. 마카오 패스가 있으면 확실히 아마사원이나 콜로안을 갈 때 편하긴 하다. 이 지역까지 가는 호텔 셔틀버스는 없기 때문이다. 환승이 안 되는 대신에 한 번 탑승할 때 요금이 3파타카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그러나 버스 요금이 매우 저렴한 만큼, 잔액을 소진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마카오에 오래 있을 것이 아니면 차라리 택시나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하자. 게다가 홍콩의 옥토퍼스 카드와는 달리 카드 잔액 환급이 안 된다. 굳이 마카오 패스를 구매하고 싶다면,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 잔액을 소진시키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 참조(광동어). https://www.macaupass.com 광동어 사이트가 보기 불편하다면 한국인의 여행 후기를 검색해보자. 의외로 한국인 중에서도 마카오 패스를 사용해본 관광객이 많이 있다.[36] 홍콩 법은 영국 법을 거의 그대로 따온 수준이다. 예를 들어 성매매 자체는 합법이지만 여러 매춘 관련 행위(포주, 매춘소, 호객행위)는 불법인 것 등.[37] 홍콩 만화 바이오맨이라는 작품에선 스탠리 창이라는 카지노 도박 산업왕이 나온다. 악의 축으로서 범죄자들을 명령에 따르는 무기로 만드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을 몰래 거액으로 후원하던 인물. 이 만화에서는 자기의 비리나 여러가질 비난하는 이들을 그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간 흉기로 끔살시켜버린다. 이름도 그렇지만 실제로 얼굴만 약간 다르게 그렸다 뿐이지, 상당수 비슷하게 그린 것부터가 스탠리 호가 모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만화가 나오는거 보면 그닥 평판이 좋진 않은 모양.(...) 아무래도 애초에 카지노라는 산업 특성이 좋은 평을 받긴 좀 그렇다.[38] 마카오는 1971년이 되어서야 중혼 금지 조항이 생긴데다가 경과조치로 기존의 혼인은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네 명의 와이프를 동시에 합법적으로 두고 있다고.(...)[39] The Venetian Macao. 테이블만 800개에 슬롯머신은 3천대가 넘는다. 3500개가 넘는 객실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텔이기도 하다. 내부에선 이탈리아 곤돌라도 탈 수 있는데 이를 위한 강도 있다.건물 안에 강이 있다니 (그러나 실제로 가 보면, ‘강’이 있다는 것은 과장이고, 그냥 곤돌라가 지날만한 수로=물길 정도이다. 보기 드문 시설이기는 하지만, 납득할 만한 수준의 규모이다.)[40] 오죽하면 한겨레신문 계열 주간지 한겨레21에서 2007년 마카오 반환 7주년 기사에서 마카오 교육의 실태를 꼬집기도 했다. 심지어 2012년에는 마카오대학에서 보안요원들이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교수를 붙잡는 사건이 발생해 학생들이 항의하고, 홍콩 총영사관 측에서 마카오 경찰국에 경찰영사를 보내 조사하기도 했다.[41] 마카오대학, 마카오관광대학, 마카오과학기술대학, 마카오시립대학 등.[42] 이와 캠퍼스 면적이 비슷한 한국의 대학은 한서대학교(1.1㎢), KAIST (1.14㎢)가 있다. 두 학교 모두 면적 순위로는 국내 10위권 밖으로 그다지 큰 편이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마카오 영토 면적에 비하면 무려 3.3%로 엄청난 크기이다.[43] 구 캠퍼스와 함께 운영하는게 아니라, 대학 전부를 주하이로 이전시켰다.[44] 사실상 국경으로 간주하여, 본토 측 외곽에서 인민해방군이 추가로 방비를 실시한다고 한다.[45] 행정경찰[46] 사법경찰, 다시말해 경찰수사관[47] 비슷한 케이스로 페로 제도가 있다.[48] F3 카테고리에서 일정 성적 이상의 드라이버들로 선정된다.[49] 사실 모터사이클은 안전문제 때문에 시가지서킷에서 경주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당장 모토GP 서킷들만 봐도 시가지 서킷은 단 한개도 없다.[50] 미하엘 슈마허, 아일톤 세나, 데이빗 쿨싸드 등이 이 대회 우승자이다.[51] 2015년, 세이프티카를 무시하고 마구 추월을 하고 첫랩에 크래쉬한 선수를 다시 쫒아가 들이받는 등 막장스러운 짓을 하고 무려 2년동안 경기 금지를 당했다 돌아온 드라이버이다. 재능이 출중한 드라이버인 만큼 복귀 후 최근 다시 주가를 올리는 중이며 레드불 주니어팀에서 승격을 이야기할 때 가장 유력한 드라이버이다.[52] 식민 지배 등에 얽힌 미로 같은 복잡한 관계로 보면 된다.[53]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도 여기에 소속돼 있었다.[54] 이들은 조총련계로 일본 국적을 지니고 있어 의심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