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14:19:09

일국양제

一國兩制 / 一国两制 [1]
One country, two systems (1C2S)
Um país, dois sistemas (UPDS)


1. 개요2. 역사3. 상세
3.1. 고도의 자치3.2. 최고법규3.3. 입법, 행정, 사법 삼권의 분리3.4. 우편 사무3.5. 법 집행기관3.6. 경제정책3.7. 공용어3.8. 대외관계3.9. 출입국/경 관리3.10. 국적과 거주권
4. 특별행정구에 대한 해석5. 미래에 대한 전망과 위기6. 양안통일 문제
6.1. 타이완 특별행정구?
7. 비슷한 사례8.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의 정치 체제인 사회주의 정치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조건부로 공존하는 정치 제도이다. 1980년대덩샤오핑영국과의 홍콩 반환 협상에서 제안한 것이 시초이며, 현대 홍콩마카오 정치체제의 주요 원칙이다.

일국양제의 골자는 한 국가 안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책과 민주주의/자본주의 정책을 유지하는 두 가지 체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한국 한자음대로 읽어서 일국양제라고 하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한국어/조선어 문서에서는 풀어서 '한 나라 두 제도'라고 말한다.

일국이제(一國二制)가 아니라 일국양제(一國兩制)인 이유는 현대 중국어에서 '두 개'는 이개(二個)(한어병음: èr ge)가 아니라 양개(兩個)(한어병음: liǎng ge)라고 하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어에서 二는 서수(序數)로서의 '두 번째, 세컨드(second)'로 자주 쓰인다.[2]

2. 역사

영국청나라제1차 아편전쟁을 치르고는 승전하여 난징 조약을 체결해 홍콩 섬을 할양받았다. 그리고 제2차 아편전쟁을 치러 구룡반도까지 할양받았으며, 1898년에는 신계를 99년간 조차한다.

중국(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모두)은 난징 조약을 불평등 조약으로 간주하고 영국령 홍콩을 자국 영토라 주장했지만 영국은 중국의 주장을 씹어왔다. 또한 홍콩인들 중 많은 수는 1949년의 중국 공산화를 피해 대륙에서 망명온 사람들이었기에 반공의식이 강했고, 오랜 세월을 영국 지배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살아온 홍콩인들의 사고방식은 중국 대륙인들과는 많이 달랐기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제국주의가 해체되고 신계의 조차 기한이 다가왔다. 조약에 따르면 1997년에 신계를 중국에 돌려줘야 했다. 다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던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시할 수 없었던 영국은 결국 영국령 홍콩에 대한 반환 협상을 시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난징 조약부터 부정해왔기에 홍콩 전체 반환을 바라는 입장이었으나, 불평등 조약도 조약이기에 홍콩 섬과 구룡반도에 대해서는 영국의 영유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조차지인 신계를 반환받아야 한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령 홍콩은 이미 인구가 너무 많아져 신계 없이는 도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고, 따라서 영국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영국은 신계 조차를 연장하고자 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래서 영국은 "소유는 중국이, 관리는 영국이 하자"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이 홍콩의 주권(主權, sovereignty)을 중국에 반환하되 중국의 형식적 지배 하에서 영국이 실질적인 치권(治權, administration)을 행사하는 특수한 자치 지역으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도무지 사회주의 국가 제도와 홍콩의 기존 시스템이 양립할 수 없어 보이니 이런 복잡한 아이디어를 낸 것. · 시대에 포르투갈 왕국마카오를 실질 지배한 방식이 이런 형태에 가까웠다. 초기엔 포르투갈이 명나라의 지방 관리에게 뇌물을 바쳐서 마카오를 통치했다가, 나중엔 명·청 조정에 정식으로 이용료를 내고 통치하였다. 이 시기의 모델이 바로 영국이 홍콩 반환 후에 구축하기를 희망했던 통치 체제였던 것이다.[3]

그러나 중국은 주권과 치권은 불가분이라며 거부했다. 이미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부터 홍콩을 "중국 땅이지만 영국이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곳" 정도로 해석했으니 중국 입장에서는 영국의 제안이 제대로 된 양보라 하기도 어려웠다. 대신 중국은 대안으로 일국양제를 제시해 영국을 설득해서 자국의 입장을 관철해 낸다. 이는 사회주의 도입을 우려한 영국홍콩을 안심시키기 위한 일종의 해결책이었다. 영국은 몇 개 조건을 더 받아내는 대가로 일국양제를 수용했고, 이는 홍콩 반환 조약인 중영공동선언에서 명시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홍콩 반환 협상을 완료한 후 즉각 포르투갈포르투갈령 마카오에 대한 반환 협상을 시작했고, 역시 일국양제 원칙을 제안했다. 영국과는 달리 마카오를 반환하고자 하는 의사가 강했던 포르투갈은 일국양제를 쉽게 수용했다.

3. 상세

홍콩 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간 변동하지 아니한다. -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
마카오 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간 변동하지 아니한다. -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 기본법 제5조

홍콩마카오 양 특별행정구가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일정기간(50년)동안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와 별개의 체제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기본법의 효력이 1997년 발효 후 50년 간 유효하다는 것이며, 이것과 별개로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3.1. 고도의 자치

홍콩과 마카오가 누리는 고도의 자치는 일국양제 시스템의 핵심이다. 중국 공산당의 기본 원칙은 "홍콩과 마카오의 내정은 홍콩 사람과 마카오 사람이 맡아야 한다[4]"이며, 실제로 각 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의거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과 마카오의 문제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홍콩, 마카오 반환 이후 양 특별행정구에 대한 내정간섭이 심화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 내에서 정부수반은 행정장관(行政長官, Chief Executive, Chefe do Executivo)이라고 불린다. 현재 홍콩의 행정장관은 캐리 람이며, 마카오의 행정장관은 페르난두 추이이다. 행정장관의 임명권자는 중앙정부의 국무원 총리이나 실제로는 각 지역에서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따라서 국무원 총리는 원칙적으로 홍콩과 마카오 내정에 대해 아무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제무대에서 각 지역 행정장관은 각 지역에 대해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인정받는다. 즉, 편의상 홍콩과 마카오의 "국가원수"는 행정장관인 셈.

3.2. 최고법규

홍콩과 마카오의 최고법규는 중국 헌법이 아니라 홍콩 기본법마카오 기본법이다. 중영공동선언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에 의거 중국의 사회주의 헌법은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홍콩 기본법과 마카오 기본법의 개정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3.3. 입법, 행정, 사법 삼권의 분리

양 특구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중국 중앙정부 및 중국 공산당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특히 사법부의 경우, 각 지역의 최고법원이 종심법원의 역할을 하며, 중국 본토의 대법원에서 심리하는 경우는 없다.

3.4. 우편 사무

중국 내 우편사업체인 중국우정만국우편연합의 정회원으로서 중국 내 우편물 취급을 담당한다. 그러나 중국 본토를 제외한 특별행정구 지역에서는 중국우정이 아닌 홍콩우정, 마카오우정이 담당하며 중앙의 우편사무와 분리되어있다. 중국 본토-특별행정구 간의 우편물 배송은 준 국제우편으로 간주되며, 세관 검사 등을 받을 수 있다.

홍콩과 마카오의 우편주소를 쓸 때 국가명인 People's Republic of China는 생략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외에서 홍콩과 마카오로 우편물을 보낼 때 이것이 적용된다. 즉 국가명에 People's Republic of China, China, 中国를 쓰지 않고 홍콩은 香港 혹은 Hong Kong, 마카오는 澳門/澳门 혹은 Macau(Macao)라고 써야된다.

3.5. 법 집행기관

양 특구의 경찰은 각각 홍콩 경찰마카오 경찰이 맡고,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는 양 특구에 아무런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토를 방문중인 홍콩인이나 마카오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공안이 체포, 조사 후 본토의 법원에 기소한다. 이를 두고 공안이 홍콩인과 마카오인의 범죄를 다루는 것이 일국양제에 부합하는가에 대해 정치인마다 의견이 갈린다.

3.6. 경제정책

중국 중앙정부의 경제정책과는 별개로 홍콩과 마카오는 고유의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다. 중국 본토에는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수정 자본주의가 도입되었지만, 홍콩과 마카오는 서방의 자본주의 정책을 수정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공용화폐의 경우, 본토의 런민비(위안)가 아닌 식민지 시절부터 쓰인 홍콩 달러마카오 파타카라는 고유의 화폐를 그대로 통용하며, 서로의 화폐가 다른 지역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본토와 특별행정구의 왕래를 위한 환전은 가능하다.

3.7. 공용어

중국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며, 홍콩영어(영국식), 마카오포르투갈어 또한 공용어로 사용된다.

또한 홍콩과 마카오가 위치한 지역은 광둥 성 주변으로, 대부분의 홍콩인과 마카오인이 광동어를 사용할 줄 알며, 홍콩과 마카오의 언중은 대부분 표준중국어를 외국어에 준하는 언어로 여기며 사실상 광동어를 모어로 사용한다.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특별행정구 주민들에 의해 오어 등의 중국어 방언도 많이 쓰인다. 홍콩의 경우 대한민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 주민들에 의해 사용되는 각 지역의 언어들도 있다.

3.8. 대외관계

3.9. 출입국/경 관리

중국 본토와 특별행정구는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출입국 관리를 별도로 한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의 외국인 출입국 규정은 모두 다르며, 이는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상호 간에도 적용되어 서로를 드나들려면 출입국 심사에 준하는 출입경 심사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왕래 절차는 중화권/상호 왕래 참조.

3.10. 국적과 거주권

중국의 국적법은 홍콩마카오에 거주하는 모든 중국계 주민들을 중국 국적으로 여김원칙으로 한다.

원칙인 이유는 중국계 주민 중 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거나 (홍콩/마카오-제3국 복수국적인 경우 제외), 중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경우 그 중국계 국민은 더 이상 중국 정부가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제3국의 시민권만 행사 가능하다. 중국 국적이 없거나 포기한 경우 홍콩 및 마카오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으며, 시민권을 소지한 국가의 영사관(홍콩과 마카오에는 대사관이 없다)으로 가서 그 나라의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에 의거해 홍콩 반환 직후 중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거나 영국 속령(홍콩) 시민권자(BDTC) 중 영국 해외국민(BN(O))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중국계 조상이 있는 자[5]는 중국 국적자가 되었다. 그러나 본토에 후커우를 가지는 중국 국적자들과는 달리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의무(병역이나 납세)도 지지 않고 혜택(공무담임권)도 누리지 않는다. 또한 홍콩 여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영국 속령 시민권(홍콩)은 1997년 12월 31일 이후 말소되었다. 마카오에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지만, 홍콩과 달리 포르투갈 정부는 1981년에 마카오에서 태어나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마카오인 43만 명에게 모두 포르투갈 국적을 주었고 본토 포르투갈인과 동등하게 대우한다.

반대로 비중국계 주민 중 귀화 절차를 통해 중국 국적을 취득 후 홍콩 혹은 마카오 여권을 받은 경우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홍콩에서 활동하는 운동선수가 특별귀화를 통해 중국 국적을 취득 후 홍콩 여권을 받는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중국이 비중국계 외국인을 위한 귀화 제도를 원칙적으로 마련해 두지 않기에 거의 찾을 수 없기는 하다.

달리 말하면 홍콩인/마카오인이라고 해서 모두 중국인 혹은 중국계인 것은 아닌 셈이다. 다만 홍콩이나 마카오나 주류 민족이 중국인인 관계로, 해외에서 홍콩인(Hongkonger 혹은 Hongkongese)/마카오인(Macanese) 하면 대부분 중국계 홍콩인(Hong Kong Chinese)/중국계 마카오인을 일컫는다.

홍콩과 마카오는 영주권이 사실상 시민권으로 기능하여, 영주권자는 국적에 관계없이 의료보험, 입국심사 등에서 자국민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중국 국적자로서의 홍콩 영주권자가 아니면 특별행정구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지 않을 경우 영주권을 상실할 수 있는데, 재신청하면 쉽게 나온다.

중국 국적자의 경우 해외여행에서 비자면제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의 수가 아직 적은데, 홍콩 또는 마카오의 여권을 소지한 경우 그러한 나라의 수가 배 이상 늘어난다. 일부 국가는 홍콩, 마카오 여권을 소지한 중국 국적자를 홍콩 국민, 마카오 국민으로 분류하여 일반 본토여권 소지자와 구별하고 있다. 사실상 다른 나라 취급인데, 이는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령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양 특구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본토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홍콩 여권을 소지한 중국 국적자가 비자를 받거나 입국심사를 받을 때 신청서/세관신고서의 국적(Country of Citizenship)란에 PEOPLE'S REPUBLIC OF CHINA(중국)가 아닌, HONG KONG(홍콩) 혹은 HONG KONG S.A.R OF CHINA(중국 홍콩 특별행정구)이라고 적어야 한다. 이는 마카오 여권 소지자도 마찬가지(PRC 대신 MACAU)이다. 이는 행정편의를 위한 절차로 홍콩 독립운동이나 마카오 독립운동과는 관련없다[6]. 대부분의 홍콩인, 마카오인이 국적란에 CHINA를 생략하고 HONG KONG과 MACAU만 적지만, 한국 입국심사대에서는 알아서 처리해준다.

홍콩, 마카오 영주권자이면서 중국 국적자가 아닌 경우 비자 정책은 해당국 시민권자의 비자 정책에 준한다. 예를 들어 중국 국적의 홍콩 영주권자는 미국 사증 면제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을 수 없지만 대한민국 국적의 홍콩 영주권자는 가능하다.

4. 특별행정구에 대한 해석

일국양제에 의한 특별행정구 운영으로, 양 특구는 중국과는 별개의 국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특별행정구는 중국의 하위 행정구역이다.
특별행정구 연방제 자치령 영국
구성국 체제
네덜란드
구성국 체제
속령
자치권 예 (단 잉글랜드는 자치권이 없음) 경우에 따라 다름
국방권 아니오 제한된 방위권 (미국주방위군) 경우에 따라 다름 중앙정부에 위임 중앙정부에 위임 본국에 위임
외교권 중앙정부의 감독 하에 국제기구 참여 등 독자적인 국제관계 가능 아니오 국제기구 참여 가능 국제기구 참여 가능 제한된 독자적 외교권
중앙정부와의 관계 중앙행정구역의 일부(일국) 중앙의 행정체계와 분리(양제) 중앙행정구역의 일부 중앙의 행정체계와 분리 자치국가간 대등한 관계 본국 정부와 대등한 관계 중앙의 행정체계와 분리
상호간 왕래시 출입경 심사 여부 아니오 경우에 따라 다름 아니오 경우에 따라 다름

5. 미래에 대한 전망과 위기

두 특별행정구와 중국 사이의 일국양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한이 50년으로 규정되어있는 기본법의 연장 여부다. 50년이라는 시한이 계속해서 추가 연장을 넘어서 시한이 삭제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 시한제도 폐지에 대해 2040년대 후반의 중국 공산당이 어떤 입장인가는 알 수 없다.

기본법이 실시되고 50년이 지난 2047년 이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중화인민공화국이 입장을 내놓은 바는 없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의결하기를 중국 공산당의 동의 없이 홍콩 기본법을 개정 시도하면 무효로 한다고 한 것으로 볼 때 명시적인 중국 공산당의 일국양제 지속 여부에 대한 발표가 있어야만 어떤 식으로든 양 특구의 기본법 개정이 가능하다. 물론 2007년 후진타오 정부가 홍콩 반환 10주년을 맞아 홍콩과 마카오 일국양제 지속을 말로만 천명한 적이 있었고, 2017년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에도 마찬가지로 시진핑 주석이 일국양제의 지속을 강조했기 때문에 일단은 일국양제의 폐지를 위한 기본법 개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현재의 기본법 체제 내에서도 어차피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중국 공산당 정부나 두 특별행정구 정부가 기본법 개정을 시도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별개로 일국양제의 실질성이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중국 측은 처음에 홍콩과 마카오의 자치를 인정하던 모습에서 서서히 친중파를 양 특구에 심고, 양 특구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법적으로만 따졌을 때 2047년 혹은 2049년까지는 일국양제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없으나, 현재의 상황이 지속 되면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일국양제의 핵심이자 실질적인 요소인 자치 원칙은 없어져 사실상 2010년대부터 중국에 통합된거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 실제로 중국 중앙정부는 일국양제를 빌미로 반중 행위를 하면 아예 양제를 없애고 합병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사에서 일국양제 방침과 홍콩 기반으로 하는 중국 헌법을 이해하라는 발언을 하였다.#

중영공동선언중국-포르투갈 선언에 따르면 중국 본토식 체제는 영구히 적용되지 않으나, 이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미 2010년대 들어 중국 공산당 정부의 홍콩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 시도에 영국이 여러번 우려를 표명하자 중국 정부에서 중영공동선언에 대한 사실상의 폐기를 선언한 바가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영국/포르투갈과 중국 사이의 관계와 일국양제에 대한 입장이 영국/포르투갈과 중국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조약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닌, 중국과 홍콩/마카오이라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관계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중국 정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두 특구에 중국 본토의 체제를 적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는 일국양제가 완전히 폐지되거나 하는 일은 힘들겠지만 이미 반중인사 탄압이나 양 특구 정치계와 언론계에 대한 개입 확대 등으로 은근히 뒤에서 통제를 넓혀가고 있고 이미 일국양제를 약속한 국가 간 조약을 따르지 않겠다고 중국 공산당이 선언한 상황이라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미래가 밝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이 강하다. 홍콩 행정장관 및 입법원 선거 제도는 제도의 문제로 인해 친중파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를 통해 홍콩 내정에 간섭하고 있으며 많은 홍콩인들은 이를 일국양제 훼손으로 보고 있다. 2014년에는 결국 분노가 폭발한 홍콩 주민들이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이라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2018년 3월 5일 전인대 업무 보고서에서 리커창 총리가 홍콩에 일국양제 원칙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행할 것이라며 홍콩이 중국 본토의 발전에 통합되는 것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47년 일국양제가 종료되어 중국에 완전히 통합되면 홍콩의 자유민주주의가 소멸하리라는 유언비어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을 의식한 듯하다. 이는 공식적으로 일국양제가 지속됨을 인정한 셈이다.# 시진핑 주석도 홍콩, 마카오의 일국양제 지속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실상 반환 협정을 개정한 셈이다.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홍콩 시민들은 일국양제에서 양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중국 공산당이 홍콩 정치에 대해 완전히 손을 떼라고 요구하고 있다.

6. 양안통일 문제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을 통한 양안통일의 전략으로 중화민국에 대해 이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홍콩, 마카오에 일국양제를 적용한 것도 일단 작은 도시에 불과한 이들 두 곳을 시범 케이스로 삼아 통일 이후에도 기존의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궁극적으로 중국 주도의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킨다는 것. 요컨대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의 최종 목표는 대만과의 양안 통일로 귀결되는, '하나의 중국'의 완성이다.

하지만 중화민국 측은 중국 공산당홍콩에 하는 걸 보고 알고 있기에 일국양제식 통일 노선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탈중국화'(脫中國化), 소위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 확대, 통일을 지지하는 중국 국민당도 마찬가지. 대륙에 우호적인 중국 국민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건 중화민국 주도의 양안 통일이지 대만이 중국 공산당 밑으로 들어가는 통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대만은 제2의 홍콩, 마카오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 2019년 새해 시작부터 시진핑의 중국 공산정권이 일국양제에 입각한 통일을 요구하자, 차이잉원 총통이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함은 물론, 대만 독립 반대와 92공식 찬성 입장을 견지하는 국민당조차 "일국양제는 92공식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을 정도. 친중 성향인 중국 국민당의 2020년 유력 대선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과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나란히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궈타이밍), "일국양제를 결단코 거부한다"(한궈위)며 홍콩 시위대 지지를 선언했다. 기사

홍콩의 63%가 대만 일국양제 적용을 반대하기도 했다.#

6.1. 타이완 특별행정구?

1983년 6월 26일 덩샤오핑 이론 중에 타이완 특별행정구(台湾特别行政区)라는 말이 나온 바가 있다. 원래 특별행정구라는 명칭이 대만을 두고 만들어진 말이었지만[7] 실질적인 행정구역으로서 적용된 곳은 홍콩과 마카오다. 그래서인지 홍콩마카오의 깃발의 구성과 비슷한 "타이완 특별행정구"의 깃발이 있지만 실제로 타이완에서 저 깃발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용하다간 코로 버블티를 마실 수 있다 중국한국으로 비유하자면 한국에서 북한 깃발을 만들어주는 격.[8]

7. 비슷한 사례

7.1. 티베트

티베트의 완전한 독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현실 앞에 티베트 망명 인사들이 이제는 홍콩, 마카오와 같은 고도의 자치를 요구하면서 일국양제가 티베트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티베트에 일국양제를 허용하면 만주족, 몽골족, 조선족, 위구르족 등 다른 민족들도 유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고, 일국양제가 결국은 완전한 독립으로 가는 과도기 단계로 보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7.2. 오키나와현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와 다른 나라였던 오키나와를 일국양제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

7.3. 북한 신의주시

북한이 2002년에 중국의 일국양제를 본떠 신의주시에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립을 추진했지만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중국인 양빈(楊斌)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는 등 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최근에는 황금평에 중국 자본을 유치해 이를 부활시킬 움직임이 있으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7.4. 남북한관계, 남북통일

유사하게 대한민국북한의 통일에 대해서도 이 일국양제론을 연구하는 학자나 대한민국 통일부, 외교부 산하 연구원들이 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한다. 비공식적으로만 여러가지 통일론 방법을 놓고 연구하는데 그 중 이 일국양제론이 있는 수준.

말하자면 중화인민공화국에 남한, 홍콩 특별행정구에 북한을 대입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북한특별행정구 주민의 직선이 될 수도, 일부 주민에 의한 직선이 될 수도, 간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의회 구성이나 거버너(일종의 총독) 선출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일국양제 시나리오는 초기의 정치적 부담은 줄겠지만, 특구 주민들에 대한 권리제한은 국제사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특히 북한 주민의 정치적 의식이 각성됨에 따라 큰 정치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의 통일 과정에 일국양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일종의 과도기적 조치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후 북한, ‘홍콩式’ 정치체제 고려해봐야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 정부나 국내 전문가들이 구상하는 일국양제는 중국과 달리 한반도 전체가 동일하게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엄밀하게는 수정 자본주의) 체제를 기본적으로 도입하되 그 외에는 남북한에 다른 법과 화폐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당연히 중국처럼 어떤 지역은 일당독재 체제, 어떤 지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정치 체제를 두는 식으로 가려는 건 아니라는 점. 중국과 비슷한 형태의 일국양제는 북한 정권이 원하는 연방제 통일[9]같은 상황에서만 가능한데, 이건 당연히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니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북한이 원하는 것과 달리 독재 정권을 축출한 채 연방제를 도입하는 방식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그런데 만약 남한과 북한을 각각 미국의 주처럼 만들어 놓은 연방제를 채택할 경우, 북한이 원하는 방식의 연방제처럼 부분적인 독재가 용인되는 막장 상황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구성체가 10개 이하인 연방국가는 구성체끼리 갈등이 증폭돼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분리 독립 운동을 촉진한다는 연구가 있는 상황이다.(예를 들어 베트남을 이미 통일됐지만 북부 하노이, 중부 다낭 후에, 남부 호치민으로 3등분하고 베트남 연방 공화국으로 재편성을 한다면 남부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일 한국 내부를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지 말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자치 권역으로 나눈 연방제를 도입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전문가들이 지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통일 후에 단일 국가 체제를 유지하되 경제 등 일부 분야에만 한시적으로 남과 북이 다른 법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리수용은 통일 방식이 “남북의 격차가 현실적으로 너무 크다”면서 일국양제에 대해 거론한것으로 알려졌다.기사

일국양제를 하면 비용이 현저히 덜 들거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8. 관련 문서



[1] 표준중국어: [10] guó liǎng zhì, ㄧˋ ㄍㄨㄛˊ ㄌㄧㄤˇ ㄓˋ, 이궈량즈; 광동어: jat1 gwok3 loeng5 zai3: 얏궉렁자이)[2] 예를 들어 '둘째 '을 중국어로 二哥라고 한다.[3] 포르투갈은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종이 호랑이라는 게 뽀록나게 되자 당시 열강들의 청나라 조차지 뜯기 유행(...)에 동참, 마카오를 완전히 자기 영토로 뜯어가게 되었다.[4] 각각 港人治港, 澳人治澳라 한다.[5] 반환 이전의 홍콩 내에서 영국 속령 시민권자로 귀화하지 않은 중국계 홍콩인이 많았다. 이들은 여권을 받을 수 없어 홍콩 식민지 정부가 재입국허가서를 발급하였다. 일본조선적 동포가 해외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6] 한국은 본토 중국인에 대해 CHINA P.R., 홍콩인에 대해 CHINA P.R.(HONG KONG), 마카오인에 대해 CHINA P.R.(MACAU) 코드를 부여한다 참고로 대만인의 경우 국적이 CHINA(TAIWAN) 코드가 부여되는데, 한국과 대만이 수교하던 시절의 유산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이라면 이 때에는 대만을 정통 중국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중국(CHINA P.R.)과 달리 그냥 CHINA로 표기했을 것이다.[7] 바이두 백과이에 대한 항목이 있으며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대만특별행정구(台湾特别行政区)로 검색하면 "대만 성(중화인민공화국)"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8] 사실 이미 황해, 평남, 평북, 함남, 함북 깃발을 남한이 만들어 놨지만 차이점은 이북 5도를 대표하는 깃발을 만든 게 아니라 각 행정구역의 깃발을 만든 것이다. 단 이북 5도위원회를 상징하는 깃발은 있다.[9] 남한과 북한을 각각 통일된 연방 국가의 구성체로 하고 북한 정권은 이 북한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형태를 말한다. 당연히 이렇게 통일하면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 되고 분단 상태일 때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게다가 북한 내 독재 체제를 인정하는 게 되므로 우리로서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