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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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구성국에 관한 문서이다.현재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4개 구성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북아일랜드는 '나라'가 아닌 '지방'(region, province) 취급하는 경우도 많다. 아일랜드 섬 전체를 한 나라로 쳐서(과거에 아일랜드 전체가 한 나라이기도 했었고) 북아일랜드는 연합왕국에 잔류한 일부 지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구성국은 일반적으로 constituent state가 아닌 country를 쓰며, 홈네이션(home nation)이라는 말도 쓴다. 영국 정부는 자국 국내에 다시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특성 때문에 home nation들을 countries within a countr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 역사
많은 영국인들도 자신의 나라가 4개의 구성국의 연합임을 인식하고 있고 서로의 주민은 정체성도 조금씩 다르지만, 막상 저 지역이 역사적으로 항상 일관되고 명확하게 country로 정의되어 왔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이기 때문에 구성국을 칭하는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고, 각 법률을 보아도 country에 대해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2.1. 18~19세기
연합 당시 영국 정부에서도 현재의 영국이 형성되기 이전의 각 왕국의 지역들을 별개의 지역으로 구분했다.2.1.1. 1707년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 합병
영국이라는 나라의 기원은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합병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라는 연합왕국을 설립한 것이다. 두 나라는 어느 한 나라를 흡수합병한 것이 아니라 군주가 같은 동군연합 상태에서 서로 별도로 존재하던 정부를 합친 것이므로 둘의 권리는 대등했다. 실제로 1707년에 두 왕국이 서로 합병하는 근거가 되는 연합법(The Acts of Union 1707)에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country라 정의했다.스코틀랜드는 병합 이후에도 법역이 잉글랜드와는 달랐다.(스코틀랜드는 대륙법, 잉글랜드는 영미법을 채택) 비록 연합으로 인해 독자적인 의회가 사라지고 영국 정부에서 스코틀랜드에 대한 법률을 지정했으므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법역의 경계는 조금씩 흐려져가고 있었지만 분명 구분은 존재하였다.
연합법이 시행된 1707년부터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를 담당하는 전담 장관을 두었고 1885년부터는 아예 그가 관리하는 Scottish Office를 창설하여 스코틀랜드의 특수성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러한 차이에 비해 스코틀랜드 상류층들이 잉글랜드의 대학에서 졸업하는 등 아일랜드 수준의 반감은 없었고 대영제국의 혜택을 함께 누렸다. 19세기부터 아일랜드 자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코틀랜드 자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1.2. 1801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아일랜드 왕국 합병
1801년 겉껍데기만 왕국이고 사실상 잉글랜드 왕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세워졌다. 이 때 제정된 연합법(The Acts of Union 1801)에서는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를 country로 정의하고 있었다.아일랜드는 1801년에 완전히 영국에 병합되면서 잉글랜드 및 웨일스와 법역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자치운동이 대두되어 자치의회를 설치하고 법역을 구분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치운동은 북아일랜드 얼스터 신교도와 보수당의 반발로 추진이 지지부진했고, 결국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자치 대신 독립을 선택하여 투쟁을 벌였다.
1920년에 영국 정부가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에 각각 별도의 자치의회를 설치했지만 이미 그걸로 독립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결국 1921년에 영국은 남아일랜드를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자치령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남아일랜드는 영국에서 떨어져나갔고[1] 1937년에 자치령 체제를 철폐하여 완전히 독립했다.
한편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아 자치의회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잉글랜드 및 웨일스와는 별도의 법역(영미법)으로 구분되었다. 이로써 아일랜드 대신 '북아일랜드'가 영국을 이루는 구성국(country)으로 간주되었으며, 1927년에는 아예 국호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바꿨다. 이러면서 과거의 구성국 아일랜드의 후신을 현재의 구성국 북아일랜드로 보아야 할지 독립국 아일랜드로 보아야 할지도 모호한 경우가 많아졌다. 영국의 구성국으로서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북아일랜드지만 면적과 인구의 대부분은 독립국 아일랜드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자치는 처음 시작부터 가톨릭-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개신교-친영 연합주의자의 갈등으로 삐그덕댔고, 그것이 유혈사태로 발전된 1970년대부터는 아예 자치의회를 폐지하고 영국 정부가 직할하였다.
2.1.3. 웨일스의 지위 문제
18~19세기 법적으로 웨일스를 country로 언급한 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웨일스는 공국인 상태에서 13세기에 잉글랜드 왕국에 병합되었으므로 법적으로는 principality로 언급되었으며, 그나마도 16세기에 들어서면 법역이 완전히 잉글랜드와 통일되었다.19세기 후반부터 웨일스 역시 country로 인정해 자치권을 달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country로 인정해달라는 법적 근거는 스코틀랜드에 비해 미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는 다른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보니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웨일스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여럿 마련했다. 예를 들면 부처에 웨일스 전담 부서를 만든다던가 하는 식이다.
2.2. 현대
자세한 내용은 영국의 자치권 이양 문서 참고하십시오.제임스 캘러헌 내각에서는 자치 요구를 받아들여 1978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자치의회 설립 법안을 통과시키고 각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치렀다. 이 자치의회(Assembly)는 법안에서 명시된 분야에 한해 입법권을 갖는 것이었는데, 정작 주민투표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유권자 찬성율 40% 미달[2], 웨일스에서 80%의 반대라는 결과가 나와 자치는 무산되었다. 이는 당시 제임스 캘러헌 내각이 낮은 지지율을 보였던 탓에 해당 주민투표가 정권 심판 투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성국 자치 논의는 자치에 부정적인 보수당이 장기집권함에 따라 쏙 들어갔으나, 보수당 정부의 총리 마가렛 대처의 정책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큰 반감을 불러일으켜 자치 여론도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탈환함에 따라 1998년에 토니 블레어 내각에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자치를 강력히 추진해서 성사시켰다. 이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 각각 단원제 의회와 자치정부를 설치하고 대부분의 입법 권한을 영국 의회에서 각 자치정부 의회로 넘기는 것으로, 1978년의 법안과 달리 자치의회는 법안에서 중앙정부 권한이라 명시하지 않은 모든 분야에서 입법권을 갖게 되었다.
노동당 내각은 해당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후 주민투표에 부쳤고,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통과됨에 따라 1998년에 각 지역에 자치의회가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지역 자치 증진이라는 목적 외에도 당시 노동당이 강세였던 스코틀랜드에서 야당이 되더라도 지방정권은 잡고 있겠다는 의도, 그리고 자치권한을 줘서 독립열기를 무마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특히 웨일스는 이로 인해 자신들이 영국의 구성국(country)으로 명확히 인정되는 쾌거를 얻었다.웨일스 자치정부 FAQ
3. 각 구성국의 권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영국의 구성국(country)은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3.1.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경우 오랫동안 잉글랜드와는 다른 나라였기 때문에 자치의회의 입법권도 가장 크며, 중앙정부 의회에서 스코틀랜드에 대한 입법권은 크게 제한된다.3.2. 웨일스
오랫동안 잉글랜드와 하나로 취급받던 웨일스의 경우 지금도 잉글랜드와 법역을 공유하고 있어 웨일스의 독자적 입법권은 제약이 크다.자치의회 설치 당시에는 그마저도 1차 입법이 아니라 2차 입법(위임 입법) 형식이었다. 영국 의회, 스코틀랜드 의회,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만드는 법은 act라고 했는데 과거 웨일스 의회에서 만든 법은 그보다 약해 보이는 measure라고 불렀다.
2012년부터 자치권이 웨일스에 이양된 분야에 관한 법을 만들 때 1차 입법으로 법을 제정할 수 있게 격상돼서 이후에 웨일스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들도 다른 곳과 동일하게 act라고 부르고 있지만 여전히 웨일스 의회가 직접 법을 만들 수 있는 분야는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그래서 아직도 영국 의회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걸쳐서 적용되는 법률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법원, 검찰 조직도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분리돼 있지 않다.
3.3.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 다음으로 폭넓은 입법권을 갖지만 여기는 강제적인 대연정 제도 때문에 내각이 구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영국 중앙정부의 북아일랜드부 장관이 대리로 북아일랜드를 관할하므로 자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3.4. 잉글랜드
잉글랜드의 자치 문제 | ||||
웨스트 로디언 질의 | 그레이터런던 의회 신설 주민투표(1998) |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의회 신설 주민투표(2004) | EVEL | 영국의 자치권 이양 |
잉글랜드는 1707년 연합 이래 명실상부한 영국의 country지만 지금도 잉글랜드 단위 자치의회와 자치정부가 없다.[3] 영국에서 잉글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의원들을 법률 제정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2015년에 논란 끝에 채택되었는데 이것을 English votes for English laws(EVEL)이라고 한다. 하원에서는 잉글랜드에만 적용된다고 판단되는 법안의 경우, 법안 심의 과정 중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의원들만 한데 모아서 이 법안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다수결로 정하는 표결 절차를 만들었다. 수용하면 법안 심의의 다른 과정을 죽 밟을 수 있지만 거부하게 될 경우 그 법안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즉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의원 다수가 거부하는 법안은 아예 법으로 성립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영국 의회의 상원은 지역구 개념이 없어 이런 절차를 못 만들지만, 영국 의회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법률은 양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므로 어차피 하원에서 EVEL을 통해 거를 수 있다.
비슷하게,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웨일스에도 적용되는 법안을 심의할 때는 잉글랜드+웨일스의 하원의원을 모두 모아놓고 법안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묻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잉글랜드 자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논란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절차는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결국 폐기되었다.
잉글랜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잉글랜드 여러 지역별로 나눠서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식의 자치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고 지방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는 군소 정당들도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4. 그 외의 지역
현재 잉글랜드에 속한 콘월에서 자신들을 country로 인정해 자치를 허용해달라는 여론이 존재하지만, 인구가 55만 명밖에 되지 않아 넷 중 가장 적은 북아일랜드(약 180만명)의 1/3도 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이내에 수용되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리고 콘월 주민 전부가 일치단결해서 콘월이 잉글랜드와 분리된 country로 인정 받길 원하는 게 아니고 이 문제에 시큰둥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따라서 영국 정부로서는그 외에도 영국은 한때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고 지금도 일부 식민지를 해외영토라는 이름으로 거느리고 있지만 이들은 명목상 '영국이 해외에 가지고 있는 영토'로 취급될 뿐 영국 '내부'의 영토는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높은 자치권이 주어졌던 자치령 역시 마찬가지로 영국 내부의 구성국이 아니었다. 아울러 맨 섬, 채널 제도 역시 '영국 왕실이 가지고 있는 영토'(영국 왕실령)로 취급될 뿐 영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영토가 아니므로 구성국도 아니다.
5. 기타
외국인 입장에서 영국의 구성국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분야로 축구 대표팀이 있다. FIFA에는 모두 별개[4]로 가입되어 있으나 IOC에는 영국이 Great Britain[5](약부호 GBR) 하나로 가입되어 있어 2012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특별히 단일팀[6]으로 참가한 이력이 있다. 다만 상호간 출입국 심사는 하지 않아 IOC 등 외교관계에서는 영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영국의 구성국 제도를 설명할 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축구 대표팀 이야기다.[1]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지만 자치령은 '영국이 가지고 있는 영토'로 규정될 뿐 '영국의 영토'는 아니었다.[2] 이 조건은 브렉시트 투표도 부결시킬 수 있는 비민주적인 조건이었다. 당시 유권자 투표율은 63.6%로 1997년 투표보다 높았다. 단지 1979년 투표에서는 비교적 근소한 차이로 찬성이 앞섰을 뿐이다.[3] 잉글랜드 일부 하위 지역에 자치의회(Assembly)가 존재한다. 그러나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가 좌절된 이후 지역단위 자치권 이양은 그레이터 런던에서 멈췄고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연합해서 기구를 설치하고 자치의회를 받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굉장히 점진적이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모든 지역에 자치권을 이양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합기구들은 주로 도시권에 분포하고 있다.[4]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구성국 4개와 일치한다. 단,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영국 단일팀 소속이거나 아일랜드 단일팀(아일랜드+북아일랜드) 소속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북아일랜드가 독자적인 국가 대표팀을 운용하는 경우는 FIFA 주관 축구 대회와 커먼웰스 게임 정도로 손에 꼽는다.[5] IOC 공식표기이므로 원어로 표기한다. 참고로 영국은 스포츠에서 정치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United Kingdom(연합왕국)보다 지리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Great Britain, 또는 드물게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이전에는 Great Britain and Ireland)를 선호한다.[6] 그나마 잉글랜드 축구협회만 관여했다. 선수는 잉글랜드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남자 팀의 경우 웨일스 선수 5명만 추가로 참가하고(그마저도 God Save the Queen이 연주될 때 부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논란이 됐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선수는 없었다. 여자 팀의 경우 이민자 출신의 스코틀랜드 선수와 북아일랜드 출신 리저브 선수만 소수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