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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이드 | 블러 | 오아시스 | 펄프 |
| 브릿팝 시기 대표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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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라스 - There She Goes (1990) | 블러 - Parklife (1994) | |
| 오아시스 - Wonderwall (1995) | 슈퍼그래스 - Alright (1995) | |
| 펄프 - Common People (1995) |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A Design for Life (1996) | |
| 스웨이드 - Beautiful Ones (1996) | 더 버브 - Bitter Sweet Symphony (1997) |
| 브릿팝 Britpop | |
| <colbgcolor=#012169><colcolor=#ffffff> 기원 | 장르 얼터너티브 록, 팝 록, 뉴 웨이브, 로큰롤, 파워 팝 등[1] |
지역 | |
| 등장 시기 | 1990년대 초반 |
| 시대 | 1993년 - 1997년[2] 전성기 1994년 - 1996년 |
| 사용 악기 | 보컬,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어쿠스틱 기타, 건반 악기, 현악기 등 |
| 관련 장르 | 포스트 브릿팝, 일렉트로닉 록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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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ㆍ정치ㆍ미디어가 결합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 현상과 맞물려, 1993 ~ 1997년 사이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후 장르적 확장과 씬 해체로 자연스럽게 소멸하였다. 브릿팝은 현재 1990년대 영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운동으로 평가된다.
얼터너티브 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장르가 아닌 광범위한 카테고리에 가깝다. 이 당시에는 너바나, 펄 잼으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그런지에 대항하여 언론들이 60, 70, 80년대를 바탕으로 한 소위 영국색 짙은 음악들을 띄워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브릿팝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 역사
1980년대 영국 대중음악은 신스팝·뉴 로맨틱·댄스 팝의 부상과 함께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록 중심 패러다임이 약세화됐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을 대표하는 대형 록·메탈 밴드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투어와 음반 판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퀸, 다이어 스트레이츠, 더 폴리스,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와 같은 밴드들이며, 한편 U2는 아일랜드 밴드로 영국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같은 시기 영국 포함, 글로벌 록 씬을 주도하며 세계 투어의 구도를 형성한 주요 주체로 자리했다.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 메탈과 포스트 펑크 이후의 인디 록도 여전히 차트와 라이브 시장에서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였다.더 스미스와 에코 앤 더 버니멘은 인디 레이블 소속이라는 제도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앨범과 싱글을 영국 공식 차트 상위권에 진입시키며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를 가로질렀고, 더 폴은 보다 제한된 상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컬트 인지도를 형성하였다.
1980년대 후반 슈게이즈는 비평 담론과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영향력을 확장했으나 상업적 돌파력은 제한적이었던 반면, 이와 거의 동시기에 전개된 매드체스터 씬은 스톤 로지스와 해피 먼데이스, 뉴 오더 등의 상위 차트 진입과 대규모 클럽 문화를 통해 메인스트림 수준의 파급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월드 투어같은 라이브 공연에서는, 록 음악이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수십년 전에 데뷔한 롤링 스톤스부터 당대 밴드들이 그 예시.[3]
그리고 1990년대 초 미국에서는 너바나를 위시로 한 그런지 음악이 유행을 타고 주류 음악 시장에 진입했고, 이는 지구 반대편의 영국까지 영향을 끼쳤다.
| 더 라스의 There She Goes |
1988년 더 라스가 발표한 There She Goes는 최초의 브릿팝 트랙이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듣기 편한 멜로디와 브릿팝 특유의 Lad Culture[4]가 잘 드러나며, 이후 등장하는 브릿팝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브릿팝의 본격적인 시작은 스웨이드의 데뷔 싱글인 The Drowners와 블러의 네 번째 싱글 Popscene으로 본다. 1992년 봄 경에 발매된 두 노래는 '영국성'을 드러내는 음악이라는 평과 함께 NME와 멜로디 메이커 같은 당대 주류 언론에 의해 큰 조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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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4월 셀렉트 매거진의 표지 사진 유니언 잭 배경에 양키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문구가 적혔다. |
1994년 봄, 펄프가 His n Hers를 발매하고 일주일 뒤, 블러가 Parklife를 발매했으며, 여름에는 오아시스가 Definitely Maybe로 데뷔하면서 브릿팝은 본격적으로 영국 주류 음악 시장을 장악한다. 여기에 라이드, 러시처럼 브릿팝과 무관한 음악을 하던 밴드들도 브릿팝에 영향을 받아 스타일 변화를 가질 정도로 브릿팝은 전국적으로 유행한다.
그리고 1995년, 영국 언론이 만든 오아시스와 블러의 라이벌 구도가 격화되면서 브릿팝에 대한 인기와 관심도는 절정에 달한다.
자세한 내용은 브릿팝 전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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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브릿팝 전쟁#|]] 부분을
하지만 브릿팝 전쟁을 끝으로, 1997년에 이르러 브릿팝은 급속히 추진력을 상실해갔다. 발매 이전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오아시스의 Be Here Now는 혹평 세례를 받았고[5], 브릿팝의 기수였던 블러와 펄프는 각각 셀프 타이틀 음반와 This Is Hardcore를 발매하며 브릿팝과 스스로 멀어졌다. 때마침 영국 음악 씬을 강타한 스파이스 걸스의 데뷔와 3장의 우울한 걸작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버브의 Urban Hymns,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실제로 브릿팝 시대를 종결시켰다.
그리고는 우울의 정서로 가득한 시대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사람들이 브릿팝으로 쉽게 오해하는 우울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영국산 팝 록은 대개는 포스트 브릿팝 시대의 산물이다.
3. 특징
주로 1960~70년대 영국의 록 음악, 파워 팝, 인디 팝의 영향을 받은 만큼 사운드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 기타와 멜로디 중심의 편곡이 사운드적 특징이다.정서적으로는 상당히 다양하다. 밝은 정서, 낙천성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 특유의 냉소, 분노 등등의 부정적인 정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영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사에 녹아내는 것 역시 특징. 또한 영국 지역 고유의 악센트나 고유어를 굳이 숨기려 들지 않고 오히려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브릿팝 어떤 정서든 대부분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승화하여 카타르시스를 주는 특징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90년대 초반에서 90년대 중후반까지의 영국 메인스트림 음악을 지칭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흔히 대표적 브릿팝 밴드로 여기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경우 데뷔시점이 1993년으로 브릿팝의 시대를 관통하긴 하나 그 당시에 그런 조류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전통적인 영국 록큰롤과 더 스미스, 스톤 로지즈로 대표되는 80년대 영국 인디씬보다는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밴드이다.[6] 뮤즈 역시 마찬가지로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긴 하지만 브릿팝이라고 불릴 수는 없다. 쉽게 말해 브릿팝이란 1993~1996년 사이에 등장한 밝고 경쾌한 복고풍의 영국산 로큰롤 음악 내지 팝 록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영민하고 요란한 에너지로 가득했던 음악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브릿팝의 개념에 대해 심지어 평론가들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7] 브릿팝을 영국 음악 전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8]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뮤즈, 콜드플레이 등의 밴드를 브릿팝 밴드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릿팝이 음악적으로 별로 엄밀하게 정의된 장르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더 스미스를 위시로 한 80년대의 인디록과 90년대 초반 매드체스터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나고 자란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만큼, 사운드적인 면에서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일컫는 4대 브릿팝 밴드들 각각의 음악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렇게 다른 음악을 하는 밴드들을 한 장르로 넣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밴드들이 위에서 언급한 브릿팝의 음악적, 시기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즉 서로 개성은 뚜렷하지만 브릿팝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으므로 브릿팝으로 묶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브릿팝이 뚜렷하게 정의되는 개념이라는 것은 멘스웨어, 오션 컬러 씬, 에코벨리, 애쉬 등 중견급 밴드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가 최고의 브릿팝 밴드로 불리는 것은 브릿팝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뚜렷한 개성을 녹여냈기 때문이다.[9] 되레 중견급, 또는 그 이하의 브릿팝 밴드들의 경우, 개성이 약해 브릿팝 그 자체의 특징만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4대 밴드 중 브릿팝이 사망선고를 받은 뒤에도 평론적으로 성공을 거둔 블러와 펄프 그리고 스웨이드는 브릿팝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색과 타 장르의 영향[10]을 극대화해 성공을 거뒀다. 반면 해체 직전까지 약간의 변화 외에는 브릿팝 장르 내로 묶을 수 있는 음악을 낸 오아시스는
4. 브릿팝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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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속 인물은 당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와 노엘 갤러거. 총리와 락스타가 파티장에서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는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릿팝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요약한다. |
나는 아주 일찍부터 브릿팝과 선을 그었다.
내가 보기에 브릿팝은 점점 ‘남자들끼리 허세 부리는 분위기, 국수주의적이고, 만화 같은 현상’으로 변해갔고, 그렇게 변해간다는 걸 보자마자 재빨리 스웨이드를 거기서 떨어뜨려 놓았다.
— 브렛 앤더슨[11]
내가 보기에 브릿팝은 점점 ‘남자들끼리 허세 부리는 분위기, 국수주의적이고, 만화 같은 현상’으로 변해갔고, 그렇게 변해간다는 걸 보자마자 재빨리 스웨이드를 거기서 떨어뜨려 놓았다.
— 브렛 앤더슨[11]
위의 사진은 총리 취임 이후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열린 파티의 장면이다. 실제로 브릿팝은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과 관계가 깊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내걸던 구호중 하나인 쿨 브리타니아는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이 아닌 영국만의 록을 보여주자던 브릿팝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 실제로도 블레어는 노엘 갤러거[12]와 데이먼 알반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다큐멘터리 Live Forever - 브릿팝의 흥망성쇠에서 당시 음악계에서는 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 하였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다만 데이먼은 뒤에 지지를 철회하게 되는데, 블레어가 아이들을 카톨릭계의 학교로 보낸 것에 대해 질의를 하였다가 그런건 신경쓰지 마라는 답변을 받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13]
여기에 브릿팝 문화는 영국인의 자부심과 민족주의 정서를 건드리는 자극제였고, 일종의 복고주의 운동이었다. 때문에 과거의 영광스러운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언 잭이 브릿팝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Lad Culture 특유의 음주 문화, 마약, 폭력 등 남성성의 재건이 주요한 키워드로 부각되었다.
블러의 데이먼 알반과 그레이엄 콕슨, 펄프의 자비스 코커,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 등 여러 아티스트들은 일찍이 브릿팝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한 바 있으며, 대체적으로 언론이 부추긴 일종의 선동이자 허울 뿐인 영국 문화 부흥운동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러한 이유로 브릿팝은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며 90년대 초중반의 영국 연예계에서 가장 활개치고 다니거나 언론에서 띄워주는 연예인들을 묶은 일종의 내셔널리즘 프로파간다 겸 무브먼트 쯤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브릿팝 시기만큼 영국 연예계가 활발하던 시기도 없었다.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단어임에도 온갖 모델, 배우, 운동선수, 정치가, 총리까지 브릿팝과 엮였다. 또한 억지로 브릿팝의 음악적 시초가 누구니 하면서 계보를 만들라면 만들 수도 있겠으나[14], 후대에 어거지로 정의내리기 위해 끼워맞춘 격이었으며, 오아시스 역시 본인들을 브릿팝으로 묶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나[15][16], 정작 ‘브릿팝은 이런 음악이다’를 정의내릴 때 가장 선두에서 얼굴 들이미는 그룹이다. 오아시스는 그로 인해 넵워스 무대에서 브릿팝 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당시 넵워스 들판에 모인 연예계 인물들 및 온갖 상위 계층들을 위해 마련된 백스테이지 크기만 해도 거의 공항 수준이었다고 한다.
결국 브릿팝에 대한 설명은 저 위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의미와 평가보다는 미묘한 뉘앙스와 시선을 받는 단어이며, 웬만해서 브릿팝을 서술하는 해외 필진들의 글을 보면, 다른 리뷰들과는 다르게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전문적인 서술보다는 어딘가 ‘그 땐 그랬지’ 하며 노가리를 까는 듯한 핀트가 없이 두루뭉실한 서술들이 많다. 실제로 브릿팝은 기존의 영국 록 음악을 재해석한 정도에 그치는 탓에 음악적으로 뭐라 깊게 평가할 껀덕지가 부족하고, 결국 그 시대의 상황과 뒷얘기거리만이 남겨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릿팝 시기의 음악들은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평가를 해야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
5. 브릿팝 밴드 목록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영국 느낌이 나면 브릿팝이라 부르기에 장르를 특정하기가 어렵다.[2] 1997년 이후에 곡들은 브리티시 모던 록으로 분류된다.[3] 스톤스 포함 U2 등, 대형 밴드들이 그 이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도 통합ㆍ단일 투어 모든 부분에서 최고 수익을 기록한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대에 들어서는 에드 시런이 단일 투어 최고 기록을 깨더니, 2020년대에 들어서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모든 투어 기록을 뒤엎는다.[4] 영국과 아일랜드의 젊은 노동자 계층 남성을 중심으로 나타난 하위문화로, 집단적이고 반지성적인 남성 문화를 지칭할 때 쓰인다.[5] 발매 초기 영국 언론들은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걸작이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지만 일시적인 평가였고, 이내 범작 내지 졸작으로 분류되었다.[6] 다만 라디오헤드는 그 이전 인터뷰에도 스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사실 영국의 90년대 밴드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스미스의 영향 하에 있다.[7]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영미권 대중음악사에 대해 모르거나, 왜곡돼서 알고 있는 경우가 꽤나 있다. 심지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본인 생각과 사상을 토대로 강연역사왜곡을 하는 일도 잦았을 정도다.[8] 심지어 2024년 4월에 올라온 평론 기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작성해서 올렸다![9] 오아시스는 60년대 로큰롤과 70년대 펑크에 팝적인 감수성이 섞인 음악을, 블러는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도시적인 기타팝을, 스웨이드는 날카로운 기타 리프를 기반으로 한 퇴폐적인 분위기의 글램 락을, 펄프는 복고적인 신스팝과 디스코 리듬에 뿌리를 두었다.[10] 블러는 앨범마다 바뀌었지만 노이즈 록, 일렉트로니카, 트립 합 쪽으로 선회했고 잠정 해체 전 마지막 앨범인 Think Tank에선 데이먼의 음악적 성향이 극대화되어 이후 탄생할 고릴라즈의 음악과 어느 정도 연관된다. 펄프는 챔버 팝과 아트 록으로 선회 스웨이드는 해체 전앨범인 Head Music과 A New Morning은 전작들보다 키보드의 비중을 높혔으며 제결성 이후에는 아트 록과 포스트 펑크로 선회[11]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스웨이드 2집 Dog Man Star는 시기상만 브릿팝이라 불리며 3집 이후 나온 앨범들은 브릿팝과 크게 거리를 두고 있다.[12] 노엘의 경우 96년 브릿어워드에서 이런 발언을 한 바가 있다. "이 나라에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7명의 사람이 있다. 나, 우리 애(Our Kid), 귁시, 본헤드, 앨런 화이트, 앨런 맥기(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그리고 토니 블레어." 다른 인터뷰에서도 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13] 이후로도 데이먼 알반은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 운동에 참여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등 블레어를 위시한 노동당 중도파와 선명한 대립각을 세웠다.[14] 대표적으로 꼽히는 게 더 라스와 스톤 로지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더 스미스와 버즈콕스. 여기서도 더 내려가면 더 버즈 등 갖다 붙이자면 끝이 없다.[15] 노엘 갤러거는 "우린 브릿팝 밴드가 아니다. 우린 유니버셜 락을 한다. 일단 나부터 아일랜드 혈통이다."며 브릿팝으로 묶이는 것을 거부했다.[16] 사실 당시 브릿팝으로 얘기되던 밴드들 대부분이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싫어했고 브릿팝 움직임에 대해서도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던 경우가 많다.[17] 보통 2~4집만 브릿팝으로 분류한다. 5집 이후는 얼터너티브로 분류. 참고로 5집 당시 '브릿팝은 죽었다'라고 말하기도. (블러의 5집 발매를 시점으로 오아시스, 블러 등 주요 브릿팝 밴드들이 브릿팝 노래들을 내지 않고 장르를 바꾸며 브릿팝은 자연스럽게 끝났다. )[18] 'Dog Man Star'앨범의 경우 브릿팝의 범위가 어디까지로 보는지에 따라 브릿팝이 아니라고 분류되기도 하며 데뷔 앨범 역시 브릿팝 씬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본격적인 브릿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확실하게 브릿팝이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은 3집 'Coming Up' 정도.[19] 펄프는 4집과 5집 두 앨범만 브릿팝이며 그 뒤 두 앨범은 아트 록 쪽으로 분류한다.[20] She Said, On & On 등의 곡이 유명하다. 보컬 크리스핀 헌트는 제이크 버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몇 곡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21] 대표 곡으론 Chasing Rainbow가 있으며, 2024년 두 개의 앨범(하나는 신보 Matter of Time, 하나는 히트곡 재녹음 버전인 Liquid Gold)이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밴드이다.